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장 (129/194)

제 2장

스피너즈 엔드

수마일 떨어진 곳에서는, 수상의 유리창으로 밀려들었던 그 싸늘한 안개가 더러운 강물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그 강은 덤불이 무성하고 쓰레기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강둑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갔다. 저 멀리 버려진 공장의 잔재인 거대한 굴뚝 하나가 어둡고 음산하게 솟아 있었다. 시커먼 강물의 속삭임 외에는 다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둑 아래로 살금살금 기어 내려가는 말라깽이 여우 한 마리 외에는 그 어떤 생물체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여우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키 큰 수풀 사이에 있는 오래된 피시 앤 칩 봉지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바로 그때 희미하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강 가장자리 허공에서 망토와 모자를 눌러쓴 호리호리한 형체가 나타났다. 여우는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경계하는 눈으로 이 낯설고 새로운 현상에 집중했다. 그 형체는 잠깐 동안 방향을 가늠하는 듯하더니 가볍고 민첩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풀 위로 그의 긴 망토가 바스락거리며 스치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좀 더 크게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망토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쓴 또 다른 형체가 나타났다.

“기다려!”

그 사나운 외침에 덤불 밑에 납작 웅크리고 있던 여우는 깜짝 놀랐다. 여우는 숨어 있던 곳에서 펄쩍 뛰어나와 강둑 위로 달려갔다. 곧이어 초록색 불꽃이 번쩍하더니, 깨갱대는 소리와 함께 여우는 땅 위로 스러져 죽어 버렸다.

두 번째 사람이 발끝으로 여우를 뒤집어 보았다.

“그냥 여우 새끼였군,”

모자 밑에서 거만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또 오러인 줄 알았지. 씨시, 기다려!”

하지만 그녀가 붙잡으려는 사람은 번쩍하는 불빛에 잠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을 뿐, 방금 여우가 쓰러진 강둑 위로 벌써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씨시…… 나시사…… 내 말 좀 들어 봐…….”

두 번째 여자가 첫 번째 여자를 쫓아가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팔을 휙 비틀어 빼냈다.

“돌아가, 벨라!”

“내 말을 들어 봐!”

“난 들을 만큼 들었어.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고. 날 그만 내버려 둬!”

나시사라고 하는 여자는 강둑 위로 올라섰다. 그곳에는 오래된 난간이 좁은 자갈길과 강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뒤를 벨라라는 여자가 따라갔다. 그들은 나란히 서서 길 건너편에 줄지어 서 있는 황폐한 벽돌집들을 바라보았다. 그 집들의 창문은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그자가 여기 살고 있니?”

벨라가 경멸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말이야? 이 머글들의 추레한 집에 산다고? 아마 우리 종족들 중에서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우리가 제일 처음…….”

하지만 나시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녹슨 난간의 벌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벌써 길을 건너고 있는 중이었다.

“씨시, 기다려!”

벨라는 긴 망토를 질질 끌면서 뒤를 좇았다. 나시사가 곧장 집들 사이로 난 골목길로 뛰어들더니 거의 똑같이 생긴 두 번째 길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중 일부는 고장나 있었다. 두 여자는 손바닥만 한 불빛과 깉은 어둠 사이를 달려가고 있었다. 앞서 가는 여자가 도 다른 골목을 막 돌아섰을 때, 쫓아가던 여자가 그녀를 따라잡더니, 그녀의 팔을 붙잡아 뒤로 빙글 돌려세웠다. 두 여자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씨시, 이러면 안 돼. 그를 믿을 수가 없잖아…….”

“어둠의 마왕께서 그를 신뢰하셔, 안 그래?”

“어둠의 마왕께서는…… 내 생각에…… 실수하시는 거야.”

벨라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동시에 모자 아래에서 그녀의 두 눈이 번뜩이며, 정말로 그들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어쨌든 우리는 그 계획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어. 이건 어둠의 마왕을 배신하는 짓이야.”

“가 버려, 벨라!”

나시사가 호통을 쳤다. 그리고 망토 밑에서 지팡이를 꺼내더니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위협적으로 겨누었다. 벨라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씨시, 난 네 언니야. 넌 그럴 수 없을…….”

“더 이상 내가 못할 짓은 없어!”

나시사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리고 마치 칼처럼 지팡이를 밑으로 내려치자, 또다시 불꽃이 번쩍했다. 벨라는 불에 덴 듯이 화들짝 놀라 동생의 팔을 놓아 버렸다.

“나시사!”

