소설리스트

9장 (136/194)

제9장

혼혈 왕자

   다음 날 아침, 해리와 론은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휴게실에서 헤르미온느를 만났다. 해리는 혹시라도 헤르미온느가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 주지 않을까 싶어서, 당장 호그와트 급행열차 안에서 엿들은 말포이의 말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파킨슨 앞에서 괜히 폼이라도 잡아 보려고 했던 게 분명 해,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미처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론이 재빨리 선수를 쳤다.

   “글쎄…….”

   헤르미온느가 망설이며 말했다.

   “난 잘 모르겠어…….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 해도 그건 너무 뻥이 심한걸…….”

   “내 말이 바로 그거야.”

   하지만 해리는 계속해서 지가 의견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그가 하는 말을 엿들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군거리거나 그를 빤히 쳐다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손가락질을 하는 건 무례한 짓이야.”

   그들이 초상화 구멍으로 기어 나가기 위해서 줄을 서고 있을 때, 론이 유난히 체구가 왜소한 1학년 남학생들에게 한마디 쏘아붙였다. 지금까지 계속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친구에게 해리에 대해서 뭔가 소곤거리고 있던 그 남학생은, 화들짝 놀라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비틀거리며 구멍을 빠져나갔다. 론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6학년이 되니 정말 좋군. 게다가 올해에는 자유 시간도 더 많아지잖아. 학기 내내 우린 그저 여기 앉아서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야.”

   “론, 우린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해!”

   복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헤르미온느가 잔소리를 했다.

   “그래,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진짜 가뿐하게 보낼 수 있는 날이라고.”

   론이 말했다.

   “거기 서!”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한쪽 팔을 쭉 뻗더니 지나가던 4학년 학생을 멈춰 세웠다. 그 학생은 연두색 원반을 손에 꼭 쥔 채 그녀의 옆을 밀치고 지나가려는 중이었다.

   “이빨 달린 프리스비(원반던지기 놀이의 플라스틱 원반 : 역주)는 금지 품목이야. 이리 내놔.”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얼굴이 일그러진 남학생은 이빨을 드러내고 덤비는 프리스비를 내놓고 몸을 굽혀 헤르미온느의 팔을 살짝 빠져나가더니, 저만치 가고 있는 친구들 뒤를 재빨리 쫓아갔다. 론은 그 학생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헤르미온느의 손에서 프리스비를 휙 낚아챘다.

   “잘했어! 난 항상 이걸 갖고 싶었거든.” 

   헤르미온느가 거세게 항의하는 소리는 요란한 웃음소리에 그만 파묻혀 버렸다. 라벤더 브라운은 론이 한 말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계속 웃으며 그들을 지나치더니 어깨 너머로 론을 흘깃 돌아다보았다. 론도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대연회장의 천장은 옅은 구름이 희끗희끗 보이는 청명한 푸른색을 띠고 있어서, 마치 창살을 댄 높다란 창문을 통해서 네모나게 조각난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해리와 론은 오트밀과 달걀, 베이컨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헤르미온느에게 어젯밤 해그리드와 나눈 당황스런 대화 내용을 전해 주었다.

   “해그리드는 어떻게 우리가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계속 들을 거라고 생각할 수가 있지!”

   헤르미온느도 몹시 심란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중에 누구 하나라도…… 그 수업에 대해서…… 열의를 보인 적이 있었던가?”

   “그랬잖아, 안 그래?”

   론이 달걀 프라이 하나를 통째로 꿀꺽 삼키며 말했다.

   “우리는 그 수업 시간에 제일 열성적인 학생들이었어. 우린 해그리드를 좋아해서 그랬던 건데, 해그리드는 우리가 그 한심한 수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겠지. 혹시 N.E.W.T.까지 계속 하려는 사람은 없을까?”

   해리도 헤르미온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6학년 학생들을 통틀어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계속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을 세 사람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10분이 지나 해그리드가 교직원 테이블 앞을 떠나며 반갑게 손을 흔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그의 시선을 슬슬 피하면서 힘없이 손을 흔들어 답했다.

   식사가 모두 끝난 후, 학생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맥고나걸 교수가 교직원 테이블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올해의 수업 시간표를 정하는 일은 평소보다 훨씬 복잡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각자 선택한 N.E.W.T.를 계속하는 데 필요한 O.W.L. 성적을 받았는지 맥고나걸 교수가 먼저 일일이 확인해야만 했던 것이다.

   헤르미온느는 즉시 마법, 어둠의 마법 방어술, 변신술, 약초학, 산술점, 고대 룬 문자, 마법약 수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곧장 학기 첫 수업인 고대 룬 문자를 들으로 횅하니 가 버렸다. 한편 네빌은 수업받을 과목을 고르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맥고나걸 교수가 그의 수업 신청서를 살펴보고 다시 그의 O.W.L. 시험 결과를 살펴보는 동안 그의 동그란 얼굴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약초학은 좋아. 스프라우트 교수님은 네가 O.W.L.에서 ‘특출함’을 받은 걸 아시면 무척 기뻐하실 게다. 그리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서는 ‘기대 이상’을 받았으니 그런대로 자격이 되는 셈이야. 하지만 변신술이 문제가 되는구나. 미안하다, 롱바텀. 하지만 ‘보통’의 성적을 가지고는 N.E.W.T. 수준의 수업을 계속하기가 사실 좀 힘들단다. 네가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네빌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맥고나걸 교수는 네모난 안경 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넌 왜 변신술 수업을 계속 듣고 싶어 하는 거니? 나는 네가 특별히 그 수업을 좋아한다는 인상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네빌은 우거지상을 하고는 “할머니가 원하세요.” 하고 알아들을 수 없게 웅얼거렸다.

