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교육 법령 24조
해리는 남은 주말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마음으로 지냈다. 그와 론은
또다시 밀린 숙제를 해결하느라, 일요일 내내 고생을 해야만 했다. 비록 썩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마지막 가을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휴게실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대신 숙제를 들고 밖으로
나가, 호숫가의 커다란 너도밤나무 그늘 아래에서 뒹굴며 공부를 했다. 당연히
모든 숙제를 제날짜에 다 끝낸 헤르미온느는 털실을 들고 나와서 뜨개질바늘에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바늘은 그녀의 옆에 둥둥 떠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모자와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
해리는 드디어 엄브릿지와 마법부에 대항하여 뭔가 일을 벌이기 시작했고,
자신이 그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모임을 자꾸 되풀이해서 떠올렸다. 그 많은 아이들이
어둠의 마법에 맞설 수 있는 방어술을 배우기 위해서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가 겪은 일들을 들었을 때,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란... 게다가 초는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그가 보여 준 실력에 감탄하며 칭찬까지 했다. 모든
사람들이 전부 그를 거짓말쟁이 괴짜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리는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다.
심지어 그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월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즐겁고 행복했다.
해리와 론은 침실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서 안젤리나의 제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에 있을 퀴디치 연습에서 '슬로스 그립 롤'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연습해 보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햇빛이 환하게 비쳐 들어오는
휴게실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사람은 뭔가 새로운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몇몇 아이들은 벌써 그 주위에 몰려들어 있었다.
커다란 공고문이 그리핀도르 게시판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 공고문은 다른
모든 전단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세일 중인 중고 마법책 목록이나 아구스
필치가 정기적으로 붙여 놓는 학교 규칙에 대한 경고문, 퀴디치 팀 훈련 시간표,
개구리 초콜릿 카드를 서로 교환하자는 제안문, 실험 지원자를 모집하는 위즐리
형제의 가장 최근 광고문, 호그스미드 주말 방문 일을 알리는 공고문, 분실물
광고 등이 전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 새로운 공고문은 커다란 검은색 활자로
인쇄되어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단정하고 깔끔한 서명 옆에 대단히 권위적으로
보이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호그와트 장학사의 포고령
이제부터 모든 학생들의 조직이나 모임, 팀, 단체, 클럽 활동 등을 일절
금지한다.
이제부터 조직, 모임, 팀, 단체 클럽 활동이란, 세 명이상의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정의한다.
장학사인 엄브릿지 교수로부터 재조직을 위한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장학사의 승인 없이는 어떠한 학생 조직이나 모임, 팀, 단체 클럽 활동도 있을
수 없다.
장학사가 인정하지 않은 조직이나 모임, 팀, 단체, 클럽 활동을 만들거나
가입한 학생은 누구든지 퇴학시킬 수 있다.
이상의 명령은 교육 법령 24조에 따른 것임.
장학사, 돌로레스 제인 엄브릿지
해리와 론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2학년 학생들 머리 너머로 이 공고문을
읽었다.
"설마 곱스톤 클럽을 폐쇄하려는 건 아니겠지?"
한 학생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다.
"곱스톤 클럽은 괜찮을 거야."
론이 등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로 불쑥 대답하자, 2학년 학생은 펄쩍 뛸 듯이
놀랐다.
"하지만 우리는 별로 운이 좋을 것 같지 않군, 안 그래?"
론이 해리에게 물었다. 놀란 2학년 학생들은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났다.
해리는 그 공고문을 다시 한 번 읽고 있었다. 토요일 이후로 그의 마음속에
가득하던 행복감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다시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해리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엄브릿지는 알고 있었어."
"그럴 리가 없어."
론이 즉시 반박했다.
"그 술집에서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들은 거야.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그날
그 자리에 나타난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나 믿을 수 있는지 우린 잘 몰라. 어느
누군가 엄브릿지에게 쫓아가서 고자질했을 수도 있지."
해리는 그들이 자신을 믿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심지어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자카리아스 스미스, 그 녀석이야!"
해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론이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아니면 마이클 코너 그 녀석도 왠지 수상쩍어 보였어."
"헤르미온느는 아직 이 공고문을 못 봤을까?"
해리가 여학생 침실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서 가서 말해 주자."
론은 얼른 앞으로 뛰어가더니 문을 열고 나선형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섯 번째 계단을 밟는 순간, 자동차 경적 소리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계단이 돌로 만든 나선형 미끄럼틀처럼 쭉쭉 늘어났다.
론은 잠깐동안 두 팔을 풍차 날개처럼 미친 듯이 휘저으면서 계속 앞으로
달려가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곧 뒤로 벌렁 자빠지면서 방금 만들어진
미끄럼틀을 타고 해리의 발밑까지 미끄러져 내려왔다.
"우리는 여학생 침실에 들어가는 게 금지되어 있는 것 같아."
해리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론을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때 4학년 여학생 두 명이 킬킬거리며 돌 미끄럼틀을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이런! 누가 위로 올라오려고 했나 봐?"
여학생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미끄럼틀에서 일어나더니 론과 해리에게
살짝 윙크를 했다.
"나야..."
론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지. 이건 불공평해!"
론이 해리에게 투덜거렸다. 여학생들은 아직도 신이 나서 깔깔거리며 초상화
구멍 쪽으로 가 버렸다.
"헤르미온느는 남학생 침실에 들어올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왜 들어갈 수
없는 거지?"