하지만 나시사는 앞으로 휙 달려 나갔다. 그녀를 쫓아온 여자는 손을 문지르며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다시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들은 황량한 벽돌집들이 만들어 내는 미로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 마침내 나시사는 ‘스피너즈 엔드’ 라는 이름이 붙은 거리를 서둘러 걸어갔다. 그 거리 위로 공장 굴뚝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거대한 손가락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자갈길 위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녀는 부서지고 판자를 댄 창문들을 지나서 제일 마지막 집 앞에 당도 했다. 그 집에서는 아래층 방의 커튼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벨라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으며 도착하기 전에 나시사가 먼저 그 집의 문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함께 서서 기다렸다. 밤바람에 더러운 강물 냄새가 실려 왔다. 잠시 후, 문 뒤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삐걱하고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그들을 내다보는 한 남자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그남자의 혈색 나쁜 얼굴과 검은 눈동자 위로 길고 검은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나시사는 망토에 달린 모자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얼굴이 어찌나 창백한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등 뒤로 길게 흘러내린 금발 머리카락 때문에 마치 물에 빠져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시사!”

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며 문을 좀 더 열자 불빛이 그녀와 그녀의 언니에게로 쏟아졌다.

“이런 뜻밖의 반가운 손님이 오셨군요!”

“세베루스.”

그녀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아주 급한 일이에요.”

“물론이죠.”

그는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조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아직도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던 그녀의 언니가 초대도 받지 않고 냉큼 뒤따라 들어왔다.

“스네이프.”

그녀는 그의 앞을 지나면서 무뚝뚝하게 이름을 불렀다.

“벨라트릭스.”

그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문을 찰칵 닫을 때, 그의 얇은 입술은 약간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위로 말려 올라갔다.

그들은 조그만 응접실로 곧장 들어갔다. 그곳은 마치 을씨년스런 감옥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벽은 완전히 책들로 덮여 있었는데, 책들 대부분은 검은색이나 갈색의 오래된 가죽이 씌어져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양초 등잔의 희미한 불빛 아래 낡아 빠진 소파 하나와 오래된 안락의자, 그리고 곧 무너질 것 같은 탁자 하나가 몰려 있었다. 그곳은 평소에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집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스네이프는 나시사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녀는 망토를 벗어 한쪽 옆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무릎위에서 꼭 맞잡은 자신의 하얗고 떨리는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벨라트릭스는 좀 더 천천히 모자를 벗어 내렸다. 여동생의 흰 피부와 대조적으로 검은 피부에 눈꺼풀이 무겁게 드리워진 눈과 억센 턱을 가진 그녀는, 스네이프에게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으며 나시사의 등 뒤로 다가가 섰다.

“그래, 내가 뭘 도와줄까요?”

스네이프는 두 자매 맞은편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우리…… 우리뿐이겠죠, 그렇죠?”

나시사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요, 물론이죠. 아, 윔테일이 여기 있긴 하지만, 그런 쥐새끼 따위는 상관없죠, 안 그런가요?”

스네이프가 지팡이로 등 뒤에 있는 책장을 가리키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감추어진 문이 활짝 열리고, 좁은 계단 위에 왜소한 남자가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자네가 확실히 알아차린 것처럼, 웜테일, 손님이 오셨네.”

스네이프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 남자는 등을 잔뜩 웅크린 채 몇 계단을 기어 내려오더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눈은 작고 물에 젖은 듯 축축했으며, 코는 뾰족했고, 입가에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오른손을 연신 쓰다듬고 있었는데, 오른손은 마치 반짝아는 은색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시사!”

그가 쉰 목소리로 꽥꽥거렸다.

“그리고 벨라트릭스! 매력적이기도 하지…….”

“원한다면, 웜테일이 우리에게 마실 것을 가져다줄 거요. 그런 다음 자기 침실로 돌아가겠지요.”

웜테일은 마치 스네이프가 자신을 향해 뭔가를 던지기라도 한 듯이 움찔했다.

“난 당신의 하인이 아니야!”

그는 스네이프의 눈길을 슬슬 피하면서 찍찍거렸다.

“그래? 어둠의 마왕께서 나를 도와주라고 널 이곳에 두신 걸로 알고 있는데.”

“도와주라고 하신 건 맞지. 하지만 너에게 마실 것을 가져다주고…… 집을 청소하라고 하신 건 아니었어!”

“웜테일, 자네가 이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임무를 맡고 싶어 안달하는 줄 미처 몰랐군.”

스네이프가 비단결처럼 매끄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아주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 내가 어둠의 마왕께 말씀만 드리면…….”

“내가 원하면 나도 직접 말씀드릴 수 있어!”

“물론 그러시겠지.”

스네이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우리에게 마실것을 가져와. 요정이 만든 포도주가 좋을 것 같군.”

