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되다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돌아오다
금요일 밤에 발표된 성명에서 마법부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돌아와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기 자신을 무슨 무슨 경이라고 떠드는 마법사가-여러분은 지금 제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잘 아시겠지만- 하여간에 그자가 아직 살아
있고,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알리게 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피곤에 지친 퍼지 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몹시 난감해하면서 말했다.
"또한 그동안 우리 마법부에 고용된 것에 대해서 반감을 보여 왔던
아즈카반의 디멘터들이 집단 봉기를 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된 점 역시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는 그자들이 필시 그 흉물스런 자의
사주를 받을 게 틀림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마법사들에게 잠시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현재 마법부는 각 가정을 위한 안내문을 제작 중이며, 마법 세계의 모든
가정에 무료로 보내 드릴 방어지침은 다음 달까지 도착할 것입니다."
마법부의 설명을 전해 들은 마법 세계는 실망과 경악에 빠졌다. 지난
수요일까지만 해도 마법부로부터 '그 사람이 또 다시 우리 사회를 휘젓고
다닌다고 하는 항간의 뜬소문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확증을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마법부의 태도를 이렇듯 돌변하게 만든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다만 그 '이름을 불러서는 안될 그 사람'과 (죽음을 먹는
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무리의 추종자들이 목요일 밤에 마법부에
난입했던 것은 확실한 사실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최근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교장직에 복직함과 동시에 국제 마법사
연맹의 위원직과 위즌가모트의 마법사장에 복직한 알버스 덤블도어
교수는, 지금까지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우리
모두가 바라고 믿었던 바와는달리, 그 사람이 죽지 않았으며, 다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꾸미기 위해 그의 추종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고 주장해 왔었다. 한편 '살아 돌아온 그 소년'은-
"해리 여기 네 이야기가 나왔어. 난 이 작자들이 어떻게든 네
이야기를 언급할 줄 알았어."
신문 너머로 그를 쳐다보면서 헤르미온느가 말햇다.
그들은 병실에 있었다. 해리는 론의 침대 발치에 걸터앉아 있었고,
헤르미온느가 친구들에게 일요판 <예언자 일보>의 1면을 읽어 주고
있었다. 삔 발목을 폼프리 부인이 한 번 세게 비틀어서 멀쩡하게 고쳐
놓은 지니는 헤르미온느의 침대 발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지니에게
한것과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깨진 코가 모양도 크기도 원래대로 되돌려진
네빌은 두 침대 사이의 의자에 앉아 있었고, 병문안하기 위해 잠깐 들른
루나는 헤르미온느가 읽어 주는 신문 기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이러쿵저러쿵>의 최신판을 거꾸로 들고 읽고 있었다.
"어쨌거나 해리는 다시 '살아 돌아온 그 소년'이 되었잖아?"
론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젠 무턱대고 잘난 척 떠벌리는 정신 나간 녀석은 아니야, 그지?"
그가 침대 곁의 캐비닛에 수북하게 쌓인 개구리 초콜릿을 한 움큼
집어서 해리와 지니, 네빌에게 몇 개씩 던져 주고, 자기 것도 포장지를
이로 물어뜯었다. 그의 두 팔에는 아직도 깊이 파인 상처들이 나 있었다.
뇌의 촉수들이 휘감았던 자국이었다. 폼프리 부인의 말에 따르면, 생각의
촉수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사람의 몸에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데, 어블리 박사가 개발한 무감각 연고를 듬뿍 바른 뒤부터는 눈에
띄게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온통 너를 칭찬하는 얘기야."
헤르미온느가 다른 기사들을 휙휙 읽어 내려갔다.
...진실의 고독한 목소리...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졌으나, 그
자신의 이야기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턱없는 조롱과 비방을
감당해 왔다....
헤르미온느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흥, 정작 자기들이 턱없이 조롱하고 비방했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군."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조금 찡그리면서 한 손을 옆구리에 갖다 대었다.
돌로호브가 헤르미온느한테 썼던 그 마법은, 다행히 그자가 입으로
주문까지 외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쉽게 아물지
않을 상처를 초래한 것만은 틀림없다."고 폼프리 부인이 설명했었다.
헤르미온느는 매일 열 가지나 되는 약을 써 왔기 때문에 상태가 크게
좋아지고는 있었지만, 벌써부터 병실에 누워 지내는 것을 몹시 지루하고
답답해했다.
"2페이지부터 4페이지까지, 다시 권력을 장악하려는 그 사람의
최휴의시도... 5페이지, 마법부가 숨기고 있는 것들... 6페이지에서
8페이지까지, 알버스 덤블도어의 주장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던 이유...
9페이지, 해리 포터와의 독점 인터뷰..."
헤르미온느가 신문을 접어서 옆에 던지며 말햇다.
"흥, 기삿거리가 많아서 좋겠군. 그렇지만 해리의 인터뷰 기사는 독점이
아니야. 몇 달 전에 <이러쿵 저러쿵>에 실렸던 걸 그대로 옮겨 놨어..."
"우리 아빠가 그 사람들한테 그 기사를 팔았어."
루나가 <이러쿵 저러쿵>의 책장을 넘기면서 흐리멍덩하게 말했다.
"돈을 아주 많이 받았나 보더라고. 그 돈으로 우리 식구는 이번 여름에
스웨덴에 갈 건데 그럼플 혼드 스놀캑스를 탈 수 있는지 알아볼 거야."
헤르미온느가 잠시 뭔가 하고 싶은 말을 간신히 참는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거 참 좋겠다."
지니가 해리와 눈길이 마주치자 빙긋 웃으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학교에서는 그새 별일 없었어?"
헤르미온느가 또 얼굴을 찡그리면서 윗몸을 조금 세우고 말했다.
"플리트윅 교수님이 프레드와 조지의 늪을 없애 줬어. 딱 삼초 만에
끝냈지. 하지만 창문 밑에 작은 웅덩이를 남기시고 밧줄을 둘러
놓으셨어..."
지니가 말했다.
"왜?" 헤르미온느가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아, 교수님은 그게 정말로 뛰어난 마법이라고 말했어."
지니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면서 말했다.
"프레디와 조지를 영원히 기념하려고 그랬을 거야."
