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덤블도어의 군대
"해리, 그동안 엄브릿지가 네 편지를 읽고 있었던 거야. 그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
"그럼, 엄브릿지가 헤드위그를 공격했단 말이야?"
해리가 벌컥 화를 냈다.
"내 생각에는 그게 틀림없어."
헤르미온느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 개구리 잘 봐. 도망치려고 하잖아."
해리는 어느새 책상 다른 편으로 펄쩍펄쩍 뛰어 달아난 황소개구리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아씨오!"
그러자 개구리는 다시 그의 손안으로 맥없이 끌려 들어왔다. 마법 수업은
개인적인 잡담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왔다갔다할 일이 너무 많고
번잡스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군가 그들의 말을 엿들을 위험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오늘은 개굴개굴 떠들어 대는 황소개구리들과 까악까악 우는
까마귀들이 교실 안에 가득했고, 밖에서는 퍼붓듯이 쏟아지는 빗줄기가 교실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려 대고 있었다. 덕분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엄브릿지가 시리우스를 거의 잡을 뻔했던 상황에 대해서 마음 놓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난 필치가 똥 폭탄을 주문했다면서 널 야단칠 때부터 뭔가 의심스러웠어.
왜냐하면 거짓말이라도 너무 터무니없었거든."
헤르미온느가 속삭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네 편지를 한번 읽어 보면 네가 똥 폭탄을 주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금방 밝혀졌을 거라는 거지. 넌 아무 문제도 없었을 테고
말이야. 사실 그건 너무 싱거운 장난이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 네 편지를 읽어
볼 구실을 찾는 거라면? 엄브릿지가 뒤에서 조종하기에는 완벽한 방법이지.
필치에게 슬쩍 엉뚱한 소리를 흘려서 지저분한 짓은 다 시키고 편지를 손에
넣도록 한다. 그런 다음 편지를 다시 그에게서 훔치든지, 아니면 한번 보자고
하든지 무슨 수를 쓰는 거지. 내 생각에 필치는 한번 보자고 해도 절대 반대하지
않았을 것 같아. 필치가 언제 학생들의 권리 같은 것에 신경이나 쓴 적이 있어?
그런데 해리, 그러다가 네 개구리 배 터져 죽겠다."
해리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무심결에 황소개구리를 어찌나 꽉 누르고 있었던지
눈알이 툭 튀어나오려고 했다. 해리는 황급히 개구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어쨌든 어젯밤에는 아주 아슬아슬했어.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 엄브릿지가
알았을까 그게 궁금하네, 실렌시오."
헤르미온느가 침묵 마법 주문을 외치자, 실험 대상이 된 개구리는 소리 없이
입만 딱 벌린 채, 원망스런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만약 스누플즈가 엄브릿지 손에 잡혔다면..."
해리가 헤르미온느의 말을 받았다.
"오늘 아침에 당장 아즈카반으로 끌려갔을 거야."
해리는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그의 황소개구리가
초록색 풍선처럼 마구 부풀어 오르면서 쉭쉭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실렌시오!"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개구리를 향해 황급히 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러자
황소개구리는 소리 없이 그들 눈앞에서 쭈그러들었다.
"이제 시리우스는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하면 안 돼.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시리우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그 방법을 모르겠군. 부엉이를 보낼 수도
없고 말이야."
"설마, 시리우스가 또다시 이런 모험을 하진 않을 거야."
론이 말했다.
"시리우스는 바보가 아니야. 하마터면 그 여자 손에 거의 잡힐 뻔했다는 걸
알고 있어. 실렌시오."
그의 앞에 놓여 있던 커다랗고 못생긴 까마귀가 그를 조롱하듯이 까악 하고
울었다.
"실렌시오. 실렌시오!"
까마귀는 더욱 큰 소리로 울었다.
"네 지팡이 사용법이 잘못된 거야."
헤르미온느가 론을 지켜보며 충고했다.
"지팡이를 휘두르려고 해서는 안 돼. 톡 하고 치듯이 움직여야지."
"까마귀는 개구리보다 더 어렵단 말이야."
론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좋아, 그럼 바꾸자."
헤르미온느는 론의 까마귀를 집어 들더니, 자신의 뚱뚱한 황소개구리와 자리를
바꿨다.
"실렌시오!"
까마귀는 지지 않고 날카로운 부리를 계속해서 열었다 닫았다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주 잘했어요, 그레인저 양!"
갑자기 플리트윅 교수의 쉰 목소리가 들리자, 세 사람은 기절초풍할 듯이
놀랐다.
"이번에는 위즐리 군이 한번 해보세요."
"네? 아, 그러죠."
론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어... 실렌시오!"
하지만 개구리를 향해 너무 세게 지팡이를 휘두르는 바람에 그만 개구리의
눈을 쿡 찌르고 말았다. 개구리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책상 위를
펄떡펄떡 뛰어다녔다.
결국 해리와 론에게만 특별히 침묵 마법을 따로 연습하라는 숙제가 주어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쏟아지는 폭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되어도 학생들은 교실 안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그들은 학생들로 붐비는 시끄러운 1층 교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피브스는 샹들리에 근처에서 할 일 없이 나른하게 떠다니다가, 이따금 학생들의
뒤통수를 향해서 잉크 폭탄을 던지곤 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안젤리나가 수다를 떨고 있는 학생들 틈을 비집고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드디어 허락을 얻었어!"
안젤리나가 소리쳤다.
"퀴디치 팀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됐어!"
"굉장하다!"
"맞아."
안젤리나가 활짝 웃었다.
"내가 맥고나걸 선생님을 찾아갔거든. 아마 맥고나걸 선생님이 덤블도어
선생님께 부탁을 드린 것 같아. 어쨌든 엄브릿지도 결국 허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 그러니까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운동장으로 내려오도록 해. 그동안 연습
못한 것을 보충해야지. 우리의 첫 번째 시합이 겨우 삼 주밖에 안 남았다는 걸
기억하고 있지?"