웜테일은 뭔가 더 따질 듯한 기세로 잠시 머뭇거리며 서 있더니, 결국 돌아서서 두 번째 감추어진 문으로 들어갔다. 유리잔이 탕 부딪히고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몇 초만에 그는 쟁반 위에 유리잔 세 개와 먼지 낀 술병 하나를 담아서 가져왔다. 그리고 쓰러질 듯한 탁자 위에 그것들을 탁 내려놓더니, 책으로 감춰진 문을 쾅 닫고 그들 눈앞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스네이프는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세 잔 따르더니 자매들에게 각각 한 잔씩 권했다. 나시사는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렸지만, 벨라트릭스틑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스네이프를 계속 노려보았다. 하지만 스네이프를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즐기는 표정이었다.

“어둠의 마왕을 위하여!”

스네이프는 이렇게 말하며 잔을 높이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자매들도 그를 따라 포도주를 마셨다. 스네이프는 그들의 잔을 다시 채웠다. 그리고 두 번째 잔을 받아 든 나시사가 서둘러 말했다.

“세베루스, 이렇게 찾아와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을 꼭 만나야만 했어요. 내 생각에는 당신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스네이프가 갑자기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감추어진 계단 문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나더니, 웜테일이 계단 위로 꽁무니를 빼며 달아나는 소리가 이어졌다.

“죄송합니다.”

스네이프가 말했다.

“요즘에 엿듣는 버릇이 좀 생겨서요.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건지 통 모르겠지만…….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다 말았죠, 나시사?”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세베루스, 내가 여기 와서는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죠. 하지만…….”

“그렇다면 입 다물어!”

벨라트릭스가 호통을 쳤다

“특히 여기 이 사람 앞에서는 말이야!”

“여기 이 사람이라니요?”

스네이프가 비아냥거리듯이 되풀이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죠, 벨라트릭스?”

“난 당신을 믿지 않는다는 뜻이지, 스네이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때 나시사가 흐느낌 같은 소리를 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스네이프는 탁자 위에 잔을 내려놓고 의자 팔걸이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다시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리고 분노로 빨갛게 물든 벨라트릭스의 얼굴을 향해 싱글싱글 미소를 던졌다.

“나시사, 내 생각에는 벨라트릭스가 쏟아 내려는 말을 먼저 들어야 할 것 같군요. 귀찮게 계속 끼어드는 일을 막으려면 말이지요. 자, 계속하시죠, 벨라트릭스. 당신이 나를 못 믿는 이유가 뭐죠?”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야 수백 가지도 넘지!”

벨라트릭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소파 뒤에서 성큼 걸어 나오더니 탁자 위에 자기 잔을 탕 내려놓았다.

“어디서부터 말해 볼까! 어둠의 마왕께서 쓰러지셨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지? 그분이 사라지셨을 때, 왜 그분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거야? 덤블도어의 품 안에서 지낸 그 몇 년 동안 당신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지? 어둠의 마왕께서 마법사의 돌을 손에 넣으려고 하실 때, 왜 당신은 그걸 막았던 거지? 어둠의 마왕께서 다시 부활하셨을 때에도 왜 당신은 즉시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게다가 불과 몇 주일 전 우리가 어둠의 마왕을 위해서 예언을 되찾으려고 싸움을 벌였을때, 당신은 어디 있었어? 게다가 스네이프, 해리 포터는 어째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거지? 5년 동안이나 당신 손아귀에 그 녀석을 쥐고 있었으면서 말이야!”

벨라트릭스가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가슴은 마구 들썩거렸고, 두 뺨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 뒤에는 나시사가 여전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스네이프가 싱끗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글쎄, 알았어요, 벨라트릭스, 곧 대답을 할 거라니까! 당신은 내 등 뒤에서 떠들고 다니는 다른 자들에게 내 말을 다시 퍼뜨릴 수도 있고, 어둠의 마왕께 내가 반역했다는 거짓된 이야기를 꾸며서 전달할 수도 있소! 그러니까 내가 당신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한 가지 물어보게 해주시오. 당신은 정말로 어둠의 마왕께서 이와 똑 같은 질문들을 나에게 하나하나 낱낱이 물어보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리고 만약 내가 어둠의 마왕께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면, 내가 과연 이 자리에 앉아서 당신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하시오?”

벨라트릭스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분이 당신을 믿는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만…….”

“당신은 그분이 실수하셨다고 생각하는 거요? 아니면 내가 그분을 속였다고 믿나? 어둠의 마왕이시며 가장 위대한 마법사, 세상이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가장 완벽한 레질리먼스를 하는 분을 말이오?”

