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디멘터의 공격을 받은 두들리
올 여름 들어 가장 무더웠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프리벳가에 있는
커다랗고 네모난 집들은 나른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평소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던 자동차들도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차고 안에 처박혀 있었다. 한때는
에메랄드빛으로 파릇파릇하던 잔디밭도 누렇게 타들어 갔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잔디밭에 물을 주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세차와 잔디 깍기 같은
일상적인 일을 못하게 되자 프리벳가의 주민들은 더위를 피해 그늘진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였지만 혹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도
불러들일까 싶어 집집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지금 집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명 4번지 집 앞의 화단에 벌렁 드러누워 있는 십대
소년뿐이었다.
검은 머리에 빼빼 마르고 안경을 쓴 그 소년은 갑자기 훌쩍 커 버린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수척하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군데군데
찢어지고 지저분했으며 티셔츠는 축 늘어지고 색이 바랬다. 신고 있는 운동화는
밑창이 거의 떨어져 나갔다. 해리 포터의 그런 모습을 보고 호감을 갖는 이웃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추레하고 꾀죄죄한 것도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엔 커다란
수국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다만 버논 이모부나 페투니아 이모가 거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밑에 있는 화단을 곧장 내려다봐야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해리는 아쉬운 대로 이곳에 숨기로 한 것은 썩 괜찮은 발상이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딱딱하고 뜨거운 땅 위에 누워 있는 것이 편안할 리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를 무섭게 노려보거나 뉴스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이를 갈거나
심술궂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거실에 앉아서 이모, 이모부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려고 할 때면 번번이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바로 그때 그의 생각이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날아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리 해리의 이모부인 버논 더즐리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이 더 이상 얼쩡거리지 않으니 좋군 그런데 어디간 거지?"
"모르죠" 페투니아 이모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집안에는 없어요"
버논 이모부가 가소로운 듯이 빈정거렸다.
" 뉴스를 보고 싶다고? 도대체 그 녀석 꿍꿍이가 뭔지 궁금하단 말이야. 보통
사내아이들이 누가 뉴스 따위에 관심을 가지지? 우리 두들리만 해도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통 모르잖아. 아마 지금 수상이 누군지도 모를걸?
게다가 그 마법사 무리에 대한 소식이 우리 뉴스에 나올 리도 없을텐데....."
"버논,쉬잇!"페투니아 이모가 주의를 주었다. "창문이 열려 있어요!"
"아참... 그렇지 미안하오"
더즐리 부부는 곧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해리는 아침 식사용 시리얼인'프룻 앤
브랜'의 광고 소리를 들으며 근처 위스테리아가에서부터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는
피그 할머니를 지켜 보았다.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고 살짝 정신이 나간 이
할머니는 혼자 인상을 찌푸리며 연신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해리는 수국 뒤에
숨어 있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피그 할머니는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자꾸 그에게 차나 한잔 마시러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막 사라지려고 할 때 버논 이모부의 목소리가 다시 창문을 통해
들려왔다.
"두들리는 차를 마시러 나갔나?"
"폴키스네 집에 갔어요."
페투니아 이모는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두들리는 정말이지 친구들도 많아요. 어쩜 그렇게 인기가 좋은지...."
해리는 코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 아들인 두들리에
대해서라면 더즐리 부부는 놀라운 정도로 맹목적이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매일 밤마다 매번 다른 친구네 집에 차를 마시러 간다는 두들리의 어설픈
거짓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해리는 두들 리가 차를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두들리와 그 패거리들은 저녁마다
공원을 떼지어 돌아다니며 으슥한 모퉁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지나가는
자동차와 아이들을 향해 돌을 던지곤 했다. 해리는 저녁에 리틀 위닝 근처를
산책하다가 종종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며 신문을 찾아
길가 쓰레기통을 뒤적거리는 것이 방학 동안 해리의 주요 일과였던 것이다.
일곱 시를 뉴스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자 해리는 뱃속이
울렁거렸다 어쩌면 오늘 밤이 한 달 동안이나 초조하게 기다려 온 바로
그날인지도 모른다.
"화물 관리 스페인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 주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엄청난 숫자의 휴가철 행락객들이 공항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저런 녀석들은 평생 낮잠이나 자라고 해."
뉴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버논 이모부가 한마디 내뱉었다. 하지만
이모부가 뭐라고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창 밖의 화단에 누워 있던 해리는
오그라들었던 위장이 펴지는 것 같았다. 만약 무슨 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첫
번째로 뉴스에 보도되었을 것이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휴가철 행락객보다는
죽음이나 파괴 쪽이 훨씬 더 중요한 뉴스거리였을 테니까 말이다.
