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진로 상담
"하지만 왜 너는 더 이상 오클러먼시 수업을 받지 않는 거니?"
헤르미온느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말했잖아."
해리가 중얼거렸다.
"스네이프는 이제 내가 기초를 익혔기 때문에 혼자서도 충분히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이젠 그 이상한 꿈도 꾸지 않는단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의심스러운 듯이 추궁했다.
"어느 정도는."
해리는 슬그머니 헤르미온느의 시선을 피했다.
"난 네가 완벽하게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스네이프의
수업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헤르미온느가 흥분해서 말했다.
"해리, 내 생각에는 다시 스네이프를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싫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 알았지, 헤르미온느?"
부활절 휴가가 시작된 첫날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늘 그랬듯이, 그들 세 사람을
위한 공부 계획표를 다시 만드느라 거의 온종일 시간을 보냈다. 해리와 론은
헤르미온느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녀와 입씨름을 하느니 그 편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경우에는 그녀가 만든 계획표가 꽤 유용하기도 했다.
론은 앞으로 시험이 겨우 육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어떻게 그 사실에 그토록 놀랄 수가 있니?"
헤르미온느는 지팡이로 론의 계획표 위에 그려진 작은 네모칸을 톡톡 치며
말했다. 그때마다 네모 칸들이 과목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색깔로 변했다.
"나도 모르겠어...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론이 말했다.
"자, 여기 있어."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계획표를 내밀었다.
"이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우울한 표정으로 계획표를 내려다보던 론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우와, 매주 하루 저녁은 쉴 수 있게 해주었네!"
"그건 퀴디치 연습 때문이야."
헤르미온느의 말을 듣자, 론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론이 말했다.
"우리가 퀴디치 우승컵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 아빠가 마법부 장관이 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야."
헤르미온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맞은편 휴게실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해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한편 크룩생크는 앞발로 해리의 손을 툭툭
치면서 자신의 귀를 긁어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무슨 일 있니, 해리?"
"나? 아무 일도 없어."
해리는 얼른 대답하더니, '방어 마법 이론' 책을 집어 들고 목록에서 뭔가를
찾는 척했다. 크룩생크는 그만 그를 단념하고, 헤르미온느의 의자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조금 전에 초를 봤어..."
헤르미온느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초도 굉장히 안 좋아 보이던데... 너희들 또 싸웠니?"
"뭐? 아, 그래, 그랬어."
해리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겨서 내심 반가웠다.
"뭐 때문에?"
"그 밀고자 친구, 마리에타 때문에."
해리가 대답했다.
"그렇군. 네가 싸운 것도 당연해!"
론이 새로 짠 공부 계획표를 앞에 놓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 애만 아니었어도..."
론은 마리에타 에지콤에 대해서 온갖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덕분에
해리는 아주 편해졌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펜시브에서 보았던 장면들을
생각하면서, 론이 성난 표정을 지으며 잠깐 숨을 돌릴 때마다 '맞아.' '그래.' 하고
장단을 맞추거나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해리는 마치 그 기억이 자신의 내부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의 부모님은 틀림없이 훌륭한 분일 거라고 믿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네이프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퍼붓는 비난들을 간단히 무시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해그리드와 시리우스 같은 사람들은 그에게 그의 아버지가
너무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 정작 시리우스 자신도 어떤
인간이었는지 보라고 해리의 마음속에서 끈질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리우스도
똑같이 나쁜 사람이었어, 안 그래?) 언젠가 맥고나걸 교수님이 그의 아버지와
시리우스가 학교에서도 소문난 말썽꾼이었다고 말하는 걸 얼핏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두 사람이 쌍둥이 위즐리 형제의 선구자쯤 된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해리는 프레드와 조지가 장난으로 누군가를 거꾸로 매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주, 정말로 증오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포이나
혹은 그런 일을 당해도 마땅한 사람이...
해리는 스네이프라면 제임스의 손에 당해도 마땅한 짓을 했을 거라고,
어떻게든 제임스를 옹호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릴리도 말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그 애가 너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니?"라고. 그리고 제임스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던가? "그냥 저 녀석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지.
네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모르겠지만." 제임스는 단지 시리우스가
심심하다고 말했기 때문에 이 모든 장난을 시작했을 뿐이다. 해리는 그리몰드
광장에서 루핀이 했던 말을 새삼 떠올렸다. 그때 루핀은 혹시라도 그가 제임스와
시리우스를 제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에, 덤블도어가 그를 반장으로
뽑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가 펜시브에서 본 루핀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기만 했다...
해리는 릴리가 이 일을 말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계속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제임스를 향해 소리를 지를 때, 그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을 생각할 때마다 해리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웠다. 릴리는
분명히 제임스를 증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제임스가 강제로 그녀와 결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지난 5년 동안 해리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위안과 용기를 얻어 왔다. 누군가
그에게 제임스를 꼭 닮았다는 말을 하면, 해리의 마음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차가워지면서 비참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부활절 휴가가 지나면서, 날씨는 점점 더 맑고 따뜻해졌으며 산들바람도
불어왔다. 하지만 해리는 다른 5학년, 7학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성 안에 갇힌
채, 도서관을 왔다갔다하면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우울한 기분이 모두
다가오는 시험 때문인 척했다. 다른 그리핀도르 학생들도 모두 공부에
넌덜머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해리의 핑계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리, 내가 말하는 걸 듣고 있었니?"
"엉?"
해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혼자 앉아 있는 도서관 책상 앞에 한바탕
바람을 쐬고 온 것처럼 보이는 지니 위즐리가 다가와 앉았다. 일요일
저녁이었다. 헤르미온느는 고대 룬 문자를 복습하기 위해서 그리핀도르 탑으로
먼저 돌아갔고, 론은 퀴디치 연습 중이었다.