벨라트릭스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다소 당황한 듯 쩔쩔매는 기색을 보였다. 스네이프는 더 이상 다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시 자기 잔을 들더니, 한 모금 홀짝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어둠의 마왕께서 쓰러지셨을 때 대체 어디 있었느냐고 나에게 물었소. 나는 그분께서 있으라고 명령하신 곳, 바로 호그와트에 있었소.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내가 알버스 덤블도어를 감시하길 원하셨기 때문이오. 내가 그곳에 일자리를 얻은 것도, 다름 아닌 어둠의 마왕의 명령에 땨른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벨라트릭스는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스네이프가 먼저 선수를 쳤다.

“당신은 또 그분께서 종적을 감추셨을 때, 왜 그분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소. 그건 애버리, 악슬리, 캐로우 부부, 크레이백, 루시우스-그는 나시사 쪽으로 살짝 머리를 기울였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자들이 그분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과 똑같은 이유 때문이었소. 나 역시 그분이 끝났다고 믿었던 거요. 물론 그 사실이 자랑스럽지는 않소. 분명히 내가 잘못한 것이오. 하지만…… 만약 그분이 그때에 믿을을 잃던 우리들을 용서해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추종자들은 거의 없었을 거요.”

“그분께는 내가 있었을 거요! 그분을 위해 아즈카반에서 수많은 세월을 보낸 내가!”

벨라트릭스가 격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렇소. 참으로 존경할 만한 일이지.”

스네이프가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뭐, 감옥 안에 있었으니 그분께는 별로 쓸모가 없었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자세만은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한…….”

“자세라고?”

벨라트릭스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약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디멘터들을 참고 견디는 동안, 호그와트에 남아서 편안하게 덤블도어의 애완견 노릇을 하고 있었던 주제에!”

“꼭 그랬던 것은 아니오.”

스네이프가 침착하게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덤블도어는 나에게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을 맡기려고 하지 않았소. 그것 때문에 타락할지도 모른다고…… 유혹에 빠져 다시 옛날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소.”

“고작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가르치지 못한 게, 어둠의 마왕을 위해 당신이 치른 뼈아픈 희생이었단 말인가?”

그녀가 빈정거렸다.

“그렇다면 왜 계속 그곳에 남아 있었던 거지, 스네이프? 죽었다고 믿었던 주인님을 위해서 계속 덤블도어를 염탐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건 아니오. 물론 어둠의 마왕께서는 내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몹시 기뻐하셨지만 말이오. 그분이 돌아오셨을 때, 나는 그분께 드릴, 16년 동안이나 모은 덤블도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즈카반이 얼마나 불쾌한 곳이었는지에 대해 끝없는 추억담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당연히 훨씬 더 쓸모 있는 환영 선물이었지.”

스네이프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그곳에 계속 남아 있었어…….”

“그렇소, 벨라트릭스, 난 계속 남아 있었소.”

스네이프가 처음으로 짜증스런 빛을 보이며 말했다.

“나에게는 편안한 직장이 있었고, 그게 아즈카반에서 지내는 것보다 더 좋았소. 당신도 알다시피, 그때 그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었소. 하지만 나는 덤블도어의 보호 덕분에 감옥에 가는 걸 면할 수 있었던 거요. 그게 가장 편리한 방법이었고, 난 그걸 이용했소. 다시 한 번 말하리다. 어둠의 마왕께서는 내가 호드와트에 남아 있었던 것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으셨소. 그런데 왜 당신이 불평을 하는 건지 난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소. 그 다음으로 당신이 알고 싶어 했던 것은…….”

스네이프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며 굳세게 말을 이어 갔다. 왜냐하면 벨라트릭스가 어떻게든 중간에 끼어들려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왜 내가 어둠의 마왕이 마법사의 돌을 얻는 것을 방해했느냐 하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 그 질문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 줄 수 있소. 그분께서는 나를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셨소. 당신과 마찬가지로, 그분께서도 내가 충직한 죽음을 먹는 자에서 변절하여 덤블도어의 꼭뚜각시가 되었다고 생각하셨소. 게다가 몸시 허약해진 상태로 한심한 마법사의 몸을 빌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셨소. 그러므로 예전의 동지에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으셨던 거요. 그러다가 내가 덤블도어나 마법부에 그분을 넘겨 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나는 그분께서 나를 믿지 못하셨던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오. 나를 믿으셨다면 3년은 더 빨리 힘을 되찾으셨을텐데 말이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그저 탐욕스럽고 비천한 퀴렐이 그 돌을 훔치려고 덤비는 것을 보고는 그자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던 거요.”

