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플렘의 지나친 행동
해리와 덤블도어는 버로우의 뒷문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뒷문 주변에는 오래된 긴 장화와 녹슨 냄비 같은 낯익은 잡동사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해리는 저 멀리 떨어진 가축 우리에서 졸린 닭들이 나지막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덤블도어는 세 번 문을 두드렸고, 해리는 부엌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후다닥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거기 누구세요?”
이 긴장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위즐리 부인이라는 것을 해리는 즉시 알아차렸다.
“이름을 밝히세요!”
“나요, 덤블도어. 해리를 데려왔소.”
당장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키가 자그마하고 통통한 위즐리 부인이 낡은 초록색 실내복을 입고 서 있었다.
“해리, 얘야! 반가워요, 알버스. 저를 깜짝 놀라게 하시는군요. 아침이나 되어야 도착할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운이 좋았소.”
덤블도어는 해리를 문 안쪽으로 들여보내며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슬러그혼을 설득하기가 훨씬 쉬웠소. 물론 해리의 공로였지. 이런, 님파도라, 잘 지냈너!”
해리가 주위를 돌아보니,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위즐리 부인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쥐털 같은 갈색 머리카락에 하트 모양의 창백한 얼굴을 한 젊은 마녀가 두 손에 커다란 머그잔을 쥐고 식탁 옆에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안녕, 해리.”
그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통스.”
해리는 웬지 그녀가 야위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픈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억지로 웃는 듯한 인상이었다. 늘 하고 다니던 풍선껌 같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없어서인지,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평소보다 덜 발랄해 보였다.
“전 그만 가 보는 게 좋겠네요.”
통스는 재빨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망토를 어깨에 걸쳤다.
“차도 주고 위로도 해 줘서 고마워요, 몰리.”
“나 때문에 먼저 일어나지는 말게.”
덤블도어가 공손하게 말했다.
“나는 금방 가야 하니까. 루퍼스 스크림저와 긴급하게 상의 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아니, 아니에요. 저도 가 봐야 해요.”
통스가 덤블도어의 눈길을 피하면서 말했다.
“그럼 잘 있…….”
“님파도라, 주말에 저녁 식사나 하러 오지 그래요? 리무스와 매드아이도 올 텐데?”
“아니에요, 정말 안 돼요, 몰리……. 어쨌든 고마워요……. 모두들 안녕히 주무세요.”
통스는 황급히 덤블도어와 해리를 지나서 마당으로 나갔다. 현관 계단을 내려가 몇 걸음 걸어간 통스는 몸을 휙 돌려 완전히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이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자, 그럼 호그와트에서 다시 보자꾸나, 해리.”
덤블도어가 말했다.
“몸 조심하거라. 몰리, 그럼 안녕히.”
덤블도어는 위즐리 부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더니, 통스의 뒤를 이어 바로 똑 같은 지점에서 사라졌다. 위즐리 부인은 텅 빈 마당으로 향한 문을 닫았고, 해리의 어깨를 잡고는 식탁 위에 놓인 환한 등잔불 곁으로 끌고 가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너도 론이랑 똑같구나.”
위즐리 부인이 해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너희 두 사람 모두 늘어나기 저주에라도 걸린 것 같구나. 네가 지난번에 교복을 사 준 이후로 론의 키가 10센티미터나 더 자랐단다. 배고프니, 해리?”
“네, 배고파요.”
해리는 갑자기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앉거라. 내가 뭐라도 빨리 만들어 보마.”
해리가 자리에 앉자, 얼굴이 찌그러지고 털이 부스스한 적갈색 고양이가 그의 무릎 위로 깡총 뛰어오르더니 가르릉 소리를 내며 자리 잡았다.
“헤르미온느도 여기 있나요?”
해리가 크룩생크의 귀 뒤를 간절이면서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 그렇단다. 헤르미온느는 그저께 왔지.”
위즐리 부인은 지팡이로 커다란 냄비를 툭툭 두드리며 대답했다. 냄비가 요란하게 쿵 하는 소리를 내며 화덕 위로 뛰어올라가더니, 즉시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론 모두들 자고 잇단다. 우리는 몇 시간 후에나 네가 올 줄 알았거든. 자, 여기 있다…….”
위즐리 부인이 다시 냄비를 탁탁 치자, 냄비가 해리를 향해 허공을 날아오르더니 앞으로 기울어졌다. 위즐리 부인은 때맞춰 그릇을 솜씨 있게 냄비 밑으로 가져다 대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진한 양파 수프를 받았다.
“빵도 먹을래?”
“고맙습니다, 위즐리 부인.”
위즐리 부인은 어깨 너머로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빵 한 덩어리와 칼이 우아하게 허공을 지나 탁자로 둥둥 떠왔다. 빵이 저절로 잘리고 수프 냄비가 다시 화덕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위즐리 부인은 해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럼 내가 호레이스 슬러그혼이 그 자리를 수락하도록 설득했단 말이니?”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 안 가득 뜨거운 수프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분은 나와 아서도 가르쳤지.”
위즐리 부인이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과 똑 같은 시기에 시작해서 수십 년 동안 호그와트에 계셨지. 그래, 그분이 네 마음에 들던?”
이번에는 입 안에 빵을 가득 쑤셔 넣었기 때문에, 해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저 애매하게 머리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위즐리 부인이 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분은 자기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매력적일 수 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아서는 그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단다. 마법부에는 온통 슬러그혼의 옛날 제자들이 깔려 있고 그분은 언제나 그들을 밀어 주시곤 했지. 하지만 아서를 위해서는 별로 시간을 내주지 않았단다. 아서가 그다지 출세할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래, 그걸 보연 슬러그혼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수 있지. 혹시 론이 편지에서 너한테 이야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뭐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만 ? 아서가 승진을 했단다!”
