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장
세 번째 시험
"덤블도어도 그 사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론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해리는 펜시브에서 보았던 광경과 덤블도어가 말해 준 것들을 거의 다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들려주었다. 물론 시리우스에게 연락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덤블도어의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당장 부엉이를 보내서 소식을 알려주었던 것이다.
그날 밤에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학생 휴게실에 앉아서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는 해리의 머리 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스럽게 꼬이고 말았다. 해리는 덤블도어가 머리 속이 생각으로 가득 찼을 때에는 가끔씩 덜어 내는 것이 편하다고 말한 의미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론은 휴게실 벽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따뜻한 저녁이었지만, 론은 어쩐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덤블도어가 스네이프를 믿는단 말이야? 스네이프가 죽음을 먹는 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말로 그를 믿는단 말이야?"
론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그래."
해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짤막하게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거의 10분 동안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앉아서 묵묵히 자신의 무릎만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생각이 많으면 펜시브 하나 정도는 거뜬히 채우고도 남겠다고 생각했다.
"리타 그키터."
헤르미온느가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넌 어떻게 이런 순간에 그 여자 걱정을 할 수가 있니?"
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 걱정을 하는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생각하고 있었어... 그 여자가 스리 브룸스틱스에서 내게 했던 말 기억나? '나는 루도 베그만에 대해서 네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로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어...'라고 말이야. 그건 분명히 뼈가 있는 말이었어. 안 그래? 그 여자는 베그만의 재판을 취재했고 그 사람이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정보를 넘겼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윙키도 알고 있었던 거야. 기억하고 있지? '베그만 씨는 나쁜 마법사예요! 아주 나쁜 마법사예요!' 베그만이 풀려났을 때, 머리 끝까지 화가 난 크라우치 씨는 집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몰라."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베그만이 고의로 정보를 넘긴 것은 아니었잖아?"
론이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대답을 하는 대산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퍼지는 크라우치를 공격한 사람이 맥심 부인이라고 의심했단 말이지?"
론이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다시 물었다.
"그래. 하지만 단지 크라우치가 보바통의 마차 근처에서 없어졌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거였어."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해 봐. 그 여자는 거인족 혈통이 분명해! 물론 자신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론이 천천히 말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건 너무 당연해!"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면서 날카롭게 소리쳤다. "리타가 해그리드의 어머니에 대해 알아냈을 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생각해 봐! 또 퍼지도 그저 거인 혼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여자를 의심하고 있잖아! 그런 편견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진실을 말했을 때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익히 알고 있다면, 내가 맥심 부인이라도 원래부터 몸집이 큰 것 뿐이라고 우겼을 거야."
문득 헤르미온느가 시계를 바라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은 연습을 하나도 안 했잖아!" 헤르미온느는 거의 기절할 듯이 놀랐다. "장애 마법을 연습했어야 하는데! 내일은 정말로 그 주문을 끝내야만 해! 자, 해리. 넌 그만 자는 게 좋겠다."
해리와 론은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다. 해리는 잠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네빌의 침대를 힐끗 쳐다보았다. 덤블도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네빌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네 기둥이 달린 침대로 올라간 해리는, 만약 부모님이 아직까지 살아 계시면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한번 상상해 보았다. 해리는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사곤 했다. 하지만 네빌이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해리는 어쩐지 네빌에게 좀더 잘 대해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어둠 속에 누워 있던 해리는 갑자기 롱바텀 부부를 고문한 사람들에게 격렬한 분노와 증오심을 느꼈다. 크라우치의 아들과 공범자들이 디멘터에 의해 법정에서 나갈 때, 야유와 고함을 지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리는 그들의 기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던 소년의 우유처럼 새하얀 얼굴이 떠오르면서, 1년 후에 죽었다는 말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볼드모트! 이런 비극은 모두 다 볼드모트 때문에 비롯되었다. 해리는 어둠에 잠긴 천장을 노려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게 볼드모트 때문이야... 그 사람이 바로 모든 가정을 처참하게 파괴하고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놓은 장본인이었다.
사실 론과 헤르미온느는 학기말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해리의 세 번째 시합이 벌어지는 날이 바로 학기말 시험이 끝나는 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리를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난 이제부터 혼자 연습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빨리 시험 공부를 하도록 해."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학기말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마. 적어도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험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겠지. 사실 수업 시간만으로는 이 모든 주문들을 절대로 다 배우지 못했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나중에 우리가 오러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 좋은 훈련을 하는 셈이잖아."
론은 신이 나서 말했다. 그리고 교실 안으로 날아 들어온 말벌 한 마리에게 장애 마법을 걸었다. 그러자 말벌은 허공에서 죽은 듯이 딱 멈춰섰다.
