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또 다른 수상
자정이 가까운 시간, 수상은 집무실에 홀로 앉아서 긴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글자들이 그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 한 마디도 남질 않았다. 수상은 어느 먼 나라의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한심한 작자가 도대체 언제쯤 전화를
할까 궁금해하느라,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길고 피곤하고 힘들었던 한주일에 대한 불쾌한 기억을 떨쳐 버리려고 애쓰느라, 다른 생각은 미처 할 틈도 없었다. 앞에 놓인 서류의 내용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수상의 눈앞에는 신나서 히죽거리고 있는, 그의 정적들 중 한명의 얼굴이 더욱더 또렸하게 떠올랐다. 이 원수 놈이 바로 그날 뉴스에 나와서 지난주에 벌어졌던 그 끔찍한 사건들을 전부 일일이 열거하고(마치 누가 일깨워 달라고 하기라도 한것처럼), 그것도 모자라서 그게 왜 모두 정부의 잘못인지를 조목조목 짚어 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정부에 쏟아진 비난들을 생각하자, 수상의 맥박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건 정당한 비판도, 진실도 아니었다. 도대체 정부가 무너지는 다리를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는가? 다리를 세우는데 충분한 돈을 쓰지 않은게 아니냐는 주장도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 다리는 10년도 돼지 않은 것이었고, 내노라하는 전문가들도 왜 그 다리가 반으로 뚝 잘려 나가 열두대의 자동차가 깊은 강물 속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는지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 그 끔찍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경찰력의 부족에서 온 결과라느니,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온 서부 지역의 갑작스런 태풍을 정부가 미리 예측했어야만 했다느니 하고 떠든단 말인가? 또 그의 부관들 중 하나인 허버트 콜리가 하필이면 이번 주에 괴상한 행동을 해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내 잘못이란 말인가?
"온 나라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의 정적은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간신히 숨기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불행하게도 그자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수상 자신도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불행해 보였다. 심지어 날씨까지도 음울했다.
'7월 중순에 이토록 차가운 안개라니...... 뭔가 잘못됐어. 이건 정상이 아니야.......'
수상은 보고서의 두번째 장을 넘겼지만 여전히 계속해서 길게 이어지는 내용을 보고는 그만 보고서를 내던져 버렸다. 그는 머리 위로 기지개를 쫙 켜면서 우울한 시선으로 집무실안을 둘러보았다. 훌륭한 방이었다. 멋진 대리석으로 된 벽난로 맞은편에는 창틀이 달린 긴 창문들이 때 아닌 추위를 굳게 막아 주고 있었다. 수상은 부르르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유리창으로 밀려드는 옅은 안개를 내다보았다. 그렇게 방 안을 등지고 서 있을 때, 뒤에서 작은 헛기침 소리가 났다.
수상은 어두운 유리창에 비친, 겁에 질린 듯한 자신의 모습과 코를 마주 댄 채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침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전에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소리였다. 그는 텅 빈 방을 향해서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다.
"누구시오?"
수상은 자신의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 어쩌면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을거라는, 당치도 않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메마르고 단호한 목소리가 즉시 응답해 왔다. 마치 미리 준비된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수상은 첫 기침 소리만 듣고도 그것이 누구인지 당장 알아차렸다-방 저쪽 한구석에 걸린 지저분하고 작은 유화 속에 그려진, 치렁치렁한 은색 가발을 쓴 개구리처럼 생긴 작은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글들의 수상에게 알립니다. 긴급한 만남을 요청합니다. 즉시 회답 바랍니다. 친애하는 퍼지로부터."
그림 속의 그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듯 수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수상이 입을 열었다.
"흠...... 그러니까...... 지금은 곤란합니다......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서 말이오....... 그러니까...... 그 대통령이......."
"그것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가 대뜸 말했다.
수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가 줄곧 두려워하고 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꼭 통화를 하고 싶은데......."
"그 대통령이 전화하는 것을 잊어버리도록 우리가 조정하겠습니다. 그는 내일 밤에 전화를 하게 될 겁니다."
작은 남자가 말했다.
"퍼지씨에게 즉시 대답을 해 주십시오."