"그래, 시대에 뒤떨어진 규칙이야."
두 사람 앞으로 멋지게 미끄러져 내려온 헤르미온느는 발딱 일어서며 말했다.
"'호그와트의 역사'책에 보면, 이 학교의 창립자들은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미덥지 못하다고 생각했대. 어쨌든 여학생 침실에는 왜 들어오려고 했는데?"
"널 만나려고, 이것 좀 봐!"
론이 헤르미온느를 게시판 앞으로 끌고 갔다.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공고문을 읽어보더니,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누군가 그 여자에게 고자질을 한 게 틀림없어!"
론이 화를 냈다.
"그럴 리가 없어."
헤르미온느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너무 순진해. 단지 네가 약속을 잘 지키고 명예를 중시하니까 남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잖아."
"아니야. 그 아이들은 절대 그럴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가 서명을 한
양피지 종이에 내가 주문을 걸어 놓았거든."
헤르미온느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날 믿어. 만약 누군가 엄브릿지에게 가서 고자질을 했다면, 금방 들통이 날
거야. 그리고 그 아이들은 곧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걸."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론이 열심히 물었다.
"두고 봐."
헤르미온느가 대답했다.
"엘로이즈 미전의 여드름쯤은 그저 귀여운 주근깨 정도로밖에 안 보이게 될걸.
어서 식당으로 내려가서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자. 이
공고문이 기숙사 전체에 다 붙었는지 궁금해."
대연회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엄브릿지의 공고문이 그리핀도르 기숙사에만 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연회장의 떠들썩한 말소리와 분주한
움직임에서 평소와 다른 특별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학생들은 테이블 주위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아침에 나붙은 공고문에 대해서 떠들고 있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자리에 앉자마자, 네빌과 딘, 프레드, 조지, 그리고 지니가
우르르 몰려왔다.
"너도 그거 봤니?"
"엄브릿지가 알아차렸을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아이들은 모두 해리만 바라보았다. 해리는 주위를 돌아보며 근처에 다른
선생님들이 없는지 확인했다.
"물론 우리는 어떻게든 계획한 대로 할 거야."
해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난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조지가 활짝 웃으며 해리의 팔을 툭 쳤다.
"두 분 반장님들께서도 똑같은 생각이신가?"
프레드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빈정거리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물론이야."
헤르미온느가 서슴없이 대답했다.
"저기 어니와 한나 아보트가 온다."
론이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저 래번클로 녀석들과 스미스도 오는걸. 하지만 얼굴이 종기투성이가
된 녀석은 아무도 없군."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당황하며 어쩔 줄 몰랐다.
"종기 따위는 신경 쓰지 마. 그보다도 저 멍청이들이 지금 이쪽으로 오면 안
되는데. 사람들의 의심을 살 거야. 어서 저리 가서 앉아!"
헤르미온느가 어니와 한나에게 소리 없이 입을 벙끗거리며 어서 후플푸프의
테이블로 돌아가라고 미친 듯이 손짓을 했다.
"너희들에게는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내가 마이클에게 가서 말할게."
지니가 초조한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휴...저 바보들..."
지니는 황급히 래번클로 테이블로 갔다. 해리는 걸어가는 지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 초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호그스 해드에
데려왔던 곱슬머리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브릿지의 공고문을 보고,
초도 겁에 질려서 더 이상 그들과 만나지 않을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이 마법의 역사 수업을 듣기 위해서 대연회장을 막 떠나려 할
때까지도, 공고문의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실감할 수 없었다.
"해리! 론!"
그때 안젤리나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안젤리나가 가까이 다가오자, 해리가 침착하게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우린 그래도 계획대로..."
"엄브릿지가 그 공고문에 퀴디치 팀도 넣은 걸 알고 있었니? 그리핀도르 팀을
다시 만들려면 그 여자의 허락을 받아야만 해!"
안젤리나가 해리에게 말했다.
"뭐라고?"
해리가 되물었다.
"그럴 리가 없어."
론은 사색이 되어서 중얼거렸다.
"공고문을 읽어 봐. 거기에 팀도 나와 있어. 그러니까 해리, 내 말을 잘 들어.
마지막으로 이번 한 번만 다시 말할게. 제발, 제발 앞으로는 엄브릿지에게 화를
내지 마. 화를 냈다가는 두 번 다시 퀴디치를 못 하게 할 수도 있어."
"알았어. 알았어."
해리는 선선히 대답했다. 안젤리나가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마. 행동을 조심할게."
"틀림없이 엄브릿지는 마법의 역사 수업에 들어올 거야."
빈스 교수의 수업에 가면서 론이 우울하게 말했다.
"아직까지 빈스 교수의 수업은 참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그 여자가 그
수업에 온다는 데 뭐든지 걸어도 좋아."
하지만 론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들이 교실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오직
빈스 교수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평소처럼 의자에서 4, 5센티미터쯤 둥둥
허공에 뜬 채, 변함없이 졸린 목소리로 거인 전쟁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리는 오늘은 아예 처음부터 빈스 교수의 말을 애써
귀담아들을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이따금씩 팔꿈치로 툭툭 치며 째려보는
헤르미온느를 무시한 채, 양피지 종이 위에 낙서를 끼적거렸다. 하지만 너무
아프게 옆구리를 쿡 찌르는 바람에, 순간 짜증이 나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가 창문을 가리켰다. 해리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헤드위그가 좁은
창틀에 앉아서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헤드위그의 발에는
편지가 묶여 있었다. 해리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방금 전에 아침
식사를 했는데, 왜 평소처럼 그 시간에 편지를 배달하지 않았을까? 이제 다른
학생들도 헤드위그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오, 난 언제나 저 부엉이를 좋아했어. 정말 너무 예쁘지 않니?"
