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마법 질병과 상해를 위한 성 뭉고 병원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가 자신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는 것이 너무 기뻐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침대에서 당장 뛰어내렸다. 그리고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다시 썼다.
"위즐리, 너도 함께 가자."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그들은 맥고나걸 교수와 함께, 동상처럼 우뚝 서
잇는 네빌과 딘, 시무스의 앞을 지나서 침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선형
계단을 통해서 휴게실로 내려간 다음, 초상화 구멍을 빠져나가 달빛이 비치는
복도를 걸어갔다. 해리는 순간순간마다 마음속에 가득 찬 공포가 밖으로 밀려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이름을 부르며 미친 듯이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치솟았다. 그들이 이렇게 침착하게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도 위즐리 씨는 피를 흘리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날카로운
송곳니(해리는 '내 송곳니'라는 생각을 간신히 억눌렀다)에 독이라도 들었다면?
노리스 부인이 등잔불 같은 눈으로 옆을 지나가는 그들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쉭
소리를 냈다.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가 '어이!' 하고 쫓아 버리자, 노리스 부인은
그늘 속으로 기어 들어가 버렸다. 몇 분 후에 그들은 덤블도어 방 입구를 지키는
이무기 상 앞에 도착했다.
"피징 위즈비."
맥고나걸 교수가 암호를 말했다.
이무기들은 갑자기 되살아나더니 펄떡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벽이
둘로 갈라지면서 나선형 에스컬레이터처럼 끊임없이 위로 빙빙 올라가는
돌계단이 나타났다. 세 사람은 움직이는 계단 위에 올라섰다. 등 뒤에서 쿵 하고
벽이 닫히고 그들은 원을 그리며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그리핀처럼 생긴 놋쇠
손잡이가 달린 눈부시게 윤이 나는 떡갈나무 문이 나타났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지만, 방 안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덤블도어 교수가 적어도 열두명은 넘는 사람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맥고나걸 교수가 그리핀 손잡이로 문을 세 번 두드리자, 마치 누군가
전원이라도 꺼 버린 것처럼 갑자기 목소리들이 뚝 끊어졌다. 곧이어 저절로 문이
열렸다.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와 론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반쯤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긴 탁자 위에는 이상한 은색 가구들이
평소처럼 빙빙 돌아가거나 김을 내뿜지 않고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 벽을 온통
뒤덮은 호그와트의 옛날 교장 선생님들의 초상화들은 하나같이 액자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문 뒤에서는 화려한 붉은색과 황금색 깃털을 지닌,
백조만 한 크기의 새가 날개 밑에 머리를 파묻은 채, 횃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오, 당신이군요... 맥고나걸 교수... 그리고... 이런!"
덤블도어 교수는 책상 너머 높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서류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촛불을 향해 몸을 숙였다. 눈처럼
하얀 잠옷 위에, 보라색과 황금색의 자수가 화려하게 수놓인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전혀 자다 깬 기색이 아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상대방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파랗고 투명한 눈으로 맥고나걸 교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덤블도어 교수님, 포터가... 그러니까, 악몽을 꿨답니다."
맥고나걸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해리의 주장에 따르면..."
"그건 악몽이 아니었어요."
해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좋다, 포터. 그럼 네가 직접 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렴."
"저... 저는 잠을 자고 있었어요."
해리는 과연 덤블도어 교수님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두렵고 절망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덤블도어가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깍지 낀 자신의 손가락만 내려다보자, 약간 성질이 났다.
"그건 보통 꿈이 아니었어요. 그건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었어요... 전
보았어요..."
해리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론의 아버지... 위즐리 씨가 거대한 뱀에게 공격을 당했어요."
방금 그의 입에서 내뱉은 말이 방 안에 울려 퍼지자, 약간 황당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게까지 들렸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덤블도어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묵묵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론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해리와
덤블도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걸 어떻게 보았지?"
덤블도어가 여전히 해리의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물었다.
"저... 저도 모르겠어요."
해리는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저 제 머릿속에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구나."
덤블도어가 여전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내 말은... 혹시 기억나니?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위치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지 말이야. 그냥 희생자 옆에 서서 지켜보았니? 아니면 위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니?"
이 이상한 질문을 받고 해리는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린 채, 덤블도어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바로 그 뱀이었어요."
해리가 말했다.
"뱀의 입장에서 모든 걸 다 보았어요."
한동안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는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는 론을 한 번 쳐다보더니, 좀더 긴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서가 심각하게 다쳤니?"
"네."
해리가 힘을 주어 대답했다. 이 사람들은 왜 상황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뱀의 이빨이 옆구리를 뚫고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는지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왜 덤블도어 교수는 무관심하게도 그를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순간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행동이 어찌나 재빨랐는지, 해리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덤블도어는 천장 가까이 걸려 있는 오래된 초상화 중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에버라드? 그리고 딜리스, 당신도!"
짧고 검은 머리카락을 앞으로 늘어뜨린, 혈색 나쁜 마법사 한 사람과 바로
옆에 걸린 액자 속의 곱슬거리는 긴 은발의 늙은 마녀 한 사람이 즉시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도 죽은 듯이 잠을 자는 척하고 있었던 두 사람이었다.
"듣고 있었소?"
덤블도어가 묻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도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 남자는 붉은 머리에 안경을 썼소."
덤블도어가 설명했다.
"에버라드, 당신은 경보를 울려야 할 것 같소. 그 남자를 엉뚱한 자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말이오..."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이더니 액자 옆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옆에 걸린
액자 속으로 들어가거나(호그와트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다시 모습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이제 한 액자 속에는 배경이 되는 검은색 커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다른 한 액자에는 멋진 가죽 의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해리는 벽에 걸린 다른 많은 교장 선생님들도 비록 그럴듯하게 코를 골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척했지만, 계속해서 실눈을 뜨고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문을 두드렸을 때, 두런두런 떠들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에버라드와 딜리스는 호그와트에서도 가장 유명한 교장 선생님이었지."
덤블도어가 해리와 론, 맥고나걸 교수를 쑥 둘러보더니 문가에 있는 횃대
위에서 잠을 자는 새 옆으로 다가갔다.
"그들의 명성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중요한 마법사 기관마다 두 사람의
초상화가 걸려 있단다. 그래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
줄 수가 있는 거야."
"하지만 위즐리 씨가 어디 있을지 모르잖아요!"
해리가 말했다.
"세 사람 모두 여기 앉아요."