   “흠…….”

   맥고나걸 교수가 콧소리를 냈다.

   “이제 그만 네 할머니께서는 당신이 원하는 모습의 손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손자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것 같구나. 특히 마법부에서 그런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네빌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눈을 껌벅이며 몸 둘 바를 몰랐다. 지금까지 맥고나걸 교수님은 단 한 번도 그를 칭찬해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롱바텀. 하지만 너를 내 N.E.W.T. 수업에 들어오게 할 수는 없단다. 그런데 너는 마법 과목에서 ‘기대 이상’을 받았는데, 왜 N.E.W.T. 마법 수업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거니?”

   “할머니께서 마법 과목은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하세요.”

   네빌이 중얼거렸다.

   “마법 수업을 듣거라.”

   맥고나걸 교수가 딱 잘라 말했다.

   “내가 어거스타에 전갈을 보내서, 자기가 O.W.L. 마법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그 과목이 가치 없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도록 하마.”

   맥고나걸 교수는 너무 기뻐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네빌의 얼굴을 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지팡이 끝으로 비어 있는 수업 시간표를 한 번 탁 치더니, 이제 새로운 수업 과목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 종이를 네빌에게 건네주었다.

   다음에 맥고나걸 교수는 패르바티 패틸에게로 몸을 돌렸다. 패르바티는 가장 먼저 그 잘생긴 켄타우로스인 피렌체가 아직도 점술 수업을 가르치는지부터 물었다.

   “올해에는 트릴로니 교수님과 나누어서 수업을 하실 거야.”

   맥고나걸 교수는 못마땅한 기색을 살짝 드러내며 말했다. 맥고나걸 교수가 점술 과목을 무시한다는 것은 모두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6학년은 트릴로니 교수님이 담당하실 거란다.”

   패르바티는 5분 후에 약간 풀 죽은 표정으로 점술 수업을 들으러 떠났다.

   “그래, 포터, 포터…….”

   맥고나걸 교수는 포터의 수업 신청서와 시험 결과 서류를 내려다보며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법, 어둠의 마법 방어술, 약초학, 변신술…… 모두 다 좋구나. 특히 네 변신술 성적을 보니 무척 기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포터, 아주 잘했어. 그런데 왜 마법약 수업은 계속 들으려고 하지 않는 거니? 너는 오러가 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맞아요. 하지만 그러려면 O.W.L.에서 ‘특출함’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교수님.”

   “스네이프 교수님께서 그 과목을 가르치실 때에는 그랬지. 하지만 슬러그혼 교수님은 O.W.L.에서 ‘기대 이상’을 받은 학생이라도 기꺼이 N.E.W.T. 수업에 받아 주실 게다. 그럼 마법약 수업을 계속하고 싶은 거니?”

   “네, 하지만 저는 책이랑 재료 같은 걸 아무것도 사 오지 않았는데요…….”

   “슬러그혼 교수님께서 빌려 주실 수 있을 게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자, 포터, 여기 네 시간표를 받아라. 아, 그리고 벌써 스무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에 들어오고 싶다고 이름을 적어 냈단다. 조만간 그 명단을 너에게 넘겨줄 테니 네 시간에 맞추어 선발 테스트 날짜를 정하도록 해라.”

   몇 분 후에 론도 해리와 똑 같은 과목을 듣는 것으로 결정되어 두 사람은 함께 연회장을 떠났다.

   “이거 봐.”

   론은 자신의 시간표를 들여다보며 신이 나서 말했다.

   “지금 우리는 수업이 없어……. 쉬는 시간 후에 또 수업이 없어.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에도 또……. 정말 굉장하다!”

   두 사람은 휴게실로 돌아갔다. 텅 빈 휴게실 안에는 7학년 학생 여섯 명만이 있었다. 그중에는 케이티 벨도 있었는데, 해리가 1학년 때부터 함께 뛰었던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 원년 선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난 네가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정말 장하다!”

   케이티 벨이 해리의 가슴에 달려 있는 주장 배지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선수 선발 테스트를 치를 때 나도 꼭 불러 줘.”

   “농담하지 마, 케이티. 선발 테스트를 치를 필요는 없어. 경기하는 걸 내가 5년 동안이나 봐 왔는걸…….”

   해리가 말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돼.”

   케이티 벨이 주의를 주었다.

   “네가 아무리 잘 알아도,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주장이 항상 기존의 선수들이나 자기 친구들만 가입시켜서 훌륭한 팀들이 망가지곤 했다는 걸 잊지 마.”

   그러자 론이 왠지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 헤르미온느가 4학년 학생에게서 빼앗은 이빨 달린 프리스비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프리스비는 휴게실 안을 슝 날아다니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벽걸이 양탄자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크룩생크는 노란 눈으로 프리스비의 뒤를 열심히 쫓더니, 그것이 가까이 다가오자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한 시간 후, 두 사람은 지하 4층에 있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을 향해서 마지못해 햇빛이 환한 휴게실을 나섰다. 헤르미온느는 지친 얼굴로 두 팔 가득 두꺼운 책들을 들고서 벌써 교실 밖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고대 룬 문자 수업의 숙제가 아니야.”

   해리와 론이 다가오자, 헤르미온느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40센티미터 분량의 작문 한 편에다가 번역을 두 가지나 해야 해. 게다가 수요일까지 이 책들을 다 읽어야 하고!”

   “끔찍하구나.”

   론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대꾸했다.