"어, 안녕."
해리는 책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인사했다.
"너는 왜 연습 안 하니?"
"연습은 끝났어." 지니가 말했다.
"론은 잭 슬로퍼를 병동에 데려다 주러 갔어."
"왜?"
"잘 모르겠어. 아마 자기 방망이에 맞고 쓰러진 것 같아."
지니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소포가 방금 도착했어. 엄브릿지의 새로운 검열 과정을 막 통과한
거야."
지니는 갈색 종이로 포장한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누군가 한 번 풀어
보았다가 되는대로 다시 싼 흔적이 역력했다. 상자 위에는 빨간 잉크로 마구
휘갈겨 쓴 '호그와트 장학사에 의한 검열 통과'라는 글씨가 보였다.
"엄마가 보내신 부활절 달걀이야. 네 것도 있어... 여기..."
지니는 그에게 작은 얼음 스니치들로 장식한, 멋진 초콜릿 달걀을 내밀었다.
포장된 설명서에는 피징 위즈비 한 봉지가 들어 있다고 쓰여 있었다. 한동안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해리는 갑자기 목구멍으로 어떤 덩어리 같은
것이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해리?"
지니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 괜찮아."
해리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목구멍을 꽉 막고 있는 덩어리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도대체 부활절 달걀을 보고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은 정말 기분이 안 좋은 것처럼 보여."
지니가 단념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초와 이야기를 해보면 틀림없이..."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초가 아니야."
해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누구야?"
지니가 물었다.
"난..."
해리는 혹시 듣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핀스 부인은 책꽂이
몇 칸 너머에서, 뭔가에 쫓기는 듯한 표정을 한 한나 아보트에게 책을 대출해
주고 있었다.
"난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
해리가 중얼거렸다. 해리는 꼭 뭔가를 먹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손을 가만히
두고 있기가 멋쩍어서 부활절 달걀의 포장을 벗긴 다음, 커다랗게 한 조각을
잘라 입 안에 넣었다.
"그래, 정 그렇게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지니도 초콜릿 조각 하나를 집어 먹으며 천천히 말했다.
"이봐, 엄브릿지가 모든 벽난로를 감시하고 우리 편지를 다 읽어 보고
있는데?"
"프레드와 조지 같은 형제들과 자라다 보면, 뭐든 불가능한 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지. 충분한 배짱만 있다면 말이야."
지니가 신중하게 말했다.
해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초콜릿 탓인지도 몰랐다(루핀은 항상
디멘터들과 마주친 다음에는 뭔가를 먹으라고 충고했다). 아니면 지난 일주일
동안 내내 속으로만 맴돌고 있던 말을 마침내 속 시원히 털어놓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해리는 왠지 희망이 솟았다.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오, 부인, 깜빡 잊었어요..."
지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핀스 부인은 주름진 얼굴을 분노로 일그러뜨리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초콜릿을 먹다니!"
핀스 부인이 고함을 질렀다.
"나가... 나가... 어서!"
핀스 부인은 지팡이를 휘둘러서 해리의 책과 가방, 잉크병이 도서관 밖으로
도망치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아가도록 만들었다. 그것들은 달아나는 두 사람
머리에 번갈아 가며 세게 부딪혔다.
부활절 휴가가 끝나기 바로 직전에 마치 다가올 시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려는 듯이, 마법사들의 각종 직업에 관한 전단과 안내문, 소개 책자 등이
그리핀도르 탑의 책상 위에 등장했다. 동시에 게시판에는 공고문이 나붙었다.
진로상담
모든 5학년 학생들은 여름 학기 첫 주 동안 각 기숙사의 사감들과 면담을
통해 장래 직업에 대해서 상의할 것. 개인 상담 시간은 다음과 같음.
해리는 명단을 살펴보았다. 그는 월요일 두 시 삼십 분에 맥고나걸 교수와
면담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점술 수업 대부분을 빼먹을 수밖에
없었다. 해리와 다른 5학년 학생들은 부활절 휴가의 마지막 주말 동안, 학생들을
위해 남겨 놓은 모든 직업 안내서를 하나하나 읽어 보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난 치료사 같은 건 꿈도 안 꿔."
휴가의 마지막 날 저녁에 론이 말했다. 그는 제일 앞에 성 뭉고 병원의 상징인
X자 모양의 뼈와 지팡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전단지를 한창 읽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 보면 N,E,W,T 수준의 마법약과 약초학, 변신술, 마법,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에서 최소한 'E'를 맞아야 한대. 제기랄...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거
아니야, 안 그래?"
"하지만 그건 아주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직업이잖아."
헤르미온느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선명한 분홍색과 오렌지색 전단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전단 앞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머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까?"
"머글과 접촉하는 데에는 별로 많은 자격 조건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들이 원하는 건 단지 머글 연구 과목의 O,W,L 뿐이야...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당신의 열정과 인내와 유머 감각입니다!"
"하지만 우리 이모부와 접촉하려면 유머 감각 이상의 능력이 필요할 거야."
해리가 우울하게 말했다.
"예를 들면 적당한 때에 재빨리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감각 같은 것."
해리는 마법사 은행에 관한 안내서를 절반쯤 넘기고 있었다.
"이것 좀 들어 봐. '당신은 여행과 모험, 그리고 구체적이면서 위험이 뒤따르는
보물 보너스가 주어지는 도전적인 직업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린고트 마법사 은행에 취업을 고려해 보십시오. 최근 그린고트 은행에서는
해외로 나갈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주어지는 새로운 저주 해독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산술점 과목을 요구하는군. 헤르미온느, 넌 이 일을
할 수 있겠다!"