덤블도어는 해리의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에버라드와 딜리스가 돌아오려면 몇 분은 걸릴 테니까. 맥고나걸 교수님,
의자 좀 불러내 주겠소?"
맥고나걸 교수는 가운 호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더니 허공에 휘둘렀다.
그러자 의자 세 개가 순식간에 나타났다. 덤블도어가 해리의 청문회 때 불러냈던
팔걸이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가 똑바로 세워진 딱딱한 나무 의자였다. 해리는
어깨 너머로 덤블도어를 쳐다보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덤블도어는 한
손가락으로 깃털이 달린 퍽스의 황금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불사조는 즉시 눈을
떴다. 그리고 아름다운 머리를 높이 들어 올리며 까맣게 반짝이는 눈으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망을 좀 봐야겠구나."
덤블도어가 속삭이듯 조용히 새에게 말했다.
순간 불길이 확 일어나더니 불사조가 사라졌다. 이제 덤블도어는 허리를
숙이고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은색의 섬세한 기구들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상 위로 옮기더니 그것을 마주 보고 앉아서 지팡이 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기구는 즉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박자에 맞추어 딸랑딸랑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꼭대기에 달린 작은 은색 관에서 옅은 초록색 증기가 폭폭 솟아올랐다.
덤블도어는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그 증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몇 초가
지나자, 폭폭 솟아오르던 증기는 짙은 연기구름이 되어 꼬불꼬불 하늘로
올라갔다. 연기 끝에서 뱀의 머리가 점점 자라나더니 아가리를 딱 벌렸다.
해리는 이 기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입증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덤블도어에게서 그의 말이 옳다는 신호가 떨어지기를 열심히 고대하며
바라보았지만, 그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렇고말고."
덤블도어는 놀란 기색도 없이 연기를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본질은 나누어져 있나?"
도무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연기가 만든 뱀은 즉시 둘로
갈라졌다. 두 마리의 뱀은 어둠 속에서 똬리를 틀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대단히
흡족한 표정의 덤블도어는 또다시 지팡이를 들어 기구를 살짝 건드렸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점차 느려지고 작아지더니 뱀 모양의 연기도 희미해지면서
결국에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덤블도어는 좁고 긴 탁자 위로 기구를 다시 옮겨 놓았다. 해리는 초상화 속의
수많은 옛날 교장들이 눈으로 줄곧 그의 뒤를 쫓다가, 그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얼른 다시 잠자는 척하는 것을 보았다. 해리는 그 이상한
은색 기구가 무엇에 쓰이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오른쪽 벽 꼭대기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에버라드라는 마법사가 숨을
헐떡이며 다시 초상화 속에 나타난 것이었다.
"덤블도어!"
"무슨 소식이 있소?"
덤블도어가 황급히 물었다.
"나는 사람들이 달려올 때까지 계속 고함을 질렀소."
마법사는 등 뒤에 있는 커튼에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고 말했소. 그들은 내 말을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살펴보겠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갔소. 거기에는
초상화가 없어서 내가 따라가 지켜볼 수가 없었지. 어쨌든 몇 분 후에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올라오더군. 상태가 무척 심각해 보였소. 온몸이 피투성이였지. 나는
얼른 엘프리다 크랙의 초상화로 자리를 옮겨서 그들이 떠나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소."
"괜찮다."
덤블도어는 론이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이 행동하자, 조용히 타일렀다.
"딜리스에게 그가 도착하는 걸 지켜보라고 지시해 놓았단다. 그러니..."
바로 그 순간 곱슬거리는 은발의 한 마녀가 액자 속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는 켁켁 기침을 하며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이 그를 성 뭉고 병원으로 데려갔어요. 덤블도어... 바로 내 초상화 앞을
지나갔는데, 아주 안 좋아 보이더군요."
"고맙소."
덤블도어는 맥고나걸 교수를 향해 돌아섰다.
"미네르바, 당신은 가서 위즐리네 다른 아이들도 깨워 주시겠소?"
"물론이죠..."
맥고나걸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해리는 론을 슬쩍
쳐다보았다.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런데 덤블도어... 몰리는 어떻게 하죠?"
맥고나걸 교수가 문 앞에 서서 물었다.
"혹시 오는 사람이 없는지 망을 보는 일이 끝나면, 퍽스가 그 일을 맡아서 할
거요. 하지만 벌써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몰리의 그 놀라운 시계가..."
덤블도어가 중얼거렸다. 해리는 무슨 시계를 말하는지 즉시 알아차렸다.
그것은 시각 대신, 위즐리 가족들이 제각기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있는지를
알려주는 시계였다. 위즐리 씨를 나타내는 시곗바늘이 지금쯤 '생명 위독'을
가리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해리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위즐리 부인이 시계를 보지 못하고
자고 있을지도 몰랐다. 순간 위즐리 부인의 보가트가 싸늘하게 식은 위즐리 씨의
시체로 모습을 바꾸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안경이
비스듬히 벗겨진 채. 그의 얼굴 위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죽지 않을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이제 덤블도어는 해리와 론의 등 뒤에서 선반을 열심히 뒤지고 있었다. 잠시
후에 시커멓게 변한 낡은 주전자를 꺼내서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는 지팡이를 들고 '포터스!'라고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주전자가 진동을
하더니 이상한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덤블도어는 또 다른 초상화를 향해서 걸어갔다. 이번에는 뾰족한 수염을 기른,
영리해 보이는 마법사였다. 그는 슬리데린을 나타내는 은색과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는데, 진짜로 깊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덤블도어가 그를 깨우려고 했지만,
처음에는 잘 듣지 못했다.
"피니어스, 피니어스."
방 안에 줄지어 걸려 있는 초상화의 주인공들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잠이 든
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서
액자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영리해 보이는 마법사가 계속 잠자는 척을 하자,
몇몇 마법사가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피니어스! 피니어스! 피니어스!"
그는 더 이상 자는 척을 하지 못하고, 과장되게 몸을 떨면서 눈을 크게 떴다.
"누가 날 불렀나?"
"피니어스, 다시 한 번 당신의 다른 초상화를 좀 방문하고 와 주시오."
덤블도어가 부탁했다.
"또 다른 전갈이 있어서 말이오."
"나의 다른 초상화를 방문하고 오라고?"
피니어스가 하품을 하는 척하면서(그러나 방 안을 살피던 그의 눈길은 곧
해리에게 머물렀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싫어요. 덤블도어. 오늘 난 너무 피곤해요."
