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루나 러브굿
해리는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그의 부모님이 한마디 말도 없이 손을
흔들며 꿈속을 들락날락했고, 머리에 왕관을 쓴 론과 헤르미온느가
지켜보는 가운데 위즐리 부인이 크리처의 시체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편 해리 자신은 또다시 어두운 복도를 헤매고 다니다가 굳게 잠긴
문 앞에서 길이 막혀 어쩔 줄 몰랐다. 순간 그는 이마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눈을 번쩍 떴다. 이미 옷을 갈아입은 론이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서두르는 게 좋겠어. 엄마가 펄쩍펄쩍 뛰고 계셔. 이러다가 기차를
놓치겠다고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셔."
과연 온 집이 떠나갈 듯이 시끌벅적했다. 해리가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으면서 들은 바에 따르면, 프레드와 조지가 트렁크를 아래층까지
들고 가는 수고를 덜겠다는 심사로 가방에 마법을 걸어서 날아가게
하다가, 지니를 쓰러뜨려서 1층 복도가지 굴러 떨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랙 부인과 위즐리 부인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목청껏 비명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이 한심한 녀석들아, 하마터면 지니가 크게 다칠 뻔했잖아!"
"이 더러운 잡종들! 감히 우리 조상들의 집을 더럽히다니!"
해리가 막 신발을 신고 있을 때, 헤르미온느가 정신없는 표정으로
황급히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의 어깨에는 헤드위그가 앉아
있었고, 품 안에는 크룩생크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방금 헤드위그를 돌려보내셨어."
부엉이는 날개를 퍼덕이며 충실하게 자신의 새장 꼭대기에 날아가
앉았다.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니?"
"거의 다 됐어. 지니는 괜찮아?" 해리가 안경을 쓰면서 물었다.
"위즐리 아줌마가 반창고를 붙여 주셨어. 하지만 이번에는 매드아이가
말썽이야. 스터지스 포드모어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떠날 수 없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경호할 사람이 없어서 안 된대."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경호원이라고? 우리가 킹스 크로스 역까지 가는 데 경호원이 필요하단
말이야?"
" '너'가 킹스 크로스 역까지 가는 데 경호원이 필요한 거야."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말을 정정했다.
"왜 그러지? 볼드모트는 납작 엎드려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 같던데.
혹시 그자가 쓰레기통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나를 끌고 들어가기라도 할까
봐 그런 거니?"
해리가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나도 몰라. 매드아이의 말이 그렇다는 거야."
헤르미온느는 초조한 듯이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나지 않으면, 분명히 기차를 놓칠 텐데."
"너희 모두 지금 당장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겠지!"
위즐리 부인이 꽥 소리를 질렀다. 헤르미온느는 불에 덴 듯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방을 뛰어나갔다. 해리는 헤드위그를 붙잡아서 우악스럽게
새장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트렁크를 질질 끌며 헤르미온느의 뒤를
쫓아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블랙 부인의 초상화는 분노에 가득 차서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지만,
아무도 초상화의 커튼을 닫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일단 닫는다고 해도,
현관 복도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다시 깨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해리, 너는 나와 통스에 함께 가야 한다." 위즐리 부인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 사이로 고함을 질렀다.
"잡종! 쓰레기! 더러운 놈들!"
"트렁크와 부엉이는 두고 가거라. 짐은 앨러스터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
오, 시리우스, 덤블도어 교수가 절대로 안 된다고 그랬는데!"
해리가 현관 복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수많은 트렁크들을
뛰어넘으며 위즐리 부인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커다란 콤처럼 보이는
검은 개가 해리 옆으로 쓱 다가왔다.
"오, 정말로... 이젠 당신이 책임져요!"
위즐리 부인이 체념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희끄무레한 9월의 햇빛 속으로 걸어 나갔다. 해리와 개는 그 뒤를
따라갔다. 문이 쾅 닫히는 순간, 블랙 부인의 비명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어졌다.
"퉁스는 어디 있나요?"
해리가 12번지의 돌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돌계단은 그들이 보도에 내려서자마자, 스르르 사라졌다.
"바로 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위즐리 부인이 해리와 나란히 걸어가는 검은개를 힐끗 바라보더니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한 늙은 부인의 모퉁이에 서서 그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녀는
빠글빠글하게 파마한 회색 머리에 돼지고기 파이처럼 생긴 보라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안녕, 해리." 부인이 눈을 찡긋하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 시계를
살펴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좀 서두르는 게 좋겠죠, 몰리?"
"그래요. 나도 알아요."
위즐리 부인이 신음 소리를 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매드아이가 스터지스를 기다리라고 해서 말이죠.... 아서가
예전처럼 마법부에서 차를 가지고 나올 수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하지만 요즘엔 퍼지가 이 양반에게는 다 쓴 잉크병 하나도 절대 빌려 주지
않는다는군요. 머글들은 도대체 마법도 쓰지 않고 어떻게 여행을 다니는지
몰라...."
