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장 (114/194)

제25장 궁지에 몰린 딱정벌레 

해리의 의문은 바로 다음 날 아침에 풀렸다. '예언자 일보'가 도착하자, 신문을 

펼쳐 들고 1면을 살펴보던 헤르미온느가 가까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갑자기 헉 하고 비명을 질렀다. 

"왜 그래?" 

해리와 론이 동시에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대답 대신 그들 앞에 신문을 펼쳐 보이며, 전면을 가득 채운 

흑백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진 속에는 아홉 명의 마법사와 한 명의 

마녀 얼굴이 실려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사진 가장자리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각 사진들 밑에는 이름과 이들이 아즈카반으로 가게 된 죄목이 적혀 

있었다. 

안토닌 돌로호브, 파리하고 일그러진 긴 얼굴로 능글맞게 웃고 있는 한 마법사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기디언과 패비안 프레웨트의 살해범으로 기소됨. 

어거스투스 록우드,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고 얼굴에 심한 곰보 자국이 

있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사진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서 있는 마법사 밑에는 

또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에게 마법부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기소됨. 

하지만 해리의 시선은 자꾸만 마녀의 사진에 끌렸다. 신문을 펼쳐 드는 

순간부터 그 마녀의 얼굴이 눈에 확 들어왔던 것이다. 사진 속에 보이는 그녀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손질을 하지 않아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분명 그 머리카락이 매끄럽고 윤기가 흐르고 숱이 많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눈꺼풀이 무겁게 내리깔린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얄팍한 

그녀의 입가에는 거만하고 무시하는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시리우스처럼 

그녀는 상당히 아름다웠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어쩌면 

아즈카반이, 그 아름다움의 대부분을 빼앗아 버린 것처럼 보였다. 

벨라트릭스 레스트랭. 프랭크와 앨리스 롱바텀을 고문하고 영원히 미치게 만든 

죄목으로 기소됨.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눈짓을 하며 사진 위의 제목을 가리켰다. 해리는 

벨라트릭스에게 정신이 팔려서 아직까지 그 제목을 읽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즈카반 집단 탈출 

마법부, 옛 죽음을 먹는 자들의 

'핵심 세력'으로 블랙을 의심 

"블랙? 그건 아니...?" 

해리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쉬잇!"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지 말고 그냥 읽기나 해!" 

마법부는 어젯밤 늦게 아즈카반에서 집단 탈출이 있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마법부 장관인 코넬리우스 퍼지는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특별 감시를 받던 열 명의 죄수들이 어제 저녁에 탈출했으며 이미 

머글 수상에게도 이 죄수들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렸다고 말했다. 

"가장 유감스러운 점은 지금 우리가 2년 반 전에 시리우스 블랙이 탈출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어젯밤 퍼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 두 건의 탈출 사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집단적인 탈출은 외부의 도움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최초로 아즈카반을 탈옥한 

죄수인 시리우스가 다른 죄수들도 그의 전례를 따르도록 도와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위치에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아마도 블랙의 사촌인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을 포함하여 이 모든 죄수들이 블랙을 지도자로 삼아 

모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을 일제 검거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동시에 마법 사회 전체가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하시길 

간청하는 바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들 중 어느 누구와도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바로 이거였어, 해리." 

론이 충격을 받아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 때문에 그자가 어젯밤에 그렇게 좋아했던 거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퍼지가 이 탈출 사건의 배후로 시리우스를 지목한단 

말이야?" 

해리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럼 달리 또 무슨 말을 하겠어?" 

헤르미온느가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그자가 자기 입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아니야. '죄송합니다, 여러분. 

사실은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덤블도어에게 미리 경고를 받았습니다. 

아즈카반의 간수들이 볼드모트에게 가담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볼드모트의 골수 

지지자들이 탈출을 한 것입니다.' ...론, 그만 중얼거려!... 퍼지는 지난 6개월 동안 

줄곧 너와 덤블도어 교수님이 거짓말쟁이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녔어, 

안 그래?" 

헤르미온느는 신문을 펼쳐 들고 자세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해리는 

대연회장 안을 둘러보았다. 어째서 겁먹은 표정을 짓거나, 최소한 1면에 실린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해 떠드는 학생들이 하나도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 헤르미온느처럼 날마다 신문을 받아 보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숙제나 퀴디치 시합이나, 혹은 누가 어떤 쓰레기 같은 소식을 아는지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을 뿐이었다. 학교 밖에서는 열 명이나 되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볼드모트의 진영에 가담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해리는 교직원 테이블을 힐끗 살펴보았다. 거기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덤블도어 교수와 맥고나걸 교수는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케첩 병에 '예언자 일보'를 받쳐 놓고, 멍하니 들고 

있는 숟가락에 담긴 계란 노른자가 무릎 위로 똑똑 떨어지는 것도 모르는 채, 

정신없이 신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한편 테이블 제일 끝에서는 엄브릿지 교수가 

죽 그릇에 얼굴을 박은 채 게걸스럽게 튀어나온 눈을 들어서 대연회장을 

둘러보았을 뿐이었다. 그녀는 음식을 한 번 삼킬 때마다 인상을 찡그렸으며, 

이따금씩 덤블도어 교수와 맥고나걸 교수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쪽을 

심술궂은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오, 이런..." 

여전히 신문을 살펴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신음 소리를 내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해리가 재빨리 물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너무... 끔찍해." 

헤르미온느가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신문 10면을 펼치더니 해리와 

론에게 건네주었다. 

마법부 직원의 비극적인 의문의 죽음 

어젯밤 마법부 직원인 브로드릭 보드(49세) 씨가 자신의 병상에서 화분의 

식물에 의해 목이 졸린 채 발견되자, 성 뭉고 병원은 철저한 진상 조사에 

나섰다. 현장에 소집된 치료사들은 보드 씨를 다시 소생시키지 못했다. 보드 

씨는 사망하기 몇 주 전에 직장 내 사고로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사건 당시 

보드 씨의 병실을 담당하고 있던 치료사 미리암 스트라우트는 유급 휴직 

상태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병원 

측 대변인이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성 뭉고 병원은 보드 씨의 죽음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저희 병원은 병실 내에 반입되는 장식물에 대해서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너무 바쁜 나머지, 

스트라우트 치료사가 보드 씨의 사물함 위에 놓여 있는 화분의 위험성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언어 능력과 활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스트라우트 치료사는 보드 씨에게 화초를 가꿀 것을 권장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해한 플리터블룸이 아니라, '악마의 덫'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식물은 회복기에 접어든 보드 씨의 손길이 닿자마자, 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입니다." 