피니어스의 목소리가 왠지 해리의 귀에 익었다.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더라?
하지만 벽에 걸린 초상화들이 폭풍처럼 사납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해리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건 반항행위요!"
뚱뚱하고 코가 빨간 마법사가 주먹을 휘두르며 목청을 높였다.
"임무 태만이오!"
"우리는 호그와트 현직 교장에게 봉사하기로 서약한 몸이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 허약해 보이는 늙은 마법사가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그가 덤블도어의 전임 교장이었던 아르만도 디펫임을 알아보았다.
"부끄러운 줄 아시오. 피니어스!"
"덤블도어, 내가 한번 설득해 볼까요?"
눈매가 날카로운 한 마녀가 유난히 굵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것은
마치 자작나무 회초리처럼 보였다.
"아, 좋아요."
피니어스라고 불리는 마법사가 약간 겁먹은 눈길로 그녀의 지팡이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지금쯤은 그 녀석이 내 초상화를 없애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오. 그
녀석은 조상들을 거의 모두 없애 버리고 있소."
"시리우스도 당신의 초상화를 없애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소."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해리는 피니어스의 목소리를 전에
어디서 들었는지 퍼뜩 떠올랐다. 그리몰드 광장에 있는 그의 침실에 걸려 있던
그 텅 빈 액자에서 들려오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그에게 가서 아서 위즐리가 심하게 다쳤다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그의
부인과 이이들, 해리 포터가 곧 그의 집으로 갈 거라고도 말해 주시오. 내 말
알겠소?"
"아서 위즐리 부상, 아내와 아이들과 해리 포터가 도착할 예정임."
피니어스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좋아요..."
피니어스는 초상화 틀 밖으로 몸을 내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때
다시 문이 열리고 프레드와 조지, 지니가 맥고나걸 교수의 손에 이끌려
들어왔다. 부스스한 몰골에 여전히 잠옷 바람인 세 사람은 몹시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해리... 무슨 일이야?"
지니가 겁에 질려 물었다.
"맥고나걸 선생님 말씀이 우리 아빠가 다친 걸 보았다던데..."
"너희 아버님은 불사조 기사단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부상을
당하셨다."
덤블도어 교수가 해리보다 먼저 대답했다.
"지금 성 뭉고 병원으로 이송되셨어.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시리우스의 집으로
보낼 생각이다. 버로우보다는 거기가 훨씬 병원과 가까우니까. 거기 가면
어머니도 와 계실 게다."
"저희는 어떻게 가죠? 플루 가루를 쓰나요?"
프레드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다. 플루 가루는 안전하지 않아. 감시를 당하고 있거든. 포트키를 쓰도록
하자."
덤블도어는 그의 책상 위에 멀쩡히 놓여 있는 낡은 주전자를 가리켰다.
"우리는 지금 피니어스 나이젤러스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란다.
너희들을 보내기 전에, 주변이 깨끗한지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
바로 그때 방 한 가운데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다. 그리고 황금 깃털 하나가
마루 위로 천천히 떨어졌다.
"퍽스의 신호야."
덤블도어는 떨어지는 깃털을 잡으며 말했다.
"엄브릿지 교수가 너희들이 침실 밖으로 나온 걸 알아차린 모양이구나.
미네르바, 어서 가서 그 여자를 붙잡아 주시오. 무슨 이야기든 둘러대도록 해요."
맥고나걸 교수가 쌩 하고 사라졌다.
"그 녀석 말이 대환영이랍니다."
덤블도어의 등 뒤에서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니어스라는 마법사가
슬리데린의 깃발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고손자 녀석은 항상 손님을 환영하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단
말이야."
"그럼, 이리 와라."
덤블도어가 위즐리 형제들과 해리에게 말했다.
"누가 오기 전에 어서 서둘러라."
해리와 다른 아이들은 덤블도어의 책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너희 모두 전에 포트키를 써 본 적 있지?"
덤블도어가 묻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손을 내밀어 검게 변한
주전자를 붙잡았다.
"좋아. 그럼 셋을 세겠다. 하나... 둘..."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덤블도어가 셋을 세기 전까지, 그 무한히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 흐르는 동안 해리는 덤블도어를 올려다보았다(아주 가까이
서 있었던 것이다). 포트키를 바라보던 덤블도어의 투명하고 푸른 눈이 해리의
얼굴로 향했다.
그 즉시 해리의 흉터가 불로 지지듯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 그 자리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 의도하지도, 원하지도 않았지만 끔찍하게 강렬한 증오심이
해리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잠깐 동안 해리는 오직 무조건 덤비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덥석 물고 싶었다. 그의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의 살 속 깊숙이
어금니를 박고 싶었다...
"...셋."
해리는 배꼽 안쪽에서 강력한 경련이 일어났다. 발밑의 땅이 사라지면서 그의
손이 주전자에 착 달라붙었다. 주전자가 그들을 끌고 갔다. 온갖 색깔들이
소용돌이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그들 모두는 빠르게 앞으로 날아갔다.
그 와중에 해리는 다른 사람들과 쿵쿵 부딪히기도 했다. 마침내 주전자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해리는 풀썩 무릎이 꺾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돌아왔군. 동족의 배신자 새끼들이. 너희 아버지가 죽어 간다는 게
사실이냐?"
"나가 있어!"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이리저리 바닥을 더듬으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들은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의 어두운 지하 부엌에 떨어진 것이다. 빛이라고는 벽난로 불빛과 꺼질
듯이 깜박거리는 촛불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외롭게 홀로 먹다 남은 저녁 식사를
비추고 있었다. 크리처는 허리에 두른 천을 움켜쥔 채, 현관 복도로 이어지는 문
밖으로 사라지면서 적의에 찬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시리우스는 걱정스런
얼굴로 허둥지둥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수염도 깎지 않고 낮에 입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심지어 먼던구스에게서 풍기던 고약한 술 냄새까지 났다.
"무슨 일이냐?"
시리우스는 손을 내밀어 지니를 일으켜 세웠다.
"피니어스 나이젤러스 말이, 아서가 심하게 다쳤다고 하던데..."
"해리에게 물어보세요."
프레드가 대답했다.
"그래요. 저도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고 싶어요."
조지가 말했다. 쌍둥이 형제들과 지니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문 밖에서는
계단을 올라가던 크리처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그게..."
