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장 (88/194)

제36장 

덤블도어의 사람들

덤블도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한참 동안이나 혐오스러운 눈길로 바티 크라우치를 쳐다보았다. 덤블도어가 또다시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요술지팡이 끝에서 기다란 밧줄이 흘러나오더니 저절로 바티 크라우치를 꽁꽁 묶었다. 

"미네르바, 내가 해리를 데리고 위층에 가 있는 동안 여기를 좀 지켜 주시겠소?"

덤블도어가 맥고나걸 교수에게 돌아서면서 물었다. 

"물론이죠."

맥고나걸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바티 크라우치를 바라보고 있는 맥고나걸 교수의 얼굴에는 역겨운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처럼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바티 크라우치를 향해 요술지팡이를 똑바로 겨누고 있는 맥고나걸 교수의 손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세베루스, 폼프리 부인에게 당장 이곳으로 내려오라고 전하게. 앨러스터 무디를 병동으로 데리고 가야만 해. 그런 다음에 운동장으로 내려가서 코넬리우스 퍼지를 찾아보게. 코넬리우스 퍼지를 만나면 즉시 이 사무실로 모셔 오게나. 분명히 그는 직접 크라우치를 심문하고 싶어 할 거야. 어쩌면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할 지도 모르겠군. 난 30분 후에 병동에 있을 예정이라고 전해 주게."

스네이프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해리?"

덤블도어가 다정하게 해리를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다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크라우치의 고백을 듣고 있는 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다리의 통증이 다시 몰려 왔다. 

해리의 몸이 심하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해리의 팔을 부축하더니 어두운 복도로 나갔다. 

"해리, 먼저 내 사무실로 올라가자꾸나."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덤블도어가 차분하게 말했다. "시리우스가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것이 무감각하고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상태인 것이 기뻤다. 지금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처음 만졌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 중 단 한가지라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머리 속에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사진처럼 선명하고 뚜렷한 기억을 자세히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마법의 트렁크 속에 들어 있던 매드아이 무디... 잘려 나간 팔뚝을 움켜쥔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웜테일... 무럭무럭 김이 피어나는 가마솥 안에서 다시 부활한 볼드모트... 케드릭... 죽음을 당한...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하던 케드릭...

"저... 교수님. 그런데 케드릭의 부모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해리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분들은 지금 스프라우트 교수님과 함께 계신다."

덤블도어가 착잡하게 대답했다. 바티 크라우치를 심문하는 내내 냉정하기만 했던 덤블도어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약간 떨렸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은 케드릭이 있던 기숙사의 사감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분들을 제일 잘 아시지."

마침내 두 사람은 이무기 석상 앞에 도착했다. 덤블도어가 암호를 말하자, 이무기 석상이 옆으로 펄쩍 움직였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저절로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박달나무로 만든 문 앞까지 올라갔다. 

덤블도어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는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리우스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시리우스의 얼굴은 처음 아즈카반에서 도망쳤을 때처럼 몹시 창백하고 바싹 야위었다. 시리우스는 재빨리 방을 가로질러서 해리에게 달려왔다. 

"해리, 너 괜찮니? 나는 짐작하고 있었단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시리우스는 해리가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부축을 해주었다. 해리는 시리우스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시리우스가 더욱 다급하게 물었다. 

덤블도어는 시리우스에게 바티 크라우치가 말했던 모든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하지만 해리의 귀에는 한 마디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미 녹초가 되어 버린 몸의 뼈마디 하나 하나마다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몇 시간동안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필요도 없이 잠에 곯아 떨어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불사조가 부드럽게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횃대에서 내려온 불사조 퍽스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날아와 해리의 무릎 위에 내려앉았다. 

"너로구나, 퍽스."

해리가 불사조를 쳐다보면서 힘없이 말했다. 해리는 불사조의 아름다운 진홍색과 황금색 깃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퍽스는 평화로워 보이는 눈을 깜박이면서 물끄러미 해리를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퍽스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점차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덤블도어는 이야기를 끝마친 후 해리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해리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덤블도어의 시선을 자꾸만 피했다. 이제부터 덤블도어는 질문을 할 것이다... 모든 일을 다시 기억하도록 만들 것이다...

"해리, 나는 네가 미로 속에서 포트키를 잡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한다."

마침내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아침까지 기다릴 수 있지 않을까요, 덤블도어? 해리는 잠을 자야만 합니다. 해리가 편안하게 쉬도록 해야 한다구요."

시리우스가 해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해리는 시리우스에게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시리우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리를 향해 몸을 바싹 기울였다. 마지못해 해리는 고개를 들고 덤블도어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만약 내가 너에게 마법을 걸어서 오늘 밤은 그냥 편안히 잠들게 하고, 내일 아침에 얘기하도록 하는 게 너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게다."

덤블도어가 작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단다. 고통을 피하기만 한다면, 네가 마침내 그 고통을 느껴야 할 때에는 오히려 더욱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너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용기를 보여주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네가 그 용기를 발휘하기를 원한단다.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우리에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 순간 불사조가 달콤하고 떨리는 울음 소리를 내었다. 불사조의 울음 소리가 해리의 고막에 와 닿았다. 갑자기 해리는 뜨거운 액체 한 방울이 목줄기를 타고 뱃속까지 흘러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점차 따뜻해지면서 저절로 기운이 솟았다. 