"난 은행 일에는 관심 없어."
헤르미온느는 이제 '트롤 경비원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읽는 중이었다.
"이봐."
누군가의 목소리가 해리의 귓전을 울렸다. 해리가 뒤를 돌아보니 프레드와
조지가 어느 사이에 그들 옆에 와 있었다.
"지니가 너에 대해서 우리와 의논을 했어."
프레드가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바람에 마법부에서 나온
직업 안내서 몇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니 말이 네가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면서?"
"뭐라고?"
'마법 사고와 재난부 문 두드리기'라는 안내서를 집어 들려고 막 손을 뻗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
해리는 최대한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 그냥 그러면 좋겠다고..."
"웃기지 마."
헤르미온느가 허리를 쭉 펴면서,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엄브릿지가 모든 난로를 다 감시하고 부엉이들을 전부 수색하고 있는데?"
"우리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조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이건 단지 어떻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느냐 하는 문제야. 부활절 기간
동안 우리의 교란 작전 전선이 꽤 조용했다는 걸 너희들도 눈치 챘겠지?"
"우리는 스스로 자문했지. 휴일 동안에 소란을 일으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고 말이야."
프레드가 말을 이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어. 물론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야."
프레드는 엄숙한 태도로 헤르미온느를 향해 고개를 까닥했다. 헤르미온느는
그들의 사려 깊은 배려에 깊이 감동받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평소처럼 영업을 해야지."
프레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왕 우리가 소동을 일으키기로 작정을 했다면, 해리가 시리우스와 잡담 좀
나누게 해주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헤르미온느는 몹시 아둔한 사람에게 아주 간단한 문제를 설명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설사 주의를 다른 곳으로 끈다고 해도, 해리가 어떻게 시리우스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엄브릿지의 방이 있잖아."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은 두 주일 내내 그 생각을 한 끝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엄브릿지 자신이 감시를 받고 있지 않은 것은
오직 자기 방에 있는 난로뿐이라고 해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너... 제정신이니?"
헤르미온느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한편 론은 재배 버섯 무역에 관한 직업
안내서를 천천히 내려놓고 걱정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해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첫째, 그 방에는 어떻게 들어가려고?"
해리는 이미 그 문제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생각해 두었다.
"시리우스의 칼이 있잖아."
"뭐라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시리우스가 나에게 어떤 자물쇠라도 다 열 수 있는 칼을
주었어."
해리가 설명했다.
"그러니까 엄브릿지가 설사 문에 알로호모라 마법을 걸었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거야. 틀림없이 엄브릿지는..."
"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니?"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물었다. 그 광경을 보자, 해리는 그리몰드 광장에서 처음
저녁 식사를 하던 날, 위즐리 부인이 남편을 다그치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잘 모르겠어."
론은 갑자기 자신의 의견을 물어보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해리가 하고 싶다면, 그건 해리가 결정할 문제잖아, 안 그래?"
"과연 진정한 친구이자 위즐리 가문 사람다운 발언이야."
프레드가 론의 등을 탁 쳤다.
"좋아, 그렇다면 우리는 내일 당장 이 일을 실행할 생각이야. 수업이 끝난
직후에 말이지.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복도로 나와 있어야 가장 효과가 클
테니까 말이야. 해리, 우리는 동쪽 건물 어딘가에서 일을 벌이기 시작해서
엄브릿지를 곧장 방에서 끌어내도록 할게. 너에게 확실히 벌어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십 분?"
프레드는 이렇게 말하며 조지를 바라보았다.
"그 정도쯤이야 간단하지."
조지가 말했다.
"어떤 소동을 벌일 건데?"
론이 물었다.
"곧 보게 될 거야, 꼬마 동생."
프레드와 조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다섯 시쯤에 역겨운 그레고리 동상이 있는 데로 쫓아온다면 말이지."
다음 날 아침 일찍 해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마법부에서 징계 청문회가 열리던
날 아침만큼이나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지 엄브릿지의 방에 몰래
들어가서 그녀의 벽난로를 통해 시리우스와 이야기할 생각만으로 초조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분명히 나쁜 일이었지만, 오늘은 스네이프의 방에서
쫓겨난 이후 처음으로 스네이프와 가까이 만나는 첫날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동안 오늘 일에 대해서 생각하며 잠시 침대에 누워 있던 해리는 조용히
일어나서 네빌의 침대 옆에 있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참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침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투명하고 진주 빛 광채를 띠었다.
바로 그의 눈앞에 우뚝 솟은 너도밤나무가 내려다보였다. 한때 그의 아버지가
스네이프를 괴롭히던 곳이었다. 해리는 과연 그가 펜시브에서 본 장면을 설명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시리우스로부터 들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반드시 시리우스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의
아버지의 행동을 변명할 수 있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는지...
그때 뭔가가 해리의 주의를 끌었다. 금지된 숲 가장자리에서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부신 햇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나무 사이로 걸어 나오는 해그리드가 보였다. 다리는 저는 것 같았다. 그는
비틀거리며 오두막집 문 앞으로 걸어가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해리는 몇
분 동안 오두막집을 지켜보았지만, 해그리드는 다시 나오지 않고, 그 대신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소한 불도 피우지 못할 만큼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해리는 창가에서 돌아서서 트렁크로 다가갔다. 그리고 옷을 입기 시작했다.