성 뭉고 병원은 아직도 그 식물이 병실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정보가 있는 사람은 누구든 제보해 주기를 요청했다. 

"보드... 보드라...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 걸." 

론이 중얼거렸다. 

"우리는 그를 본 적이 있어."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성 뭉고 병원에서, 기억나? 록허트 맞은편 병상에 있었잖아. 바로 그 자리에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어. 우리는 그 악마의 덫이 오는 것도 

보았어. 그 여자... 그 치료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했지." 

해리는 다시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뱃속에서부터 공포가 치밀었다. 

"우리가 어떻게 악마의 덫을 못 알아볼 수가 있지? 전에 본 적도 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막을 수도 있었어." 

"악마의 덫이 화분에 담겨서 병원에 들어오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어?" 

론이 날카롭게 말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 작자에게 그걸 보낸 자가 누군지 그놈 

잘못이지! 어쨌든 진짜 멍청이가 틀림없어. 어째서 자기들이 뭘 팔고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는 거야?" 

"오, 론! 정신 차려!" 

헤르미온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의 덫을 화분 속에 집어넣고, 누구든 그걸 건드리면 목숨이 위태로울 

거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이...이건 살인이야... 아주 

교묘한 살인이라고. 만약 이 화분을 익명으로 보냈다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어떻게 알아내겠어?" 

하지만 해리는 악마의 덫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청문회 날에 

마법부의 9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승강기를 탔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얼굴이 누르스름한 남자가 중앙 홀에서 탔던 것이다. 

"난 보드를 만난 적이 있어." 

해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 아버지와 함께 마법부에 갔을 때, 그를 봤어." 

론의 입이 딱 벌어졌다. 

"맞아. 집에서 아빠한테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 사람은 

'말할 수 없는 자'였어. 미스터리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고!"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는 갑자기 신문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더니 1면에 실린, 탈옥한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의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가는 거야?" 

론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편지 보내러." 

헤르미온느가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한번 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도 나밖에는 없어." 

"난 헤르미온느가 저럴 때가 제일 싫어." 

론이 투덜거렸다. 그는 해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서 대연회장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한 번이라도 왜 그러는지 우리에게 말해 주고 가면 어디가 덧나나? 그래 

봐야 십 초도 안 걸릴 텐데. 아, 해그리드!" 

해그리드가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문 옆에 서서 래번클로 학생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인들과 만나는 임무를 끝내고 돌아온 날과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심하게 멍이 들어 있었고 콧등에는 새로운 상처가 나 있었다. 

"잘 있었니, 두 사람?" 

해그리드는 미소를 지으려고 애를 썼지만, 간신히 얼굴을 찡그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괜찮은가요, 해그리드?" 

해리는 래번클로 학생들의 뒤를 쿵쿵 걸어가는 해그리드를 쫓아가며 물었다. 

"좋아, 좋아." 

해그리드는 왠지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다가 하마터면 

겁먹은 표정으로 옆을 지나가고 있던 벡터 교수의 뒤통수를 내리칠 뻔했다. 

"그냥 좀 바쁘구나. 늘 하는 일이지만,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살라맨더 두 

마리가 비늘이 상해서... 그리고 난 자격 유예 통보를 받았어." 

해그리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자격 유예를 당했다고요?" 

론이 너무 크게 소리치는 바람에, 지나가던 수많은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죄송해요, 하지만... 자격 유예 판정을 받았단 말인가요?" 

론이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그래." 

해그리드가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예상했던 바지... 넌 아마 아직 그 이야기를 못 들었나 본데, 그 

조사가 안 좋게 끝났어. 어쨌든..." 

해그리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만 가서 살라맨더들에게 후추나 더 줘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번에는 그놈들 꼬리가 거꾸로 자라거든. 또 보자. 해리... 론..." 

해그리드는 터벅터벅 현관문 밖으로 걸어가더니 축축한 운동장을 향해서 

돌계단을 내려갔다. 해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나쁜 소식을 들어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해그리드가 자격 유예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은 불과 며칠만에 학교 전체에 

퍼졌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놀라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는 것을 

q고 해리는 더욱더 분통이 터졌다. 어떤 학생들은, 특히 드레이코 말포이 같은 

아이들이 대표적이었는데, 드러내 놓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반면 성 뭉고 

병원에서 마법부 미스터리 부서의 한 직원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거나 신경 쓰는 사람은 오직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세 사람뿐인 것 

같았다. 이제 복도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는 단 한 가지, 탈옥한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뿐이었다. 마침내 신문을 읽은 몇몇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그 

소식이 학교 전체로 퍼져 나간 것이다. 몇몇 탈주범들이 호그스미드에서 

목격되었다느니, 그들이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에 숨어 있는 것 같다느니, 

머지않아 예전에 시리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호그와트로 침입할 거라느니 하는 

온갖 소문들이 떠돌았다. 

마법사 가족 출신 아이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이름을 거의 볼드모트라는 

이름만큼이나 두려워하는 것을 들으며 자랐다. 볼드모트의 힘이 막강했던 때 

그들이 저지른 만행은 거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던 것이다. 이제 그들은 

복도를 걸어다닐 때마다, 자신이 뜻하지 않게 반갑지 않은 명성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수잔 본즈는 삼촌과 숙모, 그리고 사촌들 

모두가 이번에 탈출한 열 명 중의 한 사람에 의해 죽었는데, 약초학 수업 시간에 

이제 비로소 해리의 기분이 어땠는지 알 것 같다고 한탄을 했다. 

"네가 어떻게 이런 걸 참고 견디는지 난 모르겠어. 너무 끔찍해." 

수잔 본즈가 이렇게 투덜거리며 스크리치스냅 묘목이 담긴 접시에 용 퇴비를 

너무 많이 담는 바람에, 스크리치스냅들이 몸부림을 치며 불만에 차 끽끽 소리를 

냈다. 

요즘 들어 해리가 또다시 복도에서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태도가 약간 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제는 적대적이라기보다는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왜, 어떻게 아즈카반의 철통 같은 요새를 탈출할 수 

있었는지 '예언자 일보'에 실린 기사만으로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소리가 한두 번 얼핏 귀에 들어오기는 했다.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의심을 품게 

된 사람들은 이제 납득할 만한 다른 설명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작년부터 덤블도어 교수와 해리가 주장해 오던 설명이었다. 

