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장 베일 속으로
시커먼 형제들이 난데없이 나타나서 좌우로 그들의 길을 가로막았다.
얼굴에 뒤집어쓴 두건의 틈으로 눈동자들이 반짝이고, 끝에 불이 켜진
열두 개의 지팡이들이 그들의 가슴을 똑바로 겨누었다. 지니가 겁에
질려서 숨이 턱 막히는 소리를 냈다.
"이리 내놓아라, 포토."
루시우스 말포이가 낮은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그는 손바닥을 펴서
해리에게로 내밀고 있었다.
해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은 완전히 덫에 걸려버렸고, 숫자도
고작 적들의 반이었다.
"이리 줘." 말포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시리우스는 어디 있지?"
해리가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 몇 명이 웃었다. 해리의 왼쪽에서 몹시 거친 여자의
목소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는 늘 알고 계시지!"
"맞아."
말포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자, 예언을 이리 줘."
"난 시리우스가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어!"
"난 시리우스가 어디 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겠어"
해리의 왼쪽에서 거친 목소리의 여자가 해리의 말을 흉내 내었다. 그
여자와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이 해리와 그의 친구들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그들의 지팡이 끝에서 반짝이는 빛들이 해리의 두 눈에
어지럽게 비쳤다.
"당신이 시리우스를 잡아갔어."
해리는 가슴속에서 알고 있는 공포와 97번째 줄에 들어서던 그 순간부터
마음을 짓눌렀던 불안감을 내색하지 않으며 말했다.
"난 알아. 시리우스는 여기 있어."
"어린놈이 깜짝 놀래서 잠을 깨는 바람에 꿈을 깼쪄."
여자가 아기처럼 앵앵거리는, 몹시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곁에서 론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꼈다.
"가만히 있어." 해리가 중얼거렸다.
"아직은-"
해리의 목소리를 흉내 내었던 여자가 발작하듯이 시끄러운 소리로 깔깔
웃었다.
"들었어? 들었어? 이놈이 지금 우리하고 싸울 작정인가 봐! 방금 자기
친구한테 뭐라고 몰래 지껄였어!"
"아, 당신은 나만큼 이 포터라는 인간을 잘 몰라, 벨라트릭스."
말포이가 부드럽게 했다.
"이 녀석은 원래부터 자기가 무슨 대단한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건 누구보다 어둠의 마왕께서 잘 아시지. 당장 예언을 이리 줘, 포터."
"난 시리우스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
해리가 말했다. 이제 그의 가슴속은 공포로 가득 차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신이 잡아갔다는 걸 안단 말이야!"
죽음을 먹는 자들이 시끄럽게 웃어 댔다. 물론 여자의 웃음소리가 제일
요란스러웠다.
"이젠 너도 현실과 꿈의 차이를 이해할 때가 됐어, 포터. 어서 예언을
나한테 넘겨.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지팡이를 쓰지 않을 수 없어."
말포이가 말했다.
"맘대로 해."
해리가 자기의 지팡이를 가슴 앞으로 치켜들면서 말했다. 그의 양쪽
옆에서도 다섯 개의 지팡이들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물론 론과
헤르미온느, 네빌, 지니와 루나의 지팡이였다. 잔뜩 꼬인 해리의 뱃속이
더욱 단단하게 꼬였다. 만약 시리우스가 거기에 없는 게 사실이라면, 그는
무모한 죽음을 당할지도 모를 상황에 친구들을 데리고 온 셈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먹는 자들은 아직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예언만 나한테 넘겨주면 아무도 다치지 않아."
말포이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번엔 해리가 웃을 차례였다. 해리가 깔깔 웃고 나서 말했다.
"그래, 좋아! 이게 워라고? 예언? 난 이걸 당신한테 넘겨주고,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곱게 집으로 돌려보내 준다, 이 말이지?"
해리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는 순간에 죽음을 먹는 자들 중 여자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아씨오 예-"
해리는 처음부터 그 여자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주문을
미처 다 말하기 전에 해리가 소리쳤다.
"프로테고!"
그 바람에 그의 손에서 유리 구슬이 아래로 미끄러졌지만, 간신히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다.
"어쭈, 젖비린내 나는 어린놈이 제법인걸, 포터?"
미친 듯 이글거리는 눈빛을 두건의 틈으로 번득이면서 여자가 말했다.
"좋아, 그럼-"
"안 된다고 했잖아!"
루시우스 말포이가 여자에게 꽥 고함을 질렀다.
"만약 저게 깨지는 날엔-!"
해리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빠르게 내달렸다. 지금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먼지 낀 실유리 구슬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물건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친구들과 함께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가는 것,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 때문에 친구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여자가 앞으로 나서면서 두건을 벗었다. 아즈카반에서의 생활이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얼굴을 말라빠진 해골처럼 만들어 버렸지만, 지금
그것은 들뜬 홍조로 빛나고 있었다.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구나, 응?"
그 여자가 말했다. 여자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좋아. 그럼, 제일 어린것부터 맛을 보여 줘야겠군."
여자가 바로 곁에 서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명령했다.
"내가 저 어린 계집애를 고문할 테니까, 너희들은 이놈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해."
해리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지니에게로 다가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우리 구슬을 쥔 손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리고 옆걸음질을 쳐 지니의 앞을
막아섰다.
"우리 중 누구라도 공격하면 구슬을 깨뜨리겠어."
그가 벨리트릭스에게 말했다.
"이게 깨지만 너희들 대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걸?"
그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면서 해리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예언이란 게 도대체 무슨 예언이지?"
해리가 물었다.
해리는 계속 말을 하는 것 외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빌의
팔이 해리의 팔에 닿았다. 네빌이 바들바들 떠는 게 느껴졌다. 그의 머리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친구들이 지금 어떻게든 거기서 빠져나갈 묘안을 생각하고 있어 주기만을
빌었다. 지금 그는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예언인지 모른다고?"
벨리트릭스가 말했다. 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 갔다.
"농담이겠지, 해리 포터?"
"아니야, 농담이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그는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어디에 허점이 있는지, 그들이 이곳을 탈출하려면
어느 곳을 치고 나가야 할 것인지를 살폈다.
"볼드모트가 어떻게 알고 이걸 원한다는 거지?"
죽음을 먹는 자들 몇몇이 흠칫 놀라는 소리를 냈다.
"감히 그분의 이름을?"
벨리트릭스가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그 여자가 또 주문을 걸 것 같아서 유리 구슬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말했다.
"왜? 내가 그자의 이름을 부르면-"
"입 닥쳐!"
벨라트릭스가 빽 소리를 질렀다.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그분의 이름을 들먹이다니, 더러운 잡종의
혓바닥으로 그분의 이름을 욕되게 하다니, 감히-"
"그자가 잡종이라는 걸 알아?"
해리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의 머리 바로 뒤에 서 있던 헤르미온느가
짧은 신음을 토했다.
'볼드모트, 그자의 엄나는 마녀지만 아빠는 머글이야-. 그런데
너희들한테는 자기가 순수 혈통이라고 속여 왔나 보지?"