   “너도 기다려 봐.”

   헤르미온느가 잔뜩 약이 올라 말했다.

   “스네이프도 만만치 않게 숙제를 내줄 테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교실 문이 열리더니, 스네이프가 복도로 걸어 나왔다. 혈색 나쁜 그의 얼굴 위로 여느 때처럼 기름진 검은 머리카락이 양쪽으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안으로.”

   스네이프가 말했다.

   교실로 들어가면서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네이프는 이미 교실 안을 자기 취향대로 꾸며 놓은 상태였다. 커튼으로 창문을 온통 가린 채 촛불을 밝혀 두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더 음침해 보였다. 벽에는 새로운 그림들이 붙어 있었는데, 대부분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부상을 당하거나 신체 일부가 이상하게 뒤틀려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그 음침하고 기괴한 그림들을 쳐다보면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책을 꺼내란 말을 한 적이 없다.”

   교실 문을 닫은 스네이프는 교탁 뒤로 와서 학생들을 마주 보고 섰다.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정체불명인 것들과의 대면》이란 책을 가방 속으로 도로 집어넣고는 가방을 의자 밑에 쑤셔 넣었다.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귀 기울여서 똑똑히 듣기 바란다.”

   스네이프의 까만 눈동자가 고개를 바짝 들고 있는 학생들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보더니, 해리의 얼굴 앞에서 잠깐 동안 머뭇거렸다.

   “내가 알기론 지금까지 이 과목을 다섯 분의 교수님께서 가르치셨다.”

   ‘‘내가 알기론’ 이라니……. 당신은…… 그 사람들이 모두 다 왔다가 떠나가 버리는 걸 보지 못한 사람처럼 말하는군. 스네이프, 다음은 당신 차례가 될 거야.’

   해리는 적개심에 가득 차서 생각했다.

   “당연히 이 교수님들 모두 각기 다른 방식과 우선시하는 바가 있으셨을 것이다. 그런 혼란스런 상황을 생각하면,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이 과목에서 비록 턱걸이나마 O.W.L.을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너희들 모두가 훨씬 높은 수준이 될 N.E.W.T. 수업을 간신히 따라온다면 더욱더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스네이프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교실 가장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목을 길게 빼고 그를 주목했다.

   “어둠의 마법은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영원불멸하다. 그것과 싸운다는 것은 수백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과 싸우는 것과도 같다. 머리 하나를 베어 낼 때마다 전보다 더 강하고 영리한 머리가 솟아나는 것이다. 즉, 너희들은 종잡을 수 없고 변화무쌍하며 파괴할 수 없는 것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둠의 마법을 위험한 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지금 스네이프처럼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 애정이 담뿍 담긴 어조로 찬양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까?

   “그러므로 너희들의 방어술은…….”

   스네이프가 좀 더 목청을 높였다.

   “너희들이 없애고자 하는 그 어둠의 마법만큼이나 유연하고 창의적이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볼까?”

   스네이프는 그림 옆을 지나면서 몇 개를 가리켰다.

   “이 그림들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스네이프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녀 한 명을 손짓하며 가리켰다.

   “이 사람은 디멘터에게 입맞춤을 당했지.”

   마법사 한 명이 멍한 눈빛으로 벽에 몸을 기댄 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혹은 인페리우스 공격을 당했거나…….”

   피투성이의 살점들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인페리우스가 목격된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이 인페리우스들을 사용한다는 게 확실한 건가요?”

   패르바티 패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날 어둠의 마왕은 인페리우스들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스네이프가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자가 또다시 인페리우스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이제…….”

   스네이프는 다시 교탁을 향해 교실 반대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그를 쫓았다. 스네이프의 길고 검은 망토가 등 뒤에서 펄럭였다.

   “……아마 여러분들은 무언 주문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무언 주문의 좋은 점이 무엇일까?”

   헤르미온느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스네이프는 또 다른 사람은 없는지 잠깐 교실 안을 둘러보다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확인하고 쌀쌀맞게 말했다.

   “좋아…… 그레인저 양?”

   “자신이 어떤 마법을 사용할 것인지, 상대가 미리 짐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단 0.5초라도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6학년 주문 표준 교본》에 적혀 있는 문장을 그대로 베낀 대답이로군.”

   스네이프가 경멸 어린 어조로 말했다(그러자 한쪽 구석에서 말포이가 키득거렸다).

   “하지만 어쨌든 내용은 맞았다. 그렇다. 주문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향상된 사람은 기습적으로 주문을 걸 수 있다는 한 가지 이점을 가지게 된다. 물론 모든 마법사들이 무언 주문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신력과 집중력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스네이프의 시선이 또다시 악의적으로 해리에게 잠시 머물렀다.

   “그런 자질이 부족하다.”

   해리는 스네이프가 작년에 함께 했던 그 끔찍한 오클러먼시 수업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해리는 시선을 떨어뜨리는 대신, 스네이프가 먼저 눈길을 돌릴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노려보았다.

   “이제 두 사람씩 조를 짜도록 해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소리 내지 말고 주문을 걸어 보아라. 그리고 상대방 또한 입을 다문 채, 그 주문을 방어해 보도록. 자, 그럼 실시!”

   비록 스네이프는 모르고 있었지만, 이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 중에서 적어도 절반(모두 다 D.A. 회원이었다)은 지난해에 해리에게서 방어벽 마법을 어떻게 하는지 이미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리 내어 주문을 외지 않고 마법을 써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러 가지 속임수들이 등장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큰 소리로 외우는 대신 조그맣게 속삭이는 방법을 썼다.

