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장 잃어버린 예언
해리의 두 발이 다시 단단한 곳에 닿았다. 그의 두 무릎이 조금 꺾이고,
마법사 석상의 머리가 쿵! 소리와 함께 어딘가에 떨어졌다.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덤블도어 교수의 방이었다.
교장이 없는 동안에도 그의 방에서는 모든 것이 저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다리가 가늘고 긴 탁자 위에서는 은으로 만든 섬세한 기구들이
낮은 소리로 윙윙 돌면서 연기를 내뿜고, 역대 호그와트 교장들은
저마다의 초상화 속에서 머리를 안락의자의 등받이나 액자틀에 기댄 채
졸고 있었다. 해리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몹시 싸늘해 보이는 연한 초록색
띠가 지평선에 드리워져 있었다.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교장들이 잠결에 이따금 신음을 하거나 코를 킁킁거리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해리는 그 침묵과 고요를 견딜 수가 없었다. 만약 지금 그의
가슴속 감정들이 고스란히 그의 주위에 그려질 수 있다면, 액자 속
교장들은 모두 고통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해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방 안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숨을 빠르게
몰아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시리우스가 죽은 것은 그의 탓이었다. 순전히 그의 탓이었다. 만약 그가,
해리가, 볼드모트가 쳐 놓았던 함정에 빠질 정도로 어리석지만 않았더라면,
꿈속에서 보았던 것이 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지 않았더라면,
헤르미온느가 말했던 것처럼 자기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나 되는 줄 아는
해리의 일면을 볼드모트가 이용했을지도 모르리라는 것을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았더라면...
아무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해리는
그 생각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의 몸속 어딘가에 끔찍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시리우스가 있었던 곳, 시리우스가 사라진 곳에 시커먼
구멍이 나 있었지만, 그는 그 것을 느끼고 싶지도 않고 어디에 있는지
짚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 넓고 고요한 방에 홀로 있고 싶지도
않았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등 뒤에서 그림 하나가 유난히 요란하게 코를 골다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해리 포터...."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날카롭고
가느다란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자네가 여긴 웬일이야?"
피니어스가 말했다.
"여긴 자격 있는 교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야. 혹시
덤블도어가 자넬 여기로 보낸 건가? 아, 대답하지 마...."
그가 또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우리 말썽꾸러기 고손자의 소식이라도 갖고 온 거냐?"
해리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시리우스가 죽었다는
걸 모르고 있고, 해리는 그에게 그걸 말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고 나면
그것은 돌이킬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확실한 사실이 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림 속의 교장들 몇몇이 곧 잠을 깨려는 듯이 뒤척였다. 질문이 쏟아질
게 두려워서 해리는 얼른 성큼성큼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그 방에 갇힌 것이었다.
"문이 잠겼으면 덤블도어가 곧 우리한테 돌아온다는 뜻이겠지?"
덤블도어의 책상 뒤쪽 벽에 걸린, 빨간 코의 뚱보 마법사가 말했다.
해리가 뒤로 돌아섰다. 마법사가 흥미 있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 뒤쪽으로 다시 문손잡이를 돌려
보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잘됐어. 그 친구가 없으니까 심심했어. 정말 심심했다고."
마법사가 말했다.
그가 그림 속의 옥좌 같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해리에게 참으로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도 알겠지만 덤블도어가 자네를 아주 좋게 생각하더군."
그가 느긋하게 말했다.
"그래, 자넬 아주 존중하더라고."
해리의 가슴속을 가득 메운 죄책감이 마치 거대한 기생충처럼
꿈틀거렸다. 해리는 그 흉물스러운 느낌을 견딜 수 없었다...
자기가 자기의 머리와 몸속에 갇혀 있는 것 같았고, 차라리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텅 빈 벽난로에 갑자기 짚은 초록색 불꽃이 일었다. 깜짝 놀라서 문에서
비켜선 해리는, 벽난로 안의 쇠살대에서 빙그르르 도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키가 큰 덤블도어의 형상이 불꽃 속에서 우뚝 나타나자 벽에
걸린 마법사와 마녀들이흠칫 놀라며 잠에서 깨어 그에게 어서 오라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고맙소들." 덤블도어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는 해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문 곁에 있는 횃대 앞으로 걸어가더니
망토의 안주머니에서 깃털이 다 빠진 작고 징그러운 퍽스를 꺼냈다.
그러고는 평소에 퍽스가 앉아 있던 황금 횃대의 부드러운 잿더미 위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음, 해리."
이윽고 덤블도어가 아기 새에게서 돌아서면서 말했다.
"기쁜 소식부터 전해야 되겠구나. 간밤의 사건으로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큰 부상을 입은 친구는 아무도 없었단다."
해리는 '다행이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덤블도어의 그 말이 해리에게는 간밤의 그의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친구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들렸다.
덤블도어가 이번에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고 그의 표정이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자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폼프리 부인이 지금 친구들을 보살피고 있단다. 님파도라 통스는 성
뭉고 병원에서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하더구나."
해리는 고개를 푹 수이고 방바닥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바깥의 하늘 빛이 점점 밝아지는 만큼 양탄자의 색깔도 밝아져 갔다. 그는
벽에 걸린 모든 그림 속의 인물들이 덤블도어 교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덤블도어와 해리가 간밤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왜 부상자들이 생겼는지 의아해하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네 심정은 나도 잘 안다. 해리."
덤블도어가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아뇨, 교수님은 몰라요."
해리가 말했다. 갑자기 커진 그의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 있었다.
하얗게 작열하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덤블도어 교수는 지금 그의
심정이 어떤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봤지, 덤블도어?" 피니어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러니까 학생들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게. 학생들은 그걸 싫어해. 된통
오해를 받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단 말이야. 그리고 자기 연민에 빠지고, 저
혼자 끙끙 앓고-."
"그만 하시오, 피니어스."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덤블도어 교수에게 등을 돌리고 서서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맞은편 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퀴디치 경기장이 보였다. 언젠가
시리우스가 거기 왔었다. 해리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려고 텁수륵한
검은개로 변신하고서... 그는 아마 해리가 제임스보다 더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자기 눈으로 보려고 왔을 것이다... 해리는 그걸 시리우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네가 지금 그런 심정인 건 당연해, 해리."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면... 네가 지금 그런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너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다."
해리는 하얗게 작열하는 분노가 가슴속을 핥아 대고, 뻥 뚫린 그 구명
난 벽들을 시커멓게 그을리는 것 같았다. 그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을
너무도 침착하게 하고 있는 덤블도어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충동이 왈칵
치밀었다.