"스투페-"
"안 돼!"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지팡이 끝에서 빨간 빛이 튀어나왔으나,
말포이가 황급히 방향을 꺾었다. 말포이의 주문에 막혀서 방향이 꺾인 그
빨간 빛이 해리의 바로 왼쪽에 있는 선반에 꽂히자, 유리 구슬 몇 개가
박살이 났다.
바닥에 쏟아져 내린 유리 조각에서 진주처럼 허옇고 연기처럼
흐물흐물한, 유령의 모습을 한 두 형상이 나타나더니 제각기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령 같은 두 형상들이 서로 앞을 다투듯이 말을 했지만,
말포이와 벨라트릭스가 고래고래 질러 대는 고함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동짓날에 올 거야. 새로운..."
턱수염이 무성한 노인의 형상이 말했다.
"안 된다고 했잖아! 에언을 뺏어야 해!"
"저놈이 감히... 저 자식이 감히..."
벨라트릭스는 대중없이 악을 써 댔다.
"저 더러운 잡종이..."
"예언을 뺏을 때까지 기다리란 말이야!"
말포이가 고함을 질렀다.
"... 그 후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야..."
젊은 여자의 형상이 말했다.
깨진 유리 구슬에서 나온 두 형상들이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흔적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들만이 바닥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리에게 한 가지 묘안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문제는 그 묘안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해리는 시간을 벌기 위해 또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 예언이 그렇게 특별한 거야? 설명이나 해주고 나서 뺏든지 말든지
해."
해리는 한 발을 옆으로 천천히 움직여서 다른 친구들의 발을 더듬어
찾았다.
"우리하고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 포터."
말포이가 말했다.
"난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야."
해리의 정신은 반은 대화에 가 있고, 반은 옆을 더듬는 한쪽 발에 가
있었다. 누군가의 엄지발가락이 발에 닿는 게 느껴졌다. 그는 그걸 세게
밟았다. 황급히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그 엄지발가락의 주인이
헤르미온느임을 가르쳐 주었다.
"왜?" 헤르미온느가 작게 속삭였다.
"미스터리 부서의 어딘가에 네 이마의 흉터가 생긴 이유가 숨겨져
있다는 걸 덤블도어가 말해 주지 않았나?"
말포이가 비웃듯이 말했다.
"난- 뭐라고?"
해리가 말했다. 그는 순간 자기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를 깜빡
잊어버렸다.
"내 흉터가 어쨌다고?"
"왜?"
헤르미온느가 다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렇게 된 건가?"
말포이가 아주 흡족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 몇 명이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그 틈을 타서 해리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입술을 움직여서
헤르미온느가 얼른 말했다.
"선반을 부숴-"
"덤블도어가 말하지 않았어?"
말포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음, 그렇다면 네가 왜 더 일찍 오지 않았는지를 이제야 알겠군, 포터.
어둠의 마왕께서도 네가 왜-"
"-내가 신호를 보내면-"
"-네가 왜 달려오지 않는지 궁금해하셨지. 예언이 숨어 있는 곳을 네
꿈속에서 가르쳐 줬을 때 말이야. 그분은 네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 호기심에 당연히 곧장 달려올 거라고 생각하셨지..."
"그랬어?"
해리가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말을 다른 친구들한테 전하는 게 느껴졌다.
해리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하려면 얼른 또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자는 내가 곧장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이유가
뭐지?"
"이유?"
말포이가 이번에는 더욱더,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흡족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리 부서에서 예언이 적힌 구슬을 꺼낼 수 있는 자는 말이야,
포터. 그 예언에 해당되는 장본인뿐이기 때문이야. 어둠의 마왕께서 다른
자들을 시켜서 훔치려고 했을 때 그 사실을 알아내셨지."
"그런데 그자가 나에 관한 예연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지?"
"너만이 아니야. 포터. 거긴 그분에 관한 예언도 있어... 네가 어렸을 때
어둠의 마왕께서 널 죽이려고 했던 이유가 뭔지 아직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나?"
해리는 두건의 틈으로 반짝이는 말포이의 회색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예언이 바로 해리의 부모님이 죽은 이유이고, 그의 울굴에
번개 모양의 흉터가 생긴 이유일까? 그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일까?
"그럼 누군가가 볼드모트와 나에 관한 예언을 했단 말이야?"
해리는 따뜻한 유리 구슬을 쥔 손에 좀더 힘을 주고 말포이의 두 눈을
빤히 노려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구슬은 스니치보다 아주 조금 더 클
뿐이었지만, 먼지가 잔뜩 끼어서 거칠게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자는 내가 와서 대신 이걸 꺼내 주길 기다렸다는 말이야? 왜
자기가 직접 하지 않았지?"
"직접 하신다고?"
벨라트릭스가 미친 듯이 찢어지는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어둠의 마왕께서 돌아오신 줄을 마법부 놈들은 고맙게도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그분께서 마법부에 직접 행차를 하신다고? 그 인간들이 내 귀여운
사촌한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어둠의 마왕께서 직접 오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다고?"
"그래서 자기의 더러운 일을 너희들한테 시켰군 그래? 그래서
스터지스나 보드를 시켜서 그걸 훔치려고 했단 말이지?"
해리가 말했다.
"똑똑해, 포터. 아주 똑똑해..."
말포이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나 어둠의 마왕께서는 네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잘 아시-"
"지금이야!"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등 뒤에서 다섯 친구들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리덕토!"
다섯 개의 주문이 다섯 방향으로 날아가고, 그들의 맞은편 선반들이
폭발했다. 높다란 진열장들이 휘청 넘어지고, 수백개의 유리 구슬들이
깨지고, 진주 빛의 허연 형상들이 허공에 나타나서 떠다녔다. 깨진 유리
조각들과 부서진 나무 조각들이 소낙비처럼 바닥에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
속에서 그 형상들의 목소리가 마치 아득히 먼 옛날로부터 울려 오는
메아리처럼 웅웅거렸다-.
"뛰어!"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진열장들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훨씬 더 많은
유리 구슬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망토 자락을
덥석 움켜잡고 앞쪽으로 내몰고, 지팡이를 뒨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가린
채 앞으로 내달렸다. 나무 조각과 유리 조각이 곧 그들을 파묻어 버릴
것처럼 쏟아졌다. 죽음을 먹는 자 하나가 먼지구름을 뚫고 해리에게로
돌진했다. 해리는 두건을 뒤집어쓴 그자의 얼굴을 팔꿈치로 강타했다. 휘청
넘어진 선반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고함과 고통의 비명을 질러 대고, 구슬 속에 갇혀 있다. 세상으로
나온 예언자들이 한꺼번에 무어라 주절거리는 소리들이 아득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해리는 앞에 트인 곳을 얼른 발견했다. 론과 지니와 루나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싼 채 그의 곁을 쏜살같이 달려가는 게 보였다. 무언가 묵직한
것이 그의 옆얼굴을 때렸지만,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달리기만 했다.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어깨를 덥석 잡았다. 헤르미온느가 "스투페파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 손이 떨어졌다.
그들은 97번째 줄의 끝에 이르렀다. 해리는 오른쪽으로 돌아서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요란한 발소리들이 그의 바로 뒤를 따라오고, 네빌을
재촉하는 헤르미온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들어왔던 그 문이
저만치 앞에서 반쯤 열려 있고, 밝게 반짝이는 크리스털 등피가 보였다.