학생들 분위기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교수들까지도 복도에서 두세 명씩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학생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 곧 

대화를 멈추는 광경을 이젠 꽤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교무실에서는 더 이상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게 분명해." 

어느 날 해리와 혼과 함께 복도를 지나다가 맥고나걸 교수와 플리트윅 교수, 

스프라우트 교수가 마법 수업 교실 밖에 모여 있는 광경을 보자, 헤르미온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브릿지는 저기 없잖아." 

"혹시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닐까?" 

론이 어깨 너머로 세 명의 교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설사 뭔가를 알았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들을 수 없을 거야. 안 그래?" 

해리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법령이 발표된 이후로... 그게 몇 번째 법령이었더라?" 

아즈카반의 탈출 소식이 알려진 바로 다음 날, 기숙사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공고문이 나붙었던 것이다. 

호그와트 장학사의 포고령 

앞으로 교수들은 가르쳐야 할 과목과 관련 없는 어떤 내용의 정보도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금지되었음을 알리는 바임. 

위의 명령은 교육 법령 26조에 따른 것임. 

장학사 돌로레스 제인 엄브릿지 

이 최근 법령은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커다란 농담거리가 되었다. 리 조던은 

엄브릿지에게, 새로운 법령에 따라서 프레드와 조지에게 교실 뒤에서 폭발 

과자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폭발 과자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겁니다. 교수님! 

그러니까 교수님의 수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정보인 셈이죠!" 

하지만 해리가 다음 날 리를 만났을 때, 그의 손등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해리는 리에게 머트랩 용액을 써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해리는 아즈카반의 탈출 사건으로 엄브릿지의 기세가 한풀 꺾이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존경해 마지않는 퍼지의 눈앞에서 바로 이런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으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오히려 호그와트의 모든 

일상생활을 철저히 자기 손아귀에 넣겠다는 엄브릿지의 맹렬한 욕망만 더욱 

부채질한 것 같았다. 더 나아가 그녀는 조만간 적어도 한 명은 반드시 학교에서 

쫓아내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한 듯이 보였다. 문제는 트릴로니 교수와 

해그리드 둘 중에서 누가 먼저 쫓겨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제 점술 수업과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에는 언제나 엄브릿지와 그녀의 

필기판이 따라다녔다. 그녀는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탑 교실의 벽난로 옆에 

도사리고 앉아, 새점이나 도형점 등에 관해 어려운 질문을 던지면서 날로 

신경질적이 되어 가는 트릴로니 교수의 수업에 딴지를 걸었다. 그런가 하면 

학생들이 대답도 하기 전에 미리 예언을 해보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수정 

구슬이나 찻잎, 룬 문자 비석 등을 차례로 들이대며 실력을 보이라고 요구했다. 

해리 생각으로는 이렇게 시달리다가는 트릴로니 교수가 미쳐 버리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것 같았다. 지금도 복도에서(대개는 자신의 탑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두 손을 연신 비벼 

대며 혼자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트릴로니 교수를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연신 

겁에 질린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는 트릴로니 교수에게서는 독한 세리주 냄새가 

풀풀 풍겼다. 만약 해그리드에 대한 걱정만 아니었다면, 해리도 트릴로니 교수를 

가엾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꼭 쫓겨나야만 

한다면, 해리로서는 누가 남아야 할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해그리드 또한 트릴로니 교수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비록 헤르미온느의 충고를 따라서 크리스마스 이후로는 

크럽(갈라진 꼬리 외에는 잭 러셀 테리어 종의 개와 전혀 다를 게 없는 

동물이다)보다 더 무서운 동물들은 전혀 보여 주지 않고 있었지만, 완전히 

자신감을 잃은 기색이 역력했다. 수업 시간 내내 집중을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했으며,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도 곧 잊어버리거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신 엄브릿지만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에 대해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거리를 두었고, 해가 진 

뒤에는 그를 찾아오지 말라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였다. 

"만약 엄브릿지의 눈에 띄면, 우리 모두의 목이 위태로워." 

해그리드는 그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들 또한 해그리드의 자리를 

위태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손톱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저녁에 그의 

오두막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해리는 호그와트의 생활에서 그에게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엄브릿지에게 차츰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해그리드의 오두막에 찾아가는 일이나 시리우스로부터 

편지를 받는 일, 파이어볼트와 퀴디치 시합까지, 해리는 자기가 할 수 잇는 

유일한 방법으로 복수를 시도했다. 바로 D,A에 대해서 두 배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해리는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이 탈옥을 했다는 소식 이후로 D,A의 모든 

아이들이, 심지어 자카리아스 스미스까지도 더욱 열심히 연습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뻤다. 그중에서도 네빌만큼 눈에 띄게 실력이 느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을 공격한 자들이 도망쳤다는 소식은 네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네빌은 성 뭉고 병원에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만났던 

사실을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네빌을 본받아서 그들 세 사람도 그 

일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네빌은 벨라트릭스와 동료 고문자들이 

도망친 이야기도 절대 꺼내지 않았다. 사실 그는 D,A 시간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해리가 가르쳐 주는 새로운 주문과 저주 방어법을 연습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정신을 집중하느라 그 통통한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어떤 부상이나 

사고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그 방 안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 그의 실력이 하도 빨리 늘어 허탈할 지경이었다. 한 번은 해리가 방패 

마법(상대방이 쏜 약한 저주를 다시 되돌아가게 반사시키는 마법)을 가르쳤는데, 

네빌보다 그 마법을 더 빨리 익힌 사람은 헤르미온느 단 한 명뿐이었다. 

사실 해리도 네빌이 D,A 모임에서 보이는 만큼의 진보를 오클러먼시에서 보여 

주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던 스네이프와의 특별 수업은 

조금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 정반대로 해리는 수업을 할 때마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오클러먼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마의 흉터가 쑤시는 일이 그렇게 자주 

있지 않았다. 대개 밤이나 혹은 가끔씩 볼드모트의 생각이나 기분을 경험하게 

되는 그 이상한 순간이 지나간 후에 그런 일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흉터가 

쑤시지 않을 때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해리는 종종 지금 자기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분노나 기쁨이 왈칵 솟구치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런 다음에는 언제나 흉터를 후벼 파는 듯한 통증이 뒤따랐다. 해리는 이러다가 

자신이 볼드모트의 사소한 기분 변화까지도, 잡아내는 안테나가 되는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이제는 미스터리 부서의 입구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는 

꿈을 거의 날마다 꾸게 되었다. 그 꿈은 자신이 언제나 검은 문 앞에서 뭔가를 

간절히 바라며 서 있는 것으로 끝이 나곤 했다. 