안젤리나는 다시 사람들 틈을 헤치며 그 자리를 떠났다. 피브스가 그녀를 향해
잉크 폭탄을 던졌지만,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 옆에
있던 애꿎은 신입생에게 명중했다. 안젤리나는 금방 눈앞에서 사라졌다.
싱글벙글하던 론의 얼굴이 창 밖을 내다보는 순간, 약간 굳어졌다. 창문을
두드리는 세찬 빗줄기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던 것이다.
"부디 비가 그치기만을 바라야겠군. 그런데 헤르미온느, 왜 그래?"
헤르미온느도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을 잔뜩 지푸린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밖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그냥... 생각 중이야."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이마를 찡그리며 비가 흘러내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시리... 아니, 스누플즈에 대해서?"
해리가 물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그냥 좀 의문 나는 점이 있어서... 난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어때?"
해리와 론이 기가 막힌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네가 네 자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로 짜증 나는 일이라는 것 말이야."
론이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비로소 론이 그 자리에 있다는 걸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새삼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난 그냥 좀 의심스럽다는 거야."
헤르미온느는 좀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우리가 잘하는 걸까? 어둠의 마법 방어술 모임을 시작한 게?"
"무슨 소리야?"
론과 해리가 동시에 소리쳤다.
"헤르미온느, 이건 처음부터 순전히 네 생각이었어!"
론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나도 알아."
헤르미온느가 손가락을 비틀며 대답했다.
"하지만 스누플즈와 이야기를 하고 나니 왠지..."
"스누플즈도 그 생각에 찬성했잖아."
해리가 말했다.
"그래. 그래서 과연 이게 좋은 계획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어..."
헤르미온느는 슬그머니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피브스는 오줌을 내깔길 자세를 취하고 엎드린 채, 둥둥 떠다녔다. 세
사람은 거의 자동적으로 가방을 들어서 피브스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머리
위를 가렸다.
"차라리 딱 까놓고 말해 보자."
세 사람이 다시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자, 해리가 성난 목소리로 따졌다.
"시리우스가 우리 계획에 찬성을 했기 때문에, 넌 오히려 이 일을 계속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지?"
헤르미온느는 약간 긴장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자기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솔직히 넌 그의 판단력을 믿니?"
"물론이지!"
해리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는 언제나 가장 훌륭한 조언을 해주었어!"
그 순간 잉크 폭탄 하나가 그들 옆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케이티 벨의 귀를
정통으로 맞혔다. 케이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으로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피브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넌 그가 좀... 그러니까... 좀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그리몰드 광장에 갇혀
지내게 된 이후로 말이야. 그가 왠지 우리를 통해서... 뭐랄까... 대리 만족을
하려는 것 같지 않니?"
"대리 만족을 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해리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내 말은... 그러니까... 스누플즈가 마법부에서 나온 사람의 코앞에서 비밀 방어
단체를 만들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는 거지. 그는 지금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난 상태야. 그래서 어쩌면 우리를 자꾸
부추기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몰라."
론은 기가 막혀 죽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시리우스 말이 맞아. 넌 꼭 우리 엄마처럼 말하는구나."
헤르미온느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는 순간, 피브스가 날쌔게 밑으로 급강하를 하더니 케이티의 머리
위에다 남은 잉크를 몽땅 쏟아 부어 버렸다.
해가 저문 후에도 날씨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저녁 일곱 시가
되어서 연습을 위해 퀴디치 운동장으로 나간 해리와 론은 순식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그들의 발은 흠뻑 젖은 잔디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회색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천둥이 쳤다. 비록 금방 다시 나가야
하는 줄은 알지만, 따뜻하고 밝은 탈의실에 들어서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비행 연습을 피하기 위해서 꾀병용 과자세트를 쓸지 말지 한창
고민하고 있는 조지와 프레드를 발견했다.
"안젤리나라면 틀림없이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릴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구역질 사탕을 사지 않겠느냐고 물어보지 않는 건데 그랬어."
프레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럼 발열 사탕을 써볼까? 그건 아직 아무도 모르잖아."
조지가 중얼거렸다.
"그게 효과가 있어?"
론이 귀가 솔깃해서 물어보았다. 좀 전부터 지붕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더욱
요란해지면서 비바람이 사납게 울부짖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이지. 먹자마자 당장 열이 치솟는 걸."
프레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고름이 가득 찬 커다란 종기까지 툭툭 솟아나게 돼. 우린 아직 그걸
막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어."
조지가 말을 이었다.
"종기 같은 건 전혀 안 보이는데?"
론이 쌍둥이 형제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며 말했다.
"물론 네 눈에는 안 보이겠지."
프레드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 종기는 우리가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다니는 부위에 난 게 아니거든."
"하지만 빗자루에 앉으면 아파서 죽을 지경일 딱 그런 자리에..."
"좋아, 모두들, 내 말 잘 들어."
바로 그 순간 안젤리나가 주장실에서 나오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연습하기에 적당한 날씨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쩌면 이런
날씨에 슬리데린 팀과 시합을 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이럴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연구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아. 해리, 지난번
우리가 폭풍우 속에서 후플푸프 팀과 경기를 했을 때, 빗물에 안경이 흐려지지
않도록 어떤 방법을 쓰지 않았었니?"
"내가 아니라 헤르미온느가 그랬어."
해리는 지팡이를 꺼내 들고 안경을 툭 치며 주문을 외웠다.
"임페르비우스!"
"우리 모두 그 방법을 써 보는 게 좋겠다."
안젤리나가 말했다.