해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난 밤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마치 사진처럼 선명하게 해리의 눈앞에 떠올랐다... 해리는 볼드모트를 부활시킨 마법의 약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불꽃을 온 사방으로 튀기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광경을 보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무덤 사이 사이에서 나타났던 장면도 보았다... 케드릭의 시체가 트리위저드 우승컵 근처에 쓰러져 있던 모습도 보았다...

해리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있던 시리우스는 한두 번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조용히 손을 들어서 시리우스의 말을 막았다. 해리는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말문을 열고 나니까 점점 더 말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음이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무엇인가 해로운 것이 해리의 몸 속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결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이야기를 끝내고 나자,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그래서 웜테일은 단검을 휘둘러서 저의 오른팔을 찔렀..."

"뭐야?"

갑자기 시리우스가 해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블도어는 해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자리에서 후닥닥 일어서서 황급히 다가오더니 해리에게 팔을 내밀어 보라고 말했다. 해리는 옷이 찢어지고 상처가 난 팔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볼드모트는 일부러 다른 사람의 피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제 피를 사용하면 자기가 훨씬 더 강해질 거라고 말했어요."

해리가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볼드모트는... 저... 저의 어머니가 제게 남긴 보호의 힘을 자기도 갖게 될 거라고 했죠. 볼드모트의 말이 맞았어요. 볼드모트는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고 저를 만질 수가 있었어요. 볼드모트는 직접 저의 얼굴을 만지기도 했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해리는 덤블도어의 눈이 승리감으로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잘못 본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덤블도어가 다시 책상 앞으로 걸어가서 자리에 앉았을 때, 그의 얼굴은 지금까지 해리가 보았던 대로 몹시 피곤하고 늙어 보였기 때문이다. 

"잘 알겠다." 덤블도어가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볼드모트는 특별한 장애물 하나를 뛰어넘었구나. 해리, 어서 계속하거라."

해리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볼드모트가 가마솥에서 걸어나왔던 장면을 설명한 후에,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뭐라고 연설했는지 기억이 나는 대로 모두 들려주었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해리의 밧줄을 풀고 요술지팡이를 돌려주면서 결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황금빛 광선이 해리의 요술지팡이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를 연결한 대목에 이르자, 그는 목구멍이 꽉 막혀서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열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지만,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나왔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홍수처럼 해리의 머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해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케드릭... 낯선 노인과 버사 조킨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갑자기 시리우스가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을 때, 해리는 몹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두 개의 요술지팡이가 연결되었다는 거야?" 해리를 응시하고 있던 시리우스의 시선이 다시 덤블도어에게로 향했다. "왜 그런 거죠?"

해리도 궁금하다는 듯이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덤블도어는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꼼작없이 붙잡혔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프리오리 인칸타템이야."

덤블도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덤블도어의 시선이 해리의 시선과 서로 교차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상호 이해의 불꽃이 오고가는 것 같았다. 

"역주문 효과 말인가요?"

시리우스가 날카롭게 말했다.

"바로 그렇다네. 해리의 요술지팡이와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는 똑같은 심을 가지고 있다네. 두 개의 요술지팡이 모두 똑같은 불사조의 꼬리 깃털이 들어가 있지.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이 불사조라네."

덤블도어는 손을 들어 해리의 무릎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진홍색과 황금색의 불사조를 가리켰다.

"제 요술지팡이의 깃털이 퍽스의 것이란 말인가요?"

해리는 깜짝 놀라면서 덤블도어에게 물었다.        

"그렇단다, 해리. 4년 전에 너는 올리밴더 씨의 가게에서 그 요술지팡이를 구입했지. 네가 문을 나서자마자, 올리밴더 씨는 네가 그 두 번째 요술지팡이를 샀다고 곧장 내게 편지를 보냈단다."

"이 요술지팡이가 형제 요술지팡이를 만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죠?"

시리우스가 물었다. 

"서로 잘 싸울 수가 없게 된다네." 덤블도어가 말했다. "만약 요술지팡이의 주인들이 강제로 두 요술지팡이에게 싸움을 붙인다면... 아주 보기 드문 일이 일어난다네. 요술지팡이 중에 하나가 다른 요술지팡이에게, 자신이 행했던 마법들을 토해 내는 것이지. 거꾸로... 우선 가장 최근에 행했던 마법부터 나오기 시작해서... 차례 차례 모든 마법을 되풀이한다네."

덤블도어느 해리를 쳐다보면서 과연 그랬는지 물어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케드릭의 형상도 다시 나타났어야 하는데..."

덤블도어가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했다. 해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디고리가 다시 살아났단 말인가요?"

시리우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마법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네. 기껏해야 일종의 반향 같은 것이지. 살아 있는 케드릭의 형상이 요술지팡이에서 흘러나왔을 거야. 내 말이 맞니, 해리?"

덤블도어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케드릭이 나타나서 저에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케드릭의 유령이... 아니, 그게 뭐든지 간에 저에게 말했어요."

갑자기 해리의 몸이 다시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메아리란다. 케드릭의 모습과 성격을 그대로 지니고 있지. 내 생각엔, 다른 형체들도 나타났을 것 같은데... 최근에 볼드모트의 요술지팡이로 희생을 당했던 자들이..."

덤블도어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어떤 노인이 있었어요. 버사 조킨스도 있었고, 그리고..."

해리는 여전히 목구멍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네 부모님도?"