   수업 시간이 10분쯤 지나고 나자, 늘 그렇듯이 헤르미온느가 단 한 마디 소리도 내지 않고, 네빌이 중얼거린 엿가락 다리 마법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분별이 있는 교수님이라면 누구든 그리핀도르에 20점을 주고도 남을 만한 뛰어난 실력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못 본 척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커다란 박쥐처럼 보이는 그는 연습을 하고 있는 두 사람 곁을 그냥 휙 지나쳐 버리더니, 주어진 과제를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는 해리와 론을 잠시 지켜보았다.

   해리에게 마법을 걸어야 하는 론은 주문을 중얼거리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내기 위해서 입을 꾹 다물고 안간힘을 쓰느라, 얼굴빛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편 해리는 지팡이를 치켜든 채, 도무지 올 것 같지 않은 공격을 막아 내려고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스네이프가 말했다.

   “위즐리, 한심하구나. 자…… 내가 시범을 보여 주지.”

   그리고 스네이프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곧장 해리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해리는 소리 내어 주문을 외우면 안 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본능적으로 방어를 했다.

   “프로테고!”

   해리의 방어벽 마법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스네이프는 중심을 잃고 쓰러져 책상 모서리에 몸을 부딪혔다. 학생들 전체가 고개를 돌려서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무언 주문을 연습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나, 포터?”

   “네.”

   해리는 딱딱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교수님!”

   “저를 굳이 ‘교수님’이라고까지 부르실 필요는 없는데요, 교수님.”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기도 전에 이런 말이 해리의 입에서 술술 새어 나왔다. 헤르미온느를 비롯한 몇몇 학생들이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론과 딘, 시무스는 스네이프의 등 뒤에서 참 잘했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토요일 밤, 내 방에서 징계를 받아라, 포터.”

   스네이프가 말했다.

   “내 앞에서 감히 그런 건방진 말대꾸를 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용납할 수 없다. 설사 ‘선택받은 자’ 라 해도 말이다.”

   잠시 후에 쉬는 시간이 되어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오자, 론이 우쭐해서 소리쳤다.

   “정말 멋있었어, 해리!”

   “그런 말은 정말 하지 말았어야 했어. 도대체 왜 그랬니?”

   헤르미온느가 론을 째려보며 말했다.

   “넌 못 본 모양인데, 그자가 나에게 저주를 걸려고 했단 말이야!”

   해리가 잔뜩 열이 받아 소리쳤다.

   “지난번 오클러먼시 수업에서 당한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해. 왜 그자는 다른 실험 대상을 찾지 않는 거지? 도대체 덤블도어 교수님은 어쩌자구 그런 자에게 방어술 수업을 수업을 맡긴 거야? 그자가 어둠의 마법에 대해서 지껄여 대는 소리를 너희들도 들었지? 그자는 찬양을 하고 있다고! 종잡을 수 없고 파괴할 수 없고 어쩌고저쩌고…….”

   “글쎄, 나는 스네이프가 하는 말이 네가 하는 말과 약간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나랑 비슷하다고?”

   “그래, 네가 우리에게 볼드모트와 맞서 싸우는 기분이 어떤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잖아. 그건 그저 닥치는 대로 주문을 줄줄 외워 대는 거랑은 전혀 틀리다고 네가 말했어. 무엇보다 스스로의 생각과 용기가 중요하다가 말이야. 그게 결국 스네이프가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르니? 결국 용기와 재빠른 두뇌회전이 중요하다는 거 아니야?”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자기 말을 《표준 마법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는 사실에 그만 마음이 흐믓해져서, 더 이상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해리! 이봐, 해리!”

   해리가 뒤를 돌아보니, 지난해에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의 몰이꾼 중 하나였던 잭 슬로퍼가 양피지 두루마리를 손에 쥔 채 그를 향해 허겁지겁 다가오고 있었다.

   “네 앞으로 온 거야.”

   슬로퍼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이봐, 네가 새로운 주장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어. 그런데 선발 테스트 날짜는 언제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해리는 내심 굉장히 운이 좋아야만 슬로퍼가 다시 팀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나중에 알려 줄게.”

   “응, 알았어. 나는 이번 주말이 좋은데…….”

   하지만 해리는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양피지에 적힌 가느다랗고 비스듬한 글씨체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한창 떠들고 있는 슬로퍼를 그대로 세워 둔 채,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얼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양피지를 펼쳐 보았다.

     친애하는 해리에게

     오는 토요일에 개인 지도를 시작하고 싶구나.

     내 방으로 오후 여덟 시까지 찾아 와주면 고맙겠다.

     부디 개학 첫날을 즐겁게 보냈기를 바라며.

                                      알버스 덤블도어

     추신 : 나는 신맛 나는 사탕을 좋아한단다.

   “신맛 나는 사탕을 좋아한다고?”

   해리의 어깨너머로 편지를 들여다보던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의 방 밖에 서 있는 이무기를 지나가기 위한 암호야.”