위즐리 부인이 줄곧 이 말을 하고 싶어서 거의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을 거라는 게 훤히 눈에 보였다. 해리는 입 안 가득히 들어 있는 절절 끓는 수프를 꿀꺽 삼키느라 목구멍에 물집이 잡힐 지경이었다.
“굉장해요!”
해리가 탄성을 질렀다.
“착하기도 하지.”
위즐리 부인이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의 눈에 눈물이 글썽한 게 그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루퍼스 스크림저가 현재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새로운 부서 몇 개를 만들었단다. 그리고 아서는 ‘가짜 방어 주문과 부적 수사 및 압수국’의 국장이 되었어. 중대한 임무를 맡았지. 이젠 그에게 보고하는 직원들이 열 명이나 된단다!”
“그게 정확히 무슨……?”
그러니까, 모두들 그 사람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는 상황이라서, 온갖 이상한 물건들이 도처에서 상품으로 나오고 있거든. 그것들이 그 사람과 죽음을 먹는 자들을 막아 줄 수 있다면서 말이야. 너도 어떤 것들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게다. 그냥 고기 국물에다 부보투버 고름을 약간 섞은 것을 보호 마법약이라고 팔질 않나, 사실은 귀가 떨어지게 만드는 저주를 방어 주문이라고 가르치질 않나……. 그런 범죄자들은 대개 먼던구스 플레처 같은 사람들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단 하루도 정직한 일을 해 본적은 없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겁에 질려 있는 틈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 말이야. 하지만 이따금 어떤 것들은 정말로 위험한 물건으로 밝혀지기도 한단다. 일전에는 아서가 저주에 걸린 스니코스코프 한 상자를 압수했는데, 그건 죽음을 먹는 자가 퍼뜨린 게 거의 확실했어.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도 알겠지? 나는 플러그라든가 토스터, 그 밖에 여러 가지 머글들의 잡동사니 따위나 다루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라고 그이에게 말했단다.”
위즐리 부인은 해리가 플러그를 그리워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라도 한 것처럼 대단히 단호한 표정으로 일장 연설을 마쳤다.
“위즐리 씨는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가요?”
해리가 물었다.
“그래, 그렇단다. 사실은 조금 늦고 있구나. 자정쯤에는 돌아오겠다고 말했는데 말이야…….”
위즐리 부인은 고개를 돌려 커다란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식탁 끝에 있는 빨래 바구니에 담긴 이불 더미 위에 기우뚱하게 놓여 있었다. 해리는 즉시 그 시계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식구들 저마다의 이름이 새겨진 아홉 개의 바늘이 달린 시계로, 평소에는 위즐리네 집 응접실 벽에 걸려 있었는데, 지금 놓여 있는 자리를 보아하니 위즐리 부인이 이 시계를 가지고 집 안을 돌아다닌 것이 틀림없었다. 아홉 개의 바늘 하나하나가 지금은 ‘치명적인 위험’을 가리키고 있었다.
“요즘은 한동안 계속 저렇구나.”
위즐리 부인이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뒤로는 말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치명적인 위협에 처해 있는 모양이야. 난 저게 꼭 우리 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단다. 이런 시계를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는지 몰라서 확인을 해 볼 수는 없지만 말이다. 오!”
갑자기 탄성을 지르면서, 위즐리 부인이 시계를 가리켰다. 위즐리 씨의 시곗바늘이 ‘이동 중’으로 째깍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이가 오고 있어!”
그리고 과연 잠시 후에 뒷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위즐리 부인은 벌떡 일어나서 황급히 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왼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문짝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조용히 물었다.
“아서, 당신이에요?”
“그래요.”
위즐리 씨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설령 내가 죽음 먹는 자라도 그런 대답쯤은 할 수 있을 거요. 그 질문을 해요!”
“오, 솔직히…….”
“몰리!”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당신의 가장 소중한 꿈이 뭐지요?”
“비행기가 어떻게 공중에 떠 있는지 알아내는 거요.”
위즐리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잡이를 돌렸다. 하지만 위즐리 씨가 밖에서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몰리, 문을 열기 전에 먼저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 해야만 하오!”
“아서, 정말이지 이런 어리석은 짓을…….”
“우리가 단둘이 있을 때, 내가 당신을 뭐라고 불러 주길 원하지?”
희미한 등잔불 밑이었지만, 해리는 위즐리 부인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해리 자신도 갑자기 귀와 목주변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아서, 최대한 시끄러운 소리가 나도록 숟가락을 그릇에 마구 부딪히면서 바쁘게 수프를 떠먹었다.
“살랑살랑 몰리.”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는 위즐리 부인이 문틈에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맞았소. 이제 날 들여보내도 되오.”
위즐리 씨가 말했다.
위즐리 부인이 문을 열고 남편을 맞아들였다. 붉은 머리카락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한 호리호리한 마법사가 쁄테 안경을 쓰고, 더럽혀진 긴 여행용 망토를 입은 채 들어왔다.
“당신이 집에 올 때마다 왜 우리가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위즐리 부인이 여전히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남편이 망토 벗는 걸 도와주며 투덜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죽음을 먹는 자라면 당신으로 변신하기 전에 당신한테서 그 대답을 알아내고 말 거예요!”