하지만 커다란 검은개는 컹컹 짖어 대다가 그들 주위를 겅중겅중
뛰어다니기도 하고 비둘기를 와락 덮치거나 자기 꼬리를 쫓아 빙빙 도는
등,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해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시리우스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 집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위즐리
부인은 거의 페투니아 이모만큼이나 부루퉁하게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걸어서 킹스 크로스 역까지 가는 데에는 이십 분이 걸렸다. 그때까지
시리우스가 해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고양이 두 마리를 겁주어 쫓아낸
것 의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역 안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의 개찰구
옆을 태연하게 어슬렁거리며, 주위가 한산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한 명씩 차례로 허리를 숙이고 9와 4분의 3번 승강장으로 손쉽게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호그와트행 급행열차가 시커먼 연기를 토해 내며 서
있었다. 승강장은 떠나는 학생들과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해리는 이 반가운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영혼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돌아가는구나....
"다른 아이들도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하는데."
위즐리 부인이 승강장 위를 가로지르는 철제 아치를 바라보며 걱정했다.
새로 도착한 아이들은 그 아치를 통해 들어올 것이다.
"멋진 개로구나, 해리!"
여러 가닥으로 머리를 땋아서 늘어뜨린 키 큰 소년이 말을 걸었다.
"고마워, 리." 해리가 미소를 지었다.
시리우스는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아, 다행이야. 저기 앨러스터가 짐을 가지고 오는군. 어디보자...." 위즐리
부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짝짝이 눈 위로 짐꾼 모자를 푹 눌러쓴 무디가 그들의 가방을 가득 실은
손수레를 밀면서 절뚝절뚝 철교 밑을 지나고 있었다.
"모두 무사하오."
무디가 위즐리 부인과 퉁스에게 속삭였다.
"우릴 쫓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소...."
곧이어 위즐리 씨가 론과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승강장에 나타났다.
그들이 무디의 손수레에서 짐을 내리자마자, 루핀과 함께 프레드와 조지,
지니도 등장했다.
"아무 일 없었지?"
무디가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혀요."
루핀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스터지스에 대해 덤블도어에게 보고해야겠어. 이번 주에만
나타나지 않은 게 벌써 두 번째야. 먼던구스만큼이나 점점 믿을 수 없게
되어 가는군."
무디가 투덜거렸다.
"자, 그럼 조심해라."
루핀이 아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해리와 악수를 하면서 어깨를 툭 때렸다.
"해리, 너도 조심해라."
"그래, 항상 머리를 숙이고 눈을 똑바로 뜨고 다니도록 해."
무디도 해리와 악수를 하며 말했다.
"그리고 반드시 명심해라. 너희 모두 편지를 쓸 때 항상 조심하도록 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차라리 편지에 아무것도 쓰지 말거라."
"모두들 만나서 반가웠어. 곧 다시 보게 될거야."
퉁스가 헤르미온느와 지니를 껴안으며 말했다.
출발을 알리는 기적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까지 승강장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서둘러 기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어서, 어서 서둘러라."
위즐리 부인이 닥치는 대로 이 아이 저 아이를 한 번씩 껴안았다 놓아
주며 재촉했다. 해리는 특히 두 번이나 껴안았다.
"편지 써라. 말썽 피우지 말고... 뭔가 빠뜨린 게 있으면 우리가 보내
주마.... 자, 어서 기차에 올라타거라...."
그때 커다란 검은개가 뒷발로 일어서더니 잠시 해리의 어깨위에 앞발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위즐리 부인은 재빨리 해리를 기차 문 쪽으로 끌고
가면서 쏘아붙였다.
"제발 부탁인데 좀 더 개처럼 굴도록 해요, 시리우스!"
"안녕히 계세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해리는 열린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소리쳤다. 론과 헤르미온느, 지니도 그의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퉁스와
루핀, 무디, 위즐리 씨 부부의 모습은 순식간에 작아졌다. 하지만
검은개만은 꼬리를 흔들면서 기차 창문을 향해 겅중겅중 뛰고 있었다.
승강장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사람들이 기차를 쫓아가는 개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마침내 기차가 모퉁이를 돌자, 시리우스 또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리우스가 우리를 쫓아와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아저씨는 몇 달 동안이나 햇빛을 못
봤잖아. 불쌍하기도 하지."
론이 시리우스를 두둔했다.
"자, 자, 하루 종일 여기 서서 수다나 떨고 있을 수는 없지."
프레드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우리는 리와 의논할 게 있어서 말이야. 나중에 보자."
기차는 점점 더 속력을 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집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그들이 서 있는 발밑이 흔들렸다.
"그럼 우리는 어디 빈칸이 있는지 찾아볼까? 해리가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난처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저...."
론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론과 나는 반장 칸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자꾸만 해리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왼손 손톱들을 흥미로운
듯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척했다.
"아, 그렇구나 알았어. 괜찮아."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 거기 있을 필요는 없을거야."
헤르미온느가 황급히 덧붙였다.
