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장 (135/194)

제8장

의기양양한 스네이프

해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코에서 흘러나온 따뜻하고 축축한 피가 그의 얼굴 전체를 뒤덮는 것을 느끼며, 그저 투명 망토 아래에 꼼짝없이 누워 있는 수밖에 없었다. 저 너머 복도에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떠오른 생각은, 누군가 분명히 열차가 다시 떠나기 전에 객실을 한번 살펴보러 오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객실 안을 들여다본다고 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할 거라는 사실을 금새 깨닫고는 몹시 낙심했다. 이제 남은 희망은 다른 누군가가 객실 안으로 들어오다가 우연히 그를 밟는 것뿐이었다.

해리는 마치 뒤로 벌렁 나자빠진 거북이처럼 여기 이렇게 이상한 꼴로 누워 있는 지금만큼 말포이가 증오스러운 적이 없었다. 벌어진 입 속으로 코피가 자꾸만 뚝뚝 떨어져서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한심한 상황에 빠지다니……. 이제 마지막으로 들려오던 발소리마저 점점 사라져 갔다. 모두들 열차 밖의 어두운 기차역을 따라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트렁크가 끌리는 소리와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가 혼자 기차에서 내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단 호그와트에 도착해서 대연회장에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그리핀도르의 테이블을 몇 번 훑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자리에 없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그는 이미 런던을 향해 절반쯤 돌아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어떻게든 끙끙거리는 소리라도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때 문득 덤블도어와 같은 마법사들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도 주문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해리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지팡이를 불러오려고 애를 썼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아씨오, 지팡이!’ 라고 주문을 외웠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리는 호수를 둘러싼 나무들이 술렁거리는 소리와 저 멀리서 우는 올빼미 울음소리까지 다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뭔가를 찾고 있는 듯한 낌새라든가, 심지어 해리 포터가 어디 갔는지 걱정하는 목소리(해리는 그런 희망을 품는 자기 자신을 약간 한심하게 여겼다) 따위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해리는 세스트랄이 끄는 마차들이 학교를 향해 달려가는 광경을 상상하며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중 어딘가 말포이가 타고 있는 마차에서는 숨죽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말포이는 크레이브와 고일, 자비니, 파킨슨에게 자기가 해리를 공격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있으리라.

기차가 덜컹하고 움직이는 바람에 해리는 한쪽 옆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이제 그는 객실 천장 대신 먼지 낀 좌석의 밑바닥을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기차 엔진이 다시 윙윙거리며 살아나자, 열차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열차는 떠나 버리고, 아무도 그가 열차 안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때 투명 망토가 휙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가워, 해리.”

곧이어 붉은 불빛이 번쩍하더니 딱딱하게 굳었던 해리의 몸이 풀렸다. 이제 몸을 풀고 좀 더 품위 있는 자세로 앉을 수 있게 되자, 해리는 재빨리 손등으로 멍이 든 얼굴에서 피를 닦아 냈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통스였다. 그녀는 방금 걷어 낸 투명 망토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서 빨리 여길 나가는 게 좋겠다.”

열차 창문이 연기로 뽀얗게 흐려지며 기차가 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통스가 재촉했다

“이리 와,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해.”

해리는 그녀의 뒤를 따라서 허둥지둥 복도로 달려 나갔다. 통스는 기차 문을 열고, 기차가 가속이 붙기 시작하면서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승강장으로 껑충 뛰어내렸다. 통스의 뒤를 따라서 뛰어내린 해리는 착지하는 순간 약간 비틀거렸지만, 곧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번쩍거리는 주홍색 증기 기관차가 속력을 내면서 모퉁이를 돌아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닿자, 욱신거리는 코의 통증이 조금 덜해지는 것 같았다. 통스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이렇게 웃기는 몰골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통스는 말없이 해리에게 투명 망토를 건네주었다.

“누가 그랬지?”

“드레이코 말포이요.”

해리는 씁쓸하게 말했다.

“어…… 고맙습니다…….”

“별 거 아니야.”

통스는 미소조차 짓지 않고 말했다. 캄캄한 어둠 속이었지만, 해리는 통스가 지난번 버로우에서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칙칙한 머리카락에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있어 봐. 내가 코를 고쳐 줄게.”

