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134/194)

제7장

민달팽이 클럽

   해리는 방학의 마지막 주 내내, 말포이가 녹턴 앨리에서 했던 행동의 의미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하며 지냈다. 해리의 마음에 가장 걸렸던 것은 가게를 떠날 때 말포이의 얼굴에 떠올랐던 흡족한 미소였다. 말포이가 그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을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절대 좋은 소식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론이나 헤르미온느 중 어느 누구도, 말포이가 그날 보인 행동에 대해 자신만큼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아서, 해리는 약간 짜증스러웠다. 어쨌든 며칠이 지나자, 두 사람 모두 이 문제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에 약간 질린 듯이 보였다.

   “그래, 해리,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나도 벌써 얘기했잖아.”

   헤르미온느가 약간 귀찮은 어조로 말했다. 그녀는 프레드와 조지의 방 창틀 위에 앉아서 두 발을 종이 상자 위에 턱 하니 올려놓은 채, 새로 산 《상급 룬 문자 번역》 책에서 마지못해 가끔씩 눈길을 뗄 뿐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거기에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다는 데에 합의를 보지 않았니?”

   “어쩌면 ‘영광의 손’ 을 부러뜨렸는지도 모르지.”

   론은 자기 빗자루의 구부러진 잔가지들을 똑바로 펴려고 애쓰면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말포이의 그 말라 빠진 손, 기억나?”

   “도대체 말포이가 ‘반드시 잊지 말고 이거나 잘 보관해’ 라고 말했던 게 뭘까?”

   해리가 수십 번째 똑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내 생각엔 보진 씨가 망가진 물건들 중 다른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말포이는 둘 다 갖기를 원하는 거지.”

   “너는 그렇게 생각해?”

   이제 론은 빗자루 손잡이에 묻은 손때를 벗겨 내려고 애를 쓰는 중이었다.

   “응, 내 생각은 그래.”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론도 헤르미온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다시 해리가 말을 이었다.

   “말포이의 아버지는 아즈카반에 있어. 말포이가 복수를 하고 싶어 할 것 같지 않니?”

   론이 눈을 껌벅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말포이가? 복수를? 그 녀석이 무슨 수로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나도 모르겠다고!”

   해리가 짜증을 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뭔가 일을 꾸미고 있고, 난 우리가 그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그의 아버

지는 죽음을 먹는 자야. 게다가…….”

   해리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의 입이 딱 벌어졌고, 그의 눈은 헤르미온느 뒤의 유리창을 뚫어져러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 놀랄 만한 생각이 방금 그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던 것이다.

   “해리, 왜 그래?”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너, 흉터가 또다시 쑤시는 건 아니겠지?”

   론이 초조하게 다그쳤다.

   “그 녀석은 죽음을 먹는 자야.”

   해리가 천천히 중얼거렸다.

   “말포이는 아버지를 대신해서 죽음을 먹는 자가 된 거야!”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지만, 곧 론이 깔깔거리며 분위기를 깼다.

   “말포이 녀석이? 그 녀석은 겨우 열여섯 살이야, 해리! 그 사람이 말포이를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해?”

   “해리, 그럴 리는 없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자제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넌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을…….”

   “말킨 부인의 가게에서 부인은 그 녀석에게 손도 대지 않았어. 하지만 부인이 그 녀석의 소매를 조금 접어 올리려고 하니 까, 그 녀석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팔을 홱 잡아 뺐지. 그게 녀석의 왼쪽 팔이었어. 녀석은 그 왼쪽 팔에 어둠의 표식을 새긴거였어.”

   론과 헤르미온느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글쎄…….”

   론은 아직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말포이는 그냥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 했던 것 같아, 해리.”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말포이는 보진 씨에게 우리가 보지 못한 뭔가를 보여 주었어.”

   해리는 굽히지 않고 계속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갔다.

   “그걸 보고 보진 씨는 굉장히 겁을 먹었지. 그게 바로 표식이었던 거야. 이제 알겠어. 말포이는 보진 씨에게 그가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었던 거야. 너희들도 봤지? 보진 씨가 얼마나 말포이에게 쩔쩔매고 어려워했는지!”

   론과 헤르미온느가 또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해리, 난 잘 모르겠어…….”

   “나도 내 생각에는 그래도 그 사람이 말포이를 받아 주었을리가 없을 것 같은데…….”

   해리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고 더러워진 퀴디치 망토를 휙 집어 들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위즐리 부인이 제발 빨랫감을 그냥 미뤄 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짐을 싸느라 난리를 피우지 말라고 지난 며칠 동안 계속 성화를 해 댔던 것이다.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해리는 지니와 딱 부딪혔다. 지니는 방금 빨래를 끝낸 옷가지들을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 같으면 지금 부엌에 들어가지 않겠어.”

   지니가 그에게 경고했다.

   “온 사방이 가래침투성이거든(플뢰르의 별명인 플렘은 가래라는 뜻이다 : 역주).”

   “밟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할게.”

   해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가 부엌에 들어가자, 식탁에 앉아서 자신과 빌과의 결혼 계획에 대해서 끝도 한도 없이 떠들어 대고 있는 플뢰르의 모습이 보였다.

   한편 위즐리 부인은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저절로 껍질이 벗겨지는 야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빌과 나능 들러리를 딱 둘만 세우게따고 거의 결정을 내렸어용. 지니와 가브리엘 모두 다 아주 예쁠 거예용, 나는 그애들한텡 연한 금색 옷을 입힐 거에용.핑크새근 당연히 지니의 머리카락 색까알과 끔찍하게 안 어울릴 테니까용…….”

   “어머, 해리!”

   위즐리 부인이 플뢰르의 독백을 딱 끊어 버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잘 왔다. 안 그래도 내일 호그와트로 갈 때의 안전 조치에 대해서 설명 해주려고 했거든. 우리는 다시 마법부의 자동차를 타고 갈 거란다. 그리고 역에서 오러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통스도 거기 오나요?”

   해리가 퀴디치 망토를 건네주며 물었다.

   “아니, 그럴 것 같지는 않구나. 아서의 말을 들어 보니, 통스는 어디 다른 곳에 배치되었다고 하더라.”

   “그 여자는 제정싱이 아니야, 통스 망이야.”

   플뢰르가 찻숟가락 뒷면에 비친 자신의 황홀한 모습을 열심히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킁 실수하능 거지, 만약 네가…….”