마치 쓰디쓴 물약이라도 먹은 것처럼 벨라트릭스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당신은 그분께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돌아오지 않았어. 어둠의 표식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을 때도 즉시 그분께 달려오지 않았단 말이야.”

“맞는 말이오. 나는 두 시간 후에 달려갔소. 덤블도어의 명령에 따라서 갔던 것이오.”

“덤블도어의 명령이라고?”

벨라트릭스가 언성을 높이며 한바탕 퍼부으려고 했다.

“생각해 보시오!”

스네이프가 또다시 짜증을 냈다.

“생각 좀 해 보란 말이오! 두 시간만 기다리면, 단 두시간이면, 나는 호그와트에 계속 남아서 염탐꾼 노릇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단 말이오! 덤블도어로 하여금, 내가 단지 그의 지시에 따라서 어둠의 마왕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그 이후에도 나는 계속 덤블도어와 불사조 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어둠의 마왕께 전해 드릴 수 있었던 거요! 벨라트릭스, 생각 좀 해 보시오. 몇 달 동안 어둠의 표식은 점점 더 강하게 달아올랐소. 모든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그분께서 조만간 돌아오실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하고 다음 행동에 대해 계획을 짤 만한 시간이 충분했단 말이오! 카르카로프처럼 도망칠 수도 있었소, 그렇지 않소?”

내가 늦은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불쾌해하시던 어둠의 마왕께서도, 비록 덤블도어는 내가 자기 사람인 줄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께 충실하다는 설명을 듣자, 완전히 마음을 푸셨소, 맞소. 어둠의 마왕께서도 내가 영워히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셨소. 하지만 그분이 틀렸던 거요.”

“하지만 당신이 한 일이 대체 뭐가 있지?”

벨라트릭스가 비아냥거렸다.

“우리한테 쓸모 있는 정보라도 갖다주었나?”

“내 정보는 어둠의 마왕께 곧장 전달되었소.”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분께서 그 정보를 당신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은 나에게 숨기는 게 전혀 없으셔!”

벨라트릭스가 발끈해서 말했다.

“그분은 나를 당신의 가장 충실하고 가장 믿을 만한…….”

“과연 그럴끼?”

스네이프가 말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꼬리를 묘하게 흐렸다.

“마법부에서의 대실패 후에도 그분께선 여전히 그러신가?”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

벨라트릭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예전에 어둠의 마왕께서는 나를 가장 소중한 부하로 믿고 신뢰하셨어. 만약 루시우스가 일을 그르치지만 않았더라면…….”

“감히…… 감히 내 남편을 비난하지 마!”

나시사가 증오에 가득 찬 낮은 목소리로 언니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가려 봤자 아무 소용 없소.”

스네이프가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이미 끝난 일은 끝난 일이니까.”

“하지만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벨라트릭스가 화를 냈다.

“없고말고. 다른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동안, 당신은 역시 그 자리에 없었어, 안 그래, 스네이프?”

“나는 뒤에 남아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소.”

스네이프가 말했다.

“어쩌면 당신은 어둠의 마왕과 생각이 다른 모양이군. 내가 죽음을 먹는 자들과 함께 불사조 기사단과 맞서 싸웠다면 그걸 덤블도어가 몰랐을까?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날 용서 하시오.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그 위험이라는 게 고작 여섯 명의 10대 꼬마들과 맞서는 걸 두고 하는 말이오? 그렇소?”

“당신도 잘 알고 있듯이, 진작부터 기사단의 절반이 그 녀석들과 합세하고 있었어!”

벨라트릭스가 이를 갈며 말했다.

“기사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여전히 그들의 본부가 어디에 있는지 밝힐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잖아. 안 그래?”

“나는 비밀 파수꾼 아니오. 그러니 그 장소의 이름을 발설하지 못하지. 당신도 그 마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는 알고 있을텐데, 안 그렇소? 어둠의 마왕께서는 내가 기사단에 대해서 그분께 넘겨준 정보만으로도 만족하셨소. 아마 당신도 짐작했겠지만, 최근에 에멀린 밴스를 붙잡아 죽인 것도 다 그 덕분이오. 그리고 시리우스 블랙을 해치우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되었소. 물론 그자를 죽인 건 모두 당신 공이라고 인정하겠지만 말이오.”

스네이프는 몸을 기울여 그녀를 향해 건배를 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스네이프, 당신은 내 마지막 질문을 피하고 있어. 해리 포터 말이야. 당신은 지난 3년 동안 언제든 그 녀석을 죽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 왜 그랬지?”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서 어둠의 마왕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소?”

스네이프가 물었다.

“그분은…… 최근에 우리는…… 내가 먼저 물었잖아, 스네이프!”

