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사자와 뱀
다음 두 주 동안 해리는 가슴에 신비한 부적이라도 품고 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소중한 비밀 덕분에 엄브릿지의 수업 시간도 훨씬 견딜 만했고,
심지어 그녀의 툭 튀어나온 끔찍한 눈을 마주 보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해리와 D,A는 바로 엄브릿지의 코앞에서 그녀와
마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하면서 그들에게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엄브릿지의 수업 시간마다, 해리는 윌버트 슬링크하드의 책을 읽는 척하면서
가장 최근에 가졌던 비밀 모임에 대한 흐뭇한 기억을 되새기곤 했다. 네빌이
멋지게 헤르미온느의 무기를 빼앗던 일, 콜린 크리비가 모임에 세 번 참석한
끝에 드디어 장애 마법을 성공시킨 일, 그리고 패르바티 패틸이 분해 주문을
훌륭하게 성공시켜 스니코스코프가 잔뜩 놓여 있던 책상을 먼지만큼이나 작게
부서뜨렸던 일 등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D,A 모임을 매주 딱 정해진 날로 고정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퀴디치 팀의 연습 날짜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해야만 하는 데다가, 날씨에 따라서 연습 시간이 종종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별로 불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모임 시간을 계속
바꾸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설사 누군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임 시간을 짐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르미온느는 다음 모임의 시간과 날짜를 회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마법을 생각해 냈다. 서로 다른 기숙사 학생들이 자꾸
대연회장을 왔다갔다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르미온느는 D,A 회원들 모두에게 가짜 갈레온을
나누어 주었다(처음에 론은 금화가 담긴 바구니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헤르미온느가 진짜 금을 나누어 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금화 가장자리에 숫자가 보이지?"
그들이 네 번째 모임을 가졌을 때, 헤르미온느가 금화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금화는 횃불의 빛을 받아서 노랗고 눈부시게 빛났다.
"진짜 갈레온에는 이 동전을 찍어 낸 도깨비를 알려 주는 일련번호가 찍혀
있어. 하지만 이 가짜 금화에 있는 숫자는 수시로 변하면서 다음번 모임의
시간과 날짜를 알려 줄 거야. 날짜가 변경되면 동전이 뜨겁게 달아오를 테니까
항상 주머니속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만져 보도록 해. 우리 모두 하나씩
금화를 가지면, 해리가 다음번 모임의 날짜를 정해서 자기 금화의 숫자를 바꿀
거야. 그러면 다른 금화들도 모두 따라서 숫자가 변할 거야. 내가 여기다가 변화
마법을 걸어 놓았거든."
헤르미온느의 말에 모두들 눈만 끔뻑이며 아무 대답이 없었다. 헤르미온느는
약간 당황스런 표정으로 자기를 빤히 올려다보는 아이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글쎄... 난 이 방법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헤르미온느가 망설이며 말했다.
"혹시 엄브릿지가 우리 호주머니를 뒤져 보더라도, 갈레온을 가지고 다니는 게
뭐 나쁜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그걸 사용하기 싫다면..."
"네가 변화 마법을 할 수 있단 말이니?"
테리 부트가 물었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그건 N,E,W,T 수준 마법이잖아."
테리 부트가 주저하며 말했다.
"아, 그거..."
헤르미온느는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 그래... 맞아... 그건 그래..."
"왜 너 같은 애가 래번클로로 오지 않았지?"
테리 부트가 거의 경탄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렇게 뛰어난 머리를 지녔는데?"
"사실 마법의 모자가 나를 분류할 때, 래번클로에 집어넣을지 심각하게
망설이긴 했어."
헤르미온느가 쾌활하게 말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리핀도르로 결정했지. 어쨌든 이 갈레온을 사용할 거야.
말거야?"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찬성의 뜻을 표하더니 앞으로 한 명씩 걸어 나와
바구니에 든 금화를 집어 들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를 슬쩍 곁눈질했다.
"이걸 보니 무슨 생각이 나는지 아니?"
"아니, 무슨 생각인데?"
"죽음을 먹는 자들의 문신이야. 볼드모트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을 만지자,
문신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그가 그들을 소집한다는 것을 알았어."
"음... 맞아."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거기서 힌트를 얻었어. 하지만 난 우리 회원들의 살에 새기기보다는
동전 조각에 날짜를 새길 생각을 했지."
"그래... 나도 네 방식이 더 마음에 들어."
해리가 씩 웃으며 갈레온을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이 금화의 단 하나 문제점은 자신도 모르게 써 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거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론은 몹시 유감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가짜 갈레온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짜랑 헛갈릴 진짜 갈레온이 하나도 없는 걸."
첫 번째 퀴디치 시합인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의 시합 날이 점점 다가오자,
D,A 모임은 당분간 중단되었다. 안젤리나가 거의 날마다 연습을 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기숙사 간 퀴디치 컵 대회가 너무나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탓에, 다가오는 시합에 대한 관심과 흥분은 더욱더 커졌다. 래번클로와
후플푸프의 학생들은 이 시합의 결과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왜냐하면
다음 해에는 양쪽 팀과 시합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경쟁하는 팀의
기숙사 사감들도 비록 스포츠맨 정신이라는 점잖은 가면으로 본심을 감추려고
애를 쓰기는 했지만, 반드시 자기 팀이 승리하도록 만들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심지어 시합을 바로 앞둔 주일이 되자, 맥고나걸 교수는 평소에 내주던
숙제까지 내주지 않았다. 그걸 보고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가 슬리데린 팀을
이기는 일에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도 숙제 말고도 너희들이 할 일이 아주 많을 거다."
맥고나걸 교수가 거만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해리와 론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엄숙하게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자신의 귀를 믿지 못했다.