   “고맙지만 그만 해라.”

   위즐리 부인이 플뢰르의 말을 또다시 가로막으며 쌀쌀맞게 말했다.

   “그만 올라가는 게 좋겠다, 해리. 가방은 가능한 한 오늘 밤에 싸 놓았으면 좋겠구나. 만날 마지막 몇 분 남겨 두고 짐을 싸느라 난리 법석을 부리지 말고 말이다.”

   실제로 다음 날 아침에 그들의 출발은 평소보다 훨씬 순탄했다. 마법부 소속의 자동차들이 버로우 저택의 현관 앞에 당도했을 때, 아이들은 가방을 다 싸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의 고양이 크룩생크도 안전하게 여행용 바구니 안에 들어 있었고, 헤드위그와 론의 부엉이 피그위존, 그리고 지니가 새로 산 아놀드란 이름의 자주색 피그미 퍼프도 모두 우리 안에 들어 있었다.

   “또 봐용, 아리.”

   플뢰르가 약간 쉰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해리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론도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을 지으며 얼른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지니가 재빨리 발을 거는 바람에 론은 그만 플뢰르의 발밑 땅바닥에 큰대자로 엎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시뻘개진 론은 입에 들어간 흙을 퉤퉤 뱉으며 잔뜩 화가 나서 인사도 하지 않고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탔다.

   킹스 크로스 역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유쾌한 해그리드가 아니었다. 대신 검은색 머글 양복을 입고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수염 난 오러 두 사람이 자동차가 멈추자마자 즉시 다가 왔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일행을 양쪽에서 호위하며 역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서 서둘러라, 어서.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

   위즐리 부인은 지나치게 사무적인 태도에 약간 기분이 상한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가 제일 먼저 가는 게 좋겠다. 자…….”

   부인은 대답을 듣길 바라듯이 오러 한 사람을 쳐다 보았다. 그 사람은 짧게 고개를 끄덕하더니, 해리의 팔 위쪽을 붙잡고 9번과 10번 승강장 개찰구 안으로 해리를 밀어 넣으려고 했다.

   “고맙지만, 제가 걸어갈 수 있어요.”

   해리는 불쾌해서 오러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말없이 서 있는 오러를 무시하며, 단단한 개찰구를 향해서 곧장 손수레를 밀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해리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에 서 있었다. 그곳에서는 주홍색 호그와트행 열차가 수많은 군중들 머리 위로 뿌연 연기를 내뱉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위즐리 남매가 금방 해리를 뒤따라왔다. 해리는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빈 칸을 찾아서 승강장을 따라 올라가자고 손짓을 했다.

   “해리, 우린 같이 못 가.”

   헤르미온느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론과 나는 일단 반장들이 쓰는 칸으로 가야 해. 그런 다음에는 잠깐 열차 통로를 순찰해야 하고.”

   “아, 그렇구나. 깜빡했어.”

   해리가 말했다.

   “너희들 모두 곧장 기차에 타는 게 좋겠다. 출발 시간이 겨우 몇 분밖에 남지 않았어.”

   위즐리 부인이 시계를 살펴보며 재촉했다.

   “그럼 멋진 한 학기를 보내렴, 론.”

   “위즐리 씨, 잠깐 이야기 좀 하면 안 될까요?”

   해리는 순간적으로 결심을 하고는 말을 꺼냈다.

   “괜찮고말고.”

   위즐리 씨는 약간 놀라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조용한 곳까지 해리 뒤를 따라왔다.

   해리는 신중하게 생각해 온 끝에, 만약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위즐리 씨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선 위즐리 씨는 마법부에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세히 조사를 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위즐리 씨라면 무조건 화부터 내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이 옆으로 자리를 옮기자, 위즐리 부인과 딱딱한 표정의 오러가 수상쩍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저희가 다이애건 앨리에 갔을 때 말인데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위즐리 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앞질러 말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프레드와 조지의 가게 뒷방에 있었다고 말했던 그 시간에, 너와 론, 헤르미온느가 어디로 사라졌었는지 털어놓을 작정이구나?”

   “그걸 어떻게…….”

   “해리, 넌 지금 다름 아닌 프레드와 조지를 키운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저…… 그래요, 맞아요. 저희들은…… 뒷방에 있지 않았어요.”

   “잘 알겠다. 그럼 어디 제일 나쁜 소식이 뭔지 들어 보자꾸나.”

   “사실은 드레이코 말포이를 따라갔었어요. 제 투명 망토를 사용해서 말이죠.”

   “그렇게 할 만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거니, 아니면 그냥 괜한 호기심 때문이었니?”

   “저는 말포이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해리는 불쾌함과 즐거움이 뒤섞인 위즐리 씨의 표정을 무시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말포이는 자기 어머니를 따돌리고 나왔더라고요.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어요.”

   “너야 당연히 그랬겠지.”

   위즐리 씨는 체념한 듯이 말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냈니?”

   “말포이는 보진과 버크 가게로 들어갔어요.”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는 뭔가를 고쳐 달라고 그 늙은이를 위협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보진 씨 말이에요. 그리고 보진 씨에게 다른 뭔가를 보관해 달라고 했어요. 말포이가 말하는 걸로 봐서는, 수선해야 할 그것과 똑같은 종류의 무엇인 것 같았어요. 마치 한 쌍처럼 말이죠. 그리고…….”

   해리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요. 우리는 말킨 부인이 말포이의 완쪽 팔을 만지려고 했을 때, 말포이가 기겁하며 펄쩍 뛰는 것을 보았어요. 제 생각에는 말포이가 어둠의 표식을 새긴 것 같아요. 아버지를 대신해서 죽음을 먹는 자가 된 것이 틀림없어요.”

   위즐리 씨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에 그가 입을 열었다.

   “해리, 그 사람이 겨우 열 여섯 살짜리 아이를 받아 주었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이 그럴지 안 그럴지 과연 어느 누가 알겠어요?”

   해리가 화를 내며 물었다.

   “위즐리 씨, 죄송하지만 그래도 한 번 조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 아닌가요? 만약 말포이가 뭔가를 고치고 싶다면, 그리고 그걸 보진 씨에게 해 달라고 협박을 해야 한다면, 그건 아마 위험하거나 나쁜 일이 아니겠어요, 안 그런가요?”