론이 초콜릿을 한 입 가득 우적우적 씹으면서 말했다.
"저게 다 그들이 보내 준 거야."
론이 옆에 수북이 쌓인 초콜릿을 가리키면서 해리에게 말했다.
"장난감 가게가 진짜 잘되나 봐,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돌아왔으니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됐겠구나?"
"응, 모든 게 다 제대로 된 거 같아." 네빌이 대답했다.
"필치가 아주 신나 하겠다, 안 그래?"
론이 덤블도어 교수가 그의 물병에 기대 서 있는 모습이 찍힌 개구리
초콜릿 카드를 세워 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 마음이 몹시 착잡한 것 같았어. 실은...."
지니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그는 지금까지 호그와트에서 가르쳤던 교수님들 중에서 엄브릿지가
최고였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어...."
여섯 명 모두가 일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브릿지 교수가 그들의
맞은편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혼자
숲으로 들어가서 그 여자를 켄타우로스들로부터 구해 왔던 것이다. 그가
어떻게 그 여자를 구출했는지, 엄브릿지는 부축해서 나무들 사이를 걸어
나오면서도 어떻게 몸에 긁힌 자국이 몇 군데밖에 없었는지, 아무도 그
사연을 알 수 없었다. 물론 엄브릿지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성으로 돌아온 이후 그들이 아는 한은, 아직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브릿지는 평소에 단정했던 겉모습과는 달리 지금은 아주 형편없이
헝클어진 쥐색 머리에 나뭇가지와 나뭇잎 부스러기가 군데군데 붙어
있기는 하지만, 그 밖에 달리 몸이 상한 곳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폼프리 부인이 그러던데, 단지 충격을 받은 것뿐이래."
헤르미온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볼 땐 기분이 언짢은 것 같은데?"
지니가 말했다.
"맞아. 이렇게 하면 금방 기운을 차릴 거야."
론이 이렇게 말하고는 입 안에서 혀를 구부려 작게 말발굽 소리를
내었다. 엄브릿지 교수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몹시 허둥거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편찮으세요, 교수님?"
폼프리 부인이 병실 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엄브릿지가 다시 누우며 말했다.
"아니에요, 내가 잠깐 꿈을 꿨나 봐요."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이불을 당겨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지금 누가 점술을 가르치지? 피렌체가 아직 있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렇겠지. 다른 켄타우로스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해리가
말했다.
"피렌체하고 트릴로니 교수님 둘이서 그 과목을 담당할 건가 봐."
지니가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도 분명히 그 여자를 내보내고 싶을 거야."
열네 개째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론이 말했다.
"난 그 과목이 있으나 마나 하다고 생각해. 피렌체도 별 볼일 없는
선생-"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진짜 예언들이 있었다는 게 밝혀졌잖아?"
헤르미온느가 따지는 것처럼 말했다.
해리의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렸다. 그는 론에게도 헤르미온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그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 얘기하지 않았었다. 네빌이
그들에게 해리가 자기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갈 때 그것이 깨졌다는 얘기를
했을 때, 해리는 그저 아무 소리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는 자기가 끝내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죽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얘기를
친구들한테 할 때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바라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았다.
"그게 깨져 버린 건 유감이야."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살살 흔들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보통 유감이 아니지. 하지만 그 사람도 그 내용을 모른다는게
천만다행이라고 봐야겠지- 너 어디 가?"
해리가 벌떡 일어서자 론은 놀라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해그리드한테 갈 거야. 그가 돌아왔대. 내가 거기 가서 너희들
소식을 전해 주기로 약속했거든."
해리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론이 창밖의 파란 하늘을 내다보면서 심술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다 같이 못 가는 게...."
"안부나 전해 줘!"
문을 나서는 해리의 등에 대고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 친구.... 그 꼬마 친구는 어떻게 됐는지도 물어봐 주고..."
해리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듯이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일요일이라고는 해도 너무 조용한 것 같았다. 학생들은 모두
햇살이 화사한 운동장에 나가서 시험이 모두 끝난 뒤의 홀가분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이제 이 학기의 남은 며칠 동안은 수업도, 숙제도 없을
것이다. 해리는 쓸쓸한 복도를 홀로 걸어가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퀴디치
경기장 위에선 사람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호수에서는 두 학생이
대왕오징어와 수영을 하고 있었다.
해리는 자기도 그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은 건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있을 때는 언제나 어딘가 혼자가 버리고 싶고,
혼자 있을 때는 또 어김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게 그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해그리드한테는 꼭 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온
뒤로 한 번도 그와 제대로 얘기를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해리가 대리석 계단을 다 내려가서 현관 복도에 내려섰을때,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오른쪽의 어느 문에서 나타났다. 그 문은 슬리데린
휴게실과 통한다는 걸 해리는 알고 있었다. 해리가 우뚝 멈추어 섰고,
말포이와 그 일당도 우뚝 멈추어 섰다. 복도에는 현관문을 통해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고함과 웃음소리 그리고 물장구치는 소리만이 떠돌
뿐이었다.
말포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시나 근처에 교수들이 있지나 않은지
살핀다는 걸 해리는 얼른 알아차렸다. 말포이가 다시 해리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죽었어, 포터."
해리가 두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래? 난 이렇게 멀쩡하게 걷고 있는데...."
말포이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의 창백하고 날카로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 것을 보자
해리는 몹시 야릇한 만족감이 들었다.
"두고 보자고."
말포이가 들릴 듯 말 듯하게 말했다.
"네가 우리 아버지한테 한 짓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라고...."
"어이구, 무서워라."
해리가 빈정거리며 말했다.
"너희들 셋에 비하면 볼드모트는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나봐, 그지?- 응,
왜 그래?"
그 이름을 듣자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의 얼굴이 갑자기 흙빛으로
변하는 걸 보고 해리가 말했다.
"그자가 네 아버지의 친구지? 그런데 뭐가 무섭다고 그래, 응?"
"넌 네가 정말로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이구나, 포터."
말포이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크레이브와 고일이 그의 양 옆에
붙어섰다.
"기다려, 다 갚아 줄 테니까. 넌 절대로 우리 아버지를 감옥에 보낼 수
없어-."