"저의 가장 뛰어난 능력이라고요?"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퀴디치 경기장 쪽을 쳐다보고는
있지만 더 이상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수님은 아무것도 몰라요... 교수님은..."
"내가 뭘 모르지?"
덤블도어가 나직하게 말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분노로 부르르 떨면서 뒤로 돌아섰다.
"저는 지금 제 심정이 어떤지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해리, 네가 그렇게 괴로워한다는 것은 곧 네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거야! 그러한 고통은 인간다운-"
"그럼- 전- 인간답게- 되고- 싶지- 안아요!"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섬세한 은제 기구 중
하나를 덥석 집어서 던져 버렸다. 기구가 저쪽 벽에 부딪혀서 박살이 났다.
초상화 속의 인물 몇몇이 분노와 경악의 고함을 지르고, 초상화 속의
아르만도 디펫은 "저런!"이라고 말했다.
"전 관심 없어요!"
해리가 그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루나스코프를 집어서 벽난로 속에 던져
버렸다.
"전 지겨워요! 정말 지겹다고요. 여기서 나갈 거예요, 이젠 그만 할
거예요, 다 때려치울 거예요-"
해리는 기구들이 놓여 있는 탁자를 두 손으로 집어 올려 던졌다. 탁자가
바닥에 떨어져서 부서지고, 떨어져 나간 다리가 떼굴떼굴 굴렀다.
"그렇지 않아."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가 그의 방을 다 때려부수는데도 그는 눈도 한
번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의 표정은 너무도 침착하고,
전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넌 지금 그 고통 때문에 곧 피를 토하고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어."
"아-아니에요!"
해리가 목구멍이 찢어져라 빽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당장 덤블도어에게
덤벼들어서 그 역시도 집어던지고 싶었다. 그 침착한 늙은 얼굴을 부숴
버리고, 흔들어 버리고 상처를 내서 지금 자기 마음의 그 엄청난 공포를
아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덤블도어가 더욱 침착하게 말했다.
"넌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어. 그리고 지금은 너에게 부모와
같았던 사람을 잃었지. 네가 괴로워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교수님은 제 심정을 몰라요!"
해리가 또 고함을 질렀다.
"교수님은- 거기에 있지- 교수님은-"
그러나 이제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마구 때려부수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달리고 싶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마구 달리고만 싶었다.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곳까지, 덤블도어의 너무도 혐오스러울 정도로
침착한 늙은 얼굴을 볼 수 없는 곳까지 그냥 달려가고 싶었다. 그가
방문으로 뛰어가 다시 문손잡이를 힘껏 비틀었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해리는 덤블도어에게 돌아섰다.
"나가게 해주세요."
해리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르르 떨고 있었다.
"안 된다."
덤블도어가 덤덤하게 말했다.
몇 초 동안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나가게 해주세요."
해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안 돼." 덤블도어도 다시 한 번 말했다.
"싫다면- 붙들어 두겠다면-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또 뭐든지 때려부수렴, 성가신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으니까."
덤블도어가 다시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책상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가게 해주세요."
이제는 덤블도어만큼이나 침착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해리가 다시
말했다.
"내가 해야 할 말을 한 다음에."
덤블도어가 말했다.
"교수님이- 교수님이 생각하는-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건 난 관심
없어요!"
해리가 버럭버럭 고함을 질렀다.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건 난 듣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 않을걸?"
덤블도어가 침착하게 말했다.
"넌 지금 나한테 화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어. 날 공격하고 싶은데도
참고 있는 거지? 마음대로 해라. 여기 가만히 앉아서 당해 줄 테니까."
"대체 무슨 소릴-?"
"시리우스가 죽은 건 내 탓이었다."
덤블도어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아니, 거의 전적으로 내 탓이었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오직 나한테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는 건 어쩌면 나의 교만일 수도 있을 테니까.
시리우스는 용감하고 똑똑하고 활기 넘치는 사나이였어. 그런 사나이라면
당연히 누군가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판단했을 때 절대로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게다. 하지만 네가 간밤에 미스터리 부서에 갔던 건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너는 꼭 가야 한다고 믿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단다.
그러나 네가 간밤에 거기 가야 한다고 믿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내
탓이었지. 내가 진작에 너한테 모든 걸 다 털어놨더라면, 볼드모트가 너를
미스터리 부서로 유인하려는 술책을 꾸밀지도 모른다는 걸 너는 이미 오랜
전에 알았을 테니까. 그랬더라면 간밤에 네가 그자의 함정에 빠져서 거길
가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시리우스가 네 뒤를 따라가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그건 내 잘못이었어. 순전히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아직도 문손잡이을 잡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러고 있는 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는 거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덤블도어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의 말이 귀에 똑똑히 들리기는 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발 좀 앉아라."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었다.
해리는 머뭇거렸다. 그리고 부러진 은색 톱니바퀴들과 나무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방바닥을 지나서 덤블도어의 책상이 마주 보이는 곳에
앉았다.
"내 고손자... 우리 블랙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 죽었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는 건가, 지금?"
해리의 왼쪽에서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느릿느릿 말했다.
"그렇다네, 피니어스."
덤블도어가 말했다.
"난 믿지 않아." 피니어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피니어스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해리는, 때마침 그가 액자 속에서 걸어
나가 사라지는 걸 보았다. 해리는 그가 그의 다른 초상화가 있는 그리몰드
광장으로 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거기서 시리우스의 이름을 부르면서
집 안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해리, 너한테 설명할 게 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한 노인의 한심한 실수를 지금부터 너한테 설명하려고 한다. 이제야 내
눈에 보이는구나. 내가 너에 관해 했던 링과 하지 않은 일이 실패한
원인을 내가 늙었기 때문이라는 게 말이다. 젊은이들으 노인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지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해. 그러나 젊은이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지 노인들이 이해 못한다면 그건 죄가 아닐
수 없지...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내가 그런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구나...
해가 막 떠오르려 하고 있었다. 동쪽 산 위에 눈부시게 밝은 오렌지
같은 것이 떠오르고, 그 위의 하늘은 투명하게 밝아왔다. 그 빛이
덤블도어의 얼굴에 어리고, 그의 은빛 눈썹과 수염, 그리고 얼굴에 깊게 팬
주름살을 비추었다.
"15년 전에 내가 너의 이마에 난 흉터를 보았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짐작했었다. 그것이 너와 볼드모트 사이에 맺어진 어떤 연관의
징표일 거라고 생각했지."
"그건 벌써 말씀하셨어요, 교수님."
해리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그는 태도가 불손하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는 세상의 그 무엇에도 전혀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랬지."