"어쩌면 질병과 비슷한 것인지도 몰라."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자, 헤르미온느는 몹시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열병이나 뭐 그런 거 말이야. 낫기 전에는 꼭 점점 더 심해지잖아." 

"스네이프와 연습을 시작한 뒤로 더 나빠지고 있어." 

해리가 힘없이 말했다. 

"자꾸 흉터가 쑤셔서 죽을 것 같아. 매일 밤마다 복도를 걸어가는 꿈을 꾸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해." 

해리는 화가 나서 이마를 문질렀다. 

"난 그만 그 문이 열렸으면 좋겠어. 문 앞에 서서 바라보는 것도 지겨워." 

"이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네가 그 복도에 대해서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길 바라셔. 

그렇지 않으면 왜 스네이프에게 오클러먼시를 가르쳐 주라고 부탁하셨겠니? 

그러니까 넌 좀더 열심히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어." 

"나도 노력하고 있어!" 

해리가 신경질을 냈다. 

"너도 언제 한번 해봐. 스네이프가 네 머릿속으로 파고든다면 어떻겠어. 

당연히 웃고 넘길 일은 아니야!" 

"어쩌면..." 

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뭐?" 

헤르미온느가 쏘아붙이듯이 물었다. 

"어쩌면 해리가 정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건 해리의 잘못이 아닐지도 몰라." 

론이 은밀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어쩌면 스네이프가 정말로 해리를 돕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지..."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심각하게 두 사람을 마주 보았다. 

"혹시..." 

론은 더욱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해리의 정신을 오히려 더 활짝 열어 놓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 사람이 

들어오기 쉽도록..." 

"헛소리 집어치워, 론." 

헤르미온느가 발칵 화를 냈다. 

"도대체 넌 몇 번이나 더 스네이프를 의심해야 직성이 풀리겠니? 언제 한 

번이라도 네 생각이 맞은 적이 있어? 덤블도어 교수님은 스네이프를 믿어. 

그리고 그는 기사단을 위해 일하고 있잖아. 그거면 충분해." 

"하지만 그는 한때 죽음을 먹는 자였어." 

론이 고집을 부렸다. 

"그가 정말로 마음을 바꾸었는지 한 번도 그 증거를 본 적이 없잖아." 

"덤블도어 교수님이 스네이프를 믿잖아." 

헤르미온느가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덤블도어 교수님마저 믿을 수 없다면, 우린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어." 

태산 같은 걱정거리와 할 일들... 종종 5학년 학생들 전체가 자정이 지나도록 

해야 할 만큼 엄청나게 많은 숙제와 D,A 비밀 모임 그리고 스네이프와의 특별 

수업 등... 에 쫓겨서 1월은 깜짝 놀랄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해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2월이 찾아왔다. 날씨는 점점 습해지고 따뜻해졌다. 

그와 더불어 올해의 두 번째 호그스미드 방문일도 가까이 다가왔다. 호그스미드 

마을에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한 뒤로, 해리는 초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해리는 갑자기 그녀와 함께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밸런타인데이가 바로 코앞에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14일 아침에 해리는 특별히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그와 론이 아침 

식사를 하러 내려가자마자, 우편 배달 부엉이들이 도착했다. 헤드위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리도 물론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처음 보는 

갈색 부엉이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오늘도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했더니..." 

헤르미온느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열심히 봉투를 뜯어 작은 양피지 조각을 

꺼냈다. 눈을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며 편지를 읽던 헤르미온느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번졌다. 

"해리, 내 말 좀 들어 봐." 

헤르미온느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야. 혹시 정오쯤에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나랑 만날 수 

있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해리가 망설였다. 

"초는 아마 자기랑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걸로 기대하고 있을 거야. 뭘 할지 

아직 이야기는 안 했지만." 

"그렇다면 초도 데리고 와. 어쨌든 오긴 할 거지?"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음... 그래, 하지만 왜 그러는데?"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 빨리 답장을 써야 하니까." 

헤르미온느는 한 손에는 편지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에는 토스트를 든 채. 

대연회장을 허둥지둥 빠져나갔다. 

"너도 올 거니?" 

해리가 론에게 물었다. 하지만 론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호그스미드에 못 가. 안젤리나가 하루 종일 연습을 하자고 했거든. 그럼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지금 우리는 내가 본 가장 최악의 팀이거든. 너도 

슬로퍼와 키르케가 하는 걸 봐야 하는데, 안쓰러울 정도야. 나보다도 더 

형편없다니까." 

론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안젤리나가 왜 날 포기하지 않는지 통 모르겠어." 

"그건 네가 상태만 좋으면 아주 잘하기 때문이지. 당연하잖아." 

해리가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론의 불평에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기라면 다가오는 후플푸프와의 시합에서 다시 뛸 수만 있다면 이 세상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론도 해리의 말투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퀴디치 이야기는 두 번 다시 꺼내지 않았다. 잠시 후에 

서로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약간의 냉기가 흘렀다. 론은 

퀴디치 운동장을 향해서 떠났고, 해리는 찻숟가락 뒤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며 

머리를 쓰다듬은 후, 초를 만나려고 현관 복도 쪽으로 혼자 걸어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이 떨리고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초는 떡갈나무 현관문 옆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서 

뒤로 늘어뜨린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해리는 그녀를 향해 걸어가면서 자신의 

발이 몸에 비해 너무 크다고 느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두 팔이 옆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얼마나 멍청하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초가 약간 숨이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해리가 대답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었다. 

"저... 이제 그만 가 볼까?" 

"오... 그래..." 

두 사람은 필치에게 허가를 받으려고 줄지어 서 있는 학생들 틈에 끼었다. 

이따금씩 서로 눈길을 마주치며 빙그레 미소를 지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 밖으로 나가자, 해리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보다 말없이 함께 걷는 편이 훨씬 편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상쾌한 날이었다. 퀴디치 운동장 옆을 지날 때, 해리는 

론과 지니가 관중석 위를 따라 날아가는 모습을 힐끗 보았다. 순간 자기는 

그들과 함께 저기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너무 안타깝겠다. 그렇지?" 