"비가 얼굴로 곧장 들이닥치는 것만 막을 수 있어도, 시야를 확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거야. 자, 그럼 모두 다 함께... 임페르비우스! 좋아, 이제
나가자."
선수들은 일제히 망토 안주머니에 다시 지팡이를 집어넣고 빗자루를 어깨에
멘 채, 안젤리나의 뒤를 따라서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철퍼덕거리며 운동장 한가운데까지 걸어갔다.
임페르비우스 마법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눈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날은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있었고 비의 장막이 온 운동장을 휩쓸고 있었다.
"좋아, 그럼 내가 호루라기를 불면 시작이다."
안젤리나가 소리쳤다.
해리가 힘껏 땅을 박차고 솟구쳐 오르자, 온 사방으로 흙탕물이 튀었다.
하지만 바람 때문에 방향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스니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 막연하기만 했다. 선수들이
사용하고 있는 블러저조차 구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습을 시작한 지
불과 몇 분 만에 해리는 블러저에 맞아 떨어질 뻔했다. 결국 블러저를 피하기
위해서 슬로스 그립 롤 전법을 써야만 했다. 사실 눈앞이 전혀 안 보이기는
안젤리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다른 선수들이 뭘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한지 멀리 떨어져 있는 해리 귀에까지도 호수 표면을
두드리며 쫙쫙 쏟아지는 빗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안젤리나는 이런 상태로 거의 한 시간 동안 고집을 부린 끝에, 결국 연습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녀는 비에 흠뻑 젖어서 투덜거리는 선수들을 이끌고
탈의실로 되돌아가면서도, 끝까지 이런 연습이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전혀 확신이 없었다. 프레드와 조지는 특히
더 괴로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어기적어기적 걸으면서 오만상을 다
썼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던 해리는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를 들었다.
"내 것 몇 개는 터진 것 같아."
프레드가 맥이 쭉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 건 터지지 않았어."
조지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지만 욱신욱신 쑤셔 미치겠어... 더 커진 것 같아."
"아야!"
해리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고통으로 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이마의 흉터가 다시 찌르는 듯 아프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아팠다.
"왜 그래?"
한꺼번에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리가 수건을 밑으로 내렸다. 안경을 쓰지 않은 그의 눈에는 탈의실 안이
뿌옇게 보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해리가 중얼거렸다.
"그냥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서 그래."
하지만 해리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론을 쳐다보았다. 다른 선수들이 전부
탈의실 밖으로 나가고 제일 뒤에 처진 두 사람은 모자를 귀까지 푹 덮어쓰고
망토롤 입을 막은 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일이야?"
앨리샤의 모습이 문 밖으로 사라지자마자 론이 물었다.
"또 그 흉터 때문이야?"
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론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창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빗속을
내다보았다.
"서...설마 그자가 지금 가까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아니야."
해리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이마의 흉터를
손으로 문질렀다.
"그자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내 이마가 아팠던 건... 그자가... 화가 났기
때문이야."
해리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을 내뱉었다. 그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온 이
말이 마치 다른 사람이 한 말처럼 너무나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즉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분명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볼드모트는
머리끝까지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를 보았니?"
론은 공포로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니까... 어떤 환상이라도 본 거야?"
해리는 말없이 발만 내려다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통이 지나간 후에
마음과 정신이 다시 평온해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지럽고 혼란스런 형상들, 울부짖는 목소리들...
"그자는 뭔가를 끝내고 싶어 하는데 좀처럼 빨리 진행되지 않고 있어."
해리가 말했다. 또다시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이 너무나 낯설게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론이 말했다.
해리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나서 손바닥으로
눈을 꽉 눌렀다. 감은 눈 속에 작은 별들이 무수히 보였다. 그는 자기가 앉아
있는 의자 옆 자리에 론이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그랬던 거니?"
론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브릿지 교수의 방에서 네 흉터가 아팠을 때 말이야. 그때도 그 사람이 화가
난 거니?"
해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도대체 뭐야?"
해리는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해리는 엄브릿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흉터가
쑤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상한 감정이 치솟았다...
마구 가슴이 뛰는 듯한 낯선 감정이... 그것은 행복감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자신은 너무나 우울하고 비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는 그자가 기뻐했기 때문이었어."
해리가 말했다.
"정말이야. 그자는... 뭔가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우리가 호그와트로 돌아오기 전날 밤에는..."
해리는 그리몰드 광장에 있는 론의 침실에서 그의 흉터가 견딜 수 없이
아팠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화가 났었어..."
해리는 론을 돌아보았다. 론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정도면 트릴로니 교수님 뒤를 이어도 되겠다."
론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난 예언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해리가 말했다.
"물론이지. 넌 네가 뭘하고 있는지 아니?"
론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경탄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리, 넌 그자의 마음을 읽고 있어."
"아니."
해리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저... 그자의 기분일 뿐이야. 나는 순간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기분인지를 느낄 수가 있어. 작년에 똑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도, 덤블도어
교수님이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 교수님 말씀이, 볼드모트가
가까이 있거나 강렬한 증오심을 느낄 때면 내가 그걸 느낄 수 있다고 하셨어.
그런데 이제 나는 그자가 기뻐하는 순간에도 느낄 수 있게 된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나운 바람과 세찬 빗줄기가 더욱 강하게 건물을
두드렸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
마침내 론이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는 시리우스에게 말했어."
"그럼 이번에도 그에게 말해 봐!"
"어떻게? 내가 어떻게 해?"
해리가 우울하게 말했다.
"엄브릿지가 부엉이와 벽난로까지도 전부 감시하고 있는데? 그걸 잊어버렸니?"
"음, 그럼 덤블도어 교수님께라도..."
"방금 말했잖아. 교수님은 이미 이런 사실을 다 알고 계셔."