덤블도어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햇다.
"그러나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너의 흉터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왜냐하면 말이다. 네가 마법의 세계에 들어왔을 때,
나는 15년 전의 나의 짐작이 옳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란다.
볼드모트가 네 근처에 있을 때나, 네 가슴 속에 어떤 강렬한 감정이
솟구칠 때, 그 흉터가 그 사실을 너한테 미리 알려 준다고 짐작했던 게
옳았더란 말이지."
"그건 저도 알아요."
해리가 힘없이 말했다.
"볼드모트가 네 근처에 있다는 것을, 비록 그자가 위장을 하고 있더라도
너는 미리 감지했지. 그리고 그자의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는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를 알게 되는 너의 그 능력이 볼드모트가 그의 몸을 되찾고 그의
모든 능력을 다시 회복한 이후엔 훨씬 더 자주 나타났어."
해리는 굳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도 이미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다 최근에 들어서 나는 볼드모트가 너와의 관계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단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그자의 마음과 생각
속에 너무 깊숙이 들어갔기 때문에 그 자가 너의 존재를 감지했던 때가
있었다. 그자가 위즐리 씨를 공격하는 걸 네가 목격했던 그날 밤의 일을
말하는 거란다."
덤블도어가 계속해서 말했다.
"예, 스네이프가 저한테 설명해 줬어요."
해리가 중얼거렸다.
"스네이프 교수님이겠지, 해리."
덤블도어가 나직이 그의 말을 고쳐 주었다.
"그런데, 그걸 너한테 들려준 사람이 왜 내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봤니?
왜 내가 너한테 오클러먼시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지난 몇 달 동안 왜
나는 너와 눈길조차 마주치는 걸 자꾸 피했을까?"
해리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덤블도어 교수는 더 슬퍼 보이고 지쳐
보였다.
"예, 실은 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해리가 우물우물 말했다.
"자, 봐라."
덤블도어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난 오래지 않아서 볼드모트가 억지로 네 마음속으로 들어가 너를
조종하고 너의 생각을 잘못된 길로 이끌려고 할 게 틀림없다고 믿었단다.
그리고 내가 그자의 그러한 생각을 더욱 부추기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 난 너와 나의 관계가 단지 교장과 학생의 관계 이상이라는
사실을 만약에 그자가 알아차리게 되면, 그자는 나를 염탐할 수단으로서
너를 이용하려 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자가 너를 이용할까 봐
두려웠고, 그래서 결국엔 너를 완전히 지배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두려워했다. 해리, 난 그가 너를 기어이 그런 식으로 이용할 거라고 보는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 그런 경우는 물론 아주 드물었지만, 너하고 내가
가까이 다가섰을 때, 네 눈동자 뒤에 그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인다는 생각이 흠칫흠칫 들더구나..."
해리는 덤블도어 교수와 눈길이 마주쳤을 때,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뱀이 깨어나 그에게 덤벼들어 물어뜯고 싶은 느낌이 들었던 것을 얼른
떠올렸다.
"볼드모트가 너를 지배하려고 하는 목적은 나를 파괴하려는데 있는 게
아니다. 그건 간밤에 그자가 스스로 증명했지. 그자의 목적은 너를
파괴하는 것이다. 좀 전에 그자가 너를 잠시 지배했었지? 그때 그자는
내가 자기를 죽이려는 욕심 때문에 너를 희생시키기를 바랐어. 그래서
나는 일부러 너에게서 멀어지려고 애썼다. 그게 너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그러나 알고 보니까 그것도 또 이 늙은이의 실수였더구나."
덤블도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는 그저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몇 달
전만 같았어도 고개를 빼고 가슴을 졸이면서 귀를 기울였겠지만, 지금
그의 얘기는 그에게 아무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시리우스를 잃음으로써
그의 가슴 속에 뻥 뚫린 그 구멍에 비하면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리우스가 나한테 얘기했었다. 네가 꿈에서 아서 위즐리를 공격하는
것을 보았던 날 밤에 볼드모트가 네 안에서 깨어나는 걸 느꼈다는 이야기
말이다. 나는 그동안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깨달았지. 그 순간부터 볼드모트는 너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의 마음을 공격하는 볼드모트에게
대항하려면 네가 적절한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는 스네이프
교수를 시켜 너에게 오클러먼시를 가르치게 했던 거란다."
덤블도어가 잠시 이야기를 멈추었다. 해리는 햇빛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햇빛이 천천히 반질반질 윤이 나는 덤블도어의 책 상 위를
비추고, 은으로 만든 잉크병과 주홍색 깃펜이 햇빛 속에 환히 드러났다.
해리는 주위의 초상화 속 인물들이 지금은 모두 잠에서 깨어 덤블도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따금 망토 자락이
서걱거리는 소리와 잘게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네가 몇 달 전부터 미스터리 부서의 그 문을 꿈에서 보았다는 사실을
스네이프 교수가 알아냈단다. 물론 볼드모트는 육체를 되찾은 이후부터,
이제는 어쩌면 그 예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집착했지.
그래서 늘 그 문 근처에서 얼쩡거렸고, 그 문이 너의 꿈에 나타났던
거란다. 물론 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겠지만...."
덤블도어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다 어느 날 너는 미스터리 부서의 직원이었다가 나중에 체포된
록우드가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볼드모트한테 얘기하는 걸 보았지.
록우드는 그자에게 마법부의 어딘가에 예언들이 보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경비가 무척 삼엄하다는 걸 알려 줬어. 그리고 그 예언이 당사자만이
미치지 않고 꺼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 줬지. 마침내 볼드모트는
자기의 정체를 드러낼 위험을 감수하면서 직접 마법부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시켜 그것을 꺼내 올 수밖에 없었단다. 그 누군가는 물론
너였고. 그래서 네가 오클러먼시를 배우는 게 아주 시급한 문제가 되었던
거야."
"그렇지만 전 배우지 않았어요."
해리는 일부러 크게 말했다. 그러면 마음속의 그 무거운 죄책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 같았다. 고백을 하면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엄청난
중압감이 줄어들 것이었다.
"연습도 하지 않았고, 별로 관심도 없었어요. 마음만 먹었다면 제 스스로
그 꿈을 그만 꾸게 할 수도 있었어요. 헤르미온느가 저한테 그렇게 하라고
계속 말했었죠. 그 애의 말을 들었더라면, 그자는 절대로 제가 거기에
나타나게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리고- 시리우스도- 시리우스도 거기 가지
않았을 것이고-"
해리의 머릿속에서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자기를 변명해야 한다는,
무언가 설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는 그자가 정말로 시리우스를 데리고 갔는지를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엄브릿지 교수의 방에 있는 벽난로를 이용해 크리처한테
물어봤어요. 크리처는 시리우스가 거기에 없다고 했어요. 어딘가로 갔다고
했다구요!"