해리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올여름은 늘 똑같은 하루가 되풀이 되었다. 긴장과 기대, 일시적인 안도, 또 다시
아침이 되면 찾아오는 긴장감, 그리고 언제나 점점 커지는 의문, 왜 아직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해리는 계속해서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머글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어떤 작은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원인 모를 실종이라든가 이상한 사건들
같은... 하지만 화물 관리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 다음에는 남동부 지방의 가뭄
소식이 이어졌다. ('옆집 사람이 이 뉴스를 꼭 들었어야 하는데!' 버논 이모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자는 새벽 세 시에 몰래 스프링클러를 돌린단 말이야!')
그 다음에는 헬리콥터 한대가 서리의 한 평야에 거의 추락할 뻔했다는 소식과
유명한 여배우가 역시 유명 인사인 남편과 헤어졌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우리가 뭐 이런 지저분한 일에 관심 있는 줄 아는 모양이지?'
페투니아 이모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구할 수 있는 잡지란
잡지는 다 뒤져서 그에 관한 기사를 샅샅이 읽은 뒤였다)
해리는 불타는 듯한 저녁 하늘에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그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뉴스입니다. 잉꼬 번지가 올여름을 시원하게 지내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반슬리의 파이브 페더즈에 살고 있는 번지는 수상 스키를
배우고 있습니다! 좀더 자세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메리 도킨스가 현장에
나갔습니다."
해리는 다시 눈을 떴다. 수상 스키를 타는 잉꼬 소식까지 나왔다면 이젠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앞으로 몸을 일으킨 다음 엎드린
채 무릎과 팔꿈치로 창문 밑을 기어서 지나갈 자세를 취했다. 무리가 약
5센티미터쯤 전진했을 때, 몇 가지 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연달아 벌어졌다.
탕 하고 한 발의 총소리 같은 요란한 소음이 나른한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지더니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세워 놓은 자동차 밑에서 달려 나와 순식간에
사라졌다. 뒤이어 더즐리 부부의 거실에서 그릇 깨지는 소리와 날카롭고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해리는 마치 이 소리가 줄곧 기다렸던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칼집에서 칼을 뽑듯이 청바지
허리춤에서 나무로 된 가는 요술지팡이를 쑥 뽑아 들었다. 하지만 해리가 미처
몸을 다 일으키기도 전에 열려 있던 창문에 쾅 하고 정수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그 요란한 소리를 듣자, 페투니아 이모는 더욱 큰 비명을 질렀다
해리는 머리가 둘로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며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이 요란한 소리의 원인을 찾기 위해 거리를 살펴보려고
애를 썼다. 해리가 휘청거리는 몸을 똑바로 일으키려고 할 때 열린 창문 밖으로
커다란 보라색 손 두 개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해리의 목을 꽉 조였다.
"당장 그 막대기를 치우지 못해!"버논 이모부가 그의 귀에 대고 악을 썼다.
"지금 당장! 누가 보기전에!"
"날 놔 줘요!"
해리가 입을 딱 벌리고 헉헉거렸다. 잠깐 동안 그들은 버둥거리며 몸 싸움을
벌였다 해리는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꽉 움켜쥔 채 왼손으로는 소시지 같은
이모부의 손가락을 떼어 내려고 애를 썼다. 바로 그때 창문에 부딪힌 머리
꼭대기가 유난히 날카롭게 쑤시더니 버논 이모부가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놓아 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해리에게 흘러나와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든 것 같았다.
해리는 숨을 헐떡이며 수국 덤불 위로 픽 쓰러졌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일어나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토록 요란한 소리를 낼 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웃집 사람들 여러 명이 창문 너머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황급히 지팡이를 바지 속에 쑤셔 넣고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다
"멋진 저녁이죠!"
버논 이모부가 맞은편 7번지에 사는 부인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녀는 망사
커튼 뒤에서 열심히 밖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방금 자동차 엔진이 역화하는 소리 들으셨죠? 페투니아와 저도 그 소리에
기겁을 했답니다.!"
버논 이모부는 호기심에 가득 찬 이웃 사람들이 창문에서 모습을 감출 때까지
정신병자 같은 무시무시한 미소를 계속 짓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 미소는
분노에 찬 찡그림으로 변했다 버논 이모부는 손짓으로 해리를 불렀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언제 다시 손을 뻗어 목을 조를지 몰라 조심하면서 몇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버논 이모부가 분노에 차 떨리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죠?"
해리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요란한 소리를 낸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연신 이쪽저쪽을 살펴보았다.
"딱총 쏘는 요란한 소리를 냈잖아 바로 우리 집 밖에서..."
"그 소리는 제가 낸 게 아니에요."해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푸르죽죽하고 넓적한 버논 이모부의 얼굴 옆으로 말처럼 길쭉하고 뽀족한
페투니아 이모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그럼 왜 우리 집 창문 밑에 숨어 있었던 거지?"