해리가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맥고나걸이나 덤블도어 교수 앞에서 말할
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저는... 일종의... 환상을 보았어요..."
해리는 자신이 본 것을 모두 말해 주었다. 하지만 뱀의 시선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 뱀이 공격할 때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이야기를 약간 바꾸어서 전달했다.
여전히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던 론이 그를 잠깐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레드와 조지, 지니는 한동안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리도
이것이 자신의 상상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들의 표정은
그를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그들이 단지 그가 그 광경을
보았다는 말만 듣고도 그를 비난한다면, 그 순간 뱀의 몸속에 함께 있었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엄마는 오셨나요?"
프레드가 시리우스에게 돌아서며 물었다.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엄브릿지가 끼어들기 전에 너희들을 먼저 데려오는 일이 가장 시급했거든.
아마 덤블도어 교수님이 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실 거야."
"어서 성 뭉고 병원으로 가야 해요."
지니가 오빠들을 쳐다보며 재촉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여전히 잠옷
차림이었다.
"시리우스, 망토나 뭐든 좀 빌려 줄 수 있으세요?"
"기다려라. 지금 당장 성 뭉고 병원으로 갈 수는 없다!"
시리우스가 그들을 말렸다.
"저희는 당연히 성 뭉고 병원에 갈 수 있어요. 그분은 저희 아빠라고요!"
프레드가 세차게 고집을 부렸다.
"병원 측에서 아서가 공격당한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설명할
거지? 부인에게조차 알리기 전인데 말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죠?"
조지가 격렬하게 소리쳤다.
"왜냐하면 해리가 16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
시리우스가 벌컥 화를 냈다.
"마법부가 그 정보를 들으면 어떻게 나올지 너희들은 전혀 모르겠니?
하지만 프레드와 조지는 마법부가 뭘 어떻게 하든 전혀 상관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론은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이 없었다.
지니가 말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말해줄 수도 있지 않나요? 해리 말고 어디 다른 데서
들었을 수도..."
"누구 말이냐?"
시리우스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내 말 좀 들어 봐라. 네 아버지는 기사단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부상을 당한
거야.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수상쩍은 상황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난
지 불과 몇 초 만에 그의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봐라. 기사단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도 있어..."
"그 멍청한 기사단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프레드가 고함을 질렀다.
"지금 우리는 죽어 가는 아빠 이야기를 하고 있단 말이에요!"
조지도 소리쳤다.
"너희 아버지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계셨어. 너희들이 기사단 일을
망친다면 전혀 좋아하지 않으실 거야!"
시리우스도 똑같이 화를 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너희들은 기사단에 들어올 수가 없는 거야. 너희들은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이건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말은 쉽게 하는군요. 여기 처박혀 지내면서!"
프레드가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아저씨가 목숨을 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안 그래도 생기가 없는 시리우스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잠깐 동안
그는 프레드를 한 대 후려치기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곧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척 힘들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한다. 최소한 너의 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올 때까지는 여기서
기다려야만 해, 알겠지?"
프레드와 조지는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의자로 걸어가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해리는 론을 쳐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인지, 어깨를 으쓱하는 것인지 잘 분간하기 힘든 우스꽝스런
동작을 하더니 역시 자리에 앉았다. 몇 분 동안 시리우스를 노려보고 서 있던
쌍둥이 형제들은 지니 맞은편에 앉았다.
"잘했다."
시리우스가 그들을 격려했다.
"자, 우리 모두... 우리 모두 기다리는 동안 목이나 축이자꾸나. 아씨오 버터
맥주!"
시리우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식품 저장실에 있던 여섯 병의 맥주가 그들을
향해서 날아오더니 남아 있는 음식물을 옆으로 밀치며 식탁 위로 쭉 미끄러졌다.
그리고 여섯 사람 앞에 딱 멈춰 섰다. 그들은 모두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동안 부엌 벽난로가 타닥거리며 타는 소리와 맥주병을 식탁 위에 내려놓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해리는 그저 가만히 손을 놓고 앉아 있기가 싫어서 맥주를 몇 모금 들이켰다.
그의 뱃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죄책감으로 꽉 차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지금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며 이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위급한 상황을 알림으로써 위즐리 씨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라고 아무리 스스로 위로해도 소용이 없었다.
바보같이 굴지 마. 너에게 송곳니 따위는 없어.
해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버터
맥주병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넌 그때 침대에 있었어. 넌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때, 덤블도어 교수님의 방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지?
해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난 분명 덤블도어 교수님을 공격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어...
해리는 자신도 모르게 맥주병을 쾅 하고 내려놓았다. 그 바람에 맥주병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때
허공에서 팍 하고 불꽃이 터지면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지저분한 접시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그들 앞에 황금색 불사조의 꼬리
깃털과 함께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가 툭 떨어졌다.
"퍽스야!"
시리우스가 즉시 양피지를 집어 들었다.
"이건 덤블도어의 글씨가 아닌걸. 네 어머니가 보내신 편지가 틀림없어.
여기..."
시리우스는 조지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는 황급히 편지를 펴더니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직 살아 계시다. 나는 지금 성 뭉고 병원으로 가는 중이란다.
너희들은 거기 가만히 있거라. 가능한 빨리 소식을 전해주마. 엄마."
조지가 식탁을 둘러보았다.
"아직 살아 계시대... 하지만 그 말은 마치..."
조지는 굳이 하던 말을 끝낼 필요가 없었다. 해리의 귀에도 그 말은 위즐리
씨의 목숨이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뜻처럼 들렸던 것이다. 론은 아직도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엄마의 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편지가 어떤 위로의
말이라고 들려주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프레드는 조지의 손에서 양피지를
뺐더니 직접 읽어 보고는, 해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버터 맥주병을 쥔 해리의
손이 다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좀더 세게 병을
움켜잡았다.
해리는 이렇게 늦게까지 자지 않고 앉아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시리우스가 도중에 한 번 그만 모두 자러 가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보았지만, 아이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모든 대답을
대신했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아무 말 없이 식탁 주위에 둘러앉아서 양초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이따금씩 맥주병을 들었다 내려놓는 것이
전부였다. 어쩌다 입을 열 때에는 몇 시인지 시간을 물어보고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하다가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위즐리 부인이 성 뭉고 병원에 간 지도
오래되었으니 진작 소식이 전해졌을 거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마침내 프레드가 머리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지니는
고양이처럼 의자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있었지만, 눈은 크게 뜨고
있었다. 해리는 벽난로 불빛을 통해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론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자는지 깨어 있는지 도통 구별할
수가 없었다. 이 가족의 불행에 뜻하지 않게 끼어든 해리와 시리우스는 이따금
서로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론의 시계로 새벽 다섯 시 십 분이 지났을 때. 부엌문이 열리더니 위즐리
부인이 들어왔다. 부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프레드와 론, 해리는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이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위즐리 부인은 애써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는 괜찮으실 거야."