"우리가 받은 편지에 보면, 남학생 회장과 여학생 회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받은 다음, 이따금씩 복도를 돌면서 순찰을 하게 될 거래."
"알았어. 그래, 그-그럼 나중에 보자."
해리가 말했다.
"물론이지, 솔직히 저기에 꼭 가야만 한다니 정말 괴로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난 별로 즐겁지 않아. 정말이야. 난 퍼시와는 달라."
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힐끗힐끗 해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건 나도 알아."
해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와 론이 크룩생크와 새장
안에 든 피그위존을 들고 가방을 끌며 기차 끝에 있는 기관실로 가
버리자, 왠지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어서 가자. 조금 서두르면, 두 사람 자리도 맡아 놓을 수 있을지 몰라."
지니가 그를 재촉했다.
"맞아."
해리는 한쪽 손에 헤드위그의 새장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그들은 비좁은 복도를 빠져나가면서 유리창 너머로 객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객실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해리는 많은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몇몇 사람들은 옆에 앉은 친구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그를
손가락질하기도 했다.
열차의 다섯 개 칸에서 계속 똑같은 일을 당하고 난 후에, 해리는
비로소 <예언자 일보>가 여름방학 내내 그가 얼마나 거짓말쟁이
허풍선이인가를 떠들어 댄 사실이 떠올랐다. 그는 지금 자기를 쳐다보며
수군거리고 있는 저 사람들이 과연 그 기사를 다 믿고 있을지 궁금했다.
제일 마지막 칸에서 그들은 해리의 그리핀도르 5학년 동급생인 네발
롱바텀을 만났다. 네빌은 한 손으로 버둥거리는 두꺼비 트레버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끌고 오느라, 둥그런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렸다.
"안녕, 해리, 안녕, 지니... 모두 다 사람들이 꽉 찼어.... 도대체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네...."
네빌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니가 네빌을 옆으로 밀치면서 그의 등 뒤에 있는 객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기 빈자리가 있잖아. 이 객실에는 루나 러브굿밖에 없는데-"
네빌이 다른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둥 하면서 우물우물 변명을
늘어놓았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 애는 괜찮아." 지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문을 옆으로 밀면서 트렁크를 객실 안에 집어넣었다. 해리와
네빌도 따라 들어갔다.
"안녕, 루나. 우리가 여기 앉아도 괜찮겠지?"
지니가 인사를 하자, 창가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마구 헝클어진데다가 지저분한 금발을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썹은 아주 희미했고 불룩 튀어나온 두 눈은 언제나 깜짝 놀란
듯이 보였다. 해리는 왜 네빌이 이 칸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지 금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 같은 인상을 풍겼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안전을 위해 지팡이를 왼쪽 귀 뒤에 꽂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버터 맥주병 뚜껑으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거나
잡지를 거꾸로 읽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네빌을 한 번 쓱 훑어보고 해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지니가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와 네빌은 화물 선반에 트렁크 세 개와 헤드위그의 새장을 올려놓은
다음 자리에 앉았다. 루나라고 하는 그 여학생은 거꾸로 들고 있는 잡지
너머로 그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 잡지는 <이러쿵 저러쿵>이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처럼 눈을 깜박일 필요조차 없는 것 같았다. 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해리는
자리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하며 몹시 후회했다.
"여름방학은 잘 지냈니, 루나?"
지니가 물었다.
"응"
루나는 해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꿈꾸듯이 대답했다.
"그래, 꽤 재미있었어, 그런데 네가 바로 해리 포터구나."
"내가 누군지는 나도 알아."
해리의 대답을 듣고 네빌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루나는 창백한
눈을 네빌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너는 누군지 모르겠어."
"난 아무도 아니야."
네빌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지니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루나 러브굿, 이쪽은 네빌 롱카텀이야. 루나는 나와 같은 학년이고
레번클로 학생이야."
"측량할 수 없이 뛰어난 재치는 가장 귀중한 보물이다."
루나가 노래를 부르듯이 경구를 읊었다.
그녀는 거꾸로 든 잡지를 높이 들어서 얼굴을 완전히 가리더니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해리와 네빌은 눈을 치켜뜨며 서로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지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았다.
기차는 덜컹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지금은 탁 트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상한 날씨였다. 어느 순간에는 객실로
가득히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다가, 다음 순간에는 음울한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내 생일날 뭘 받았는지 알아?"
네빌이 물었다.
"또 다른 리멤브럴?"
해리는 네빌의 할머니가 그의 아둔한 기억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그에게 보냈던 구슬처럼 생긴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니야, 물론 하나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난번 것은 오래 전에
잃어버렸거든.... 자, 이걸 좀 봐."
네빌은 트레버를 붙잡고 있지 않은 손을 가방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잠시 이리저리 뒤적거리더니 화분에 든 작은 회색 선인장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다만 그것은 가시 대신 부스럼 딱지 같은 것으로 뒤덮여
있었다.
"밈뷸러스 밈블토니아야."