해리는 그 제안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양호 선생님인 폼프리 부인을 찾아갈 작정이었던 것이다. 치료 주문에 관해서라면 그편이 훨씬 더 믿음이 갔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너무 무례한 짓인것 같았기 때문에, 해리는 돌처럼 꼼짝하지 않고 서서 두 눈을 꼭 감았다.

“에피스키.”

통스가 중얼거렸다.

해리의 코가 굉장히 뜨거워졌다가 다시 아주 차가워졌다. 해리는 손을 들어서 조심스럽게 코를 만져보았다. 코가 멀쩡해졌다.

“정말 고마워요!”

“다시 그 망토를 입는 게 좋겠구나. 우린 학교까지 걸어갈거야.”

통스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해리가 투명 망토를 다시 뒤집어쓰자, 통스는 지팡이를 흔들었다. 순간 네 발 달린 거대한 은빛 생물이 지팡이에서 튀어나오더니 어둠속을 섬광처럼 질주했다.

“저게 패트로누스인가요?”

덤블도어가 이런 식으로 전갈을 보내는 것을 전에 한 번 본적이 있는 해리가 물었다.

“그래. 내가 널 찾았다고 성으로 소식을 보낸 거야. 그렇지 않으면 다들 걱정할 테니까 말이야. 어서 가자. 괜한 시간 낭비는 하지 않는게 좋아.”

두 사람은 학교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절 어떻게 찾았지요?”

“네가 열차에서 내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지. 그리고 난 네가 그 망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무슨 이유가 있어서 네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그 객실의 창문에 가리개가 내려져 있는 것을 보고 한번 살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건 그렇고 여기서 뭘 하세요?”

해리가 물었다.

“난 이제 호그스미드 역에 배치되었어. 학교의 특별 보안을 위해서 말이야.”

“여기에 배치된 사람은 혼자뿐인가요? 아니면 또 누가…….”

“프라우드풋, 새비지, 그리고 도울리쉬도 여기에 왔어.”

“도울리쉬라면 덤블도어 교수님이 작년에 공격한 그 오러 아니에요?”

“맞아.”

두 사람은 방금 지나간 마차 자국을 따라서 캄캄하고 황량한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해리는 망토 속에서 통스를 곁눈질해 보았다. 작년에 통스는 궁금한 것도 많고(때로는 약간 짜증이 날 정도였다). 깔깔거리며 웃기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갑자기 나이가 들고 훨씬 더 심각하고 진지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게 모두 마법부에서 벌어진 그 일 때문에 생긴 결과일까? 해리는 불편한 마음으로 헤르미온느가 했던 제안을 떠올렸다. 통스에게 시리우스에 대한 일은 절대로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의 말을 한마디 하라고 권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차마 그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리우스의 죽음에 대해서 통스를 원망하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잘못도,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오히려 그의 잘못이 가장 컸다). 다만 가능한 한 시리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은 차가운 어둠 속을 말없이 걷기만 했다. 통스의 긴 망토 자락만이 땅에 끌리며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항상 마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해리는 호그스미드 기차역에서부터 호그와트까지가 얼마나 먼지 전에는 미처 몰랐다. 마침내 학교 정문 양쪽에 높이 서 있는 날개 달린 멧돼지들이 세워진 기둥들이 눈에 들어오자, 해리는 크게 안도했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팠던 것이다. 게다가 이 낯선 모습의 우울한 통스곁을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가 손을 내밀어 정문을 밀어서 열어 보려 했을 때, 문은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알로호모라!”

해리는 지팡이를 들어 굳게 잠긴 맹꽁이자물쇠를 향해 겨누고 자신 있게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자물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도 소용없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직접 마법을 걸어 놓았거든.”

통스가 말했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의견을 하나 냈다.

“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 그럴 수 없어.”

통스가 딱 잘라 말했다.

“침입자 방지 주문이 온 사방에 걸려 있거든. 올여름부터 보안 조치가 백배는 더 철저해졌단다.”

“좋아요. 그럼 할 수 없네요.”