피곤에 지친 그녀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지금 주무시고 계시단다. 나중에 찾아뵙도록 하자. 지금은 빌이 아버지 곁을
지키고 있어. 아침이 되면 다시 회사에 나가야 하지만."
프레드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조지와 지니는 재빨리
달려가서 엄마를 와락 껴안았다. 론은 떨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마시다 남은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아침을 준비해야지!"
시리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신나게 소리를 질렀다.
"이 망할 놈이 집요정은 어디 있는 거야? 크리처! 크리처!"
하지만 크리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휴, 그 녀석은 잊어버려야지."
시리우스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그럼 아침 식사로... 어디 보자... 베이컨과 계란 일곱 개... 그리고 차와
토스트..."
해리는 시리우스를 돕기 위해 얼른 화덕 쪽으로 갔다. 기뻐하는 위즐리 가족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즐리 부인이 그의 꿈에 대해서
물어볼까 겁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오자마자, 위즐리
부인은 그의 손에서 접시를 빼앗더니 그를 덥석 껴안았다.
"해리, 네가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구나."
위즐리 부인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몇 시간 후에나 아서를 발견했을지도 몰라. 그럼 그땐 너무 늦었겠지.
네 덕분에 아서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 게다가 덤블도어 교수님은 아서가 왜
그때 그곳에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그럴듯한 핑계까지 생각해 내실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서가 어떤 곤경에 빠졌을지 모른단다. 가엾은
스터지스를 봐라..."
해리는 더 이상 위즐리 부인의 인사를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부인은 곧 그를 품에서 떼어 놓더니 시리우스에게 돌아서서 밤새
아이들을 돌봐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시리우스는 오히려 도움이 되어서
기쁘다고 말하며, 위즐리 씨가 병원에 있는 동안 모두 이곳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이야기를 꺼냈다.
"오, 시리우스, 너무 고마워서... 그러지 않아도 그 사람은 병원에서 좀더
지내야 한다고 하니 가까이 있는 게 좋을 거예요... 물론 그 말은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여기서 지낸다는 것을 뜻하는..."
"손님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법입니다!"
누가 봐도 시리우스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위즐리 부인은
활짝 웃으며 앞치마를 두르더니 아침 준비를 거들기 시작했다.
"시리우스, 저랑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지금 바로?"
해리는 이제 더 이상 일 분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어두컴컴한 식품
저장실로 가자, 시리우스가 뒤를 따라왔다. 해리는 뜸을 들이지 않고 곧바로
그가 꿈에 본 것들을 대부에게 자세히 털어놓았다. 물론 그가 뱀이 되어 위즐리
씨를 공격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시리우스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덤블도어 교수님께도 이 이야기를 했니?"
"그럼요. 하지만 교수님은 그게 무슨 뜻인지 말씀해 주시지 않았어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죠."
"그게 걱정할 만한 일이었다면, 틀림없이 너에게 말씀해 주셨을 게다."
시리우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해리가 좀더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우스, 저... 저는 아무래도 점점 미쳐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덤블도어
교수님 방에 들어갔을 때, 포트키를 쓰기 직전이었는데, 잠깐 동안 다시 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님은 바라보고 있으니까 이마의
흉터가 마구 쑤시면서 그에게 덤비고 싶은 충동이 들더라고요."
해리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어둠 속에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환상을 보고 난 여파 때문일 게다. 그게 전부야. 그때까지도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거나 뭐 그랬겠지."
시리우스가 말했다.
"그게 아니에요."
해리가 고개를 저었다.
"제 안에서 뭔가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어요. 마치 제 안에 뱀이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죠."
"넌 잠을 좀 자야겠다."
시리우스가 딱 잘라 말했다.
"아침을 좀 먹고 나서 위층으로 가서 잠을 자거라. 그런 다음 점심을 먹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서를 보러 가렴. 넌 지금 충격을 받았어. 너는 네가
목격한 그 장면 때문에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네가 그걸
목격하길 천만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서는 죽었을 게다. 그러니 걱정은
그만 하렴."
시리우스는 해리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그를 어둠 속에 홀로 남겨 두고 식품
저장실을 나가 버렸다.
해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오전 내내 잠을 잤다. 해리는 지난여름 몇 주
동안 론과 함께 썼던 침실로 올라가긴 했다. 론이 침대에 기어 들어가자마자
곯아떨어진 반면, 그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차가운 금속 침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일부러 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불편한 자세를 취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잠이 들면 꿈속에 다시 뱀이 되어서 이번에는 론을 공격하려 들거나 혹은 집
안을 기어 다니며 차례차례 다른 사람들을 해치려고 들까 봐 겁이 났던
것이었다.
론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해리는 자신도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척했다. 그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호그와트에서 트렁크가 도착했다. 덕분에 그들은 머글 옷으로
갈아입고 병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해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망토를
벗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으면서 신나게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런던 시내를
안내하기 위해서 통스와 매드아이가 나타나자, 그들은 매드아이가 마법의 눈을
가리기 위해 한쪽으로 비스듬히 쓴 중절모자를 보면서 또 한바탕 웃어 댔다.
그리고 차라리 빛나는 분홍색 짧은 머리를 한 통스가 오히려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덜 끌 거라고 진심으로 충고했다.
통스는 해리가 위즐리 씨의 부상 장면을 보았다는 이야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해리는 그거야말로 가장 입에 올리기 싫은 화제였다.
"혹시 너의 가문에 예언자의 혈통이 있는 게 아닐까?"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통스가 호기심에 가득
차서 물었다.
"없어요."
해리는 트릴로니 교수를 생각하자, 왠지 모욕을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맞아."