네빌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해리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그것은 마치 병든
내장처럼 보기에 흉측하고 기분 나빴다.
"이건 아주 희귀한 거야."
네빌이 환하게 웃었다.
"어쩌면 호그와트의 온실에도 이런 건 없을 거야. 하루빨리 스프라우트
교수님께 이걸 보여 드리고 싶어 죽겠어. 우리 큰 삼촌인 알지가
아시리아에서 구해 주셨어. 과연 이걸 기를 수 있을지 한번 알아볼
생각이야."
네빌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약초학이라는 사실은 해리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 발육이 멈춘 작은 식물을 가지고 뭘 하고
싶다는 건지, 해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음- 이게 뭘 할 수 있니?"
해리가 물었다.
"엄청 많은 걸 할 수 있지!"
네빌이 자랑스럽게 소리쳤다.
"이 식물은 굉장히 놀라운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거든, 잠깐 트레버 좀
붙잡고 있어..."
네빌은 해리의 무릎 위에 두꺼비를 내려놓고는 가방 안에서 깃펜을
꺼냈다. 거꾸로 든 잡지 위로 루나의 툭 튀어나온 눈이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더니, 네빌이 하는 일을 열심히 지켜보았다. 네빌은 밈뷸러스
밈블토니아를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 다음, 이를 악물고 그의 목표지점을
정한 후 깃펜 끝으로 그 식물을 콕 찔렀다.
그러자 부스럼마다 일제히 액체를 뿜어냈다. 냄새가 지독한, 걸죽하고
끈끈한 암녹색 액체였다. 천장과 창문에까지 튄 액체는 루나 러브굿의
잡지 위에도 후두둑 떨어졌다. 그나마 지니는 재빨리 두 팔로 얼굴을 가린
덕분에 그저 끈적끈적한 녹색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쓴 꼴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트레버를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붙잡고 있어야만 했던 해리는
온 얼굴에 고스란히 맞고 말았다. 그 액체는 썩은 거름 냄새를 풍겼다.
네빌 역시 얼굴과 온몸에 액체를 홀딱 뒤집어쓴 채, 눈에 묻은 것을
털어 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미-미안해. 사실 나도 이번에 처음 해본 거라서... 이게 그렇게 빠른
줄은 미처 몰랐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냄새는 고약하지만 독은 없으니까
말이야."
해리가 바닥에 침을 탁 뱉자, 네빌이 안절부절못하면서 변명했다.
바로 그때 객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오... 안녕, 해리."
약간 긴장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내가 별로 안 좋은 때 온 모양이지?"
해리는 트레버를 붙잡지 않은 손으로 안경알을 문질렀다. 반짝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아름다운 소녀가 문 앞에 서서 그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래번클로 퀴디치 팀의 수색군인 초 챙이었다.
"아... 안녕."
해리가 어쩔 줄 모르며 대답했다.
"음... 그냥 인사나 할까 해서 찾아왔어... 그럼 안녕."
초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문을 닫더니 그냥 가 버렸다. 해리는 의자
뒤로 털썩 몸을 기대면서 신음 소리를 냈다. 멋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서
막 자기가 한 농담에 모두들 고개를 젖히고 깔깔 웃는 그런 장명을 보여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빌이나 루나 러브굿 같은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서 손에는 두꺼비를 움켜쥔 채, 악취수액을 뒤집어쓴 몰골은 정말이지
절대로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지니가 쾌활하게 말했다.
"이거 봐. 이런 건 간단하게 없앨 수 있어."
지니가 지팡이를 꺼내 들고 말했다.
"스코지파이!"
순식간에 악취수액이 사라졌다.
"미안해."
네빌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또다시 사과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먹을 것을 파는 수레가 이미 한 번 지나갔다. 해리와 지니, 네빌이 호박
파이를 끝장내고 한창 개구리 초콜릿 카드를 맞바꾸느라 정신을 팔고 있을
때, 객실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크룩생크와 새장 안에서 날카롭게
울어대는 피그위존을 데리고 들어왔다.
"배고파 죽겠어."
론은 헤드위그 옆에 피그위존을 올려놓더니, 해리의 손에서 개구리
초콜릿을 빼앗듯 집어 들고는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포장지를
벗기고 개구리 머리를 한 입 깨물었다. 그리고는 너무나 피곤하고 힘든
오전을 보냈다는 듯이 두 눈을 감은 채, 등을 비스듬히 기댔다.
"각 기숙사마다 5학년 반장이 두 명씩이야." 헤르미온느는 몹시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남학생과 여학생 한 명씩
뽑았어."
"슬리데린의 반장이 누군지 알아?"
론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말포이겠지."
그의 최악의 두려움이 확인되는 순간임을 확신하면서, 해리가 즉시
대답했다.
"바로 맞혔어."
론은 너머지 개구리를 몽땅 입에 쑤셔 넣더니 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완벽한 한 쌍은 팬시 파킨슨이야." 헤르미온느가 가시
돋친 어조로 말했다. "머리가 깨진 트롤보다도 더 멍청한 애가 어떻게
반장이 됐는지...."