"맞아 바로 그거야. 페투니아! 도대체 우리 집 창문 밑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뉴스를 듣고 있었어요."
해리가 체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모와 이모부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뉴스를 듣고 있었다고! 또 말이냐?"
"뉴스는 날마다 다르잖아요."해리가 말했다
"이 녀석아 날 속일 생각하지마라! 네 녀석의 진짜 속셈이 뭔지 반드시
알아내고 말 테다. 그러니 두 번 다시 뉴스를 듣는다는 따위의 헛소리는 하지
마라!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너희 무리들...."
"말조심해요 여보!"
페투니아 이모가 숨가쁘게 외쳤다. 버논 이모부는 해리의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희 무리들이 우리 뉴스에 나올 리가 없다는 걸 말이다!"
"물론 이모부야 그렇게밖에 모르시죠" 해리가 대답했다.
더즐리 부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몇 분 동안 해리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에
페투니아 이모가 입을 열었다.
"이 못된 꼬마 거짓말쟁이야 그 많은 부엉이들이.." 이모의 목소리가 너무나
작아졌기 때문에 해리는 입 모양을 보고 다음 말을 알아들어야만 했다."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면 도대체 뭘 한단 말이냐?"
"아하!" 버논 이모부가 의기양양하게 속삭였다. "이 녀석아 당장 여기서
꺼져!"네가 그 성가신 새를 통해 모든 소식을 전해 듣는다는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았더냐!"
해리는 한동안 망설였다 이번에는 진실을 털어놓기가 좀 어려웠다. 비록 이모와
이모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해리의 마을이 얼마나 괴로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요즘은 부엉이들이... 저에게 소식을 전해 주지 않고 있어요" 해리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 말 안 믿는다."
페투니아 이모가 즉시 쏘아붙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버논 이모부가 단호하게 말했다.
"네 녀석이 뭔가 웃기는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다."
페투니아 이모가 말했다.
"우린 바보가 아니야."
"그거야말로 제가 처음 듣는 새로운 소식이로군요."
해리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더즐리 부부가 다시 불러 세우기 전에 획 돌아서서
화단을 넘어갔다. 그리고 정원을 둘러싼 야트막한 담을 넘어서 성큼성큼 거리로
걸어 나갔다.
해리는 자신이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잠시 후면
이모와 이모부의 얼굴을 다시 보지 않으면 안될 텐데 그러면 무례하게 군 것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무 상관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들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탕 하는 소리는 분명 누군가 순간이동을 하면서 낸 것이라고 해리는
확신했다 집요정 도비가 허공 속으로 사라질 때 내던 소리와 똑같았던 것이다.
도비가 여기 프리벳가에 왔을까? 혹시 도비가 바로 지금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자 해리는 재빨리 몸을 홱 돌려서 프리뱃가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거리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도비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마법을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해리는 자신이 어디를 걷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무작정 걸어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거리를 너무나 자주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저절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움직였다. 몇 발짝 걸을 때마다 해리는 반드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페투니아 이모의 시들어 가는 수국 속에 누워 있을 때 마법의
힘을 가진 누군가가 근처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왜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까? 왜 그와 접촉을 시도하지 않고 아직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는 걸까?
그 순간 좌절감이 밀려들면서 모든 확신이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그것은 마법을 사용할 때 나는 소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속한
마법사 세계로부터 아주 작은 신호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소리에 과민 반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웃집에서 뭔가가 깨지면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해리는 힘이 빠지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
감정을 무엇인지 미쳐 깨닫기도 전에 여름 내내 그를 괴롭혀 오던 절망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일 아침이 되면 그는 <예언자일보>를 배달해 주는 부엉이에게 수고비를 주기
위해서 다섯 시에 맞추어 놓은 자명종소리를 들으며 눈을 뜰 것이다. 하지만
신문을 계속 받아 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요즘 들어 해리는 신문의 1면만
슬쩍 훑어보고 옆으로 내던져 버리곤 했다. 신문을 만드는 이 멍청이들이 마침내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당연히 1면에 머리기사로 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해리의 관심은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혹시 운이 좋다면 부엉이들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인 론과 헤르미온느의
편지를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 비록 그 편지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될 거라는 기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지만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어... 혹시 우리 편지가
도중에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중요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거등... 우린 아주 바빠 하지만 이 편지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해줄 수는
없어... 무척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어. 널 만나게 되면 모든 걸 다
이야기해줄게..."
하지만 대체 언제쯤 그들을 보게 될까? 아무도 정확한 날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그에게 보낸 생일 카드에 "조만간 너를
보게 될거라고 기대하고 있어"라고 썼지만 도대체 그 조만간이 언제란 말인가?
친구들의 편지에 적힌 애매한 내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거라고는
헤르미온느와 론이 같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아마 론의 집에 있을 것이다.