"크리처가 거짓말을 한 거란다."
덤블도어가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크리처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는 전혀 벌을 받으리라는
두려움 없이 너한테 거짓말을 할 수 있어. 크리처가 거짓말을 한 의도는
물론 네가 마법부로 달려가게 하려는 것이었고."
"크리처- 그 녀석이 저를 거기로 보내려고 거짓말을 했다고요?"
"물론이다. 크리처는 지난 몇 달 동안 한 명 이상의 주인을 섬겼단다."
"어떻게요?"
해리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그는 몇 년 동안 그 집, 그리몰드 광장을 벗어난 적이 없잖아요?"
"크리스마스 직전에 크리처에게 기회가 왔던 거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시리우스가 그 녀석에게 '나가.' 하고 소리를 질렀던 일이 있었지. 그
녀석은 그 말을 당장 집에서 나가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어. 블랙 가문의
여러 식구들 중에서 크리처가 아직도 존경심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딱 한
사람 남아 있었단다. 블랙의 사촌이자 벨라트릭스의 언니이며 루시우스
말포이의 아내인 나시사야. 크리처는 시리우스의 집을 나와서 그 여자한테
갔지."
"어떻게 그런 걸 아시죠?"
해리가 물었다. 이젠 그의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는 속이
메스꺼웠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크리처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고, 갑자기 그가 다시 다락방에 나타났던 것을 해리는 지금
떠올리고 있었다.
"어젯밤에 크리처가 나한테 말했단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네가 스네이프 교수한테 암호로 경고를 했을 때, 그는 네가 미스터리
부서의 어딘가에 갇혀 있는 시리우스의 꿈을 꾸었다는 걸 알아차렸지.
그래서 그도 너처럼 당장 시리우스와 접촉하려고 했단다. 불사조 기사단의
단원들은 돌로레스 엄브릿지의 방에 있는 벽난로보다 훨씬 더 믿을 만한
교신 수단을 갖고 있단다. 그래서 스네이프 교수는 시리우스가 그리몰드
광장에서 안전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네가 돌로레스 엄브릿지와 숲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자,
스네이프 교수는 네가 아직도 시리우스가 볼드모트경의 포로가 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즉시
기사단의 몇몇 단원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알렸던 거야."
덤블도어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 다시 말했다.
"스네이프 교수가 그걸 알리려고 본부에 갔을 때 앨러스터 무디, 님파도라
통스, 킹슬리 샤클볼트, 리무스 루핀이 때마침 거기에 있었어. 그들이 당장
너를 도우러 가겠다고 나섰지. 스네이프 교수가 시리우스한테 본부를
지키고 있으라고 부탁했단다. 누군가가 거기 남아 있다가 나한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야. 나는 언제든 그곳에 가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스네이프 교수는 숲으로 가서 너를 찾아볼 작정이었지....
그러나 시리우스는 다들 너를 도우러 가는데 자기만 뒤에 남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나한테 얘기를 전하는 일을 크리처한테
대신 맡겼던 거야. 그들이 마법부로 떠난 직후에 내가 그리몰드 광장에
도착했고, 그 집요정이 나를 보자마자 꼭 발작을 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시리우스가 간 곳을 나한테 알려 줬지."
"그 녀석이 웃었다고요?"
해리가 몹시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랬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크리처는 우리를 철저하게 배신할 수는 없는 입장이지.
그는 기사단의 비밀 파수꾼은 아니지만, 말포이와 그 일당에게는 우리의
소재를 알리거나 기사단의 비밀 계획 같은 것을 누설할 수 없단다. 그는
자기 종족의 여러 가지 마법에 묶여 있지. 그래서 주인인 시리우스가 직접
내린 명령에는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란다. 그러나 그는 볼드모트가
매우 귀중하게 여길 만한 정보를 나시사에게 전했다. 그러나 그 정보는
시리우스에게는 너무도 사소한 것처럼 보였을게다. 크리처가 그걸
누설했다는 걸 안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쫓아야겠다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그런 정보라고 말이다."
"가령?"
해리가 물었다.
"가령, 시리우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해리 포터라는 사실 같은 것이지."
덤블도어가 나직하게 말했다.
"해리 포터가 시리우스를 아버지나 형처럼 여긴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볼드모트는 시리우스가 기사단의 단원이고 네가 시리우스의
소재를 알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 하지만 크리처의 정보를
듣고서야 그자는 네가 어떠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구하러 갈 사람이 바로
시리우스 블랙이라는 걸 알아차렸던 거야."
해리의 입술이 너무도 차갑고 얼얼해졌다.
"그래서... 제가 어젯밤에 크리처한테 시리우스가 거기 있느냐고 물었을
때...."
"물론 볼드모트의 지시를 받은 것이었겠지만, 말포이와 그 일당이
크리처한테 말했단다. 시리우스가 고문을 당하는 걸 꿈에서 본 네가 그를
찾아서 거기에 나타날 테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절대로 네가
시리우스를 보지 못하게 하라고 말이지. 크리처는 어제 히포그리프 벅빅을
일부러 해쳤단다. 그리고 네가 그 집의 벽난로 속에 나타났을 때
시리우스는 위층에서 그를 치료해 주고 있었지."
해리의 폐 속에 공기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너무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크리처가 교수님한테 그 얘기를 하고... 웃었단 말이죠?"
해리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단다. 그러나 나는 레질리먼시를 터득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들으면 당장 알아차릴 수 있지. 그래서 내가 사실대로
털어놓으라고 설득을 했단다. 그리고 미스터리 부서로 달려갔던 거야."
"그런데도..."
해리는 무릎에 얹은 그의 차가운 손을 꽉 쥐었다.
"그런데도 헤르미온느는 계속 그 녀석한테 잘해 주라고-"
"그건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아, 해리. 그리몰드 광장 12번지를 우리의
본부로 정했을 때, 시리우스한테 내가 말했단다. 크리츠를 친절하게 대하고
존중해 줘야 한다고 했지. 또 크리처는 우리한테 위험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단다. 아무래도 시리우스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던 것
같다.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크리처도 인간처럼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시리우스를 탓하지- 시리우스를 그렇게 말하지-"
해리는 곧 숨이 멎을 것 같아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잠시
진정되었던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그는 덤블도어가 시리우스를
비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크리처가 거짓말을 한 거예요- 그 녀석이- 그 더러운 녀석이-"
"크리처는 마법사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존재일 뿐이다. 불쌍하지. 네
친구 도비만큼이나 불쌍해. 그는 억지로 시리우스의 명령에 따르는 그란다.