   해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아하! 스네이프가 알면 실망하겠는걸……. 이제 난 그에게 징계를 받으러 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야!”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쉬는 시간 내내 과연 덤블도어가 해리에게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론은 틀림없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저주나 주문일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그런 건 불법이기 때문에, 아마도 해리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방어 마법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반박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헤르미온느는 산술점 수업을 들으러 가고, 해리와 론은 휴게실로 돌아와서 툴툴거리며 스네이프의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숙제가 어찌나 어렵고 힘들었던지, 헤르미온느가 점심 식사 이후에 쉬는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서 찾아왔을 때까지도 여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물론 헤르미온느가 문제를 푸는 과정을 상당히 단축시켜 주기는 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오후에 있는 두 시간짜리 마법약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을 때쯤에야 겨우 숙제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스네이프가 쓰던 지하 교실을 향해 익숙한 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복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N.E.W.T. 수준의 마법약 수업을 계속 듣는 사람이 겨우 열두 명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O.W.L. 에서 요구하는 성적을 따내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말포이를 포함해서 슬리데린 학생들이 네 명 있었다. 그리고 래번클로의 학생 네 명과 어니 맥밀란이라고 하는 후플푸프의 학생 한 명이 있었다. 해리는 점잔 빼는 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를 꽤 좋아했다.

   “해리.”

   해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어니는 악수를 청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는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네. 괜찮은 수업인 것 같아. 물론 방어벽 마법 같은 거야 우리 옛날 D.A. 동지들에게는 구닥다리 유물이지만 말이야……. 그래, 너희들은 어떻게 지냈니, 론…… 헤르미온느?”

   하지만 그들이 미처 “좋아” 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지하 교실의 문이 스르르 열리고 슬러그혼의 배가 문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학생들이 교실로 줄지어 들어가는 동안, 슬러그혼의 활짝 웃는 입술 위로 해마 같은 그의 거대한 콧수염이 높이 말려 올라갔다. 슬러그혼은 특히 해리와 자비니를 열렬히 환영했다.

   지하 교실은 평소와는 달리 벌써부터 이상야릇한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커다란 냄비 앞을 지나가면서 호기심이 발동한 듯이 코를 킁킁거렸다. 네 명의 슬리데린 학생들은 한 책상에 몰려 앉았고, 네 명의 래번클로 학생들도 그렇게 했다. 결국 남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어니와 함께 한 책상을 쓰게 되었다. 그들은 황금색 냄비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상을 골랐다. 냄비에서는 해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매혹적인 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밀 타르트나 빗자루 손잡이의 나무 냄새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버로우에서 맡았던 것 같은 꽃 냄새와 비슷하기도 했다. 해리는 문득 자신이 아주 느릿느릿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냄비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는 감미로운 술처럼 그의 뱃속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엄청난 만족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해리가 론을 향해서 빙그레 미소를 던지자, 론 또한 나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그럼 여기를 봐요. 여기를 봐.”

   슬러그혼이 말했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그의 거대한 모습이 어른거렸다.

   “모두들 저울과 약품 통을 꺼내도록 해요. 그리고 《상급 마법약 만들기》도 잊지 말도록 하고…….”

   “교수님?”

   해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왜 그러지, 해리?”

   “저는 책도 저울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론도 그렇고요. 저희들은 N.E.W.T. 마법약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 그래 맥고나걸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걱정하지 말거라, 해리야. 걱정할 것 하나도 없어요. 오늘은 이 선반에 있는 재료들을 쓰면 된단다. 그리고 저울도 빌려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여기 어딘가에 옛날에 쓰던 교과서들도 몇 권 있단다. 그러니 네가 플러러시와 블러트 서점에 편지를 보내서 책을 주문할 때까지 그걸 쓰면 될 거야…….”

   슬러그혼은 한쪽 구석에 있는 선반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한동안 뭔가를 뒤적거리다가 다 낡아 빠진 리바티우스 보레이지의 《상급 마법약 만들기》 두 권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녹슬어 버린 저울 두 개와 함께 그것들을 해리와 론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제 그럼…….”

   슬러그혼이 학생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그러고는 이미 조끼에 달린 단추가 터질 듯이 부풀어 있는 배를 불쑥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냥 흥미로울 것 같아서 여러분에게 보여 줄 마법약 몇 개를 한번 준비해 봤어요. 이 마법약들은 여러분들이 N.E.W.T. 수업을 마친 후에는 반드시 만들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지요. 아직까지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겠지만, 그 이름은 분명히 한 번쯤 들어 봤을 거예요. 혹시 이게 뭔지 아는 사람?”

   슬러그혼은 슬리데린의 책상 바로 앞에 놓인 냄비를 가리켰다. 해리는 자리에서 몸을 약간 일으켜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그냥 평범한 물처럼 보이는 것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데엔 능숙한 헤르미온느의 손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번쩍 올라갔다. 슬러그혼이 그녀를 지적했다.

   “베리타세룸입니다. 무색무취의 이 마법약은 그걸 마신 사람이 진실을 말하도록 만듭니다.”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아주 잘했어요, 아주 잘했어!”

   슬러그혼이 흐믓한 표정으로 칭찬을 했다.

   “자, 그럼…….”

   슬러그혼은 래번클로의 책상 바로 옆에 놓인 냄비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이것은 꽤 잘 알려진 것인데…… 마법부에서 나온 전단지에서도 몇 번 언급되었고…… 어디 누구……?”

   “그것은 폴리주스 마법의 약입니다,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해리도 두 번째 냄비 안에서 천천히 끓고 있는 진흙 같은 액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헤르미온느가 먼저 질문에 대답을 해서 점수를 딴 것이 전혀 분하지는 않았다. 누가 뭐래도 헤르미온느는 벌써 2학년 때 그 마법약을 직접 만드는 데 성공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요! 자, 여기 하나 더 있는데…… 뭐지요, 우리 여학생?”

   헤르미온느의 손이 또다시 번쩍 올라가자, 슬러그혼이 이제는 약간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아모텐시아입니다!”

   “맞았어요. 묻는 내가 바보인 것 같군.”