해리는 아무 도움도 못 주는 통스에 대해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여기 밖에서 잠을 자는 수밖에 없겠군요.”

“누군가 널 데리러 오고 있어, 저길 봐.”

통스가 말했다.

등불 하나가 저 멀리 성 밑에서 깜박깜박하고 있었다. 그 불빛을 보자 해리는 어찌나 반갑던지, 심지어 필치가 또 지각을 했다느니, 정기적으로 엄지손가락을 비트는 고문을 받아야 그 지각하는 버릇이 고쳐질 거라느니 하며 그에게 어떤 잔소리와 폭언을 퍼붓는다고 하더라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환하게 빛나는 노란 불빛이 3미터 앞까지 다가오자, 해리는 투명 망토를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로 그순간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기름기 낀 까맣고 긴 머리카락과 휜 매부리코를 발견하고 왈칵 증오심이 솟구쳤다.

“이런, 이런, 이런.”

스네이프가 빈정거리며 지팡이를 꺼내더니 자물쇠를 탁 한 번 쳤다. 그러자 사슬이 뒤로 꿈틀거리며 젖혀지면서 정문이 삐걱하고 열렸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포터. 그런데 자네, 학교 교복을 입으면 자네의 그 잘난 외모에 흠이라도 생기는 모양이지.”

“갈아입을 수가 없었어요. 제 짐을 하나도…….”

해리가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스네이프는 그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님파도라, 그렇게 서 있을 필요 업소. 포터는…… 내 손안에서 안전할 테니까.”

“난 해그리드에게 전갈을 보냈는데요.”

톻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해그리드는 바로 여기 있는 포터 군과 마찬가지로 개학 연회에 늦었소. 그래서 내가 대신 그 전갈을 받았지.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스네이프는 해리가 앞을 지나갈 수 있도록 약간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당신의 새로운 패트로누스를 아주 흥미롭게 잘 보았소.”

스네이프는 통스의 면전에 대고 정문을 쾅 닫더니 다시 지팡이로 쇠사슬을 탁 건드렸다. 그러자 쇠사슬들은 짤랑짤랑 소리를 내며 스르르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 생각엔 옛날 패트로누스를 쓰는 게 더 좋을 것 같더군.”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악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새로운 녀석은 허약해 보이던걸.”

그리고 스네이프가 등불을 휙 돌리는 순간, 해리는 통스의 얼굴이 충격과 분노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금방 그녀의 모습은 어둠 속에 뭍혀 버렸다.

“안녕히 가세요. 고마워요…… 전부 다요.”

해리는 어깨 너머로 통스에게 인사를 하고는 스네이프와 함께 학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잘 가라, 해리.”

스네이프는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증오심이 파도처럼 거세게 온몸으로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스네이프가 어떻게 활활 타오르는 자신의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그를 싫어했다. 게다가 시리우스를 대하는 그의 태도로 인해서, 스네이프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해리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덤블도어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해리는 여름 내내 두고두고 생각을 해 본 결과, 스네이프가 시리우스에게 다른 불사조 기사단들은 모두 나가 볼드모트와 싸우고 있는데 너 혼자서 안전한 곳에 숨어 지내느냐고 비난을 한 것이, 그날 밤 시리우스가 마법부로 달려가 죽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해리는 이 생각을 고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래야 스네이프를 마음 놓고 원망할 수 있었고, 그러고 나면 속이 좀 시원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만약 이 세상에 시리우스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옆에서 어둠 속을 함께 설어가고 있는 이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각을 했으니 그리핀도르에서 50점을 깎겠다.”

스네이프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어디 보자, 머글 복장을 하고 있으니 다시 20점을 깎아야겠군. 지금까지 학기를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일찍부터 점수를 깎였던 기숙사는 또 없었을 게다. 아직 푸딩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포터, 네가 신기록을 세웠구나.”

증오심과 분노가 해리의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못해서 하얗게 작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네이프에게 왜 늦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느니 차라리 온몸이 마비된 채, 그대로 런던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마 요란하게 등장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안 그래?”