“나도 알아요, 여보. 하지만 이게 마법부의 지침이라오. 그리고 나는 모범이 되어야만 하잖소. 그런데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는구려……. 양파 수프인가?”
위즐리 씨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을 하며 식탁을 향해 돌아섰다.
“해리! 우린 네가 아침이 되어야 올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위즐리 씨가 해리 옆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위즐리 부인이 그 앞에도 수프 한 그릇을 차려 주었다.
“고마워요, 몰리. 아주 힘든 밤이었다오. 어떤 멍청이가 변신 메달을 팔기 시작했거든. 그 메달을 목에 걸기만 하면 마음대로 겉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거요. 단돈 10갈레온에 오만 가지 변장이 가능하단 말이지!”
“그래서 그 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진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대부분은 그저 불쾌한 오렌지색으로 변하기만 했소.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온몸에 사마귀 같은 촉수가 툭툭 불거져 나왔지. 성 뭉고 병원이 한가한 줄 아는지, 원!”
“그거 웬지 프레드와 조지가 좋아할 만한 일인 것 같군요.”
위즐리 부인이 망설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확실한가요? 혹시…….”
“물론 아니오!”
위즐리 씨가 말했다.
“ 그 아이들은 이제는 그런 짓을 절대 하지 않소. 사람들이 그토록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필사적인 이 마당에!”
“그래서 이렇게 늦은 거예요? 변신 메달 때문에?”
“아니오. 코끼리와 성(런던 남쪽에 있는 주요 도로와 인근 지역의 명칭 : 역주)에 지독한 역화(逆火) 저주가 내렸다는 정보를 들었소.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마법사 법률 강제 집행부 수사대가 이미 문제를 해결한 상태였지…….”
해리는 손으로 간신히 터져 나오는 하품을 막았다.
“가서 자야지.”
위즐리 부인이 즉시 알아차리고 말했다.
“너를 위해서 프레드와 조지의 방을 치워 두었단다. 그 방을 혼자서 쓰려무나.”
“그럼 두 사람은 어디에 있나요?”
“오, 그 아이들은 다이애건 앨리에 있단다. 너무 바뻐서 장난감 가게 위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어.”
위즐리 부인이 설명했다.
“난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 아이들이 사업에 꽤 소질이 있는 것 같더구나! 이리 오너라, 해리. 네 가방은 벌써 위층에 올라가 있단다.”
“안녕히 주무세요, 위즐리 씨.”
해리는 위자를 뒤로 밀며 인사를 했다. 크룩생크가 가볍게 그의 무릎에서 뛰어내리더니 방을 살금살금 빠져나갔다.
“잘 자라, 해리.”
위즐리 씨가 대답했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이 부엌을 나서면서 빨래 바구니 위에 놓인 시계를 힐끗 보는 것을 눈치 챘다. 시곗바늘은 도다시 일제히 ‘치명적인 위험’을 가리키고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의 침실은 2층에 있었다. 위즐리 부인이 침대 옆 보조 탁자 위에 놓인 등잔을 지팡이로 가리키자, 등잔에 탁 하고 불이 붙더니 따스한 황금색 불빛으로 온 방 안을 물들였다. 하지만 작은 창문 앞에 있는 책상 위에 가져다 놓은 커다란 꽃병에도 불구하고 방 안을 떠도는 희미한 냄새를 가릴 수는 없었다. 해리는 그것이 무슨 화약 냄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닥의 대부분은 아무런 표시도 없이 봉해진 수많은 종이 상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 상자들 사이에 해리의 학교 가방이 우뚝 서 있었다. 그 방을 임시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커다란 옷장 꼭대기에 앉아 있던 헤드위그가 해리를 보고 반가운 울음소리를 내더니 창밖으로 훌쩍 날아가 버렸다. 해리는 헤드위그가 사냥을 나가기 전에 그를 보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에게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두 침대 중 하나로 들어갔다. 그런데 베개 안에 뭔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해리는 베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끈적끈적한 보라색과 오렌지색 사탕을 꺼냈다. 구역질 사탕이었다. 해리는 혼자 씩 웃으며 다시 돌아누웠고, 돌아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불과 몇 초가 지났을까? 적어도 해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쾅 하고 대포를 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리는 바람에 해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깜짝 놀라서 후다닥 몸을 일으켜 보니, 커튼을 열어젖히는 소리에 뒤이어 눈부신 햇살이 그의 두 눈을 날카롭게 찔렀다. 한 손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막으며, 해리는 다른 한 손으로 더듬더듬 안경을 찾았다.
“무…… 무슨 일이지?”
“우리는 네가 벌써 온 줄도 몰랐지 뭐야!”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해리의 정수리를 탁 하고 세게 내리쳤다.
“론, 해리를 때리면 어떡해!”
나무라는 듯한 여자 애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마침내 해리의 손에 안경이 잡혔다. 안경을 썼지만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잠깐 동안 긴 그림자가 어렴풋하게 그의 눈앞에서 가물거렸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리는고 나자, 비로소 그를 내려다보며 씩 웃고 있는 론 위즐리의 모습이 정확히 보였다.
“좀 어때?”
“최고야.”
해리가 머리 꼭대기를 손으로 슬슬 문지르며 다시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너는?”
“그럭저럭.”
론이 종이 상자를 하나 끌어당기더니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제 도착한 거야? 엄마가 방금 전에야 우리에게 알려 주었지 뭐야!”
“새벽 한 시쯤에 왔어.”
“그 머글들은 모두 다 잘 지내냐” 너에게 잘 해 주던?”
“늘 똑 같지 뭐.”