"난 벌써 보냈는데?"
해리가 말했다.
"아즈카반의 디멘터들이 다 떠났어. 아버지하고 친구들도 곧...."
말포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자들이 얼마나 더러운 놈들인지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
말포이의 손이 지팡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해리가 훨씬 더
빨랐다. 말포이의 손가락이 그의 망토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해리가 먼저 지팡이를 꺼냈다.
"포터!"
저쪽에서 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스네이프가 그의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 서 있었다. 그를 보자 해리는 말포이한테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증오심이 왈칵 솟구치는 걸 느꼈다.... 덤블도어
교수가 뭐라고 말을 했건 간에 해리는 절대로 스네이프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너 지금 뭐하는 거냐, 포터?"
스네이프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면서 언제나처럼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포이한테 어떤 저주를 걸 것인지 궁리하고 있어요, 선생님."
해리가 사납게 대답했다.
스네이프가 해리를 노려보았다.
"그 지팡이 당장 집어넣어."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핀도르에 10점을 깎-"
스네이프가 고개를 돌려서 벽에 걸린 거대한 모래시계를 쳐다보면서
비웃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핀도르 시계에 점수가 남아 있지 않군. 그렇다면, 포터. 우린
단지-"
"더 넣어야겠죠?"
맥고나걸 교수가 성 입구의 돌계단 위에 올라서고 있었다. 한 손에는
격자무늬의 여행용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 쥔 지팡이에 몸을 비딱하게
의지하고 있었지만, 얼핏 봐서는 아주 멀쩡한 모습이었다.
"맥고나걸 교수님! 성 뭉고 병원에서 나오셨군요!"
스네이프가 다가가면서 말했다.
"그래요, 스네이프 교수님."
맥고나걸 교수가 대답했다. 그리고 여행용 외투를 훌렁 벗었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좋아졌어요. 너희 둘, 크레이브, 고일-"
맥고나걸 교수가 엄한 목소리로 부르자, 그들은 몹시 못마땅한 얼굴을
한 채 커다란 두 발을 질질 끌면서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이거 받아라."
맥고나걸 교수가 가방은 크레이브의 가슴에, 외투는 고일의 가슴에 안겨
주고는 말했다.
"내 방에 갖다 놔."
그들이 돌아서서 대리석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갔다.
맥고나걸 교수가 벽에 걸린 모래시계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음, 저는 포터 군과 그의 친구들은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으니까, 50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네이프 교수님?"
"뭐라고요?"
스네이프가 놀란 듯이 말했다. 그러나 해리가 보기에는 그가 방금
맥고나걸 교수가 한 말을 못 들은 척 능청을 떠는 게 분명했다.
'아, 예, 제 생각에는..."
"그럼, 포터, 위즐리 남매, 롱바텀. 그레인저 양한테 각각 50점씩..."
맥고나걸 교수가 말을 하는 동안에 모래시계의 아래쪽으로 루비가
와르르 쏟아졌다.
"아- 그리고 러브굿 양도 50점을 받아야지."
맥고나걸 교수가 또 말하지, 이번에는 래번클로 쪽의 시계에 사파이어가
와르르 쏟아졌다.
"자, 스네이프 교수님, 포터 군한테서 10점만 감점하면 되겠죠? 에,
그러면..."
루비 몇 개가 모래시계의 위칸으로 도로 올라갔다.
"음, 포터, 말포이,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에 밖에 나가지 않고 여기서들
뭐하는 거지?" 맥고나걸 교수가 힘차게 말을 이었다.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해리는 지팡이를 망토 호주머니에 얼른
집어넣고, 스네이프와 말포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집을 향해서 햇빛 속을 걸어갔다. 잔디밭에
눕거나 앉아서 햇볕을 쬐며 이야기를 하고, 일요판 <예언자 일보>를 읽고
사탕을 먹는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 해리를 쳐다보았다. 여기저기서 그를
부르거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요판 <예언자 일보>처럼 그들도 해리를
영웅 대접하는 분위기였다. 해리는 아무에게도 대꾸하지 않았다. 사흘 전에
있었던 일을 그들이 얼마만큼 자세히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여태껏
질문 받는 것을 피해 왔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문을 두드렸을 때, 처음에 그는 해그리드가 그새
또 어디 가고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곧 팽이 모퉁이를 돌아와서 해리를
거의 넘어드릴 것처럼 열렬히 환영했다. 해그리드가 집 뒤의 밭에서
완두콩을 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서 와, 해리!"
해리가 울타리로 다가가자 해그리드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가,
들어가자구, 민들레 주스나 한 잔씩 하면서... 그래 어때?"
얼음을 넣은 주스를 들고 나무 식탁에 앉으면서 해그리드가 물었다.
"넌... 어... 괜찮지?"
해그리드의 근심 어린 표정으로 보아 그는 지금 해리의 몸상태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요."
해리가 얼른 대답했다. 그는 지금 해그리드가 생각하고 있을게 뻔한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산 속에 숨어서 지냈지. 동굴 속에서, 전에 시리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해그리드가 말을 뚝 그치고 거칠게 헛기침을 하다가 해리를 빤히
바라보면서 주스 잔을 들고 길게 한 모금을 마셨다.
"어쨌거나 무사히 돌아왔으니까 다행이지 뭐."
해그리드가 힘없이 말했다.
"얼굴이... 좋아 보이네요."
해리는 시리우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말을 돌렸다.
"응?"
해그리드가 엄청나게 큰 손으로 자기의 얼굴을 더듬으며 말했다.
"아... 그래. 그로피가 이젠 아주 점잖아졌거든.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고
정말 기뻐했어. 알고 보면 정말 착한 녀석이야... 실은 말이야, 난 벌써
오래 전부터 그녀석한테 여자 친구라도 소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었어..."
해리는 여느 때 같았더라면 그런 생각은 당장 집어치우라고 해그리드를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숲 속에 도 하나의 거인이, 어쩌면 그롭보다 훨씬
더 사납고 난폭한 거인이 살게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웠다. 그러나
지금 해리는 그런 걸 가지고 해그리드와 입씨름을 벌일 기운이 없었다.