   슬러그혼은 몹시 감탄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 마법약의 용도 또한 알고 있겠지?”

   “예,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랑의 묘약입니다!”

   헤르미온느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정확히 맞혔어요! 아마 학생은 이 독특한 진주 빛깔의 영롱한 광채를 보고 알아보았겠지?”

   “그리고 특이하게 나선형으로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고 알았습니다.”

   헤르미온느가 신이 나서 설명했다.

   “이 약은 어떤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냄새를 풍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제 코에는 갓 베어낸 풀 냄새와 빳빳한 새 양피지 냄새 그리고…….”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학생의 이름을 좀 물어봐도 되겠나?”

   슬러그혼은 헤르미온느의 당황하는 기색을 못 본 척하며 물었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입니다, 교수님.”

   “그레인저? 그레인저? 그렇다면 천재 마법 약사 협회를 창단한 헥터 대그워스 그레인저와 친척 간일 수도 있겠군.”

   “아니, 그건 아마 아닐 겁니다, 교수님. 저는 머글 태생이거든요.”

   해리는 말포이가 노트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뭐라고 속삭이며 킬킬거리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슬러그혼은 전혀 실망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을 헤르미온느에게서 바로 그 옆에 앉아 있는 해리에게로 옮기더니 더욱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오호!  ‘제 가장 친한 친구 한 명도 머글태생이에요. 그리고 그 친구도 우리 학년에서 최고 우등생인걸요.’ 하고 네가 말했던 그 친구가 바로 이 여학생이구나. 그렇지, 해리?”

   “네, 교수님.”

   해리가 대답했다.

   “그래, 그래. 그리핀도르에 20점을 주도록 하지, 그레인저 양.”

   슬러그혼이 다정하게 말했다.

   말포이는 예전에 헤르미온느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을 때와 똑 같은 표정이 되었다. 헤르미온느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해리에게 속삭였다.

   “정말로 교수님께 내가 우리 학년에서 최고 우등생이라고 말했니? 오, 해리!”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그러니?”

   론이 중얼거렸다. 그는 왠지 약간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네가 우리 학년에서 최고인 건 사실이잖아. 나한테 물었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대답했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빙그레 웃다가 ‘쉿’ 하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들은 다시 슬러그혼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론은 여전히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물론 아모텐시아가 진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에요. 사랑을 만들어 내거나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이 약은 대단히 강렬한 열정이나 집념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약이야말로 이 방 안에서 가장 위험하고 강력한 마법약일 것입니다, 오, 그렇고말고요.”

   슬러그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가에 조소를 띠고 있는 말포이와 노트를 향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이 나처럼 인생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고 나면, 강박적인 사랑의 힘을 결코 과소평가하지는 못할 거예요.”

   슬러그혼이 말했다.

   “그럼, 이제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군요.”

   “교수님, 이 안에 든 건 뭔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는데요?”

   어니 맥밀란이 슬러그혼의 탁자 바로 옆에 놓인 작고 검은 냄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안에 담긴 마법약은 가볍게 찰랑 거리고 있었다. 마치 황금을 녹인 물 같은 색깔이었는데, 수면 위로 금붕어처럼 생긴 커다란 기포들이 퐁퐁 터져 오르고 있었지만, 단 한 방울도 밖으로 튀지는 않았다.

   “오호라.”

   슬러그혼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리는 분명 슬러그혼이 그 약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누군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군. 저 약 말이죠. 여러분, 저 약은 펠릭스 펠리시스라고 불리는 가장 흥미롭고 작은 마법약이랍니다. 내 생각에 당연히…….”

   슬러그혼은 빙그레 웃으며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막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던 참이었다. 

   “펠릭스 펠리시스가 무슨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겠죠, 그레인저 양?”

   “행운의 액체입니다.”

   헤르미온느가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 약은 행운을 가져다줍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교실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갑자기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동시에 매끄러운 금발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말포이의 뒤통수가 해리의 눈앞을 가렸다. 마침내 말포이조차 귀를 쫑긋 세우고 슬러그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맞았어요. 그리핀도르에 10점을 더 주겠어요. 그래요, 이게 바로 그 흥미롭고 작은 마법약, 펠릭스 펠리시스예요.”

   슬러그혼이 말했다.

   “만들기가 굉장히 까다롭고 자칫 잘못 만들면 끔찍한 재난을 불러일으키지요. 하지만 여기 보이는 것처럼 제대로 끓이기만 하면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성공할 수 있을거예요. 적어도 그 효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걸 계속해서 마시지 않는 거죠?”

   테리 부트가 진지하게 물었다.

   “왜냐하면 이걸 너무 과용하게 되면 경솔함과 무모함, 그리고 위험할 정도로 지나친 자신감을 불러일으키게 되기 때문이에요.”

   슬러그혼이 말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너무 지나치면…… 치명적인 독이 되는 법이죠. 하지만 아주 이따금씩 조금만 사용하게 되면…….”

   “교수님께선 그걸 써 보신 적이 있나요?”

   마이클 코너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이제껏 살아 오는 동안 딱 두 번 써 보았어요. 한 번은 스물네 살 때였고, 또 한 번은 쉰일곱 살 때였죠. 아침 식사와 함께 찻숟가락으로 두 번 떠먹었는데…… 정말 완벽한 이틀이었어요.”

   슬러그혼은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슬러그혼이 하는 말에 좀 과장이 섞여 있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효과는 꽤 좋은 것 같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그리고 저 약은 이번 수업에서 상으로 줄 거예요.”

   다시 정신을 차린 슬러그혼이 말했다.