해리가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그의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나랑은 별로 말도 안 해. 하지만 난 그편이 더 좋아. 잘 지냈니,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는 해리가 무슨 병이라도 앓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꼼꼼하게 그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이런 태도에 무슨 의도가 깔려 있는지 짐작이 갔지만, 지금은 시리우스의 죽음이나 다른 우울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얼른 딴청을 부렸다.”
“지금 몇 시야? 아침 식사를 놓친 건 아니겠지?”
“그건 걱정하지 마. 엄마가 아침 식사를 가지고 올라오실 거야. 엄마는 네가 영양실조인 것 같다고 걱정하시더라.”
론이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니?”
“별일 없었어. 나야 우리 이모와 이모부네 집에 처박혀서 잘 지냈는걸.”
“뻥치지 마! 덤블도어 교수님이랑 함께 왔으면서!”
론이 말했다.
“별로 신나는 일은 아니었어. 교수님은 나에게 한 늙은 교수님이 은퇴 생활을 그만두고 학교로 나오도록 설득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셨어. 호레이스 슬러그혼이라고 하는 분인데.”
“이런, 우린 그런 줄도 모르고…….”
론이 몹시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경고하듯이 론을 째려보자, 론은 순식간에 말을 돌렸다.
“아니, 우리도 뭐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랬었니?”
해리가 즐거워하며 물었다.
“그래…… 그랬어. 엄브릿지가 떠났으니까, 당연히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겠어? 안 그래? 그런데, 어, 그 교수님은 어떻던?”
“좀 해마같이 생겼어. 옛날에 슬리데린 기숙사의 사감이셨다고 하더라고.”
해리가 대답했다.
“근데 뭐가 잘못됐니,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는 당장이라도 뭔가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아까부터 계속해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표정을 바꾸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전혀 아니야! 그러니까, 음, 슬러그혼이 좋은 교수님이 될 것처럼 보이던?”
“모르겠어. 그래도 엄브릿지보다야 낫겠지, 안 그래?”
해리가 말했다.
“난 엄브릿지보다 더 끔찍한 사람을 알고 있어.”
문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론의 여동생이 몹시 짜증스런 표정으로 꾸부정하게 걸어 들어왔다.
“안녕, 해리.”
“무슨 일 있어?”
“그 여자 때문이야.”
지니가 해리의 침대 위로 털썩 주저앉으며 투덜거렸다.
“그 여자 때문에 미치겠어.”
“이번에는 또 뭘 어쨌는데?”
헤르미온느가 정말 안됐다는 듯이 물었다.
“날 대하는 말투 말이야. 그 여자는 내가 세 살짜리 어린애인 줄 아나 봐!”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 여자 머릿 속에는 온통 자기 생각밖에 없으니까.”
헤르미온느가 목소리를 낮추며 맞장구를 쳤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위즐리 부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너희 두 사람은 단 5초만이라도 좀 신경을 끄고 있을 수 없니?” 하며 론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 알겠어. 그 여자 편을 들겠다 이거지?”
지니가 쏘아붙였다.
“오빠가 그 여자에게 홀딱 반했다는 건 우리도 다 알아.”
론의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치고는 너무 이상한 소리였다. 해리는 뭔가 자기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너희들은 누굴……?”
해리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침실 문이 다시 열렸고, 해리는 본능적으로 이불을 턱까지 잽싸게 끌어당겼다. 어찌나 세게 당겼는지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방바닥으로 쿵 하고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다.
젊은 아가씨가 문가에 서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그 모습에 방 안의 공기마저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은빛 나는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늘어뜨린 그녀는 나긋나긋한 몸매에 키가 훤칠했으며, 온몸에서 희미한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금상첨화로, 손에는 아침 식사가 잔뜩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아리.”
그녀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오래강망이야!”
그녀가 문턱을 넘어서 해리를 향해 다가오는데, 그녀의 뒤를 따라서 위즐리 부인이 약간 기분이 상한 듯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아침 식사를 가져올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내가 막 가져오려고 하던 참이었단 말이다!”
“괜차나용.”
플뢰르 델라쿠르는 해리의 무릎 위에 쟁반을 내려놓더니 그의 양쪽 뺨에 한 번씩 입을 맞추었다. 해리는 그녀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마치 불에 덴 듯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리를 너무너무 보고 시퍼거등요. 내 동생 가브리엘 생강나? 항상 아리 포터 이야기망 항다니까. 동생도 널 다시 보명 굉장히 좋아항 꺼야.”
“오…… 동생도 여기 왔니?”
해리가 숨이 막혀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니, 아니. 순징하기도 하지.”
플뢰르가 은방울을 울리듯이 까르르 웃었다.
“내녕 여르메 말이야. 그때 우리…… 너 모르고 있니?”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서 책망하는 듯한 눈길로 위즐리 부인을 쳐다 보았다.
“너무 바뻐서 아직 해리에게 말해 줄 틈이 없었단다.”
위즐리 부인은 재빨리 변명했다.
플뢰르는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을 휙 젖히며 다시 해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 끝이 채찍처럼 위즐리 부인의 얼굴을 찰싹 스쳤다.
“빌과 나능 결홍할 거야!”
“오.”
해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위즐리 부인이나 헤르미온느, 지니 모두가 단호하게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것을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었다.
“우와! 어…… 축하해!”