스네이프가 계속 빈정거렸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없으니, 이젠 아예 연회가 반쯤 진행 되었을 때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와서 극적인 효과를 일으킬 작정이었던 모양이군.”

해리는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바로 이걸 위해서 그를 데리러 온 게 분명했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곳에서 마음껏 해리를 약 올리고 비꼬아 줄 수 있는 단 몇 분을 위해서 말이다.

두 사람은 마침내 성의 계단 앞에 도착했다. 거대한 떡갈나무 현관문이 활짝 열리면서 깃발로 장식한 드넓은 현관 복도가 나타났다. 동시에 열려 있는 대연회장의 문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웅성웅성하는 말소리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쨍그랑 하고 접시와 유리잔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그들을 맞이했다. 해리는 투명 망토를 다시 쓰면 어떨까 하고 잠깐 망설였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그리핀도르의 긴 테이블(더구나 그 테이블은 유감스럽게도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로 살짝 가서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네이프는 마치 해리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망토는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그냥 걸어 들어가거라. 그게 바로 네가 원하던 바가 아니냐.”

해리는 몸을 돌려서 곧장 열린 문으로 향했다. 스네이프 옆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개의 기다란 기숙사 테이블들과 제일 상단에 놓인 교직원 테이블이 있는 대연회장은 언제나 그렇듯이 둥둥 떠다니는 촛불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촛불 아래에서 접시들이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볼세라 재빨리 발걸음을 옮기는 해리의 눈에는 그저 모든 것이 뿌옇게 빛나는 점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해리는 사람들이 눈치 채고 쳐다보기 전에 쏜살같이 후플푸프의 테이블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그를 자세히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론과 헤르미온느를 발견하고는 바람처럼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다짜고짜 끼어 앉았다. 

“너 어디 있었……. 세상에,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된 거야?”

론은 주변에 있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그의 얼굴을 놀란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뭐가 어때서?”

해리는 얼른 숟가락을 집어 들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숟가락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온통 피투성이야. 이리 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주문을 외웠다.

“테르지오!”

그러자 말라붙은 핏자국이 사라졌다.

“고마워.”

해리가 이제 말끔해진 자기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내 코는 어떤 것 같아?”

“멀쩡해.”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멀쩡하면 안 되는 거야? 해리, 무슨 일이 있었니? 걱정돼서 죽을 뻔했잖아!”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해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지니와 네빌, 딘 그리고 시무스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심지어 그리핀도르의 유령인 목이 달랑달랑한 닉까지 의자 옆을 얼씬거리며 엿들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뭔가 말하려고 했다.

“지금은 안 돼, 헤르미온느.”

해리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무게를 잡으며 말했다. 부디 다른 아이들이 그가 뭔가 영웅적인 어떤 모험을 겪고 왔을 거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나 디멘터와 관련된, 뭐 그런 일 말이다. 물론 말포이가 이미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고 다녔겠지만, 그래도 아직 그리핀도르 테이블까지는 그 소문이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야 항상 있는 법 아닌가.

해리는 론 앞으로 손을 뻗어 닭다리 두 개와 감자 칩 한 움큼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채 먹기도 전에 음식이 사라지고 대신 푸딩이 나타났다.

“어쨌든 너는 기숙사 배정식을 놓쳤구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한편 론은 커다란 초콜릿 과자에 얼굴을 처박다시피 하고 있었다.

“모자가 무슨 재미있는 말이라도 했니?”

해리가 당밀 타르트를 한 조각 집어 들며 물었다.

“사실은 그냥 똑같았어……. 모두가 힘을 합해서 적과 맞서야 한다고 충고했지 뭐.”

“덤블도어 교수님이 볼드모트 이야기도 하시던?”

“아직 안 하셨어. 하지만 교수님은 항상 중요한 연설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하시잖아, 안 그래? 이제 멀지 않았어.”

“스네이프 말이 해그리드가 연회에 늦었다고 하던데…….”

“스네이프를 만났어? 어쩌다가?”

론이 미친듯이 과자를 입에 쑤셔 넣는 사이에 한마디 했다.

“우연히 만났어.”

해리는 적당히 둘러댔다.

