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장
살과 피와 뼈
마침내 해리는 발이 땅바닥에 닿는 것을 느꼈다. 상처입은 다리가 힘없이 꺾이면서 해리는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손에서 떨어졌다. 해리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해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케드릭은 고개를 저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해리가 일어날 수 있도록 팔을 부축해 주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호그와트 운동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몇 킬로미터, 어쩌면 거의 수백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호그와트 성을 둘러싸고 있는 높은 산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풀이 무성하게 뒤덮인 어두운 공동묘지였다. 오른쪽에는 커다란 주목나무 너머로 교회의 검은 그림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왼족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 언덕 위에는 웅장하고 오래된 저택이 한 채 자리잡고 있었다.
케드릭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해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이 우승컵이 포트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니?"
"전혀... 그런데 이것도 시험의 일부일까?"
해리는 공동묘지를 빙 둘러보았다. 온 세상은 마치 죽은 듯이 고요했다. 그리고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도 모르겠어. 요술지팡이를 빼지 않을래?"
케드릭은 불안한 눈으로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래."
해리는 케드릭이 먼저 그런 제안을 한 것에 대해 은근히 기뻐하면서 대답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요술지팡이를 빼들었다. 해리는 계속 주위를 경계하면서 두리번거렸다. 또다시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오고 있어."
갑자기 케드릭이 초조하게 말했다. 두 사람은 짙은 어둠 속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사람은 공동묘지의 무덤들 사이를 지나서 그들을 향해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비록 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걸음걸이와 두 팔의 모양으로 미루어 볼 때, 뭔가를 품에 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키가 작달막한 그 사람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두건이 달린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 사이의 거리가 더욱 좁혀졌다. 해리는 그 사람이 갓난 아기 같은 것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 아기가 아니라 그냥 옷꾸러미일까?
해리는 천천히 요술지팡이를 내리면서 케드릭을 힐끗 돌아보았다. 케드릭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리를 마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서히 접근하고 있는 검은 그림자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마침내 그 사람은 커다란 대리석 묘비가 우뚝 솟아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과 겨우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잠시동안 해리와 케드릭과 키가 작달막한 그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바로 그 순간, 해리의 이마에 나 있는 흉터가 느닷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고통이었다. 해리는 도저히 고통을 참을 수가 없어 요술 지팡이를 툭 떨어뜨리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땅바닥으로 쓰러진 해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둘로 쪼개지는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다른 한놈은 죽여라!"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목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아바다 케다브라!"
해리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지만, 초록빛 섬광이 번쩍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뭔가 육중한 것이 쿵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마의 통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최고조에 달했다가 차츰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무슨 광경을 보게 될까? 해리는 몹시 두려워하면서 쿡쿡 쑤시는 눈을 조심스럽게 떠 보았다.
케드릭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케드릭은 이미 죽은 것 같았다.
짧은 몇 초의 순간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해리는 케드릭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릅뜨고 있는 회색 눈은 버려진 흉가의 창문처럼 공허하고 생기가 없었다. 절반 가량 벌어진 입은 당장이라도 처절한 비명을 지를 것만 같았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머리 속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전에, 무감각한 마비 상태에서 미처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도 전에, 누군가 해리의 몸을 잡아 일으켰다.
망토를 걸친 작달막한 체구의 남자가 품에 안고 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요술 지팡이에 불을 밝혔다. 그리고 해리를 끌고 대리석 묘비까지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깜박이는 요술지팡이의 불빛을 통해,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톰 리들
그 사람이 강제로 해리를 돌아서게 하는 바람에 해리는 그만 묘비에 등을 쾅 부딪히고 말았다. 망토를 입은 사람은 튼튼한 밧줄을 꺼내더니 목부터 발목까지 해리를 묘비에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해리는 어두운 두건 깊숙한 곳에서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해리가 마구 발버둥을 치면서 반항하자, 그 사람은 손바닥으로 해리를 세게 내리쳤다.
그 순간, 해리는 그 사람의 손가락이 네 개 밖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비로소 해리는 두건을 쓴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 사람은 바로 웜테일이었다.
"당신은!"
해리가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이미 해리의 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버린 웜테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밧줄이 단단하게 묶여 있는지 다시 한 번 분주하게 확인할 뿐이었다. 매듭을 더듬고 있는 웜테일의 손가락은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해리가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묘비에 단단히 묶여 있는 걸 확인하자, 웜테일은 망토 안에서 검은 천을 꺼내더니 해리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휙 돌아서서 허둥지둥 사라지고 말았다.