해리는 두 사람이 버로우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신은 프리벳가에
혼자 처박혀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두 사람이 생일날 보내 준 허니듀크 초코릿 두 상자를 뜯지도 않고 그냥 던져
버리기도 했다. 물론 그날 밤 페투니아 이모가 저녁식사로 시들어 빠진 샐러드를
내놓았을 때 가슴을 치며 후회를 하기는 했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뭘 하느라고 그렇게 바쁜 걸까? 그런데 왜 아는 이렇게 할
일이 없는 걸까? 그 친구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 주지 않았던가? 모두들 내가 한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렸단
말인가? 묘지에 들어가서 케드릭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묘비에 묶인 채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니었던가?
더 이상 그 생각은 하지 말자 그해 여름 동안 해리는 수백번도 넘게 자신을
단단히 타일렀다. 밤마다 그 묘지를 다시 찾아가는 악몽을 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깨어 있는 순간까지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해리는 모퉁이를 돌아서 매그놀리아 광장을 반쯤 지났다. 그리고 차고 옆으로
난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해리가 제일 처음 그의 대부인
시리우스를 우연히 보았던 곳이다. 적어도 시리우스만큼은 해리의 기분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시리우스의 편지도 별다른 내용이 없기는 론이나
해르미온느의 편지와 마찬가지였지만 사람을 애태우는 모호한 말 대신 위로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틀림없이 네가 초조해지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얌전하게 있어라 그러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다... 조심하고 절대로 경솔한 짓은 하지마라..."
매그놀리아 광장을 가로질러 매그놀리아가로 접어든 해리는 점점 어두워져 가는
공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그럭저럭 지금까지는 시리우스의 충고대로 잘해 왔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빗자루에 트렁크를 매달고 혼자서라도 버로우를 향해 떠나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내지 않았는가. 솔직히 이렇게 오랫동안 프리벳가에 처박혀
있으면서 얼마나 짜증이 나고 화가 났는지를 생각해 보면 자신의 행동이 대견할
뿐이다. 고작해야 볼드모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려 줄 만한 뉴스를
듣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화단에 숨는 게 전부였으니 그렇기는 하지만
마법사들의 감옥인 아즈카반에 12년 동안을 갇혀 있다가 탈옥하여 진짜로
살인을 시도한 끝에 히포그리프를 훔쳐 타고 달아난 사람으로부터 경솔하게
굴지 말라는 충고 따위나 듣고 있어야 하다니. 정말 분통 터질 노릇이었다.
해리는 잠겨 있는 공원의 문을 훌쩍 뛰어넘어서 누렇게 시든 잔디밭을
건너갔다. 근처 거리와 마찬가지로 공원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네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해리는 두들리와 그의 일당이 아직까지 망가뜨리지 않은 유일한 그네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한 팔을 그넷줄에 감은 채 우울하게 땅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또다시 더즐리 부부의 화단에 숨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일은 뉴스를 들을 수 있는 뭔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한다. 그때까지
그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곤 불안하고 괴로운 밤 뿐이었다. 왜냐하면
어쩌다 케드릭에 대한 악몽을 꾸지 않을 때에는 어둡고 긴 복도를 헤매다가
결국에는 막다른 길이나 잠긴 문 앞에서 끝나는 꿈을 꿨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깨어 있을 때 느끼는 덫에 갇힌 듯한 기분과 그 꿈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의 이마에 난 흉터가 쿡쿡 쑤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더
이상 론이나 헤르미온느 혹은 시리우스가 이런 사실에 커다란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헛된 생각에 빠지지 않았다. 옛날에는 흉터가 쑤시면 그것은
불드모트가 또다시 좀더 강해졌다는 경고였다. 하지만 볼드모트가 돌아온 지금
아마도 그들은 이 규칙적인 통증이 그저 예상했던 일이며 걱정할 일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뉴스 정도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고 할 것이다.
순간 해리는 너무 화가 나서 큰 소리로 고함치고 싶었다. 이 모든 일들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가 아니었다면 심지어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몰랐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고작해야 그 보상이 마법 세계와는 완전히
연락이 두절된 채. 시들어 가는 수국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수상 스키 타는 잉꼬
소식 따위나 들으며 리틀 위닝에서 끔찍한 사주를 보내는 것이란 말인가?
덤블도어 교수님은 어떻게 그를 이토록 쉽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왜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를 싹 빼돌린 채 함께 지내고 있는 걸까? 대체 얌전하게 앉아서
착하게 굴라는 시리우스의 잔소리를 얼마나 더 들어야만 할까? 당장에라도 그
멍청한 <예언자일보>에 글을 써서 볼드모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은 유혹을 얼마나 더 참아야 한단 말인가? 온갖 불쾌한 생각들이 해리의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다. 그의 가슴은 분노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후텁지근하고 고요한 밤이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온 사방에 메마른 풀
냄새가 진동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공원 울타리 너머 도로를 오고 가는
자동차들의 낮은 엔진 소리뿐이었다.