"난...... 오...... 좋아요."
수상이 힘없이 말했다.
"그럽시다. 퍼지를 만나겠소."
수상은 넥타이를 똑바로 고쳐 매면서 황급히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그가 자리에 앉아 최대한 태연하고 편안한 얼굴이 되도록 표정을 가다듬자마자, 텅 빈 대리석 벽난로 안에서 환한 초록색 불꽃이 확 피어났다. 그는 깜짝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불꽃 속에서 한 풍채 좋은 남자가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며 나타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 남자는 가는 세로줄 무뉘가 있는 긴 망토 소매에 묻은 재를 탁탁 털면서 값비싼 골동품 깔개 위로 기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옅은 중산모자가 들려 있었다.
"아...... 수상."
코넬리우스 퍼지가 손을 쭉 내밀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 말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소."
수상은 이런 인사말에 솔직히 대답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퍼지를 보는 것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퍼지의 출현은 그 자체로도 심장이 떨릴만큼 깜짝 놀랄 만한 일인 데다가, 대두분의 경우 아주 나쁜 소식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번에 퍼지는 걱정거리에 시달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전보다 살도 빠지고 머리도 더 벗겨지고 흰머리도 늘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굴 표정이 완전 우거지상이었다. 수상은 전에도 몇몇 정치인들에게서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수상은 퍼지와 악수를 한 후, 책상 앞에 놓은 의자들 중에서 가장 딱딱한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군."
퍼지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무릎 위에 초록색 중산모자를 내려 놓았다.
"지난 한 주일은 정말, 정말......."
"당신도 무척이나 힘든 일주일을 보냔 모양이군요. 그렇지요?"
수상이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면서 굳이 퍼지까지 보태 주지 않아도 이미 그에게는 걱정거리가 차고 넘친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랐다.
"그렇소. 물론이오."
퍼지는 피곤한 듯이 두 눈을 비비며 침울하게 수상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수상, 나도 당신과 똑같은 한 주일을 보냈소. 브룩데일 다리...... 본즈와 밴스 살인 사건들...... 서부 지역에서의 소동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 음...... 당신네들...... 내 말은 그러니까, 당신네 사람들 중 일부...... 일부가 이...... 이 일에 관련이 있단 알이오?"
퍼지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수상을 빤히 쳐다보았다.
"당연하잖소.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나 있는 거요?"
"나는......."
수상이 머뭇거렸다. 그가 퍼지의 방문을 그토록 싫어하게 된것은 이런 식의 태도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는 한 나라의 수상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유쾌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가 수상이 된 첫날 저녁에 퍼지를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황은 늘 이런식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날 일을 바로 어제인 양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죽는 날까지 따라다니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날 그는 수년 동안 꿈꾸고 계획한 끝에 성취한 승리감을 만끽하며 바로 이 집무실에 혼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오늘 밤과 똑같이 등 뒤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고, 뒤를 돌아보자 못생긴 작은 초상화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그 초상화는 마법부 장관이 곧 도착해서 자기소개를 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처음에 수상은 오랜 유세 활동과 선거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자신이 돌아 버린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초상화가 그에게 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너무 겁이 나서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물론, 스스로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작자가 벽난로에서 튀어나와 그와 악수를 했을 때의 기분에 비하면,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수상은 퍼지가 전 세계에 아직도 남몰래 살아가는 마법사들과 마녀들이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 동안,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한채 입만 딱 벌리고 있었다. 퍼지는 수상이 마법사들과 마녀들에 대해서까지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계속해서 안심을 시켰다. 왜냐하면 마법부가 전체 마법사 사회를 책임지고 있으며, 비(非)-마법 집단이 그들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퍼지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빗자루의 사용에 대한 규제에서부터 용의 수를 제한하는 문제(수상은 이 대목에서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책상을 꽉 움켜쥐어야 했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관장해야 하는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퍼지는 아직도 할 말을 잃고 넋이 빠져 있는 수상의 어깨를 마치 아버지처럼 토닥거리며 이렇게 말했었다.