"후플푸프는 누가 반장이 됐어?"
해리가 물었다.
"어니 맥밀란과 한나 아보트."
론이 목 멘 목소리로 말했다.
"레번클로의 반장은 안토니 콜드스틴과 파드마 패틸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너는 파드마 패틸이랑 크리스마스 무도회에 갔었지."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루나 러브굿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러쿵 저러쿵>너머로 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론은 입 안 가득 들어있던 개구리 초콜릿을 꿀꺽 삼켰다.
"그래, 나도 알아."
론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패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루나가 론에게 알려 주었다.
"네가 그 애랑 춤을 추지 않았기 떄문에, 패틸은 자기가 홀대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든. 나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루나가 잠깐 생각한 끝에 한마디 덧붙였다.
"난 별로 춤추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루나는 다시 <이러쿵 저러쿵>뒤로 얼굴을 감추었다. 론은 몇 초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잡지 위를 바라보고 있더니, 해명해 달라는 듯
지니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하지만 지니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론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잠깐 생각을
하다가 자신의 시계를 살펴보았다.
"우리 열차 복도를 자주 순찰해야만 해."
론이 해리와 네빌에게 말했다.
"만약 아이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벌을 줄 수도 있어. 크레이브와
고일이 어서 빨리 내 손에 걸려야만 하는데...."
"론, 너의 지위를 남용해서는 안 돼!"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질책했다.
"그래, 맞아. 말포이라면 자신의 지위를 절대로 남용하지 않겠지."
론이 빈정거렸다.
"그래서 말포이와 똑같은 수준으로 놀겠다는 거야?"
"아니. 그 녀석이 내 친구들을 건드리기 전에 내가 그 녀석의 친구들을
확실히 손봐 주겠다는 거지."
"제발, 론-"
"고일에게 베껴 쓰기를 시키면 괴로워서 죽으려고 할 거야. 글 쓰는 걸
죽기보다도 싫어하니까 말이야."
론이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러더니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허공에 대고 글씨 쓰는 흉내를 냈다.
"나는... 원숭이... 엉덩이... 처럼... 보이지... 말아야 한다...."
론은 고일의 낮고 굵은 목소리를 따라했다.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 중에서도 루나 러브굿만큼 신나게
웃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그녀의 요란한 웃음소리 때문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난 헤드위그는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퍼덕거렸고,
크룩생크는 야옹 소리를 내며 화물 선반 위로 냉큼 올라갔다. 루나는 손에
들고 있던 잡지가 무릎을 스치며 바닥에 떨어져도 모를 정도로, 요란하게
웃어댔다.
"정말 웃긴다!"
루나의 툭 튀어나온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루나는 숨을 헐떡이며
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 예기치 못한 반응에 너무나 당황한 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른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루나
러브굿의 그칠 줄 모르는 웃음과 론의 표정을 보고 또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이제 루나는 옆구리를 움켜쥐고 몸을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너 놀리는 거니?"
론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원숭이... 엉덩이!"
루나는 배를 쥔 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다른 모든 아이들이
루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마루에 떨어진 잡지를 힐끗 쳐다본 해리는
재빨리 그것을 집어 들었다. 루나가 잡지를 거꾸로 들고 있을 때에는
표지에 실린 그림이 무엇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코넬리우스
퍼지의 모습은 어설프게 풍자한 만화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해리는
머리에 쓴 라임 색깔의 초록색 모자를 보고 겨우 그를 알아차렸다. 퍼지는
한 손에 황금이 가득 든 자루를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도깨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만화 위에는 '그린고트를 손에 넣기 위해 퍼지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제목 아래에는 잡지에 실린 기사의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퀴디치 리그의 부정부패: 토네이도즈 팀 승리의 비결
고대 룬 문자의 신비가 드러나다
시리우스 블랙: 악당인가 희생자인가?
"내가 이 잡지 잠깐 좀 봐도 되겠니?"
해리가 루나에게 부탁했다. 루나는 여전히 숨이 막히도록 웃으면서
론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해리는 잡지를 펴고 목차를 살펴보았다. 그는 지금까지 킹슬리가
시리우스에게 전해 주라면서 위즐리 씨에게 주었던 잡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도 그 잡지가 <이러쿵 저러쿵>이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해리는 페이지를 넘기며 열심히 관련 기사를 찾았다.
기사에도 역시 어설픈 풍자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만화 위에 제목이
없었다면, 해리는 이게 시리우스라고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리우스는
지팡이를 꺼내 든 채, 뼈다귀 더미 위에 서 있었다. 기사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시리우스-과연 알려진 것처럼 악당인가?
악명 높은 대량 학살자인가 아니면 결백한 천재 가수인가?
해리는 혹시 자신이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의심하면서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리우스가 천재 가수가 되었단
말인가?