그는 벌써 또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해리는 서둘러 민들레 주스를 꿀꺽꿀꺽 들이켜서
잔의 반을 비웠다.
"그동안 네가 했던 얘기가 다 사실이었다는 걸 이젠 다들 알아."
해그리드가 문득 부드럽게 말했다.
"잘된 거지, 응?"
해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이봐..."
해그리드가 식탁 위로 몸을 기울였다.
"시리우스는 싸우다가 죽었어... 평소에 원했던 방식대로 죽-"
"그는 죽고 싶어서 죽은 게 아니에요!"
해리가 화를 내며 말했다.
해그리드가 그 크고 텁수룩한 머리를 푹 숙였다.
"그래. 그건 나도 알아."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해리... 그는 다른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 자기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사람이 아니었어. 달려가서 돕지 못한다면 그
다음엔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여길-"
순간 해리가 벌떡 일어섰다.
"빨리 돌아가 봐야 해요. 론하고 헤르미온느가 기다릴 거예요."
해리가 기계적으로 말했다.
"아... 그럼, 좋을 대로 해... 해리, 부디 몸조심하고, 시간 나거든 또 들러
줘..."
해그리드가 조금 심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그럴게요."
해리는 얼른 방을 가로질러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해그리드가
작별 인사를 채 끝내기도 전에 그는 잔디밭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곳곳에서 사람들이 그를 불렀다. 해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곳에 자기 혼자만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볼드모트가 마음속에 심어 놓은 그 꿈을 꾸었던, 그의 시험이 다 끝나기
전의 며칠 동안, 해리는 마법 세계 사람들이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만 준다면, 볼드모트가 되돌아왔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도 아니고
미친 소리도 아니란 것을 믿어만 준다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호숫가 주변을 잠시 거닐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을
작은 덤불 뒤의 둑에 앉아서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분명 덤블도어 교수와 그
얘기를 나눈 뒤부터였다. 자기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외톨이라는 심정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와 이 세상 사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낙인 찍힌
사람이었다. 다만 이제까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채로 지내 왔을
뿐이었다...
너무도 무거운 슬픔이 가슴을 죄어 오는 데다가 시리우스를 잃은 상처가
마음속에 아직도 처음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호숫가
가장자리에 앉아 있어도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햇살이 화사하고
주위에서는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그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에 속하는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쓸쓸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 의해서 죽도록
그의 인생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서 하염없이 호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대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언젠가 시리우스가 백 명이나 되는
디멘터들과 맞서 싸우다가 쓰러졌던 곳이 바로 건너편 둑이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느새 해가 졌는지 몹시 추웠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소매로 얼굴을
닦으면서 성으로 돌아갔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학기가 끝나기 사흘 전에 완전히 나아서 퇴원했다.
헤르미온느가 이따금 시리우스에 관한 얘기를 꺼내려는 기미를 보였으나,
그럴 때마다 론이 "쉿!"소리를 내며 얼른 가로막았다. 해리는 대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지 하기 싫은지를 아직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기분에
따라서 생각이 변하고 또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지금은 비록 마음이 몹시 우울하고 슬프지만, 앞으로 며칠 후에는
프리벳가 4번지로 돌아가게 되면 호그와트를 무척 그리워하게 되리란
것이었다. 그는 이제 여름마다 그곳에 돌아가야만 하는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는 않았다. 아니,
이제는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두려웠다.
엄브릿지 교수는 학기가 끝나기 바로 전날 호그와트를 떠났다. 그녀는
아마도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병동을 빠져나간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떠나고 싶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복도에서 피브스와 맞닥뜨렸다.
피브스는 프레드가 일러준 대로 시행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난데없이 복도에 나타난 피브스가 히죽히죽 웃으며 엄브릿지의 뒤를 졸졸
따라가면서 한 손에 쥔 지팡이와 다른 한 손에 쥔 분필가루를 가득 넣은
양말 한 짝으로 번갈아 가며 그녀의 엉덩이를 쿡쿡 찌르고 때렸다.
학생들이 허둥지둥 달아나는 엄브릿지의 뒷모습을 보려고 우르르 현관
복도에 몰려나왔고 반장들은 그저 건성으로 학생들을 제지하는 척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학생들이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밖으로 몰려나가자 벌떡
일어나 훈계조로 몇 마디 하고는 도로 자리에 엄브릿지의 모습을 보러
가지 못한 게 정말 유감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걸 분명히 들은 사람도
있었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저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이미
짐을 다 꾸려 놓고 종강 연회장으로 가고 있었지만, 해리는 아직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내일 해도 되잖아!"
문간에 서서 해리를 기다리던 론이 말했다.
"빨리 가자, 배고파 죽겠다..."
"곧 갈게..., 너 먼저 가..."
그러나 론이 문을 닫고 나간 뒤에는 해리는 서둘러 짐을 꾸리지 않았다.
그는 종강 연회에는 정말로 끼고 싶지 않았다. 덤블도어 교수가 연설을 할
때 기어이 그의 이름을 거론할 게 분명하고, 해리는 그게 싫었다. 그는
볼드모트의 귀환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학생들에게
이야기했었고 결국엔...
트렁크 바닥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던 옷들을 끄집어내다가 해리는
몹시 지저분하게 포장된 꾸러미를 꺼내서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그게 무었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현관문 발 안에서 시리우스가 그에게 쥐어 주었던
것이었다. 내가 필요할 때는 이걸 쓰도록 해라. 알았지?
해리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서 꾸러미를 풀었다. 작은 사각형
거울이었다. 잔뜩 때가 낀, 오래된 듯한 거울이었다. 해리는 거울을 들고
얼굴을 비춰 보았다. 해리 자신의 얼굴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거울을 뒤집어 보았다. 거기에 시리우스의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건 양면 거울의 반쪽이란다. 다른 반쪽은 내가 갖고 있어. 나하고
이야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이 거울에 대고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돼.
그러면 네가 내 거울 속에 나타날 것이고, 나는 네 거울 속에 나타나서
너하고 얘기를 할 수 있단다. 전에 제임스하고 내가 따로 감금되어 있었을
때도 이 거울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를 했었다.