"이제는 내 방에 퀴디치 우승컵이 놓여 있는 게 너무 익숙해졌단다, 애들아.
난 그걸 스네이프 교수에게 절대로 넘겨주고 싶지 않아. 그러니 틈틈이 시간을
내서 연습을 하도록, 알았지?"
스네이프 교수 역시 열성만큼은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슬리데린 팀의 연습을 위해서 어찌나 자주 퀴디치 경기장을 예약해 놓았던지,
그리핀도르 팀은 연습할 장소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어야만 했다. 스네이프는
또한 슬리데린 학생들이 복도에서 그리핀도르 선수들에게 못된 주문을 걸려고
한다는 수많은 불평을 못 들은 척했다. 앨리샤 스피넷의 눈썹이 너무 무성하게
빨리 자라서 눈을 뒤덮고 입까지 가로막을 지경이 되어 병동을 찾았을 때에도,
스네이프는 앨리샤가 틀림없이 자기 자신에게 발모 마법을 걸려고 했을 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또한 슬리데린의 파수꾼인 마일즈 블레칠리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앨리샤의 등 뒤에서 주문을 쏘았다고 주장하는 열네 명의 목격자들의
말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내심 그리핀도르의 승리를 낙관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한
번도 말포이네 팀에게 져 본 적이 없었다. 솔직히 우드에 비하면 론의 실력이
아직도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걸 따라잡기 위해 론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가장 커다란 단점은 한 번 실수를 저지르면 완전히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골이라도 빼앗기면, 론은 당황해서 점점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반면 상태가 좋을 때에는, 정말로 아주 멋진 방어를
해내기도 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어느 연습에서는 한 손으로 빗자루에 매달린
채, 골대로부터 퀘이플을 힘껏 쳐 낸 적도 있었다. 어찌나 세게 쳤던지, 퀘이플은
경기장 높이만큼 치솟았다가 반대편에 있는 중앙 골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선수들은 이거야말로 최근에 아일랜드의 국제적인 파수꾼인 베리 라이안이
폴란드의 최고 추격꾼, 라디스라우 자모이스키에 맞서서 보여 준 수비에 버금갈
만한 멋진 솜씨였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프레드까지도 론 덕분에 자기와 조지의
어깨가 으쓱해졌다면서, 이제 론과 그들이 혈연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할까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자기들은 지난 4년 동안 그 사실을 부인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리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단 한 가지 사실은, 경기장에 나서기도 전에
론을 바싹 약 올리려고 하는 슬리데린 팀의 교활한 전술에 그가 얼마나
말려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해리는 4년 넘게 그들의 비열한 야유를
참고 들어왔기 때문에, 어떤 소리를 들어도 온몸의 피가 싸늘해지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길 수가 있었다.
"이봐, 포터! 워링턴이 지난 토요일에 너를 빗자루에서 떨어뜨렸다고 맹세하는
소리를 들었겠지!"
"그러지 않아도 워링턴의 조준이 얼마나 형편없었던지, 혹시 내 옆에 있는
노린 건 아닌지 오히려 내가 조바심이 나던걸."
해리가 이렇게 맞받아치자, 론과 헤르미온느는 배를 움켜쥐고 웃어 댔다. 한편
팬시 파킨슨의 얼굴에서는 능글맞은 미소가 싹 사라졌다.
하지만 론은 모욕이나 농담, 빈정거림이 오고 가는 냉혹한 싸움을 결코 견디지
못했다. 한 번은 그들이 복도를 지나갈 때.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를 놀려 댄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그보다도 훨씬 큰 7학년 학생들도 있었다.
"위즐리, 너는 병동에 벌써 예약을 해 놓았다며?"
론은 웃지 않고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또 한 번은 말포이가 퀘이플을
떨어뜨리는 론을 흉내 낸 적이 있었다(말포이는 그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놀려
대느라 바빴다). 론은 귀까지 새빨갛게 변하면서 어찌나 손을 심하게 떨던지
뭐든 손에 들고 있었다간 금방 떨어뜨릴 것 같았다.
울부짖는 바람과 몰아치는 목우 속에 10월이 지나가고, 강철처럼 차가운
11월이 찾아왔다. 아침마다 두꺼운 서리가 내리고, 밖으로 드러난 손과 얼굴을
칼로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대연회장의 천장은 연한 진줏빛이
감도는 회색으로 변했고, 호그와트 주변의 산들은 머리에 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성 안의 온도가 너무 떨어져서, 많은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복도로 나올
때에는 두꺼운 용 가죽 장갑을 끼어야만 했다.
시합 날 아침은 맑고 차가운 날씨였다.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론의 침대를
바라보았다. 론은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은채, 침대 위에 앉아서 허공을 멍하니
노려보고 있었다.
"괜찮니?"
해리가 물었다.
론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론이 잘못해서
민달팽이 구역질 마법을 자신에게 걸었던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때처럼 입을 꾹 다문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을 먹으면 좀 나아질 거야. 어서 가자."
해리는 론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애를 썼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대연회장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연회장 안은 보통
때보다도 더욱 소란스럽고 시끄러웠다. 그들이 슬리데린 테이블 옆을 지나가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해리가 주위를 돌아보니, 슬리데린이 평소에 늘 쓰던
초록색과 은색의 목도리와 모자 이외에 왕관처럼 보이는 은색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이유 때문인지 많은 학생들이 왁자지껄 웃음을
터뜨리며 론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리는 그들 옆을 지나가면서 배지에 뭐라고 써
있는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론이 너무 빨리 슬리데린의 테이블 옆을 지나가는
바람에 배지에 적힌 글씨를 읽어 볼 틈도 없었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도착한 두 사람은 학생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모두 빨간색과 황금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뜨거운
환소성은 론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마지막 남은 실낱 같은
용기마저 사라지게 한 것 같았다. 론은 최후의 만찬이라도 마주한 사람처럼 가장
가까운 의자에 무너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미쳤어."