지난 14년 동안 시리우스 블랙은 열두 명의 무고한 머글과 한 명의
마법사를 죽인 살인범으로 여겨져 왔다. 2년 전 아즈카반의 감옥에서
대담하게 도망친 블랙을 잡기 위해 마법부는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과연 그가 붙잡혀서 디멘터들 손에 다시
넘겨질 만한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최근에 새로 밝혀진 놀랄 만한 증거들에 따르면 시리우스 블랙은
아즈카반에 투옥될 만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리틀
노턴, 아칸시아 18번지에 살고 있는 도리스 퍼키스에 따르면, 블랙은 살인
현장이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시리우스 블랙이 가짜 이름이란
사실이에요."
퍼키스 부인은 말한다.
"사람들이 시리우스 블랙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스터비
보드맨이라는, 인기 그룹 홉고블린스의 리드 싱어예요. 15년 전 리틀 노턴
처칠 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순무가 귀에 박힌 후로는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죠. 나는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봤어요.
스터비는 그 범죄를 저지를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바로 문제의 그날
밤에 그 남자는 우연히도 저와 촛불을 밝히고 낭만적인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저는 마법부에 편지를 보냈어요. 언젠가는
마법부가 소위 시리우스라고 불리는 스터비에게 무죄를 선고해 줄 거라고
믿어요."
해리는 기사를 다 읽은 후에도 어안이 벙벙해서 잡지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아마 거짓말일 거야. 잡지들도 종종 장난 기사를 쓰곤
하잖아. 해리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몇 페이지를 뒤로 넘겨보니,
이번에는 퍼지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마법부의 장관 코넬리우스 퍼지는, 5년 전 마법부 장관으로
선출되었을 때 마법 은행인 그린고트의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그 어떤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또한 우리의 황금을
지키는 수호자와 '평화롭게 연합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언제나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마법부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퍼지의 가장 간절한 소망은
도깨비들의 황금 광산의 지배권을 차지하는 것이며, 필요하다면 무력을
행사하는 일조차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닙니다."
마법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퍼지의 친구들은 그를 코넬리우스 도깨비 분쇄기 퍼지라고 부르죠.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되는 자리에서 퍼지가 하는 말을 한번
들어 봐야 해요. 오, 그는 항상 자기가 도깨비들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자랑삼아 떠들어 대죠. 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하고 건물 밖으로 떨어뜨려
죽이기도 하고 독살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그들을 요리해서 파이를
만들기도 하고..."
해리는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퍼지가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인지 모른다. 하지만 도깨비를 요리해서 파이를 만들라는 명령까지
했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몇 페이지를 더 넘기자, 터트실
토네이도즈 팀이 협박과 불법적인 빗자루를 조작, 고문 등의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퀴디치 리그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비방성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 밖에도 클린스윕 6을 타고 달나라까지 날아갔다가. 그 증거로 달나라
개구리를 한 자루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한 마법사와의 인터뷰 기사, 고대
룬 문자에 대한 기사 등이 실려 있었다. 그 기사를 보자, 왜 루나가
<이러쿵 저러쿵>을 거꾸로 들고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기사에 룬 문자를
거꾸로 뒤집으면 적의 귀를 귤로 만들 수 있는 주문이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쿵 저러쿵>에 실린 다른 기사들의 내용에 비하면, 시리우스가
흡고블린스 그룹의 리드 싱어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기사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뭐 괜찮은 기사라도 있니?"
잡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해리에게 론이 물었다.
"그럴 리가 없지."
해리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헤르미온느가 가차없이 딱 잘라서 말했다.
"<이러쿵 저러쿵>은 한마디로 쓰레기야.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인걸."
"미안하지만 우리 아빠가 이 잡지사의 편집장이야."
꿈꾸듯이 몽롱하던 루나의 목소리가 갑자기 달라졌다.
"이-이런... 그래, 재미있는 점도 있어... 정말이야. 그러니까 꽤...."
헤르미온느가 어쩔 줄 모르고 말을 더듬었다.
"그만 돌려줘"
루나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해리의 손에서 잡지를 싹 빼앗으며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57페이지를 찾아서 잡지를 거꾸로
들고 얼굴을 가렸다. 바로 그때 세 번째로 객실 문이 열렸다.
해리는 고개를 돌렸다.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졸개인
크레이브와 고일을 양쪽에 거느린 채 심술궂은 미소를 짓고 있는 드레이코
말포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여전히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이야?"
말포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해리가 먼저 따지듯이 물었다.
"포터, 예의를 지켜, 그렇지 않으면 방과 후에 나머지 공부를 시킬 수도
있어."
말포이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그의 매끄러운 금발과 뾰족한 턱은
아버지와 똑같았다.
"너도 알겠지만, 난 너와는 달리 반장이 되었거든. 그건 무슨 뜻이냐
하면, 난 너와 달리 벌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래. 하지만 넌 나와 달리 바보 멍청이야. 그러니까 우릴 그냥 내버려
두고 당장 여기서 꺼져."