플뢰르는 허리를 숙이더니 다시 한 번 해리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빌응 지금 아주 바빠. 아주 열싱이 일을 하고 이써. 난 영어 배우려공 그린고트에서 시간제로 일하공 이써. 며칭동앙 가족드리랑 칭해지라고 빌이 날 여기루 데리고 았어. 네가 온당 말듣고 얼마나 기뻤능지 몰라. 요리랑 닭들을 조아하지 않으면, 여깅 정말 할 일이 업거등! 그래, 아침 식사 맛있게 머거, 아리!”
이 말과 함께, 플뢰르는 우아하게 돌어서더니 조용히 문을 닫고 사뿐사뿐 날아가듯이 방을 나가 버렸다.
순간 위즐리 부인이 “쯔쯔” 하고 혀를 차는 듯한 소리를 냈다.
“엄마는 플뢰르를 싫어하셔.”
지니가 조용히 말했다.
“난 그 아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위즐리 부인이 퉁명스런 어조로 속삭였다.
“단지 그 아이들이 너무 성급하게 약혼을 했다는 생각을 할 뿐이야. 그게 전부라고!”
“두 사람은 1년이나 사귀었어요.”
론이 이상하게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닫힌 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건 별로 길다고 할 수 없어! 물론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안다. 그게 모두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불안감 때문이지. 사람들은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보통 때라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할 결정도 뭐든지 서두르는 거야. 글 사람이 위세를 떨치던 옛날에도 그랬단다. 사람들이 서로 눈이 맞아 여기저기로 도망가고…….”
“엄마랑 아빠처럼 말이죠.”
지니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 맞아. 네 아버지랑 나는 서로 천생연분이었어. 그러나 더 기다릴 필요가 뭐 있었겠니?”
위즐리 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빌과 플뢰르는…… 그러니까…… 솔직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니? 빌은 일벌레에다가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야. 반면 플뢰르는…….”
“주책바가지죠.”
지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빌 오빠도 그다지 현실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오빠는 저주 해독자잖아요. 게다가 모험과 낭만을 즐기죠. 그래서 빌 오빠가 그 플렘(플뢰르를 놀리기 위해서 부르는 별명으로 ‘가래’라는 뜻 : 역주)에게 미친 거라구요.”
“플뢰르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지니.”
위즐리 부인이 날카롭게 말했다.
하지만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어쨌든 난 그만 일하러 가야겠다……. 계란이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해리.”
위즐리 부인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론은 아직도 약간 술에 취한 사람 같았다. 그리고 젖은 귀의 물기를 털어 내려고 애쓰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사는데도 플뢰르에게 익숙해지지 않았니?”
해리가 물었다.
“글쎄, 좀 익숙해지기는 했어. 하지만 지금처럼 그녀가 예상치 못하게 불쑥 튀어나오면…….”
“참 한심하다.”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며 론에게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벽 앞에 이르자 팔짱을 낀 채 돌아서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빠는 설마 그 여자가 영원히 옆에 있길 원하는 건 아니겠지?”
지니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론에게 물었다.
론이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말자, 지니가 말했다.
“엄마는 가능하면 이 결혼을 막으려고 하실 거야. 뭐든지 내기해도 좋아.”
“아주머니가 무슨 수로 막으시겠어?”
해리가 물었다.
“엄마는 계속해서 통스를 저녁 식사에 부르려고 애쓰고 계셔. 내 생각에 엄마는 빌이 통스와 사랑에 빠지길 원하시는 것 같아. 나도 그렇게 되면 좋겠어. 통스가 우리 가족이 되면 훨씬 더 좋을 거야.”
”그래, 잘도 그렇게 되겠다.”
론이 빈정거렸다.
“내 말 좀 들어 봐.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플뢰르가 옆에 있는데 통스에게 반할 수 있겠어? 물론 통스도 자기 머리나 코를 가지고 한심한 장난을 치지 않을 때에는 뭐 그런대로 봐 줄 만하기는 하지만…….”
“통스는 그 플렘보다는 백배 천배 더 착하단 말이야!”
지니가 소리쳤다.
“게다가 훨씬 더 똑똑하지. 통스는 오러라고!”
방 한쪽 구석에서 헤르미온느가 응원을 하고 나섰다.
“플뢰르도 멍청하진 않아. 트리위저드 시합에까지 출전할 만큼 똑똑해.”
해리가 끼어들었다.
“이젠 너까지 그러냐!”
헤르미온느가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그 플렘이 ‘아리’라고 부르는 소리가 꽤 좋았던 모양이지, 안 그래?”
지니가 경멸스런 어조로 말했다.
“아니야.”
해리는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내 말은 그냥, 플렘…… 아니 플뢰르가…….”
“난 통스가 우리 가족이 되는게 훨씬 더 좋아. 적어도 통스는 재밌잖아.”
지니가 투덜댔다.
“요즘에는 통스도 별로 안 웃겨. 볼 때마다 점점 더 모우닝 머틀과 닮아 가는걸.”
론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옳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반박했다.
“통스는 얼마전에 일어난 일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그는 통스와 사촌이었단 말이야!”
해리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드디어 시리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해리는 포크를 들어서 달걀 요리를 입 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이 대화에 끼어들게 되는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통스와 시리우스는 서로 잘 알지도 못했어!”
론이 우겨 댔다.
“통스의 인생 절반 동안 시리우스는 줄곧 아즈카반에 있었고, 그전에는 그들 가족들끼리 서로 만난 적도 없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통스는 시리우스가 자기 잘못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어쩌다가 통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해리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끼어들고 말았다.
“그때 통스가 벨라트릭스 레스트랭과 싸우고 있었잖아. 안 그래? 통스는 만약 자기가 벨라트릭스를 해치우기만 했더라면, 그녀가 시리우스를 죽이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그건 말도 안 돼.”