   그러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그 바람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마법약들이 펄펄 끓는 소리와 부글거리는 소리가 열 배는 더 크게 들렸다.

   “펠릭스 펠리시스가 담긴 이 작은 병 하나면…….”

   슬러그혼은 호주머니 안에서 코르크 마개로 봉해진 조그마한 유리병 하나를 꺼내서 학생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열두 시간 동안의 행운은 충분히 보장될 거예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여러분이 하려고 하는 모든 일에 행운이 따르는 거죠. 하지만 공식적인 경쟁들, 예를 들어서 운동 시합이나 시험, 선거 등에서는 펠릭스 펠리시스가 금지된 약물임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알려 주겠어요. 그러니 이것을 상으로 받은 우승자는 그냥 평범한 날에 딱 하루만 이 약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 평범한 날이 어떻게 전혀 평범하지 않은 날이 되는지 지켜보도록!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나의 이 놀라운 상품을 받을 수 있을까?”

   갑자기 슬러그혼이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자, 그럼 《상급 마법약 만들기》 10쪽을 펴도록 해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한 시간이 조금 넘으니까,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살아 있는 죽음의 약’을 만들어 보도록! 물론 나도 이 약아 여러분이 지금까지 만들어 본 그 어떤 마법약보다 훨씬 더 만들기가 까다롭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완벽한 약을 만드는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제일 잘한 사람이 이 작은 펠릭스 펠리시스를 차지하게 될 거예요. 자, 그럼 시작!”

   모두들 자기 앞으로 황급히 냄비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나고, 저마다 저울에 재료의 무게를 달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쿵쿵하고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입을 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실 안에는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았다. 해리는 말포이가 미친 듯이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것을 보았다. 말포이 또한 그 행운의 날을 간절하게 원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해리도 얼른 고개를 숙이고 슬러그혼이 빌려 준 그 너덜거리는 책을 재빨리 넘겼다.

   하지만 짜증스럽게도 해리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 책의 원래 주인이 해 놓은 빼곡한 낙서들을 보아야 했다. 책의 가장 자리는 글씨가 인쇄된 부분만큼이나 새카맸다. 고개를 처박고 안 보이는 재료들(이 부분에까지 예전 주인은 글씨 위로 온갖 설명을 달아 놓거나 삭제 표시를 해 놓았다)을 간신히 해독한 해리는 필요한 재료들을 찾기 위해서 황급히 선반으로 갔다. 그가 다시 냄비 앞으로 달려왔을 때, 말포이는 최대한 쥐오줌 풀 뿌리를 썰고 있었다.

   모두들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연신 곁눈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작업을 숨기기 어렵다는 게 바로 마법약 수업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이기도 했다. 10분도 채 안 돼서, 교실 전체가 푸른색 김으로 가득 찼다. 당연히 헤르미온느가 가장 빨랐다. 그녀가 만든 약은 이미 가장 이상적인 중간 단계라고 설명이 되어 있는, ‘은은하면서도 어두운 건포도 빛깔의 액체’ 비슷한 모양을 띠기 시작했다.

   겨우 뿌리 써는 일을 끝낸 해리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았다. 옛날 책 주인이 휘갈겨 놓은 말도 안 되는 낙서들 밑에 적힌 제조 방법을 해독하려고 기를 쓰다 보니, 몹시 짜증이 났다. 그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잠 오는 콩을 자르라는 지시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른 지시 사항을 적어 놓았다

     자르는 것보다는 은제단검의 납작한 옆면으로

     짓이겨서 즙을 내는 것이 좋다.

   “교수님, 혹시 제 할아버지인 아브락사스 말포이를 아시나요?”

   문득 해리가 고개를 들었다. 슬러그혼이 막 슬리데린의 책상 앞을 지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

   슬러그혼은 말포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유감이었다. 물론 아주 뜻밖의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세상에 그 나이에 드래곤 수두에 걸리다니…….”

   그리고는 횅하니 그냥 지나쳐 버렸다. 해리는 실소를 금치 못하며 다시 냄비로 고개를 돌렸다. 말포이는 내심 해리나 자비니 같은 대접을 받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그가 스네이프로부터 받아 온 그런 특별한 대접을 답을 거라고 기대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말포이가 펠릭스 펠리시스 약병을 손에 넣는 길은 오직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잠 오는 콩은 자르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 은제 단검을 좀 써도 될까?”

   헤르미온느는 성가시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법약에서 눈길도 떼지 않고 고개만 까닥했다. 지금쯤이면 그녀의 약이 책에 적힌 대로 옅은 라일락 색깔을 띠기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도 계속해서 짙은 보라색이었던 것이다.

   해리는 단검의 옆면으로 콩을 짓이겼다. 그러자 놀랍게도 콩이 바로 팍 하고 터지면서, 그 쪼그라든 콩알 속에 그토록 많은 즙이 담겨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해리는 서둘러 그 액체들을 모두 떠서 냄비 안에 넣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하게도 교과서에 설명된 대로 마법약이 즉시 연한 라일락 빛깔로 변하는 것이 보였다.

   순간 이 교과서의 전 주인에 대한 짜증스런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졌고, 이제 해리는 다음 지시 사항을 열심히 읽었다. 책에 따르면 마법약이 물처럼 맑아질 때까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저어야만 했다. 하지만 예전 교과서 주인이 덧붙여 놓은 설명에 따르면 반대 방향으로 일곱 번 저었을 때마다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더 저어 주어야만 했다. 과연 예전 주인의 말이 또다시 옳을까?

   해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을 휘젓고는 심호흡을 하고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더 저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마법약이 연한 분홍색으로 변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니?”