초가 물었다. 고개를 돌린 해리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정말이야." 

해리가 한숨을 쉬었다. 

"3학년 때, 우리가 처음으로 시합을 가졌던 때 생각나니?" 

초가 말했다. 

"그럼, 네가 나를 수비했었지." 

해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드는 너에게 신사인 척하지 말고 나를 빗자루에서 떨어뜨리라고 말했었지." 

초가 추억에 잠겨서 미소를 지었다. 

"우드가 프라이드 오브 포트리 팀으로 갔다던데 정말이니?" 

"아니야. 푸들미어 휴나이티드 팀이야. 작년 월드컵 때 우드를 봤어." 

"그래, 나도 거기서 널 봤어. 기억나니? 우린 같은 캠프장에 있었잖아. 정말 

재밌었는데, 안 그래?" 

그들은 학교 정문을 빠져나갈 때까지는 내내 퀴디치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 

해리는 초와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쉽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론이나 

헤르미온느와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차츰 자신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슬리데린 여학생 한 무리가 그들 옆을 지나갔다. 그 

중에는 팬시 파킨슨도 있었다. 

"포터와 챙이잖아!" 

팬시가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곧바로 다 함께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챙, 네 취향이 그런 줄은 몰랐다... 적어도 디고리는 잘생겼었는데!" 

여학생들은 일부러 부산스럽게 해리와 초를 연신 돌아보며 노골적으로 웃고 

떠들었다. 그렇게 한바탕 그들이 휩쓸고 떠난 자리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해리는 퀴디치에 대해서 더 이상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초는 약간 얼굴을 붉힌 채. 발밑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넌 어딜 가고 싶니?" 

호그스미드에 들어서자, 해리가 물었다. 하이가는 왔다갔다 돌아다니거나 상점 

진열창을 들여다보거나 길가에서 빈둥거리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다. 

"난... 어디든 상관없어." 

초가 어깨를 으쓱했다. 

"음... 그냥 가게를 좀 구경할까?" 

두 사람은 더비시와 뱅스 쪽으로 향했다. 창문에는 커다란 공고문이 붙어 

있었고, 몇 명의 호그스미드 주민이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해리와 초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옆으로 비켜섰다. 해리는 탈옥한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의 사진을 발견했다. '마법부의 포고령'으로 부착된 그 공고문에는, 이 

죄수들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마녀나 마법사에게는 1천 

갈레온의 포상금을 준다고 적혀 있었다. 

"웃기지 않니, 안 그래?" 

초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시리우스 블랙이 도망쳤을 때를 생각해 봐. 호그스미드 전체에 그를 찾는 

디멘터들이 쫙 깔렸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열 명이나 

도망쳤는데도 디멘터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니..." 

"맞아." 

해리는 벨라트릭스 레스트랭의 얼굴에서 간신히 시선을 떼고 하이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래, 정말 이상해." 

근처에 디멘터들이 없다고 해서 전혀 유감스런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 보니, 디멘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죽음을 먹는 자들이 탈출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애써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로 마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감옥에서 탈출한 열 명의 죽음을 먹는 자들은 해리와 초가 지나치는 모든 

가게의 진열창에 붙어서 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이 스크리벤샤프트의 깃펜 

가게를 지날 때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차갑고 굵은 빗방울이 해리의 얼굴과 

목덜미를 때렸다. 

"저... 커피 한 잔 마실까?" 

비가 더욱 세차게 쏟아지자, 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좋아. 어디로 가지?" 

해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위에 아주 좋은 곳이 있어. 너 마담 퍼디풋이라는 곳에 한 번도 안 가 

봤니?" 

초가 쾌활하게 말하며 그를 골목 안으로 이끌더니 한 번도 보지 못한 작은 

찻집으로 데려갔다. 비좁고 습기가 가득 찬 그 곳은, 모든 물건에 레이스와 리본 

장식이 달려 있는 것 같았다. 해리는 문득 엄브릿지의 방이 떠오르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귀엽지 않니, 응?" 

초가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음... 그래." 

해리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거 봐. 밸런타인데이를 위해서 이렇게 장식한 거야!" 

초가 작고 둥근 테이블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황금색의 어린 천사들을 

가리켰다. 아기 천사들이 앉아 있는 사람들 머리 위로 이따금씩 분홍색 

종잇조각을 뿌렸다. 

"아하..." 

두 사람은 김이 서린 창문 옆에 마지막으로 남은 자리에 앉았다. 래번클로 

퀴디치 팀의 주장인 로저 데이비스도 예쁘게 생긴 금발의 여학생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해리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특히 찻집 안을 한 번 둘러보고 모든 

사람들이 손을 꼭 잡은 연인들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더욱더 그러했다. 어쩌면 

초도 그가 손을 잡아 주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뭘 가져다드릴까요?" 

마담 퍼디풋이 물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토끼를 품에 안은 건장한 

체구의 부인이 그들 테이블과 로저 데이비스의 테이블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와 서 있었다. 

"커피 두 잔이오." 

초가 주문을 했다. 커피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로저 데이비스와 여자 

친구는 설탕통을 넘어서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그들이 제발 그만두기를 

바랐다. 왠지 데이비스가 그러면 초도 곧 그가 똑같이 따라하기를 기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해리는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얼른 창 밖을 

내다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창문에 잔뜩 김이 서려서 전혀 밖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초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을 늦춰 보려는 생각에, 해리는 

벽지의 무늬를 세려는 듯이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던 

아기 천사로부터 얼굴에 정통으로 색종이 벼락을 맞았다. 

견디기 괴로운 몇 분이 흐른 후에, 초가 엄브릿지 이야기를 꺼냈다. 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른 그 화제에 몰두했다. 두 사람은 엄브릿지의 흉을 

보면서 즐겁게 잠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이미 D,A 시간에 몇 번이고 

우려먹은 주제였기 때문에 금방 바닥이 나고 말았다.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해리는 바로 옆 자리에서 들려오는 쪽쪽 소리를 날카롭게 의식하면서 

뭔가 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을까 안절부절못했다. 

"저... 혹시 점심때 같이 스리 브룸스틱스에 가지 않을래? 거기서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만나기로 했거든." 

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를 만나기로 했다고? 오늘?" 