론이 말했다.
“그게 바로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이라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루핀이 계속 통스를 달래 주려고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통스는 크게 상심하고 있어. 그래서 변형술에도 계속 문제가 있는 거란 말이야!”
“변형 뭐?”
“옛날처럼 모습을 잘 바꾸지 못한다고.”
헤르미온느가 설명했다.
“내 생각에는 통스의 능력이 충격이나 뭐 그런 걸로 인해서 손상을 입은 모양이야.”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해리가 말했다.
“나도 그래. 하지만 진짜로 깊이 상심을 하면…….”
헤르미온느가 말하고 있을 때, 다시 문이 열리고 위즐리 부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지니,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점심 준비하는 걸 좀 도와주렴.”
부인이 속삭였다.
“전 지금 한창 이야기 중이란 말이에요!”
지니가 툴툴거렸다.
“지금 당장!”
위즐리 부인은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엄마는 순전히 플렘이랑 단둘이 있기 싫어서 나더러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야.”
지니가 심통 난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플뢰르를 아주 그럴싸하게 흉내 내며 길고 빨간 머리카락을 뒤로 휙 젖히더니, 발레리나처럼 두 팔을 위로 높이 치켜든 채, 방 안을 도도하게 걸어 나갔다.
“언니 오빠들도 빨리 내려오는 게 좋을 거야.”
지니는 방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해리는 잠시 침묵이 찾아든 동안 열심히 아침 식사를 했다. 헤르미온느는 이따금 해리를 곁눈질하면서 프레드와 조지의 종이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론은 해리의 토스트를 집어먹으며 여전히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작은 망원경처럼 생긴 것을 손에 들고 물었다.
“몰라.”
론이 대답했다.
“하지만 프레드와 조지가 여기다 두고 간 걸 보면, 아마 아직 장난감 가게에서 팔 준비가 안 된 물건일 거야. 그러니까 조심하도록 해.”
“네 어머니 말씀이 가게가 아주 잘된다고 하더라.”
해리가 말했다.
“프레드와 조지가 진짜로 소질이 있다고 말씀하셨어.”
“그건 과소평가야.”
론이 말했다.
“형들은 갈퀴로 갈레온을 긁어모으고 있다고! 난 빨리 그 가게에 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야. 우린 아직 다이애건 앨리에 못 가 봤거든. 엄마 말씀이, 특별 보안 조치 때문에 아빠가 꼭 같이 가셔야 한다는데, 아빠는 계속 일이 너무 많으셨어. 하지만 듣기로는 아주 굉장한 것 같더라.”
“퍼시에 대해서는 무슨 소식 들었어?”
해리가 물었다. 위즐리 형제 중에 셋째인 퍼시는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지냈던 것이다.
“다시 너희 엄마 아빠랑 연락을 하고 지내니?”
“전혀.”
론이 말했다.
“하지만 이제 볼드모트가 돌아왔으니, 퍼시도 네 아빠가 옳았다는 걸 알았을 거 아니야.”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그러시는데 사람들은 상대방이 옳았을 때보다 틀렸을 때 훨씬 더 쉽게 용서할 수 있다더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희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어, 론.”
“그분의 말씀은 늘 도 닦는 소리처럼 들리는군.”
론이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올해에는 나에게 개인 지도를 해 주실 거래.”
해리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하지만 론은 토스트 조각이 목에 걸려 캑캑거렸고,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단 말이지!”
론이 구박을 했다.
“지금 막 생각이 났을 뿐이야.”
해리가 솔직히 말했다.
“어젯밤에 너희 집 빗자루 창고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세상에…… 덤블도어 교수님께 개인 지도를 받다니!”
론은 깊이 감동한 눈치였다.
“그런데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왜……?”
그의 목소리가 도중에 흐려졌다. 해리는 나이프와 포크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하고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잇는 것뿐인데도, 그의 심장은 마구 고동치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어. 그런데 지금 말하면 어때?’
해리는 포크만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다. 포크는 그의 무릎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서 환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도 교수님께서 왜 나에게 지도를 해 주시는지는 잘 몰라. 하지만 틀림없이 예언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
론도 헤르미온느도 아무 말이 없었다. 해리는 두 사람 모두 얼어 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포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희도 알겠지만, 그자들이 마법부에서 훔쳐 내려고 했던 그 예언 말이야.”
“하지만 그 예언이 뭔지는 아무도 몰라.”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말했다.
“그건 부서져 버렸다고.”
“하지만 그 《예언자 일보》에서는…….”
론이 말을 꺼내자, 헤르미온느가 얼른 입을 막았다.
“쉬잇!”
“《예언자 일보》의 말이 맞았어!”
해리는 아주 힘들게 고개를 들고 두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헤르미온느는 겁에 질린 것 같았고, 론은 경탄하는 것 같았다.
“부서진 유리 공에만 예언이 적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나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방에서 예언의 내용을 전부 들었어. 그 예언은 덤블도어 교수님께 전달되었거든. 그래서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지. 그 예언에 따르면…….”
해리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볼드모트를 해치워야 할 사람이 바로 나인것 같아……. 적어도 예언에서는 우리들 중 어느 한쪽이 살아 있는 한, 다른 쪽이 살아 있을 수가 없다고 했어.”
한동안 세 사람 모두 할 말을 잃고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바로 그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헤르미온느가 검은 연기 뒤로 사라졌다.
“헤르미온느!”