그는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완전히 미쳤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해리는 시리얼을 론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넌 괜찮아. 초조해하는 게 당연해."
"난 쓰레기야."
론이 다시 중얼거렸다.
"난 비열한 놈이야. 칭찬받으려고 퀴디치 시합을 할 순 없어.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진정해."
해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난번에 네가 발로 한 그 멋진 방어를 생각해 봐. 조지와 프레드까지도 정말
굉장하다고 말했잖아..."
론이 괴로운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건 우연이었어."
론이 처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고. 그냥 너희들이 아무도 못 본 사이에
빗자루에서 미끄러져서 다시 기어 올라가려고 애를 쓰다가 우연히 발로
퀘이플을 걷어찼을 뿐이야."
"어쨌든 그런 우연을 몇 번만 더 하면 시합에서 이기게 되는 거야. 안 그래?"
해리는 이 고백을 듣고 순간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았지만, 얼른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론을 위로했다.
그때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빨간색과 황금색의 목도리와 장갑 그리고 장미꽃
장식을 달고 그들 맞은편에 앉았다.
"기분이 어때?"
지니가 론에게 물었다. 그는 다 먹은 시리얼 그릇 밑바닥에 남은 우유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당장 거기에라도 빠져 죽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냥 초조해서 그래."
해리가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그건 좋은 징조야. 긴장을 안 하면, 넌 항상 시험을 망치잖아."
헤르미온느가 진심으로 말했다.
"안녕."
그들의 등 뒤에서 꿈꾸는 듯이 몽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가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 결에 루나 러브굿이 래번클로 테이블에서부터 건너와 있었다. 많은
학생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고, 몇 명은 공공연히 손가락질을 하며 웃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거의 실제 크기만 한 사자 머리 모양의 모자를
당장에라도 벗겨질 듯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에 쓰고 있었다.
"난 그리핀도르 팀을 응원하고 있어."
루나는 보란 듯이 자신의 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좀 봐."
루나는 손을 올리더니 지팡이로 모자를 툭 쳤다. 그러자 모자가 커다란 입을
딱 벌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펄쩍 뛸 정도로 진짜 사자와 똑같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멋지지 않니?"
루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이 녀석에게 슬리데린을 상징하는 뱀을 씹어 먹도록 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지. 어쨌든 행운을 빈다, 로날드!"
루나는 다시 훌쩍 떠나 버렸다. 그들이 루나의 모자가 준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안젤리나가 케이티와 앨리샤를 데리고 허둥지둥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다행스럽게도 앨리샤의 눈썹은 폼프리 부인 덕분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준비되는 대로 당장 경기장으로 나와. 날씨 상태와 변화를 살펴봐야 하니까."
"금방 갈 거야. 하지만 론이 아침 식사를 좀 해야 해."
해리가 안젤리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십 분이 지나도록 론이 단 한 입도 더 먹지 못하자, 해리는 그냥
탈의실로 내려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테이블에서 일어나자,
헤르미온느도 얼른 따라서 일어났다. 그리고 재빨리 그의 팔을 끌고 옆으로
가더니 황급히 속삭였다.
"슬리데린 아이들이 달고 있는 배지의 글씨를 론이 보지 못하게 해줘."
해리는 영문을 몰라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바로 그때 론이 기운이 하나도 없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론, 행운을 빌어."
헤르미온느가 발뒤꿈치를 들고 론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해리, 너도..."
대연회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동안, 론은 비로소 정신이 약간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가 입을 맞춘 자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론은
정신이 완전히 딴 데 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해리는 슬리데린의 테이블 옆을 지나면서 왕관
모양의 배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배지에 새겨진 글씨를 알아볼 수
있었다.
'위즐리는 우리의 왕'
틀림없이 좋은 뜻은 아닐 거라는 불쾌한 생각을 하면서, 해리는 황급히 론을
데리고 연회장을 지나 돌계단을 내려갔다. 바깥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발밑에서는 서리가 내려 빳빳하게 얼어붙은 풀들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그들은 경기장을 향해 서둘러 비탈진 잔디밭을 내려갔다. 하늘은 진주처럼
하얗게 빛났고,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였다. 햇빛만 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시야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해리는 걷는 동안에도 론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이런 유리한 점들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론이 제대로 듣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안젤리나는 벌써 옷을 갈아입고 탈의실로 들어온 선수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해리와 론은 선수복을 입고(론이 어찌나 여러 번 앞뒤를
바꿔 입었는지, 결국에는 안젤리나가 그를 불쌍하게 여겨서 도와주러 오기까지
했다). 자리에 앉아서 경기 전에 주장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밖에서는
웅웅거리는 함성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성에서 쏟아져 나온 관중이
차차 경기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좋아, 방금 전에야 슬리데린 팀의 최종 선수 명단을 손에 넣었어."
안젤리나가 양피지 한 장을 펼쳐 들며 말했다.
"작년의 몰이꾼이었던 데릭과 볼은 팀을 떠났어. 하지만 몬태규가 그 자리에
대신 고릴라를 넣은 것 같아. 비행 실력이 좋은 인간 대신 말이야. 그
고릴라들은 크레이브와 고일이라고 하는 멍청이들인데, 난 그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우리가 알아."
해리와 론이 동시에 말했다.
"어쨌든 빗자루의 앞뒤를 구별할 만한 지능도 없는 것처럼 보이더군."
안젤리나는 다시 양피지를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으며 말을 마쳤다.