론과 헤르미온느, 지니, 네빌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말포이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포터, 어디 한번 말해 보시지? 위즐리한테 뒤처지니까 기분이 어때?"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입 닥쳐, 말포이"
헤르미온느가 발칵 화를 냈다.
"내가 신경을 거슬리게 한 모양이군."
말포이가 능글맞게 웃었다.
"어쨌든 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포터. 네놈이 조금이라도 금 밖으로
나오면 사냥개처럼 끝까지 네 뒤를 쫓아다닐 테니까."
"당장 나가!"
헤르미온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포이는 마지막으로 해리를 사납게 노려보더니 낄낄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크레이브와 고일도 그 뒤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가 버렸다.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객실 문을 쾅 닫은 후에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녀 역시 말포이가 말한 것이 마음에 걸려 기운이 빠진 것을 알았다.
"우리한테 개구리 초콜릿 하나 더 던져."
눈치 없는 론이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빌과 루나 앞에서는 마음놓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또다시
헤르미온느와 걱정스런 시선을 주고받은 해리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역까지 따라온 것을 그저 재미있는 일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굉장히 무모한 행동처럼 여겨졌다. 설사 그
당장은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말이다.
헤르미온느가 옳았어... 시리우스는 오지 말아야 했어. 혹시 말포이 씨가
검은개를 알아보고 드레이코에게 무슨 말을 한 건 아닐까? 그래서 위즐리
부부와 루핀, 퉁스, 무디가 시리우스의 은신처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라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말포이가
'사냥개처럼'이란 말을 쓴 것이 단지 우연일까?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그들은 북쪽으로, 북쪽으로 여행을
계속했다. 비가 내키지 않은 듯 간간이 창문을 적시기도 하고, 잠깐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또다시 구름으로 뒤덮였다. 어둠이 깔리자, 열차 안에서
등불이 켜졌다. 루나는 <이러쿵 저러쿵>을 돌돌 말아서 조심스럽게 가방
안에 집어넣고, 이제는 객실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해리는 열차 창문에 이마를 댄 채, 호그와트의 작은 불빛이라도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캄캄한 밤에 비가 흘러내리는
창문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는 게 좋겠다."
마침내 헤르미온느가 제안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정성껏 가슴에 반장
배지를 달았다. 해리는 까맣게 변한 창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는 론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기차가 속력을 늦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익숙한 소음이
기차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모든 학생들이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앞
다투어 자신의 짐과 애완동물들을 내리느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것이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이 모든 일들을 감독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해리와
다른 친구들에게 크룩생크와 피그위존을 맡긴 채, 또다시 객실을 떠났다.
"괜찮으면 그 부엉이는 내가 들어 줄게."
루나가 피그위존을 향해 손을 내밀며 해리에게 제안했다. 네빌은
안주머니 속에 트레버를 조심조심 집어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음-고마워."
해리가 피그위존의 새장을 루나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헤드위그를
좀더 안전하게 팔 위에 앉혔다.
차가운 밤공기를 느끼며 객실에서 나오자마자, 그들은 복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 틈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리고 문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해리는
호수까지 이어지는 오솔길 양쪽에 서 있는 사과나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승강장에 내려선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5학년들은 이쪽으로...
5학년들은...'이라고 소리치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려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빗나갔다. 그 대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쌀쌀맞은 여자의 목소리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5학년 학생들은 이쪽으로 와서 줄을 서요! 1학년들은 전부 나에게
오세요!"
등불 하나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해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 불빛 아래로
그루블리 프랭크의 툭 튀어나온 턱과 바싹 자른 머리가 보였다. 그녀는
작년에 잠깐 동안 해그리드 대신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맡았던
마녀였다.
"해그리드는 어디 있지?"
해리가 큰 소리로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어쨌든 여기서 비키는 게 좋겠어. 문을 가로 막고
있잖아."
지니가 말했다.
"오, 그래..."
해리와 지니는 승강장을 따라서 걷다가 역 밖으로 나오는 동안 서로
헤어지고 말았다. 해리는 수많은 학생들 틈에 이리저리 떠밀리면서도,
잠깐이라도 해그리드의 모습을 보려고 어둠 속을 열심히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해그리드가 여기 있을거야. 해리는 그 기대를 한 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해그리드를 다시 만나는 것이야말로, 해리가 손꼽아 고대하던 일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떠났을 리가 없어. 해리는 다른 많은 학생들과 함께 좁은 통로를 따라
길 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혼자 생각했다. 감기에 걸렸거나 뭐 그랬겠지...
해리는 론이나 헤르미온느를 찾아보았다. 혹시 두 사람은 그루블리
프랭크 교수가 왜 다시 학교에 나타났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말 모두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혼자 호그스미드 역을 벗어나 비에 씻긴 어두운 도로로 걸어
나왔다.
그곳에는 수백 대의 말 없는 마차들이 서 있었다. 늘 그렇듯이 1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을 성까지 태우고 가려는 것이었다. 해리는 재빨리
마차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론과 헤르미온느를 찾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해리는 깜짝 놀랐다.