6월이 되자, 성의 분위기는 다시 약간 들뜨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세 번째 시합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세 번째 시합은 학기가 끝나기 일주일 전에 벌어질 예정이었다. 해리는 틈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주문을 연습했다. 다른 어떤 시합보다도 이번 시합에 훨씬 더 자신감이 들었다. 분명히 아주 힘들고 위험한 시합이 되겠지만, 역시 무디의 말이 옳았다. 해리는 지금까지 무시무시한 괴물과 마법의 장애물들을 간신히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미리 통지를 받고 대비할 만한 여유도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에게 점심 시간에 변신술 교실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빈 교실을 찾아 학교 안을 헤매고 다니는 일에 완전히 지쳐버렸던 것이다. 해리는 곧 공격을 가해 오는 상대방을 저지하고 느리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장애 마법을 터득했고, 앞길을 가로막는 단단한 물체를 폭파시킬 수 있는 진압 마법도 익혔다. 또한 헤르미온느가 발견한 또 하나의 유용한 마법으로, 요술지팡이 끝을 항상 북쪽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미로 안에서 올바른 방향을 알 수 있는 나침반 마법도 배웠다.
하지만 방어벽 마법을 완전히 익히는 일에는 아직까지도 약간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주위에 둘러쳐서 약한 저주를 막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엿가락 다리 마법을 명중시켜서 단번에 해리의 방어벽을 깨뜨려 버렸다. 그 덕분에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엿가락 다리 마법을 푸는 주문을 찾아낼 때까지, 약 10분동안이나 흐느적거리면서 교실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아주 잘했어. 이 중에서 몇 개는 반드시 쓸모가 있을 거야."
헤르미온느는 배워야 할 마법이 적힌 목록을 들여다보면서 해리를 격려했다. 그리고 이미 배운 마법에는 가위표를 했다.
"이리 와서 저것 좀 봐. 말포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창가에 서서 고개를 내밀고 운동장을 쳐다보던 론이 말했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도 창문으로 다가가서 운동장을 쳐다보았다.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이 나무 그늘 밑에 서 있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능글맞게 씩 웃으면서 망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말포이는 손에 든 뭔가를 입에 갖다대고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
"마치 무전기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
해리가 호기심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내가 이미 말했잖아? 그런 물건들은 호그와트 안에서 사용할 수 없다고. 이리 와, 해리." 헤르미온느는 퉁명스럽게 한 마디 내뱉더니 창문에서 휙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교실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다시 한 번 방어벽 마법을 연습하자."
시리우스는 날마다 부엉이를 날려보냈다. 시리우스 역시 헤르미온느처럼, 다른 일들을 걱정하기에 앞서서 우선 해리가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는 일에만 정신을 집중하길 원하는 것 같았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호그와트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그것은 전혀 해리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며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매번 강조했다.
만약 볼드모트가 정말로 다시 강해지고 있다면, 내가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너의 안전이다. 네가 덤블도어의 보호 하에 있는 한, 볼드모트는 절대로 너에게 손을 댈 수가 없어. 그렇지만 위험한 짓은 하지 말거라. 안전하게 미로를 통과하는 일만 생각하도록 해. 그런 다음 다른 문제로 관심을 돌리도록 하자.
6월 24일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자, 해리의 신경도 점차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첫번째 시험이나 두 번째 시험을 치를 때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우선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시합준비를 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또한 이것은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잘하든 못하든 간에, 마침내 시합은 끝날 것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해리에게는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세 번째 시험을 치르는 날이 되자, 아침 식사를 하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은 몹시 시끌벅적했다. 우편 배달 부엉이가 해리에게 행운을 비는 카드를 전해 주었다. 그것은 시리우스가 보낸 카드였는데, 반으로 접힌 양피지 조각 위에 진흙을 묻힌 개의 발자국 하나가 턱 하니 찍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것만으로도 무척 고마웠다. 끽끽거리는 부엉이 한 마리가 평상시처럼 헤르미온느에게 <예언자 일보>를 갖다 주었다. 신문을 펼쳐 들고 앞면을 살펴보던 헤르미온느는 갑자기 입 안에 있던 호박 주스를 푸 뿜어내고 말았다.
"무슨 일이야?"
해리와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신문을 치워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론이 먼저 신문을 움켜잡았다.
"이럴 수는 없어! 오늘만은 안 돼! 주책맞은 노파 같으니라구!" 얼른 머릿기사를 훑어본 론이 버럭 화를 내었다.