“만약 내가 해리 포터를 죽였다면, 어둠의 마왕께서는 그 녀석의 피를 사용해서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거요. 그리고 불사의 몸이 되실 수도 없었겠지…….”

“그분께서 그 녀석을 이용하시리라는 것을 미리 예견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벨라트릭스가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물론 그런 뜻은 아니오. 나는 그분의 계획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 이미 고백했듯이, 나는 어둠의 마왕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었소. 다만 어째서 어둠의 마왕께서 포터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뿐이오. 적어도 1년 전까지는…….”

“하지만 당신은 어째서 그 녀석을 살려 두었지?”

“날 좀 이해해 주면 안 되겠소? 나를 아즈카반에 가지 않도록 막아 준 것은 덤블도어의 보호뿐이었소! 그런데 그가 가장 총애하는 학생을 죽인다면 그자가 당연히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겠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오. 포터가 처음 호그와트에 들어왔을 때 그 녀석을 둘러싸고 수많은 소문들이 떠돌아 다녔다는 걸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구려. 그 녀석이 바로 위대한 어둠의 마법사이며, 그렇기 때문에 어둠의 마왕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소문 말이오. 사실 어둠의 마왕의 옛 추종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어쩌면 포터가 우리 모두를 다시 한 번 뭉치게 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햇었소.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 역시 궁긍했소. 그래서 그 녀석이 성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당장 죽여 버릴 마음을 갖지 않았던 거요.

물론 나는 그녀석에게 별다른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지. 그 녀석은 단순히 순전한 행운과 자기보다 더 재능 있는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여러 번의 어려운 고비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던 거요. 그 녀석은 멍청하기가 이를 데 없소. 예전에 그 녀석의 아버지가 자기만족에 가득 찬 밉살스런 인간이었던 것처럼 말이오. 나는 그 녀석을 호그와트에서 쫓아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소. 호그와트는 그 녀석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내가 그 녀석을 죽였거나, 아니면 내 눈 앞에서 죽도록 내버려 두었어야 했단 말을 하는 거요? 덤블도어가 바로 옆에 있는데 그런 위험한 짓을 감행했다면 난 천하의 바보 멍청이일 것이오.”

“그렇다면 이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덤블도어는 당신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벨라트릭스가 물었다.

“그자가 당신의 진짜 속마음을 전혀 모른단 말이야? 여전히 당신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나는 내 역할을 아주 잘 해내고 있소.”

스네이프가 말했다.

“게다가 당신은 덤블도어의 가장 큰 약점을 간과하고 있군요. 덤블도어는 사람들의 가장 좋은 면을 믿게 되어 있소. 나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세상이 끝나고 그의 교사들과 합세했을 때, 그에게 가슴 깊이 후외하고 있다는 말을 줄줄 늘어놓았소. 그랬더니 그자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를 껴안더군요. 물론 되도록 내가 어둠의 마법에 가까이 가는 것을 막기는 했지만 말이오. 덤블도어는 위대한 마법사요. 오, 그래요. 그건 사실이오(벨라트릭스가 비웃는 듯한 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그건 어둠의 마왕께서도 인정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덤블도어는 점점 늙어 가고 있지. 지난달, 어둠의 마왕과의 결투는 그에게 큰 타격을 입혔소. 그때 이후, 그는 심각한 부상에 시달리고 있지. 옛날보다 재생력이 현저하게 느려졌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덤블도어는 한순간도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대한 믿음을 버린 적이 없소. 내가 어둠의 마왕께 그토록 소중한 부하인 것은 바로 그 때문이오.”

벨라트릭스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스네이프를 가장 잘 공격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눈치였다. 그녀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스네이프는 그녀의 여동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셨다고요, 나시사?”

나시사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네, 세베루스. 저……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달리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요. 루시우스는 감옥에 있고…….”

그녀는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어둠의 마왕께서는 저에게 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명령 하셨죠.”

나시사는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 말을 이었다.

“그분은 이 계획에 대해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시죠……. 이건…… 아주 커다란 비밀이니까요. 하지만…….”

“그분께서 그렇게 명령하셨다면 말해서는 안 되죠.”

스네이프가 딱 잘라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는 하시는 말씀이 곧 법이니까요.”

나시사는 마치 스네이프가 그녀에게 찬물이라도 쫙 끼얹은 것처럼 멍하니 입만 딱 벌렸다. 벨라트릭스는 이 집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것 봐라!”

벨라트릭스가 의기양양하게 동생을 향해 소리쳤다.

“스네이프까지도 저렇게 말하잖니. 말하지 말라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스네이프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작은 창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커튼 사이로 인적이 끊긴 거리를 힐끗 한번 내다보고는 후다닥 다시 커튼을 닫았다. 그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나시사를 향해 돌아섰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그 계획을 알고 있소.”