라벤더가 패르바티에게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빈스 교수 쪽을 슬쩍 살펴보았다. 그는 학생들의 주의가 보통 때보다도
더욱 산만하다는 사실조차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계속해서 자신의 책을 읽고
있었다. 해리는 살그머니 의자에서 빠져나와 허리를 숙이고 창문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해리는 헤드위그가 다리를 안으로 들이밀고 편지를 전해 준 다음,
부엉이장으로 다시 날아갈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들어올 수 있을
만큼 창문이 열리자마자, 헤드위그는 교실 안으로 풀쩍 뛰어들더니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해리는 초조하게 빈스 교수 쪽을 계속 돌아보면서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헤드위그를 어깨 위에 앉힌 채, 몸을 잔뜩 숙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무사히 자리에 앉은 해리는 헤드위그를 무릎에 내려서 다리에 묶여
있는 편지를 풀려고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해리는 헤드위그의 깃털이 마구 헝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부분은 깃털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게다가 한쪽 날개가
이상하게 꺾여 있었다.
"다쳤구나!"
해리가 헤드위그 위로 머리를 숙이며 속삭였다.
헤르미온느와 론이 바싹 옆으로 다가왔다. 헤르미온느는 손에 쥐고 있던
깃펜조차 내동댕이쳐 버렸다.
"이거 봐. 여기 날개가 이상해."
해리가 날개를 살짝 건드리자, 파르르 몸을 떨고 있던 헤드위그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그리고 마치 몸을 잔뜩 부풀리려는 듯이 온몸의 깃털을 곤두세우고
원망스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빈스 교수님."
해리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몸이 좀 좋지 않습니다."
책에서 눈길을 뗀 빈스 교수는 늘 그렇듯이 불현듯 방 안 가득 앉아 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고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몸이 좋지 않다고?"
빈스 교수는 멍하니 그의 말을 따라했다.
"네, 너무 안 좋아요."
해리는 헤드위그를 등 뒤로 숨긴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병동에 가 봐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빈스 교수는 이 예기치 않은 상황에 완전히 얼이 빠진 것 같았다.
"알았어요. 그래요, 병동으로 가도록. 그럼, 퍼킨스..."
일단 교실 밖으로 나오자, 해리는 다시 헤드위그를 어깨 위에 앉히고 재빨리
복도를 달려 내려갔다. 빈스 교수의 교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다친 헤드위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그리드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그에게
남은 선택이라고는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를 찾아가서 부디 도와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해리는 창문 너머로 사나운 바람이 불고 있는 어두컴컴한 운동장을
내다보았다. 해그리드의 오두막 근처 어디에도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 수업이 없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교무실에 있을 것이다.
해리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헤드위그는 그의 어깨 위에 앉아서 힘없이
울고 있었다.
교무실 문 앞에는 돌로 만든 이무기 상 두 개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해리가
다가가자, 그 중 하나가 꽥 소리를 질렀다.
"넌 지금 교실에 있어야 하잖아. 이 녀석아."
"급한 일이야."
해리가 딱 잘라서 말했다.
"오호라, 급한 일이라고?"
또 다른 이무기가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바로 그런 일 때문에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 안 그래?"
해리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발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고 맥고나걸 교수와 딱
마주쳤다.
"설마 또 벌을 받는 건 아니겠지?"
그를 보자마자, 맥고나걸 교수가 네모난 안경 뒤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닙니다. 교수님!"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수업 시간에 나온 거지?"
"아주 급하신 일이랍니다."
두 번째 이무기가 빈정거렸다.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님을 찾고 있어요. 이건 제 부엉인데 몹시 다쳤거든요."
해리가 설명했다.
"다친 부엉이라고 그랬니?"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가 맥고나걸 교수의 어깨 너머로 얼굴을 내밀었다.
'예언자 일보'를 손에 든 채, 입에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었다.
"네."
해리는 헤드위그를 조심스럽게 어깨에서 내렸다.
"다른 배달 부엉이들보다 늦게 나타났는데, 날개가 완전히 엉망이 되었어요.
보세요."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는 이로 파이프를 꽉 물고 해리에게서 헤드위그를
넘겨받았다. 맥고나걸 교수는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흠."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입에 문
파이프가 달랑거렸다.
"뭔가에 공격을 받은 것 같구나.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세스트랄이 가끔
새들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해그리드가 호그와트의 세스트랄은 부엉이를
건드리지 않도록 잘 훈련시켜 놓았는데."
해리는 세스트랄이 뭔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헤드위그가 무사한지
그것만 알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는 날카로운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부엉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알고 있니, 포터?"
"저... 런던이에요."
해리가 대답했다.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눈썹이
일자로 되는 것을 보고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가 '런던'이 곧 '그리몰드 광장
12번지'를 뜻한다는 걸 알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는 망토 안쪽에서 외알 안경을 꺼내더니 눈에 끼고
헤드위그의 날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엉이를 잠시 나에게 맡긴다면, 이 정도 상처는 내가 치료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어쨌든 며칠 동안 멀리 날아서는 안 된다."
"저...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해리가 대답했다. 바로 그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천만에."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는 무뚝뚝하게 대답하더니 휙 돌아서서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잠깐만, 윌헬미나! 포터의 편지!"