덤블도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시리우스는 해리의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움켜잡았다. 

덤블도어는 말을 계속했다.

"그 요술지팡이가 저지른 가장 최근의 살인부터 거꾸로 나오는 거야. 물론 네가 요술지팡이의 연결을 더욱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면, 좀더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을 거란다. 잘 했다, 해리. 그런데 희생자의 메아리들... 혹은 그림자들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그들은 무슨 행동을 했니?"

해리는 요술지팡이에서 나온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황금 그물망 언저리를 돌았는지, 볼드모트가 그들을 보면서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제임스 포터가 해리에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 주었는지, 케드릭이 어떤 마지막 요청을 했는지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그 대목에 이르자, 해리는 도저히 더 이상 말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힐끗 고개를 돌리자, 시리우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해리는 불사조 퍽스가 무릎에서 내려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사조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마룻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아름다운 머리를 해리의 상처입은 다리 위에 올려 놓았다. 불사조의 눈에서 진주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며 거미가 남긴 상처에 떨어졌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상처가 아물면서 다리의 부상은 씻은 듯이 나았다. 

불사조는 날갯짓을 하면서 푸드득 날아오르더니 다시 문 옆의 횃대에 내려앉았다.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싶구나."

덤블도어는 불사조를 힐끗 쳐다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해리, 오늘 밤에 너는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커다란 용기를 보여주었단다. 너는 전력을 다해 볼드모트와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과 똑같은 용기를 보여주었어. 어른 마법사들이나 감당할 만한 무거운 짐을 너도 충분히 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 거지. 이제 나와 함께 병동으로 가자. 오늘 밤에는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잠자는 마법의 약을 먹고 푹 쉬어야 하니까... 시리우스, 해리와 함께 있어 주겠나?"

시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벌떡 일어서더니 커다란 검은 개로 변신했다. 해리와 덤블도어와 검은 개로 변신한 시리우스는 함게 사무실을 나가서 병동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갔다. 

덤블도어가 병동의 문을 열었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과 빌, 론,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은 폼프리 부인을 둘러싸고, 해리가 어디에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질문 공세를 펴고 있던 모양이었다. 

해리와 덤블도어 그리고 검은 개가 병동으로 들어서자, 모두들 일제히 고개를 휙 돌렸다. 위즐리 부인은 비명이라도 지를 듯이 입을 딱 벌렸지만,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허둥지둥 해리에게 달려왔다. 

"해리! 오, 해리!"

하지만 덤블도어가 재빨리 위즐리 부인 앞을 가로막았다. 

"몰리." 덤블도어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잠깐만 내 말을 들어 주시오. 해리는 오늘 밤에 아주 끔직한 시련을 겪었소. 그리고 방금 전에 내게 이야기하느라고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소. 지금 이 애에게 필요한 건 조용히 안정을 취하며 잠을 푹 자는 것이오. 만약 해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어한다면, 그건 좋소." 덤블도어는 잠시 동안 론과 헤르미온느와 빌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해리가 대답할 마음의 준비가 되기 전까지, 어느 누구도 해리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더구나 오늘 밤에는 절대 안 될 일이오."

위즐리 부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즐리 부인의 얼굴을 몹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론과 헤르미온느와 빌이 시끄럽게 떠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을 돌아보면서 야단을 쳤다. 

"너희들도 들었지? 조용히 해야 한단다!"

"교장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건..."

폼프리 부인은 아주 난처한 눈빛으로 시리우스가 변신한 검은 개를 쳐다보았다. 

"이 개는 해리 곁에 머물러 있을 겁니다." 덤블도어는 단호한 태도로 딱 잘라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검은 개는 훈련이 아주 잘 되어 있답니다. 해리, 어서 침대에 누우렴."

해리는 다른 사람들의 질문 공세를 막아 준 덤블도어에게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들이 옆에 있는 것이 싫지는 않았지만, 또다시 비참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퍼지를 만나는 대로 다시 돌아오겠다, 해리." 덤블도어는 다정한 눈빛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내가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까지, 너는 내일도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덤블도어는 서둘러 병동을 떠났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를 가까운 침대로 데려갔다. 병실 제일 끝에 진짜 무디가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디의 나무다리와 마법의 눈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무디 교수님은 괜찮아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무디의 안부를 물었다. 

"그래, 곧 좋아질 거란다."

폼프리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에게 잠옷을 내주고는 침대 주위에 칸막이를 쳤다. 재빨리 옷을 벗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해리는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론과 헤르미온느, 빌, 위즐리 부인, 검은 개는 칸막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제각기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잔뜩 겁에 질려 있던 론과 헤르미온느는 어쩐지 두려운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아. 그저 피곤할 뿐이야."

해리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괜히 침대 커버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위즐리 부인의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부산하게 사무실로 달려 간 폼프리 부인은 자주색 약이 담긴 작은 병과 잔을 갖고 돌아왔다.

"해리, 이걸 다 마셔야 한다.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게 해주는 약이란다."

폼프리 부인이 다정하게 말했다. 해리는 잠자는 마법의 약을 잔에 부어서 몇 번에 걸쳐 나누어 마셨다. 즉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몽롱하게 보였다. 병동을 밝히고 있는 등불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칸막이 너머에서 다정하게 깜박거리는 것 같았다. 따뜻한 깃털 이불 속으로 해리의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약을 다 마시기도 전에, 지칠 대로 지친 해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문득 잠에서 깨어난 해리는 온몸이 너무나 나른했기 때문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병동은 여전히 희미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아직도 한밤중인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별로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않으면, 해리가 잠을 깰 거야!"