해리는 예언이 들어 있는 구슬을 단단히 거머쥐고 그 문으로 달려 나갔다.
친구들이 곧 그의 뒤를 따라 뛰어나왔다...
"콜로포터스!"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외쳤다. 그러자 곧 찌그리지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혔다.
"다-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지?"
해리도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말했다.
그는 론과 루나와 지니가 먼저 그 문을 나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엉뚱한 데로 갔나 봐!"
헤르미온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가만!"
네빌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방금 닫힌 그 문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얼른 문에 귀를 대 보았다. 루시우스 말포이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노트는 그냥 내버려 둬. 그는 내버려 두란 말이야. 노트가 다친 건
문제도 아니야. 어둠의 마왕님의 관심은 예언뿐이야. 적슨, 너 이리 나와.
조를 짜야겠다. 둘씩 짝을 지어서 수색하는 거야. 그리고 예언이 우리 손에
들어올 때까지는 해리를 함부로 다뤄선 안 된다는 걸 명심해. 다른 것들은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들 해... 벨라트릭스, 로돌푸스, 왼쪽으로...
크리비, 라바스탄, 오른쪽... 적슨, 돌로호브, 저 문으로 나가... 맥네어와
애버리는 여기를 뒤지고... 록우드는 저쪽으로... 뮬시버, 넌 날 따라와!"
"이젠 어떻게 할 거야?"
헤르미온느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해리에게 물었다.
"음, 여기 그냥 서서 그들이 우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우선
이 문에서 멀어지고 봐야 해..." 해리가 말했다.
그들은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가며 달렸다. 계속 갈라졌다가 다시
닫히는 작은 알이 들어 있는 반짝이는 크리스털 등피 곁을 지나 둥글고
캄캄한 복도로 나가는 문 근처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해리는 방금
헤르미온느가 마법을 걸어서 닫았던 그 문을 아주 크로 무거운 것이 찧어
대는 소리를 들었다.
"옆으로 비켜서!"
거친 목소리가 말했다.
"알로호모라!"
문이 활짝 열렸다.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네빌은 황급히 책상 밑으로
몸을 던졌다. 죽음을 먹는 자들 두 명의 망토 아랫자락이 그들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들의 발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저 문으로 나갔을 거야."
거친 그 목소리가 말했다.
"책상 밑에 숨었을 거야."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무릎이 굽혀지는 게 해리의 눈에 보였다. 책상
밑에 엎드린 채로 지팡이를 앞으로 치켜들고 그가 소리쳤다.
"스트페파이!"
좀더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먹는 자에게 빨간 빛이 꽂혔다. 그가 뒤로
벌렁 넘어지면서 뒤에 있던 괘종시계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을 먹는 자는 옆으로 펄쩍 재빨리 해리의 주문을 피하고 자신의
지팡이를 헤르미온느에게 겨누었다. 헤르미온느는 그새 책상 밑에서 기어
나와서 막 지팡이를 치켜들려던 참이었다.
"아바다-"
해리가 황급히 바닥으로 몸을 굴려서 죽음을 먹는 자의 무릎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죽음을 먹는 자가 기우뚱하면서 조준이 빗나갔다. 책상을
뒤집어엎고 벌떡 일어난 네빌이 서로 뒤엉긴채 바닥에서 뒹구는 해리와
죽음을 먹는 자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외쳤다.
"엑스펠아르무스!"
해리의 지팡이와 죽음을 먹는 자의 지팡이가 그들의 손에서 쑥 빠지더니
예언의 방 쪽으로 날아갔다. 해리도 죽음을 먹는 자도 벌떡 일어나서
지팡이를 따라 뛰어갔다. 죽음을 먹는 자가 앞서가고 해리는 그의 뒤에
바싹 붙어서 뛰었다. 네빌이 그 뒤를 따라갔다. 그는 자기가 방금 저지른
짓 때문에 공포에 질려 있었다.
"옆으로 비켜, 해리!"
네빌이 소리쳤다. 그는 실수를 만회하려고 정신을 아주 바싹 차리고
있었다.
해리가 옆으로 휙 몸을 날리는 순간에 네빌이 다시 지팡이를 겨누고
우렁차게 외쳤다.
"스투페파이!"
빨간 빛이 죽음을 먹는 자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서 온갖 모양의
시계들이 가득 든, 유리문이 달린 캐비닛에 꽂쳤다. 태비닛이 앞으로
쓰러져서 바닥에 부딪히고 무수한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그 캐비닛이 다시 벌떡 일어나서 멀쩡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앞으로 쓰러져서 박살이 나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죽음을 먹는 자가 반짝이는 등피 곁에 떨어진 그의 지팡이를 잡아챘다.
그리고 뒤로 막 돌아서는 순간, 해리는 다시 책상 밑으로 몸을 던졌다.
두건이 미끄러져 내려 죽음을 먹는 자의 눈을 가리자 그는 한 손으로
그것을 벗어 버리며 소리쳤다.
"스투페-"
"스투페파이!"
그러나 그들의 뒤를 따라오던 헤르미온느의 주문이 아슬아슬하게 먼저
나갔다. 헤르미온느의 지팡이 끝에서 튀어 나간 빨간 빛이 죽음을 먹는
자의 가슴팍에 정통으로 꽂혔다. 그가 팔을 치켜든 채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리고, 그의 지팡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몸이 뒤로 넘어지면서 크리스털 등피를 덮쳤다. 해리는
그자가 덮친 크리스털 등피가 쓰러지면서 와장창 하는 단단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나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자의 머리가 마치 거대한
비눗방울을 뜷고 들어가는 것처럼 크리스털 등피 속으로 쑤욱 들어갔다.
사내의 몸은 탁자 위에 벌렁 드러누워 있고, 그의 머리는 등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씨오 지팡이!"
헤르미온느가 외쳤다. 컴컴한 구석에서 해리의 지팡이가 휘익 날아와서
헤르미온느의 손에 쥐어졌다. 그녀는 지팡이를 해리에게 던져 주었다.
"고마워, 자, 빨리 여기서-"
"저것 봐!"
네빌이 말했다. 그는 크리스털 등피 안에 들어가 있는 죽음을 먹는 자의
머리를 쳐다보면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들 셋은 다시 지팡이를 치켜들었지만, 아무도 주문을 외치진 않았다.
그들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입을 딱 벌린 채 쳐다볼
뿐이었다.
그자의 머리가 매우 빠르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검은
머리카락과 짧은 수염이 모두 살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하얗고 밋밋하게
변해 가고, 두 뺨이 보드라워졌다. 그의 머리가 마치 솜털이 보송보송한
복숭아처럼 변했다.
근육이 불거진 굵은 목 위에 아기의 머리가 달린 죽음을 먹는 자가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렸다. 그러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들의 눈앞에서 그자의 머리가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머리와 턱에서 억세고 새카만 털이 쑥쑥
돋아났다.
"저건 시간이야."
위압당한 목소리로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시간..."
죽음을 먹는 자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그러나
미처 몸을 일으키기 전에 또다시 머리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근처의 발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론?"