"그래. 헤르미온느가 만나자고 해서, 그럴 생각이야. 너도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헤르미온느는 네가 함께 와도 괜찮다고 했어." 

"오, 그래? 그거 참 친절하기도 하구나..." 

하지만 초의 말투는 전혀 친절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목소리에는 냉기가 감돌았고, 갑자기 표정도 험악해졌다. 

무거운 침묵 속에 다시 몇 분이 흘렀다. 해리는 어찌나 커피를 빨아 마셨던지, 

금방 또 한 잔을 시켜야만 했다. 옆 자리에서는 로저 데이비스와 여자 친구가 

계속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찻잔을 잡은 초의 손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해리는 점점 더 그 손을 잡아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냥 잡아 

버려. 해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고통과 흥분이 한데 

뒤섞여서 솟아올랐다. 손을 내밀어서 잡아 버려. 허공에서 팽팽 날아다니는 

스니치를 붙잡는 것보다도 불과 30센티미터 앞으로 팔을 뻗어서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이 몇백 배 더 힘들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해리가 손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초는 테이블 위에서 손을 싹 내렸다. 

그리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여학생과 키스를 하고 있는 로저 데이비스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함께 외출하자고 했었어." 

초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몇 주 전에 로저가. 물론 난 거절했지만 말이야." 

해리는 테이블 위로 불쑥 내민 손을 어쩔 줄 모르다가 애꿎은 설탕통을 

만지작거렸다. 그는 초가 왜 그런 말을 자기에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옆 자리에 앉아서 로저 데이비스의 키스를 받고 싶다면, 왜 

그와 함께 외출하겠다고 동의했을까? 

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기 천사들이 또다시 그들의 머리 위로 

색종이를 뿌렸다. 그 중 몇 개는 해리가 막 마시려고 했던, 차갑게 식은 커피 

위에 떨어졌다. 

"나는 작년에 케드릭과 여기 왔었어." 

초가 말했다. 해리가 그 말을 알아듣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순간 그의 

뱃속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온통 키스를 하는 연인들에게 둘러싸이고 머리 

위에서는 아기 천사가 떠다니고 있는 이런 순간에 초가 케드릭 이야기를 

꺼내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초의 목소리가 좀더 높아졌다. 

"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너에게 물어보고 싶었어. 혹시... 케드릭이... 죽기 전에 

나... 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니?" 

이거야말로 해리가 세상에서 가장 꺼내고 싶지 않은 화제였다. 더구나 초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음... 아니."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 케드릭은 무슨 말을 할 틈도 없었어. 저... 음...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퀴디치 시합은 많이 봤니? 넌 토네이도즈 팀을 응원하지?" 

해리는 일부러 명랑한 척 유쾌하게 떠들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직전 마지막 

D,A 모임 때처럼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자 덜컥 겁이 났다. 

"이봐." 

해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 듣지 못하도록 잔뜩 몸을 숙이며 애원하듯이 

말했다. 

"지금은 케드릭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자..." 

하지만 이번에도 말을 잘못 꺼낸 것이 분명했다. 

"난 네가 이...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 

초가 테이블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난 그 이야기를 해야겠어! 너도 그럴 필요가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넌 그 

광경을 봤잖아. 안 그래?" 

순식간에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해 버렸다. 로저 데이비스의 여자 친구는 

열중하던 키스마저 그만두고 울고 있는 초를 돌아보았다. 

"글쎄... 난 이미 그 일에 대해서 말했어." 

해리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말이야. 하지만..." 

"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에게는 말했으면서!" 

초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눈물로 얼룩졌다. 키스를 하던 

몇몇 연인들이 입술을 떼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말할 수 없단 말이지! 이제 그...그만 찻값을 내고 넌 

헤르미온느 그... 그레인저나 만나러 가는 게 좋겠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거니까!" 

해리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초는 레이스가 달린 냅킨을 

집어 들더니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았다. 

"초?" 

해리는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제발 로저가 그와 초를 열심히 쳐다보는 걸 

그만두고 다시 여학생을 붙잡고 키스나 계속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어서 가, 가 버려!" 

초는 이제 냅킨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나와 만난 다음에 금방 또 다른 여학생이랑 만날 약속을 해 놓고, 

왜 나에게 함께 외출을 하자고 말한 거니? 헤르미온느 다음에는 또 몇 명이랑 

약속이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아." 

해리는 마침내 초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아차리자 마음이 놓인 나머지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찻집 전체가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해리, 나중에 보자." 

초는 비극의 주인공처럼 이렇게 말하더니, 약간씩 흐느끼면서 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초!" 

해리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갔다. 하지만 문은 이미 닫히고 딸랑거리는 

종소리만 남았다. 

찻집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모든 시선이 해리에게 쏠렸다. 해리는 테이블 

위에 1갈레온을 던져 놓고 머리에 묻은 분홍색 색종이를 털어 냈다. 그리고 초를 

쫓아서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과 삼십 분 전만 

해도 두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여자들이란!" 

해리는 화가 나서 투덜거리며, 호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케드릭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초는 어째서 항상 자신을 

인간 수도꼭지처럼 만드는 화제를 꺼내고 싶어서 안달하는 거지?" 

오른쪽 골목으로 돌아선 해리는 첨벙첨벙 물을 튀기며 뛰어갔다. 그리고 몇 분 

후에는 스리 브룸스틱스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헤르미온느와 약속한 

시간보다 좀 이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여기 오면 누군가 남는 시간을 함께 

보낼 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해리는 눈 앞을 

가리는 젖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기며 술집 안을 돌아보았다. 한쪽 구석에 

해그리드가 침울한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었다. 

"안녕, 해그리드!" 

해리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테이블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해그리드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해리를 멀뚱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새로 베인 칼자국이 두 군데 나 있었고, 멍 자국도 

여기저기 보였다. 

"오, 그래, 해리구나. 잘 지냈니?" 

해그리드가 인사를 했다. 

"네. 잘 지냈어요." 

해리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잔뜩 풀이 죽어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해그리드를 보자, 자신의 불평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 별일 없어요?" 

"나 말이냐?" 

해그리드가 말했다. 

"오, 그럼. 나야 항상 씩씩하잖아. 씩씩하지." 

해그리드는 양동이만큼이나 커다란 백랍(주석과 납의 혼합물) 술잔의 바닥을 

들여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해리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해그리드가 불쑥 

말을 꺼냈다. 