“그냥 몇 분 늦었을 뿐이야. 저길 봐. 널 보고 손을 흔들고 있잖아,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가 교직원 테이블을 올려다보니, 과연 해그리드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절대로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사감인 맥고나걸 교수의 품위에 어울리게 행동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맥고나걸 교수의 머리는 고작해야 해그리드의 팔꿈치와 어깨 사이의 높이 정도밖에 미치지 못했다. 그녀는 요란하게 인사를 하고 있는 해그리드를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한편 해리는 해그리드의 다른 쪽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점술 선생님인 트릴로니 교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트릴로니 교수는 좀처럼 탑 위에 있는 자기 방을 떠나는 법이 없었고, 지금까지 개학 연회에 한 번도 참석 한 적이 앖었기 때문이었다. 번쩍이는 구슬들과 질질 끌리는 숄을 걸친 그녀는 여전히 괴상하게 보였다. 그녀의 눈은 안경 때문에 엄청나게 확대되어 보였다. 항상 트릴로니 교수를 한낱 사기꾼으로만 생각해 왔던 해리는 지난 학기 말에, 볼드모트가 해리의 부모님들을 죽이고 해리를 공격할 것이라는 예언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였다는 사실을 알고서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더 트릴로니 교수 근처에는 얼씬거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다행히도 이번 학기에는 점술 수업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때 등대 같은 그녀의 커다란 눈이 그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해리는 황급히 슬리데린 테이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누군가의 코를 부셔 버리는 흉내를 내며 박장대소하고 있었다. 해리는 얼른 당밀 타르트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또다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말포이와 일대 일로 싸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리라…….

“그래, 슬러그혼 교수님은 뭐라고 하시던?”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마법부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하셨어.”

해리가 대답했다.

“그거야 교수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그렇지.”

헤르미온느가 코웃음을 쳤다.

“기차안에서 사람들이 계속 우리에게 그 일에 대해서 물어봤어. 그렇지, 론?”

“그래. 모두들 네가 진짜 그 ‘선택받은 자’ 인지 알고 싶어했어.”

론이 말했다.

“유령들 사이에서도 그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 말이 많았지.”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불쑥 끼어들었다.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려 있는 머리를 해리 쪽으로 기울이는 바람에 목이 옷깃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나는 포터에 관해서는 제법 권위자라고 알려져 있거든. 우리가 친구란 사실은 온 세상이 다 아니까. 하지만 난 괜히 정보를 빼내려고 널 귀찮게 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라고 유령 친구들에게 이미 선언을 했어. ‘해리 포터는 나를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지.’ 난 유령들에게 이렇게 말했지. ‘그의 믿음을 저버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거야.’”

“그래 봤자, 이미 죽은 몸이잖아요.”

론이 한마디 했다.

“정말이지, 네 녀석의 감정는 무딘 도끼날 같구나.”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몹시 기분이 상해서 허공으로 슝 날아오르더니 그리핀도르 테이블의 제일 끝으로 스르르 가 버렸다. 바로 그때 덤블도어가 교직원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연회장 전체를 가득 메우던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여러분에게 최고의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

덤블도어가 환하게 웃으면서, 연회장 전체를 끌어안으려는 듯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교수님 손이 왜 저렇게 된 거야?”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 사실을 눈치 챈 것은 헤르미온느만이 아니었다. 덤블도어의 오른쪽 손은 해리를 데리러 더즐리네 집으로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연회장 전체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수군거림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덤블도어는 그저 빙긋이 웃으면서 자주색과 황금색의 무늬가 있는 소매를 흔들어 상처를 감추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덤블도어는 경쾌하게 말했다.

“자…… 우리의 신입생 여러분, 환엽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재학생 여러분, 반갑습니다! 마법 수업으로 꽉 찬 1년이 또다시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군요…….”

“내가 이번 여름에 보았을 때에도, 교수님 손이 저렇게 되어 있었어.”

해리가 헤르미온느에게 속삭였다.

“지금쯤은 교수님 손이 다 나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면 폼프리 부인이 고쳐 주시든지 말이야.”

“마치 죽은 시체처럼 보였어.”