맥고나걸 교수가 소리쳤다.
"아, 맞아요!"
해리는 잠깐 동안 헤드위그의 다리에 묶여 있던 편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는 편지를 넘겨주더니 다시 헤드위그를 데리고
교무실 안으로 사라졌다. 헤드위그는 그가 이렇게 자기를 버리고 떠나다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다소 죄책감을 느끼며
돌아섰다.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가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포터!"
"네, 교수님?"
맥고나걸 교수는 복도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느 쪽에서도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명심해라."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의 손에 쥔 양피지를 내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호그와트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편지들은 모두 감시를 당할 수도 있어.
알겠지?"
"저도..."
해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학생들이 복도를 따라 파도처럼
밀려왔다. 맥고나걸 교수는 그를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교무실로
들어갔다. 해리는 학생들 틈에 휩싸여서 운동장으로 나갔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벌써 바람이 부는 외진 구석에 서서 잔뜩 옷깃을 올려 세운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리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펴면서 그들을 향해 서둘러 다가갔다.
양피지에는 시리우스의 필체로 딱 다섯 단어가 적혀 있었다.
'오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
"헤드위그는 괜찮아?"
해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헤드위그는 어디다 맡겼니?"
론이 물었다.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님한테.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님을 만났는데..."
해리는 두 사람에게 맥고나걸 교수가 했던 말을 다시 들려주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전혀 충격을 받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다.
"뭐야?"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방금 론에게 이야기하는 중이었어. 누군가 헤드위그를
가로 채려고 했던 건 아닐까? 내 말은 헤드위그가 지금까지 날다가 다친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고 누가 보낸 편지야?"
론이 해리에게서 편지를 받아 들며 물었다.
"스누플즈야."
해리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휴게실에 있는 그 벽난로를 말하는 건가?"
"당연하지."
헤르미온느가 편지를 함께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아주
어두웠다.
"아무도 이 편지를 읽지 않았어야 할 텐데..."
"하지만 봉인도 그냥 있고 모든 게 다 정상이야."
해리는 헤르미온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안심시키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리가 전에 어디서 시리우스와 만났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글쎄... 난 잘 모르겠어."
다시 수업 종이 울리자, 헤르미온느는 가방을 어깨에 메며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마법으로 양피지를 다시 봉인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혹시라도 누군가 플루 가루 네트워크를 감시하고 있다면... 그렇지만 우리가
그에게 오지 말라고 어떻게 경고할 수 있을지 그것도 모르겠어!"
그들은 마법약 수업을 위해 지하 교실로 향하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세 사람은
모두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 드레이크
말포이의 거친 목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그는 스네이프 교실 문 밖에 서서
공식 문서처럼 보이는 양피지 종이를 흔들며, 들으라는 듯이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슬리데린 퀴디치 팀은 그냥 그대로 연습을 계속할 수 있도록 엄브릿지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지. 오늘 아침에 내가 찾아가서 제일 먼저 부탁을
드렸거든. 사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를 아주 잘
아시거든. 아버지는 항상 마법부를 드나드시니까. 그런데 그리핀도르 녀석들도
연습을 계속하도록 허락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한 걸, 안 그래?"
"화내지 마."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에게 타이르듯 속삭였다. 두 사람 모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성난 표정으로 말포이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말포이가 원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말포이가 그의 회색 눈을 해리와 론을 향해 심술궂게 번뜩이며 더욱더 목청을
높였다.
"만약 이게 마법부에 영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라면, 그 녀석들은
별로 가망성이 없다는 거지. 우리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마법부에서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아서 위즐리를 내쫓을 구실만 찾고 있다더군. 게다가 포터 녀석으로
말하자면, 마법부가 그 녀석을 성 믕고 병원에 가두는 건 시간 문제라는 거야.
성 뭉고 병원에서는 마법으로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들을 특별 수용하고 있거든."
말포이가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입을 헤벌리고 얼굴 근육을 일그러뜨렸다.
그 모양을 보고 크레이브와 고일은 늘 그렇듯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팬시
파킨슨도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바로 그때 뭔가가 해리의 어깨를 세게 밀치며 그를 쓰러뜨렸다. 잠시 후에
해리는 네빌이 방금 그의 옆을 지나서 말포이를 향해 곧장 돌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빌, 안 돼!"
해리는 앞으로 몸을 날려서 네빌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네빌은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말포이에게 다가가려고 미친 듯이 몸을 버둥거렸다. 말포이는 한동안
너무 놀라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날 좀 도와줘!"
해리가 론에게 소리쳤다. 그는 간신히 네빌의 목을 끌어안아 슬리데린
패거리들로부터 멀리 떼어 놓고 있는 중이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어깨를
구부정하게 세운 채, 싸울 태세를 갖추고 말포이의 앞으로 나섰다. 론은 네빌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해리와 함께 힘을 합쳐 간신히 네빌을 그리핀도르
자리까지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네빌의 얼굴은 보라색으로 변했다. 해리가
그의 목을 꽉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입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이 띄엄띄엄 새어 나왔다.
"뭉고 병원... 놀리면... 안 돼..."
그때 지하교실의 문이 열리면서 스네이프가 나타났다. 그리핀도르 줄을
살펴보던 그의 검은 눈이 한창 네빌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해리와 론에게
머물렀다.
"포터, 위즐리, 롱바텀, 싸우고 있는 거냐?"