엄브릿지의 방에 몰래 들어갈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별로 마음 편한
하루가 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의
집요한 설득에 시달리는 것까지는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해리가 다섯 시에 실행하고자 하는 일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심지어 마법의
역사 시간에조차 생전 처음으로 론과 해리만큼이나 빈스 교수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들으면서, 계속 경고의 말을 속삭였다. 해리는 그냥 모르는 척 무시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엄브릿지 손에 잡히기라도 하면, 퇴학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네가 스누플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까지 금방 알아차릴
거야. 그럼 이번에는 너에게 강제로 베리타세룸을 먹여서 자백을 하도록 만들
거야."
"헤르미온느, 이제 해리에게 잔소리는 그만 하고 빈스 교수 말이나 듣지
않을래? 안 그러면 앞으로는 나라도 필기를 해야 하나?"
옆에서 론이 부루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도 기분 전환 삼아 노트 필기라는 걸 좀 해봐. 그런다고 안 죽어!"
결국 지하 교실에 갈 때까지, 해리도 론도 헤르미온느에게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침묵을
기회로 삼아서 무시무시한 경고를 쉬지 않고 퍼부었다. 그녀가 어찌나
열정적으로 씩씩거리며 중얼거렸는지, 시무스는 냄비가 어디 새는 것은 아닌가
무려 오 분 동안이나 살펴보았다.
한편 스네이프는 해리는 완전히 무시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버논 이모부가 가장 즐겨 써먹던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에,
해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더 심하게 괴롭히지 않는 것만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사실 평소에 스네이프로부터 온갖 조롱과 비난을 받으며
견뎌야 했던 것에 비하면, 이 새로운 방식은 오히려 훨씬 더 나았다. 그리고
혼자 가만히 내버려 두니까 마력 강하제도 더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은근히 기뻤다. 수업이 끝나자, 해리는 자신이 만든 마법약을 병에 담아서
코르크 마개로 막은 다음, 점수를 받기 위해 스네이프의 책상 앞으로 가져갔다.
드디어 이번에는 잘하면 'E'를 받을 수도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와장창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해리는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말포이가 신나게 웃음을 터뜨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의 마법약
견본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스네이프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또 빵점을 맞겠구나, 포터..."
해리는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마법약을 담아서
반드시 스네이프에게 점수를 받을 생각으로 성큼성큼 냄비를 향해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냄비는 텅 비어 있었다.
"미안해!"
헤르미온느가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해, 해리. 난 네가 다 끝낸 줄 알고 그만 치워 버렸어!"
해리는 뭐라고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종이 울리자,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 교실을 뛰쳐나왔다. 점심 시간에도 네빌과 시무스 사이에 앉는 그를 보고,
헤르미온느는 두 번 다시 엄브릿지의 방에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해리는 어찌나 기분이 나빴던지 맥고나걸 교수와의 진로 상담 약속까지 깜빡
잊어버리고 점술 수업에 그냥 들어갔다. 론이 왜 맥고나걸 교수님의 방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에야 비로소 생각이 난 그는 숨이 턱에 닿도록 허둥지둥
계단을 달려 올라가서, 오 분 늦게 간신히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깜박 잊었습니다."
해리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괜찮다, 포터."
맥고나걸 교수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누군가 한쪽 구석에서 콧방귀를
뀌었다. 해리는 고개를 돌렸다.
엄브릿지 교수가 무릎 위에 필기판을 올려놓고 그곳에 앉아 있었다. 목 주위에
요란스런 주름 장식이 달린 옷을 입은 그녀의 얼굴에는 소름 끼치는 미소가
가득했다.
"앉아라, 포터."
맥고나걸 교수가 짤막하게 말했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안내 책자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는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해리는 엄브릿지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서, 필기판 위를 긁적이는 그녀의 깃펜
소리가 안 들리는 척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포터, 이 면담은 너의 장래 직업에 대해서 상담을 하고, 장차 6학년과 7학년
때 어떤 과목을 들어야 할지 결정하는 걸 돕기 위한 것이란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혹시 호그와트를 졸업한 후에는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것은 없니?"
"저..."
해리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깃펜 긁적거리는 소리가 무척 신경에 거슬렸다.
"그래, 어서?"
맥고나걸 교수가 해리의 대답을 재촉했다.
"저는 오러가 되고 싶어요."
해리가 주저하며 말했다.
"그러려면 성적이 아주 좋아야 한단다."
맥고나걸 교수가 책상 위에 쌓인 책자들 중에서 작은 검은색 전단을 꺼내
펼쳐 보였다.
"최소한 다섯 과목의 N,E,W,T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모두 다 '기대 이상'을
받아야만 해. 그리고 오러 사무국에 가서 엄격한 인성과 적성 검사를 거쳐야만
한단다. 이건 아주 어려운 길이야, 포터. 오러들은 최고만 뽑거든. 지난 3년
동안은 아무도 뽑히지 못했단다."
바로 그때 엄브릿지 교수가 작은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마치 얼마나 조용히
기침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는
그녀를 무시했다.
"네가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만 하는지 알고 싶겠지?"
맥고나걸 교수는 조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아닌가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건 당연하지. 그리고 또한..."
맥고나걸 교수가 단호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러자 엄브릿지 교수가 이번에는
좀더 큰 소리로 다시 기침을 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계속했다.
"변신술 과목도 추천하고 싶구나. 왜냐하면 오러들에게는 종종 변신술이나
역변신술이 필요하거든. 지금 너에게 이 점을 분명히 말해 두고 싶구나, 포터.
나는 표준 마법사 수준에서 '기대 이상'이나 혹은 그 이상의 높은 점수를 받지
않은 학생들은 나의 N,E,W,T 반에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너는 평균
'보통'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면 시험 전까지 아주
열심히 공부해야만 한다. 또한 마법 수업도 들어야 해. 그건 언제나 쓸모가
많으니까. 그리고 마법약. 그래, 포터. 마법약 수업도 들어야지."