해리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못에 걸린 망토를
집어 들고 어깨에 걸쳤다.
"교수님께 다시 말씀드려 봤자 아무 소용도 없어."
론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해리를 바라보며 망토자락을 단단히 여몄다.
"그래도 덤블도어 교수님은 알고 싶어 하실 거야."
해리는 그저 어깨만 으쓱했다.
"어서 가자. 아직도 침묵 마법을 연습해야 해."
입을 다문 두 사람은 온통 진흙탕이 되어 버린 잔디밭을 미끄러지고
첨벙거리며, 서둘러 어두운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해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볼드모트가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데 잘 안 되는 일이 도대체 뭘까?
"...그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어. 아주 은밀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이...
오직 훔쳐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 예를 들면 무기 같은 것. 지난번에는
그가 갖고 있지 못했던... 어떤 것?"
해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이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호그와트에서의 생활에
완전히 정신을 빼앗긴 채, 엄브릿지와 마법부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 투쟁하느라
너무 바빴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문득 그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 무기가 무엇이든 간에, 만약 볼드모트가 그 무기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면, 그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불사조
기사단이 그를 방해하며 무기를 손에 넣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일까? 그
무기는 어디 있을가? 지금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
"밈뷸러스 밈블토니아."
론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해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벌써 휴게실로 들어가는
초상화 구멍 앞에 와 있었던 것이다.
헤르미온느는 일찍 잠자리에 든 것 같았다. 의자 근처에 크룩생크만 몸을 말고
앉아 있었고, 갖가지 방울이 달린 집요정 털모자가 벽난로 옆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스러웠다.
이마의 흉터가 아팠다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어서 빨리 덤블도어 교수를 찾아가라고 재촉하는 소리를 듣는 것도 지겨웠다.
론이 걱정스런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마법 책들을
꺼내서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저 겉으로만 숙제에 집중하고 있는
척했을 뿐이었다. 론이 그만 자러 가야겠다고 말할 때까지, 해리는 거의 한 자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자정이 가까워 오도록, 해리는 고추냉이와 당귀 그리고 재채기풀의 사용법에
대한 구절을 읽고 또 읽었지만 단 한 마디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식물들은 뇌를 자극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정신착란 마법약을
만드는 데 주로 많이 사용된다. 혼란스러움과 무모한 감정을 일으키길 원하는
마법사는...
헤르미온느는 시리우스가 그리몰드 광장에 갇혀 지낸 이후로 무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뇌를 자극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만약 볼드모트의 기분을 그가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예언자
일보'에서는 그의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착란 마법약을 만드는 데 주로 많이 사용된다...
그의 말이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어째서 그가 볼드모트의
기분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들 사이의 이 이상한 연관성은 무엇인가?
덤블도어 교수님조차 단 한 번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었던 이 이상한
관계란?
...혼란스러움과 무모한 감정을 일으키길 원하는 마법사는...
어떻게 해리가 잠이 들 수 있었을까...
벽난로 앞의 안락의자는 따뜻하고 편안했다. 밖에서는 빗줄기가 여전히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크룩생크는 가르랑거리고 불꽃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해리의 손에서 책이 슬며시 미끄러지면서 벽난로 앞 깔개위로 툭 떨어졌다.
그의 머리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그는 또다시 창문이 없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고요한 정적 속에
그의 발소리만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복도 제일 끝에 있는 문이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의 가슴은 흥분으로 더욱 빨리 뛰었다. 저 문을 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안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해리는 손을 내밀었다. 이제 그의 손가락 끝이 거의 손잡이에 닿을 듯
가까웠다.
"해리 포터!"
해리는 깜짝 놀라 눈을 떴다. 휴게실 안의 촛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누... 누구지?"
해리는 의자에서 몸을 똑바로 일으키며 소리쳤다. 벽난로 불마저 거의
사그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방 안은 아주 어두웠다.
"도비가 해리 포터의 부엉이를 가져왔어요!"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비?"
해리는 목멘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어둠 속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집요정 도비는 헤르미온느가 여섯 개의 털모자를 두고 간 책상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커다랗고 뾰족한 귀가 모자 아래로 삐죽이 나와 있었는데, 그는
지금까지 헤르미온느가 공들여 짠 모자들을 모두 머리에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도비는 모자 위에 또 다른 모자를 계속 겹쳐 쓰고 있었기 때문에, 키가 최소한
7, 8센티미터는 더 커 보였다. 그리고 모자 꼭대기에 달린 방울 위에는
헤드위그가 앉아서 점잖게 울고 있었다. 상처가 다 나은 것이 분명했다.
"도비가 해리 포터의 부엉이를 돌려드리겠다고 자청했어요."
집요정이 꽥꽥거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님 말씀이 이제 부엉이는 완전히 나았답니다."
도비는 펜처럼 뾰족한 코끝이 너덜너덜한 깔개에 닿을 정도로 깊숙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헤드위그는 아직도 섭섭한 듯이 한 번 울더니 해리가
앉은 의자의 팔걸이로 날아와 앉았다.
"도비, 고마워!"
해리는 헤드위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깜박거렸다. 꿈속에서 본 문에
대한 기억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했다. 도비를 다시 돌아본 해리는 이 집요정이 대여섯 개의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말을 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바람에
도비의 발은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였다.
"저... 헤르미온느가 그동안 놓아둔 옷들을 전부 네가 가져갔었니?"
"아니에요, 해리 포터."
도비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몇 개는 윙키에게도 가져다주었죠."
"맞아, 윙키는 어떻게 지내지?"
해리가 물었다. 갑자기 도비의 귀가 축 늘어졌다.
"윙키는 아직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답니다."