스네이프가 차갑고 비꼬는 어조로 물었다.
"그리핀도르는 10점 감정이다. 포터, 그만 롱바텀을 놓아줘라. 그렇지 않으면
징계를 받게 될 거다. 다들 교실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리는 네빌을 놓아주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해리를 가만히 노려보고 서
있었다.
"널 말리지 않을 수 없었어."
해리가 가방을 집어 들며 말했다.
"크레이브와 고일이 널 반쯤 죽였을 거야."
네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방을 집어들더니 지하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론이 네빌의 뒤를 따라가며 천천히 물었다. 해리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법으로 머리가 이상해져서 성 뭉고 병원에 수용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네빌을 성나게 했는지, 해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덤블도어 교수님께 어느 누구에게도 네빌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던 것이다. 네빌조차도 해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교실 뒤쪽의 늘 앉는 자리에 앉아서 양피지와 깃펜과
'1000가지 마법 약초와 곰팡이' 책을 꺼냈다. 학생들은 방금 네빌이 한 행동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스네이프 교수가 탁 소리를 내며 지하 교실의
문을 닫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우리 수업에 손님이 한 분 들어오셨다."
스네이프는 지하 교실의 어두운 한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엄브릿지 교수가 무릎 위에 필기판을 올려놓은채 앉아 있었다. 해리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론과 헤르미온느를 슬쩍 곁눈질했다. 스네이프와 엄브릿지는 그가
가장 미워하는 두 선생님이었다. 둘 중에 누가 더 싫은지 결정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오늘은 마력 강화제를 계속해서 만들어 보겠다. 지난 시간에 너희들이 두고
간 용액을 각자 찾아가도록 해라. 만약 제대로 만들었다면, 주말 동안 용액이 잘
숙성되었을 것이다. 만드는 방법은 칠판에 있다."
스네이프는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실시하도록"
처음 삼십 분 동안 엄브릿지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열심히 적기만 했다.
해리는 그녀가 스네이프에게 무슨 질문을 할지 너무나 궁금했다. 어찌나 거기에
정신이 팔렸던지, 해리는 또 다시 마법약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해리, 살라맨더의 피를 넣어야지!"
헤르미온느가 신음 소리를 내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가 잘못된 성분을
넣으려는 것을 벌써 세 번째 막아 주는 것이었다.
"자몽 주스가 아니야!"
"아참, 그렇지."
해리는 멍하니 병을 내려놓으면서도, 구석 자리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브릿지가 방금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하!"
엄브릿지가 스네이프를 향해서 책상 두 줄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가자, 해리는
기대된다는 듯이 조그맣게 탄성을 질렀다. 스네이프는 허리를 숙이고 딘
토마스의 냄비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이 수업은 아주 수준이 높은 것 같군요."
엄브릿지가 스네이프의 등 뒤에서 불쑥 말을 걸었다.
"솔직히 마력 강화제 같은 마법약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권할 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제 생각에 마법부에서는 차라리 이 과정을
수업에서 빼는 것을 더 선호할 거예요."
스네이프는 천천히 허리를 펴더니 엄브릿지를 향해 돌아섰다.
"호그와트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신 지 얼마나 되었죠?"
엄브릿지가 필기판 위에 깃펜을 올려놓은 채 물었다.
"14년입니다."
스네이프가 대답했다. 그의 표정만 봐서는 도무지 속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해리는 열심히 그를 지켜보면서, 마법약에 뭔가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그러자
그 즉시 쉬 하고 위협적인 소리가 나면서 청록색이 오렌지색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직에 지원하셨다고 하던데요?"
엄브릿지 교수가 스네이프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스네이프가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셨죠?"
스네이프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맞습니다."
엄브릿지는 필기판에 뭔가를 휘갈겨 썼다.
"이 학교에 들어온 후에도 계속해서 어둠의 마법 방어술 자리에 지원하셨죠?"
"네."
스네이프가 거의 입술을 다문 채, 들릴 듯 말 듯 대답했다. 그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왜 덤블도어 교수가 계속해서 당신을 그 자리에 선임하는데 반대했는지 혹시
그 이유를 알고 계신가요?"
"직접 물어보시죠."
스네이프가 빈정거렸다.
"오, 그러죠."
엄브릿지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스네이프가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오, 물론이에요. 그럼요. 마법부에서는 교수들의... 음... 배경을 완전히
파악하고자 한답니다."
엄브릿지는 돌아서서 팬시 파킨슨에게 다가가더니 수업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스네이프가 해리를 돌아보는 바람에 잠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해리는 황급히 마법약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이제 그의 마법약은
끈끈하게 엉겨 붙으면서 고무가 타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포터, 또다시 빵점이구나."
스네이프가 심술궂게 말하며 지팡이를 휘두르자, 해리의 냄비 안이 순식간에
텅 비어 버렸다.
"이 마법약의 올바른 제조법에 관한 보고서를 써서 나에게 제출해라. 네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밝혀 써야 한다. 다음 수업 시간까지 내도록.
알았나?"
"네."
해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스네이프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고, 오늘
저녁에는 퀴디치 연습까지 있었다. 결국 그것은 또다시 이틀 밤을 꼬박 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 해리는 바로 오늘 아침에 그토록 행복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지금은 오직 이 지겨운 하루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무래도 점술 수업을 빼먹어야 할 것 같아."
점심 식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운동장으로 나갔을 때, 해리가 우울하게 말했다.