“걱정할 것 없소. 아마 나를 다시 보게 될 일은 거의 없을 거요. 우리 쪽에서 뭔가 정말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때에만 당신을 번거롭게 할 테니까. 머글들, 에, 그러니까 비-마법 집단이라고 해야겠지. 당신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 있을때에만 말이오. 그런 경우가 아니면 우린 당신들을 상관하지 않겠소. 그리고 이 말은 꼭 해야겠군. 당신은 그래도 전임자보다는 이 일을 훨씬 더 잘 받아들이고 있는 거요. 전임 수상은 반대파가 꾸민 무슨 속셈이라고 생각하고, 날 창밖으로 던져 버리려고 했소.”
여기서 수상은 마침내 할 말을 찾았다.
“그럼 다…… 당신이 가짜가 아니란 말이오?”
그의 필사적인 마지막 희망이 날아간 듯했다.
“아니오.”
퍼지가 점잖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난 가짜가 아니오. 보시오.”
퍼지는 수상의 찻잔을 게르빌루스 쥐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수상은 숨을 헐떡이며 그의 찻잔이 다음번에 할 그의 연설 한 귀퉁이를 갉아먹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았던거요?”
“마법부의 장관은 오직 현직 머글 수상에게만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오.”
퍼지가 웃옷 안으로 지팡이를 다시 집어넣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것이 비밀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오.”
“그렇다면 어째서 전임 수상은 나에게 한 마디 경고도 해주지 않은 거죠?”
수상은 푸념하듯이 말했다.
이 말을 듣자, 퍼지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친애하는 수상 각하, 설마 누군가에게 이 일을 말할 작정이시오?”
퍼지는 여전히 큰 소리로 웃으면서 벽난로 안으로 무슨 가루 같은 것을 던졌다. 그리고 에메랄드빛 불꽃 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수상은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문득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일에 대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그를 믿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충격이 사라지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수상은 지금 보았던 퍼지의 모습이 치열한 선거 유세 기간 동안 잠을 너무 못 자서 생긴 환상이라고 애써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이 불쾌한 만남을 떠올리게 하는 모든 물건들을 없애 버리겠다는 헛된 시도로, 게르빌루스 쥐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조카에게 주었고, 퍼지의 도착을 알렸던 못생긴 작은 남자의 초상화는 개인 비서를 시켜 떼어 버리도록 했다. 하지만 그 초상화를 떼어 내는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수장은 낙심하고 말았다. 목수 예닐곱 명, 건축업자 한두명, 미술사학자 한 명, 그리고 재무장관까지 총동원하여 그 그림을 벽에서 떼어 내려고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자, 수상은 더 이상 초상화를 떼어 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 물건이 남은 그의 임기 동안 집무실에서 꼼짝하지 않고 입 다물고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그림의 주인공이 하품을 하거나 코를 긁적이는 것을 곁눈질로 본 적이 있다는 걸 하늘에 두고 맹세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한두 번은 진흙 색깔의 캔버스만 남겨 둔 채, 액자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상은 되도록이면 그 그림을 쳐다보지 않도록 습관을 들였고,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자기 눈이 헛것을 본 거라고 단호라게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러고 나서 3년 전, 오늘 밤과 아주 비슷했던 어느 날 밤, 수상이 집무실에 혼자 있는데 초상화가 또다시 퍼지의 도착을 예고했고, 곧 온몸이 홀딱 젖은 채, 거의 공포로 정신을 잃은 듯한 퍼지가 벽난로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수상이 왜 값비싼 엑스민스터 양탄자 웨이 물을 뚝뚝 흘리느냐고 미쳐 따지기도 전에, 퍼지는 그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감옥과 ‘실이 없어’ 블랙이라고 하는 남자와, ‘혹의 아트’라나 뭐 그런 어떤 것과 해리 포터라고 하는 사내아이에 대해서 마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상은 그 모든 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난 지금 막 아즈카반에서 오는 길이오.”
퍼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의 중산모자 테두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북쪽 바다 한가운데에서 끔찍한 탈출 사건이……. 디멘터들이 난리가 났소.”
퍼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전에는 한 번도 죄수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어쨌든 수상, 나는 당신을 찾아와야만 했소. 블랙은 유명한 머글 살인자로 ‘그 사람’과 손을 잡을 계획이라고 하오. 물론 당신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를 테지만!”