도비는 테니스공만큼이나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깔며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옷 같은 데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해리 포터. 사실 다른
집요정들도 마찬가지랍니다. 여기저기에 모자와 양말을 감추는 두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머지않아 더 이상 아무도 그리핀도르 기숙사를 청소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집요정들은 그걸 자신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도비 혼자서 그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답니다. 해리 포터, 하지만 도비는
상관없어요. 언제나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밤 도비는 마침내 소원을 이루었답니다!"
도비는 또다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당신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군요."
도비는 몸을 일으키며 수줍은 표정으로 해리의 안색을 살폈다.
"도비는 해리 포터가 꿈을 꾸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당신은 나쁜
꿈을 꾸셨나요?"
"그렇게 나쁜 꿈은 아니었어."
해리가 길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꿈도 꾼 적이 있는걸."
집요정은 공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눈으로 해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귀를 축 늘어뜨린 채, 매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비는 어떻게든 해리 포터를 도와드리고 싶답니다. 왜냐하면 해리 포터는
도비를 해방시켜 주셨고, 도비는 그 때문에 지금 많이, 아주 많이 행복하거든요."
해리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도비, 넌 날 도와줄 수 없어. 하지만 마음만은 고마워."
해리는 허리를 숙이고 마법약 책을 집어 들었다. 내일은 반드시 이 숙제를
끝내야만 했다. 해리가 책을 덮자, 그의 손등에 생긴 하얀 흉터 자국이 벽난로
불빛을 받아 도드라져 보였다. 엄브릿지의 나머지 공부로 인한 결과였다.
"잠깐만... 네가 나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어. 도비."
해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집요정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말씀만 하세요. 해리 포터!"
"스물여덟 명이 모여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
물론 선생님들 눈에 띄면 절대 안 돼. 특히 엄브릿지 교수는."
해리가 책을 쥔 손에 불끈 힘을 주자, 하얀 흉터가 진줏빛으로 더욱 또렷하게
빛났다. 해리는 도비가 이 말을 들으면 틀림없이 얼굴이 굳어지고 귀를 늘어뜨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찾아보겠다고 적당히 둘러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비에게 별로
큰 희망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도비는 신나게 귀를
쫑긋거리며 깡충깡충 뛰고 손뼉을 쳤다.
"도비가 완벽한 장소를 안답니다. 해리 포터!"
도비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도비가 호그와트에 왔을 때, 다른 집요정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희들
사이에서는 오고 가는 방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또는 필요의 방이라고
부른답니다!"
"왜 그렇게 부르는 거야?"
해리는 호기심이 동했다.
"왜냐하면 그 방에는 정말로 꼭 필요한 순간에만 들어갈 수 있거든요."
도비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 방은 어떤 때에는 그곳에 있다가, 또 어떤 때에는 사라지기도 해요.
하지만 누군가 간절히 찾는 걸 알면, 그곳에 나타난답니다. 도비도 그 방을 한
번 써 봤어요."
갑자기 도비는 목소리에 힘이 빠지면서 죄지은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윙키가 너무 술이 취했을 때, 도비는 그녀를 그 방에 숨겼지요. 그리고 그
방에서 버터 맥주 해독제와 윙키를 누이기에 딱 맞는 집요정 크기의 침대를
발견했답니다. 도비는 필치 씨가 청소용품이 떨어지면, 그곳에 가서 청소용품을
가져온다는 걸 안답니다. 그리고..."
"그리고 화장실이 정말 급할 때는 그 방에 요강들이 가득하겠지?"
해리는 갑자기 지난 크리스마스 무도회 때 덤블도어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비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도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놀라운 방이거든요."
"그 방에 대해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지?"
해리가 의자에 몸을 더욱 꼿꼿이 세우고 앉으며 물었다.
"극히 적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필요한 순간에 우연히 그 방에
들어가긴 하지만, 두 번 다시 발견하지는 못해요. 왜냐하면 그 방이 언제나
그곳에서 자기를 불러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요."
"그거 아주 귀가 솔깃한걸."
해리의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완벽한 장소일 것 같아, 도비. 그 방이 어디 있는지 언제 가르쳐 줄 수 있지?"
"언제든지요, 해리 포터."
도비는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해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당신만 괜찮으시다면, 지금 당장 갈 수도 있어요!"
잠깐 동안 해리는 당장 도비와 함께 그곳에 가 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는
재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서 투명 망토를 가져올 작정으로 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바로 그때 헤르미온느의 목소리와 비슷한 어떤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건 무모한 짓이야. 어쨌든 지금은 시간도 너무 늦었고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오늘 밤은 안되겠어, 도비."
해리가 마지못해 거절하며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야.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고 싶진 않아.
제대로 된 계획이 필요해. 이봐, 그 필요의 방이 어디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나에게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없을까?"
두 시간짜리 약초학 수업을 듣기 위해서 물이 질펀한 채소밭은 첨벙첨벙
가로질러 가는 동안, 그들의 긴 망토 자락은 바람에 마구 휘날리며 다리에 칭칭
감겼다. 수업 시간에도 우박처럼 온실 지붕을 시끄럽게 두드리는 빗소리 때문에
스프라우트 교수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의 신비한 동물
돋보기 수업 장소는 폭풍우가 몰아치는 운동장에서 건물 1층에 있는 빈 교실로
옮겼다.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안젤리나는 점심 시간에 팀
선수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퀴디치 연습이 취소되었다고 알려 주었다.
"잘됐어."
안젤리나의 말을 들은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첫 번째 방어술 모임을 가질 만한 장소를 찾아냈거든. 오늘
밤 여덟 시에 7층에 있는, 트롤에게 얻어맞는 정신 나간 바르나바의 벽걸이
양탄자 맞은 편에서 만나자. 케이티와 앨리샤에게 말 좀 전해 줄 수 있지?"