옷깃과 모자 사이로 와 닿은 바람이 칼로 에는 듯 쌀쌀했다.
"몸이 아픈 척하고 대신 스네이프의 보고서를 써야겠어. 그래야 밤을 꼬박
새우지 않을 거야."
"점술 수업을 빼먹을 순 없어."
헤르미온느가 무자비하게 말했다.
"이런,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넌 점술 수업 도중에 걸어 나온 적도
있잖아. 트릴로니 교수를 미워하면서!"
"난 트릴로니를 미워하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도도하게 말했다.
"단지 끔찍하게 형편없는 선생님이고 진짜 늙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하지만 해리는 벌써 마법의 역사 수업을 빼먹었어. 그런데다 오늘 또 다른
수업까지 빼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헤르미온느의 말을 무시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양심에 찔렸다. 결국 30 분
후에 해리는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후텁지근한 점술 교실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짜증스럽기만 했다. 트릴로니 교수가 다시 '꿈의 신탁'을 나누어 주기
시작하자마자, 해리는 여기 앉아서 거짓말로 지어낸 꿈의 의미를 찾느라
골머리를 썩이느니 차라리 스네이프가 벌로 내준 보고서를 쓰는 게 백 번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술 수업에서 골이 난 사람은 해리 혼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트릴로니 교수는 해리와 론 사이의 책상 위에 '꿈의 신탁'을 탁 내려놓더니
입술을 삐죽거리며 홱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책을 시무스와 딘에게 휙 던지는
바람에 시무스의 머리를 가격할 뻔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던진 책이 네빌의
가슴에 어찌나 세게 맞았던지 네빌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자, 그럼 시작해요!"
트릴로니 교수가 높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뭘 해야 할지는 다들 알고 있죠!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에게 책 펴는 법까지
다시 가르쳐야 할 만큼 내가 자격 미달의 선생인가요?"
학생들은 어리둥절해서 선생을 바라보다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하지만
해리는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트릴로니 교수는 긴 등받이가 있는
자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돋보기 너머로 커다랗게 보이는 그녀의 두 눈에
분노에 찬 눈물이 가득 고였다. 해리는 론에게 바싹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 참관 수업 결과를 받은 것 같아."
"교수님?"
그때 패르바티 패틸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그녀와 라벤더는 항상
트릴로니 교수를 존경해 왔다).
"교수님, 혹시 원가 잘못된 일이라도?"
"잘못된 일이라고!"
트릴로니 교수가 감정에 북받쳐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물론 아니예요! 그저 모욕을 당했을 뿐이예요... 나에 대한 지독한 모욕을...
아무런 근거도 없는 비방을 당했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잘못된 일은 하나도
없어요. 물론이에요!"
트릴로니 교수는 부르르 떨며 한숨을 내쉬더니 패르바티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안경 밑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지난 16년 동안의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요.
그래요... 그건 아무 인정도 받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죠. 하지만 그래도 모욕까지
당할 수는 없어요! 그래요, 절대 그럴 수는 없어요!"
"하지만 교수님, 누가 선생님을 모욕했죠?"
패르바티가 망설이며 물었다.
"정부 기관이죠!"
트릴로니 교수는 분노로 떨리는, 깊고 극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요, 내가 보는 것을 보고 내가 아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 눈을
가진 자들... 몰론 우리 예언자들은 항상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언제나 핍박을
받았죠. 아, 슬프게도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에요..."
트릴로니 교수는 울음을 꿀꺽 삼키더니 숄 자락으로 젖은 뺨을 닦았다. 그리고
소맷자락에서 수가 놓인 작은 손수건을 꺼내더니 피브스가 야유하는 휘파람을
불 때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코를 풀었다.
론이 킬킬거리고 웃자, 라벤더가 괘씸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았다.
"교수님... 혹시 그 말씀은... 엄브릿지 교수님이 뭔가..."
패르바티가 다시 말을 꺼냈다.
"내 앞에서 그 여자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요!"
트릴로니 교수는 목에 걸린 구슬이 요란하게 짤랑거리고 안경이 번쩍할
정도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꽥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은 공부나 계속하세요!"
트릴로니 교수는 남은 수업 시간 동안 안경 너머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일종의 위협처럼 들리는 말을 끝없이 중얼거리며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만 떠나는 게 좋을걸... 나에게 이런 모욕을... 근신이라니... 두고 보겠어...
어떻게 감히 이런..."
"너와 엄브릿지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
어둠의 마법 방어술 수업 시간에 다시 헤르미온느를 만난 해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브릿지도 트릴로니가 늙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트릴로니를
근신에 처한 모양이야."
바로 그때 엄브릿지가 머리에는 검은 벨벳 리본을 달고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엄브릿지 교수님."
학생들이 맥 빠진 목소리로 합창을 했다.
"지팡이를 치우세요."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쓸데없이 지팡이를 꺼내 놓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법 방어 이론 34페이지를 펴고 3장 '마법 공격에 대한 비공격적인 대응을
위한 사례'를 읽도록 하세요. 말은..."
"필요 없을 거예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작은 소리로 합창을 했다.
"퀴디치 연습은 없어."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가 휴게실로 들어갔을 때,
안젤리나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난 가만히 있었는데!"
해리가 지레 겁을 먹고 소리쳤다.
"안젤리나,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정말이야. 맹세할 수 있어."
"나도 알아, 안다니까."
안젤리나가 우울하게 말했다.
"엄브릿지가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말했어."