"하긴 지난번 데릭과 볼도 도로 표지판 없이 어떻게 경기장에 찾아오는지
항상 놀랄 정도였지."
"크레이브와 고일도 똑같은 녀석들이야."
해리가 안젤리나를 안심시켰다. 그때 관중석을 향해서 우르르 올라오는 수백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일부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가사를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조금씩 초조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안에 떠는 론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론은 배를 움켜쥔채,
앞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턱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얼굴을
잿빛이었다.
"시간이 됐어."
안젤리나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시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 모두들... 행운을 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선수들은 빗자루를 어깨에 멘 채, 탈의실에서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밖으로 줄지어 나왔다.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그들을 맞이했다.
요란한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에 파묻히기는 했지만 해리는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슬리데린 선수들이 줄지어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역시 가슴에
왕관 모양의 은 배지를 달고 있었다. 몸집이 꼭 두들리 더즐리처럼 생긴,
슬리데린의 새로운 주장 몬태규의 굵은 팔뚝은 흡사 털 난 햄처럼 보였다. 그의
뒤에는 크레이브와 고일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몬태규 못지 않게 커다란 덩치로
새로 받은 몰이꾼의 몽둥이를 휘두르며 멍청하게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말포이의 금발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능글맞게 웃으며 가슴에 단 왕관 모양의 배지를 툭툭 쳤다.
"주장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도록."
주심인 후치 부인이 지시를 내리자, 안젤리나와 몬태규가 서로 손을 내밀었다.
해리는 몬태규가 일부러 안젤리나의 손을 으스러져라 꽉 움켜쥐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안젤리나는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빗자루에 올라타라."
후치 부인이 호루라기를 입에 물더니 힘껏 불었다.
공이 상자에서 나오면서 열네 명의 선수들도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 해리가
슬쩍 곁눈질을 해보니, 론은 골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해리는
블러저를 피해서 더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반짝이는 황금빛을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경기장의 넓은 면으로 향했다. 경기장 반대편에서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존슨... 존슨이 퀘이플을 잡았습니다. 저 선수가 바로 제가 몇 년 동안이나
그토록 매달렸는데 아직도 저와 외출 한 번 해주지 않는 여학생입니다."
"조던!"
맥고나걸 교수가 소리를 지르며 주의를 주었다.
"그저 더 재미있으라고 농담 한마디 한 겁니다, 교수님. 지금 막 존슨이
워링턴을 따돌리고 몬태규의 곁을 지나서... 아, 이런... 크레이브가 뒤에서 친
블러저에 맞았군요. 몬태규가 퀘이플을 잡았습니다. 몬태규, 경기장으로 막
되돌아가려고 하던 중... 조지 위즐 리가 친 멋진 블러저가 날아와서 몬태규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가 떨어뜨린 퀘이플을 케이티 벨이 다시 잡았군요.
그리핀도르의 케이티 벨, 앨리샤 스피넷에게 역패스를 합니다. 그리고
스피넷은..."
리 조던의 경기 해설이 운동장 안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해리는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고함을 지르고 우우 야유를 퍼부으며 노래를 부르는 관중의
함성 소리 속에서도 애써 해설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워링턴을 따돌리고 다시 블러저를 피했습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앨리샤!...
관중도 대단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저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그런데 이게 무슨
노랫소리일까요?"
리가 잠시 해설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자, 슬리데린이 응원단이 앉아 있는
초록색과 은색의 바다에서 우렁찬 노랫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위즐리는 단 한 번의 공격도 막아 낼 수 없어.
위즐리는 단 하나의 골대도 지킬 수 없어.
그래서 슬리데린이 다 함께 노래를 부른다네.
위즐리는 우리의 왕.
위즐리는 정신병원에서 태어났어.
언제나 퀘이플을 놓친다네.
위즐리는 틀림없이 우리를 이기게 해줄 거야.
위즐리는 우리의 왕.
"그리고 앨리샤가 다시 안젤리나에게 퀘이플을 넘겼습니다!"
리가 다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방금 들은 노랫소리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옆으로 휙 비껴갔다. 리는 어떻게든 슬리데린의
노랫소리를 묻어 버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자, 이제 안젤리나 선수입니다. 그녀가 퀘이플을 넣기 위해 곧장 파수꾼에게
맞설 것처럼 보입니다. 슛, 아아아아... 이런..."
슬리데린의 파수꾼인 블레칠 리가 퀘이플을 막아 냈다. 재빨리 다가온
워링턴은 공을 넘겨받자마자, 앨리샤와 케이티 사이를 지그재그로 파고들었다.
그가 론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밑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
위즐리는 우리의 왕.
위즐리는 우리의 왕.
언제나 퀘이플을 놓친다네.
위즐리는 우리의 왕.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스니치 찾는 일을 포기한 채, 론을
향해 파이어볼트를 돌렸다. 거대한 몸집의 워링턴이 그를 향해 돌진하는 동안,
그는 경기장 맨 끝에서 세 개의 골대 앞을 왔다갔다하며 외롭게 떠 있었다.
"워링턴이 퀘이플을 가지고 골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블러저의 공격 영역을
벗어난 그는 이제 파수꾼 한 명만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래쪽 슬리데린 관중석에서 우렁찬 노랫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위즐리는 단 한 번의 공격도 막아 낼 수 없어.
위즐리는 단 하나의 골대도 지킬 수 없어.
"그리핀도르의 파수꾼 위즐리에게는 이번이 첫 번째 시험이 되겠군요. 그는
몰이꾼인 프레드와 조지의 형제이며, 그리핀도르 팀의 전도 유망한 새로운
실력자입니다. 힘을 내요. 론!"