그 무서운 광경을 쳐다보고 있던 해리가 고개를 돌리면서 소리쳤다.
"지니? 루나?"
"해리!" 헤르미온느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죽음을 먹는 자가 그새 크리스털 등피에서 머리를 빼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너무도 기괴했다. 자그마한 아기의 얼굴에 붙은 작은
입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억센 두 팔을 정신없이 마구 휘둘렀다.
해리가 고개를 돌린 순간 억센 팔 한쪽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황급히 몸을 수그려서 피하고는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헤르미온느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아기를 해쳐선 안 돼!"
그걸 가지고 입씨름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와 친구들이 방금 나온
예언의 방에서는 아까보다 훨씬 더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친구들의 이름을 소리쳐 부른 걸 후회해야 했다. 그 바람에 그들의 위치가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알려졌던 것이다.
"빨리!"
해리가 말했다. 비틀거리는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를 뒤에 내버려
두고, 그들은 캄캄한 복도로 나가기 위해 방의 저편 끝에 반쯤 여린 문을
향해 달렸다.
그들이 중간쯤 갔을 때, 해리는 반쯤 열린 그 문으로 두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들어와서 그들에게로 곧장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황급히 옆으로 방향을 꺾어서 어둡고 비좁은 어느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거칠게 문을 닫았다.
"콜로-"
헤르미온느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문이 절대로 열리지 않게 하려는
주문이 입에서 미처 다 떨어지기도 전에 문이 다시 활짝 열리고 죽음을
먹는 자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승리의 함성인 양 두 명이 동시에 고함을
질렀다.
"임페디멘타!"
해리와 헤르미온느와 네빌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책상 위로 떨어진
네빌은 책상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책장에 등을 부딪힌 헤르미온느는
이내 와르르 쏟아져 내린 책에 파묻혔다. 해리는 돌벽에 뒤통수를
들이받아 곧 깨질 듯이 아팠다. 두 눈에서 작은 불꽃들이 튀고, 너무도
정신이 얼얼해서 잠시 몸을 가누지 못했다.
"잡았다!"
해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던 자가 소리쳤다.
"여기야, 바로 옆방-"
"실렌시오!"
헤르미온느가 소리쳤다. 그 사내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얼굴에
뒤집어쓴 두건에 뚫린 구멍으로 여전히 입이 움직이는게 보였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죽음을 먹는 자가 그를 옆으로 밀어젖혔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그 죽음을 먹는 자가 지팡이를 치켜드는 순간에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동시에 꺾이면서 앞으로 쓰러진 그는 해리의
바로 발 앞 양탄자 바닥에 얼굴을 찧고, 몸이 마치 널빤지처럼 굳어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잘했어, 해-"
그러나 헤르미온느가 방금 동작그만 주문을 걸었던 그 죽음을 먹는 자가
돌연 지팡이를 휘저었다. 그러자 자주색 불꽃 같은 것이 허공을 날았다. 그
불꽃이 헤르미온느의 가슴에 곧바로 꽂힌 순간, 헤르미온느는 깜짝 놀란
것처럼 '아!'하는 짧은 소리를 토하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곁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았다. 책상 밑에 숨었던
네빌도 지팡이를 가슴 앞에 치켜들고는 그쪽으로 급히 가기 위해 기어
나왔다. 네빌이 책상 밑에서 나오는 순간, 죽음을 먹는 자가 발로 그의
머리를 걷어찼다. 그 발은 먼저 네빌의 지팡이를 두 동강 낸 다음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네빌이 고통의 신음을 토하며 입과 코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채 다시 책상 밑으로 몸을 감추었다.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고
해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 그 죽음을 먹는 자는 그새 두건을 벗어 버리고
지팡이를 똑바로 해리에게 겨누고 있었다. 해리는 그자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예언자 일보>에서 보았던 길고 창백하고 잔뜩 뒤틀린 얼굴,
프레웨트 가 사람들을 살해했던 바로 그 마법사 안토닌 돌로호브였다.
돌로호브가 능글맞게 히죽 웃었다. 그는 지팡이를 잡지 않은 손으로
해리의 손에 단단히 쥐어진 예언과 자기 자신과 헤르미온느를 번갈아
가리켰다. 입으로 말을 할 수는 없는 상태였지만 그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뜻은 뻔한 것이었다. 예언을 나한테 넘겨주지 않으면 해리 너도 저 계집애
꼴이 될 거야...
"내가 이걸 너한테 주면 우리를 죽이진 않겠지!"
해리가 말했다.
머릿속이 온통 공포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는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헤르미온느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어깨가 아직
조금 따뜻한 것 같았지만, 헤르미온느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죽게
해선 안 돼, 죽게 해선 안 돼, 죽으면 내 탓이야...
"머하는 거야, 해리."
네빌이 책상 밑에서 사납게 소리쳤다. 그가 두 손을 내리자 엉망으로
깨진 코가 드러나고, 입과 턱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절대 두면 안 대!"
바로 그때 문 저쪽에서 또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돌로호브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가 또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아직도 그 작은 입으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커다란 두 팔을 정신없이 마구 휘둘러 대고 있었다.
해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돌로호브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해리의 주문이 그를 강타했다.
뻣뻣하게 굳은 그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고, 똑같은 마법에 걸려서 먼저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를 덮쳤다.
"헤르미온느."
해리가 헤르미온느를 흔들었다.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는 다시
비틀거리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헤르미온느, 정신 차려...."
"저노미 헤으미를 어떠케 한 거지?"
책상 밑에서 무릎으로 기어 나와 그들 곁으로 다가온 네빌이 말했다.
퉁퉁 부어오른 그의 코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나도 몰라..."
네빌이 헤르미온느의 손목을 짚어 보았다.
"맥바기 띠고 이써, 해리..."
그 순간 엄청난 안도감이 해리의 온 몸을 휩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살아 있구나!"
'어, 그런 거 가타..."
잠시 주위가 잠잠해졌다. 해리가 또 어디선가 요란한 발소리가 들리지나
않는지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저쪽 방에서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가 낑낑거리고 주절거리는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네빌, 여기서 출구가 멀지 않아. 지금 우린 둥근 방 바로 곁에 있어.
죽음을 먹는 자들이 또 나타나기 전에 그 방을 지나서 문을 제대로 찾기만
하면, 넌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복도로 나가서 승강기를 타고... 누구든지
찾아 봐... 경보를 울려..."
해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넌 어떠케 하려고?"
네빌이 피가 철철 흐르는 코를 소매로 슥 닦으면서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해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난 친구들을 찾으러 갈 거야." 해리가 말했다.
"음, 나도 너하고 가치 갈 거야."
네빌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헤르미온느는-"
"데리고 가는 거지 머."
네빌이 또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업을게- 싸움은 니가 나보다 잘하니까-"
그가 일어서서 헤르미온느의 한 팔을 잡고 해리를 쳐다보았다. 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머지 한 팔을 잡고, 축 늘어진 헤르미온느를 네빌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잠깐 기다려."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집어서 네빌의 손에 쥐어 주었다.
"네가 이걸 쓰는 게 좋겠어..."