그네 위에 얼마나 오랫동안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해리는 떠들썩한 말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보았다. 주변 도로에 서 있는 가로등의 뿌연
불빛 아래로 공원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중 한
명은 큰소리로 상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른 일행들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타고 있는 값비싼 자전거에서는 부드럽게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해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제일 앞에 오고 있는 사람은 그의
사촌인 두들리 더즐 리가 틀림없었다. 충성스런 부하들을 거느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두들리는 예전과 변함없이 몸집이 컸다. 하지만 1년간의 혹독한 다이어트와
새로운 재능의 발견으로 체격이 바뀌었다. 버논 이모부가 만나는 사람마다
신나게 떠들고 다니듯이 최근에 두들리는 남동부 지역 학교 대항전에서 주니어
헤비급 복싱 챔비언이 되었던 것이다. 버논 이모부가 말하는 소위 그 '고상한
운동'덕분에 두들리는 해리가 그의 첫 번째 샌드백 노릇을 해주던 초등학교
시절보다고 훨씬 더 세졌다. 물론 해리는 더 이상 그의 사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두들리가 더 강하고 더 정확하게 때릴 수 있는 법을 터득한
것이 축하할 만한 일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그를 보면 벌벌 떨었다. 심지어 성 브루터스 구제불능소년 선도학교에 다닌다는
철면피 불량아 '그 포터 녀석'보다도 더 무서워했다.
해리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누구를 패 주고 왔을까 생각했다. '여길 봐' 해리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서... 여길 보라고... 여기 나 혼자 앉아 있잖아...
어서 와서 한 판 붙어 보자고...'
만약 두들리의 친구들이 이곳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한다면 곧장 다가올 것이
뻔했다. 그럼 두들리는 어떻게 할까? 졸개들 앞에서 체면을 잃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들리는 해리를 건드리는 걸 무서워했다. 두들 리가 난처해서
쩔쩔매는 꼴을 보면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그를 실컷 놀려 주고 아무대꾸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다면... 혹시 다른 알,들이 때리려고 덤빈다면 해리는
기꺼이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요술지팡이가 있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 헤리는 한때 그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아이들을 상대로 분풀이를
하고 싶어서 손이 그질근질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해리를 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이제 거의
공원울타ㅎ리 근처까지 도달했다. 해리는 그들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일부러 싸우자고 덤비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잘못하면 또다시 제명을 당할 수도 있었다.
두들리 패거리들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졋다. 잠시 후에 매그놀리아가 쪽으로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래요 시리우스'해리는 명하니 생각에 잠겼다.'경솔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게요. 얌전히 있겠어요. 아저씨가 했던 행동과는 정반대로 할 거예요.'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쭉 폈다. 페투니아 이모와 버논 이모부는 두들
리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그게 언제든 가장 적당한 때라고 여기고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는 해리가
두들리보다 늦게 들어어면 창고에 가두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해리는 애써
하품을 참으며 여전히 부루퉁한 얼굴로 공원 정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매그놀리아가는 프리벳가처럼 완벽하게 손질된 잔디밭이 딸린 커다랗고
네모난 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역시 커다랗고 네모나게 생긱 이 저택의
주인들은 한결같이 버논 이모부와 비슷하게 티 하나 없이 말끔한 자동차를
몰았다 해리는 해 저문 뒤의 리틀 위닝을 더 좋아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들이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빝을 발하는 밤에는 이웃집 앞을 지날 때마다
비행 청소년 같은 그의 외모에 대해 쑤군덕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해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매그롤리아가를 절반쯤 지나갔을 때
두들리 일당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그놀리아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서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해리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 그늘 아래 몸을 숨기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 녀력 돼지처럼 꽥꽥거리더군 안 그래?"
말콤이 큰 소리로 웃어 대는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멋진 라이트 훅이었어. 빅D"
피어스가 한마디 거들었다.
"내일도 같은 시간에 볼까?"
두들리가 말했다
"우리 집에서 보자 부모님은 외출할거야"
고이 제안했다
"그럼 내일 보자"
두들 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두드!"
"잘자 빅D!"
해리는 두들리 일당이 모두 흩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때 모퉁이를 돌아서 매그놀리아
광장으로 ㄷ르어선 해리는 좀더 서둘러 걸어갔다. 머지 않아 부르면 들을 수
있을 정도릐 거리까지 두들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두들리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다.
"이봐 빅D"
두들 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너구나"두들 리가 대답했다.
"대체 네가 언제부터 ' 빅D'가 됐냐?"
"입 닥쳐"두들 리가 주위를 돌아보며 윽박질렀다.