해리와 론이 동시에 소리쳤다. 아침 식사가 담긴 쟁반이 미끄러지면서 마루 위로 와장창 떨어졌다.
헤르미온느가 망원경을 손에 꼭 쥔 채, 기침을 콜록거리며 연기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의 눈가는 검푸른색으로 멍들어 있었다.
“난 이걸 눈에 갖다 댔을 뿐인데…… 그런데 이게…… 이게 날 쳤어!”
헤르미온느가 기가 막혀 어쩔 줄 몰라 했다.
과연 망원경 끝에는 작은 주먹이 대롱대롱 매달린 긴 스프링이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걱정하지 마.”
론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엄마가 고쳐 주실 거야. 사소한 상처는 아주 잘 고쳐 주시거든.”
“오, 그래.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말했다.
“해리, 오, 해리…….”
헤르미온느는 다시 해리의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우리도 마법부에서 돌아온 뒤부터…… 너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루시우스 말포이가 예언에 대해서 떠들어 대는 말을 듣고서…… 그게 너와 볼드모트에 대한 거라는 둥 하는 말을…… 어쨌든 그래서 우리도 뭔가 그와 비슷한 내용일 거라고 생각했었어……. 오, 해리…….”
헤르미온느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
“겁이 나니?”
“옛날처럼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
해리가 말했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겁이 났어. 하지만 지금은 마치 결국에는 그자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줄곧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야…….”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널 직접 데리러 가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린 그분이 너에게 예언과 관련된 뭔가를 보여 주시거나 이야기해 주실 거라고 짐작했었어.”
론이 열에 들떠 말했다.
“우리 생각이 옳았던 거야, 그렇지? 만약 네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셨다면,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너에게 개인 지도 같은 걸 하실 리가 없어. 교수님께서도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으실 테니까. 교수님은 틀림없이 너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신 거야!”
“그 말이 맞아!”
헤르미온느가 동의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너에게 뭘 가르치시려는 걸까, 해리? 굉장히 수준 높은 방어 마법일지도 몰라……. 강력한 반대 주문이나…… 주문 해제 마법 같은 것…….”
해리의 귀에는 실제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훈훈한 온기가 온몸에 퍼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그것은 내리쬐는 햇빛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을 꽉 막고 있었던 장애물이 눈처럼 녹아 버리는 것 같았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가 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래도 여전히 그의 편이었다. 그가 무슨 전염병에 걸렸거나 위험한 인물이라도 되는 듯이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의 말을 해 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도피술도 있긴 하지.”
헤르미온느가 말을 맺었다.
“어쨌든 적어도 너는 올해 무슨 수업을 하게 될지 한 과목은 알고 있으니, 나나 론보다는 한 가지라도 더 나은거야. 그런데 우리의 O.W.L. 결과는 언제 나오는 걸까?”
“이제 얼마 안 남았을 거야. 거의 한 달이 다 되었으니까.”
론이 말했다.
“잠깐만.”
해리가 말했다. 문득 그가 지난밤에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덤블도어 교수님께서 우리의 O.W.L. 결과가 오늘 도착할 거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
“오늘이라고?”
헤르미온느가 비명을 질렀다.
“오늘이란 말이야? 그런데 넌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오, 하느님…… 진작 말했어야지…….”
헤르미온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혹시 부엉이들이 왔는지 보러 가야겠어…….”
하지만 해리가 10분 후에 옷을 말끔히 갈아입고 빈 아침 식사 쟁반을 든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헤르미온느는 몹시 짜증스런 얼굴로 부엌 식탁 앞에 여전히 앉아 있었다.
“영 낫지를 않네.”
위즐리 부인이 손에 지팡이를 든 채, 헤르미온느의 머리 위쪽에 서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치료사의 도우미》라고 하는 책의 ‘타박상, 자상, 찰과상’ 부분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항상 이렇게 하면 효과가 있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절대로 멍이 사라지지 않는 장난감을 만드는 게 프레드와 조지의 아이디어였을 거예요!”
지니가 참견을 했다.
“하지만 꼭 사라져야만 해!”
헤르미온느가 꽥 소리쳤다.
“나는 영원히 이런 꼴로 돌아다닐 수는 없단 말이야!”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게다, 얘야. 해결 방법을 찾아낼 거야. 걱정하지 마라.”
위즐리 부인이 열심히 위로했다.
“앙 그래도 빌이 저항테 말해 주었어용. 프레드와 조지가 엉마나 재밍는지 말이죠!”
플뢰르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웃겨서 숨 넘어가시겠네.”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서더니 손가락을 비비 꼬면서 부엌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위즐리 아주머니, 정말로, 정말로 오늘 아침에 부엉이들이 오지 않았다는 게 확실한가요?”
“그래, 얘야. 그랬다면 내가 알아차렸겠지.”
위즐리 부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아홉 시잖니. 아직도 시간은 충분하단다.”
“틀림없이 고대 룬 문자 시험을 망쳤을 거야.”
헤르미온느가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적어도 한 가지 중대한 오역을 한 것은 확실해. 게다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실기는 완전히 망쳤어. 그래도 그때는 변신술은 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정말…….”
“헤르미온느, 입 좀 다물지 않을래? 너만 초조한 게 아니거든!”
론이 버럭 성을 냈다.
“게다가 넌 O.W.L.에서 열 개나 ‘특출함’을 받을 거잖아…….”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헤르미온느가 신경질적으로 두 손을 마구 휘둘렀다.
“난 알아. 난 전 과목에서 다 떨어졌을 거야!”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해리가 방 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한 것은 또다시 헤르미온느였다.