퍼지는 한동안 수상을 절망스런 눈길로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좋아요. 일단 앉읍시다. 않아요. 당신에게 다 설명을 해 주는 게 낫겠소. 위스키나 한 잔 하면서.......”
수상은 퍼지가 자기 위스키를 선심 쓰듯 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집무실에서 먼저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말까지 듣자 부아가 치밀었지만 일단 앉았다. 퍼지는 지팡이를 꺼내더니 허공에서 호박색 액체가 담긴 커다란 유리잔 두 개를 불러냈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수상의 손에 쥐여 주고는 의자 하나를 끌어당겼다.
퍼지는 한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떠들었다. 한번은 어떤 이름을 소리 내어 말하기를 꺼려 하더니 대신 양피지 위에 글로 써서, 위스키 잔을 들지 않은 수상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마침내 퍼지가 떠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수상도 따라 일어났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
수상은 왼손에 쥐어진 이름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볼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 이라니까!”
퍼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미안하오……. 그러니까 당신은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요?”
“덤블도어는 그렇게 말했소.”
퍼지는 가는 세로줄 무늬 망토를 턱까지 바싹 당겨 여미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자를 발견하지 못했소. 굳이 대답하자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그자는 전혀 위험하지 않소. 그러나 정작 우리가 걱정할 건 바로 그 블랙이란 자요. 자, 그럼 이제 경계령을 내리시겠소? 아주 훌륭하오. 우리 다시는 서로 보지 않게 되기를 바라오, 수상! 안녕히 주무시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만났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몹시 초조한 표정을 한 퍼지가 회의실 허공에서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크위(라나 뭐라나 그런 비슷한 발음이었다) 월드컵에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는데, 대여섯 명의 머글들이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상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그 사람’의 표식이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했다. 퍼지는 그것이 전혀 별개의 사건이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머글 연락 사무소에서는 그들이 말한대로 모든 기억을 바꾸고 있는 중이었다.
“오, 한 가지를 깜빡할 뻔했군.”
퍼지가 덧붙였다
‘우리는 트리위저드 시합을 위해서 스핑크스 한 마리와 외국산 용 세 마리를 수입했소. 아주 일상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대단히 위험한 생물을 이 나라로 데려왔을 때에는 당신에게 알려야 한다는 법률 조항이 있다고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에서 말하더군.”
“뭐…… 뭐라고요? 용이라고요?”
수상이 게거품을 물며 소리쳤다.
“그렇소. 세 마리요. 그리고 스핑크스 한 마리. 그럼, 좋은 하루 되시오.”
퍼지가 말했다
수상은 이제 용과 스핑크스보다 더 나쁜 소식은 없겠지 하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2년도 안 되어, 퍼지는 또다시 벽난로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아즈카반에서 집단 탈출 사건이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집단’ 탈출이라고요?”
수상은 쉰 목소리로 따라 말했다.
“걱정할 거 없소 걱정할 거 없다니까!”
퍼지는 이미 불꽃 속에 한 발을 집어넣은 채 소리쳤다.
“우리는 금방 그자들을 잡아넣을 거요. 그저 당신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러고는 수상이 “저, 잠깐만 기다리시오!”라고 소리치기도 전에, 퍼지는 초록색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언론이나 반대파들이 뭐라고 떠들든 간에, 수상은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첫 번째 만남에서 퍼지가 호언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그들이 점점 더 자주 만난다는 사실이나, 퍼지가 매번 나타날 때마다 더욱 당황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수상은 마법부 장관(그는 속으로 항상 퍼지를 ‘또 다른 수상’이라고 불렀다)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음번에 퍼지가 나타날 때는 훨씬 더 심각한 소식을 가져오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구 산발을 한 채 초조하고 놀란 표정으로 퍼지가 또다시 불 속을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자, 비록 왜 여기 왔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독하게 불운했던 한 주일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악의 사건이 될 것임을 예감 할 수 있었다.
“뭐냐, 거…… 마법사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이번에는 수상이 쏘아붙였다.