하지만 슬리데린 쪽에서 기쁨에 찬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론이 두 팔을 쫙
벌린 채, 허둥지둥 날아다니는 동안, 퀘이플은 높이 솟아서 론의 중앙 골대
속으로 곧장 들어가 버린 것이다.
"슬리데린의 득점입니다!"
관중의 환호성과 야유 소리 속에서 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슬리데린이 10점을 얻었습니다. 론, 운이 나쁘군요."
슬리데린 학생들은 더욱더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다.
위즐리는 정신병원에서 태어났어.
언제나 퀘이플을 놓친다네.
"그리핀도르 선수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케이티 벨 선수가 탱크처럼
전진하고 있습니다."
리는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제 슬리데린의
노랫소리는 거의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리조차도 자신의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위즐리는 틀림없이 우리를 이기게 해줄 거야.
위즐리는 우리의 왕.
"해리,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안젤리나가 케이티를 따라잡기 위해 그의 옆을 휙 지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서 가!"
해리는 비로소 자신이 한동안 허공에 가만히 떠서 스니치를 잡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넋을 잃고 경기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화들짝 놀란 그는 다시 경기장 안을 빙빙 돌며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경기장이 떠나가라 불러 대는
노랫소리를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위즐리는 우리의 왕.
위즐리는 우리의 왕.
하지만 어디에도 스니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말포이도 여전히 경기장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려다가 그만 운동장 한복판에서
서로 딱 마주치고 말았다. 해리는 말포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다.
위즐리는 정신병원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워링턴이 잡았습니다."
리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는 푸시에게 퀘이플을 넘겼고 푸시는 스피넷을 따돌렸습니다. 힘을 내,
안젤리나. 너는 그 녀석을 따라잡을 수 있어. 아, 안타깝군요. 하지만 프레드
위즐 리가 멋지게 블러저를 날렸습니다. 아니 조지 위즐리인가? 지금 이 판국에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어쨌든 두 사람 중 하나겠죠. 워링턴이 퀘이플을
떨어뜨리자, 케이티 벨이... 아, 케이티 벨도 퀘이플을 떨어뜨렸습니다. 결국
몬태규가 차지했군요. 슬리데린의 주장인 몬태규가 퀘이플을 차지하고 경기장
높이 올라갔습니다. 자, 어서, 그리핀도르, 그를 막아요!"
해리는 일부러 슬리데린의 골대를 넘어서 경기장 끝까지 날아갔다. 론의 끝이
어떻게 될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슬리데린의 파수꾼 곁을 지나갈
때, 블레칠리가 밑에 있는 관중을 따라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즐리는 단 한 번의 공격도 막아 낼 수 없어.
"푸시는 또다시 앨리샤를 따돌리고 곧장 골대를 향해서 돌진하고 있습니다.
론, 어서 막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굳이 볼 필요도 없었다. 슬리데린의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비명 소리와 환호성이 그리핀도르 쪽에서 흘러나온 비통한 신음 소리와
뒤섞여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밑을 내려다본 해리는 관중석 맨 앞에 있는
불독같은 얼굴의 팬시 파킨슨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예 경기장에 등을 돌린 채.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는 슬리데린의 응원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슬리데린이 다 함께 노래를 부른다네.
위즐리는 우리의 왕.
하지만 20대 0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그리핀도르가 점수를
만회하거나 스니치를 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몇 골만 넣으면, 평소처럼 다시
그리핀도르가 앞서게 될 것이다. 해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뭔가
반짝이는 것을 쫒아서 다른 선수들 틈을 요리조리 헤집고 날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몬태규의 시곗줄이었다.
결국 론은 두 골을 더 허용하고 말았다. 이제 해리는 한시라도 빨리 스니치를
찾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스니치만 잡으면, 경기도 곧 끝날 것이다.
"그리핀도르의 케이티 벨 선수, 푸시를 따돌리고 몬태규를 따돌렸습니다. 잘
피하고 있군요, 케이티 선수. 이제 다시 존슨에게 퀘이플을 던졌습니다. 안젤리나
존슨 선수, 퀘이플을 가지고 워링턴 옆을 지나서 골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서,
안젤리나... 그리핀도르의 득점입니다! 점수는 40대 10입니다. 40대 10. 푸시가
퀘이플을 잡았습니다."
해리는 그리핀도르의 응원석 한가운데에서 루나의 우스꽝스런 모자가
우렁차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자, 문득 용기가 생겼다. 겨우 30점 차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어. 크레이브가 그를 향해 로켓처럼
날려 보낸 블러저를 살짝 피한 해리는 스니치를 찾아서 미친 듯이 경지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눈으로는 말포이가 혹시라도 먼저 발견한 듯한
기색을 보이는지 계속 주시했다. 하지만 말포이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경기장
주위를 날아다니며 헛되이 스니치를 찾고 있었다.
"푸시가 워링턴에게, 워링턴이 몬태규에게, 몬태규가 다시 푸시에게 퀘이플을
넘겼습니다. 이때 존슨이 공을 가로챕니다. 존슨 선수가 다시 벨에게... 아주 멋진
광경. 아니 유감스런 광경입니다. 슬리데린의 고일이 친 블러저에 벨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푸시가 공을 잡았습니다."
위즐리는 정신병원에서 태어났어.
언제나 퀘이플을 놓친다네.
위즐리는 틀림없이 우리를 이기게 해줄 거야.
그 순간, 마침내 해리는 발견했다. 날개를 파닥거리는 작은 황금색 스니치가
슬리데린 쪽 경기장 끝, 바닥 가까운 곳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쏜살같이 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말포이가
하늘에서부터 내려와 해리의 왼편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빗자루
위에 초록색과 은색의 뭔가가 납작 엎드려 있는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스니치는 골대의 밑을 한바퀴 빙 돌더니 관중석 반대편을 향해서 툭
튀어나갔다. 스니치가 방향을 바꾼 덕분에 말포이가 좀더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 해리는 파이어볼트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와 말포이는 이제 막상막하의
상황이었다.