"뭘 생각한다는 거야?"
론이 벌컥 화를 냈다.
"슬리데린 팀에게는 벌써 허락을 했잖아. 그런데 왜 우린 안돼?"
하지만 해리는 엄브릿지가 그들에게 그리틴도르 퀴디치 팀을 없앨 수도
있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얼마나 속으로 고소해 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그리고 그런 훌륭한 무기를 그렇게 쉽게 단념하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을 보도록 하자. 최소한 너는 스네이프가 내준 숙제를 할
시간이 생겼잖아!"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그게 긍정적인 면이라고?"
해리가 쏘아붙였다. 한편 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퀴디치 연습도 없고, 마법약 공부를 또 해야 하는데?"
해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마지못해 가방에서 마법약 숙제를 꺼냈다.
하지만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시리우스가 나타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해리는 몇 분마다 불 속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게다가 휴게실 안은 천장이 떠나갈 듯이 시끄러웠다. 프레드와 조지가 마침내
꾀병용 과자세트의 한 종류를 완성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신이 나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는 관중 앞에서 교대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먼저 프레드가 오렌지 색깔이 나는 반쪽을 깨물더니 그들 앞에 놓인 양동이에
보란 듯이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보라색 반쪽을 억지로 입속에 밀어
넣자마자, 구토가 순식간에 멈추었다. 옆에서 이들의 시범을 도와주고 있던 리
조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범이 끝날 때마다 스테이프가 해리의 마법약을
사라지게 할 때 사용했던 소멸 마법을 써서 양동이에 든 구토물을 사라지게
했다.
토하는 소리와 박수 소리, 프레드와 조지가 관중으로부터 주문을 받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되풀이되자, 해리는 마력 강화제를 만드는 정확한 방법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헤르미온느까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박수 소리와 구토물이 프레드와 조지의 양동이 바닥에 털썩
떨어지는 소리 사이사이에 헤르미온느의 못마땅한 콧방귀 소리가 끼어들었는데,
해리는 그 때문에 더욱더 정신이 산란해졌다.
"차라리 그냥 가서 못 하게 해."
그리핀 발톱 가루의 분량을 네 번째 다시 고쳐 쓴 해리가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럴 수는 없어. 원칙적으로 그들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야."
헤르미온느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무슨 지저분한 걸 먹든 그건 그들의 권리야. 게다가 다른 멍청이들이 그걸
사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규칙을 찾을 수도 없었어. 어떤 식으로든 그게
위험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어쩔 수가 없다고. 그리고 어쨌든 보기에는
위험한 것 같지 않은 걸."
헤르미온느와 해리, 론은 조지가 양동이에 한바탕 토해 내고 나머지 반쪽은
먹은 다음,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서서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멈출 줄 모르는
환호성을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왜 프레드와 조지가 O,W,L 시험을 세 개밖에 통과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어."
프레드와 조지, 리가 열광하는 관중으로부터 금화를 긁어모으는 광경을
지켜보며, 해리가 중얼거렸다.
"저 방면에는 정말 도사란 말이야."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일에만 도통했지."
헤르미온느가 한심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론이 목청을 높였다.
"헤르미온느, 저들은 벌써 26갈레온이나 벌었다고."
위즐리 형제들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이 뿔뿔이 흩어진 것은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난 뒤였다. 프레드와 리, 조지는 그날의 수입을 계산하느라 좀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결국 휴게실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만 남게 된 것은 자정이 꽤
지난 시각이었다. 마침내 프레드가 갈레온이 잔뜩 든 상자를 여봐란 듯이
짤랑거리며 남학생 침실로 향하는 문을 닫고 나갔다. 헤르미온느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해리는 마법약 보고서를 더 이상 한 줄도 쓰지 못하고 그만 책을 덮어
버렸다. 오늘은 공부를 포기하기로 하고 책을 밀쳤을 때, 안락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론이 갑자기 입을 딱 벌리며 눈을 크게 뜨더니 불 속을
바라보았다.
"시리우스!"
론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해리가 재빨리 휙 돌아섰다. 시리우스의 지저분한
검은 머리가 또다시 불 속에 나타났다.
"안녕."
시리우스가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세 사람이 벽난로 앞 깔개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크룩생크는 큰 소리로 울더니 불 옆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바싹
들이밀려고 애를 썼다.
"별일 없었니?"
시리우스가 물었다.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크룩생크가 수염을 불에 그슬리기 전에 뒤로
끌어당겼다.
"마법부에서 또 다른 법령을 발표했어요. 그 법령에 따라서 퀴디치 팀도 모일
수 없게 되고..."
"어둠의 마법 방어술 비밀 모임도 할 수 없게 되었군?"
시리우스가 말을 잇자, 모두들 잠깐 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해리가 물었다.
"그런 모임을 가질 때에는 보다 신중하게 장소를 골랐어야지."
시리우스가 더욱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호그스 해드라니..."
"하지만 스리 브룸스틱스보다는 훨씬 더 나아요!"
헤르미온느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거긴 항상 사람들로 붐벼서..."
"하지만 그만큼 엿듣기가 더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지. 넌 아직 배울 게
많구나. 헤르미온느."
시리우스가 말했다.
"누가 우리 이야기를 엿들었나요?"
해리가 물었다.
"물론 먼던구스지."
아이들이 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시리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베일을 쓴 마녀가 먼던구스였단다."
"그 사람이 먼던구스였어요? 도대체 호그스 해드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죠?"