그가 섬기는 가문의 마지막 자손이니까. 그러나 그는 시리우스에게 진정한
충성을 바치진 않았지. 우리는 크리처를 탓할 게 아니란다. 크리처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시리우스한테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시리우스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해리가 고함을 벌컥 질렀다.
그는 너무도 분해서 다시 벌떡 일어섰다. 시리우스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덤블도어한테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시리우스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인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스네이프는요?"
해리가 내뱉듯 말했다.
"왜 그 사람에 관한 얘기는 안 하시죠? 내가 그 사람한테 볼드모트가
시리우스를 잡아갔다고 말하니까. 언제나처럼 실실 웃기만 했어요-"
"해리, 너도 알다시피 스네이프 교수는 돌로레스 엄브릿지 앞에서는
너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척할 수밖에 없는 처지란다."
덤블도어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이미 말했듯이, 그는 너한테 들은 것을 즉시 기사단에
알렸었다. 네가 숲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네가 어디로 갔을 것인지를
짐작해서 알아맞혔던 것도 바로 그 사람이었어. 엄브릿지가 시리우스가
있는 곳을 너한테서 강제로 알아내려고 했을 때, 그 여자한테 가짜
베리타세룸을 준 사람도 그였고..."
그러나 해리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는 스네이프를 비난하는 데서
쾌감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몹시 야비한 쾌감이었지만,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죄책감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 같았고 덤블도어도 자기에게 동의해
주기를 바랐다.
"스네이프- 스네이프가 시리우스한테 집에만 있다고 빈정거렸어요.
시리우스를 겁쟁이로 만들려고-"
"시리우스는 나이로 보나 지혜로 보나 그런 시시한 수작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스네이프는 저한테 오클러먼시를 가르치다가 도중에 그만뒀어요!"
해리가 으르렁거렸다.
"저를 방에서 내쫓았다고요!"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덤브롣어가 침울하게 말했다.
"이미 말했지만, 내가 직접 너한테 그걸 가르치지 않은 게 실수였어.
물론 그때 나는 내가 보는 앞에서 볼드모트가 너의 마음속으로 더 쉽게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지."
"스네이프 때문에 일이 더 어려워졌어요. 그의 수업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흉터가 훨씬 더 아팠었다고요."
해리는 그것에 관해서 론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얼른 기억하고
덧붙였다.
"제가 볼드모트한테 훨씬 쉽게 넘어가려고 스네이프가 수작을 부린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볼드모트가 제 마음속으로 훨씬 더 쉽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려고-"
"난 세베루스 스네이프를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인간에게는 영영 아물지
않을 만큼 깊은 상처란 게 있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지. 그것도 늙은이의
실수였어. 난 스네이프 교수가 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어."
"그건 문제가 아니잖아요?"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주위에서 초상화 속의 교장들이 몹시
못마땅한 듯이 투덜거리고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지만 해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스네이프가 우리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괜찮고 시리우스가 크리처를
미워한 건 무제가 되나요?"
"시리우스는 크리처를 미워하지 않았다. 단지 특별히 관심을 가질
가치가 없는 일개 하인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야. 내놓고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보다는 무관심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는 경우도 흔히 있는
법이지.... 간밤에 우리가 부쉈던 동족 간의 화합을 상징하는 분수대의
동상들은 거짓을 말하는 거란다. 우리 마법사들은 오래 전부터 다른
종족들을 홀대하고 지나치게 부려왔지. 그래서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시리우스가 그렇게 된 게 당연하다는 거예요?"
해리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한테서 그런 말을 들을 일은
없을 게다."
덤블도어는 여전히 조용하게 말했다.
"시리우스는 잔인한 인간이 아니었어. 그는 대체로 집요정들한테
친절했지. 그러나 그는 크리처를 사랑하지 않았단다. 크리처만 보면 그가
그렇게 증오하는 자기 가문이 생겨났기 때문이지."
"그래요, 그는 자기 집안을 증오했어요!"
해리는 갈라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덤블도어에게 등을 돌려 창가로
걸어갔다. 이제는 실내에 햇빛이 가득했다. 초상화 속 인물들의 모든
시선이 해리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주변을 전혀 바라보지 않았다.
"교수님이 그를 집 안에 가뒀고, 그는 그걸 싫어했어요. 그러잖아도
나오고 싶어서 안달하고 있었을 텐데 어젯밤에 그런 일이 생겼으니까-"
"난 시리우스를 살리려고 했던 거란다."
덤블도어가 조용하게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갇히는 걸 싫어해요!"
해리가 버럭 화를 내면서 말하고 그에게로 돌아섰다.
"작년 여름에 교수님은 저에게도 똑같은 일을 하셨죠."
덤블도어가 눈을 감고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기다란 손가락들이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해리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덤블도어가 지금
비록 평소의 그답지 않게 몹시 피곤하고 슬픈 기색을 하고는 있었지만,
해리의 마음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덤블도어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
그는 오히려 더욱 화가 났다. 해리가 그에게 화를 내고 고함친다고 해서
그가 약해질 일은 없는 것이었다.
덤블도어가 손을 내리고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이젠 너한테 그 얘기를 할 때가 됐구나."
덤블도어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5년 전에 말했어야 했던 이야기란다. 앉아라, 해리. 모든 걸 다
털어놓겠다.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들어 줬으면 좋겠구나. 화가 나더라도
내가 이야기를 끝낼 때까지 기다려 주렴. 그 다음엔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난 가만히 있을 테니까."
해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았다.
덤블도어는 햇살이 길게 내리비치는 창 밖의 운동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해리. 너는 내가 계호기하고 의도했던 대로 5년 전에 호그와트에
안전하고 무사하게 도착했다. 그러나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네가 고통받았으니까. 너를 네 이모네 집 앞에 데려다 놓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네게 어둡고도 힘든 10년이라는 세월의
형벌을 선고하는 심정이었지."
그가 말을 멈추었다.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넌 궁금하겠지. 왜 꼭 그래야만 했는지 당연히 궁금할 거다. 내가 왜
너를 마법사 집안에 맡기지 않았을까? 누구나 너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친자식처럼 길러 줬을 텐데?