"도대체 왜 고함을 지르는 거죠?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질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해리는 살며시 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군가 해리의 안경을 벗겨서 치워 놓았기 때문에 제일 가까이 있는 위즐리 부인과 빌의 모습만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벌떡 일어나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건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야." 위즐리 부인이 속삭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미네르바 맥고나걸의 목소린데...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말다툼을 하는 걸까?"

이제 해리의 귀에도 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병동으로 다가오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요, 미네르바."

코넬리우스 퍼지가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절대로 그것을 성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덤블도어가 아는 날이면..."

해리는 병동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해리는 몸을 일으키고 앉은 후에 안경을 찾아서 썼다. 하지만 침대 옆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빌이 칸막이를 젖히자, 모두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 스네이프와 맥고나걸 교수가 그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덤블도어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코넬리우스 퍼지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여긴 안 계세요. 장관님, 여기는 병동이에요. 좀 조용히 하셔야..."

위즐리 부인이 잔뜩 화가 나서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문이 다시 열리더니 덤블도어가 재빨리 병실로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왜 여기에서 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겁니까? 미네르바, 솔직히 당신에게 놀랐소. 분명히 바티 크라우치를 지키고 있으라고 말했는데..."

덤블도어가 코넬리우스 퍼지와 맥고나걸 교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물었다. 

"이제는 더 이상 크라우치를 지키고 있을 필요도 없어요! 덤블도어 교수님! 퍼지 장관님께서 이미 다 알아서 처리하셨으니까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가 지금처럼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맥고나걸 교수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두 손은 불끈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로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스네이프가 조근조근 설명했다. 

"퍼지 장관님을 만난 자리에서, 오늘 밤 사건을 주동한 죽음을 먹는 자를 우리가 붙잡았다고 보고드렸습니다. 그러자 퍼지 장관님은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디멘터 한 명을 데리고 성으로 들어오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바티 크라우치가 잡혀 있는 사무실로 디멘터를 데리고 들어오더니..."

"덤블도어 교수님, 저는 교장 선생님이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어요! 저는 퍼지 장관님에게 교장 선생님은 디멘터가 이 성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가 씩씩거리면서 소리쳤다. 

"그게 잘못이란 거요?" 코넬리우스 퍼지가 호통을 쳤다. 해리는 지금처럼 심하게 화를 내는 코넬리우스 퍼지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법부 장관으로서, 지극히 위험한 자를 만날 때, 경호원을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내가 결정할 소관이란 말이오..."

하지만 코넬리우스 퍼지의 목소리는 이내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순간..." 맥고나걸 교수는 온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크라우치에게 허리를 숙이더니... 그리고... 그리고..."

그 순간 해리는 뱃속이 싸늘하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맥고나걸 교수는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썼다.

하지만 맥고나걸 교수는 굳이 말을 다 끝낼 필요가 없었다. 디멘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멘터는 바티 크라우치에게 죽음의 입맞춤을 한 것이다. 그리고 입을 통해서 크라우치의 영혼을 빨아들인 것이다. 이제 크라우치는 차라리 죽은 것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크라우치가 받은 처벌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크라우치는 벌써 몇 사람이나 죽인 게 분명하지 않소!"

코넬리우스 퍼지가 발끈 화를 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증언도 할 수가 없게 되었군, 코넬리우스. 어째서 그 사람들을 죽였는지 증언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네."

덤블도어는 마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크라우치가 그들을 죽였냐구? 그건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나? 안 그런가? 크라우치는 미쳤어. 마구 날뛰는 정신병자였단 말야! 미네르바와 세베루스가 나에게 들려 준 이야기에 따르면, 크라우치는 마치 이 모든 일들을 그 사람의 지시에 따라서 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코넬리우스 퍼지가 거칠게 소리쳤다. 

"코넬리우스, 분명히 볼드모트 경이 그에게 지시를 내렸다네." 덤블도어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들의 죽음은 볼드모트가 다시 완전한 힘을 되찾기 위해 세웠던 치밀한 계획에 따른 것이었네. 그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지. 볼드모트는 원래의 몸을 되찾았으니까."

코넬리우스 퍼지는 마치 누군가에게 한 방 얻어맞은 듯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방금 들었던 이야기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덤블도어를 노려보면서 갑자기 기가 막히다는 듯이 푸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돌아왔단 말인가? 터무니없는 소리! 이보게, 덤블도어..."

"미네르바와 세베루스가 자네에게 말한 대로, 우리는 바티 크라우치의 진술을 들었네. 베리타세룸을 마신 후에 바티 크라우치는 무슨 수로 아즈카반에서 도망쳤는지 솔직하게 털어 놓았어. 그리고 버사 조킨스를 통해 크라우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볼드모트가 어떻게 해서 그를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는지 고백했다네. 물론 볼드모트가 해리 포터를 사로잡을 수 있도록 어떤 술책을 부렸는가에 대한 것도... 이미 말한 대로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다네. 크라우치는 볼드모트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거지."

덤블도어가 말했다. 