통스가 뭔가 깊이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건 아니야. 네가 한 건 진짜 예언은 아닌 것 같아. 그러니까 넌 미래를 본
게 아니라, 현재를 본 거란 말이지. 그것 참 이상하지 않니? 비록 쓸모 있긴
하지만..."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다음 역에서 내려야만
했다.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역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느라 북새통인 가운데,
해리는 제일 앞서 걸어가는 통스 뒤로 프레드와 조지를 먼저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통스를 따라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무디는 중절모자를
비스듬히 푹 눌러쓴 채. 지팡이를 움켜쥔 손을 코트 속으로 찔러 넣었다. 해리는
감추어진 마법의 눈이 줄곧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꿈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해리는 매드아이에게 성 뭉고
병원이 어디에 감추어져 있는지 물어보았다.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다."
무디가 거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은 상점이 줄지어 서 있고 크리스마스
쇼핑객들로 넘쳐나는 커다란 도로 위로 올라왔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무디는 해리를 앞장세우고는 바로 뒤에서 뚜벅뚜벅 따라왔다. 해리는 중절모자
밑에 숨겨진 눈이 온 사방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을 지을 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 다이애건
앨리에는 그만큼 넓은 터가 없었고 그렇다고 마법부처럼 땅속에 지을 수도
없었어. 건강에 별로 좋지 않으니까. 결국 이곳에 건물을 세울 수밖에 없었단다.
이론상으로는, 아픈 마법사들이 사람들 틈에 뒤섞여서 마음대로 병원을 오고 갈
수 있다는 거였지."
무디는 시끄럽게 떠드는 쇼핑객들 때문에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리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쇼핑객들은 전기 제품이 가득 진열되어 있는 근처 가게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다."
무디가 잠시 후에 말했다. 그들은 퍼지 and 도우즈 상점이라고 쓰여 있는,
붉은 벽돌의 커다란 구식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낡고 누추해 보였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날개가 비뚤어진 나무 조각 인형들이 제멋대로 늘어서 있었는데,
최소한 10년은 유행에 뒤떨어진 듯한 옷을 입고 있었다. 먼지 낀 문에는 커다란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수리 중."
해리는 비닐 쇼핑 가방을 잔뜩 짊어진 덩치 큰 여자가 옆을 지나가면서
친구에게 말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저 집이 열려 있는 건 한 번도 못 봤어..."
"여기다."
통스는 특별히 못생긴 여자 인형이 진열되어 있는 한 유리창 앞으로 그들을
불러 모았다. 가짜 속눈썹을 간신히 대롱대롱 달고 있는 인형은 앞치마가 달린
초록색 나일론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모두 다 준비됐니?"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무디는 또다시 해리를
앞으로 떠밀며 재촉했다. 통스는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고 제일 못생긴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숨결이 닿자, 유리 위에 뽀얗게 김이 서렸다.
"와처, 아서 위즐리를 보러 왔어요."
통스가 말했다.
아주 잠깐 동안 해리는 유리창 너머로 그렇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인형에게
들리기를 기대하는 통스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등 뒤에서는
버스들이 부르릉거리고 쇼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상황이
어찌됐든 인형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해리는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인형이 고개를 까닥하더니
손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통스는 지니와 위즐리 부인의 팔을 끌고, 진열장
안으로 곧장 걸어 들어가더니 곧 사라졌다.
프레드와 조지, 론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해리는 서로 어깨를 밀치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느 누구도 퍼지 and 도우즈 상점의 보기 흉한
진열장까지 들여다보고 있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방금
그들의 눈앞에서 여섯 명의 사람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서 가자."
무디가 해리의 등을 쿡 찌르며 말했다. 두 사람은 차가운 물의 장막처럼
느껴지는 것을 지나서, 따뜻하고 건조한 실내로 들어갔다.
보기 흉한 인형이나 그 인형이 서 있던 진열장 따위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병원 출입구쯤 되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마녀와 마법사들이 흔들흔들하는 나무 의자 위에 줄지어 앉아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멀쩡한 얼굴로 지난 호 '마녀 주간지'를 읽고 있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가슴에 코끼리 다리가 달리거나 손이 하나 더 달려
있는, 보기만 해도 섬뜩한 돌연변이 기형이었다. 병원 안이라고 해도 바깥
거리와 다를 바 없이 시끄러웠다. 수많은 환자들이 저마다 괴상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는 한 마녀는 '예언자
일보'를 접어서 야단스레 부채질을 하면서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숨을
쉴 때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마치 김이 새어 나오듯이 쉭쉭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쪽 구석의 구접스럽게 생긴 한 마법사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종을 치듯
땡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가 어찌나 세차게 진동을
하던지 두 손으로 머리를 꽉 잡고 있어야만 했다.
한편 연한 초록색 망토를 입은 마녀와 마법사들은 환자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엄브릿지처럼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필기판에 받아 적었다.
해리는 그들의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지팡이와 뼈가 X자로
교차된 그림이었다.
"저 사람들이 의사인가?"
해리가 론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의사라고?"
론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사람들을 마구 칼로 자르는 그 머글 멍청이 말이야? 절대 아니지. 저들은
치료사들이야."
"이쪽으로 와라."
위즐리 부인이 한쪽 구석에서 또다시 종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는 마법사의
머리 너머에서 그들을 불렀다. 그들은 부인을 따라서 '면회'라고 적힌 책상에
앉아 있는 뚱뚱한 금발 마녀 앞에 줄지어 섰다. 마녀의 뒤편 벽에는 여러 가지
주의 사항과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청결한 냄비는 약이 독약이 되는 것을 방지한다.
자격 있는 치료사가 인정하지 않은 해독제는 독이다.'
그 밖에도 곱슬거리는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마녀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딜리스 덜웬트
성 뭉고 병원 치료사 1722,1741
호그와트 마법 학교 교장 1741, 1768
딜리스는 마치 그들의 수를 헤아리듯 위즐리 일행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찡긋하더니 초상화 밖으로 빠져나와 사라졌다.
한편 줄 맨 앞에서는 젊은 마법사 하나가 기묘한 춤을 추듯이 몸을 흔들며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사이사이로 책상 건너편에 앉아 있는 마녀에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이 신발은... 어이크... 제 형이 제게 준... 아이쿠... 신발인데... 아야... 자꾸만...
제 발을... 으악... 깨물어서... 아이쿠... 이걸 좀 봐 주십시오... 으아아아악... 무슨
저주가 걸린 모양인데... 에구구... 난 도저히 못 풀겠습니다."
그는 뜨겁게 달구어진 석탄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처럼 한 발을 들었다가 또
다른 발을 들었다가 하면서 껑충껑충 뛰었다.