안젤리나는 약간 주춤하는 기색이었지만, 곧 다른 친구들에게 말을 전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해리는 다시 허겁지겁 소시지와 으깬 감자로 달려들었다.
잠시 후 호박 주스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쳐들었을 때,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헤르미온느가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
해리가 목이 메어 우물거렸다.
"도비의 계획은 항상 안전하지 않았어. 도비가 네 팔의 뼈를 부러뜨리게 했던
일을 잊어버렸니?"
"하지만 그 방은 도비가 그저 꾸며낸 헛소리가 아니야. 덤블도어 교수님도 그
방에 대해서 알고 계신걸. 크리스마스 무도회 때 나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
헤르미온느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덤블도어 교수님이 너에게 그 방에 대해 말씀하셨단 말이야?"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해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그럼 좋아."
헤르미온느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더 이상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내내 론과 함께 그들은 호그스 해드에서 명단에 서명을 한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그날 저녁에 만날 장소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초 챙과 그녀의
친구에게는 지니가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전해 주는 바람에, 해리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어쨌든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날 무렵이 되었을 때, 해리는 이
소식이 호그스 해드에 모였던 스물다섯 명 전부에게 전해졌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일곱 시 반이 지나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그린핀도르의 휴게실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왔다. 해리는 오래된 양피지 조각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5학년들은 아홉 시까지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세 사람은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7층으로 올라갔다.
"이걸 꼭 잡아."
제일 마지막 계단의 꼭대기에 서자, 해리가 양피지 조각을 펼쳐 들며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지팡이로 양피지를 툭 치면서 주문을 외웠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검은 양피지 조각 위에 호그와트 지도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름이 붙은 작은
검은 점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다른 사람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필치는 2층에 있어."
해리가 지도를 바싹 눈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노리스 부인은 4층에 있고."
"엄브릿지는?"
헤르미온느가 초조하게 물었다.
"자기 방에 있어."
해리가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며 말했다.
"좋아, 어서 가자."
그들은 복도를 따라서 도비가 해리에게 설명해 준 장소로 서둘러 이동했다.
트롤들은 길들여 무용을 가르치려고 하는 정신 나간 바르나바의 어리석은
시도가 그려져 있는 거대한 벽걸이 양탄자 맞은 편은 텅 빈 벽뿐이었다.
"됐어."
해리가 조용히 속삭였다. 한편 좀 먹은 양탄자 속의 트롤 하나가 무용 선생을
자처하는 바르나바를 곤봉으로 무자비하게 내려치려고 하다가 그만 동작을
멈추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도비 말에 따르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이 벽 앞을
세 번 지나라고 했어."
그들은 텅 빈 벽이 바로 끝나는 지점에 있는 유리창에서부터, 반대편에 있는
거의 사람 키만 한 꽃병 앞을 정확히 왔다갔다하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론은
정신을 집중하느라 오만상을 다 썼다. 헤르미온느는 숨을 죽이고 뭔가를
중얼거렸다. 한편 해리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앞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우리는 방어술을 배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해리는 생각했다. 우리에게
연습할 장소만 준다면... 그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장소를...
"해리!"
그들이 세 번째로 다시 돌아섰을 때,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눈부시게 윤이 나는 문이 벽에 나타난 것이다. 론은 넋을 잃고 그 문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손을 뻗어서 놋쇠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방에는 8층 아래에 있는 지하 교실을 밝히는 횃불과
똑같이 생긴 횃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벽에는 나무로 만든 책꽂이가 줄지어 서 있었고, 바닥에는 의자 대신 커다란
비단 방석들이 놓여 있었다. 저 멀리 방 끝에 있는 선반에는 스니코스코프, 비밀
탐지기, 그리고 적을 비추는 금이 간 커다란 거울 같은 각종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이 거울을 작년에 가짜 무디의 사무실에 걸려 있었던 물건이 틀림없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기절 마법을 연습하기에 딱 좋겠는걸."
론이 발로 방석을 쿡쿡 밟으며 신이 나서 말했다.
"그리고 이 책들 좀 봐!"
헤르미온느도 잔뜩 들떠서 가죽 장정이 된 커다란 책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일반적인 저주와 대응법에 대한 개론서, 어둠의 마법 허점 찌르기, 자기
방어를 위한 주문... 우와..."
헤르미온느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해리를 돌아보았다. 해리는 수백 권의
책들을 보자, 헤르미온느가 비로소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정말 대단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여기 다 있어!"
헤르미온느는 더 이상 야단법석을 떨지 않고 책꽂이에서 '저주받은 자를 위한
저주'라는 책을 꺼내더니 가장 가까이 놓인 방석 위에 주저앉아서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지니와 네빌,
라벤더, 패르바티 그리고 딘이 나타났다.
"우와!"
딘은 몹시 감동받은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해리는 이 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명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여덟 시가
되자, 방 안에 있는 방석이 다 찼다. 해리는 문쪽으로 걸어가서 자물쇠 구멍에
꽂혀 있는 열쇠를 돌렸다. 딸깍하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해리를 주목했다. 헤르미온느는 '저주받은 자를 위한 저주'의 읽던
곳을 조심스럽게 표시해 놓고 책을 옆으로 밀었다.
"여기는 우리가 마법 연습을 위해서 찾아낸 장소야."
해리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희들도 이곳이 꽤 쓸 만하다고 생각할 거야."
"정말 환상적이야!"
초가 소리쳤다.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동의한다는 말을 한마디씩 했다.
"그거 참 이상하군."
프레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도 언젠가 한 번 필치를 피해 이 방에 숨은 적이 있었는데, 기억나,
조지? 하지만 그때는 그저 빗자루 보관함이었어."
"이봐, 해리. 이 물건들은 다 뭐야?"
뒤쪽을 살펴보던 딘이 스니코스코프와 적을 비추는 거울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둠의 탐지기들이야."