“기숙사 사감 선생님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의논을 해야 해. 지난 학기가 끝날 때, 맥고나걸 교수님께 여쭤 보았어.”
해리의 뱃속이 꾸르륵 거렸다. 해리는 아침을 좀 덜 먹을 걸 하고 후회했다.
플뢰르가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우리 보바통에서는 좀 다릉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능데, 내 생각에는 그게 더 조응 거 같아. 우린 5녕이 아니라 6녕 공부 한 다음에 시험을 쳐. 그러고 나서…….”
플뢰르의 말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헤르미온느가 부엌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세 개의 검은 점들이 하늘에 도렷이 나타나더니 갈수록 점점 더 커졌다.
“저건 분명히 부엉이들이야.”
론이 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얼른 헤르미온느가 있는 창가로 달려갔다.
“세 마리가 오는군.”
해리도 황급히 헤르미온느의 옆에 가서 섰다.
“우리에게 각자 한 마리씩이야.”
헤르미온느가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오, 안 돼…… 오, 안 돼…… 오, 안 돼…….”
헤르미온느는 양쪽에 선 해리와 론의 팔뚝을 꽉 움켜쥐었다. 부엉이들은 버로우를 향해 곧장 날아오고 있었다. 세 마리의 잘생긴 황갈색 부엉이들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로 낮게 날아 내려올수록, 부엉이들마다 커다랗고 네모난 봉투를 들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오, 안 돼!”
헤르미온느가 꽥 하고 비명을 질렀다.
위즐리 부인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부엌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부엉이들은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와 식탁 위에 쪼르르 줄지어 내려앉았다. 그리고 세 마리 모두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해리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에게 온 편지는 가운데 앉은 부엉이의 다리에 묶여 있었다. 해리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풀었다. 그의 왼쪽에는 론이 자신의 시험 결과를 열어 보고 있었고, 오른쪽에서는 헤르미온느가 어찌나 손을 덜덜 떨고 있었는지, 그녀의 부엉이까지 온몸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부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해리는 간신히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재빨리 봉투를 벌려서 안에 든 양피지를 꺼냈다.
표준 마법사 수준 시험 결과
합격선 불합격선
O : Outstanding(특출함) P : Poor(형편없음)
E : Exceeds Expectations(기대 이상) D : Dreadful(끔찍함)
A : Acceptable(보통) T : Troll(트롤 수준)
해리 포터의 성적표
천문학 A
신비한 동물 돌보기 E
마법 E
어둠의 마법 방어술 O
점술 P
약초학 E
마법의 역사 D
마법약 E
변신술 E
해리는 몇 번이나 양피지를 다시 읽었다. 한 번 읽을 때마다 그의 숨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이 정도면 괜찮았다. 점술 시험에서 떨어지리라는 것은 줄곧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마법의 역사 시험은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시험을 보던 도중에 쓰러져 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과목은 모두 다 통과 한 것이다! 해리는 손가락으로 성적을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 변신술과 약초학을 멋지게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마법약에서도 심지어 ‘기대 이상’ 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서 ‘특출함’을 받은 것이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헤르미온느는 고개를 떨군 채 등을 돌리고 있었고, 론은 흐믓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점술하고 마법의 역사 과목에서만 떨어졌어. 그런 과목이야 누가 신경이나 쓴데?”
론이 신이 나서 해리에게 말했다.
“여기…… 바꿔 보자…….”
해리는 재빨리 론의 성적표를 들여다보았다. ‘특출함’은 없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서 네가 최고 점수를 받을 줄 알았어.”
론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우리가 꽤 잘한 거야, 안 그래?”
“잘했구나!”
위즐리 부인이 몹시 자랑스런 듯이 론의 머리카락을 마구 흩어뜨렸다.
“O.W.L.에서 일곱 과목이나 합격을 하다니, 프레드와 조지의 성적을 합친 것보다 더 낫구나!”
“헤르미온느!”
지니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왜냐하면 헤르미온느는 아직까지도 돌아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나왔어?”
“나도…… 나쁘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이리 내놔 봐.”
론이 성큼성큼 헤르미온느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성적표를 손에서 홱 빼앗았다.
“으악! ‘특출함’이 아홉 개이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에서만 딱 하나 ‘기대 이상’을 받았네.”
론이 반은 즐겁고 반은 약이 오르는 듯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내려다보았다.
“너 실망했구나,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해리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
“자, 이제 우리는 N.E.W.T.(고난도 마법사 시험) 힉생들이다!”
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엄마, 소시지 더 있나요?”
해리는 자신의 성적표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괜찮은 결과였다. 하지만 딱 하나의 아쉬움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오러가 되겠다는 그의 희망은 끝장났다. 마법약 과목에서 받은 성적이 합격선 이하였던 것이다. 해리도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줄곧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 라고 새겨진 작고 검은 글씨를 다시 보자,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해리에게 훌륭한 오러가 될 거라고 제일 처음 말해 준 사람이 변신을 한 죽음을 먹는 자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여하튼 그 생각은 오랫동안 그를 사로잡아 왔다. 그리고 이제는 오러 이외에 다른 무엇이 되고 싶은지 정말 막막했다. 더구나 몇 주 전에 그 예언을 들은 이후부터는 그것이 그에게 정해진 운명인 것만 같았다. 다른 한쪽이 살아 있는 한은…… 어느 쪽도 살 수 없으리라……. 만약 그가 볼드모트를 찾아내 죽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 고도로 훈련된 마법사 집단에 낄 수 있다면, 예언에 따라 살면서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