“나도 다스려야 할 나라가 있단 말이오. 게다가 그것 말고도 지금 고민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우리도 똑 같은 고민거리를 갖고 있소.”
퍼지가 말을 끊었다
“브룩데일 다리는 낡아서 무너진 것이 아니오. 태풍도 진짜가 아니고, 살인 사건들도 머글들의 소행이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허버트 콜리의 가족들은 차라리 그자가 없는 편이 더 안전할 거요. 우리는 지금 그자가 마법 질병과 상해를 위한 성 뭉고 병원으로 이송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중이오. 이송은 오늘 밤에 끝날 거요.”
“당신은 무슨 짓을……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소리요?”
수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퍼지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수상, 이런 말을 하게 되서 유감이오만, 그자가 돌아왔소.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돌아왔단 말이오.”
“돌아왔다고? ‘돌아왔다’니…… 그자가 살아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내 말은…….”
수상은 3년전에 나누었던 그 끔찍한 대화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퍼지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한 마법사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마법사는 수천 가지 무시무시한 범죄들을 저지르다가 15년 전에 홀연히 사라졌다고 했다.
“그렇소, 살아있소.”
퍼지가 말했다.
“아니, 난 잘 모르겠소. 죽일 수도 없는 사람을 죽었느니 살았느니 할 수 있는 거요? 난 도통 이해가 안 가오. 게다가 덤블도어는 제대로 설명도 안 해 주고, 어쨌든 그자는 분명 몸을 얻어서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소. 그러니 우리가 의논을 하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그자가 살아 있다고 해야겠지. 그렇소.”
수상은 이 일에 대해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습관이 평생 몸에 밴 까닭에 그들이 예전에 나누었던 대화 중 기억나는 내용을 무엇이든 한마디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실이 없어 블랙은…… 그러니까…… 뭐라더라……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과 함께 있소?”
“블랙? 블랙?”
퍼지는 중산모자를 손가락으로 빠르게 돌리며 넋 나간 듯이 말했다.
“아, 시리우스 블랙 말이오? 멀린의 수염에 맹세코 아니오. 블랙은 죽었소. 우리가…… 그게…… 블랙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소. 그자는 죄가 없었던 거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과 동맹을 맺은 것도 아니었소.”
퍼지는 중산모자를 더 빨리 돌리면서 변명하듯이 말했다.
“모든 증거가 분명했는데……. 그러니까 50명도 넘는 증인들이 있었단 말이오. 하지만 어쨌든, 방금 말한대로 그자는 죽었소. 사실은 살해를 당한 거요. 마법부는 그런 전제하에 조사를 시작할 것이오…….”
놀랍게도 수상은 이 말을 듣자, 퍼지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하게 아파 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자기가 비록 벽난로를 통해 모습을 나타내는 그런 방면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일지 모르지만,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정부 부서에서는 단 한건의 살인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으쓱해지면서 퍼지에 대한 연민 따위는 거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그러니까…….
수상이 액막이(가정이나 개인에게 닥칠 액을 미리 막는 일 : 역주)로 나무 책상을 톡톡 치며 마음속으로 앞으로도 무사하길 기원하는 동안, 퍼지는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지금은 블랙이 중요한 게 아니오. 중요한 건 우리가 전쟁 중이라는 거요, 수상. 그리고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는 거요”
“전쟁중이라고?”
수상이 신경질적으로 따라 말했다.”
“설마, 과장이겠죠?”
“1월에 아즈카반을 도망쳐 나온 추종자들이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의 진영에 합세하고 있소.”
퍼지의 말이 점점 더 빨라지면서 그의 중산모자도 어찌나 빠르게 빙빙 돌았던지, 나중에는 거의 초록 빛깔을 띤 희미한 점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자들은 공공연히 정체를 드러낸 이후, 대대적인 파괴 행위를 벌여 왔소. 브룩데일 다리도 그가 한 짓이오. 그자는 만약 내가 그의 앞길을 방해한다면, 머글들을 대량 학살하겠다고 협박했소.”
“그러니까 유감스럽게도 그 사람들이 죽은 것은 모두 당신 잘못이군요. 그 덕분에 나는 녹슨 장비며 낡은 이음새, 심지어 그 밖에 내가 모르는 것들에 관한 질문에 답변이나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고 말이오!”