해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뭘 하고 있었을 것 같니?"
시리우스가 약간 짜증을 냈다.
"당연히 널 지켜보고 있었지."
"그럼 아직도 제가 미행을 당하고 있단 말인가요?"
해리가 화가 나서 물었다.
"그래, 맞아. 당연하지 않니, 안 그래? 주말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불법적인 모임이나 조직하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전혀 화가 나거나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듯이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덩이 우리를 아는 척하지 않았죠?"
론이 약간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덩은 20년 전에 호그스 해드에서 출입 금지를 당한 적이 있단다. 그리고 그
술집 주인은 아주 기억력이 좋거든. 무디가 가지고 있던 여벌의 투명 망토는
스터지스가 체포될 때, 잃어버렸어. 그래서 요즘에 덩은 주로 마녀로 변장하고
다니지. 그건 그렇고... 론, 나는 네 어머니의 전갈을 너에게 꼭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아, 그래요?"
론의 목소리가 약간 초조하게 들렸다.
"어머니 말씀이, 네가 불법적인 어둠의 마법 방어술 비밀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그 어떤 이유 하에서도 안 된다고 하셨다. 너는 틀림없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장래를 망치게 될 거라고 하셨어. 자신을 방어할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은 나중에 얼마든지 있고, 지금 당장은 그런 문제를 걱정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게 네 어머니의 생각이시다. 또한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게도 이 모임을
계속하지 말라고 충고하셨다. 몰론 그녀가 너희 두 사람에 대해서 아무 권리도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부디 너희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고 하셨다. 그분은 이 모든 말을 편지로 써서 보내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부엉이가 가로채이면 너희들 모두가 진짜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될까 봐
그럴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밤 임무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직접
이 말을 할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하셨다."
"무슨 임무죠?"
론이 재빨리 물었다.
"너는 신경 쓸 것 없어. 그저 기사단 일이란다."
시리우스가 말했다.
"어쨌든 이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부디 어머님께 내가 분명히
전했다고 말하렴. 솔직히 그다지 날 미더워하시는 것 같지 않아서 말이야."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동안 크룩생크가 야옹 하고 울면서 앞발로
시리우스의 머리를 붙잡으려고 애를 썼다. 한편 론은 깔개에 난 구멍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럼 아저씨도 저에게 방어술 모임에 끼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으세요?"
마침내 론이 중얼거렸다.
"나? 물론 아니지!"
시리우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주 훌륭한 계획이라고 생각하는걸!"
"정말이세요?"
갑자기 해리는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물론이지! 너는 너희 아버지와 내가 엄브릿지 같은 늙은 노파에게 명령을
받으며 가만히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시리우스가 말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에는 항상 저더러 몸조심하고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작년에는 호그와트 내부의 누군가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었잖니!"
시리우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호그와트 밖에 있는 누군가가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그러니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방어하는 법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아주 훌륭한 계획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구나!"
"그러다가 만약 퇴학이라도 당하게 되면요?"
헤르미온느가 야릇한 표정으로 물었다.
"헤르미온느, 이건 전부 네 생각이었어!"
해리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그녀를 뻔히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알아. 난 다만 시리우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할 뿐이야."
헤르미온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무 대책도 없이 학교 안에 가만히 죽치고 있느니, 퇴학을 당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되는 편이 낫지."
시리우스가 대답했다.
"거봐, 들었지? 들었지?"
해리와 론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래, 이 모임을 어떻게 조직할 생각이니? 어디서 모일 거지?"
"지금 그게 좀 문제예요. 어디서 모여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집은 어떨까?"
시리우스가 제안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이에요!"
론이 신이 나서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세 사람은 일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심지어 시리우스의 머리까지도
불길 속에서 옆으로 돌아갔다.
"아저씨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겨우 친구 네 명이서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 집에 모였잖아요. 게다가 네 명 모두 동물로 변신할 수도 있었고요. 아마
필요한 경우에는 투명 망토 하나에 네 명 모두가 몸을 숨길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린 스물여덟 명이나 되고, 애니마구스는 한 명도 없어요. 게다가
우리가 다 뒤집어쓰려면 투명 망토가 아니라, 투명 천막이 필요할 거예요."
"맞는 말이다."
시리우스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어딘가 적당한 곳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 옛날에는 4층 복도에 있는
커다란 거울 뒤로 꽤 넓은 비밀 통로가 있었는데... 거기라면 주문 연습을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을거야."
"프레드와 조지가 그러는데, 거기도 막혔대요."
해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시리우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내가 좀더 생각을 해보고 다음에 다시..."
그 순간 시리우스가 말을 멈추었다. 갑자기 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나타나면서 팽팽하게 긴장했다. 그는 옆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벽난로의 단단한
벽돌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리우스?"
해리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하지만 시리우스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해리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불 속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돌아섰다.
"도대체 왜 그러는...?"
바로 그때 헤르미온느가 공포에 찬 신음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불 속을 향하고 있었다.
불길 속에서 손 하나가 나타나더니,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허공을
휘젓고 있었던 것이다. 뭉툭하고 짤막한 그 손가락에는 유행이 지난 보기 흉한
반지가 잔뜩 끼워져 있었다.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황급히 달아났다. 남학생 침실로 가는 문 앞에서
해리는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엄브릿지의 손은 아직도 불길 속에서 뭔가를
움켜쥐려는 동작을 하고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시리우스의 머리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든 잡으려고 안달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