스네이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 말씀을 들은 몇 사람 중 하나요. 그렇지만 나시사, 만약 내가 그 비밀을 몰랐다면, 당신은 어둠의 마왕께 크나큰 반역죄를 저지를 뻔했소.”

“당신도 알고 있을 줄 알았어요!”

나시사가 훨씬 홀가분해졌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그토록 믿으시는군요, 세베루스…….”

“당신이 그 계획에 대해 알고 있다고?”

벨라트릭스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잠깐 떠올랐던 만족스런 표정은 이제 분노의 표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당신이 안다고?”

“물론이오.”

스네이프가 말했다,

“하지만 나시사, 도대체 뭘 도와달라고 하는 거요? 만약 어둠의 마왕께서 마음을 바꾸시도록 내가 그분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전혀 가망이 없는 일이오. 절대 안 돼요.”

“세베루스…….”

나시사가 속삭였다. 그녀의 창백한 뺨 위로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 

“제 아들이…… 제 하나뿐인 아들이…….”

“드레이코는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벨라트릭스가 냉담하게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 그 애에게 크나큰 영광을 베푸시는 거라고. 드레이코를 위해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지. 그 아이는 자기가 맡은 임무에 대해 겁먹고 꽁무니를 빼지 않아. 오히려 자기를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무척 기뻐하는 기색이었다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잔뜩 흥분해서…….”

나시사는 진짜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간절히 애원하는 눈빛으로 줄곧 스네이프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 아이가 겨우 열 여섯 살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자기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몰라서 그래요! 왜죠, 세베루스? 왜 하필 제 아들이죠?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에요! 이건 분명히 루시우스의 실수에 대한 앙갚음이라고요. 전 알아요!”

스네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시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마치 역겨운 광경이라도 되는 듯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가 하는 말까지 못 들은 천할 수는 없었다.

“그분께서 드레이코를 선택하신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안 그런가요?”

나시사가 끈질기게 물었다.

“루시우스를 벌주기 위해서?”

“만약 드레이코가 성공을 한다면, 그 아이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큰 영광을 누리게 될 거요.”

스네이프는 여전히 그녀를 외면한 채 말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거야!”

나시사가 흐느꼈다.

“그 아이가 어떻게 해낼 수 있겠어요. 어둠의 마왕조차도…….”

벨라트릭스가 입을 딱 벌렸다. 나시사는 점점 이성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제 말은 단지……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세베루스…… 제발…… 당신은 드레이코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이에요. 지금까지 항상 그랬어요……. 당신은 루시우스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간청할게요……. 당신은 어둠의 마왕께서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고, 가장 신뢰하는 조언자이기도 하잖아요…… 당신이 그분께 말씀드려서 어떻게든 설득 좀 해주세요…….”

“어둠의 마왕께서는 절대 설득당할 분이 아니오. 나 또한 그런 짓을 할 만큼 어리석지 않고 말이오.”

스네이프가 딱 잘라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 루시우스에 대해 진노하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는 없소. 루시우스가 책임자였으니까. 그자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자기 자신도 붙잡혔을 뿐만 아니라, 예언을 다시 손에 넣는 일에도 실패하고 말았소. 그래요, 나시사. 어둠의 마왕께서는 화가 나셨소. 정말로 몹시 화가 나셨소.”

“그렇다면 제 말일 맞군요. 그 분은 앙갚음을 하기 위해 드레이코를 선택하신 거예요!”

나시사가 목에 메어 소리쳤다.

“그 분은 그 아이가 성공할 것을 의도하신 것이 아니라 도중에 죽게 되길 바라시는 거예요!”

스네이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시사는 그때까지 간신히 지켜 왔던 얼마 안 되는 자제심마저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스네이프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쥐소 그에게 매달렸다. 그리고는 스네이프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싹 갖다 댄 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녀의 눈물이 그의 가슴 위로 뚝뚝 떨어졌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세베루스,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요. 드레이코 대신 말이죠. 당신이 성공한다면, 물론 당신은 성공하겠지만, 그분은 우리 모두가 받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을 당신에게 내리실 거예요.”

스네이프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더니, 꽉 잡은 그녀의 손을 뿌려쳤다. 그리고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분께서는 결국 그 일을 나에게 맡기시겠지. 하지만 먼저 드레이코가 시도해 보도록 결정하셨소. 만에 하나라도 드레이코가 성공을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좀 더 오래 호그와트에 남아서 첩자로서 유용한 역활을 다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오.”