헤르미온느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절대로 치료할 수 없는 상처들도 있지……. 오래된 저주들이나…… 해독제가 없는 독약들도 있고…….”

“……그리고 우리 학교 관리인인 필치 씨께서 이 사실을 여러분께 알려 달라고 제게 부탁 했습니다. 위즐리 형제의 신기한 장난감 가게에서 산 모든 물건들은 전면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소속 기숙사의 퀴디치 팀에서 뛰고 싶은 사람은 평소처럼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 이름을 적어 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퀴디치 해설자를 찾고 있으며, 지원자는 마찬가지로 이름을 적어 내면 됩니다.

올해도 새로운 교수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슬러그혼 교수님!”

슬러그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벗겨진 정수리가 촛불 하래에서 반들반들하게 빛났다. 그리고 조끼를 입은 그의 커다란 배는 테이블 위에 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의 옛 동료이기도 한 이분께서 다시 옛날처럼 마법약 수업을 맡는 걸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법약 수업이라고?”

“마법약?”

연회장 전체가 술렁술렁 소란해졌다. 사람들은 방금 그 말을 제대로 들은 것인지 어리둥절했다.

“마법약 수업이라고?”

론과 헤르미온느도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동시에 내뱉었다.

“하지만 네가 말했잖아…….”

“한편 스네이프 교수께서는…….”

덤블도어가 수군대는 소리에 목소리를 한층 높여서 말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게 되실 것입니다.”

“안 돼!”

해리가 부르짖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많은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해리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분노에 가득 차서 교직원 테이블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이제 와서 스네이프에게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길 수가 있단 말인가? 지난 몇 년 동안 덤블도어가 그를 믿지 못해서 그 일을 맡기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해리, 너는 슬러그혼 교수님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게 될 거라고 그랬잖아!”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난 그런 줄 알았어!”

해리는 덤블도어가 언제 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덤블도어 입에서 슬러그혼이 무슨 과목을 가르칠 거라는 말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편 덤블도어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스네이프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한 손을 들어서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터져 나온 환호성에 응답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해리의 눈에는 밉살스런 그자의 얼굴 위에 떠오른 의기양양한 기색이 똑똑히 보였다.

“그래, 이거 잘 된 일이네.”

해리가 사납게 말했다.

“스네이프도 이제 올해만 지나면 끝나겠군.”

“그게 무슨 소리야?”

론이 물었다.

“그 자리는 징크스가 있잖아. 어느 누구도 1년 이상 그 자리를 지킨 적이 없어. 퀴렐은 심지어 그 수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했잖아……. 나는 개인적으로 또 한 번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래.”

“해리!”

헤르미온느가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비난하듯이 소리쳤다.

“스네이프는 아마 올해가 끝나면 다시 마법약 수업을 맡게 될 거야.”

론이 분별력 있게 말했다.

“슬러그혼 교수님이 그렇게 오래 있을 리가 없어. 무디도 안 그랬잖아.”

그때 덤블도어가 흠흠하고 헛기침을 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만 떠드는 데 정신을 팔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스네이프가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소망을 이루었다는 소식에 연회장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자신이 방금 공표한 소식이 얼마나 충격적인 것인지 전혀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교수 임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회장 안이 완전히 조용해질 때까지 잠깐 더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연회장에 있는 분들이 모두 알고 있다시피, 볼드모트 경과 그의 추종자들이 또다시 세력을 키워 가고 있습니다.”

덤블도어가 이 말을 하자, 팽팽하게 긴장된 침묵이 감돌았다. 해리는 말포이를 힐끗 곁눈질했다. 말포이는 덤블도어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팡이로 포크를 둥둥 떠오르게 하고 있었다. 마치 덤블도어의 말 따위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지금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호그와트에 있는 우리들 하나하나가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지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여름 동안 이 성을 둘러싼 마법 보호막을 더욱더 강화하였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좀 더 새롭고 강력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생들이나 교직원들 모두 여전히 안전에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힘들고 번거롭더라도, 교수님들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모든 안전 조치에 반드시 따라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취침 시간 이후에 침실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규칙을 지켜 주십시오. 또한 성안에서나 밖에서나 이상한 일이나 수상쩍은 것을 보거든, 즉시 교직원에게 보고하여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언제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덤블도어의 푸른 눈동자가 학생들 전체를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여러분들이 고대하는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제일 시급한 일은 내일의 수업을 위해서 푹 쉬는 일이겠지요. 그러니 이제 그만 잘 자라는 인사를 합시다. 자, 이만 해산!”