맥고나걸 교수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마법약과 해독제 공부는 오러들에게 필수적인 것이란다. 이 점을 분명히
명심해라. 스네이프 교수는 O,W,L에서 '특출함'이상의 성적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절대로 받아 주지 않는단다. 게다가..."
엄브릿지가 분명히 들릴 정도로 크게 기침 소리를 냈다.
"돌로레스, 기침약을 좀 드릴까요?"
맥고나걸 교수가 엄브릿지 교수 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않고 날카롭게
물었다.
"오, 아니에요. 정말 고마워요."
엄브릿지는 바보같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해리는 그 웃음 소리가 너무나
싫었다.
"난 단지 아주 잠깐 끼어들어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었어요. 미네르바?"
방금 전까지 큰 소리로 기침을 하던 엄브릿지 교수가 또다시 선웃음을 쳤다.
"난 그저 걱정이 좀 됐을 뿐입니다. 해리의 요즘 어둠의 마법 방어술 성적을
받아 보시지 못하셨나 해서 말이죠. 제가 틀림없이 공책 사이에 끼워
놓았는데요..."
"아, 이거 말인가요?"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의 서류철 사이에서 분홍색 양피지 한 장을 꺼내며 몹시
불쾌하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리고 슬쩍 그것을 내려다보더니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고 아무 말 없이 서류철 사이에 다시 끼워 넣었다.
"그래, 포터. 앞서 말했듯이 루핀 교수님은 네가 그 과목에 대해서 분명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분명히 오러가 되려면..."
"내 전갈을 이해하지 못했나요, 미네르바?"
엄브릿지 교수가 기침하는 것도 잊은 채, 꿀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이해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어찌나 이를 악물고 말했는지 말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좀 혼란스럽군요... 어째서 포터 군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지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헛된 희망이라고요?"
맥고나걸 교수가 여전히 엄브릿지 교수 쪽을 절대 돌아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말했다.
"포터는 모든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미네르바. 제가 드린 성적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리는 내 수업에서 아주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좀더 분명하게 뜻을 전달했어야 했던 모양이군요."
맥고나걸 교수가 마침내 엄브릿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포터 군은 한 능력 있는 선생님이 실시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답니다."
순간 엄브릿지 교수의 얼굴에 떠올랐던 미소가 마치 전구가 꺼지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브릿지는 다시 의자에 앉더니 필기판에 끼웠던 종이를
뒤집은 다음, 툭 튀어나온 눈을 이쪽저쪽으로 굴리면서 미친 듯이 뭔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다시 해리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그녀의
좁은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오고, 두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또 다른 질문이 있니, 포터?"
"네, 만약 N,E,W,T에서 충분한 점수를 받으면, 마법부에서는 어떤 종류의
인성과 적성 검사를 치르게 되나요?"
"너는 우선 시련이나 정신적 압박 따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만 한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또한 인내와 헌신이 필요하단다. 왜냐하면 그 후로도 3년동안 오러 훈련을
받아야 하니까 말이야. 고난도 실전 방어술은 말할 것도 없지. 결국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더 많은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약..."
"마법부에서는 오러 지원자들의 신상 기록까지 살펴본다는 점도 알아 둬야 할
겁니다. 범죄 기록을 말이죠."
엄브릿지가 불쑥 끼여들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러므로 만약 호그와트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 많은 시험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차라리 다른 분야를 찾아보는 것이..."
"이 학생이 오러가 될 가능성은 덤블도어가 다시 이 학교에 돌아올
가능성만큼이나..."
"높다고 할 수 있죠."
맥고나걸 교수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포터는 전과 기록이 있어요."
엄브릿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포터는 모든 혐의를 벗었습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더욱 큰 소리로 말했다.
엄브릿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워낙 앉으나 서나 별 차이가 없긴
했지만, 싱글싱글 웃으며 수선을 떨던 태도가 돌변하여 성난 모습으로 바뀌자,
그녀의 넓적하고 축 늘어진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포터는 절대로 오러가 될 가망이 없습니다!"
맥고나걸 교수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훨씬 더 위압적인 태도로
엄브릿지 교수를 내려다보았다.
"포터, 나는 어떻게든 네가 오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
설사 밤마다 너를 가르쳐야 할지라도 반드시 그쪽에서 요구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겠어."
"마법부 장관님은 절대 해리 포터를 채용하지 않을 겁니다!"
엄브릿지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포터가 지원을 할 때쯤이면 새로운 마법부 장관이 나올지도 모르지요!"
맥고나걸 교수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아하!"
엄브릿지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맥고나걸을 가리키며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렇군! 그래! 그랬어! 당연한 일이지! 그게 당신이 원하던 일이
아니었던가요, 미네르바 맥고나걸? 당신은 코넬리우스 퍼지 대신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길 원하는 거죠! 그러면 당신이 내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마법부 차관 자리와 덤으로 교장 자리까지!"
"헛소리 그만둬요."
맥고나걸 교수가 경멸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포터, 이걸로 진로 상담은 그만 끝이다."
해리는 어깨에 가방을 둘러메고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감히 엄브릿지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에도, 맥고나걸 교수와
엄브릿지가 계속해서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 오후에 엄브릿지 교수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에 들어왔을 때에도,
그녀는 방금 달리기를 마친 사람처럼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해리, 네 계획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교과서의 34장 '비보복과 협상'을 펴면서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엄브릿지는 벌써 굉장히 기분이 나쁜 것 같은데..."