"이것 보게, 덤블도어." 코넬리우스 퍼지가 입을 열었다. 해리는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설마 그 이야기를 정말로 믿는 것은 아니겠지?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말을? 이봐요, 이봐... 분명히 크라우치는 그 사람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다고 믿었을 거야. 하지만 덤블도어, 그런 정신 이상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다니..."

"오늘 밤에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붙잡자마자, 곧장 볼드모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네." 덤블도어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볼드모트 경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어. 내 사무실로 잠깐 올라오면, 모두 다 설명해 주겠네."

해리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린 덤블도어는 해리가 잠에서 깨어난 것을 보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밤에 해리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허락할 수가 없군."

코넬리우스 퍼지는 입가에 여전히 기묘한 웃음을 떠올리면서 해리를 힐끗 돌아보았다. 

"자네는... 음... 그러니까 해리의 말까지 귀담아 들을 생각인가, 덤블도어?"

코넬리우스 퍼지의 시선이 다시 덤블도어에게 향했다. 잠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은 이내 시리우스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다. 시리우스는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검은 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운 채,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었다. 

"물론, 나느 해리의 말을 믿네. 나는 크라우치의 고백도 들었고, 해리에게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에 손을 갖다 댄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들었네. 두 사람의 진술은 서로 정확하게 들어맞았어. 그리고 지난 여름에 버사 조킨스가 실종된 이후로 계속 일어났던 일련의 이상한 사건들도 모두 의문이 풀렸네."

이제 덤블도어의 눈은 분노로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코넬리우스 퍼지의 입가에 떠오른 기묘한 미소는 좀처럼 사라질 줄을 몰랐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또다시 이상야릇한 눈길로 해리를 힐끗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미친 살인자와 한 꼬마의 말만 듣고 볼드모트 경이 다시 돌아왔다고 믿는 모양이군... 하지만 저 꼬마도 정신이... 글쎄..."

그 순간 해리는 코넬리우스 퍼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깨달았다. 

"퍼지 장관님도 리타 스키터의 기사를 읽으셨군요."

해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론과 헤르미온느, 위즐리 부인 그리고 빌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들은 해리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집스럽고 완강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랬다면 어쩔 건가? 자네가 저 소년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비밀로 감추고 있었다는 걸 내가 알았다면? 심지어 저 소년은 뱀의 말까지 할 줄 안다면서? 그 밖에도 아주 재미있는 소문들이 떠돌고 있던데..."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를 노려보면서 완강하게 말했다. 

"가끔씩 해리가 이마의 흉터에서 통증을 느끼는 걸 말하는 모양이군."

덤블도어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자네도 해리가 머리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건가? 그건 도대체 뭐지? 두통인가? 악몽? 그게 아니라면 환각?"

코넬리우스 퍼지가 단호하게 따졌다. 

"코넬리우스! 내 말을 똑똑히 듣게나." 덤블도어는 코넬리우스 퍼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순간 덤블도어의 몸에서, 그가 젊은 크라우치를 기절시켰을 때 해리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해리는 당신이나 나처럼 말짱하네. 해리의 이마에 나 있는 흉터는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다만 볼드모트 경이 가까운 곳에 있거나 혹은 특별히 살기를 느낄 때, 상처가 쿡쿡 쑤시는 것 뿐일세."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 앞에서 반 걸음 가량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금도 기가 꺾인 것 같지 않았다. 

"미안하네, 덤블도어. 하지만 나는 비상벨처럼 미리 위험을 감지해서 알려 주는 흉터 마법이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

"저는 볼드모트가 부활하는 걸 직접 봤어요!" 해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해리는 다시 침대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위즐리 부인이 강제로 해리를 붙잡았다. "저는 두 눈으로 죽음을 먹는 자들을 똑똑히 보았어요! 그 이름도 말할 수 있어요! 루시우스 말포이!"

갑자기 스네이프가 움찔하면서 몸을 움직였다. 해리는 스네이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스네이프는 슬그머니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루시우스 말포이는 아무런 혐의가 없어! 말포이가는 아주 전통있는 가문이야. 게다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엄청난 기부금을 내는데..."

코넬리우스 퍼지는 노골적으로 화를 내었다. 

"맥네어!"

해리는 계속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그 사람도 결백해! 지금은 마법부를 위해서 일하고 있단 말이야!"

"애버리! 놋! 크레이브! 고일!"

"너는 그저 13년 전에 이미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는 무죄 판정을 받아서 석방된 사람들의 이름을 다시 읊어대고 있을 뿐이야! 과거의 재판 기록에서 그 이름들을 보았겠지! 덤블도어, 작년 말부터 이 아이의 머리 속에는 온갖 해괴한 생각들이 가득 차 있네. 이 아이가 하는 말은 날이 갈수록 가관이야. 그런데 자네는 그걸 더욱 부추기고 있으니... 덤블도어, 이 아이는 뱀의 말을 할 수 있단 말일세. 그런데 자네는 이 아이의 말을 믿는다는 건가?"

코넬리우스 퍼지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정말 멍청하군요! 케드릭 디고리! 크라우치 씨! 이 사람들의 죽음은 절대로 정신병자가 제멋대로 저지른 소행이 아니에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는 증거도 없지 않소!" 코넬리우스 퍼지는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고 더욱 목청을 높였다. 코넬리우스 퍼지의 얼굴은 거의 보랏빛으로 변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들 모두 우리가 지난 13년 동안에 이루어 놓았던 모든 업적들을 단번에 무너뜨리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소!"