땅 위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이르자, 해리는 스니치를 향해 빗자루 밖으로
오른손을 쭉 뻗었다. 오른쪽에서는 말포이 역시 손을 쭉 내밀고 스니치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회오리바람 같은, 필사적이고 숨 가쁜 몇 초가 흘렀다. 해리의 손가락이
버둥거리는 작은 공에 가까이 닿았다. 말포이의 손톱이 절망적으로 해리의
손등을 긁었다. 해리는 몸부림치는 공을 손에 꼭 쥔 채. 빗자루를 위쪽으로
돌렸다. 그리핀도르 관중은 승리를 확신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론이 몇 골을 먹었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두들
그리핀도르의 승리만을 기억할 것이다.
탁.
블러저 하나가 해리의 등에 명중했다. 그는 빗자루에서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다행히 해리는 스니치를 잡기 위해 바닥까지 바싹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땅에서
겨우 2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땅바닥에
털썩 나자빠지면서 심하게 나뒹글었다. 해리는 후치 부인의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관중석에서는 야유와 성난 함성 소리, 휘파람 소리가
뒤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젤리나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너 괜찮니?"
"물론이야."
해리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안젤리나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후치 부인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슬리데린 선수들 중 한 명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하지만 해리가 있는 곳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크레이브, 그 나쁜 놈이었어."
안젤리나가 치를 떨며 말했다.
"네가 스니치를 잡는 걸 본 순간, 너를 향해 블러저를 날린 거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겼어, 해리! 우리가 이겼다고!"
해리는 등 뒤에서 누군가 콧방귀를 뀌는 소리를 들었다. 손에 스니치를 꼭 쥔
채로 뒤를 돌아보니 분노로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된 드레이코 말포이가 내려와
있었다. 그는 빈정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위즐리를 살려 줬군, 안 그래? 그렇게 형편없는 파수꾼은 생전 처음
보겠더라. 그 녀석은 정신병원에서 태어났어... 어때, 내가 지은 노래가 마음에
드냐, 해리?"
해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차례차례 밑으로 내려온 팀의
다른 선수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들은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날리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오직 론만이 골대 옆에 착륙해 빗자루에서 내리더니 탈의실을 향해 혼자
터벅터벅 걸어갔다.
"우린 다른 노래를 하나 더 지을 생각이야!"
케이티와 앨리샤가 해리를 덥썩 껴안을 때, 말포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아직 적당한 운율을 찾지 못했지. 다음 노래는 그 뚱뚱하고 못생긴...
그 녀석의 엄마에 대한 거라고, 어디 두고 봐."
"쓸데없이 오기만 살아가지고."
안젤리나가 구역질 나는 표정으로 말포이를 노려보았다.
"그 무능력한 실패자에게 꼭 맞는 노래도 아직 짓지 못했어. 너도 알지만 그
녀석의 아버지는..."
프레드와 조지는 말포이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알아들었다.
해리의 손을 잡고 신나게 흔들고 있던 두 사람은 갑자기 딱딱하게 굳어져서
말포이를 돌아보았다.
"그냥 내버려 둬."
안젤리나가 프레드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신경 쓰지 마, 프레드. 혼자 실컷 고함 지르라고 해. 시합에서 지니까 약이
올라 저러는 거야."
"하지만 넌 위즐리 식구들을 좋아하지? 안 그래, 포터?"
말포이가 계속 빈정거렸다.
"방학 때도 그 집에서 지내고 모든 걸 다 거기서 하잖아. 안 그래? 도대체 그
지독한 냄새를 어떻게 참는지 몰라. 하긴 머글들 손에 자랐으니 위즐리네 헛간
냄새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
해리는 조지를 꽉 붙잡았다. 한편 안젤리나와 앨리샤, 케이티는 다 같이 힘을
합해서 말포이를 향해 덤벼들려고 하는 프레드를 말리고 있었다. 이제 말포이는
보란 듯이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해리는 후치 부인을 찾아보았지만, 부인은
아직도 블러저 반칙 공격을 한 크레이브를 야단치고 있었다.
"아니면 네 녀석 엄마네 집에서 풍기던 악취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지, 포터. 위즐리네 돼지우리에 가면 옛날 생각이..."
해리는 자신이 언제 조지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는지 의식조차 할 수
없었다. 생각나는 것은 오직 다음 순간 두 사람 모두 말포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모든 선생님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최대한 말포이를 괴롭혀 주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지팡이를
뽑아 들 새도 없이, 해리는 스니치를 움켜쥔 손을 뒤로 젖혔다가 말포이의 배를
힘껏 갈겼다.
"해리! 해리! 조지! 안 돼!"
해리는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말포이는 마구 고함을 지르고 조지는
욕설을 퍼붓고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온 사방에서 관중의 함성
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해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마침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임페디멘타!' 하고 주문을 외쳤다. 주문을 맞고 뒤로 벌렁 쓰러진
해리는 그때서야 비로소 말포이를 흠씬 두들겨 패 주려던 것을 멈추었다.
"도대체 이런 짓을 하다니 제정신이니?"
해리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후치 부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바로 그녀가
해리에게 장애 마법을 쓴 것이다. 후치 부인은 빗자루를 멀리 내팽개쳐 둔 채.