   “해리, 솔직히 난 잘 모르겠구나.”

   위즐리 씨가 천천히 대답했다.

   “너도 알다시피, 루시우스 말포이가 체포되었을 때, 우리는 그의 집을 기습했단다. 그래서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은 모두 다 치워 버렸어.”

   “전 뭔가를 빠뜨리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해리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위즐리 씨가 인정했다. 하지만 해리는 위즐리 씨가 그냥 그를 달래려고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등 뒤에서 날카로운 기적 소리가 들렸다. 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열차에 올라탔고, 열차 문이 닫히고 있었다.

   “그만 서두르는 게 좋겠다.”

   위즐리 씨가 이렇게 말할 때, 위즐리 부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 서둘러라!”

   해리는 황급히 달려 나갔다. 위즐리 씨와 위즐리 부인은 그의 가방을 열차에 올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 얘야,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집으로 오너라. 덤블도어 교수님과도 다 상의해 놓았단다. 그러니까 곧 다시 보게 될 거야.”

   위즐리 부인이 열차 창문 너머에서 소리쳤다. 해리가 열차문을 닫자마자,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드시 몸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말썽 피우지 말고…….”

   위즐리 부인은 이제 달음질치며 열차를 따라오고 있었다.

   “……위험한 짓 하지 마라!”

   열처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해리는 손을 흔들었다. 위즐리 씨와 부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해리는 몸을 돌려서 다른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당연히 반장들의 객차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니는 통로 저쪽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해리는 가방을 끌고 지니를 향해 다가갔다.

   해리가 통로를 지나가자,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그를 보려고 객차의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기도 했다. 해리는 《예언자 일보》에 ‘선택받은 자’라는 소문이 실린 이후로 이번 학기에는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될 거라는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인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서 있는 기분은 별로 즐겁지 않았다. 해리는 지니의 어깨를 탁 쳤다.

   “빈자리를 찾으러 가지 않을래?”

   “해리, 난 안 돼. 딘이랑 만나기로 했거든.”

   지니가 쾌활하게 말했다.

   “나중에 봐!”

   “알았어.”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린 붉은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흔들며 걸어가는 지니의 모습을 보자, 해리는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여름 동안 지니와 함께 지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학교에서는 지니가 자신이나 론, 헤르미온느와 함께 어울려 다닌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해리는 눈을 껌벅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넋을 잃은 여학생들이 온통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안녕, 해리!”

   이때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빌!”

   해리는 안도하며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동그란 소년이 그를 향해 다가오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안녕, 해리.”

   네빌의 바로 등 뒤에서 크고 몽롱한 눈에 머리가 긴 여학생이 인사를 했다.

   “루나, 안녕. 어떻게 지냈니?”

   “잘 지냈어, 고마워,”

   루나가 대답했다. 그녀는 가슴에 잡지 한 권을 꼭 안고 있었다. 잡지 앞표지에 공짜 심령 안경이 포함되어 있다는 커다란 광고 문구가 보였다.

   “《이러쿵 저러쿵》은 아직도 잘 나가나 보지?”

   해리가 물었다. 지난해에 독점 인터뷰가 실린 이후, 해리는 그 잡지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오, 그럼. 발행 부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

   루나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럼 자리를 찾아보자.”

   해리가 말했다.

   세 사람은 말없이 그들을 쳐다보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뚫고 기차 안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빈 객실을 발견하자, 해리는 반가워하며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우리까지 쳐다보고 있어!”

   네빌이 자신과 루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너랑 같이 다니기 때문이야!”

   “너도 마법부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너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해리는 짐칸에 가방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우리의 작은 소동이 《예언자 일보》를 통해 사방에 알려졌잖아. 너도 보았을 텐데.”

   “그래, 나는 이렇게 알려진 것 때문에 할머니가 굉장히 화를 내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무척 기뻐하셨어.”

   네빌이 말했다.

   “내가 마침내 우리 아빠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야. 나에게 새 지팡이까지 사 주셨어, 이것 봐!”

   네빌은 지팡이를 꺼내어 해리에게 보여 주었다.

   “벚나무에 유니콘 털을 넣은 거야.”

   네빌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린 이것이 올리밴더 씨가 마지막으로 판 지팡이 중 하나라고 생각해. 올리밴더 씨는 그 다음 날 실종되었거든. 이런, 이리 돌아와, 트레버!”

   네빌이 자유를 찾아 또다시 몸을 던진 두꺼비를 붙잡기 위해 좌석 밑으로 몸을 숙였다.

   “올해도 D.A. 모임은 계속할 거지, 해리?”

   《이러쿵 저러쿵》안에서 심령 안경을 꺼내 들면서 루나가 물었다.

   “이제 엄브릿지로부터 벗어났으니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안 그래?”

   해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순간 네빌이 좌석 밑에서 기어 나오다가 의자에 머리를 쾅 부딪혔다. 그는 몹시 실망한 표정이었다.

   “난 D.A.가 좋았는데! 너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고!”

   “나도 그 모임이 좋았어. 꼭 친구가 생긴 느낌이었는데…….”

   루나가 차분히 말했다.

   루나는 종종 이렇게 듣기 거북한 말을 잘했다. 그때마다 해리는 동정심과 당혹스런 마음이 뒤섞여서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어색한 기분을 맛보곤 했다.

   하지만 해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객실 문 바깥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4학년 여학생들이 유리창 반대편에 달라붙어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고 낄낄거리느라 난리가 난 것이다.

   “네가 물어봐!”

   “싫어, 네가 해!”

   “그럼 내가 할게!”

   그러더니 여학생 중에 한 명이 문을 열고 불쑥 들어왔다. 대담하게 보이는 그 여학생은 커다란 검은 눈에 턱이 도드라지고 까만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안녕, 해리. 나는 로밀다야, 로밀다 베인.”

   그 여학생은 크고 씩씩하게 말했다.

   “우리 객실로 와서 함께 앉지 않을래? 이 아이들이랑 함께 앉아 있울 필요 없어.”

   로밀다는 또다시 트레버를 찾아 손으로 바닥을 더듬느라 의자 밑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네빌의 궁둥이와 공짜 심령 안경을 쓰고 있어서 정신 나간 알록달록 부엉이처럼 보이는 루나를 가리키며 마치 들으라는 듯 속삭였다.