그 순간 해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해리는 언제나 코넬리우스 퍼지가 약간 호통을 잘 치고 허세를 부리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마음씨가 선량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금 해리의 눈앞에 서 있는 땅딸막하고 분노에 가득 찬 이 마법사는, 안락하고 질서정연한 세계에 무서운 혼란이 일어날까 봐서 명백한 진실을 막무가내로 부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볼드모트는 부활했네!" 덤블도어가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퍼지, 만약 자네가 그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즉시 필요한 조처를 취한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걸세. 우선 가장 시급하고 우선적인 일은 아즈카반을 지배하고 있는 디멘터들을 내보내는 일이네."

"터무니없는 소리! 디멘터들을 아즈카반에서 내보내라구? 그런 주장을 한다면, 나는 당장 마법부에서 쫓겨날 거야! 그나마 디멘터들이 아즈카반을 지키고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우리 중에서 절반은 밤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있단 말이야!"

코넬리우스 퍼지는 버럭 고함을 지르면서 단번에 덤블도어의 주장을 일축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있네. 코넬리우스, 당신이 볼드모트 경의 가장 위험스러운 추종자들에게 마법 생물 관리를 맡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세. 그들은 언제든지 볼드모트가 부르기만 하면, 즉시 달려가서 합세할 자들이야!" 덤블도어가 경고했다. "퍼지, 자네는 그들이 자네에게 언제까지나 충실할 거라고 믿는가? 자네보다는 볼드모트가 그들에게 더욱 많은 힘과 더욱 많은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디멘터가 볼드모트의 뒤를 따르고 옛 추종자들이 다시 어둠의 주인에게 돌아간 뒤에, 볼드모트가 13년전과 똑같은 힘을 되찾는 걸 막으려 한다면, 그땐 너무 힘이 들 걸세!"

코넬리우스 퍼지는 너무나 화가 나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잠시 입을 열었다가 그냥 다물어 버렸다.

"두 번째로 자네가 즉각 해야 할 일은 거인족에게 외교 특사를 보내는 일일세."

덤블도어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코넬리우스 퍼지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거인족에게 특사를 보내란 말인가? 이건 또 무슨 정신나간 소린가?"

다시 할 말을 찾았다는 듯이 코넬리우스 퍼지가 날카롭게 외쳤다. 

"너무 늦기 전에 거인족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도록 하라는 말일세. 만약 그렇지 않으면 볼드모트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직 자신만이 거인족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 줄 수 있는 유일한 마법사라고 거인들을 설득할 게 분명해!"

"서...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코넬리우스 퍼지는 기가 막힌 듯이 입을 딱 벌렸다. "만약 마법 사회에 내가 거인족과 접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덤블도어... 그렇게 되면 내 경력은 끝장이야. 사람들은 거인족을 증오한단 말일세."

코넬리우스 퍼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주춤주춤 물러났다. 

"코넬리우스, 자넨 눈이 멀었어!" 덤블도어는 이제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덤블도어의 몸에서 발산되는 기운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였다. "자네가 차지하고 있는 그 직책에 대한 애착 때문에! 자넨 항상 소위 그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어!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건 어떤 신분으로 태어나는가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단 말일세! 하지만 이제 방금 그 어떤 가문보다도 유서깊고 순수한 혈통을 지닌 명문가의 단 하나 남은 후손을 당신의 그 잘난 디멘터가 송두리째 파괴시키고 말았네! 그 젊은이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자네도 한 번 보게나! 나는 자네에게 분명히 말하겠네. 어서 내가 제안한 그 조처들을 취하도록 하게나.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넨 마법부 내에서나 밖에서나, 역대 마법부 장관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용기 있는 장관으로 영원히 기억될 수 있을 걸세! 하지만 이대로 포기한다면, 역사는 자넬 비겁하게 뒤로 물러나서 볼드모트에게 우리가 애써 재건하고 있는 이 세계를 파괴할 수 있도록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한 인물로 기억할 걸세!"

덤블도어의 눈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미쳤군. 정신이 나갔어..."

코넬리우스 퍼지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품프리 부인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해리의 침대맡에서 얼어붙은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해리는 벌떡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조용히 서 있던 위즐리 부인이 재빨리 해리의 어깨를 손으로 눌렀다. 빌과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는 매서운 눈초리로 코넬리우스 퍼지를 노려 보고 있었다.

"코넬리우스, 만약 자네가 끝까지 계속 모르는 척하겠다면... 우리는 이제 갈림길에 온 것 같네." 덤블도어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자넨 자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게나.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겠네."

덤블도어의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다. 코넬리우스 퍼지를 협박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단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을 담담하게 선언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치켜들고 덤벼들기라도 한 것처럼 벌컥 화를 내었다.

"이보게, 덤블도어. 나는 항상 자넬 존중하면서 자율적인 지도권을 보장해 주었네. 나는 자네에게 많은 존경심을 갖고 있었어. 때때로 자네 결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두었네. 자네가 늑대인간을 고용하거나 해그리드를 데리고 있거나 혹은 마법부와 한 마디 의논도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가르칠 내용을 제멋대로 정하는 일 따위를 너그럽게 허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 하지만 자네가 나를 방해하려고 한다면..."

코넬리우스 퍼지는 위협적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내가 방해하려고 하는 단 한 사람은 바로 볼드모트 경이야. 만약 자네도 볼드모트를 반대한다면... 코넬리우스, 우리는 여전히 같은 편일세."