이따금 엄브릿지는 해리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해리는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방어 마법 이론'을 들여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을 초점을 잃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가 그를 두둔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아서, 그가 엄브릿지
교수의 방에 몰래 침입했다가 잡힌다면, 과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갔다. 지금이라도 다음 여름 방학이 되면 언젠가 펜시브에서 목격한 장면에
대해서 시리우스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조용히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그를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그저 이렇게 합리적인 행동을 할 생각만 하면 가슴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것 이외에는... 프레드와 조지도 마음에 걸렸다. 그들은 이미 소동을
벌일 계획을 다 짜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지금 그의 가방 속에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오래된 투명 망토와 함께 시리우스가 그에게 준 칼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만에 하나 잡히기라도 한다면...
"덤블도어 교수님은 널 학교에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셨어,
해리!"
헤르미온느가 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속삭였다.
"만약 오늘 네가 쫓겨나면, 그 모든 게 허사가 돼 버릴 거야!"
어쩌면 해리는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그의 아버지가 20년 전 여름에 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 그리핀도르 휴게실 벽난로에 나타났던 시리우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네 아버지를 별로 닮지 않았구나... 제임스에게
위험은 오히려 재미를 더해 주는 것이었는데..."
하지만 과연 아직도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는 걸까?
"해리, 하지 마, 제발 하지 마."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말했다.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편 론은 어떤 의견이나 충고도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심지어
해리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르미온느가 또다시 해리를
설득하려고 들자, 낮은 목소리로 구박을 했다.
"그만 좀 해라. 해리가 알아서 결정할 거야."
해리는 마음을 졸이며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반쯤 지나가고 있을 때, 멀리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위층 어디에선가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진동을 했다. 교실 밖으로 쏟아져 나오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엄브릿지는 그 짧은 다리로 최대한 빨리 교실 밖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지팡이를 뽑아 들고 반대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바로 지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해리... 제발!"
헤르미온느가 힘없이 애원했다.
하지만 해리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가방을 단단히 어깨에 짊어지고, 해리는
학생들 사이를 헤치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동쪽 건물에서 무슨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기 위해 해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해리는 엄브릿지의 방이 있는 복도에 이르렀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커다란 갑옷 뒤로 몸을 숨긴 해리는 가방을 열고 시리우스의 칼을 꺼낸 다음,
투명 망토를 걸쳤다. 갑옷의 투구가 그를 보기 위해 끼익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갑옷 뒤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온 해리는 복도를 지나 엄브릿지의 방문 앞에
이르렀다.
해리는 마법의 칼을 열쇠 구멍 속에 집어넣고 위아래로 살짝 움직인 다음
다시 뺐다. 찰칵 하고 작은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얼른 안으로 들어간
해리는 재빨리 문을 닫고 방안을 살펴보았다.
그 끔찍한 고양이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었다. 그 고양이들은
아직도 몰수된 빗자루들 위에 걸린 장식용 접시 위에서 까불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해리는 망토를 벗고 벽난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금방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반짝이는 플루 가루가 든 작은 상자였다.
해리는 두 손을 덜덜 떨면서 텅 빈 벽난로 앞에 웅크리고 앉았다. 플루 가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직접 써 본 적은 없었다.
벽난로 속에 머리를 집어넣고, 해리는 플루 가루를 한 움큼 집어 들고 가지런히
쌓여 있는 통나무 위에 뿌렸다. 즉시 펑 하고 터지면서 에메랄드빛 초록색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몰드 광장, 12번지!"
해리는 크고 분명하게 소리쳤다. 그렇게 이상한 느낌은 생전 처음이었다. 물론
전에도 플루 가루로 여행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의 몸 전체가
전국에 뻗어 있는 마법사 벽난로 연결망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갔었다. 하지만
이버네는 그의 무릎은 여전히 엄브릿지의 차가운 방바닥에 남아 있고, 오직 그의
머리만이 에메랄드 불길 속에서 휙 날아가고 있었다...
그때, 처음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느닷없이 빙빙 돌던 세상이 멈췄다. 속이
메슥거리고, 몹시 뜨거운 목도리를 목 주위에 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뜨자, 부엌 벽난로 밖으로 긴 나무 식탁이 보였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양피지 위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시리우스?"
그 남자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시리우스가 아니라
루핀이었다.
"해리!"
루핀은 뒤통수를 맞은 듯, 얼이 빠진 것 같았다.
"도대체 여기서 뭘... 무슨 일이냐? 모두 다 괜찮은 거냐?"
"네, 그냥 궁금해서요. 제 말은. 그러니까 시리우스와 잠깐 이야기 좀
하려고요."
"내가 가서 그를 불러오마."
루핀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리우스는 크리처를 찾으러 위층에 올라갔단다. 또다시 다락방에 숨은 것
같아서 말이야..."
해리는 허둥지둥 부엌 밖으로 나가는 루핀을 보았다. 이제 그의 눈앞에는
의자와 식탁 다리 밖에 보이지 않았다. 시리우스가 왜 한 번도 벽난로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말하지 않았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그의 무릎은 벌써 엄브릿지 방의 단단한 돌바닥에 계속 꿇어앉아 있는 것을
강력하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루핀이 시리우스의 뒤를 따라서
부엌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시리우스가 눈앞을 가린 긴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황급히 말했다.
그러고는 얼른 벽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해리와 눈높이를 맞췄다. 루핀도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괜찮은 거니? 혹시 도움이라도 필요한 거니?"
"아니에요."
해리가 말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어요. 전 그냥... 저희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그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하지만 해리는 당황하거나
난처해서 머뭇거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그의 무릎은 점점 더 저려 오고 있었고,
소동이 시작된 지도 벌써 오 분은 흘렀을 것이다. 조지가 그에게 약속한 시간은
오직 이십 분뿐이었다. 그러므로 해리는 즉시 펜시브 안에서 본 장면을
이야기했다.