수상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게 내 잘못이라니!”
퍼지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럼 내가 그자의 협박에 두 손을 들었어야 했단 말이오?”
“그건 아니오.”
수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방 안을 성큼성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라면 그자가 그토록 흉악한 짓을 저지르기 전에 협박범을 잡아들이려고 총력을 기울였을 거요.”
“나라고 뭐 별별 짓을 다 안 해 본 줄 아시오?”
퍼지가 잔뜩 열이 받아서 따져 물었다
“마법부의 모든 오러들이 그자를 찾아내고 그 추종자들을 붙잡으려고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소.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마법사 중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요. 그는 거의 30년 동안이나 추적을 따돌린 마법사란 말이오!”
“그럼 당신은 지금 서부 지역의 태풍도 그자가 일으킨 거라고 나에게 말할 셈이오?”
수상은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점점 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모든 끔찍한 재난들에 대한 이유를 알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말할 수 없다니 너무나 짜증스런 일이었다. 차라리 모든 잘못이 정부에게 돌아가는 편이 더 나았다.
“태풍 같은 건 없었소.”
퍼지가 풀이 죽어 말했다.
“이거 보시오!”
수상을 두 발을 마구 구르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무들이 뿌리채 뽑히고, 지붕이 날아가고, 가로등이 휘어지고, 사람들이 다쳤는데…….”
“그것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한 짓이오.”
퍼지가 말했다.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의 추종자들 말이오. 그리고…… 우리는 거인족들이 연루되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소.”
수상은 이 말을 듣자마자,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사람처럼 걸음을 딱 멈추고는 물었다.
“뭐가 연루되었다고 했소?”
퍼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자는 지난번에도 확실한 효과를 얻고자 거인들을 이용한적이 있었소. 정보 요용 관리과가 24시간 내내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오. 그리고 망각본부 팀에게 실제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목격한 모든 머글들의 기억을 바꿔 놓도록 지시했소.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의 직원 대부분을 동원해서 서머싯 주변을 순찰하도록 했지만, 거인을 발견하지 못했소. 그것은 참으로 엄청난 재난이었소.”
“두말하면 잔소리지!”
수상이 화가 나서 말했다.
“마법부의 사기가 아주 낮아졌다는 건 부인하지 않겠소.”
퍼지가 말했다.
“그런 일들을 겪은 데다가 아멜리아 본즈까지 잃었으니.”
“누굴 잃었다고요?”
“아멜리아 본즈요. 마법부 벌률 강제 집행부의 부장이었소. 우리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직접 그녀를 살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아멜리아는 대단히 능력이 뛰어난 마녀였고, 모든 증거들이 그녀가 아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는 걸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오.”
퍼지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신의 중산모자를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 살인 사건은 신문에도 났었소.”
“’우리’ 신문 말이오. 아멜리아 본즈는…… 그저 혼자 사는 중년 여성이라고만 기사에 실려 있던데……. 아주 처참하게 살해되었지. 안 그렇소? 상당히 유명한 사건이었소. 경찰들은 결국 헛물만 켜고 말았지만 말이오.”
퍼지가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그랬을 거요. 안으로 굳게 잠겨 있는 방 안에서 살해를 당했잖소? 반대로 우리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자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아니오. 그리고 나서 에멀린 밴스 사건이 벌어진 거요. 어쩌면 당신은 그 사건에 대해서 못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오, 아니오. 나도 들었소!”
수상이 말했다.
“사실 그 사건은 바로 여기서 한 모퉁이만 돌아서면 되는 곳에서 벌어졌소. 신문들이 그 사건을 대서특필했지. ‘수상의 뒷마당에서 법과 질서가 무너지다…….’”
하지만 퍼지는 수상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계속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디멘터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왼쪽, 오른쪽, 중앙에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고…….”
좀 더 행복했던 옛날 같았다면, 이 말은 수상의 구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도 훨씬 더 영리해졌다.
“디멘터들은 아즈카반에서 죄수들이나 지키고 있는 줄 알았소만.”
수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랬었지.”