네빌이 두 동강 난 그의 지팡이를 발로 차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천천히 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할머니가 아시면 나 죽일 거야."
네빌이 침울하게 말했다. 그가 말할 때마다 코에서 피가 튀었다.
"저거 우리 아버지가 쓰시던 거야..."
해리는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아기
머리의 죽음을 먹는 자가 비명을 지르면서 아무 데나 머리를 들이받고,
괘종시계들을 쓰러뜨리고 책상들을 뒤엎고, 미친 듯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 유리문이 달린 캐비닛은 아직도 넘어져서 박살이
났다가 다시 뒤로 벌떡 일어서서 멀쩡하게 벽에 서 잇는 걸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캐비닛 안에는 시간 여행 장치들이 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저자는 우릴 보지 못해. 빨리... 내 뒤를 바싹 따라와..." 해리가
속삭였다.
그들은 그 방을 빠져나와서 캄캄한 복도로 나가는 문 쪽으로 갔다. 지금
복도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네빌은 등에 업은 헤르미온느가
무거운지 조금 비척거리며 걸었다. 그들의 뒤에서 시간의 방의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벽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 해리는 돌벽에 뒤통수를 부딪힌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정신이 조금 어질어질했다. 그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머리를 조금 흔들면서 서 있었다. 이윽고 벽이 멈추었다. 벽이
멈춘 순간에 해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헤르미온느가 문에 남겨
놓았던 X자 표시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느 문으로 나가지-?"
그들이 나갈 문을 결정하기 전에 오른쪽 문이 활짝 열리면서 세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론!" 해리가 목멘 소리로 부르면서 그들에게로 뛰어갔다.
"지니- 너희들 모두-"
"해리."
론이 힘없이 킥킥 웃으면서 앞으로 다가와 해리의 망토 앞자락을
움켜잡고 초점이 풀린 눈으로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기 있었구나... 하하하... 너 우습다, 해리... 꼴이 말이 아니야..."
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에서는 아주 짙은 색의 액체가 한쪽
옆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론의 두 무릎이 제풀에 푹 꺾였다.
그러나 그가 해리의 망토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해리으 몸도
엉거주춤 숙여졌다.
"지니? 어떻게 된 거야?"
해리가 겁이 나서 물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던 지니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더니 숨을 헐떡거리면서 한쪽 발목을
움켜잡았다.
"발목이 부러진 거 같아. 뭔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어."
루나가 지니에게로 몸을 숙이며 작게 말했다. 다치지 않은 사람은
루나뿐이었다.
"네 명이 우릴 쫓아왔었어. 우리는 어느 캄캄한 방으로 들어갔는데,
행성들이 가득한 방이었어. 정말 이상한 방이었어. 우리가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해리, 우린 천왕성을 바로 옆에서 봤어!"
론이 말했다. 그는 아직도 힘없이 킥킥 웃고 있었다.
"들었어, 해리? 천왕성을 봤단 말이야... 하하하..."
론의 입가에 피거품이 일었다가 사그라졌다.
"한 놈이 지니의 발목을 잡았어. 그래서 내가 분해 주문을 쏴서
명왕성을 그놈의 얼굴 앞에서 터뜨렸지. 그런데...."
루나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지니를 가리켰다. 지니는 두 눈을 감은
채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론은 어떻게 된거야?"
론이 해리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계속 킥킥 웃자 해리는 몹시 겁이
났다.
"그놈들이 뭘로 공격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론이 조금 이상해졌어.
나도 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루나가 침울하게 말했다.
론이 해리의 귀를 잡아당겨서 입을 갖다 대고 여전히 힘없이 킥킥거리며
말했다.
"해리, 너 이 계집애가 누군지 알아, 해리? 루누이(멍청이라는 의미로
쓰임 : 역주)야... 루우니 러브굿... 하하하...."
"빨리 여기서 나가고 보자. 루나, 너 지니를 부축할 수 있겠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응."
루나가 지팡이를 귓등에 끼우고, 한 팔로 지니의 허리를 감아서
일으켰다.
"발목만 다쳤을 뿐이야. 나 혼자 걸을 수 있어!"
지니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에 옆으로 휘청
넘어지면서 얼른 루나를 붙잡았다. 해리는, 몇 달 전에 두들리에게 했던
것처럼, 론의 한 팔을 자기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출구를 한 번에 찾을 가능성은 고작 십이분의 일이었다.
그는 론을 부축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까지 불과 몇 미터 남지
않았을 때 저쪽에서 또 다른 문이 활짝 열리고, 세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뛰어 들어왔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맨 앞에서 달려왔다.
"저기 있다!"
그 여자가 찢어지는 소리로 외쳤다.
곧이어 기절 마법이 날아들었다. 해리는 바로 앞에 있는 문을 발로 차서
열고 론을 거칠게 떠밀어서 밖으로 내보내고, 헤르미온느를 업고 있는
네빌을 도우러 갔다. 벨라트릭스가 바로 등 뒤에까지 쫓아왔을 때 그들은
모두 문턱을 넘었다.
"콜로포터스!"
해리가 외쳤다. 문 저편에서 세 개의 몸이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들어가는 문은 얼마든지 있어! 우리가 잡았다! 여기야, 여기!"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뒤로 휙 돌아섰다. 그들은 다시 뇌의 방에 들어와 있었다. 방금
그자의 말처럼, 과연 사방의 벽에 문들이 나 있었다. 그들의 등 뒤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자가 외친 소리를 듣고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루나-네빌-도와줘!"
세 사람은 흩어져 뛰어다니면서 문마다 마법을 걸었다. 탁자를 들이받은
해리는 탁자 위로 몸을 굴려 넘어가서 눈앞에 나타난 문에 대고 외쳤다.
"콜로포터스!"
문 뒤에서 요란한 발소리들이 들렸다. 육중한 몸으로 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나고, 문짝이 곧 떨어질 듯이 요동을 쳤다. 루나와 네빌은 해리의
반대편 벽을 따라 가면서 마법을 걸고 있었다. 해리가 막 방의 한쪽 끝에
당도했을 때, 루나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콜로- 아아아아아..."
해리가 고개를 홱 돌렸다. 루나의 몸이 공중을 날아가고 있었다. 루나가
미처 마법을 걸지 못한 문으로 다섯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책상 위에 떨어진 루나는 책상 너머 바닥에 굴러 떨어져, 아까
헤르미온느가 그랬던 것처럼 툭 늘어져 버렸다.
"포터를 잡아!"
벨라트릭스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외치고는 해리를 향해 달려왔다.
해리는 고개를 숙인 채 방의 안쪽을 향해서 내달렸다. 그들이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예언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 자기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면서-
"이봐!"
론이 해리를 불렀다. 이전까지는 조금만 비틀거렸던 그가 이제는 꼭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면서 해리에게로 걸어갔다. 그는 여전히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해리, 이 방엔 뇌가 있어. 하하하, 징그럽지, 해리?"
"론, 저리 비켜, 엎드려-"
그러나 론은 이미 그의 지팡이로 수조를 겨냥하고 있었다.
'괜찮아, 해리. 저건 뇌야- 잘 봐- 아씨오 뇌!"