   헤르미온느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깜짝 놀라 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냄비에서 뿜어져 나온 증기 때문에 점점 더 부스스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마법약은 아직도 선명한 보라색이었다.

   “시계 방향으로 한 번 더 저어…….”

   “아니, 아니야. 교과서에는 시계 반대 방향이라고 했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곱 번 젓고 시계 방향으로 한 번 젓고, 잠깐 멈춘 다음…… 다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곱 번 젓고, 시계 방향으로 한 번 저었다.

   책상 너머에서는 론이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의 마법약은 감초액처럼 보였다. 해리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그의 약처럼 연한 색깔로 변한 마법약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해리는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지하 교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시간이…… 다 됐다! 휘젓는 것을 멈추어라!”

   슬러그혼이 소리쳤다. 그러고는 천천히 책상들 사이를 돌아 다니면서 냄비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그저 이따금 액체를 저어 보거나 킁킁 냄새를 맡아 볼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어니가 앉아 있는 책상 앞까지 왔다. 슬러그혼은 론의 냄비 안에 담긴 타르 같은 액체를 보고 안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어니의 남색 혼합액을 지나쳐 헤르미온느의 마법약을 보고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해리의 마법약을 보는 순간, 슬러그혼의 얼굴에는 너무 기뻐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 가득 떠올랐다.

   “확실한 우승자가 나왔군!”

   슬러그혼이 지하 교실이 다 울리도록 소리쳤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해리! 세상에! 네 어머니의 재능을 네가 고스란히 물려받은 게 분명하구나. 네 어머니는 마법약의 달인이었지. 릴리 말이다! 자, 여기 있네, 여기 있어. 약속한대로 펠릭스 펠리시스 한 병이야. 잘 쓰도록 하게나!”

   해리는 황금빛 액체가 담긴 작은 약병을 안주머니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잔뜩 화가 난 슬리데린 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헤르미온느의 실망스런 표정을 보니 죄책감이 들기도 하면서, 오락가락 묘한 기분이었다. 론은 그저 기가 막혀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어떻게 그걸 만들었니?”

   지하 교실을 나오면서 론이 해리에게 속삭였다.

   “운이 좋았지 뭐.”

   해리는 적당히 둘러댔다. 말포이가 아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단 그리핀도르 테이블 앞에 세 사람만이 오붓하게 앉게 되자, 해리는 이제 사실을 털어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리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은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 갔다.

   “그래서 너희들은 내가 커닝이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헤르미온느의 표정을 보고 기분이 상한 해리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어쨌든 완전히 네 솜씨는 아니었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딱딱거렸다.

   “해리는 단지 우리와 다른 지시를 따랐을 뿐이야.”

   론이 해리 대신 변명을 해 주었다.

   “완전히 망쳐 버릴 수도 있었잖아, 안 그래? 하지만 해리는 그 위험을 무릅썼고, 그래서 보상을 받은거야.”

   론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슬러그혼 교수님께서 그 책을 나에게 주셨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아니었어. 내가 받은 책에는 아무도 뭐라고 적어 놓지 않았어, 52쪽 어딘가에 ‘우웩’ 이라고 적혀 있긴 했지만…….”

   “잠깐만.”

   해리의 왼쪽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슬러그혼의 지하 교실에서 맡았던 것과 같은 꽃향기가 사르르 풍겨 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지니가 그들 옆에 다가와 있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 맞아? 누군가 책에 써 넣은 걸 그대로 따라 했단 말이야, 해리?”

   지니는 몹시 놀라고 화가 난 것 같았다. 해리는 지니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금새 알아차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해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를 달랬다.

   “그러니까 이건 리들의 일기장 같은 게 아니야. 그냥 누군가가 끄적거려 놓은 옛날 교과서일 뿐이야.”

   “하지만 거기에 적힌 대로 했다면서?”

   “솔직히 말해서 가장자리에 적혀 있는 약간의 힌트를 따라 했을 뿐이야. 지니,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어…….”

   “지니의 말에 일리가 있어.”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번쩍 들면서 말했다.

   “그 책에 뭔가 이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해 봐야 해. 그러니까 이 미심쩍은 지시 사항들 말이야. 또 누가 알겠어?”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그의 가방에서 《상급 마법약 만들기》를 꺼내더니 지팡이를 높게 쳐들었다.

   “야!”

   해리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스페시얼리스 리벨리오!”

   헤르미온느는 앞 표지를 탁 두들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책은 여전히 낡고 더럽고 모서리가 접힌 그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었다.

   “이제 됐냐?”

   해리가 짜증을 냈다.

   “아니면 이 책이 공중제비라도 몇 번 도는 걸 볼 때까지 좀 더 기다릴래?”

   “괜찮은 것 같아.”

   헤르미온느는 그래도 여전히 의심스런 눈길로 그 책을 바라보았다.

   “내 말을 정말로 그냥…… 보통 교과서처럼 보인다는 거야.”

   “좋아, 그럼 내가 도로 가져간다.”

   해리가 책상 위에서 책을 확 낚아챘다. 하지만 책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활짝 펴졌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해리는 책을 다시 집으려고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책 뒤쪽 표지 아래쪽에 뭔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그에게 펠릭스 펠리시스 약병(지금은 위층 트렁크에 들어 있는 양말 속에 꼭꼭 감추어 놓은)을 안겨 준 그 지시 사항을 적은 것과 똑 같은, 깨알같이 작고 알아보기 힘든 바로 그 글씨체였다.

    이 책은 혼혈 왕자의 소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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