마차는 더 이상 말 없는 마차가 아니었다. 어떤 동물들이 마차에 연결된
채 사이사이에 서 있었다. 그 동물들에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말'이라고
밖에는 더 이상 적당한 호칭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파충류에
더 가까워 보였다.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고, 까만 가죽이
뼈에 착 달라붙어 있어서 모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머리는 용처럼
생겼는데, 눈동자가 없는 하얀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양족 어깨에는
날개가 돋아 있었다. 마치 거대한 박쥐의 날개처럼 보이는 검은 색의
커다란 가죽 날개였다.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조용히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왠지 음울하고 불길하게 보였다. 얼마든지 저절로 움직일 수 있는
마차에 왜 이런 끔찍한 말을 매어 놓았는지 해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피그는 어디 있어?"
해리의 등 뒤에서 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루나라는 여학생이 들고 갔어."
해리는 재빨리 돌아서서 론에게 해그리드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다.
"혹시 너는 알고 있니-?"
"해그리드가 어디 있는지 말이야? 나도 몰라."
론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드레이코 말포이가 크레이브와 고일, 팬시
파킨슨 등의 작은 무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약간 겁먹은 듯이
보이는 2학년 학생을 옆으로 떠밀고 마차에 올라탔다. 잠시 후에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며 사람들 틈에서 나타났다.
"말포이가 저기 뒤에 있는 1학년 학생에게 아주 못된 짓을 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실을 보고할 거야. 반장 배지를 단 지 채 삼 분도 안
됐는데, 말포이는 그 배지를 이용해서 예전보다 더 심하게 애들을 못살게
굴고 있어. 그런데 크룩생크는 어디 있지?"
"지니가 가지고 있어. 저기 있네..."
해리가 대답했다. 지니가 버둥거리는 크룩생크를 꼭 붙잡은 채, 사람들을
헤집고 나타났다.
"고마워."
헤르미온느가 고양이를 받아 들며 말했다.
'어서 가자. 마차가 모두 차기 전에 서둘러 타야지."
"난 아직 피그를 못 찾았어!"
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이미 가장 가까이 있는
빈 마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해리는 론 곁에 남았다.
"그런데 도대체 저게 뭐 같니?"
해리가 그 무시무시한 말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다른 학생들은
썰물처럼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뭐 말이야?"
'저 말들 말이야-"
바로 그때 루나가 피그위존의 새장을 가슴에 안고 나타났다. 그 작은
부엉이는 보통 때처럼 흥분해서 울고 있었다.
"여기 있어. 정말 귀여운 작은 부엉이야, 그렇지?"
루나가 말했다.
'어...그래...정말 그래."
론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어서 마차에 타자. 그런데 뭐라고 했니, 해리?"
"내 말은 도대체 저 말처럼 생긴 짐승이 뭐냐고?"
해리와 론, 루나는 이미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앉아 있는 마차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무슨 짐승 말이야?"
"저기 마차를 끌고 있는 저 말 같은 짐승 말이야!" 해리가 벌컥 짜증을
냈다.
이제 그들은 가장 가까운 마차로부터 불과 1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 말이 안 들려? 저걸 보라고!"
해리는 론의 팔을 붙잡고 그 날개 달린 말의 코앞까지 론을 바싹 끌고
갔다. 하지만 론은 한동안 멍하니 앞을 바라보더니 다시 해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나더러 뭘 보라는 거야?"
"바로 저기 저 사이를 보란 말이야! 마차에 매여 있는 마구말이야!
도대체 바로 네 코앞에 있는데 어째서-"
하지만 론은 여전히 통 영문이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해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네-네 눈에는 저게 안 보이니?"
'뭐가 안 보인다는 거지?"
"너는 뭐가 마차를 끌고 있는지 안 보인단 말이야?"
이번에는 론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해리, 너 괜찮니?"
"응... 그래."
해리는 머릿속이 몹시 혼란스러워졌다. 그 말은 바로 그이 눈앞에 서
있었다. 기차역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속에서 빛을 발하며,
차가운 밤공기 때문에 콧구멍으로는 하얀 김을 내뿜으며 서 있었던
것이다. 만약 론이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만약 그렇다면 이건 너무
썰렁한 농담이었다-저걸 보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다.
"그만 마차에 탈까?"
론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어서 타자."
해리가 대답했다.
"별일 아니야."
론이 어두운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해리의 옆에서 꿈꾸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미치거나 어디 이상이 생긴 게 아니야. 나도 그것을 볼 수 있어."
"정말이니?"
해리가 루나를 향해 휙 돌아서며 애타게 물었다. 순간 그녀의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에 비친 날개 달린 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럼, 물론이지. 난 여기 처음 온 날부터 저 말들을 볼 수 있었어. 항상
저것들이 마차를 끌었지. 걱정하지 마. 나도 너처럼 정상이니까 말이야."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루나는 론의 뒤를 따라 어두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는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