   “이 아이들은 내 친구들이야.”

   해리가 쌀쌀맞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알았어.”

   여학생들은 매우 놀란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사람들은 네가 우리보다 더 멋진 친구를 사귈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루나가 또다시 당혹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말해 버리는 재주를 보였다.

   “너희는 멋진 친구들이야.”

   해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마법부에 있지 않았어. 나와 함께 싸워 주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마워.”

   루나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심령 안경을 코 위로 조금 더 끌어올리더니 집중해서 《이러쿵 저러쿵》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린 그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어.”

   네빌은 머리카락에 온통 먼지와 실 보푸라기를 묻힌 채, 의자 밑에서 기어 나왔다. 손에는 체념한 듯 보이는 트레버를 쥐고 있었다.

   “네가 상대한 거야. 우리 할머니가 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걸 네가 들었어야 했는데. ‘그 해리 포터란 친구는 마법부 전체를 다 합친 것보다도 훨씬 용기 있는 녀석이야!’ 우리 할머니는 널 손자로 삼으실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걸 다 주실 거야.”

   해리는 어색한 웃음을 짓다가 최대한 O.W.L. 시험 결과로 화제를 바꾸었다. 하지만 네빌이 자신의 성적을 줄줄이 늘어놓으면서, 변신술에서 겨우 ‘무난함’을 받았는데 과연 N.E.W.T.를 들을 수 있을까 큰 소리로 걱정하는 동안, 해리는 그를 바라보면서도 그의 말은 거의 귀담아듣고 있지 않았다.

   네빌의 어린 시절 또한 해리만큼이나 볼드모트에 의해서 비극으로 얼룩졌지만, 네빌은 자신의 운명이 하마터면 해리의 운명과 바뀔 뻔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예언은 두 사람 중 어느 누구에게든 해당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볼드모트는 해리가 예언에서 말한 그 아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만약 볼드모트가 네빌을 선택했다면, 네빌은 번개 모양의 흉터와 예언의 무거운 짐을 진 채 해리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네빌의 어머니도 릴리가 해리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렸을까? 분명히 그랬겠지……. 하지만 만약 네빌의 어머니가 아들과 볼드모토 사이를 가로막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네빌이 앉아 있는 자리는 텅 비어 있고, 아무런 흉터도 없는 해리는 론의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친엄마로부터 작별의 입맞춤을 받았을까?

   “해리, 너 괜찮니? 네 표정이 좀 이상한데.”

   네빌이 말을 걸었다.

   해리는 깜짝 놀랐다.

   “미안…… 나는…….”

   “렉스퍼트에게 붙잡혔니?”

   루나가 불쌍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고는 크고 울긋불긋한 안경을 통해 해리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뭐라고?”

   “렉스퍼트 말이야……. 그것들은 눈에 안 보이지. 네 귀를 통해 들어가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거야.”

   루나가 설명했다.

   “어쩐지 이 근처를 한 놈이 붕붕거리며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했어.”

   루나는 마치 눈에 보이는 커다란 나방이라도 잡는 것처럼 허공에서 손뼉을 탁 쳤다. 해리와 네빌은 서로 얼굴을 빤히 마주 보다가 잽싸게 퀴디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열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름 날씨를 다 모아 놓은듯이 오락가락했다. 어떤 때에는 싸늘한 안개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금방 투명하고 부드러운 햇살이 쏟아지곤 했다. 지금은 하늘이 맑아진 순간이었다. 태양이 거의 바로 머리 위에 떴을 때, 론과 헤르미온느가 마침내 객실로 찾아왔다.

   “점심 손수레가 빨리 좀 왔으면 좋겠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야.”

   론이 해리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배를 문지르며 간절하게 말했다.

   “안녕, 네빌. 안녕, 루나.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알아?”

   론이 해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말포이가 반장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어. 그 녀석은 다른 슬리데린 녀석들이랑 자기 객실에 그냥 앉아 있기만 하더라고. 우리가 지나오면서 그 녀석을 보았지.”

   해리가 관심을 보이며 똑바로 몸을 일으키고 앉았다. 반장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버리다니 말포이답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학년 내내 얼마나 신이 나서 위세를 부리고 다녔던가.

   “너를 보았을 때, 말포이는 뭘 하고 있었니?”

   “평소처럼 이렇게 했지 뭐.”

   론은 심드렁하게 손가락을 세워서 욕을 하는 손짓을 해 보였다.”

   “하지만 말포이답지 않은 일이야, 안 그래? 물론 이건- 론은 다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렇지만……. 그런데 왜 밖에 나와 신입생들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않는 걸까?”

   “모르지.”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해리의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말포이가 어린 후배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어떤 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감사 위원회 일이 더 좋은가 보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 일을 하고 나니 반장 노릇은 좀 우습게 보이나 보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생각에 말포이는…….”

   하지만 해리가 자신의 이론을 펼쳐 보이기도 전에 객실 문이 다시 스르르 열리더니, 3학년 여학생 한 명이 숨을 헐떡거리며 객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난 이걸 네빌 롱바텀과 해리 포,포터에게 전해 주러 왔어.”

   여학생은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보라색 리본으로 붂은 양피지 두루마리 두 개를 내밀었다. 어리둥절해진 해리와 네빌은 가각 그들 앞으로 전달된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다. 여학생은 비틀거리며 객실 밖으로 나갔다.

   “이게 뭐야?”

   해리가 양피지를 펼쳐 들자, 론이 물었다.

   “초대장이야.”

   해리가 대답했다.

   

    해리,

   나와 함께 C객실에서 점심 식사를 했으면 좋겠구니

                                        H.E.F.슬러그혼 교수 

   “슬러그혼 교수가 누구야?”

   네빌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초대장을 내랴다보며 물었다.

   “새로 오신 교수님이야.”

   해리가 알려 주었다.

   “글쎄 아무래도 가 봐야겠지, 안 그래?”

   “하지만 나는 뭐 때문에 보자고 하시는 거지?”

   네빌이 불안한 듯이 물었다. 혹시 무슨 징계라도 받을까 염려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지.”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뚜렸한 증거는 없어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내 말 좀 들어 봐.”

   해리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새로운 제안을 했다.

   “투명 망토를 쓰고 가자. 그럼 가는 길에 말포이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거야, 그 녀석이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보자고.”