한 손에는 호루라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말포이는
몸을 잔뜩 꼬부리고 땅바닥에 쓰러져서 징징 울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의
코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조지는 퉁퉁 부어오른 입술을 자랑하고 있었고,
프레드는 아직도 세 명의 추격꾼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한편 크레이브는 뒤에
서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이런 행동은 난생 처음 본다! 너희 두 사람 다 성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곧장
기숙사 사감 선생님을 찾아뵙도록 해! 어서, 지금 당장!"
해리와 조지는 숨만 씩씩거릴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경기장을
떠났다. 관중의 함성과 야유 소리는 점점 더 희미해졌다. 마침내 현관 입구에
도착하자, 그들의 발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해리는 문득
오른손에서 뭔가가 아직도 버둥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른손 마디는
말포이의 턱에 부딪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손을 내려다본 해리는 손가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스니치의 은빛 날개를 발견했다. 스니치는 어떻게든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맥고나걸 교수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그들의 뒤를 따라서
씩씩거리며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목에 두르고 있는
그리핀도르 목도리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풀어 헤치며, 격노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들어가!"
맥고나걸 교수는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키며 빽 소리쳤다. 해리와 조지는
안으로 들어갔다. 맥고나걸 교수는 책상 뒤로 돌아가더니 그들을 똑바로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지 못해 온몸을 떨면서 그리핀도르
목도리를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이렇게 수치스런 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둘이서 한 사람을 때리다니!
어디 설명을 해봐!"
"말포이가 저희를 약 올렸습니다."
해리가 딱딱하게 말했다.
"너희들을 약 올렸다고!"
맥고나걸 교수가 책상을 탕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과자를 넣어
두는 양철통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뚜껑이 열리고 마룻바닥에 생강 과자가
와르르 쏟아졌다.
"말포이는 방금 시합에서 졌으니, 너희들을 약 올리고 싶어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 세상에 그렇다고 너희 두 사람이 한 행동이 어떻게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단..."
"말포이는 저희 부모님을 모욕했습니다."
조지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해리의 어머니도요."
"그래서 너희 두 사람은 그 일을 후치 부인의 판결에 맡기지 않고, 머글식의
싸움질을 보여 주기로 했단 말이냐, 그래?"
맥고나걸 교수가 호통을 쳤다.
"너희들은 아무 생각도..."
"에헴, 에헴."
조지와 해리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돌로레스 엄브릿지가 거대한 두꺼비를
더욱더 연상시키는 초록색 트위드 망토를 온몸에 두른 채, 문가에 서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소름 끼치게 무시무시한 미소를 보자, 해리는 곧 그들에게
닥칠 재앙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맥고나걸 교수님?"
엄브릿지 교수는 끔찍하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맥고나걸 교수의 얼굴로 피가 왈칵 몰렸다.
"도와주신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 도와주신다니요?"
맥고나걸 교수가 애써 분노를 참으며 되풀이했다. 엄브릿지 교수는 여전히 그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 왔다.
"제가 권위를 좀더 높여 드리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했죠."
해리는 순간 맥고나걸 교수의 코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온다고 해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맥고나걸 교수는 엄브릿지 교수에게 등을 돌리며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내 말을 잘 들어라. 나는 말포이가 너희를 뭐라고 약
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너희 가족들을 전부 다 모욕했다고
해도 상관없어. 너희들의 행동은 수치스런 짓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 두
사람에게 일주일동안 징계를 내리겠다. 그런 얼굴로 날 보지 마라, 포터. 넌 벌을
받아 마땅해! 그리고 너희 두 사람이..."
"에헴, 에헴."
맥고나걸 교수는 마치 신에게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엄브릿지 교수를 향해서 다시 얼굴을 돌렸다.
"뭐죠?"
"그 정도 벌로는 부족할 것 같군요."
엄브릿지는 더욱더 커다랗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죄송하지만 전 징계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맥고나걸 교수는 엄브릿지에게 지지 않고 태연한 미소를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 바람에 그녀의 턱은 마치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이 학생들은 제 기숙사 소속이니까요, 돌로레스."
"글쎄, 사실은 미네르바, 내가 어떤 벌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는지 곧 알게 될
겁니다."
엄브릿지는 멍청한 미소를 지었다.
"그걸 어디다 두었더라? 코넬리우스가 방금 보냈는데, 그러니까 내 말은..."
엄브릿지는 자신의 핸드백 안을 뒤지면서 억지로 꾸민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장관님께서 방금 보내셨는데... 아, 여기 있군..."
엄브릿지는 양피지 한 장을 꺼내 펴더니 목청을 가다듬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헴, 에헴. 교육 법령 25조..."
"또 다른 법령이라니, 안 돼!"
맥고나걸 교수가 격렬하게 소리쳤다.
"맞아요."
엄브릿지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미네르바. 우리에게 또 다른 법령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만든 사람은 바로 당신이에요. 내가 그리핀도르 퀴디치 팀을 재조직하는 걸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때, 당신이 날 얼마나 무시하고 깔아뭉갰는지
기억하고 있겠죠? 당신이 이 문제를 덤블도어에게 가져가서, 팀을 허락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게 하지 않았나요? 난 그런 일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즉시 장관님께 보고를 했죠. 장관님께서도 장학사는 학생들의 권리를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는 데 동의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학사는... 그러니까 나는 일반 교수님보다도 더 권위가 없을 테니까요!
미네르바, 이제 당신도 깨달았겠죠? 내가 그리핀도르 팀을 재조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올바른 일이었는지? 정말 성질이 사나운 아이들이죠. 어쨌든
이제부터 법령을 읽어 주겠어요. 에헴... 에헴... '앞으로 장학사는 호그와트의
학생들과 관련된 모든 징벌과 허가, 권리 박탈에 대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또한 다른 교직원에 의해 내려진 모든 징벌과 허가, 권리 박탈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다. 마법부, 코넬리우스 퍼지의 서명, 멀린 1등급, 등등...'"