해리의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소망의 거울을
통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보았던 게 얼른 떠올랐다. 이제 그는
시리우스하고 다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해리는 혹시라도 누가 근처에 있지나 않을까 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기숙사는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다시 거울을 얼굴 앞에 들고 분명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시리우스"
그의 입김이 거울에 서렸다. 해리는 거울을 더욱 바싹 당겼다.
가슴속에선 흥분이 흘러넘쳤지만, 허옇게 김이 서린 거울 속에서 두 눈을
깜박이며 그를 쳐다보는 얼굴은 여전히 그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는 거울을 말끔하게 닦아 가지고, 이번에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방
안을 울리도록 또렷하게 불렀다.
"시리우스 블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낙심에 찬 일그러진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는 거울 속의 얼굴은 아직도 자기의 얼굴일 뿐이었다.
그 아치문 안으로 들어갈 때 시리우스는 그 거울을 갖고 있지 않았어.
그래서 지금 네 거울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해리의 머릿속에서 어떤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해리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거울을 트렁크 속에 던졌다. 트렁크
바닥에 부딪힌 거울이 파삭 깨졌다. 비록 잠깐이나마 시리우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고 그와 다시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낙심으로 그는 목구멍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주위에 늘어놓은 것들을 그저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서 트렁크 속에 마구 쑤셔 넣었다.
바로 그때 머릿속에 한 가지 방법이 문득 떠올랐다.... 거울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 .... 그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방법이...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해리는 밖으로 뛰쳐나가서 나선형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모퉁이를
돌면서 벽에 부딪히는 줄도 모른 채 달렸다. 텅 빈 학생 휴게실을
가로질러서 초상화 구멍을 통과해 복도를 내달렸다. 뒤에서 뚱보 여인이
"연회가 곧 시작될거야. 그렇게 뛰어가면 딱 맞게 도착할 거야!" 하고
외치는 소리가 거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해리는 지금 연회장에 가려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늘 유령들이 우글거리던 곳이었는데, 정작 그가 만나고 싶어서
달려온 지금은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해리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복도를 내달렸지만,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종강 연회가 열리는 대연회장에
모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그의 마법 교실 앞에 멈춰 서서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며 생각했다. 좀더 기다려야겠어... 연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해...
막 희망을 포기하려는 순간에 해리는 보았다.- 희끄무레한 사람의
형상이 복도 끝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안녕-안녕하세요, 닉! 닉!"
벽 속으로 반쯤 들어갔던 유령의 머리가 다시 나왔다. 거대한 깃털
장식의 모자를 써서 머리가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니콜라스 드 밈시
포르핑턴 경이었다.
"안녕"
그가 단단한 돌벽 속으로 들어가 있던 몸을 뒤로 빼고는 해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나 혼자만 늦은 게 아니었구나, 응? 하긴 너하고 난 처지가 다르지만
말이야..."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닉,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어요?"
목덜미의 빳빳한 주름깃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목을 똑바로 세우려고
애를 쓰며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목이 달랑달랑한 닉'의 얼굴에 너무도
기이한 표정이 얼핏 스쳤다. 그는 반쯤 떨어진 목이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가 버리려는 순간에 손가락을 뺐다.
"어...지금, 해리?"
몹시 당황한 얼굴로 닉이 말했다.
"파티가 끝난 다음에 얘기하면 안 돼?"
"예, 닉, 부탁해요, 지금 당장 여쭤볼 게 있어요. 이 방으로 들어갈까요?'
해리가 바로 곁에 있는 교실의 문을 열자, 닉이 한숨을 푹내쉬었다.
"그럼 할 수 없지."
그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걸 숨기기도 힘들구나."
해리가 문을 열어 놓고 옆으로 비켜서 있었지만, 닉은 벽을 스윽 통과해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뭘 짐작하셨다고요?"
해리가 문을 닫으면서 말했다.
"네가 날 찾아올 거란 걸 짐작하고 있었어."
닉이 창문 위로 둥둥 떠가서 어둠이 짙어 가는 운동장을 내다보며
말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지... 어떤 사람이 친한 사람을 잃었을때..."
"그래요"
해리는 얘기가 다른 데로 새지 않게 하려고 얼른 말했다.
"전, 전 당신을 만나려고 일부러 여기 왔어요."
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어-"
해리는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저어, 당신은 죽은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지금 여기 있어요. 그렇죠?"
닉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전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죠?"
해리가 또 물었다.
"당신은 죽었어요. 그렇지만 전 지금 당신하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당신은 호그와트 주위를 걸어다닐 수도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렇죠?"
"그래"
닉이 나직하게 말했다.
"난 걸을 수 있고 얘기도 할 수 있어."
"그럼 당신은 다시 돌아오신 거죠, 그렇죠?"
해리가 다급하게 물었다.
"죽은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죠, 그렇죠? 유령이 되어서요. 완전히
가 버리는 게 아니죠? 그렇죠?"
닉이 한참 동안 말이 없자 해리는 애가 타서 다시 소리쳤다.
"그렇죠?"
닉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누구나 유령이 되어서 돌아오는 건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해리가 얼른 되물었다.
"단지... 단지 마법사들만..."
"아"
해리는 갑자기 마음이 턱 놓여서 거의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음, 그럼 됐어요. 제가 지금 궁금해하는 사람도 마법사거든요. 그럼 그
사람도 돌아올 수 있는 거죠?"
닉이 고개를 돌리고 슬픈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누가요?"
"시리우스 블랙." 닉이 말했다.
"당신은 돌아왔잖아요!"
해리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당신은 돌아왔어요- 죽었는데도 사라지지 않았-"
"마법사들은 이 지상의 어느 한 곳에 자기의 발자국을 남길 수 있어.
그래서 죽은 후에 다시 돌아와서 그 길을 다시 떠돌 수 있지."
닉이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 길을 택하는 마법사는 거의 드물어."
"왜 그렇죠?" 해리가 말했다. "어쨌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시리우스는 돌아올 거예요. 꼭 돌아올 거라고요."
그리고 그 믿음이 너무 강해서 해리는 자기도 모르게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장에라도 거기에 시리우스가 나타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창백하고 투명하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그가 문을 들어서고 자기를 향해서
다가올 것이라고...
"그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는 멀리 가 버릴 거야...."