덤블도어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 말에 코넬리우스 퍼지는 할 말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중산모를 빙빙 돌리면서 병실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마침내 코넬리우스 퍼지가 애원하듯이 중얼거렸다.

"그 사람이 부활하다니... 덤블도어,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갑자기 스네이프가 덤블도어 앞을 지나가 성큼성큼 코넬리우스 퍼지를 향해 다가갔다.

스네이프는 왼쪽 소맷자락을 위로 걷어 올리더니 코넬리우스 퍼지의 코앞에 바싹 들이대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몹시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여기를 보십시오." 스네이프가 팔뚝을 내밀면서 거칠게 말했다. "바로 여기를 말입니다. 이건 바로 어둠의 표식입니다. 지금은 비록 조금 흐려졌지만, 한 시간 전에는 까맣게 타올랐을 정도로 아주 선명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표식을 확인할 수는 있을 겁니다. 어둠의 주인은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낙인을 찍었습니다. 어둠의 표식을... 이건 서로를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자, 볼드모트가 우리를 부르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죠. 만약 볼드모트가 어떤 죽음을 먹는 자의 팔에 찍힌 이 표식을 만지면, 우리는 즉시 순간이동을 해서 그 사람의 곁으로 가야만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어둠의 표식은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카르카로프의 팔뚝에 찍혀 있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밤에 카르카로프가 왜 도망을 쳤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두 사람은 어둠의 표식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마침내 그 사람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카르카로프는 볼드모트의 복수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카르카로프는... 죽음을 먹는 자들을 너무나 많이 밀고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결코 환영받을 수 없을테니까요."

코넬리우스 퍼지는 주춤주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스네이프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네이프의 팔에 찍힌 추악한 문신을 보고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덤블도어, 당신과 당신의 교수들이 지금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네. 하지만 나는 이제 충분히 들었어. 더 이상 들을 말도 없네. 내일 다시 연락하리다. 그리고 이 학교의 운영 방침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을 하겠네. 나는 지금 당장 마법부로 돌아가야만 해."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중얼거렸다. 거의 병실 문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 코넬리우스 퍼지가 문득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다시 빙글 뒤로 돌아서더니 병실을 가로지르면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마침내 코넬리우스 퍼지는 해리의 침대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네 상금이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호주머니 속에서 커다란 금화 주머니를 꺼내더니 해리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우승자에게 주는 1000갈레온이다. 당연히 성대한 축하 파티를 열어야만 하겠지만, 아무래도 지금 상황으로는 어려울 것 같구나..."

코넬리우스 퍼지는 다시 중산모를 머리에 쓰고 병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잠시 후에 병실 문이 쾅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닫혔다. 코넬리우스 퍼지가 사라지자마자, 덤블도어는 진지한 눈길로 해리의 침대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할 일이 있소." 덤블도어가 신중하게 말했다. "몰리... 내가 당신과 아서를 믿어도 되겠소?"

"물론이에요." 위즐리 부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우리는 코넬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아서가 계속 마법부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던 것도... 남편이 머글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죠. 퍼지는 아서가 마법사로서 응당 가져야 할 자부심이 없다고 생각해요."

위즐리 부인은 입술까지 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표정은 아주 단호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아서에게 편지를 보내야만 하겠소. 진실을 납득시킬 수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즉시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하오. 아서는 마법부 내에서 코넬리우스처럼 편협한 사고를 지니지 않은 사람들과도 접촉하기 쉬운 위치에 있잖소."

덤블도어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아빠에게 가겠어요. 지금 당장 가죠."

빌이 벌떡 일어섰다.

"훌륭하구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말씀드리거라. 조만간 내가 직접 아버지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겠다는 말씀도 전하거라. 하지만 아주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할 거야. 만약 내가 마법부의 일에 간섭하고 있다고 퍼지가 생각하게 된다면..."

덤블도어가 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제게 맡기세요."

빌을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빌은 해리의 어깨를 툭 치더니 어머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다음에 망토를 집어 들고 재빨리 병실을 나갔다. 

"미네르바." 덤블도어가 맥고나걸 교수를 향해 돌아섰다. "가능한 빨리 해그리드를 내 사무실로 불러 주시오. 즉시 해그리드를 만나야겠소. 그리고 맥심 부인도 불러주시오. 부인이 동의하신다면 말이오."

맥고나걸 교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병실을 떠났다. 

"폼프리 부인... 미안하지만 무디 교수의 사무실에 좀 갔다 오겠소? 그곳에 가면 몹시 슬퍼하고 있는 윙키라는 꼬마 집요정을 만날 수 있을 거요. 그 요정을 달래서 다시 주방으로 데리고 가 주시오. 아마도 도비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 요정을 잘 보살펴 줄 거요."

"잘... 잘 알겠어요."

폼프리 부인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를 떠났다.

덤블도어는 병실의 문이 닫힌 후에도 폼프리 부인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덤블도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드디어 우리 중의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순간이 되었군. 시리우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나."

커다란 검은 개는 덤블도어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더니, 순식간에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다.

위즐리 부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침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시리우스 블랙!"

위즐리 부인이 손가락으로시리우스를 가리키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엄마, 조용히 좀 해요! 괜찮단 말이에요!"

론이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었다.