실내가 잠깐 얼어붙은 것 같았다. 해리와 지니, 네빌, 죽음을 먹는
자들이 모두들 멍하니 수조의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수조에서
뇌 한 개가 튀어나왔다. 마치 물고기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허공에 걸려 있는듯하더니, 이내 론을 향해서 날아갔다. 뇌가
팽그르르 돌면서 가느다란 때들이 꼬불꼬불 풀려 나왔다. 마치 필름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하하, 해리, 저것 좀 봐-"
물기가 촉촉한 내장을 풀어내는 뇌를 쳐다보면서 론이 말했다.
"해리, 이리 와서 이것좀 만져 봐, 정말 징그러-"
"론, 안 돼!"
뇌에서 풀려 나온 그 생각의 촉수에 론의 손이 닿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해리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틀림없이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가 론에게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론은 두 손으로 뇌를 잡은 뒤였다.
론의 살갗에 촉수가 닿은 순간 마치 밧줄처럼 그의 두 팔을 감아 대기
시작했다.
"해리, 이것 좀 봐-. 엇, 안 돼- 안 돼, 싫어- 안 돼- 그만 해- 그만-"
그러나 이제는 가느다란 촉수들이 론의 턱을 감고 있었다. 마치 문어
발처럼 몸에 달라붙은 뇌의 촉수들을 론이 마구 잡아뜯었다.
"디핀도!"
해리가 론의 몸을 칭칭 감은 촉수들을 떼려고 주문을 외쳐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론이 털썩 쓰러져서 몸에 감긴 촉수를 두 손으로 마구
두들겼다.
"해리, 저러다가 숨 막혀 죽겠어!"
부러진 발목을 움켜잡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지니가 소리쳤다. 바로
그때 한 죽음을 먹는 자의 지팡이 끝에서 빨간 빛이 튀어나와서 지니의
가슴에 정통으로 꽂혔다. 지니가 옆으로 픽 쓰러지며 까무라쳤다.
"스투비파이!"
네빌이 휙 돌아서서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겨냥하고 외쳤다.
"스투비파이, 스투비파이!"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 중 한 명이
네빌에게 기절 마법을 날렸다. 그 주문이 네빌을 스치듯 빗나갔다. 이제는
해리와 네빌 단둘이서 다섯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두 죽음을 먹는 자들이 날린 은색 빛이 화살처럼 날아와서
그들을 스치고 지나가 등 뒤에 있는 벽에 꽂혔다. 벽에 분화구 같은 것이
파였다. 해리가 그 벽을 향해서 뛰어가자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예언을 쥔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그는 방의 다른
한쪽으로 내달렸다. 지금 그는 오직 친구들로부터 멀찍이 죽음을 먹는
자들을 유인해 가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의 생각대로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우르르 해리의
뒤를 쫓아갔다. 의자를 쓰러뜨리고 탁자를 뒤엎으면서 허겁지겁 뒤를
쫓았지만, 예언을 깨뜨릴까 봐 누구도 감히 마법을 쏘지는 못했다. 해리는
아직 열려 있는 단 하나의 문을 향해서 뛰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들어왔던 그 문이었다. 네빌이 제발 론을 지켜 주고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 주기를 간절히 빌면서, 해리는 그 문으로 뛰어
들어갔다.그리고 몇 걸음도 채 못 달려서 그는 바닥이 사라져 버리는 걸
느꼈다.
그는 가파른 돌계단을 떼굴떼굴 구르고 계단참에서는 공처럼
튀어올랐다가 또 떼굴떼굴 굴러 떨어졌다. 이윽고 푹 꺼진 바닥에 돌로
쌓은 제단이 있고, 그 위에 돌로 지은 아치문이 있는 바로 그곳에, 등을
철퍼덕 부딪히며 멈추었다. 가슴에서 숨이 다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죽음으 먹는 자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리는 고개를 들었다. 뇌의
방에서 보았던 다섯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벌써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다른 문들을 통해서는 훨씬 더 많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그를
향해서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해리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너무도 심하게 떨리는 그의 두 다리는 몸을 간신히 지탱해
줄 뿐이었다. 예언이 적힌 구슬은 기적처럼 아직도 왼손에 말짱하게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지팡이도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그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한눈에 보려고 뒷걸음치면서 주위를 살폈다. 그의 다리에
무엇인가 딱딱한 것이 닿았다. 위에 아치문이 서 있는 그 제단이었다. 그는
뒷걸음질로 제단 위를 올라갔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모두 우뚝 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해리만큼이나 숨을 헐떡거리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는 자도 있었다. 돌로호브였다. 온몸을 꼼짝하지 못하게 했던 저주에서
풀려난 돌로호브가 능글맞게 웃으면서 해리의 얼굴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퍼터, 경주는 끝났어."
루시우스 말포이가 두건을 벗으면서 낮은 소리로 느릿느릿 말했다.
"자, 이제 순순히 예언을 나한테 넘겨줘..."
"다-다른 친구들을 돌려보내면 이걸 당신한테 주겠어!"
해리가 아주 절박하게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 몇 명이 킥킥 웃었다.
"넌 지금 나하고 거래를 할 처지가 아니야, 포터."
루시우스 말포이가 말했다. 얼마나 흡족한지 그의 창백한 얼굴이 조금
불그레해져 있었다.
"봐, 우린 열 명이고 넌 혼자야... 아니, 덤블도어는 그렇게 간단한
셈조차도 가르치지 않았단 말이야?"
"호자가 아이야!"
저만치 위에서 어떤 목소리가 외쳤다.
"나도 이써!"
해리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빌이 비틀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의 한 손에는 헤르미온느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네빌, 안 돼- 론한테 돌아가-"
"스투비파이!"
네빌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차례로 지팡이를 겨누면서 소리쳤다.
"스투비파이! 스투비-"
유난히 덩치가 큰 어느 죽음을 먹는 자가 뒤에서 네빌을 붙잡고 그의 두
팔을 마치 새의 죽지를 꺾듯이 뒤로 모아 잡았다. 네빌이 버둥거리며
발길질을 했다. 곳곳에서 죽음을 먹는 자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롱바텀 아냐, 응?"
루시우스 말포이가 코웃음을 치듯이 말했다.
"흠, 네 할머니는 우리 때문에 자식, 손자들을 잃는 데는 아주
직숙해졌을 거야... 네가 여기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그리 놀라지는
않을 거라고..."
"롱바텀?"
벨라트릭스가 말했다. 그 여자의 음산한 얼굴에 악의에 찬 미소가 환히
번졌다.
"이런, 이제야 인사를 하는군. 네 에미 애비를 만났을 땐 정말
즐거웠어..."
"가만 안 둘 꺼야!"
네빌이 뭐라고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거세게 발버둥을 치자, 그의
두 팔을 움켜잡고 있던 죽음을 먹는 자가 소리쳤다.
"누가 이놈을 어떻게 좀 해봐!"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벨라드릭스가 말했다.그 여자는 모처럼 되살아난 생기를 어떻게
감당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해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다시 네빌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야, 그럴 게 아니라, 롱바텀이 얼마나 오래 견디다가 제 에비
애비처럼 되는지 구경이나 하자고... 물론 포터가 예언을 곱게 넘겨주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저대로 두면 안 대!"