"왜 그래? 또 리타 스키터야?"
해리가 물었다.
"아니야." 론은 헤르미온느와 똑같이 허둥지둥 신문을 치우려고 했다.
"나에 대한 기사가 실렸구나? 그렇지?"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야."
하지만 론의 목소리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 해리가 미처 신문을 보여 달라고 말하기도 전에 드레이코 말포이가 연회장 저편에 있는 슬리데린 테이블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이봐, 포터! 포터! 네 머리는 어떠냐? 오늘 기분은 괜찮아? 설마 우리에게 미친 듯이 덤벼드는 건 아니겠지?"
말포이의 손에는 <예언자 일보>가 들려 있었다. 슬리데린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킬킬거리면서 해리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어디 좀 보여줘. 이리 달란 말이야."
해리가 론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론은 좀처럼 내키지 않아 망설이다가 신문을 넘겨 주었다. 신문을 펼쳐든 해리는 굵은 활자로 된 제목 밑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다.
정신 이상 징후를 보이는 위험한 해리 포터!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자'를 몰락시켰던 소년이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는 위험한 지경에 이르다
-리타 스키터 특파원
최근에 벌어진 깜짝 놀랄 만한 사건들은 해리 포터의 이상한 행동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포터가 트리위저드 시합과 같은 치열한 경쟁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그와트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예언자 일보>가 독점으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포터는 정기적으로 학교에서 정신이상 징후를 보이며, 종종 이마에 난 상처(그 사람이 해리를 죽이려고 했을 때 남긴 저주의 유물)의 통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예언자 일보>의 리포터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지난 월요일, 점술 수업이 진행되던 도중에 포터는 너무나 상처가 쑤신 나머지 수업에 계속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교실을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마법 질병과 상해를 위한 성 뭉고 병원의 최고 권위자는, 포터의 두뇌가 그 사람이 가한 공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처가 계속 아프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은 혼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아픈 척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관심을 호소하는 것이죠."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예언자 일보>는 호그와트의 교장인 알버스 덤블도어가 그동안 조심스럽게 감추고 있었던, 해리 포터에 관한 또다른 불길한 사실을 공개하는 바이다.
"포터는 뱀의 말을 할 수 있어요." 호그와트 4학년생인 드레이코 말포이는 이렇게 진실을 밝히고 있다. "2년 전에 많은 학생들이 공격을 당했었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터가 그 일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해요. 결투 클럽에서 몹시 화가 난 해리가 뱀을 조종해서 다른 친구를 공격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모두들 입을 다물어야 했어요. 게다가 포터는 늑대인간이나 거인들과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포터는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거예요."
뱀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이 능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어둠의 마법으로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뱀의 말을 하는 자'는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어둠의 마법 방어 연맹의 한 간부는, 뱀의 말을 할 줄 아는 마법사라면 "누구든지 다 조사 대상에 올려야 하며, 개인적인 견해로는 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종종 뱀은 어둠의 마법 중에서도 가장 나쁜 마법에 이용되었으며, 역사적으로도 사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늑대인간이나 거인과 같은 그런 사악한 생물들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예외없이 폭력을 좋아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알버스 덤블도어는 이런 소년을 과연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도록 허락해도 되는지 심각하게 재고해야만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포터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필사적으로 승리하려는 욕심 때문에 어둠의 마법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트리위저드 시합의 세 번째 시험은 바로 오늘 저녁에 치러질 예정이다.
"좀 과장이 심하군. 그렇지?"
해리는 신문을 접으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슬리데린 테이블에서는 말포이와 크레이브와 고일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기괴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해리를 놀리고 있었다.
"점술 수업 시간에 네 상처가 아팠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 여자는 그 자리에 없었잖아. 그러니까... 엿들을 수도 없었을 텐데..."
론이 이상해했다.
"창문이 열려 있었어. 내가 답답해서 조금 열어 두었거든."
해리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는 북쪽 탑 꼭대기에 있었잖아! 네 목소리가 저 아래 운동장까지 들릴 수는 없어!"
헤르미온느가 한심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좋아. 그 여자가 사용하는 도청 방법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잖아! 그러니까 그 여자가 어떻게 했는지 네가 한번 설명해 봐!"
해리가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
"나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헤르미온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
갑자기 헤르미온느의 얼굴에 마치 꿈을 꾸듯이 이상한 표정이 떠올랐다. 헤르미온느는 천천히 손을 들더니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기 시작했다.
"너 괜찮니?"