해리는 희미한 신음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웜테일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볼 수도 없었다. 묘비에 꽁꽁 묶여 있어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오직 정면만 바라볼 수 있었다.
케드릭의 시신은 6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었다. 그 너머에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별빛을 받으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해리의 요술지팡이는 바로 케드릭의 발치에 떨어져 있었다. 해리가 갓난 아기라고 생각했던 그 옷꾸러미는 무덤 근처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옷꾸러미가 움찔움찔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해리는 가만히 옷꾸러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또다시 이마의 흉터에 무서운 통증이 엄습했다. 갑자기 해리는 옷꾸러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옷꾸러미는 절대로 풀어지면 안 된다...
문득 해리의 발 밑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뱀이 수풀을 헤치면서 기어오고 있었다. 뱀은 해리가 묶여 있는 묘비 주위를 빙빙 돌았다. 또다시 웜테일이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웜테일은 뭔가 아주 육중한 물건을 힘들게 끌고 오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웜테일이 해리의 시야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웜테일은 돌로 만든 커다란 가마솥을 무덤 근처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커다란 가마솥 안에는 물처럼 보이는 것이 가득 들어 있어서 가마솥이 흔들릴 때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돌로 만든 그 커다란 가마솥은 지금까지 해리가 사용해 본 어떤 솥보다도 컸다. 어른이 들어가서 앉을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옷꾸러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더욱 심하게 움찔거렸다. 마치 옷꾸러미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웜테일은 가마솥 밑에 웅크리고 앉아서 요술지팡이로 정신없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
별안간 가마솥 밑에서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거대한 뱀은 어둠 속으로 스르르 모습을 감추었다.
가마솥에 담긴 액체는 금방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거품을 낼 뿐만 아니라 마치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탁탁 맹렬하게 불꽃을 튀겼다. 자욱한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면서, 불길을 살펴보고 있는 웜테일의 모습을 흐릿하게 가렸다. 옷꾸러미는 잔뜩 안달이 난 듯이 더욱 초조하게 버둥거렸다. 해리는 또다시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
"서둘러라!"
이제 가마솥 안의 액체는 작은 불꽃을 튀기면서 환하게 빛났다. 마치 다이아몬드를 촘촘하게 박아 놓은 것 같았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주인님."
"자... 어서!"
차가운 목소리가 웜테일을 재촉했다. 웜테일이 땅바닥에 놓여 있던 옷꾸러미를 풀자, 그 속에 싸여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해리는 마구 비명을 질렀지만, 입을 틀어막고 있는 천뭉치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웜테일이 지옥의 문을 열고 어떤 아주 추악하고 미끌미끌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를 꺼내 보여준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욱 끔찍했다. 수백 배는 더...
웜테일이 꺼낸 그것은 몸을 잔뜩 웅크린 갓난 아기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렇게 전혀 아기같이 생기지 않은 아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저 검붉은 살덩어리에 불과했다.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었으며 온몸에는 오톨도톨한 비늘이 잔뜩 덮여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의 팔과 다리는 가늘고 흐늘흐늘했으며, 마치 납작한 뱀의 머리처럼 생긴 그것의 얼굴에는(이 세상의 그 어떤 아이도 그런 얼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번뜩이는 빨간 눈동자가 달려 있었다.
그것은 혼자 힘으로는 거의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이 가느다란 팔을 내밀어 웜테일의 목에 걸자, 웜테일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들어올렸다. 그 바람에 두건이 뒤로 벗겨지고 말았다. 해리는 역겨워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난 웜테일의 창백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웜테일은 그것을 안고 가마솥의 가장자리까지 걸어갔다.
잠시동안 해리는 가마솥 안에서 끓어오르는 불꽃에 환하게 비추어진 그 사악하고 납작한 얼굴을 보았다. 웜테일은 품에 안고 있던 그것을 가마솥 안으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쉿 소리와 함께 그것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해리는 그 조그마한 몸뚱이가 퉁 하고 가마솥 바닥에 부드럽게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가마솥에 빠져 죽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거야.
해리는 마음 속으로 간절하게 생각했다. 이제 이마의 흉터는 불로 지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확확 쑤셨다.