닉이 나직하게 말했다.
"멀리 가 버리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해리가 얼른 물었다.
"어딜 간다는 거죠? 아니, 사람이 죽은 후엔 어떻게 되죠? 다들 어디로
가죠? 왜 누구나 다시 돌아오지 않죠? 왜 여기 유령들이 가득하지 않죠?
왜-"
"난 대답할 수 없어."
닉이 말했다.
"당신은 죽었어요, 그렇죠?"
해리가 턱없이 놀란 얼굴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누가 당신보다 더 자세히 알겠어요?"
"나도 죽음이 두렵단다." 닉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뒤에 남기로 했어. 때로는 그걸 후회하기도... 하긴, 거기도 아니고
여기도 아니야... 사실은 나는 거기에 있지도 않고 여기에 있지도 않아...."
그가 자조적으로 희미하게 킬킬 웃었다.
"난 죽음의 비밀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단다, 해리. 난 죽은
뒤에도 이렇게 살아 있는 흉내를 내는 길을 택했거든. 내가 알기로는
미스터리 부서의 박식한 마법사들이 죽음에 대해서 연구를-"
"거기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해리가 버럭 소리쳤다.
"너한테 아무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구나."
닉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음, 그럼 이만 실례하마... 연회에나 가 봐야겠어...."
그리고 닉은 나가 버렸다. 해리는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아서 방금 닉이
사라진 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부를 다시 만나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희망이
사라지자, 해리는 다시 한 번 완전히 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너무도 비참한 심정을 끌어안고 천천히 텅 빈 성을 걸어 들어갔다. 이젠
두 번 다시 기운 날 만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뚱보 여인이 있는 복도에 들어섰을 때, 해리는 저만치 앞에서 누군가가
게시판에 무엇을 붙이고 있는 걸 보았다. 그는 이내 그 사람이 루나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근처엔 몸을 숨길 곳이 없었고, 루나는 이미 그의
발소리를 들은 뒤였다. 무엇보다 해리는, 지금 누군가를 피하고 말고 할
기운조차도 없었다.
"안녕."
루나가 게시판에서 뒤로 물러서서 그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어정쩡하게
말을 걸었다.
"연회에 안 가고 거기서 뭐해?" 해리가 물었다.
"음, 소지품을 거의 다 잃어버렸어."
루나가 차분하게 말했다.
"어떤 애들이 장난으로 감췄을 거야. 오늘 밤이 마지막 밤이니까 더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돌려달라고 저걸 붙였어."
루나가 게시판을 가리켰다. 제발 돌려달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잃어버린
책과 옷가지의 목록을 적은 쪽지가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해리는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시리우스가 죽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가슴을 꽉 메우고 있었던 분노나 슬픔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는 자기가 지금 루나를 측은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문득 알아차렸다.
"애들이 왜 네 물건을 감추지?"
해리가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물었다.
"아... 그건..."
루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남들이 날 좀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나 봐. 나를 '루우니' 러브굿이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어."
해리는 루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루나에 대한 연민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애들이 네 물건을 가지고 간 건 별다른 이유가 없을 거야."
해리가 딱 잘라 말했다.
"내가 도와줄까?"
"아, 아니야."
루나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곧 되돌아올 거야. 마지막엔 꼭 돌아오게 돼 있어. 짐을 싸두고 싶어서
오늘 밤에 찾으려는 거야. 그건 그렇고... 넌 왜 연회에 안 갔니?"
"별로 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어."
해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겠지."
불룩 튀어나온 몽롱한 눈으로 루나가 해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가고 싶지 않을 거야. 죽음을 먹는 자들이 죽인 그 남자가 네 대부지,
그렇지? 지니한테 들었어."
해리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루나한테 시리우스의 얘기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루나의 눈에도 세스트랄이 보였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넌... 너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 봤니?"
해리가 말했다.
"응, 그래."
루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였어. 엄마는 정말 유별난 마법사였어. 뭐든지 실험해 보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어느 날 어떤 새로운 마법을 실험하다가 그만 뭐가
잘못되어 버렸어. 내가 아홉 살 때였어."
"안됐구나."
해리가 우물우물 말했다.
'응, 그땐 정말 끔찍했어."
루나가 여전히 스스럼없이 말했다.
"가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슬퍼져. 그렇지만 나한텐 아직
아빠가 계셔. 또... 앞으로 엄마를 영영 못 만나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니?"
"어- 무슨 말이지?"
해리가 어리벙벙하게 말했다.
루나는 잊을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래? 너도 들었잖아. 그 벨일 뒤에서 말이야, 응?"
"뭘..."
"아치문이 있는 그 방 말이야. 사람들이 그 뒤에 숨어 있었어. 그래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야. 너도 목소리를 들었잖아."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루나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해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루나는
정말로 이상하고 유별난 것들을 많이도 믿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 베일
뒤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해리도 들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정말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어? 잃어버린 걸 찾으려면..."
"괜찮아. 이젠 연회장에서 가서 먹고 놀면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돼...
마지막에는 꼭 돌아오게 되어... 휴가 잘 보내, 해리."
"응... 그래, 너도."
루나가 돌아섰다. 해리는 루나의 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서 있었다.
그는 뱃속의 그 견딜 수 없도록 무거운 것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집으로 돌아가는 호그와트 급행열차 안에서는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진 덕분에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첫째, 교수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해리를 공격하려고 일주일 내내 기회를 노려 왔던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해리가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매복하고 있었다. 매복
장소가 우연찮게도 D.A. 회원들이 가득 찬 객실 바깥만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작전은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때마침
발견한 그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나와서 해리를 도왔다. 어니 맥밀란, 한나
아보트, 수잔 본즈, 저스틴 핀치 플레츨리, 안토니 골드스틴, 테리 부트
들이 그동안 해리한테 배웠던 온갖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다 사용했을 때,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은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교복 속으로 잔뜩
움츠러운 세 마리의 거대한 민달팽이 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해리와
어니와 저스틴은 눈물, 콧물, 침 할 것 없이 질질 흘리는 그들을 하나씩
어깨에 들어 올려서 짐칸에 갖다 버렸다.