"이름 한번 멋지구나"해리는 씩 미소를 지으며 사촌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리 그래도 내 눈에는 네가 언제나 '나의 귀염둥이 찌찌돌이'인걸"
"입닥치라고 했지!"
두들 리가 햄처럼 두툼한 손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그 애들은 네 엄마가 널 뭐라고 부르는지 아니?"
"주둥이 닥쳐!"
"엄마에게 주둥이 닥치라고 말해서는 안되지. '우리 꼬마 도령'이나 '우리 귀여운
강아지'는 어때? 그렇게 불러 줄까?"
두들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리를 때리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서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오늘 밤에는 누구를 때려주고 오섰나?"
해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또 열 살짜리 꼬마였나? 난 알고 있어 이틀 전에도 네가 마크 에반스를..."
"그건 그 자식이 자초한 일이었어."
두들 리가 쏘아붙였다
"나 그래?"
"그 녀석이 내 앞에서 시건방진 소리를 하잖아"
"그래? 혹시 네 녀석이 꼭 뒷다리로 걸어다니는 법을 배운 돼지처럼 보인다고
말하지 않았니? 그렇다면 그건 시건방진 소리가 아닌데? 그게 진실이거든"
순간 두들리의 턱 근육이 실룩거렸다. 두들리를 잔뜩 열받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해리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흡족했다. 그동안 쌓이고 쌓았던 울분을
그의 유일한 화풀이 상대인 사촌에세 몽땅 쏟아 부은 것 같았다.
그들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해리가 맨 처음 시리우스를 보았던 그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이 길은 매그놀리아 광장과 위스테리아가 사이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가로등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거리에 비해 훨씬
어둡고 인적이 드물었다. 차고의 벽과 맞은편의 높은 담벼락에 막혀서 그들의
발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다.
"네 녀석은 그걸 가지고 다닌다고 자기가 어른인 줄 알지?"
잠시 후에 두들 리가 물었다.
"그거라니?"
"그거 네가 숨기고 다니는 거 말이야."
해리가 또 다시 씩 웃었다.
"두드 너도 보기보단 멍청하지 않구나. 네가 걷는 것과 말을 하는 걸 동시에 할
수 있다니 뜻밖인걸 내가 미처 몰랐네."
해리가 재빨리 지팡이를 꺼내 들자 두들리는 힐끗 곁눈질을 하며 눈치를 살폈다.
"넌 그걸 쓸 수 없어"두들 리가 서둘러 말했다. "나는 네가 그걸 쓸 수 없다는
걸 알아. 그렇지 않으면 네가 다니는 그 괴상한 학교에서 쫒겨나게 될걸"
"그동안 규칙이 바뀌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하지. 빅D?"
"절대 그럴 리 없어"
두들 리가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왠지 자신이 없었다.
해리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것만 없으면 감히 나에게 덤빌 배짱도 없는 놈이... 안 그래?"
두들 리가 빈정거렸다.
"그러는 너는 열 살짜리 꼬마를 때려 줄 때로 친구들을 뒤에 네 명이나
거느려야 안심하잖아. 네가 지겹게 떠들어 대는 그 권투 시합 말이야. 도대체
상대편 나이가 몇 살이었냐? 일곱 살? 여덟 살?"
"분명히 말하지만 열여섯 살이었어." 두들 리가 이를 갈며 말했다. "덩치도
너보다 두 배는 더 큰 녀석이었다고 그뿐만 아니라 내가 그 녀석을 쓰러뜨린
후에도 이십 분 동안이나 뻗어 있었다는 사실을 똑똑히 명심해 어디 두고 보자
아빠에게 네 녀석이 그걸 들고 밖에 나왔다는 걸 알려 줄 테니"
"어디 지금 당장 아빠에게 달려가 보시지? 귀염둥이 복싱 챔피언께어 말썽꾼
해리의 지팡이에 겁먹은 건가?"
"밤이 되면 이렇게 용감하게 굴지 못할걸 안그래?" 두들 리가 빈정거렸다
"지금이 바로 밤이네요 꼬마 도련님 지금처럼 오 세상이 깜깜해지면 그걸 보고
밤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 말은 네 녀석이 잠잘 때 말이야!"
두들 리가 사납게 소리치며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해리도 걸음을 멈추고 사촌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해리는 두들리의 넓적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의기양양한 기색이 가득했다.
"내가 잠잘 때는 용감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해리는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내가 뭘 무서워 한다는 거야? 베개?"
"어젯밤에 네가 하는 소리 다 들었어. 잠꼬대랑 신음소리도" 두들 리가 단숨에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해리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뱃속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냉기가 느껴졌다. 지난밤
꿈속에 또다시 그 묘지가 나타났던 것이다.
두들리는 큰 소리로 껄걸 웃더니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훌쩍 거리는 흉내를
냈다.