"그 신발 때문에 이 글씨까지 못 읽는 건 아니겠죠?"
금발 마녀가 신경질을 내면서 책상 왼쪽에 붙은 커다란 안내판을 가리켰다.
"당신은 5층에 있는 마법 상해과로 가세요. 안내문에 적혀 있는 대로 말이죠.
다음!"
마법사가 껑충껑충 뛰면서 옆으로 비켜나자, 위즐리 일행은 앞으로 몇 발짝
나갈 수 있었다. 해리는 층별 안내문을 읽어 보았다.
1층, 인재 사고
냄비 폭발, 지팡이 역발사, 빗자루 파손 등등
2층, 생물에 의한 부상
물림, 찔림, 화상, 가시 박힘
3층, 마법 해충
전염병(예를 들어 천연두)
소멸 질병, 연주창 등등
4층, 마법약과 식물에 의한 중독
발진, 구토, 자제할 수 없는 웃음 등등
5층, 마법 상해
제거할 수 없는 저주, 주술, 잘못 사용된 마법 등등
6층, 방문자 휴게실, 매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거나,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이거나 혹은 왜
이곳에 왔는지 기억할 수 없을 때에는 언제든지 병원의 도우미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제 그 줄 앞에는 보청기를 손에 든 꼬부랑 마법사가 서 있었다.
"브로드릭 보드를 만나러 왔소!"
그는 소리를 질렀다.
"49호실로 가세요. 하지만 괜히 시간 낭비만 하시는 것 같군요."
마녀는 거만하게 말했다.
"그 사람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어요. 아직도 자기가 찻주전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
몹시 피곤해 보이는 마법사 한 사람이 어린 딸의 손목을 꼭 잡고 다가왔다.
그녀는 놀이옷 등에 불쑥 솟아난, 깃털이 달린 거대한 날개로 아빠의 머리를
탁탁 치고 있었다.
"5층으로 가세요."
마녀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심드렁하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 남자는
이상하게 생긴 풍선이라도 되는 듯이 딸아이를 붙잡고, 책상 옆에 있는
이중문으로 사라졌다.
"다음!"
위즐리 부인이 책상 옆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위즐리 부인이 인사를 했다.
"제 남편인 아서 위즐리가 오늘 아침에 다른 병동으로 옮겨졌다고 하는데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서 위즐리."
마녀는 자기 앞에 놓인 긴 명단을 손가락으로 재빨리 짚어 내려갔다.
"그래요. 2층 오른쪽 두 번째 방이군요. 다이 르월린 병동이에요."
"고마워요. 어서 가자, 얘들아."
위즐리 부인이 말했다. 그들은 이중문을 지나서 좁은 복도를 걸어갔다.
그곳에는 더 많은 유명한 치료사들의 초상화가 줄지어 걸려 있었고, 양초가 들어
있는 크리스털 전구가 커다란 비누거품처럼 천장 주위를 둥둥 떠다니며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연한 초록색 망토를 입은 더 많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방금
그들이 지나온 문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어떤 문을 통과했을 때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노란 가스가 복도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들은 생물에 의한 부상 층인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오른쪽 두 번째 방문 앞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었다. '위험한' 다이
르월린 병실, 심각하게 물린 환자들.
그 밑에는 놋쇠 집게에 손으로 쓴 카드가 꽂혀 있었다.
담당 치료사, 히포크라테스 스메스윅. 견습치료사, 어거스투스 파이.
"우리는 밖에서 기다리겠어요, 몰리."
통스가 말했다.
"아서도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오는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먼저
가족들을 만나야죠."
매드아이도 통스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리고 마법의 눈을 빙글빙글 돌리며
복도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해리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위즐리 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해리의 손을 붙잡고 병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해리, 바보처럼 굴지 마라. 아서도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을 거야."
병실 안은 좁고 지저분했다. 높고 좁은 단 하나의 창문이 문 맞은편 벽에 나
있었다. 병실을 비추는 것은 천장 가운데 매달려 있는 반짝이는 크리스털
전구였다. 떡갈나무 판자가 둘러쳐진 벽에는 약간 못되게 보이는 마법사의
초상화 하나가 걸려 있었다.
'어쿠하트 랙해로우, 1612,1697, 탈장 저주 고안자'
병실에는 환자가 세 명밖에 없었다. 위즐리 씨는 병실 제일 안쪽에, 작은 창문
옆 병상에 누워 있었다. 해리는 높이 쌓아 올린 베개에 몸을 기댄 채, 침대 위로
쏟아지는 한 줄기 햇빛 아래에서 '예언자 일보'를 읽고 있는 위즐리 씨를 보자,
마음이 놓였다. 위즐리 씨는 자기를 향해 오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활짝
웃었다.
"어서 와라!"
위즐리 씨는 신문을 얼른 옆으로 내던졌다.
"빌은 방금 떠났소, 몰리. 직장에 돌아가 봐야 한다면서 말이오. 하지만 나중에
당신에게 들르겠다고 했소."
"당신은 좀 어때요, 아서?"
위즐리 부인이 허리를 숙이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더니 걱정스럽게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직도 몹시 수척해 보여요."
"나는 이제 완전히 다 나았소."
위즐리 씨는 환하게 웃으며 성한 팔로 지니를 껴안았다.
"이 붕대만 풀면, 나는 집으로 갈 거요."
"왜 아직까지 붕대를 풀지 못하는 거죠, 아빠?"
프레드가 물었다.
"붕대를 풀려고 할 때마다 미친 듯이 피가 쏟아져서 말이다."
위즐리 씨는 손을 뻗어서 사물함 옆에 놓여 있는 지팡이를 집어들더니, 여섯
개의 의자를 불러내어 사람들을 모두 자리에 앉혔다.
"아마 그 뱀의 이빨에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하는 어떤 특이한 독이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치료사들이 곧 해독제를 찾아낼 거라고 장담했단다. 나보다
훨씬 더 심한 경우도 많았다고 하더구나. 어쨌든 그때까지 나는 매시간 혈액
보충 마법약을 먹어야만 한단다. 하지만 저기 저 환자는 말이다..."
위즐리 씨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맞은편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 남자는 병색이 완연한 몰골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늑대인간에게 물렸단다. 전혀 손쓸 방법이 없지."
"늑대인간이라고요?"
위즐리 부인이 깜짝 놀라며 속삭였다.
"그런데 일반 병실에 있어도 괜찮을까요? 1인실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보름달까지는 아직 두 주나 남았어."