퍼지가 맥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오. 그놈들은 감옥을 버리고 나와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과 손을 잡았소. 솔직히 그건 엄청난 타격이오.”
“그놈들은 사람들에게서 희망과 행복을 빨아먹는 괴물들이라고 당신이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가요?”
수상은 슬금슬금 공포가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렇소 게다가 그것들은 번식을 한다오. 이 안개들도 모두 그 때문에 생긴 거요.”
수상은 그만 무릎에 힘이 쭉 빠져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괴물들이 도시와 시골 곳곳을 덮쳐 그의 유권자들 사이에 절망과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퍼뜨리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쭉 빠졌다.
“퍼지, 이거 보시오. 당신이 뭔가 어떻게 손을 써야 할 거 아니오! 그게 마법부의 장관으로서 당신의 책임 아니오!”
“친애하는 수상, 당신은 설마 이 모든 사건들이 벌어지고 난후에도 내가 여전히 마법부의 장관 자리에 머물러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3일전에 해고당했소! 마법사들 전체가 들고일어나 무려 2주일 동안 나의 해고를 부르짖었단 말이오. 임긴 내내 그 자들이 그렇게 굳게 단결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퍼지는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수상은 한동안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에 대한 분노가 여전히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맞은편에 추레한 몰골로 앉아 있는 남자에 대해서 연민의 정을 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거 참 유감이오.”
마침내 수상이 입을 열었다.
“혹시 내가 뭐 도와줄 일이라도……?”
“고마운 말씀이오, 수상. 하지만 전혀 없소. 오늘 내가 여기로 파견된 것은,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을 당신에게 알려 주고 나의 후임자를 당신에게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였소. 사실 지금쯤은 그 사람이 여기에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요즘 아주 바쁘기는 하겠지.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오.”
퍼지는 길고 꼬불꼬불한 은빛 가발을 쓴 못생긴 작은 남자의 초상화를 돌아보았다. 그 남자는 깃펫 끝으로 열심히 귀를 후비고 있다가, 퍼지와 눈이 딱 마주치자 얼른 말했다.
“잠시 후에 여기 도착하실 겁니다. 덤블도어에게 보내는 편지를 방금 다 쓰셨거든요.”
“어디 잘해 보라지.”
퍼지가 처음으로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나는 지난 2주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덤블도어에게 편지를 썼지만, 그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어. 만약 그가 그 소년을 설득할 마음만 먹었다면, 난 어쩌면 아직도……. 글쎄, 스크림저는 좀 더 잘 해낼지도 모르지.”
퍼지는 기분이 상한 듯 입을 다물고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하지만 이 침묵은 갑작스레 울려 나온 초상화의 또렷하고 공식적인 목소리에 의해서 금방 깨져 버리고 말았다.
“머글들의 수상에게 알립니다. 긴급한 만남을 요청합니다. 즉시 회신 바랍니다. 마법부 장관, 스크림저로부터.”
“그래, 그래 좋아.”
수상은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벽난로 안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또다시 에메랄드빛으로 변하면서 확 솟아오르고 그 한가운데에서 두 번째 마법사가 빙빙 돌며 나타날 때에도 거의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잠시 후, 마법사는 불길속에서 오래된 양탄자 위로 튀어나왔다.
퍼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상도 잠시 머뭇거리더니 따라서 일어났다. 그리고 새로 도착한 마법사가 허리를 펴고 일어 서서 길고 검은 망토에 묻은 재를 털고 방 안을 둘러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수상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든 바보 같은 생각은 루퍼스 스크림저가 마치 늙은 사자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기다란 황갈색 머리칼과 덥수룩한 눈썹에는 회색 줄무뉘가 나 있었고, 철 테 안경 뒤로는 누런빛을 띤 날카로운 눈동자가 보였다. 게다가 약간 절뚝거리기는 했지만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에서 위엄이 느껴졌다. 언뜻 받은 인상은 전혀 빈틈이 없고 강인하다는 것이었다. 수상은 어째서 마법사들이 이 위험한 시기의 지도자로서 퍼지보다는 스크림저를 택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수상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청했다.