"케드릭 죽이지 마! 캐드릭 죽이지 마! 도대체 케드릭이 누구지? 네 남자
친구인가?"
"난 아니 모두 거짓말이야"
해리는 반사적으로 그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물론 두들리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가 케드릭에 대해서 또 뭘 알고
있을까?
"아빠! 저를 도와주세요 아빠 ! 그가 절 죽이려고 해요 아빠!으앙!"
"그만 해"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경고하는데 그만 입 닥쳐 두들리!"
"'어서 절 도와주세요 아빠!엄마 어서 절 도와주세요! 그가 케드릭을 죽였어요!
아빠 도와주세요! 그자가...'이봐 나에게 그걸 겨누지 마!"
두들리는 담벼락 쪽으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해리는 곧장 두들리의 심장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었다. 15년 동안 쌓아 왔던 두들리에 대한 증오가 그의 피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심정으로는 두들리에게 지독한 저주를
내려서 더듬이가 달린 몰골로 벌레처럼 집까지 기어가게 만들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하지 마 내 말 알겠어?"
해리가 경고했다.
"그걸 저리 치워!"
"내 말 알아들었지?"
"그걸 저리..."
두들 리가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처박힌 사람처럼 부르르 몸을 떨며 헉
하고 입을 벌렸다. 뭔가 엄창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별들이 총총히 빛나던 검은
밤하늘이 갑자기 칠흑처럼 어두워지면서 모든 불빛이 사라졌다. 별빛도 달빛도
골목 끝에서 흐미하게 빛을 발하던 가로등도 일순간에 꺼져 버렸다. 멀리서
들려오던 자동차 소리도 나무들의 살랑거리던 속삭임도 뚝 끊어졌다. 향기로운
풀 냄세가 진동하는 여름날 밤에 느닷없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소름 끼치는
냉기가 감돌았다. 두 사람은 숨막힐 듯이 고요하고 이상한 어둠 속에 완전히
갇혀 버렸다. 마치 거대한 손이 얼음처럼 차갑고 두꺼운 망토로 골목 전체를
덮어 버린 것 같았다.
아주 잠깐 동안 해리는 그토록 참으려고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게 마법을 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는 별빛마저 사라지게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능력이 없었다. 해리는
이쪽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살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무게를 느낄
수 없는 덮개 같은 어둠이 그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두들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무슨 짓을 하는 거지? 그~그만둬!"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아~아무것도 안 보요! 눈~눈이 멀었나 봐! 나~나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해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어찌나 싸늘한 냉기가 감도는지 해리는 계속해서
온몸이 와들와들 떨렸다. 팔뚝에 소름이 쫙 끼치면서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해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노려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그들이 여기 있을 리가 없어... 리틀위닝에 있을 리가... 해리는
바싹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다. 보지는 못해도 그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아, 아빠에게 다 마- 말할 거야!" 두들 리가 울먹거렸다.
"이봐, 어-어디 있는 거야? 뭐-뭐 하고 있어?"
"입 좀 그만 안 다물래?" 해리가 윽박질렀다. "지금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그 순간 해리는 입이 얼어붙었다.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바로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골목 안 어딘가에 있었다. 그것은 거칠고 세찬 숨을 길게 내뿜고 있었다.
해리는 끔찍한 공포에 가로잡혀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 속에서 덜덜 떨며 서
있었다.
"지-집어치워! 당장 그만두란 말이야! 안그러면 때릴 거야! 정말이야!"
"두들리 제발 입 좀..."
퍽
그 순간 주먹이 날아와 해리의 머리를 세게 쳤다 눈앞에서 불이 번쩍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두 번째로 해리는 머리통이 쪼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손에서 지팡이를 떨어뜨리며 땅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두들리 이 멍청아!"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눈에는 고통스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해리는
두 손과 발을 땅에 대고 엎으린 채, 미친 듯이 어둠 속을 더듬거렸다. 두들 리가
우왕좌왕하다가 담벼락에 몸을 부딪혀 비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들리, 이리 돌아와! 지금 너는 곧장 그걸 향해 달려가고 있어!"
숨이 막히는 듯한 무시무시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들리의 발소리가 뚝
끊어졌다. 동시에 해리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것은 오직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두들리 입을 꼭 다물어! 어떤 일이 있어도 입을 열면 안돼! 내 지팡이!"
해리는 미친 듯이 떠들어 대면서 거미처럼 두 손으로 땅 위를 더듬었다.
"지팡이가 어디 있지? 제발- 루모스!"
해리는 지팡이를 찾을 수 있도록 불이 켜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무의식적으로
주문을 외웠다. 놀랍고 다행스럽게도 바로 오른손 옆에서 불빛이 반짝 빛났다.