위즐리 씨는 조용히 위즐리 부인을 일깨워 주었다.
"오늘 아침 내내 치료사들이 그를 붙잡고, 보통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납득시키려고 애를 쓰더군. 나도 그에게 말해 주었어. 물론
이름은 말하지 않고 말이야. 개인적으로 늑대인간을 한 사람 알고 있는데 아주
친절하고 자신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조지가 물었다.
"조용히 입 닥치지 않으면 날 물겠다고 하더군."
위즐리 씨는 유감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 저기 있는 저 여자는 뭐에 물렸는지 치료사에게 절대 말하지 않아서,
우리 모두 저 여자가 금지된 생물을 취급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게 뭔지
몰라도, 넓적다리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가고 거즈를 떼면 아주 고약한 냄새가
풍긴단다."
"아빠, 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희에게 말씀해 주실 건가요?"
프레드가 의자를 침대 곁으로 바싹 끌어당기며 물었다.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지 않니?"
위즐리 씨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해리에게 던졌다.
"아주 간단하단다. 아주 힘든 하루를 보내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뱀이 와서
날 물었어."
"아빠가 공격을 당했다는 기사가 '예언자 일보'에 실렸나요?"
프레드는 위즐리 씨가 옆으로 던져 놓은 신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니, 물론 아니다."
위즐리 씨가 다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법부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 그렇게 크고 무서운 뱀이..."
"아서!"
위즐리 부인이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를 공격했다는 걸 말이다."
위즐리 씨가 황급히 말을 끝냈다. 하지만 해리는 위즐리 씨가 원래 하려던
말이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일을 당하신 거죠?"
조지가 물었다.
"그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위즐리 씨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예언자
일보'를 집어 들더니 신문을 펼쳐 들고 말했다.
"너희들이 왔을 때, 나는 윌리 위더쉰스가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읽고
있었단다. 윌리가 지난여름 화장실이 역류했던 사건의 주범으로 밝혀졌다는 걸
알고 있니? 그가 쏜 주문이 잘못 맞아서 화장실이 폭발해 버렸단다. 결국
사람들이 그를 찾았을 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물을 뒤집어쓴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아빠가 '임무 중'이었다고 하던데, 그 임무라는 게 뭐죠?"
프레드가 작은 목소리로 불쑥 끼어들었다.
"네 아버지 말씀을 들어라. 여기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아서, 윌리
위더쉰스 이야기나 계속하세요."
"그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는 화장실 사건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빠져나갔단다. 나로서는 아마 돈을 쓴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지."
위즐리 씨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걸 지키고 계셨죠?"
조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무기 아닌가요? 그 사람이 찾고 있다던 그거?"
"조지, 조용히 하지 못하겠니!"
위즐리 씨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런데..."
위즐리 씨는 다시 목청을 높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번에는 머글들에게 깨무는 손잡이를 팔아서 붙잡혀 온 거야. 과연 윌리가
이번 사건에서는 또 어떻게 빠져나갈지 모르겠다. 여기 실린 기사에 의하면 머글
두 명이 손가락을 잃고 응급 뼈 재생과 기억 조작을 위해 여기 성 뭉고 병원에
와 있다고 하는구나. 생각을 해봐라! 머글이 성 뭉고 병원에 와 있다니! 도대체
어느 병실에 있는 걸까?"
위즐리 씨는 혹시 표지판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사람이 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니, 해리?"
프레드가 아버지의 반응을 살피며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아주 거대한 뱀을? 그자가 돌아오던 날 밤에 그걸 봤다며, 안 그래?"
"그만 해라."
위즐리 부인이 야단을 쳤다.
"아서, 매드아이와 통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다시 아이들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너희들은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작별 인사를 하고 그만 나가 봐라."
그들은 복도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매드아이와 통스가 들어오더니 병실 문을
닫았다. 프레드는 눈을 치켜 떴다.
"좋아. 우리에게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겠다는 거지."
프레드는 호주머니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걸 찾는 거니?"
조지가 살구색 나는 줄이 뒤엉킨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을 내밀었다.
"내 속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본다니까."
프레드가 씩 웃었다.
"어디 성 뭉고 병원의 문에도 접근불가 마법이 걸려 있는지 볼까?"
프레드와 조지가 뒤엉킨 줄을 풀자, 늘어나는 귀 다섯 개가 되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그것을 각자에게 하나씩 주었다. 하지만 해리는 받기를 망설였다.
"어서 받아, 해리! 너는 우리 아빠의 목숨을 구했잖아. 너야말로 아빠의
이야기를 엿들을 만한 권리가 있어!"
해리는 어쩔 수 없이 쌍둥이 형제들이 하라는 대로 늘어나는 귀의 한쪽 끝을
귀에 꽂았다.
"좋아, 어서 가자!"
프레드가 속삭였다. 살구색 나는 줄은 길고 빼빼 마른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기어서 문 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에 해리는 깜짝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통스가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너무 똑똑하게 들렸던 것이다.
"그 지역을 다 수색했지만 어디에서도 뱀을 찾을 수 없었어요. 당신을 공격한
후에 곧 사라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사람도 뱀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안 그래요?"
"내 생각에는 그저 정찰을 하기 위해 보낸 것 같아."
무디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는 그자가 별로 운이 없었잖아, 안 그래? 그래서 자기를 가로막는 게
뭔지 좀더 알아보려고 했겠지. 아서가 거기 없었다면, 그 짐승은 좀더 여유를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았을 거야. 그래, 포터는 이 모든 일을 다 보았다고
말하던가?"
"그래요."
위즐리 부인은 약간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덤블도어는 심지어 해리가 이런 걸 보게 되는 순간을 기다려 왔던 것
같더군요."
"그렇군. 확실히 포터 그 녀석에게는 뭔가 재밌는 구석이 있단 말이야. 물론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에 나와 이야기할 때에는 해리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
같았어요."
위즐리 부인이 속삭였다.
"당연히 걱정되겠지. 그 녀석은 그 사람의 뱀 속으로 들어가서 이 모든 일을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분명히 포터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거야. 하지만
만약 그 사람의 영혼이 그 애에게 씌기라도 하면..."
해리는 그만 귀에 꽂고 있던 늘어나는 귀를 빼 버렸다. 망치질을 하듯 심장이
마구 뛰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해리는 다른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여전히 늘어나는 귀를 귀에 꽂은 채, 공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