"한 배를 탔어, 너랑 나랑은. 그렇지 않니, 해리?" 

"어..." 

해리가 입을 열었다. 

"그래...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 우리 둘 다 외톨이들이라고..." 

해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린 둘 다 고아야. 그래... 둘 다 고아지." 

해그리드는 벌컥벌컥 술을 들이켰다. 

"그건 아주 큰 차이야. 따뜻한 가정이 있다는 것 말이야." 

해그리드가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셨어. 너희 엄마와 아빠도 따뜻한 분이셨지. 살아 

계셨다면, 우리 인생도 꽤 달라졌을 거야. 안 그래?" 

"네... 그랬겠죠." 

해리는 조심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해그리드의 분위기가 아주 이상했던 

것이다. 

"가족이란..." 

해그리드가 우울하게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핏줄은 중요한 거야." 

해그리드는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해그리드, 도대체 이 상처들은 어쩌다 난 거예요?" 

해리는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라고? 무슨 상처 말이냐?" 

해그리드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 상처들 말이에요!" 

해리는 해그리드의 얼굴을 가리켰다. 

"이건 그저 여기저기 부딪히고 긁힌 거야, 해리." 

해그리드가 뿌리치듯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이 좀 거칠잖아." 

해그리드는 또다시 술을 들이키더니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리, 그럼 나중에 보자. 몸조심해라..." 

해그리드는 처량한 모습으로 술집을 나서더니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속으로 

사라졌다. 해리는 떠나는 그를 보자, 가슴이 아팠다. 해그리드는 아주 불행하고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해리가 이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 보기도 전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 해리! 이쪽이야!" 

헤르미온느가 건너편에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사람들을 헤치고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몇 테이블 떨어진 곳까지 갔을 

때, 그는 헤르미온느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녀와 함께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설마 술친구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뜻밖의 

인물들이었다. 다름 아닌 루나 러브굿과 '예언자 일보'의 전직 기자이자 

헤르미온느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인 리타 스키터였던 것이다. 

"일찍 왔구나!" 

헤르미온느가 옆으로 비키며 그에게 앉을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네가 초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설마 한 시간이나 일찍 올 줄 

몰랐지!" 

"초?" 

리타가 당장 몸을 돌려 탐욕스런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여학생 말이냐?" 

리타는 재빨리 악어가죽 가방을 집어 들더니 가방 안을 더듬었다. 

"해리가 백 명의 여학생과 사귄다고 해도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헤르미온느가 쌀쌀맞게 리타에게 말했다. 

"그러니 당장 그 가방을 내려놓아요." 

리타는 가방 안에서 막 선명한 초록색 깃펜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치 

악취수액을 억지로 먹으라는 강요라도 받은 사람처럼 인상을 쓰면서 가방을 

다시 탁 닫았다. 

"어떻게 된 일이죠?" 

해리는 리타와 루나와 헤르미온느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지 않아도 네가 막 도착했을 때, 꼬마 반장 양께서 말씀을 하려던 

참이었어." 

리타가 술을 한 모금 들이켜며 말했다. 

"해리와 한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건 허락하겠지. 그렇지?" 

리타가 헤르미온느를 쏘아보았다. 

"그래요. 그건 괜찮아요." 

헤르미온느가 쌀쌀맞게 말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는 것은 리타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한때 

곱슬곱슬하게 공들여 손질되었던 머리카락은 이제 얼굴 주위에 부스스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5센티미터나 길에 자란 손톱에 칠해진 빨간 매니큐어는 반쯤 

벗겨져 있었고, 날개 달린 안경에 붙은 가짜 보석들은 한두 개씩 떨어져 나갔다. 

리타는 또다시 술을 한 모금 들이켜더니 입술을 씰룩거리며 중얼거렸다. 

"예쁜 여학생이겠지. 안 그래, 해리?" 

"해리의 연애 생활에 대해서 단 한 마디만 더 하면 그걸로 우리 거래는 

끝이에요. 내가 장담하죠." 

헤르미온느가 짜증을 냈다. 

"무슨 거래 말이냐?" 

리타가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넌 아직 거래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어. 까다로우신 잔소리 양. 넌 단지 

나에게 여기 오라고 말했을 뿐이야. 오, 언젠가는..." 

리타가 부르르 떨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요. 그래. 언젠가는 해리와 나에 대해서 더욱더 끔찍한 기사를 쓰겠죠." 

헤르미온느가 상관없다는 듯이 무관심하게 말했다. 

"관심 있는 사람을 어디 한번 찾아봐요. 왜 못하는 거죠?" 

"올해는 내 도움이 없어도 해리에 대해서 온갖 끔찍한 기사를 잘만 싣더군." 

리타는 안경 너머로 해리를 힐끔 쏘아보더니, 거칠게 속삭였다. 

"그런 기사를 보니 기분이 어때. 해리? 속은 기분이던가? 마음이 괴롭던가? 

오해를 받는 것 같아?" 

"당연히 해리는 분노를 느꼈죠." 

헤르미온느가 딱딱하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해리는 마법부 장관에게 진실을 말했는데, 마법부에 있는 그 멍청이들이 

해리의 말을 믿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너는 아직도 그 주장을 고집하고 있는 거냐?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이 돌아왔다고?" 

리타는 안경을 밑으로 내리며 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당장에라도 악어가죽 가방을 붙잡고 싶어 안달이 나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덤블도어가 그 사람에 대해서 모두에게 말했던 허풍들을 고수하겠단 말이지?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느니 네가 그 유일한 목격자라느니 하는 말들을...?" 

"제가 유일한 목격자는 아니에요." 

해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거기에는 열두 명 정도 되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있었어요. 그자들의 이름을 

알고 싶으세요?" 

"물론이지." 

리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녀는 또다시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듯 해리를 열렬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목은 큰 활자로 이렇게 뽑는 거야. '포터의 고발...' 그리고 중간 제목은 

이렇게 다는 거지. '해리 포터. 우리 중에 남아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이름을 

말하다' 그런 다음 밑에는 멋진 너의 사진을 실어야지. '그 사람의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십 대 소년, 해리 포터(15세)는 어제 마법 사회의 존경받는 고위 

인사들을 죽음을 먹는 자라고 지목하고 나섬으로써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리타는 이제 아예 속기 깃펜을 손에 꺼내 들고 입으로 반쯤 가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황홀한 표정이 사라져 버렸다. 