제발... 그냥 빠져 죽도록 가만히 내버려둬!
마침내 웜테일이 입을 열었다. 웜테일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무나 겁에 질린 나머지, 웜테일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웜테일은 두 눈을 꼭 감고 천천히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더니 어둠을 향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바쳐진 아버지의 뼈여, 당신의 아들을 새롭게 하라!"
갑자기 해리의 발 밑에 있던 무덤이 쩍 갈라졌다. 공포에 질린 해리는 웜테일이 말을 마치자마자 고운 뼛가루가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뼛가루는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더니 가마솥 안으로 사르르 떨어졌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수면이 갈라지면서 쉿쉿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타닥타닥 사방으로 불꽃을 내뿜으면서 독약처럼 보이는 파란색으로 변했다.
이제 웜테일은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웜테일은 망토 안에서 길고 가느다란 단검을 꺼냈다. 은으로 만든 단검이 번쩍이는 빛을 뿌렸다. 무슨 일인지 웜테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구 흐느끼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웜테일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종의... 살을... 기... 기꺼이... 바치나니... 그대의 주인을... 다시... 살아나게 하라!"
웜테일은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손가락 한 개가 없는 바로 그 손이었다. 웜테일은 왼손으로 단검을 단단히 움켜쥐고 허공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해리는 그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웜테일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깨닫고 두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어둠을 가르는 비명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해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웜테일은 비틀거리며 땅바닥으로 쿵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입에서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뭔가 가마솥 안으로 풍덩 떨어지는 역겨운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가마솥에 담긴 액체는 이제 빨갛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꼭 감고 있던 해리의 눈 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웜테일은 숨을 헐떡거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참기 위해 신음소리를 내었다. 문득 웜테일의 가쁜 숨결이 해리의 얼굴에 와 닿았다. 어느 틈에 웜테일이 해리의 눈앞에 서 있었다.
"강... 강제로 빼앗은... 원수의 피... 그대는 그대의 적을... 부활하게 하리라!"
해리는 마구 발버둥쳤지만, 웜테일의 행동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밧줄로 꽁꽁 묶여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밧줄을 풀기 위해 애를 쓰면서 절망적으로 고개를 늘어뜨렸다. 문득 웜테일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칼날이 오른팔의 안쪽 부분을 깊숙히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찢어진 소맷자락 밑으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여전히 고통으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던 웜테일은 호주머니를 뒤적거려서 유리병을 꺼내더니 해리의 상처에 대고 흘러내리는 피를 받았다.
웜테일은 해리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들고 휘청거리면서 가마솥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가마솥에 붉은 피를 부었다. 가마솥에 담긴 액체가 즉시 하얀색으로 변하더니 눈부시게 빛났다.
마침내 일을 모두 끝낸 웜테일은 가마솥 옆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피가 철철 흐르는 잘린 팔뚝을 움켜쥔 채, 숨을 헐떡거리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마솥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불꽃을 온 사방으로 튀기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빛이 눈부실 정도로 밝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모두 검은색 융단같이 보일 정도였다.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빠져 죽어라.
해리는 마음속으로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일이 잘못되는 거야...
갑자기 사방으로 튀어오르던 불꽃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 대신에 가마솥에서 하얀 수증기가 자욱하게 피어 올랐다. 해리의 시야는 수증기로 인해 완전히 가려지고 말았다. 웜테일도... 케드릭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증기뿐이었다.
일이 잘못된 거야...
해리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가마솥에 빠져 죽었을 거야. 제발... 제발 죽어라...
그 순간 해리는 자욱한 수증기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버릴 정도로 엄청난 공포가 밀려들었다.
키가 훌쭉하고 해골처럼 앙상한 체구의 한 남자가 가마솥에서 천천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에게 옷을 입혀라."
자욱한 수증기 너머로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웜테일은 여전히 잘려 나간 팔뚝을 움켜잡은 채, 애처롭게 흐느끼고 있었다. 웜테일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더니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옷을 집어 들어 가마솥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 개뿐인 손을 움직여 주인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바싹 마른 체격의 남자가 가마솥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무서운 눈길로 해리를 노려보면서... 해리는 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지난 3년 동안 해리의 악몽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났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크고 번뜩이는 새빨간 눈, 뱀처럼 구멍만 뻥 뚫린 납작한 코, 해골보다 더욱 창백한 얼굴...
마침내 볼드모트 경이 부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