론이 걱정스럽게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래."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다시 머리카락을 헤집더니 손을 입에 갖다대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해리와 론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헤르미온느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중얼거렸다. "이제야 알 것 같아... 왜 아무도 볼 수 없었는지... 심지어 무디까지도... 어떻게 해서 창문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하지만 그 여자는 허가를 받지 않았을 거야... 분명히 허가를 받지 않았어... 이제 드디어 그 여자를 잡은 것 같아! 잠깐 도서관에 좀 다녀올게! 확인 좀 해야겠어!"
그 말을 남긴 채, 헤르미온느는 가방을 움켜쥐고 쌩 하니 연회장에서 나가 버렸다.
"이봐!" 론이 헤르미온느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10분 후에는 마법의 역사 시험을 치러야 한단 말이야! 제기랄!" 론이 해리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시험에 늦을지도 모르는데 헤르미온느가 저러는 걸 보면, 리타 스키터가 정말 밉긴 미운가 봐. 그런데 해리, 넌 시험시간에 뭘 할 거니? 다시 책이나 읽을래?"
트리위저드 챔피언인 해리는 모든 학기말 시험을 면제받았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시험이 있을 때마다 뒷자리에 앉아서 세 번째 시험을 위한 새로운 주문을 찾으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지 뭐."
해리가 론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맥고나걸 교수가 그리핀도르 테이블로 걸어오고 있었다.
"포터, 챔피언들은 아침 식사 후에 옆방에 모이기로 했단다."
"하지만 시험은 오늘 밤이잖아요!"
혹시 시간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덜컹한 해리는 그만 스크램블드 에그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포터, 나도 잘 알고 있다."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우리는 챔피언들 가족이 마지막 시합을 관람할 수 있도록 모두 초대했단다. 그래서 가족을 맞이할 시간을 주는 거야."
그 말을 마친 후에 맥고나걸 교수는 곧 가 버렸다. 해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맥고나걸 교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교수님은 설마 더즐리 가족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해리는 갑자기 멍해져서 론에게 말했다.
"몰라. 해리, 난 서둘러야겠어. 빈스 교수님 시험에 늦겠어. 나중에 보자."
텅빈 연회장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해리는 천천히 아침 식사를 끝마쳤다. 래번 클로 테이블에서 일어난 플뢰르 델라쿠르가 케드릭과 함께 옆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빅터 크룸이 구부정한 걸음걸이로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해리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방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해리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어쨌거나 목숨을 걸고 싸우는 해리를 보기 위해 찾아올 만한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새로운 주문이나 더 찾아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해리가 막 일어서는 순간, 옆방 문이 여리며서 케드릭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해리! 어서 들어와. 다들 너를 기다리고 있어!"
해리는 무슨 영문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즐리 가족이 호그와트까지 찾아왔을 리는 만무했다. 연회장을 가로질러 걸어간 해리는 문을 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케드릭과 그의 부모님은 바로 문 근처에 서 있었다. 빅터 크룸은 한쪽 구석에 앉아서 검은 머리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불가리아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빅터 크룸의 구부러진 코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방 맞은 편에서는 플뢰르가 불어로 어머니에게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플뢰르의 여동생 가브리엘은 해리를 보자 손을 흔들었다. 해리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다가 해리는 문득 벽난로 앞에 서 있는 위즐리 부인과 빌을 발견했다. 위즐리 부인과 빌은 해리에게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
위즐리 부인이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해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해리, 우리는 너를 보러 왔단다!"
위즐리 부인은 허리를 숙여 해리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너 괜찮니?" 빌은 씩 웃으면서 해리와 악수를 나누었다. "찰리도 오고 싶어했지만 시간을 낼 수가 없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네가 혼테일과 멋지게 싸웠다고 말하더라."
해리는 플뢰르 델라쿠르가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자꾸만 빌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기다란 머리카락이나 송곳니 귀고리에 전혀 아무런 거부감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정말 고마워요. 저는 잠시 동안 다른 생각을 했어요. 혹시 더즐리 가족이..."
해리가 위즐리 부인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음."
위즐리 부인은 입술을 오므리면서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위즐리 부인은 항상 해리 앞에서 더즐리 가족에 대해 험담하는 것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더즐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위즐리 부인의 눈은 분노로 차갑게 번뜩이곤 했다.
"여기 돌아오니까 정말 좋구나!"
빌이 천천히 방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뚱뚱한 여인의 친구인 바이올렛이 액자 안에서 빌에게 눈을 찡긋 했다)
"5년 만에 처음으로 와 보는 거야. 그 미친 기사는 여전히 돌아다니고 있니? 캐도간 경 말이야."
"오, 그럼요."