네빌이 고함을 질렀다. 그는 아주 정신이 나가 버린 것처럼 발길질을
하고 몸을 비틀었다. 벨라트릭스가 그와 그를 붙잡고 있는 자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갔다.
"저대로 두면 안 대, 해리!"
벨라트릭스가 지팡이를 추켜올렸다.
"크루시오!"
네빌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두 다리가 가슴팍까지 들어 올려졌다. 그
바람에 그를 붙잡고 있던 죽음을 먹는 자의 두 손도 위로 추켜올려졌다.
그가 네빌을 놓치자 바닥에 떨어진 네빌은 마구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러
댔다.
"이건 맛이 나 조금 보여 준 거야!"
벨라드틱스가 다시 지팡이를 치켜들자, 네빌이 비명을 뚝 그치고 그
여자의 발밑에 드러누워서 훌쩍훌적 울었다. 여자가 홱 고개를 돌리고
해리를 쏘아보았다.
"자, 포터, 예언을 넘겨주든지, 아니면 친구가 끔찍하게 죽는 꼴을
보든지, 빨리 결정해!"
해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결정이고 뭐고 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그는 아직도 따뜻한 구슬을 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말포이가 앞으로
펄쩍 뛰어왔다.
그때 두 개의 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열리면서 다섯 명이 뛰어
들어왔다. 시리우스, 루핀, 무디, 통스, 킹슬리였다.
말포이가 고개를 돌리고 지팡이를 쳐들었다. 그러나 통스가 이미 그에게
기절 주문을 날려 보낸 뒤였다. 해리는 그 주문이 목표에 명중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제단 밑으로 몸을 날렸다. 느닷없이 나타난
기사단의 단원들이 움푹 파인 바닥을 향해서 계단을 펄쩍펄쩍 뛰어
내려오면서 주문을 퍼부어 대자 죽음을 먹는 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둥댔다. 휙휙 나는 몸들과 번쩍번쩍하는 빛들 사이로 해리는 네빌이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을 보았다. 해리는 때마침 날아오던 빨간 빛을
고개를 홱 숙여서 피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네빌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너 괜찮아?"
해리가 소리쳤다. 또 한 개의 주문이 그들의 머리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응."
네빌이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했다.
"론은?"
"갠차늘 거야. 내가 여기로 올 때 여전히 뇌와 싸우고 있었어."
두 사람 사이의 바닥에 빛이 꽂혔다. 불과 몇 초 전에 네빌의 손이
있었던 자리가 푹 파였다. 그들이 깜짝 놀라서 뒷걸음칠 때, 난데없이
두툼한 손 하나가 나타나서 해리의 목을 움켜잡고 치켜들었다. 해리의 두
발이 땅바닥에서 떠 간들거렸다.
"그거 이리 내와. 예언을 내놓으란-"
웬 목소리가 바로 그의 귓가에서 말했다.
그자의 손아귀가 너무도 억세게 기도를 누르고 있어서 해리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눈물이 그득 맺힌 눈으로 해리는 3미터쯤 앞에서 시리우스가
죽음을 먹는 자와 결투를 벌이고 있는걸 보았다. 킹슬리는 한꺼번에 두
명을 상대하고 있었고, 아직도 계단 중간쯤에 있는 통스는 벨라트릭스를
향해서 주문을 날리고 있었다. 해리의 숨이 곧 끊어질 지경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지팡이 끝을 돌려서 그자의
허리를 겨누었으나, 주문을 입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자의 다른 한
손이 예언을 움켜쥐고 있는 해리의 손을 더듬어 찾고 있었다.
"아아악!"
느닷없이 네빌이 그자에게 돌진했다. 주문을 또렷하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네빌은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로 죽음을 먹는 자의 눈이 있는 뻥
뚫린 두건의 구멍을 푹 찔렀다. 죽음을 먹는 자가 해리의 목을 움켜잡고
있던 손을 놓고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해리가 휘익 돌아서서 막혔던 숨을
토하며 외쳤다.
"스투페파이!"
죽음을 먹는 자가 디로 벌렁 넘어졌다. 그의 두건이 벗겨졌다.
맥네어였다. 벅빅을 죽인 자로 추정하고 있던 바로 그자였다. 그자의 한쪽
눈이 퉁퉁 부어오르고, 벌겋게 피가 맺혀 있었다.
"고마워!"
해리가 말했다. 그리고 황급히 네빌을 옆으로 잡아당겼다. 시리우스와
죽음을 먹는 자가 결투를 벌이며 바로 곁에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싸움이
얼마나 격렬하던지, 그들의 지팡이가 흐릿해 보일 정도였다. 바로 그대
해리의 발에 무언가 둥글고 단단한 것이 밟혔다. 해리는 자기가 구슬을
떨어뜨린 줄 알고 순간 온몸이 오싹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디의 마법의
눈이라는 걸 곧 알아보았다. 무디의 마법의 눈이 뱅글뱅글 돌면서 바닥을
굴러가고 있었다.
눈동자의 주인은 바로 옆에 쓰러져서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무디를 쓰러드린 자가 이번에는 해리와 네빌을 덮쳐 오고 있었다.
돌로호브였다. 그의 길고 창백한 얼굴이 승리의 기쁨으로 잔뜩 뒤틀려
있었다.
"타란탈레그라!"
돌로호브가 네빌에게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그러자 네빌이마치
뜨거운 불덩이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두 발을 허둥거리다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자, 이번엔 포터-"
그가 헤르미온느를 공격할 때처럼 지팡이를 쳐들었다가 그어 내리는 걸
보고 해리가 소리쳤다.
"프로테고!"
날이 무딘 칼 같은 것이 얼굴을 스치는 걸 느끼는 순간에 해리가 옆으로
휘청 쓰러지면서 먼저 쓰러져 두 발을 쳐들고 버둥거리던 네빌을 덮쳤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날려 보낸 방패 마법 덕분에 최악의 타격은 간신히
면한 것 같았다.
돌로호브가 또다시 지팡이를 쳐들었다.
"아씨오 예-"
시리우스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돌로호브를 어깨로 들이받았다.
돌로호브가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구슬이 또 해리의 손에서 미끄러졌으나,
손가락으로 간신히 움켜잡았다. 시리우스는 이제 돌로호브와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칼처럼 번득이는 두 지팡이 끝에서 불꼿이 튀었다.
돌로호브가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공격했을 대처럼 다시 한 번 지팡이를
쳐들었다가 내리그으려고 했다. 해리가 벌떡 튀어 오르면서 고함을 질렀다.
"페트리피쿠스 토탈루스!"
그러자 돌로호브의 두 팔과 두 무릎이 푹 꺾이고, 뒤로 휘청 넘어지면서
등을 바닥에 찧었다.
"퇴고야!"
시리우스가 해리의 머리를 눌러서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두 개의 주문을
피하면서 소리쳤다.
"자, 이제 넌 여기서-"
그들은 또 황급히 몸을 숙였다. 초록색 빛이 시리우스의 머리 위를
스쳐갔다. 저편의 계단 중간쯤에서 통스가 떼굴떼굴 굴러 떨어지고,
벨라트릭스가 의기양양하게 뒤를 따라 뛰어 내려오는 게 보였다.