해리는 방석 사이를 헤치고 뒤쪽으로 걸어갔다.
"기본적으로 그 기구들은 모두 어둠의 마법사들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거야. 하지만 그 기구들을 너무 믿어서는 안 돼. 잘못하면 속을 수도
있거든."
해리는 잠깐 동안 적을 비추는 금이 간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림자
같은 것들이 거울 안에서 어름거렸다. 하지만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는 없었다.
해리는 뒤로 돌아섰다.
"나는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줄곧 생각해 봤어. 그리고..."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지, 헤르미온느?"
"나는 우선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당연히 해리가 우리의 지도자잖아."
초가 헤르미온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서슴없이 말했다.
해리는 또다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건 그래. 하지만 나는 제대로 투표를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헤르미온느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태도로 말했다.
"공식적으로 투표를 해야지 해리의 권위가 서게 돼 있어. 그러니까... 해리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심지어 자카리아스 스미스까지도 마지못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어... 고마워."
해리는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뭐지, 헤르미온느?"
"우리에게도 적당한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손을 번쩍 치켜든 채, 명랑하게 말했다.
"그러면 단결 정신과 소속감을 높일 수 있을 거야.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반 엄브릿지 연맹이라고 지으면 어떨까?"
안젤리나가 의견을 냈다.
"아니면 마법부는 멍청이들의 집단이다?"
프레드가 한마디 거들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우리가 뭘 하는지 잘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이름이
좋겠다고 생각해 왔어."
헤르미온느가 프레드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야 밖에서도 마음 놓고 이 모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방어 연합(Defence Association)은 어때?"
초가 말했다.
"그리고 줄여서 'D,A'라고 부르는 거야. 그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누가 알겠어?"
"그래 D,A가 좋겠다. 하지만 덤블도어의 군대(Dumbledore's Army)의
줄임말로 하는 게 어떨까? 왜냐하면 덤블도어야말로 마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니까 말이야, 안 그래?"
이 말을 듣자,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리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모두 D,A라고 부르는 데 찬성하는 거지?"
헤르미온느가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손을 든 아이들의 숫자를 셌다.
"그럼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이 제안은 통과되었어!"
헤르미온느는 아이들 모두의 서명이 담긴 양피지 종이를 벽에 붙이더니 제일
꼭대기에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썼다.
'덤블도어의 군대'
"좋아."
헤르미온느가 다시 자리에 앉자, 해리가 말했다.
"그럼 연습을 시작해 볼까? 내 생각에 우리가 제일 먼저 연습해야 할
방어술은 엑스펠리아르무스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이것은 무장 해제 마법이지.
아주 기초적인 마법이긴 하지만 상당히 쓸모가 있어."
"오, 제발 그만둬."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팔짱을 낀 채,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 사람과 맞서 싸우는 데 엑스펠리아르무스가 정말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니?"
"난 그 사람과 싸울 때 이 마법을 썼어. 그리고 지난6월에는 이 마법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
해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스미스는 바보처럼 입을 딱 벌렸다. 다른 아이들도
숨을 죽인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면, 지금 가도 좋아."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스미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아."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자, 입 안이 자꾸 마르는 것 같았다.
"지금부터 둘씩 짝을 지어서 마법을 연습해 보자."
친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내리다 보니 너무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훨씬 더 이상했다.
모두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로 짝을 지었다.
예상했던 대로 네빌만이 혼자 남았다.
"너는 나랑 연습하면 돼."
해리가 네빌에게 말했다.
"좋아, 셋을 세면 연습을 하는 거야. 하나, 둘, 셋..."
갑자기 엑스펠리아르무스를 외치는 고함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다. 그리고
사방팔방으로 지팡이가 날아다녔다. 주문을 잘못 맞은 선반 위의 책들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네빌은 도저히 민첩한 해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네빌의 지팡이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더니 불꽃을 튀기며 천장에 부딪혔다.
그리고 덜커덕 소리와 함께 책꽂이 위에 떨어졌다. 해리는 소환 마법으로 그
지팡이를 다시 불러들였다. 주위를 살펴본 해리는 먼저 기초적인 마법부터
연습시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지는 못하고, 그저 주문이
힘없이 휙 하고 그들에게 닿는 순간, 펄쩍 뒤로 물러서거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 뿐이었다.
"엑스펠리아르부스!"
네빌이 소리쳤다. 아무 생각 없이 공격을 당한 해리는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해냈어!"
네빌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걸 해내기는 처음이야. 드디어 해냈어!"
"잘했어!"
해리는 네빌을 격려했다. 하지만 진짜 결투에서는 상대가 지팡이를 느슨하게
손에 쥔 채, 반대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 일은 없을 거라는 지적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이봐, 네빌. 잠깐 동안 론과 헤르미온느와 교대로 연습할 수 있겠지? 나는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며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올 테니까."
해리는 아이들 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자카리아스 스미스에게 뭔가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안토니 골드스틴을 무장 해제시키려고 입을
열 때마다, 오히려 자기 지팡이가 손에서 빠져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머지 않아
이 수수께끼는 쉽게 풀렸다. 프레드와 조지가 스미스의 등 뒤에서 서서 교대로
그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던 것이다.
"미안해, 해리."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조지가 황급히 사과를 했다.
"그냥 참을 수가 있어야지."
해리는 다른 아이들을 살펴보며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주려고 애를 썼다.
지니는 마이클 코너와 짝을 이루고 있었는데,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 반면
마이클은 실력이 형편없거나, 아니면 지니에게 주문을 걸기가 싫은 것 같았다.