무엇보다도 먼저 너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텨야 했기 때문이었단다. 그때
너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상태에 있었지. 그리고 나는
또 장래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려야 했던다. 그때 내가 볼드모트가 영영
죽었다고 믿었을까? 아니란다. 10년 후가 될지 20년이나 50년 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자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고 확신했지. 그자는
너를 죽일 때까지는 결코 편히 쉬지 못하리란 걸 난 확실히 알고
있었거든.
나는 볼드모트가 현재 살아 있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도 훨씬 더 폭넓은
마법 지식을 가졌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자가 자기의 능력을 완전히
회복했을 때는 나의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방어 마법들로도 그자를 막을
수 없으리란 걸 나는 알고 있었어.
그러나 나는 또 볼드모트의 약점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걸 다
감안해서 판단을 내린 거란다. 그자가 알고는 있지만, 늘 경멸하고, 그래서
과소평가하는 고대의 어떤 마법으로 너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지. 지금 난 네 어머니가 너를 구하기 위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란다. 네 어머니가 그자가 결코 예상할 수 없는, 효력이
오래 유지되는 보호마법을 너한테 주었지 그것이 지금도 네 핏줄 속에
흐르고 있단다. 나는 네 어머니의 피를 믿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너를 그의
유일한 피붙이인 네 이모한테 맡겼던 거란다."
"이모는 절 사랑하지 않았어요."
해리가 얼른 말했다.
"이모는 절-"
"어쨌거나 너를 받아들였어."
덤블도어가 즉시 말을 가로막았다.
"화를 내고 몹시 투덜거리면서 마지못해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모는 너를 받아들였고, 그래서 내가 너한테 결어 놓은 마법을 봉인할 수
있었단다. 네 어머니의 희생 덕분에 나는 혈연이라고 하는 가장 튼튼한
방패를 너한테 줄 수 있었던 거야."
"전 아직도 이해가-"
"네가 네 어머니의 피가 남아 있는 곳을 집이라고 부르면서 지내는 한
볼드모트는 너를 해칠 수 없단다. 그자가 어머니를 죽였지만, 너하고 네
이모의 몸속에는 그녀의 피가 흐르고 있어. 어머니의 피가 너의 은신처가
된 거란다. 너는 1년에 한 번만 거기에 돌아가지만, 네가 그곳을 집이라고
부르는 한 그자는 너를 해치지 못해. 네 이모는 그걸 알고 있었지. 내가
너를 그 집 앞에 두고 올 때 남겨 놓았던 편지에 설명을 했거든. 이모는
너를 자기 집에 받아들이는 것으로 지난 15년 동안 너의 목숨을 지켜
주었다는 걸 알고 있었단다."
"잠깐만, 잠깐만요."
해리가 의자에서 일어나 덤블도어 교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교수님이 호울러를 보냈어요. 교수님이 이모한테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분명히 교수님 목소리였어요..."
덤블도어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말했다.
"난 네 이모가 너를 받아들임으로써 나하고 맺은 계약을 다시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디멘터의 공격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면 네
이모가 너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걸 깨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란다."
"그랬어요."
해리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모보다 이모부가 더 심했어요. 이모부는 저를 쫓아내려고 했어요.
그러나 호울러가 온 뒤에, 이모는- 이모는 저를 내쫓으면 안 된다고
말했어요."
해리는 잠시 바닥을 빤히 내려다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게 대체..."
그는 그것이 시리우스와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이름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덤블도어는 해리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말을 계속했다.
"5년 전에 호그와트에 왔을 때, 너는 아주 딱할 정도로 불쌍해 보였고
영양 상태도 몹시 나빴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멀쩡하게 살아 있었지. 넌
응석받이 어린 왕자도 아니었고, 내가 바라던 대로 그런 힘든 생활을 잘
견뎌 낸 평범한 소년이었단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되었지.
그런데... 호그와트에 온 첫 1년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너도 나만큼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게다. 너는 너에게 닥친 도전에 당당하게 맞섰고,
내가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훨씬 더 빨리, 볼드모트와 대면했지.
그리고 살아남았다. 아니, 그 이상이었단다. 너는 그자가 자기의 능력과
힘을 완전히 되찾을 시간을 뒤로 늦추게 만들었어. 넌 정말 당당하게
싸웠고, 난 네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자랑스러웠단다.
그러나 나의 그 놀라운 계획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계획 자체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을 허점이 훤히 드러나 있었지. 하지만 그
결점이 나의 계획을 진행시키는 데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결점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썼단다. 그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는 강해져야 했다. 그런데 네가
볼드모트와 싸운 뒤에 힘이 빠져서 병동에 누워 있었을 때, 내게 첫 번째
시험이 닥친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저는 이해가 안 가요."
해리가 말했다.
"병동에서 네가 나한테 물었잖니. 네가 아기였을 때 볼드모트가 너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뭐냐고 나한테 불었던 거, 기억하지?"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때 너에게 말해 줘야 했는지도 모르겠구나."
해리는 덤블도어의 푸른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다시 거칠게 뛰고 있었다.
"내 계획의 허점이 뭔지 아직 모르겠니? 그래... 모를 만도 하겠지. 그때
난 네 질문에 대답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단다. 열한 살이란 나이는 그런 걸
알기에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지. 고작 열한 살인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단다. 그렇게 어린 나이의 소년은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때 위험의 징조를 알아차렸어야 했단다. 언젠가는
끔찍스런 대답을 해줘야만 하는 질문을 네가 나한테 했을 때, 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했어. 그날은
내가 기분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던 거야. 넌 아직 너무 어렸어.
그리고 호그와트에서의 너의 또 한 해가 시작되었단다. 어른 마법사들도
당해 보지 않았던 험난한 도전들이 또다시 너에게 닥쳐왔지. 그리고 너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을 만큼 훌륭하게 대처했단다. 그러나 너는 또
나한테 물었어. 볼드모트가 네 얼굴에 상처를 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그래서 너와 내가 너의 흉터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지... 그래, 맞아. 그때
우린 그 해답에 아주 가까이 다가갔었단다. 그런데 왜 나는 너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았을까?
그 사실을 알기에는 열두 살짜리 소년도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네가 피투성이가 되고 기진맥진했으면서도 아주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을 때, 그때 나는 너한테 그 얘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곧 단념했다. 넌 아직 너무 어렸고, 그리고 난 너의 승리의
기쁨을 망치고 싶지 않았단다...
이제 알겠니, 해리? 나의 그 탁월한 계호기의 허점이 이젠 보이니? 나는
예상하고 있었던 함정이 빠졌던 거란다.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 함정에 빠져 버렸던 거지."
"전 이해가 안-"
"나는 널 너무나 아꼈던 거란다."