   하지만 이 제안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열차 복도가 점심 손수레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투명 망토를 입고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리는 그 모든 시선들을 피할 수 있도록 망토를 입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아쉽지만 망토를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까 그가 열차 복도를 지나온 이후로 점점 더 집요해졌기 때문에 열차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투명 망토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이따금씩 학생들은 해리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객실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딱 한 사람 초 챙만이 예외였는데, 그녀는 해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오히려 객실 안으로 쏜살같이 뛰어 들어가 버렸다. 해리는 창가를 지나면서, 친구인 마리에타와 뭔가 심각한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마리에타는 두꺼운 화장을 덕지덕지 바르고 있었지만, 얼굴 전체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이상한 뾰루지 자국을 전혀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해리는 멋쩍게 웃으며 그 앞을 지나쳐 버렸다.

   

   C객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슬러그혼의 초대를 받은 것이 자신들 두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물론 슬러그혼의 열렬한 태도로 보아, 해리가 가장 고대하던 손님인 것은 분명했다.

   “해리, 어서 오게!”

   해리를 보자마자, 슬러그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벨벳으로 뒤덮인 그의 거대한 배가 객실 안의 남은 공간을 완전히 다 차지해 버리는 것 같았다. 그의 반들거리는 대머리와 무성한 은빛 콧수염은 햇살을 받아 그의 조끼에 달린 금 단추 만큼이나 눈부시케 빛났다.

   “자넬 보니 반갑군! 반가워! 그리고 자네는 롱바텀 군이로군!”

   네빌은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슬러그혼의 손짓에 따라서 그들은 딱 두 자리가 비어 있는 좌석에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그 자리는 문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였다. 해리는 초대받은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과 같은 학년인 슬리데린 학생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눈이 옆으로 쭉 째진, 키가 큰 흑인 소년이었다. 해리가 알지 못하는 7학년 남학생 두 명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슬러그혼의 바로 옆자리인 한쪽 구석에, 자기가 왜 여기 왔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는 여학생은 바로 지니였다.

   “자, 다들 누군지 아는가?”

   슬러그혼이 해리와 네빌에게 물었다.

   “블레이즈 자비니는 물론 자네들과 같은 학년이고…….”

   하지만 자비니는 인사는커녕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해리와 네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학생들은 원칙적으로 서로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이쪽은 코맥 맥클라건이라네. 혹시 서로 오가다가 마주친적이…… 없나?”

   철사처럼 머리카락이 뻣뻣하고 덩치가 큰 맥클라건은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해리와 네빌도 그를 향해 고개를 까닥 했다.

   “그리고 이쪽은 마커스 벨비, 난 잘 모르겠지만 혹시 서로……?”

   몸이 호리호리하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벨비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이쪽의 매력적인 젊은 숙녀 분께서는 이미 두 사람을 잘 안다고 말씀해 주셨지!”

   슬러그혼이 소개를 끝냈다.

   지니는 슬러그혼의 등 뒤에서 해리와 네빌을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자, 이제, 제일 즐거운 일이 남았구만.”

   슬러그혼이 기분 좋게 말했다.

   “자네들 모두를 좀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 말일세. 여기 있는 냅킨을 집어 들게나. 나는 내가 먹을 점심을 직접 싸 왔다네. 내 기억으로는 열차 손수레에는 막대 사탕 같은 것만 잔뜩 실려 있었던 것 같아서 말이야. 가엾은 늙은이의 위장은 그런걸 감당할 수가 없거든……. 꿩고기 들겠나, 벨비?”

   벨비는 화들짝 놀라며, 차가운 꿩 구이 반쪽처럼 보이는 것을 받아 들었다.

   “지금 여기 있는 마커스 군에게 내가 그의 삼촌인 데모클리스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한창 해 주던 참이었네.”

   슬러그혼이 롤빵이 담긴 바구니를 돌리면서 해리와 네빌에게 말했다.

   “아주 뛰어난 마법사지. 뛰어나고말고. 멀린 훈장을 당연히 받고도 남을 사람이지. 그래, 자네는 삼촌을 자주 만나 뵙는가, 마커스?”

   불행하게도 벨비는 방큼 꿩고기를 한 입 가득 베어 문 상태였다. 하지만 슬러그혼의 질문에 얼른 대답하고 싶은 마음에,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켰다가 목이 메어 얼굴이 보라색으로 질리고 말았다.

   “아납네오!”

   슬러그혼은 태연하게 벨비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목구멍이 단박에 뚫린 것 같았다.

   “아니…… 아닙니다. 그렇게 자주 만나 뵙지는 못합니다.”

   벨비가 눈물을 글썽인 채, 간신히 대답했다.

   “물론 그렇겠지. 그는 아주 바쁠 걸세.”

   슬러그혼은 계속해서 뭔가 탐색하는 표정으로 벨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넨 삼촌이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울프스베인 마법약을 발명했다는 게 정말인가?”

   “제 생각에는…….”

   벨비는 슬러그혼이 자신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는, 또다시 꿩고기를 입에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 삼촌과 저희 아버지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전 사실 아는 게 별로 많지 않은데…….”

   슬러그혼이 그에게 싸늘한 미소를 던지더니 곧장 맥클라건을 향해 시선을 돌려 버리자, 벨비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 자네, 코맥군.”

   슬러그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우연히 자네가 삼촌이신 티베리우스 씨를 굉장히 자주 만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네. 삼촌께서는 두 사람이 노폴크에서 녹테일(새끼 돼지처럼 생긴 괴물, 《신비한 동물사전》을 참조할 것 : 역주)을 사냥할 때 찍은 아주 멋진 사진을 가지고 있더구먼, 안 그런가?”

   “아, 예, 아주 재밌었죠. 정말 재밌었어요.”

   맥클라건이 말했다.

   “베르티 히그스 씨와 루퍼스 스크림저 씨와 함께 갔었지요. 물론 그분이 장관이 되시기 전의 일이지만…….”

   “오, 그럼 자네는 베르티와 루퍼스도 잘 아는가?”

   슬러그혼이 활짝 웃으며 이번에는 파이가 담긴 작은 쟁반을 돌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쟁반은 벨비의 앞을 그냥 지나쳐 버렸다.

   “자, 그럼 이야기 좀 해 보게나…….”