어니 맥밀란은 지팡이를 불필요하게 많이 휘둘러서 상대방에게 자신을 방어할
틈을 자꾸 주었다. 크리비 형제는 열성적이었지만 정확성이 떨어져서 책꽂이의
책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도록 만든 주범이 되었다. 루나 러브굿은 실력이
들쑥날쑥이었다. 이따금 저스틴 핀치 플레츨리의 손에서 지팡이를 빼앗기도
했지만. 또 어떤 때에는 그저 그의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만들 뿐이었다.
"좋아, 그만!"
해리가 소리쳤다.
"그만! 그만!"
호루라기가 있어야겠군. 해리가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제일 가까이 쌓여 있는
책 더미 위에 호루라기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해리는 그것을 집어
들고 세게 불었다. 모두들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하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점들이 많아."
자카리아스 스미스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럼 다시 한 번 해보자."
해리는 다시 방 안을 돌아다니면서 이따금씩 걸음을 멈추고 이런저런 충고를
해주었다. 아이들의 솜씨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처음에 해리는 일부러 초와
그녀의 친구가 있는 곳에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방 안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모두 두 번씩 돌아보고 나자, 더 이상 그들을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오, 안 돼!"
해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초가 긴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엑스펠리아르미우스! 아니, 엑스펠리멜리우스! 오, 미안해. 마리에타!"
그만 곱슬머리 친구의 소매에 불이 붙었다. 마리에타는 자신의 지팡이로 불을
끄더니, 마치 그것이 해리의 잘못이라도 되는 듯이 그를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내가 긴장해서 그래. 그 전까지는 아주 잘하고 있었는데."
초가 해리에게 원망스러운 듯 말했다.
"아주 훌륭했어."
해리가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초가 눈을 치켜뜨자, 해리는 얼른 말을 바꿨다.
"그래, 아니야. 솔직히 형편없었어. 하지만 나는 네가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아. 저기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거든."
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친구인 마리에타는 기분 나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더니 휙 돌아서서 가 버렸다.
"저 친구는 신경 쓰지 마."
초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로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고 내가 억지로 끌고 왔어. 저 친구의
부모님은 엄브릿지의 비위에 거슬리는 일은 절대로 못하게 하시거든. 저 친구의
엄마가 마법부에서 일을 하고 계셔."
"너희 부모님은 어떠시니?"
"물론 우리 부모님도 내가 엄브릿지의 반대편에 서는 걸 반대하시지."
초는 자랑스럽게 허리를 쭉 펴며 말했다.
"하지만 케드릭이 그런 일을 당했는데, 내가 그자와 맞서 싸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초는 문득 말을 멈추고 몹시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테리 부트의 지팡이가 붕 하고 허공을 날아서 해리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더니 앨리샤 스피넷의 코를 정통으로 맞혔다.
"우리 아버지는 반 마법부 운동을 대단히 적극적으로 지지하셔!"
루나 러브굿이 해리의 등 뒤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한편 저스틴 핀치 플레츨리는 머리 위로 뒤집힌 망토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항상 퍼지에게 뭔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 퍼지가
수많은 도깨비들을 암살했다는 거야! 게다가 미스터리 부서를 이용해서 끔찍한
독약을 개발하고 있대. 자기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약을 먹이려고 한다는 거야. 또 그의 엄거뷸라 슬래쉬킬터로
말하자면..."
"그게 뭔지 물어보지 마."
초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려고 하자, 해리가 재빨리 옆에서 속삭였다.
초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이봐, 해리!"
헤르미온느가 반대편 끝에서 그를 불렀다.
"시간을 확인해 봤니?"
문득 시계를 내려다 본 해리는 깜짝 놀랐다. 벌써 아홉 시 십분이나 되었던
것이다. 지금 당장 기숙사 휴게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필치에게 붙잡혀서 벌을
받게 될 위험이 있었다. 해리가 호루라기를 불자, 모두들 '엑스펠리아르무스!'라고
소리치던 것을 멈추었다. 마지막 지팡이 두 개가 바닥에 덜커덕 떨어졌다.
"아주 잘했어.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으니까 어서 떠나도록 하자. 다음
주에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게 어때?"
"더 빨리 만나자!"
딘 토마스가 열성적으로 소리치자, 많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하지만 안젤리나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퀴디치 시합이 곧 시작될 거야. 그러니까 퀴디치 연습도 해야 해!"
"그럼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다시 만나자. 그리고 그때 봐서 모임을 더 자주
가질지 결정하면 돼. 어서... 그만 가는게 좋겠어."
해리는 다시 호그와트 비밀 지도를 꺼내 들고 7층에 선생님들이 없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그리고 서너 명씩 짝을 지어서 방을 빠져나가도록 한
다음, 지도에 나타난 작은 점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그들이 무사히 기숙사에
돌아갔는지 확인했다. 후플푸프 아이들은 부엌으로 이어지는 지하 복도로
향했고, 래번클로 아이들은 성의 서쪽에 있는 탑으로 향했다. 그리핀도르
아이들은 7층 복도를 따라서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해리, 정말 너무너무 좋았어."
마침내 헤르미온느와 해리, 론, 세 사람만 남게 되자, 그녀가 말했다.
"그래, 정말이야!"
론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밖으로 빠져나온 그들은 문이 다시 스르르 벽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해리, 내가 헤르미온느의 지팡이를 빼앗는 걸 봤니?"
"고작 한 번뿐이었지."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쏘아붙였다.
"난 너보다 훨씬 더 많이..."
"한 번이 아니었어. 최소한 세 번은 내가 너를 이겼는데."
"그래. 네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내 손에 든 지팡이를 쳐서 떨어뜨린 것까지
포함한다면 그렇겠지."
그들은 휴게실로 오는 동안 줄곧 그 문제로 입씨름을 벌였다. 하지만 해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호그와트 비밀 지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자신 때문에 긴장했다고 말하던 초의 모습을 자꾸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