덤블도어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네가 그 사실을 아는 것보다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하고, 내
계획보다는 네 마음의 평화가 더 중요하고, 그 계획이 실패했을 경우에
희생단할 목숨들보다 너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거야. 다시 말해서,
나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를 볼드모트가 빤히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 행동했던 거야.
뭐라고 변명할 말이 있을까? 만약 나처럼 널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난 네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가까이서 널 지켜보았단다- 네가 이미
겪은 고통 이외에 더 이상의 고통을 겪게 해주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싶구나. 수많은 이름 모를, 얼굴 모를 사람들과 생물들이 막연한
미래에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한들, 네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고 잘 지내고
또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무엇을 신경 쓰겠느냐? 나는 내가 그토록 한
사람을 책임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단다.
이윽고 너의 세 번째 해로 접어들었지. 나는 네가 디멘터들을 물리치는
걸 멀리서 지켜봤단다. 시리우스를 발견하고,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고,
그를 구출하는 것도 지켜봤지. 네가 네 대부를 구출해 가지고 당당하게
돌아왔을 때, 그때 내가 그걸 너한테 얘기해야 했을까? 그러나... 네가 열
세 살이 되고 나니까, 나는 더 이상 핑곗거리가 없어졌단다. 물론 아직
어린 나이지만, 넌 네가 아주 특별한 아이라는 걸 증명했어. 그래서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단다. 해리, 난 이제 때가 멀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
그러나 너는 작년에 그 미로에서 빠져나왔다. 케드릭 디고리가 죽는 걸
보았고, 너 자신도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했지... 그런데도 나는 너한테
말하지 않았어. 이젠 볼드모트가 돌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간밤에 난 깨달았단다. 내가
그토록 오래 숨겨 왔던 그것을 너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걸 말이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당연히 그 짐을
너에게 지워야 했다는 것을 간밤에 네가 증명했기 때문이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변명은 이것뿐이다. 그동안 이 학교를 거쳐 갔던 그 어떤
학생보다도 네가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아 왔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런 너에게 또 다른 짐을- 그 어떤
짐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지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이다."
덤블도어가 이야기를 멈추었다. 해리가 기다렸지만,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전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네가 어렸을 때 볼드모트가 너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네가 태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어떤 예언 때문이었단다. 그는 그 예언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 그 내용까지는 몰랐지. 그래서 네가 아직 아기일 때 너를
죽이는 게 그 예언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고 널 죽이려고 나섰던 거란다.
그러나 너를 죽이려 했던 그 저주가 자기한테 되돌아왔을 때에야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서, 그가 자기의 육체를 되찾은 이후로, 그는
그 예언의 내용을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단다. 그가 다시 돌아온
뒤부터 지금까지 갖은 애를 쓰면서 찾으려고 했던 무기가 바로 그
예언이다. 너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그 예언이 가르쳐 줄 것이기
때문이었지."
이젠 해가 완전히 떠올라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의 방에 햇빛이
가득했다.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칼이 들어 있는 유리 상자가 희고
투명하게 빛나고, 해리가 집어던졌던 기구의 조각들이 바닥에서
빗방울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등 뒤에서는 잿더미 위에 놓인 아기 퍽스가
작은 소리로 꾸륵거렸다.
"예언은 깨졌어요."
해리가 멍한 표정을 말했다.
"아치문이 있었던 그 방에서 네빌을 끌고 계단을 올라갈 때, 제가
네빌의 망토를 찢는 바람에 그게 떨어져서..."
"그때 깨진 것은 미스터리 부서에서 그 예언을 기록해 둔 것일
뿐이었단다. 그 예언은 누군가에게 전해졌고, 그 사람은 그걸 정확하게
기억해 낼 방법을 알고 있어."
"그 예언을 들은 사람이 누구죠?"
해리는 자기가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물었다.
"바로 나야. 16년 전의 어느 춥고 습한 날 밤에 호그스 해드의 바 앞에
잇는 어느 자리에서였지. 점술 교수 지원자를 거기서 만나 면접을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단다. 난 그 과목을 계속 가르치는 걸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지원자가 매우 유명하고 능력 있는 어느 예언자의
고손녀였기 때문에 한 번 만나 보기라도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갔었지. 그러나 결과는 실망이었단다. 그 여자는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적임자가 아닌 것
같다고 최대한 예의를 차려서 말하고 돌아섰단다."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해리의 곁을 지나 퍽스의 횃대 곁에 놓인
검은 캐비닛 앞으로 갔다. 그가 허리를 숙여 서랍 하나를 열고, 거기서
가장자리에 룬 문자가 새겨져 있고 돌로 만든 얄팍한 대야를 꺼냈다.
해리는 그 안에서 아버지가 스네이프를 못살게 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덤블도어가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서 펜시브를 내려놓더니
지팡이를 자기의 관자놀이까지 들어 올렸다. 허공에 걸친 거미줄처럼
섬세한 은색 실들이 그의 머리에서 빠져나와 지팡이에 달라붙었다. 그가
그것을 대야에 담았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그의 생각들이 펜시브
안에서 빙빙 돌고 둥둥 떠다니는 것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지팡이 끝으로 그 은색 실을 뒤적였다.
대야 안에서 여자의 형상이 일어섰다. 숄을 걸쳤고, 안경알 속에서 두
눈이 엄청나게 커 보이는 여자가 대야의 바닥에 발을 디딘 채 천천히
돌았다. 그러나 사이빌 트릴로니가 입을 열고 말을 할 때, 그 목소리는
몽롱하고 신비한, 여느 때의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목소리는
해리가 트릴로니에게서 전에 딱 한 번 들어 본적이 있는, 몹시 거친
목소리였다.
"어둠의 마왕을 물리칠 힘을 가진 자가 오리라... 그와 세 번 싸웠던
이들의 자신으로 태어날 것이여, 일곱 번째 달이 기울 대 태어나리라...
어둠의 마왕은 그의 적수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둠의
마왕이 알지 못하는 능력을 가지리라... 그들은 다른 한쪽이 살아 있는
한은 어느 쪽도 살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손에
죽으리라... 어둠의 마왕을 물리칠 힘을 가진 자는 일곱 번째 달이 기울 때
태어나리라..."
선 채로 천천히 돌던 트릴로니 교수가 은빛 실타래 속으로 내려가다가
사라졌다.
숨소리조차 없이 고요했다. 해리도 초상화 속의 어느 누구도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퍽스마저도 입을 닫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
해리가 아주 작은 소리로 불렀다. 펜시브를 빤히 쳐다보면서 덤블도어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넋을 놓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죠?"