"흥, 이따 차에서 내렸을 때 마중 나온 말포이 어머니 얼굴이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걸."
꿈틀거리는 말포이를 바라보며 어니가 몹시 만족스러운 듯이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그는 잠깐 동안 말포이가 감사위원회의 위원이었을 적에
후플푸프 점수에서 10점을 빼앗겼던 치욕을 아직 완전히 씻어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일의 어머니는 오히려 아주 기뻐할 거야."
소동의 원인을 조사하러 온 론이 말했다.
"지금이 훨씬 잘생겨 보이거든... 그건 그렇고, 해리, 먹을거 파는 수레가
지금 와 있어. 빨리 가서..."
해리는 다른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해 주고 론의 뒤를 따라 그들의
객실로 갔다. 해리는 큰 냄비 모양의 케이크와 호박파이를 듬뿍 샀다.
헤르미온느는 또 <예언자 일보>를 읽고 있고, 지니는 <이러쿵 저러쿵>의
퀴즈를 풀고 있고, 네빌은 1년새에 부쩍 자라서 이제는 손을 대면 꼭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는 그의 밈뷸러스
밈블토니아를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해리와 론은 줄곧 마법사 체스 게임을 하고 있었고, 헤르미온느가
그들에게 <예언자 일보>의 기사들을 읽어 주었다. 신문에는 이제
디멘터들을 퇴치하기 위한 방법과 죽음을 먹는 자들을 추적하려는
마법부의 수고에 관한 기사들, 바로 그날 아침에 볼드모트가 집 앞을
지나가는 걸 보았다는 목격담들로 가득했다.
"아직 시작한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머지않아서..."
헤르미온느가 신문을 접으면서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해리. 저것 봐."
론이 복도 쪽의 유리창 밖을 턱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해리가 고개를 돌렸다. 어깨까지 덮는 두툼한 양모 털모자를 쓴
마리에타 에지콤의 뒤를 따라서 초가 열차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해리와 초의 눈길이 잠깐 마주쳤다. 초가 얼굴을 붉히고 얼른 지나가
버렸다. 해리가 다시 체스판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졸 하나가 론의
나이트한테 잡아 먹히고 있었다.
"쟤하고 잘돼 가는 거야?"
론이 나직하게 물었다.
"아무일도 없어."
해리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난... 어... 쟤가 요새 딴 애하고 만난다던데?"
헤르미온느가 쭈뼛거리면서 끼어들었다.
해리는 깜짝 놀랐다. 그 말을 듣고도 마음이 전혀 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초한테 잘 보이려고 애썼던 게 마치 자기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까마득한 옛날 일같이 여겨졌다. 시리우스가 죽기 전에 그가 원했던
모든 것들이 다 요새 와서는 그런 식이었다... 시리우스를 마지막으로 본
이후 한 주일이 기나긴 세월이었던 것만 같았다. 시간은 두 가지 세계로
나뉘어 있는 것 같았다. 시리우스와 함께였던 때와 없는 때로...
"잘됐어, 해리."
론이 힘차게 말했다.
"걔는 얼굴은 제법 예쁘지만, 봐줄 만한 건 그것 뿐이야. 너한텐 좀더
명랑한 여자 친구가 나을 거야."
"그 애도 다른 남자를 만나면 명랑해질 거야."
해리가 말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초가 요새 누굴 만나는데?"
론이 헤르미온느한테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지니가 했다.
"마이클 코너야."
"뭐, 마이클?"
론이 지니의 좌석 쪽으로 고개를 길게 빼고는 말했다.
"그 자식은 너하고 만나잖아!"
"벌써 끝났어." 지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퀴디치 시합에서 그리핀도르가 래번클로를 이기니까 그 녀석이 아주
토라져 버리더라고. 그래서 내가 따돌렸더니, 초를 위로한답시고 쪼르르
가버렸어."
지니는 깃펜 끝으로 코를 살살 긁다가 <이러쿵 저러쿵>을 거꾸로 돌려
잡고 퀴즈란에 답을 적기 시작했다. 론은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 내가 보기에 그 자식은 항상 바보 같았어."
론이 자기의 여왕을 해리의 떨고 있는 장군을 향해 진격시키면서
말했다.
"잘됐어. 다른 애를 골라 봐. 다음엔 좀 괜찮은 녀석을 찾아보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론은 해리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음, 난 딘 토마스를 찍었어. 어떻게 생각해?"
지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뭐어?" 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다가 체스판을 엎었다.
크룩생크가 또르르 굴러가는 체스 말들을 쫓아가고, 머리 위에서는
헤드위그와 피그위존이 켁켁거리고 부엉부엉 울었다.
열차가 천천히 킹스 크로스 역으로 들어갈 때, 해리는 문득 차에서
내리기가 너무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기차가 다시 호그와트로
돌아갈 9월의 첫날까지 그냥 자리에 앉아 있으면 어떻게 될지를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윽고 열차가 김을 뿜으면서 멈추었을 때, 해리는
언제나처럼 얼른 일어서서 헤드위그의 우리를 내려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트렁크를 잡았다.
차장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나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때 해리는 정말로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거기에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매드아이 무디는 마법의 눈동자를 가리려고 중산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이 무척 불량스러워 보였다. 그는 뼈마디가 다 드러난 두 손으로
기다란 지팡이를 움켜잡고, 몸에는 두툼한 여행용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그의 뒤에 선 사람은 퉁스였다. 먼지가 잔뜩 낀 유리 천장으로 비쳐
들어온 햇빛 속에서 분홍색 풍선껌처럼 부푼 그녀의 머리가 훤히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 '운명의 세 여신'이라고 쓴 밝은 자주색 티셔츠와
헝겊 조각들을 덕지덕지 붙인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퉁스의 곁에는
얼굴이 몹시 창백하고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헙수룩한 점퍼와 바지 위에
올이 다 드러난 기다린 코트를 입은 루핀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자신들의 최고의 머글 복장을 차려입은 위즐리 씨 부부가 서 있고, 그
옆에 프레드와 조지가 서 있었다. 그들은 무슨 짐승의 가죽인 것 같은,
비늘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몹시 섬뜩한 초록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론, 지니!" 위즐리 부인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그들을 차례로
끌어안았다. 그리고 해리를 쳐다보고 말했다.