엄브릿지는 여전히 능글능글 웃으며 양피지를 돌돌 말아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이 두 번 다시 퀴디치 경기를 할 수 없도록
금지시켜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브릿지가 해리와 조지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해리는 손에 든 스니치가 미친 듯이 버둥거리는 것을 느꼈다.
"금지시킨다고요?"
해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두 번 다시 퀴디치를 할 수 없도록...?"
"그래요, 포터 군. 내 생각에는 평생 출전 금지가 가장 효과적일 것 같아요."
엄브릿지는 더욱더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방금 한 말의 뜻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해리를 바라보았다.
"포터 군과 여기 있는 위즐리 군, 그리고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이 젊은이의
쌍둥이 형제까지도 출전을 금지시키는 게 좋겠어요. 팀 동료들이 그를 막지
않았더라면, 그 학생 또한 틀림없이 젊은 말포이 군을 공격했을 테니까요. 물론
그들의 빗자루까지도 몰수할 생각이에요. 그 빗자루는 내 방에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겠어요. 그래야 나의 금지 조치를 위반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저도 비합리적인 사람은 아니랍니다, 맥고나걸 교수님."
엄브릿지는 마치 얼음 조각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맥고나걸 교수를
향해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그리핀도르 다른 선수들은 퀴디치 경기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자...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엄브릿지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표정을 방을 나갔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무시무시한 침묵만이 남았다.
"출전 금지라니..."
그날 저녁 늦게 휴게실에서는 안젤리나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출전 금지라니. 수색꾼도 몰이꾼도 없이 도대체 우리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도무지 시합에서 이겼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해리가 쳐다보는 곳마다
우울하고 성난 얼굴들뿐이었다. 선수들 전원이 벽난로 주위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오직 론의 모습만 보이지 않았다. 시합이 끝난 이후로 그는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다.
"이건 너무 불공평해."
앨리샤가 맥없이 말했다.
"호루라기를 분 이후에 블러저를 친 크레이브는 어떻게 됐지? 그도 출전
금지를 당했을까?"
"아니야."
지니가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그냥 베껴 쓰기 벌을 받았대. 몬태규가 저녁 식사 때 웃으면서 신나게 떠드는
소리를 들었어."
"게다가 아무 짓도 안한 프레드까지 출전 금지를 시키다니!"
앨리샤가 주먹으로 무릎을 내려치며 화를 냈다.
"내가 아무것도 못한 건 내 탓이 아니야."
프레드가 잔뜩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 세 사람이 날 붙잡지 않았어도, 난 그 더러운 자식을 납작하게 두들겨
패 주었을 거야."
해리는 어두운 창 밖을 우울하게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가 낮에
잡은 스니치는 휴게실 안을 빙빙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 듯이
스니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편 크룩생크는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뛰어다니며 스니치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난 그만 자러 갈래."
안젤리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쩌면 이 모든 게 악몽일지도 몰라... 내일 아침에 일어나 보면, 우린 아직
시합조차 안 했다는 걸 알게 될 지도..."
케이티와 앨리샤도 곧 안젤리나의 뒤를 따라갔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가
터벅터벅 침실로 올라갔다. 그들은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인상을 쓰며
노려보았다. 지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결국 벽난로 앞에는
헤르미온느와 해리만이 남았다.
"혹시 론을 봤니?"
헤르미온느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해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를 피하고 있는 것 같아. 너 혹시 론이 어디 있는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삐거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가
휙 열렸다. 그리고 론이 구멍 속에서 기어 나왔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머리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발견하는 순간,
론은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어디 갔었니?"
헤르미온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산책했어."
론이 중얼거렸다. 그는 아직도 퀴디치 선수복을 입고 있었다.
"몸이 언 것 같다. 어서 이리 와서 앉아!"
헤르미온느가 재촉했다. 비틀거리며 불가로 다가온 론은 해리의 시선을
피하면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해리가 잡아 온 스니치는
그들의 머리 위를 빠르게 날아 다녔다.
"미안해."
론은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뭐가?"
해리가 물었다.
"내가 퀴디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말이야. 난 내일이 되자마자 팀을
그만두겠어."
"네가 팀을 그만두면, 이제 우리 팀에는 선수가 세 명밖에 남지 않게 돼."
해리가 쌀쌀맞게 말했다.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해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평생 출전 금지를 당했어. 프레드와 조지도 마찬가지야."
"뭐라고?"
론이 비명을 질렀다. 헤르미온느가 전후사정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해리는
차마 그 이야기를 다시 입에 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론은 더욱더 풀이 죽었다.
"모두 다 내 잘못이야."
"너 때문에 내가 말포이를 때린 건 아니야."
해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형편없지만 않았어도..."
"이 일은 그것과 아무 상관 없어."
"그 노래 때문에 내가 긴장했어."
"그런 노래를 들으면 누구라도 긴장할 거야."
헤르미온느는 입씨름을 하는 두 사람을 피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창틀에 기대어 휘날리는 눈발을 바라보았다.
"이봐, 그만 둬!"
해리가 벌컥 화를 냈다.
"네가 그렇게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아도 이미 상황은 최악이야!"
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축축하게 젖은 망토 자락을 힘없이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잠시 후에 론은 맥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평생 가장 비참한 기분이야."
"모임이라도 만들어야겠군."
해리가 신랄하게 말했다.
"이봐, 너희들의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는 한 가지 일이 생각났어."
헤르미온느가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러셔?"
해리가 빈정거렸다.
"그래."
헤르미온느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창가에서
돌아섰다. 그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해그리드가 돌아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