"꼬마 반장 양께서는 이런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게 싫으시겠지, 안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그게 바로 꼬마 반장 양께서 진심으로 원하는 바예요." 

헤르미온느는 상냥하게 말했다. 리타가 얼이 빠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해리도 마찬가지였다. 루나만이 꿈을 꾸듯이 '위즐리는 우리의 왕'이라는 노래를 

낮게 흥얼거리며 칵테일용 양파가 꽂힌 스틱으로 음료수를 휘젓고 있었다. 

"너는 그러니까 해리가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그 사람에 대해서 한 말을 

나더러 기사화하라는 거니?" 

리타가 쉰 목소리로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진짜 기사를 쓰는 거죠. 모두 사실만 담긴 기사요. 해리가 

그들에게 말한 내용 그대로 싣는 거예요. 해리는 당신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을 거예요. 그때 그곳에서 그가 본, 숨겨진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이름도 

말할 거예요. 볼드모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말해 줄 테고요. 오, 진정해요." 

헤르미온느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마디 툭 던지면서 테이블 너머로 냅킨을 

건네주었다. 볼드모트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리타가 화들짝 놀라며 자기 옷에 

파이어위스키를 반쯤 엎질렀기 때문이었다. 

리타는 여전히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면서 얼룩진 

레인코트의 앞자락을 문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예언자 일보'는 그 기사를 실어 주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깨닫지 못했겠지만, 

아무도 해리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믿지 않아. 모두들 해리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혹시 그런 각도에서 기사를 쓴다면..." 

"해리가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가에 관한 기사라면 더 이상 필요 없어요!" 

헤르미온느가 버럭 화를 냈다. 

"고맙지만, 이미 그런 기사는 지긋지긋하게 많다고요! 난 그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을 뿐이예요!" 

"그런 기사를 돈 주고 사 줄 시장은 없어." 

리타가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 말은 퍼지가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예언자 일보'에 실리지 못할 거라는 

뜻이겠죠." 

헤르미온느가 짜증을 냈다. 리타는 헤르미온느를 오랫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이고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맞아. 퍼지는 '예언자 일보'에 압력을 넣고 있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야. 그자들은 해리는 좋게 비추는 기사는 절대 싣지 않을 거야. 아무도 

그런 기사는 읽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말이지. 그건 일반적인 정서에 반대되는 

짓이야. 지난번 아즈카반 탈출 사건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공포에 떨고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까지 믿고 싶지는 않을 거야." 

"그렇다면 '예언자 일보'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존재한단 말인가요?" 

헤르미온느가 신랄하게 말했다. 리타가 눈을 치켜뜨며 다시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았다. 그리고 파이어위스키를 들이켰다. 

"'예언자 일보'는 장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이 어리석은 아가씨야." 

리타가 냉정하게 말했다. 

"우리 아빠는 '예언자 일보'가 형편없는 신문이라고 했어." 

루나가 갑자기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녀는 칵테일에 든 양파를 건져서 

쭉쭉 빨며 약간 정신 나간 듯이 보이는,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으로 리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대중이 꼭 알아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중요한 기사를 

보도하셔. 돈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으시지." 

리타가 깔보는 눈초리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네 아버지는 무슨 한심한 마을 소식지라도 만들고 계시냐? 혹시 '머글들과 

어울리는 스물다섯 가지 방법'이나 다음 자선 바자회 날짜 따위의 기사를 

실으시니?" 

"아니에요." 

루나는 양파를 다시 음료수 속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우리 아빠는 '이러쿵저러쿵'의 편집장이세요." 

리타가 어찌나 큰 소리로 코웃음을 쳤는지 근처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대중이 꼭 알아야만 하는 중요한 기사를 싣는다고?" 

리타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 거지 같은 잡지에 실린 기사들은 우리 정원에 거름으로나 쓰면 딱 맞을 

거야." 

"이거야말로 당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아요?" 

헤르미온느가 신이 나서 말했다. 

"루나 말이, 아버지께서 기꺼이 해리의 인터뷰 기사를 받아 주시겠다고 

하셨대요. 그러니까 그분이 우리 기사를 잡지에 내주실 거예요." 

리타는 한동안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더니, 기가 막힌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이러쿵저러쿵'이라고!" 

리타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 기사가 '이러쿵저러쿵'에 실리면 사람들이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니?"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죠." 

헤르미온느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아즈카반 탈출 사건에 대한 '예언자 일보'의 기사에는 분명 커다란 

허점이 있어요. 내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 보다 

그럴듯한 해명이 없을까 궁금해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른 설명을 들을 수만 

있다면, 설사 그것이... 헤르미온느는 루나를 힐끗 곁눈질했다... 좀 평범하지 않은 

잡지에 실렸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무척 읽고 싶어 할 거예요." 

리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약간 옆으로 비스듬히 하고서 

헤르미온느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좋아. 그럼 내가 그 일을 한다고 치자." 

리타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럼 난 어떤 보수를 받게 되는 거지?" 

"우리 아빠가 잡지에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돈을 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루나가 꿈꾸듯이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기사 쓰는 걸 명예로 여기거든요. 물론 자기 이름이 잡지에 나는 걸 

보려고 하는 거죠." 

리타 스키터는 똥 씹은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쏘아보았다. 

"그럼 이 일은 공짜로 하는 거냐?" 

"맞아요." 

헤르미온느가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켜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당신이 등록되지 않은 

애니마구스란 사실을 당국에 알리겠어요. 뭐, 아즈카반에 들어가서 직접 그곳 

생활에 대해 기사를 쓰면, '예언자 일보'에서 돈을 많이 줄지도 모르겠군요." 

리타는 헤르미온느의 잔에서 종이 우산 장식을 빼더니, 잔을 높이 쳐들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렇다면 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로군, 안 그래?" 

리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그녀는 또다시 악어가죽 가방을 열더니 

양피지 종이를 꺼내고 속기 깃펜을 들었다. 

"아빠가 기뻐하실 거야." 

루나가 신이 나서 말하자, 리타의 턱이 씰룩거렸다. 

"좋아, 해리?"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됐니?" 

"그런 것 같아요." 

해리는 그들 사이에 양피지를 펼쳐 놓고 깃펜을 잡고 있는 리타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시작해요, 리타." 

헤르미온느는 음료수 잔 바닥에 가라앉은 체리를 건져 올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