지팡이 끝에 불이 켜진 것이다. 해리는 재빨리 지팡이를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순간 뱃속이 울컷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두건을 쓴 커다란 형체가 그를 향해 스르르 미끄러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땅
위에 둥둥 떠 있는 긴 망토 밑으로는 발도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둠을
빨아들이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해리는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면서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지팡이 끝에서 한 줄기의 은빛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순간 디멘터의 걸음이
느려졌다. 하지만 주문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디멘터가 점차 바싹 다가오자,
해리는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그만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서서히 사람을 비치게 하는 뿌연 안개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정신
차리자-
디멘터의 망토 밑에서 덕지덕지 딱지투성이의 지저분한 회색 손이 해리를 행해
뻗어 나왔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해리의 귓전에 가득 울려 퍼졌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자신의 목소리가 아득하고 희미하게 들렸다. 또다시 한 줄기 은빛 연기가 지팡이
끝에서 흘러나왔다. 조금 전보다고 훨씬 약했다. 해리는 더 이상 기운이 없었다.
도저히 마법을 쓸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날카롭게 째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리는
디멘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송장처런 차갑고 지독한 악취가 나는 디멘터의
숨결이 그의 허파를 가득 채우면서 당장에라도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생각해야 한다... 뭔가 행복한 것을...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행복한 일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디멘터의 얼음처럼
싸늘한 손가락이 그의 목을 죄어 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한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죽음에 굴복하라. 해리... 어쩌면 고통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모르지... 한 번도 죽어 본 적이 없으니..."
그는 두 번 다시 론과 해르미온느를 보지 못할게 될 것이다.
필사적으로 숨을 쉬려고 애를 쓰던 해리의 눈앞에 갑자기 친구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순간 해리의 지팡이에서 거대한 은색 수사슴이 튀어나오더니 디멘터의 심장이
있을 만한 부위로 뿔을 들이받았다. 디멘터는 어둠처럼 힘없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수사슴이 계속해서 공격하자 디멘터는 박쥐처럼 뒤로 휙
물러났다가 사라졌다.
"이쪽으로!"해리가 수사슴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빛을 발하는 지팡이를 치켜든
채 몸을 돌려서 골목 아래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두들리!두들리!"
열두어 걸음도 미처 못 갔을 때 해리는 그들을 발견했다 두들리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몸을 꼬부리고 땅 위에 쓰러져 있었다. 두 번째 디멘터가 그의
몸 위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디멘터는 썩어 문드러진 지저분한 손으로 그의
손목을 움켜고 마치 사랑스런 사람을 대하듯이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그러고는
입을 맞추려는 것처럼 두들리의 얼굴을 향하여 두건을 쓴 머리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만둬!"
해리가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해리가 마법으로 불러낸 수사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디맨터를 향하여 돌진했다 동공이 뻥 뚫린 디멘터의 얼굴이
두들리의 얼굴에 닿으려고 할 때, 수사슴의 은빛 뿔이 디멘터를 들이받았다.
그것은 자기 동료와 마찬가지로 공중으로 휙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붕
날아오르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골목 끝까지 쫒아갔던 수사슴도 은빛
안개가 되어 스르르 사라졌다.
달빛과 별빛과 가로등 불빛이 반짝 되살아났다. 훈훈한 바람이 골목 안으로
불어 들어왔다. 이웃집 정원에 서 있는 나무즐의 살랑거리는 소리와 매그놀리아
광장을 오가는 자동차들의 붕붕거리는 소리가 다시 온 골목을 가득 메웠다.
한동안 해리는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갑자기 일상
세계로 되돌아오자, 온몸의 감각이 진동을 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해리는
입고 있는 티셔츠가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목욕을 한 것 같았다.
해리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 리틀 위닝에
디멘터들이 나타나다니.
두들리는 여전히 몸을 잔뜩 꼬부린 채 땅 위에 쓰러져서 부들부들 떨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해리는 두들 리가 과연 몸을 일으킬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허리를 숙였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황급히 달려오는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본능적으로 다시 지팡이를 집어 들고 재빨리 돌아서서 새로운
상대를 맞았다.
숨을 헐떡거리며 나타난 사람은 바로 이웃집에 사는 정신 나간 노파 피그
할머니였다.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카락이 모자 밖으로 삐죽삐죽 흘러 내려오고
손목에는 끈 달린 쇼핑 가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할머니의 발에는 격자
무늬의 실내용 슬리퍼가 당장에라도 벗겨질 듯이 걸려 있었다.해리는 지팡이가
눈에 띄지 않게 얼른 바지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직은 치우지 마라. 이 멍청한 녀석아!"
피그 할머니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또 다른 놈이 근처에 있으면 어떻 게
하려고 그러니" 먼던구스 플레처, 만나기만 해 봐라. 내 손으로 꼭 죽여 버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