"볼드모트 경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지금으로부터 거의 16년 전 7월 마지막 날에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
아이의 부모는 지난날에 볼드모트와 세 번 싸운 적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거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해리는 무엇인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다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저예요?"
덤블도어가 깊은 숨을 쉬었다.
"이상한 게 있다, 해리."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이빌의 예언에 해당되는
마법사 소년이 두 명이란다. 둘 다 7월의 마지막 날에 태어났고, 둘 다 그
부모들이 불사조 기사단의 단원이었고 볼드모트한테서 세 번 간신히
탈출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지. 한 사람은 물론 너다. 다른 한 사람은
네빌 롱바텀이고."
"그렇지만... 그렇다면 왜 그 예언에 네빌의 이름이 아니라 제 이름이
쓰여 있었죠?"
"네가 아기였을 때 볼드모트가 너를 공격한 뒤로 그 예언의 공식 기록에
다시 이름표가 붙었단다. 볼드모트가 너를 죽이려고 했던 까닭에 사이빌의
예언에서 언급된 아이가 바로 너이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 예언의 방
관리자가 네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지."
"그럼 그게 제가 아닐 수도 있겠군요?" 해리가 말했다.
"그렇지 않단다. 그게 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덤블도어가 매우 느릿느릿 말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너무도
힘이 드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네빌도 7월의 마지막 날 태어났고, 그 애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예언의 뒷부분을 기억해 봐라. 볼드모트를 물리칠 힘을 가진 소년이
어떤 소년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대목 말이다... 볼드모트는 '그의
적수로 흔적을 남길 것'이라고 했지. 그리고 그자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그자는 네빌이 아니라 너를 선택했어. 그자가 네 얼굴에 저주며 동시에
축복이 된 그 흉터를 남겨 주었지."
"선택을 잘못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엉뚱한 사람에게 흔적을 남긴
것일지도 모르잖아요?"
"그자는 자기에게 가장 크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아이를 선택했다. 또
그의 신념에 따라 마법사가 될 만한, 그리고 알아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순수 마법사 혈통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머글 혼혈을 선택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자는 너를 직접 보기도 전에 이미 너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았고, 그래서 그 흉터를 만들어 놓았던 거야. 그자는 자신의 의도대로
너를 죽이지는 못하고 대신 너한테 여러 가지 능력을 주고, 미래를 준
거야. 그 때문에 넌 지금까지 한 번이 아니라 네 번 더 그자한테서 도망칠
수 있었어. 그건 네 부모님도 네빌의 부모님도 하지 못한 일이란다."
"왜 그랬을까요?"
해리가 말했다. 그는 온몸이 얼얼하고 으스스했다.
"그자가 아기인 저를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뭐죠? 네빌이나 제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면 어느 쪽이 더 자기한테 위협적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거고, 그때 가서 죽이면-"
"물론 그게 훨씬 더 현실적인 길이었겠지. 그러나 문제는 그 예언의
내용을 볼드모트가 완전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거란다. 숙박비가
싸다는 이유로 사이빌이 선택했던 호그스 해드는 오래 전부터 스리
브룸스틱스보다 훨씬 더 괴상한 손님들이 많았지. 너와 네 친구들이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발견했던 것처럼. 그리고 나도 그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호그스 해드에서는 엿듣는 자가 없다고 믿고 무심코 얘기를 하다가는 큰코
다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물론 사이빌 트릴로니를 만나러 갈때만
하더라도 나는 누군가가 엿들은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사이빌이 예언을 말하기
시작한 후에 곧바로 그것 엿듣던 자가 발각돼서 쫓겨났다는 게 내게는,
우리한테는, 두 번 다시 없을 천운이었던 거야."
"그럼 그자는 앞 부분만...?"
"그래. 세 번 볼드모트와 싸웠던 사람들의 자식으로 7월의 마지막 날에
태어난다는 데까지만 들었지. 그래서 그자는 너를 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너에게 힘을 주게 되고 너를 적수로 지목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인한테 경구할 수가 없었단다. 그래서 볼드모트는 너를 공격하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몰랐고, 확실한 게 밝혀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는 것도 몰랐지. 그는 네가 '어둠의 마왕이 모르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어-."
"그렇지만 저한테 그런 능력이 없어요!"
해리가 몹시 목에 메어 말했다.
"전 그자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요. 저는 간밤에
그자처럼 싸울 줄도 모르고, 사람들을 지배하지도 못하고, 죽이지도-"
"미스터리 부서에는 늘 문이 닫힌 방이 하나 있다."
덤블도어가 해리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방에는 죽음보다도 더 놀랍고 무서운 어떤 힘이 들어있지. 인간의
지능이나 자연의 힘보다도 더 놀랍고 무서운 힘이다. 그것은 또한 거기에
있는 모든 연구 주제들 가운데서도 가장 미스터리한 것일 게다. 네게는 그
힘이 충만해 있고, 볼드모트에게는 전혀 없단다. 간밤에 네가 시리우스를
구하러가게 했던 게 바로 그 힘이란다. 또 네가 볼드모트에게 지배당하는
걸 막아 주었지. 그는 자기가 혐오하는 힘이 가득 차 있는 육체 속에
들어가 있는 걸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네가 너의 정신을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너를 구해 준 것은 네 마음이었어."
해리는 눈을 감았다. 간밤에 그가 시리우스를 구하러 가지 않았더라면
시리우스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또다시 시리우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을 피하려고, 해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언의 끝 부분이... 다른 한쪽이 살아 있는 한은..."
"...어느 쪽도 살 수 없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해리는 가슴속 깊은 곳의 절망의 샘 같은 곳에서 얼른 몇 마디를
퍼올렸다.
"그렇다면... 결국엔 제가 그 자를 죽이거나 그자가 저를 죽이게
되겠군요?"
"그래."
한참 동안 그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방 벽 저 너머 어딘가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남보다 먼저 아침을 먹으러 대연회장으로
가는 학생들인 것 같았다. 해리는 아직도 이 세상에 배가 고픈 것을
느끼고, 웃고 떠들고, 그러나 시리우스 블랙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알더라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이미 그에게서 수백만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해리는
자기가 그 베일을 젖히기만 했더라면 그에게로 고개를 돌려서 인사를 하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마치 짖는 것 같은 그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너한테 설명할 게 한 가지 더 있는 것 같다, 해리."
덤블도어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내가 왜 너를 반장으로 뽑지 않았는지 궁금했겠지? 이제야 고백하지만...
난... 네가 그게 아니더라도... 네가 지고 있는 책임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단다."
해리는 그를 쳐다보았다.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서 그의
은빛 턱수염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