해리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시리우스나 루핀 모두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루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가 거기서 본 장면으로 네 아버지를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해리.
그때 네 아버지는 겨우 열다섯 살이었단다..."
"저도 지금 열다섯 살이에요!"
해리가 열을 내며 소리쳤다.
"이봐라, 해리."
시리우스가 그를 달래듯이 말했다.
"제임스와 스네이프는 처음 만나는 그 순간부터 서로를 미워했어. 너도 그걸
이해할 수 있겠지, 안 그러니? 제임스는 스네이프가 갖고 싶어 하는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었지. 인기도 좋았고 퀴디치도 잘했어. 거의 모든 방면에 뛰어났단다.
반면 스네이프는 그저 어둠의 마법에만 정신이 팔린 괴짜 꼬마였어. 해리, 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지 몰라도, 제임스는 언제나 어둠의 마법을 싫어했지."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스네이프를 공격했어요. 단지... 단지
아저씨가 심심하다고 말했기 때문에요."
해리는 약간 미안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뭐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아니다."
시리우스가 재빨리 말했다. 루핀은 시리우스를 한 번 곁눈질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봐, 해리. 네 아버지와 시리우스는 어찌 됐든 간에 학교에서 제일가는 친구
사이였다는 걸 이해하렴. 모두들 그 두 사람을 최고로 멋지다고 생각했지.
가끔씩 좀 지나칠 때가 있긴 했지만..."
"가끔 우리가 건방진 멍청한 짓을 할 때가 있었단 말이지..."
시리우스가 말하자, 루핀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계속 일부러 머리를 헝클어뜨렸어요."
해리가 괴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시리우스와 루핀이 웃음을 터뜨렸다.
"난 제임스가 그랬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시리우스가 그리운 듯이 말했다.
"스니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니?"
루핀이 열성적으로 물었다.
"네. 제가 보기에... 좀 멍청해 보였어요."
해리는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웃고 있는 시리우스와 루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그 녀석이 좀 멍청하긴 했지!"
시리우스가 활기차게 말했다.
"우리 모두 바보들이었어! 무니는 좀 달랐지만."
시리우스는 루핀을 바라보며 솔직히 말했다. 하지만 루핀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스네이프를 내버려 두라고 말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난 너희들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말할 배짱도 없었지."
"글쎄, 그래도 너는 가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지... 그건 꽤
중요했어..."
"그리고 아버지는 호숫가에 있는 여학생들을 자꾸 곁눈질했어요. 자길 봐 주길
원하면서 말이죠!"
해리는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마음속에 담긴 말을 모두 쏟아 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끈질기게 추궁했다.
"그래, 제임스는 언제나 릴리가 옆에 있으면 멍청한 짓을 하곤 했지."
시리우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릴리가 가까이 있을 때면, 자기를 과시하지 않고는 배기질 못했어."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이 결혼을 할 수가 있었죠?"
해리가 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몹시 싫어했어요!"
"아니, 그렇지 않았어."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7학년이 되자, 제임스와 같이 외출을 나가기 시작했는걸."
루핀이 한마디 거들었다.
"제임스가 약간 겸손해졌을 때였지."
시리우스가 말했다.
"그리고 장난 삼아 사람들에게 주문을 거는 일도 그만뒀어."
루핀이 말을 이었다.
"스네이프에게도 말인가요?"
해리가 따졌다.
"글쎄, 스네이프는 좀 예외적인 경우였지."
루핀이 느릿느릿 말했다.
"스네이프는 기회만 있으면 항상 제임스를 저주했어. 그러니 너도 설마
제임스가 그걸 가만히 앉아서 당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안 그래?"
"그런데도 저희 어머니는 그걸 그냥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릴리는 사정을 잘 알지 못했어."
시리우스가 설명했다.
"제임스는 릴리와 데이트를 할 때에는 스네이프를 건드리지 않았고, 그녀
앞에서는 주문도 걸지 않았으니까."
시리우스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해리를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해리, 네 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였고, 훌륭한 사람이었단다. 열다섯 살
때에는 누구나 바보짓을 하게 마련이야. 그리고 제임스는 곧 철이 들었어."
"알았어요."
해리는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 제가 스네이프를 불쌍하게 여기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어요."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네가 이 모든 광경을 다 보았다는 걸
알았을 때, 스네이프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저에게 두 번 다시 오클러먼시를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해리는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그게 무슨 굉장한 보복이라도 되는 것처럼..."
"뭐라고 했다고?"
시리우스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바람에 해리는 깜짝 놀라 재를 한 입
들이마시고 말았다.
"정말이냐, 해리? 그가 널 가르치는 걸 그만두겠다고 했단 말이냐?"
루핀이 재빨리 물었다.
"네."
해리는 사람들의 지나친 반응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괜찮아요, 전 상관없어요. 오히려 이런 말을 하게 돼서 다행..."
"내가 당장 쫓아가서 스네이프와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시리우스가 강력하게 말하며,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루핀이
그를 붙잡아 다시 자리에 앉혔다.
"만약 누군가 스네이프에게 말하러 가게 된다면, 그건 바로 나야!"
루핀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해리, 네가 직접 스네이프를 찾아가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오클러먼시 수업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려라. 이 사실을
덤블도어 교수가 알게 되면..."
"전 그런 말을 할 수 없어요. 스네이프가 절 죽이려고 할 거예요!"
해리가 발끈 화를 냈다.
"제가 펜시브 밖으로 나왔을 때, 스네이프의 모습이 어땠는지 두 분은 보지
못해서 그래요."
"해리, 오클러먼시를 배우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어!"
루핀이 엄하게 말했다.