"오, 해리야. 잘 지냈니?"
"예."
해리는 거짓말을 했다. 위즐리 부인이 해리를 꼭 끌어안았다. 그 어깨
너머로 해리는 론이 눈알을 부라리고 그 쌍둥이 형제들의 옷을 들여다보는
걸 보았다.
"옷이 대체 그게 뭐야?"
론이 그들의 재킷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제일 좋은 용가죽이야."
프레드가 지퍼를 조금 내리면서 말했다.
"요새 장사가 잘 돼서 새옷 좀 사 입었지."
"어서 와, 해리."
위즐리 부인이 해리를 놓아 주고 헤르미온느에게로 돌아서자 루핀이
다가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해리가 말했다.
"나오실 줄은... 이렇게 다들 나오실 줄은 몰랐어요."
루핀이 한 번 슬쩍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음, 널 네 이모네 집에 보내기 전에 네 이모 부부하고 얘기를 좀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해리가 얼른 말했다.
'아, 아니야. 난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
무디가 절룩거리며 다가와서 말했다.
"저 인간들이겠지, 응, 포터?"
무디가 자기의 어깨 너머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마법의 눈은
분명 뒤통수와 중산모자를 뚫고 뒤를 볼 수 있는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해리는 옆으로 조금 몸을 기울여서 매드아이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다.
과연 거기에는 세 사람의 더즐리 가족이 서 있었다. 그들은 해리를
환영하러 나온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걸 보고 질려 버린 기색이
완연했다.
"아, 해리!"
위즐리 씨가 헤르미온느의 부모님과 얘기를 하다가 해리를 꼭 안아 준
뒤 이어서 헤르미온느를 안아 주었다.
"음- 그럼 슬슬 시작해 볼가요?"
"예, 그럽시다, 아서." 무디가 대답했다.
무디와 위즐리 씨가 더즐리 가족이 마치 그 자리에 박혀 버린 것처럼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뒤를 따라갔다. 헤르미온느도
엄마하고 얘기를 하다 말고 슬그머니 그 쪽으로 갔다.
"안녕하시오."
위즐리 씨가 버논 이모부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말을 걸었다.
"나를 기억하시겠죠? 난 아서 위즐리라는 사람입니다만."
위즐리 씨는 2년 전에 더즐리 집 안에 쳐들어가서 거실을 아주 박살을
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절대로 그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 버논 이모부으 안색이 대번에 시커먼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위즐리 씨를 사납게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의 숫자가 2대 1로 열세라는 걸 분명하게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겁을 먹은 것도 같고 너무도
창피해하는 것도 같았다. 이모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근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까 봐 쩔쩔매는 것 같았다. 한편,
두들리는 어리고 나약한 아이인 것처럼 보이려고 무척 애를 쓰는 것
같았지만,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해리에 관해서 당신하고 할 얘기가 좀 있소."
위즐리 씨가 아직도 빙긋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무디가 말했다.
"당신네 집구석에서 그동안 해리가 어떤 대접을 받고 지냈는지 좀 따져
봐야겠어."
버논 이모부의 콧수염이 분노로 쭈뼛 곤두서는 것 같았다. 중산모자를
푹 눌러쓴 무디가 좀더 만만하게 보였는지, 무디를 보고 말했다.
"내 집에서 내가 지지든지 볶든지 당신들이 왜 상관하는지 난
모르겠소-"
"당신이 모르는 걸 다 글로 쓰면 책이 여러 권 될 거야. 더즐리." 무디가
으르렁거렸다.
"어쨌거나 지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통스가 끼어들었다. 그녀의 분홍색 머리는 지금 그곳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페투니아 이모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꼴만은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다는 듯이 이모가 아까부터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만약 앞으로도 당신들이 해리를 학대한다면, 우린-"
"실수하지 마시오. 우리가 다 들을 테니까."
루핀이 히죽거리며 한 마디 거들었다.
위즐리 씨가 말했다.
"맞아. 해리가 점화 쓰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전화예요." 헤르미온느가 작게 말했다.
"어쨌거나 포터가 또 당신들한테 되잖은 짓을 당하는 날엔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알아서들 하시오."
무디가 말했다.
버논 이모부의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 그는 그를
에워싸고 있는 한 무리의 괴상한 인간들에게 느끼는 공포심보다는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훨씬 더 무거운 것 같았다.
"당신들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협박이지."
매드아이가 말했다. 그는 버논이라는 자가 그 사실을 순식간에 알아차려
줘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당신들 협박에 넘어갈 사람으로 보인다는 거요?"
버논 이모부가 짖어 대듯이 말했다.
"음..."
무디가 중산모자를 뒤를 젖혔다. 뱅글뱅글 도는 너무도 섬뜩한
마법의눈이 드러났다. 버논 이모부가 자지러지게 놀라서 뒤로 펄쩍
뛰었다가 때마침 거기 있던 짐수레에 등을 찧었다.
"물론이야. 내 눈엔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걸. 더즐리."
그가 버논 이모부에게서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포터...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소리를 질러. 만약에 사흘이
지나도 네가 우릴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땐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그 집으로 쳐들어갈 거야..."
페투니아 이모가 애처롭게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거기 잇는
사람들이 자기 집 마당으로 몰려 들어가는 걸 이웃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무슨 망측한 소문이 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잘 가, 포터." 뼈마디가 앙상하게 드러난 두 손으로 해리의 어깨를 덥석
잡고 무디가 말했다.
"잘 지내, 해리." 루핀이 나직하게 말했다.
'연락하고."
"해리, 우리가 어떻게든 빨리 널 그 집에서 데리고 나올 거야." 위즐리
부인이 작은 소리로 말하고 해리를 한 번 더 끌어 안아 주었다.
"우린 금방 보게 될 거야." 론이 해리와 악수를 하면서 말했다.
"정말 곧 볼 거야." 헤르미온느가 진지하게 말했다. "약속할게"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이 자기를 걱정하고 염려해 주어서
너무도 고마웠지만 딱히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빙긋 한 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햇살이 내리비치는 거리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 리가
종종걸음을 치며 허둥지둥 그의 뒤를 따라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