   과연 해리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유명인사나 혹은 영향력 있는 누군가와 인맥이 있기 때문에 초대받은 것이 분명했다. 다만 지니만 빼놓고 말이다. 맥클라건 다음으로 질문 공세를 받은 자비니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마녀가 그의 어머니인 것으로 드러났다(대화를 통해 해리가 알아낸 사실은, 그 마녀는 일곱 번 결혼을 했고, 그때마다 남편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떠났는데, 모두 엄청난 황금을 그녀에게 남겼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네빌 차례였고, 그 후로 10분 동안 아주 불편한 시간이 이어졌다. 왜냐하면 네빌의 부모님들은 물론 유명한 오러들이었지만, 벨라트릭스 레스트랭과 몇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 손에 고문을 당하다가 미쳐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네빌과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이 되자, 해리는 슬러그혼이 네빌에 대한 판단을 일단 보류하고, 과연 그가 부모님의 특출한 재능을 어느 한쪽에서라도 물려받았는지 좀 더 두고 보기로 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슬러그혼은 스타를 소개하는 사회자 같은 시늉을 하면서, 자리에서 요란하게 몸을 돌렸다.

   “해리 포터 군! 어디서부터 시작해 볼까? 우리가 여름에 만났을 때에는 겨우 변죽만 올리다 만 것 같은데!”

   슬러그혼은 마치 해리가 특별히 큼지막하고 육즙이 많은 꿩고기라도 되는 듯이, 한동안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입을 열었다.

   “’선택받은 자.’ 요즘 사람들은 자넬 그렇게 부르지!”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벨비와 맥클라건 그리고 자비니가 일제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몇 년 동안 많은 소문들이 떠돌았지.”

   슬러그혼이 해리를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난 그때를 기억한다네……. 그래…… 릴리…… 제임스……. 그 끔찍한 밤이 지난 후에…… 자네가 살아남았지. 그 후로 자네가 보통 마법사들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소문이 떠돌았지…….”

   그때 자비니가 조그맣게 캑캑하고 기침하며 별 웃기는 소리 다 듣겠다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러자 슬러그혼의 등 뒤에서 성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봐, 자비니, 너도 재주가 있잖아……. 잘난 척하는 거 말이야…….”

   “슬러그혼이 유쾌하게 킬킬거리며 지니를 돌아보았다. 지니는 슬러그혼의 태산만 한 배 뒤에서 자비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블레이즈, 조심하는 게 좋을 걸세! 나는 이 젊은 숙녀가 있던 객실 앞을 지나다가, 이 숙녀께서 최고로 악명 높은 박쥐 귀신 주문을 거는 걸 보았다네! 나라면 이 숙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거야!”

   하지만 자비니는 그저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슬러그혼은 다시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건 그렇고, 올여름에도 소문이 무성하더군. 그런데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예언자 일보》가 워낙 실수를 많이 하고 부정확한 기사들을 싣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말일세. 하지만 목격자들도 많이 있고 하다 보니, 마법부에서 뭔가 소동이 있었고, 바로 자네가 그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더구먼.”

   해리는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뻔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어서 그저 고개만 끄덕이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슬러그혼이 그를 보고 활짝 웃었다.

   “이렇게 겸손하다니까. 너무 겸손해요. 덤블도어가 예뻐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러니까 자네가 그 자리에 있긴 있었구먼? 하지만 나머지 이야기들은 어덯게 된 건가? 사실 너무 충격적이어서 무슨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일세. 예를 들면 그…… 전설처럼 전해지는 예언 같은 것…….”

   “저희는 예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 들었어요.”

   네빌이 홍당무처럼 얼굴이 빨개진 채 말했다.

   “맞아요.”

   지니가 당당한 어조로 맞장구를 쳤다.

   “네빌과 저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선택받은 자’니 뭐니 하는 소리는 전부 헛소리예요. 늘 그렇듯이 《예언자 일보》가 꾸며 낸 거라고요.”

   “너희 두 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단 말이냐?”

   슬러그혼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지니와 네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뭔가 더 말을 해 보라는 듯한 슬러그혼의 미소 짓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멀뚱멀뚱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지……. 《예언자 일보》가 종종 과장된 기사를 싣는 건 사실이야…….”

   슬러그혼이 약간 실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문득 친애하는 그웨녹이, 당연히 홀리헤드 하피스 팀의 주장인 그웨녹 존스를 말하는 건데,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

   슬러그혼은 한참 동안 기나긴 추억담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하지만 해리는 어쩐지 슬러그혼이 네빌과 지니의 말을 믿지 못하고, 아직도 그를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널 오후는 슬러그혼이 가르쳤던 저명한 마법사들에 관한 숱한 일화들로 다 흘러가 버렸다. 그 제자들은 하나같이 호그와트에서 슬러그혼이 소위 ‘민달팽이 클럽(슬러그[slug]에는 민달팽이라는 뜻이 있음 : 역주)’ 이라고 부르는 모임에 자진해서 가입했다. 해리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지마느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면서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기차가 또다시 끝없이 이어지던 안개 속을 뚫고 나와 붉은 석양 속으로 들어가자, 슬러그혼이 저녁 햇살에 눈부신 듯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런 세상에, 벌써 해가 저물고 있구나! 등불이 켜진 줄도 모르고 있었네! 이제 자네들도 그만 가서 옷을 갈아입는 게 좋겠구먼. 맥클라건, 자네는 언제 와서 녹테일에 대한 저 책을 빌려 가도록 하게나. 해리, 블레이즈…… 두 사람은 언제든 들르게. 여기 숙녀 분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슬러그혼은 지니를 보고 눈을 찡끗했다.

   “자, 이제 모두 나가게나, 어서 나가!”

   해리를 밀치며 컴컴한 복도로 나간 자비니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해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해리와 지니, 네빌은 자비니의 뒤를 따라 열차 복도를 걸어갔다.

   “마침내 끝나서 정말 다행이야.”

   네빌이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치?”

   “그래, 좀 그런 것 같아.”

   해리는 여전히 자비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데 넌 어쩌더 거기에 끌려오게 되었니, 지니?”

   “그 사람이 내가 자카리아스 스미스한테 저주를 거는 걸 보았어.”

   지니가 설명했다.