"내 말 알아듣겠니? 없단 말이야!"
"알겠어요, 알겠어요."
해리는 짜증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정신이 사나워서 얼른 대답을
해 버렸다.
"한번... 말해 보겠어요... 하지만 그래도 소용이..."
해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다.
"크리처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나요?"
"아니, 아마 네 뒤에 누가 온 모양이다."
시리우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해리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만 가야겠어요!"
해리는 얼른 인사를 하고 그리몰드 광장 벽난로에서 잽싸게 머리를 뒤로 뺐다.
잠깐 동안 머리가 목 위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멀쩡하게
엄브릿지의 방 벽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깜박깜박 죽어 가는 초록색
불꽃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서, 어서!"
해리는 바로 방문 밖에서 중얼거리는 쉰 목소리를 들었다.
"이런 문을 그냥 열어 놓고 나갔군..."
해리는 재빨리 투명 망토를 뒤집어썼다. 가까스로 망토를 온 몸에 덮어쓴
순간, 필치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는 무슨 일인지 기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잔뜩 신이 나서 혼자 중얼거리며 방을 가로질러 오더니 엄브릿지
책상의 서랍을 열고 안에 든 서류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매질 승인서라... 매질 승인서... 마침내 그걸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벌써 수년
전에 일어났어야 할 일이 드디어 일어난 거야."
필치는 양피지 한 장을 꺼내더니 열렬히 입을 맞추고는, 그걸 가슴에 꼭
껴안고 정신없이 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해리는 가방을 들고 투명 망토가 잘 덮였는지 확인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필치의 뒤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필치는 해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빠른 걸음으로, 절름절름 뛰어갔다.
엄브릿지의 방에서 한 층 아래로 내려간 해리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안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투명 망토를 벗어 가방 안에 집어넣은 다음,
걸음을 재촉했다. 현관 복도에서부터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대리석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마치 학교 학생들이
모두 그 자리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트릴로니가 학교에서 쫓겨나던 날 밤과 비슷했다. 학생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벽 주위에 빙 둘러서 있었고(그 중에 몇 명은 악취수액처럼 보이는
끈적거리는 액체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선생님들과 유령들도 그 틈에 끼어
있었다. 구경꾼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감사 위원회 위원들이었다.
그들은 신이 나서 어쩔줄 모르는 것 같았다. 한편 피브스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둥둥 떠서, 복도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프레드와 조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틀림없이 궁지에 몰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렇군!"
엄브릿지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해리는 그녀가 자기보다 바로 몇 계단
밑에 서서 방금 잡은 먹잇감을 굽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너희들은 학교 복도를 늪으로 만들어 놓고 그걸 재밌다고 여기는 거냐?"
"꽤 재미있는 일이죠, 그럼요."
프레드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엄브릿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필치는 거의 행복에 겨워 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엄브릿지의 곁으로 바싹
다가갔다.
"교장 선생님, 여기 문서를 가져왔습니다."
필치가 목이 메어 말했다. 그리고 엄브릿지의 책상에서 꺼낸 양피지를
흔들었다.
"여기 문서를 가져왔습니다. 회초리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오, 지금 당장
실시하게 해주십시오..."
"좋아요, 아구스."
엄브릿지가 말했다. 그리고 프레드와 조지를 내려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너희 두 사람은 내 학교에서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깨닫게
될 게다."
"뭘 알게 된다고요?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프레드가 빈정거리며 쌍둥이 형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지, 이제 우리는 배울 만큼 배우고 어른이 된 것 같군."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네."
조지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재능을 시험해 볼 때가 온 거야, 안 그래?"
프레드가 물었다.
"그렇고말고."
조지가 끄덕였다. 그리고 엄브릿지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두 사람이
동시에 지팡이를 들더니 소리쳤다.
"아씨오 빗자루!"
어디선가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왼쪽을 돌아본 해리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프레드와 조지의 빗자루가 여전히 엄브릿지의 방 벽에 붙어 있던
무거운 쇠사슬과 쇠못을 뒤에 길게 매단 채, 그들의 주인을 향해서 복도를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돌린 빗자루는 계단을
내려오더니 쌍둥이 형제들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쇠사슬은 포석이 깔린 돌바닥에
부딪쳐 철거덕철거덕 요란한 소리를 냈다.
"우린 당신을 보지 않을 거예요."
프레드가 빗자루에 다리를 걸치며 엄브릿지 교수를 향해 말했다.
"괜히 연락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조지도 자신의 빗자루에 올라탔다.
프레드는 말없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을 빙 둘러보았다.
"누구든 위층에 진열된 것 같은 휴대용 늪을 사고 싶으시면, 다이애건 앨리
93번지에 있는 위즐리 형제의 신기한 장난감 가게로 오세요. 저희가 새로 낸
상점이랍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늙은 박쥐의 손에서 도망치는 데 저희 물건을 쓰겠다고 서약하시는
호그와트 학생 분들께는 특별 할인을 해드립니다."
조지가 엄브릿지를 손가락질하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 녀석들을 잡아!"
엄브릿지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감사 위원회 위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을 때에는, 조지와 프레드는 이미 마룻바닥을 박차고 허공 위로
4점5미터쯤 솟구쳐 올랐다. 빗자루에 매달린 쇠못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프레드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둥둥 떠 있는 피브스를 바라보았다.
"우리를 대신해서 저 여자에게 지옥을 선사해 줘, 피브스."
피브스는 방울 달린 모자를 벗더니 프레드와 조지를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해리는 지금까지 피브스가 학생의 명령을 듣는 것을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은
밑에 있는 학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휙 하고 날아갔다. 그리고
활짝 열린 현관문을 지나 노을이 불타는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