스크림저는 눈으로 방 안을 살피면서 가볍게 악수를 했다. 그런 다음 망토 아래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퍼지한테 이야기는 다 들으셨겠죠?”
그는 문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지팡이로 열쇠 구멍을 탁 치면서 말했다. 수상은 문이 찰칵하고 잠기는 소리를 들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수상이 말했다.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문은 그대로 열어 두셨으면 좋겠는데요.”
“저는 방해받고 싶지 않습니다.”
스크림저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감시당하기도 싫고요.”
그는 이렇게 한마디 더 덧붙이더니 지팡이로 창문을 가리켰다. 그러자 커튼이 휙 하고 창문을 가렸다
“이제 됐습니다. 저는 바쁜 사람입니다. 그러니 용건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당신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겠습니다.”
수상은 최대한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대답했다.
“고맙습니다만, 현재 저희 보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스크림저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수상이 임페리우스 저주에라도 걸린다면, 머글들의 장래는 아주 어두울 겁니다. 당신의 집무실 밖에 있는 새로운 비서로 말하자면…….”
“나는 킹슬리 샤클보트를 절대 내보내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원하는 게 그거라면 말입니다!”
수상이 격분하여 말했다.
“그 사람은 대단히 유능한 직원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나 더 많은 일을 합니다.”
“그건 그 사람이 마법사이기 때문입니다.”
스크림저가 정색을 하며 딱 잘라 말했다.
“그는 고도의 훈련을 받은 오러입니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파견된 사람이지요.”
“아니, 잠깐만!”
수상이 소리쳤다.
“당신네 사람을 내 집무실에 심어 놓을 수는 없소. 날 위해서 일할 사람은 내가 결정하오.”
“샤클볼트에 대해서 대단히 만족한다고 하지 않았소.”
스크림저가 차갑게 말했다.
“나는…… 그러니까…… 그랬었소.”
“그럼 아무 문제가 없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스크림저가 말했다.
“나는…… 뭐, 샤클볼트가 계속해서…… 그렇게 훌륭하게 일을 한다면야…….”
수상이 더듬더듬 말했다. 하지만 스크림저는 거의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이제 당신의 부관인 허버트 콜리에 대해 말해 봅시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오리 흉내를 내서 많은 대중들을 즐겁게 해 주었던 그 사람 말이오.”
“그 친구에 대해 무슨 말을 하자는 거요?”
수상이 말했다.
“그 사람은 미숙한 임페리우스 저주에 걸려서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스크림저가 말했다.
“그 저주가 그의 머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었고, 그자는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저 꽥꽥거릴 뿐이오!”
수상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히 조금만 휴식을 취하면…… 아니면 술 마시는 걸 좀 자제한다든가…….”
“마법 질병과 상해를 위한 성 뭉고 병원에서 나온 치료사들 한 팀이 우리가 말한 대로 그를 검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그자는 치료사들 중 세 명을 목 졸라 죽이려고 했죠.”
스크림저가 말했다.
“제 생각에는 한동안 그자를 머글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난…… 글쎄…… 그는 무사하겠죠, 그렇죠?”
수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스크림저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벽난로를 향해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 이걸로 내가 해야 할 말은 다 했습니다. 뭔가 진전이 있으면 계속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수상. 아니, 아마 너무 바빠서 직접 찾아오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그럴 경우에는 적어도 퍼지를 여기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퍼지가 고문 자격으로 계속 남아 있겠다고 동의했으니까 말이죠.”
퍼지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치통을 앓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스크림저는 벌써 불꽃을 초록색으로 바꾸는 신기한 가루를 찾으려고 호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 수상은 한동안 그 두사람을 멍하나 바라보다가, 마침내 저녁 내내 간신히 참아 왔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당신들은 마법사잖소! 마법을 부릴 수 있지 않소! 그러니까 틀림없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을 거요!”
스크림저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퍼지와 회의적인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소를 짓는 데 확실히 성공을 한 퍼지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문제는 바로 상대편 역시 마법을 부릴 수 잇다는 거요, 수상.”
그 말과 함께, 두 명의 마법사는 빛나는 초록색 불길 속으로 차례차례 걸어 들어가더니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