"해리, 예언을 꼭 쥐고, 네빌을 데리고 뛰어!"
시리우스가 소리치고는 벨라트릭스를 향해서 내달렸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지 해리는 보지 못했다. 두건을 벗어던진 곰보 록우드와 맞서
싸우는 킹슬리가 잠깐 보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막 네빌에게로 다가가려는
순간에 또 초록색 빛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일어설 수 있겠어?"
해리가 네빌의 귀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네빌의 두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제멋대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팔을 내 목에 감아-"
네빌이 한 팔을 해리의 목에 감았다. 해리가 끄응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네빌의 두 다리는 아무렇게나 버둥거릴 뿐 전혀 그의 몸을 지탱해 주지
못했다. 바로 그때, 웬 남자가 또 그들을 들이받았다. 해리와 네빌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지고, 네빌의 두 다리가 마치 뒤집힌 풍뎅이의 다리처럼
바쁘게 버둥거렸다. 뒤로 넘어지는 순간에 해리는 구슬이 깨질세라 황급히
왼손을 공중으로 쳐들었다.
"예언, 예언을 이리 줘, 포터."
루시우스 말포이의 목소리가 해리의 귓가에서 으르렁거렸다. 말포이의
지팡이 끝이 명치를 아프게 지르고 있는 걸 해리는 얼른 깨달았다.
"싫어- 웃기지 마... 네빌- 이거 받아!"
해리가 구슬을 던졌다. 네빌이 몸을 굴려서 가슴팍에 떨어지는 구슬을
덥석 붙잡았다. 말포이가 네빌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나 해리가
황급히 어깨 너머로 지팡이를 겨누고 소리쳤다.
"임페디멘타!"
말포이의 등에 해리의 주문이 꽂혔다. 해리가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포이가 제단에 몸을 찧었다. 제단 위에서는 이제 시리우스가
벨라트릭스와 결투를 벌이고 있었다. 몸을 추스른 말포이가 다시 해리와
네빌에게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주문이 튀어나오려는
찰나에 루핀이 뛰어들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해리, 친구들을 데리고 빨리 여기서 나가!"
해리가 네빌의 어깨를 움켜잡고 일으켜서 계단의 맨 아랫단에 세웠다.
네빌의 두 다리는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며 제멋대로 버둥거릴 뿐 전혀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해리는 남아 있는 힘을 다 짜내서 네빌을
끌어당기며 한 계단을 더 올라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주문이 해리의 두 발치에 꽂혔다. 돌계단이 부서지면서
그는 다시 아랫단으로 떨어지고, 네빌은 풀썩 주저앉았다. 네빌이 여전히
두 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가자!"
해리가 다시 네빌의 망토 어깨 부분을 덥석 움켜잡고 끌어 당기면서
소리쳤다.
"다리에 힘을 줘 봐-"
그가 다시 한 번 힘껏 잡아당기자 네빌의 망토 왼쪽 솔기가 부욱
찢어졌다. 작은 유리 구슬이 주머니에서 흘러내리는 게 얼핏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제멋대로 버둥거리던 네빌의 한
발이 구슬을 정통으로 차 버렸다. 구슬이 오른쪽으로 3미터쯤 날아가다가
계단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구슬이 깨진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던
해리와 네빌의 입이 저절로 쩍 벌어졌다. 진주처럼 허연, 눈이 엄청나게 큰
사람의 형상이 허공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 외에는 아무도 그걸 보지
못했다. 해리는 그 형상의 입이 움직이는 걸 분명히 보았지만,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부딪히고 부수는 소리, 비명 소리, 고함 소리가 너무도
시끄러워서 예언은 단 한 마디도 해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형상이
입을 다물고 곧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해리, 미안해!"
네빌이 소리쳤다. 여전히 두 다리를 버둥거리는 네빌의 얼굴에 괴로운
빛이 가득했다.
"정말 미안해, 해리. 일부로 그런 게 아니었어-"
"괜찮아!"
해리가 소리쳤다.
"빨리 일어나기나 해. 빨리 여기서 나가야-"
"더블도어!"
네빌이 말했다. 해리의 어깨 너머로 쳐다보는, 땀방울이 송송 맺힌
네빌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뭐라고?"
"더블도어!"
해리는 네빌이 쳐다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들 바로 위에, 뇌의
방으로 통하는 문틀을 마치 액자인 양 뒤로 하고, 알버스 덤블도어가
떡하니 서 있었다. 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그의 하얀 얼굴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그를 본 순간, 해리는 강렬한 전류가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뻗쳐
가는 걸 느꼈다. 이젠 살았어.
빨리 거기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어느새 잊어버린 네빌과 해리를
향해서 덤블도어가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 그가 계단 아래까지 거의 다
내려왔을 때에야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가 나타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저 편에서 어느 죽음을 먹는 자가
원숭이처럼 허우적대며 계단을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덤블도어의 주문이
휙 날아가고,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낚싯바늘에 꿰인 것처럼 그의 몸이
너무도 가볍게 휘인 뒤로 날아왔다.
두 명만이 아직 싸우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벨라트릭스가 쏜 빨간 빛을 피하는 걸
보았다. 시리우스가 그 여자를 보고 껄껄 웃고 있었다.
"또 해보시지, 실력이 형편없군!"
그의 고함 소리가 움푹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벨라트릭스가 다시 날려 보낸 빨간 빛이 시리우스의 가슴에 정통으로
꽂혔다.
시리우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두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해리는 네빌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딱히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도 없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면서 지팡이를 앞에 쳐들었다.
덤블도어도 제단 쪽으로 돌아섰다.
시리우스의 몸이 바닥에 닿기까지는 한 세월이나 걸릴 것 같았다. 그의
몸이 아주 보기 좋게 휘청 휘어지면서 뒤로 넘어가더니, 아치문에 걸린
너덜너덜한 베일 속으로...
바로 그때 해리는 대부 시리우스의, 한때는 미남이었던 헙수룩한 얼굴에
공포와 경악이 뒤섞이는 걸 보았다. 베일을 덮치면서 그 낡은 아치문
안으로 스러진 시리우스의 몸이 베일 뒤로 사라져 버리고, 잠깐 스치고
지나간 돌풍에 펄럭였다가 다시 가라앉는 것처럼 천천히 일렁였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의기양양한 고함 소리가 해리의 귀를 울렸다.
그러나 그는 그 소리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시리우스가 아치문 안으로 쓰러졌지만, 이제 곧 다시 나와서...
그러나 시리우스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시리우스!" 해리가 소리쳤다.
"시리우스!"
해리는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면서 움푹 꺼진 바닥에 내려섰다.
시리우스는 단지 그 베일 뒤에 쓰러져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서
일으켜 세워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그러나 그가 제단을 뛰어오르려는 순간에 루핀이 뒤에서 두 팔로 해리를
끌어안았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해리-"
"저기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면 되잖아요!"
"늦었어, 해리-"
"아니야, 내가 들어가서-"
해리가 안간힘을 쓰며 버둥거리자 루핀이 그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해리... 아무것도... 시리우스는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