   “D.A.모임에 참석했던 그 후플푸프의 멍청이 기억나? 그 녀석이 자꾸만 나에게 마법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꼬치꼬치 캐묻잖아. 그래서 결국에는 너무 짜증이 나서 그 녀석에게 저주를 걸었지. 바로 그때 슬러그혼 선생님이 객실로 들어오기에, 난 꼼짝없이 징계를 당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아주 휼륭한 솜씨였다면서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지 뭐야! 미친 거 아냐!”

   “단지 어머니가 유명한 여자라고 해서 그 사람을 초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한 이유인 것 같은걸.”

   해리가 자비니의 뒤통수에 대고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면 삼촌이…….”

   문득 해리는 말을 멈추었다.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쩌면 아주 굉장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르는 생각이……. 몇 분 후면 자비나는 6학년 객실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말포이도 앉아 있을 것이다. 같은 슬리데린 친구들 이외에는 아무도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만약 해리가 눈에 띄지 않게 자비니의 뒤를 따라서 객실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슨 소리를 듣거나 무슨 광경을 보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제 갈 길도 얼마 남지 않았다. 창문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황량한 풍경을 보건대, 30분도 안 돼서 기차는 호그스미드 역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해리가 품고 있는 의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자기가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 좀 이따가 보자.”

   해리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말했다. 그리고 투명 망토를 꺼내서 얼른 뒤집어썼다.

   “하지만 너는 뭐 하려고?”

   네빌이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

   “나중에 봐!”

   해리는 이렇게 속삭이고는, 최대한 조용하게 자비니의 뒤를 따라갔다. 사실 기차가 너무 덜컹거렸기 때문에 그렇게 조심할 필요도 별로 없었다.

   이제 열차 복도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모두들 자기 객실로 돌아가서 교복으로 갈아입거나 소지품을 챙기고 있었다. 해리는 거의 닿을 듯이 자비니의 뒤를 바싹 쫓아가기는 했지만, 자비니가 객식 문을 열었을 때 안으로 잽싸게 들어갈 만큼 재빠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비니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 해리는 황급히 발을 밀어 넣어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을 간신히 막아냈다.

   “이 문이 도대체 왜 이래?”

   자비니가 버럭 화를 내며 또다시 문을 세게 밀어 닫으려고 했다.

   해리는 문을 꽉 움켜쥐고 세게 밀어젖혔다. 그때까지도 문손잡이를 붙잡고 있던 자비니는 그만 그레고리 고일의 무릎 위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소동이 일어난 틈을 타서, 해리는 쏜살같이 객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 잠깐 비어 있는 자비니의 자리로 얼른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짐을 올려놓는 선반 위로 기어 올라갔다. 고일과 자비니가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며 으르렁거리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그곳으로 쏠린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망토 자락이 펄럭거려서 순간적으로 발과 발목이 드러났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잠깐 동안 말포이의 시선이 그의 운동화를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고일이 문을 쾅 닫으며 자비니를 휙 떠밀었다. 자비니는 잔뜩 약이 오른 표정으로 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빈센트 크레이브는 다시 만화를 읽기 시작했고, 말포이는 킬킬거리며 팬시 파킨슨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두 자리를 차지하고 길게 누웠다.

   해리는 자기 몸 중에서 어디 조금이라도 보이는 곳은 없는지 사방을 살펴보며, 투명 망토 밑에 불편한 자세로 웅크리고 누웠다. 그리고 팬시가 말포이의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매끄러운 금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마치 누가 자신을 부러워하기라도 하는 듯이 킬킬거리고 있었다. 객실 천장에서 흔들리는 등불들은 이 광경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해리가 바로 밑에 있는 크레이브의 만화책에 적힌 작은 글씨까지 낱낱이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말포이가 입을 열었다.

   “그래, 자비니, 슬러그혼이 왜 불렀던?”

   “그냥 인맥이 좋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친해 보려고 애쓰는 거야.”

   자비니는 여전히 고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는 것 같던데.”

   이 이야기를 듣고 말포이는 썩 유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다른 애들은 또 누굴 초대했는데?”

   말포이가 물었다.

   “그리핀도르에서 맥클라건.”

   자비니가 대답했다.

   “오, 그래. 그 녀석의 삼촌이 마법부 거물 인사지.”

   말포이가 말했다.

   “그리고 또 다른 녀석은 래번클로의 벨비라고 했는데…….”

   “걘 아니겠지. 그 녀석은 얼간이야!”

   팬시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롱바텀, 포터와 그 위즐리네 여자 애.”

   자비나가 말을 끝냈다.

   갑자기 말포이가 팬시의 손을 옆으로 탁 밀치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롱바텀도 초대를 했어?”

   “응, 그런 것 같아. 롱바텀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말이야.”

   자비니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슬러그혼이 뭐 때문에 롱바텀에게 관심을 가지는거지?”

   자비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포터, 소중한 포터. 분명히 슬러그혼은 ‘선택받은 자’ 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었겠지.”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하지만 위즐리네 계집애라니! 도대체 그 여자 애가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는 거야?”

   “걔 좋아하는 남자 애들 많아.”

   팬시가 곁눈질로 말포이의 반응을 살피면서 말했다.

   “심지어 블레이즈 너도 그 여자 애가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하잖아, 안 그래? 네가 얼마나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지 우리 모두 다 안다고!”

   “아무리 예쁘게 생겼어도, 나는 그렇게 더러운 배신자 집안의 자식은 절대 건드리지 않을 거야.”

   자비니가 차갑게 말하자, 팬시는 무척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말포이는 다시 팬시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그녀가 다시 머리카락을 쓰다듬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거, 슬러그혼의 취향이 의심스러운걸. 어쩌면 망령이 든 건지도 몰라. 창피한 일이군. 우리 아버지는 항상 슬러그혼이 한창 시절에는 꽤 괜찮은 마법사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아버지는 슬러그혼의 총애를 꽤 받았었지. 슬러그혼은 아마 내가 이 열차에 탔다는 소식을 못 들었던 모양이군. 그렇지 않으면…….”

   “난 초대하지 않았을거라고 생각해.”

   자비니가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을 때, 슬러그혼은 노트의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보더군. 분명히 옛날에 친구 사이였던 모양이야. 하지만 그가 마법부에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더니 별로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어. 그리고 노트는 그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잖아, 안 그래? 내 생각에 슬러그혼은 죽음을 먹는 자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던데.”