늘 그렇듯이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게 의자를 끄는 소리와 함께, 수 백명의 학생들은 의자를 뒤로 밀고서 연회장을 빠져나와 침실로 향했다. 하지만 해리는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괜히 서둘러 자리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었거니와, 잘못하다가는 말포이 옆으로 떠밀려 가서 코를 짓밟힌 이야기를 다시 떠들어 대게 만들 공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핀도르의 학생들이 거의 다 나갈 때까지 일부러 운동화 끈을 매는 척하면서 뒤에서 뭉그적거렸다. 물론 헤르미온느는 신입생들을 안내하는 반장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쏜살같이 먼저 달려가 버렸지만, 론은 해리 옆에 남았다.

“네 코는 진짜로 어떻게 된 거니?”

연회장 밖으로 몰려 나가는 학생들의 제일 뒤에 서서 더 이상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게 되자, 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리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주었다. 론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도 한 번도 웃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우정의 힘을 보여 주었다.

“말포이 녀석이 코를 어떻게 하는 시늉을 하는 건 나도 보았어.”

론이 분개했다.

“그래, 그랬어. 어쨌든 신경 쓰지 마.”

해리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 자식이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껄이는 소리를 엿들었는데 말이야…….”

해리는 론이 말포이의 호언장담을 듣고 깜짝 놀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해리가 진짜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을, 론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봐, 해리. 그 자식은 그냥 파킨슨 앞에서 으스대고 싶었던거야……. 세상에 그 사람이 그 녀석에게 어떤 임무를 맡기겠어?”

“볼드모트가 호그와트에 누군가를 심어 둘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만약 그렇다면 제일 먼저…….”

“해리, 난 네가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사람의 등 뒤에서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가 뒤를 돌아보니 해그리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그 이름을 부르잖아요.”

해리가 고집을 부렸다.

“그건 그래. 덤블도어 교수님이니까, 안 그래?”

해그리드가 수수께끼처럼 말했다.

“근데 왜 늦었냐, 해리? 걱정했어.”

“기차에 붙잡혀 있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런데 해그리드는 왜 늦었어요?”

“그롭과 같이 있었어.”

해그리드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러다 시간을 깜빡했지 뭐야. 그 녀석은 이제 산속에 새집을 갖게 되었어. 덤블도어 교수님이 마련해 주셨지. 아주 크고 멋진 동굴이야. 숲 속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아하더군.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었단다.”

“정말이에요?”

해리는 론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말했다. 지난번에 해그리드의 의붓 형제를 만났을 때, 그는 나무를 뿌리채 뽑는 데 귀신같은 재능을 지닌 사나운 거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구사 할 수 있는 단어라고는 딱 다섯 마디뿐이었는데, 그중에서 두 단어는 제대로 발음조차 할 수 없었다.

“오, 그럼 정말이야. 너희들도 깜짝 놀랄 게다.”

해그리드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그 녀석을 내 조수로 가르칠 생각이야.”

론이 큰 소리로 콧방귀를 끼었지만, 거센 콧바람만 픽 하고 새어 나왔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어느덧 떡갈나무 현관문 옆에 서 있었다.

“어쨌든 내일 보자꾸나. 점심시간이 지나고 바로 첫 시간이다. 일찍 와서 벅, 아니 위더윙즈와 인사 좀 하렴!”

해그리드는 유쾌하게 팔을 들어 인사를 하더니, 현관문을 지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해리와 론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해리는 론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덜컹하는 기분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너도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안 들을 작정이지, 그렇지?”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그럴 생각이구나, 그렇지?”

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헤르미온느도?”

론이 말했다. 해리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해그리드가 제일 아끼는 학생 세 명이 모두 다 그의 수업을 안 듣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면, 해그리드가 뭐라고 말을 할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 Ⅱ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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