스네이프는 비록 소리를 지르거나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표정으로 시리우스를 노려보았다.

"이 자는!" 스네이프가 차가운 눈길로 시리우스를 쳐다보면서 으르렁거렸다. "도대체 여기에서 뭘 하는 거죠?"

시리우스도 스네이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두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딱 마주쳤다. 시리우스도 온통 혐오감이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시리우스는 내 초대를 받아서 이곳으로 온 거라네." 덤블도어는 두사람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자네처럼 말이네... 나는 두 사람을 모두 신뢰하고 있다네. 이제 두 사람 모두 해묵은 미움은 그만 잊어버리도록 하게. 마침내 서로 신뢰해야 할 때가 온 거야."

해리는 덤블도어가 거의 기적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시리우스와 스네이프는 여전히 미움과 증오가 가득 담긴 눈길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노골적인 적대감만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대로 만족할 걸세." 덤블도어가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서로 악수를 하게. 시리우스... 스네이프... 이제 두 사람은 같은 편이야. 시간이 별로 없다네. 진실을 알고 있는 우리 몇 사람조차도 협력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네."

아주 천천히 (하지만 여전히 상대방이 잘못되기만을 바라는 듯한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시리우스와 스네이프는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마지못해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아주 재빨리 돌아섰다.

덤블도어가 다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말했다.

"계속 그렇게만 지낸다면 됐네. 지금부터 두 사람에게 각자 해야 할 일을 맡기겠네. 퍼지가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은 되지만, 어쨌거나 퍼지의 태도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완전히 달라질 걸세. 시리우스, 자네는 즉시 길을 떠나도록 하게. 옛 동료 리무스 루핀과 아라벨라 피그, 먼던구스 플레쳐에게 어서 경고를 해야 해. 한동안 루핀 곁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도록 하게.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거야.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을 하겠네."

"하지만..."

해리가 불쑥 말을 꺼냈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다. 이렇게 빨리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금방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거야, 해리. 약속하겠어. 하지만 지금은 아주 바쁜 일이 있단다. 나는 서둘러 그 일을 처리해야만 해. 이해할 수 있겠지?"

시리우스는 따뜻한 애정이 담긴 눈길로 가만히 해리를 바라 보았다.

"그래요." 해리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물론이죠."

시리우스는 해리의 손을 살짝 잡았다가 다시 놓았다. 그리고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까딱 머리를 숙이더니 순식간에 검은 개로 변신했다.

검은 개는 병실의 문을 향해 달려가 앞발로 손잡이를 돌렸다. 해리는 검은 개가 사라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세베루스... 내가 자네에게 어떤 부탁을 하려는지 자네는 알고 있을 거라고 믿네.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각오가 되었다면 말이네..."

덤블도어는 천천히 스네이프를 향해 돌아섰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스네이프의 얼굴은 어쩐지 평소보다도 더욱 창백하게 보였으면, 차갑고 검은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로 번뜩이고 있었다.

"행운을 비네."

덤블도어가 아무런 말도 없이 시리우스의 뒤를 따라나가는 스네이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덤블도어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야 할 것 같구나. 디고리 부부를 만나야 하니까... 해리, 남은 약을 마저 마시도록 해라.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마."

덤블도어마저 나가자, 해리는 털썩 베개 위로 쓰러졌다.

헤르미온느와 론 그리고 위즐리 부인은 한결같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해리, 남은 약을 마저 마시도록 해라." 마침내 위즐리 부인이 약병과 잔을 집어 들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랫동안 푹 자려무나. 뭔가 다른 생각을 해보는 건 어떻겠니? 이 상금으로 뭘 살지 생각하는 게 좋겠구나!"

위즐리 부인은 해리의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황금 꾸러미를 가리켰다.

"하지만 저는 그 금화를 받고 싶지 않아요. 아주머니가 가지세요. 아무나 가지라고 하세요. 저는 그걸 받아서는 안 돼요. 그건 케드릭 거예요."

해리가 무감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로를 빠져나온 이후로 줄곧 해리가 애써 피하려고 했던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다. 눈시울이 점차 뜨거워지더니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해리는 눈을 깜박이면서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았다.

"해리, 그건 네 잘못이 아니었다."

위즐리 부인이 해리를 위로했다.

"제가 케드릭에게 함께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자고 말했어요."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목구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었다. 해리는 론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지않기 바랬다.

위즐리 부인은 침대 옆 테이블 위에 약을 내려놓더니 해리에게 다가와 두 팔로 해리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해리는 한 번도 이렇게 누군가의 품에 다정히 안겨 본 기억이 없었다.

위즐리 부인의 품에 안기자, 해리는 지난 밤에 보았던 모든 일들이 한순간에 머리 위로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의 얼굴... 아버지의 목소리...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케드릭의 시신... 이 모든 것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빙빙 맴돌았다. 마침내 해리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면서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려고 하는 비탄에 찬 울부짖음과 싸워야만 했다.

갑자기 뭔가를 탁 내리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위즐리 부인과 해리는 얼른 몸을 떼었다. 뭔가를 손에 꼭 잡고 있는 헤르미온느가 창가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해요."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 약을 먹어라."

위즐리 부인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재빨리 말했다. 해리는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순식간에 효력이 나타났다. 저항할 수 없는 무거운 잠의 파도가 해리를 덮쳤다. 베개 위로 털썩 쓰러진 해리는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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