   말포이는 발끈 성이 난 표정이었지만, 억지로 야릇하게 메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좋아, 슬러그혼이 뭐에 관심 있는지 누가 상관이나 한데?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그자가 뭔데? 그냥 멍청한 선생일뿐이잖아.”

   말포이는 여봐라는 듯이 일부러 하품을 했다.

   “사실 내년이 되면 난 호그와트에 있지도 않을 건데, 어떤 늙은 뚱보가 날 좋아하든 말든 그게 나한테 뭐가 중요하겠어?”

   “그게 무슨 소리야, 내년에 네가 호그와트에 없을 거라니?”

   팬시가 당장 말포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화가 나서 따졌다.

   “글쎄, 너희들은 절대 모를거야.”

   말포이가 능글맞게 슬쩍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게 말이지…… 음…… 더 중요하고 더 큰 일을 하러 떠날지도 몰라.”

   짐 놓은 선반 위에서 망토를 쓴 채 웅크리고 누워 있던 해리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뭐라고 말할까? 크레이브와 고일은 멍청하게 입을 헤벌리고 말포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더 중요하고 더 큰 일을 하러 떠난다는 게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못하는게 분명했다. 심지어 자비니조차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해서 그 거만한 표정이 흐트러졌다. 팬시는 아연한 표정으로 다시 말포이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말이니?”

   말포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끝마치기를 원하시지.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요즘 들어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 봐……. 어둠의 마왕께서 다시 지배하시게 되면 누가 O.W.L.이나 N.E.W.T에서 얼마나 많은 점수를 받았는지 그런 걸 신경이나 쓰실까? 물론 아니지……. 그분에게 어떤 봉사를 했는지, 어느 정도의 헌신을 했는지 오직 그것만이 문제가 될 거야.”

   그럼 너는 네가 그 사람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자비니가 조롱하듯이 물었다.

   “아직 충분한 자격도 갖추지 못한 열여섯 살짜리 꼬마가?”

   “내가 방금 말했잖아. 그분은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하지 않으실 거라고 말이야. 그분이 나에게 시키려고 하시는 일은 어쩌면 자격이 필요한 그런 일은 아닐 거야.”

   말포이가 조용하게 말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두 사람 모두 마치 이무기처럼 입을 딱 벌린 채, 어안이 벙벙해서 앉아 있었다. 팬시는 마치 이토록 경외심을 자아내는 것은 생전 처음이라는 듯이, 말포이를 황홀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호그와트가 보인다.”

   말포이는 자기가 불러일으킨 사람들의 반응을 충분히 만끽한 듯, 캄캄해진 창문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해리는 말포이를 보느라 너무 정신이 팔려서, 고일이 그의 트렁크를 꺼내려고 손을 뻗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고일이 트렁크를 홱 잡아채는 바람에, 해리는 한쪽 머리를 트렁크에 세게 부딪혔다. 해리는 너무 아파서 헉하고 신음 소리를 냈고, 말포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선반을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말포이가 두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투명 망토 밑에 숨어 있다가 사나운 슬리데린 패거리들에게 발각당하는 것은 생각만해도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찔끔찔끔 나고 머리는 아직도 쿡쿡 쑤시는 와중에, 해리는 망토가 들추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지팡이를 꺼내 들고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다행히도 말포이는 자신이 그 소리를 잘못 들은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말포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교복을 입더니 트렁크를 닫았고, 기차가 덜컥덜컥거리며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자, 새로 산 두터운 여행용 망토를 목 주위로 단단히 여몄다.

   해리는 복도가 다시 아이들로 꽉 찬 것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헤르미온느와 론이 부디 그의 물건을 가지고 내리기를 빌었다. 객실이 완전히 빌 때까지는 이 안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기차가 마지막으로 요동을 치더니, 딱 멈춰 섰다. 고일이 문을 활짝 열고는, 2학년 학생들을 마구 옆으로 밀치며 완력으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크레이브와 자비니가 그 뒤를 따랐다.

   “너 먼저 가.”

   말포이가 팬시에게 말했다. 팬시는 잡아 달라는 듯이 손을 내민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좀 확인할 게 있어.”

   팬시도 떠났다. 이제 객실 안에는 말포이와 해리, 단 두 사람뿐이었다. 학생들은 줄을 이어 복도를 지나서 어두운 기차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말포이는 객실 문으로 다가가더니, 복도에 있는 사람들이 안을 엿보지 못하도록 창문 가리개를 내렸다. 그러고는 트렁크 위로 몸을 숙이고는 다시 뚜껑을 열었다.

   해리는 선반 가장자리 너머로 열심히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심장이 더욱 빠르게 쿵쾅거렸다. 말포이가 팬시에게 감추려고 하는 게 뭘까? 그토록 수선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수수께끼의 망가진 물건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느닷없이 말포이는 해리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해리는 즉시 몸이 마비되고 말았다. 마치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는 사람처럼, 그는 선반에서 떨어져 바닥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충격과 함께 말포이의 발 앞에 나뒹굴고 말았다. 투명 망토는 그의 배 아래에 깔리고, 그의 몸 전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해리의 다리는 아직도 웅크리고 엎드린 그 이상한 자세 그래도 접혀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는 말포이를 멍하니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

   말포이가 신이 나서 말했다.

   “고일의 트렁크에 네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거든. 그리고 자비니가 돌아왔을 때, 뭔가 하얀 것이 허공에 잠깐 나타나는 걸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의 시선이 해리의 운동화에 잠시 머물렀다.

   “자비니가 돌아왔을 때 문을 막은 것도 너였겠지.”

   그는 잠시 해리를 주시했다.

   “포터, 넌 내가 감추고 있는 것에 대해 한 마디도 듣지 못했어. 하지만 난 네가 여기 있는 걸 잡아냈지…….”

   말포이는 해리의 얼굴을 마구 짓밟았다. 해리는 코가 부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온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이건 우리 아버지에 대한 복수야. 자, 어디 보자…….”

   말포이는 완전히 굳어 버린 해리의 몸 밑에서 투명 망토를 끌어내더니, 그의 몸 위로 덮었다.

   “기차가 다시 런던으로 돌아갈 때까지의 아무도 널 찾지 못할걸.”

   말포이가 나지막히 말했다.

   “그럼 나중에 보자, 포터. 아니면 영영 못 보든지.”

   말포이는 해리의 손가락을 일부러 세게 밟으며 열차 객실을 떠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