“달리 말해서, 드레이코가 죽든 말든 그분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 말이군요!”

“어둠의 마왕께서는 몹시 진노하셨소.”

스네이프가 조용히 되풀이하여 말했다.

“그분은 그 예언을 듣지 못하셨소. 나시사, 당신도 나만큼 잘 알고 있겠지만 그분은 쉽게 용서하시지 않소.”

나시사는 그의 발밑에 쓰러진 채, 마루 위에 웅크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넌 자랑스럽게 여겨야 해!”

벨라트릭스가 무자비하게 말했다.

“만약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어둠의 마왕을 섬기는 일에 아이들을 바쳤을 거야!”

나시사는 금빛 나는 긴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절망에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스네이프는 허리를 숙여서 그녀의 팔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고는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그는 포도주를 한 잔 더 따르더니, 그녀의 손에 강제로 잔을 쥐여 주었다.

“나시사, 그만 해요. 이걸 좀 마시도록 해요. 그리고 내 말을 들어 봐요.”

그녀는 다소 진정을 하고 포도주 잔을 자기 쪽으로 기울인 다음, 부들부들 떨며 한 모금 들이켰다.

“어쩌면 말이오…… 내가 드레이코를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나시사가 벌떡 일어났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고, 두 눈은 부릅뜬 채였다.

“세베루스…… 오, 세베루스……. 그 아이를 도와주실 건가요? 당신이 그 아이를 지켜보고 그 아이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돌봐 주실 건가요?”

“한번 노력해 보겠소.”

나시사는 얼른 자기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소파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내려와 스네이프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바람에 유리잔이 탁자 위로 쓰러졌다. 그녀는 스네이프이 손을 양손으로 꼭 쥐고 입을 맞추었다.

“당신이 그 아이를 지켜 주시기만 한다면……. 세베루스, 맹세하실 수 있겠어요? 깨뜨릴 수 없는 맹세를 하실 수 있나요?”

“깨뜨릴 수 없는 맹세?”

스네이프의 표정은 그 심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담담했다. 하지만 벨라트릭스는 의기양양하게 킬킬거리며 웃었다.

“나시사, 너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니? 노력해 볼 거라고 하잖아. 내 장담하지……. 그건 그냥 빈말일 뿐이야. 요리조리 빠져 나가려는 핑계란 말이지. 어둠의 마왕의 명령? 쳇!”

스네이프는 벨라트릭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오직 눈물로 가득 찬 나시사의 푸른 눈동자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스네이프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좋소, 나시사. 깨뜨릴 수 없는 맹세를 하도록 하겠소.”

스네이프가 조용히 말했다.

“아마 당신의 언니가 기꺼이 우리의 증인이 되어 줄 거요.”

벨라트릭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스네이프는 몸을 숙여서 나시사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벨라트릭스가 깜짝 놀란 눈으로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두 사람은 서로의 오른손을 꼭 붙잡았다.

“벨라트릭스, 당신의 지팡이가 필요할 거요.”

스네이프가 냉정하게 말했다.

벨라트릭스는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지팡이를 꺼냈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시오.”

스네이프가 말했다.

벨라트릭스는 앞으로 걸어 나와서 두 사람을 굽어보고 섰다. 그리고 지팡이 끝을 굳게 잡은 그들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나시사가 입을 열었다.

“세베루스, 당신은 나의 아들 드레이코가 어둠의 마왕의 소명을 달성하는 동안, 그 아이를 지켜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소.”

스네이프가 말했다.

지팡이 끝에서 환한 불길이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피어나더니, 빨갛게 달아오른 열선처럼 두 사람의 손 주위를 빙빙 감쌌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능력을 다해서 그를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소.”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지팡이 끝에서 두 번째 불길이 길게 뻗어 나오더니, 첫 번째 불길과 뒤엉켰다.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는 사슬을 만들었다.

“그리고 만약 필요할 경우에…… 그러니까 만약 드레이코가 실패할 것 같으면…….”

나시사가 속삭였다.

(스네이프의 손이 나시사의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하지만 빼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어둠의 마왕이 드레이코에게 시키신 바로 그 일을 대신 완수하겠습니까?”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다. 벨라트릭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맞잡은 두 사람의 손 위에 지팡이를 올려놓은 채, 가만히 지켜 보았다.

“그렇게 하겠소.”

스네이프가 말했다.

벨라트릭스의 놀란 얼굴이 세 번째로 피어난 불길의 환한 불빛 속에서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팡이 끝에서 솟아난 불길은 다른 두 개의 불길과 뒤엉켜서, 꼭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의 손을 칭칭 동여맸다. 마치 굵은 동아줄처럼, 사나운 한 마리의 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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