작년에 뚱뚱한 여인 대신 그리핀도르 기숙사 입구를 지키던 캐도간 경을 잊어버렸을 리 없었다.
"뚱뚱한 여인도?"
빌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그 여자는 내가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있었단다. 어느날 밤 새벽 4시에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하자, 나를 호되게 야단쳤었지."
위즐리 부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엄마는 새벽 4시까지 기숙사 밖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죠?"
빌이 새삼스럽게 놀란 눈으로 위즐리 부인을 바라보았다.
"네 아버지와 난 밤마다 산책을 즐겼단다. 그러다가 네 아버지는 그 당시의 기숙사 관리인이었던 아폴리온 프링글에게 붙잡히기도 했었지. 지금도 그 때의 상처가 남아 있단다."
위즐리 부인은 눈을 찡긋 하면서 씩 웃었다.
"우리 한 바퀴 돌아볼까, 해리?"
빌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면서 제안했다.
"네, 좋아요."
해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연회장으로 통하는 문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문을 막 지나치는 순간, 에이머스 디고리가 고개를 돌렸다.
"너로구나." 에이머스 디고리는 해리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우리 케드릭이 네 점수를 따라잡아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겠구나. 그렇지?"
"네?"
해리가 반문했다.
"그냥 못 들은 척 해. 우리 아빠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한 리타 스키터의 기사가 나간 후에 잔뜩 화가 나 있어. 그 여자가 마치 네가 호그와트의 유일한 챔피언인 양 기사를 썼기 때문이지."
케드릭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나지막이 해리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은 기사를 바로잡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에이머스 디고리가 해리의 귀에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떠들었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과 빌과 함께 이제 막 문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래... 저 녀석에게 본때를 보여주거라. 케드릭, 넌 전에도 저 녀석을 이긴 적이 있잖니?"
"에이머스, 리타 스키터는 말썽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그런 기사를 쓴 거라구요. 당신은 마법부에서 근무하고 있으니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위즐리 부인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에이머스 디고리는 씩씩거리면서 뭔가 한 마디 쏘아 붙이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에이머스 디고리의 아내가 팔을 붙잡으면서 말리자, 그는 어깨를 약간 으쓱거리더니 다시 뒤로 돌아섰다.
빌과 위즐리 부인과 함께 아침 햇살이 내리비치는 운동장을 산책하는 것은 너무나 즐거웠다. 해리는 두 사람에게 보바통의 마차와 덤스트랭의 배를 보여주었다. 위즐리 부인은 되받아치는 나무를 보고는, 자기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없었다며 커다란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해그리드 이전에 사냥터 지기로 근무했던 '오그'라는 사람을 떠올리면서 즐거워했다.
"퍼시 형은 어떻게 지내요?"
온실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해리가 질문을 던졌다.
"별로 좋지 않아."
빌이 대답했다.
"몹시 당황하고 있단다." 위즐리 부인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돌아보면서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마법부에서는 크라우치 씨의 실종 사건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아. 하지만 퍼시를 계속 소환해서 크라우치 씨가 보내는 편지에 대해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있어. 그 편지는 진짜 크라우치 씨의 편지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 일 때문에 퍼시는 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 심지어 마법부는 오늘 밤에 퍼시가 크라우치 씨를 대신해서 심판을 보는 일조차 허락하지 않았지. 코넬리우스 퍼지 장관이 직접 심판을 볼 거야."
그들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성으로 발길을 돌렸다.
"엄마! 빌!"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있던 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리쳤다. "여기에서 뭘 하시는 거예요?"
"해리가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는 걸 지켜보기 위해 왔단다! 솔직히 말해서 집안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멋진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 시험은 어땠니?"
위즐리 부인이 명랑하게 물었다.
"저... 괜찮았어요. 사실 도깨비 반란자들의 이름을 모두 다 기억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름 몇 개는 지어내야만 했죠. 그래도 상관없어요. 도깨비들의 이름은 하나같이 수염난 보드로드나 지저분한 우르그와 같은, 뭐 그런 것들이니까요.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어요."
론은 코니쉬 파스티(양념을 한 야채와 고기를 넣은 콘웰 지방의 파이 요리:역주)를 입에 잔뜩 쑤셔 넣으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해리는 위즐리 부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 그리고 지니도 그들 옆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해리는 마치 다시 버로우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헤르미온느가 식사 도중에 불쑥 나타기 전까지는 리타 스키터에 관한 일도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드디어 리타 스키터에 대해 뭔가 실마리를 잡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넌 우리에게 말해 주기로..."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부인을 힐끗 쳐다보더니, 해리에게 경고하듯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잘 있었니, 헤르미온느?"
위즐리 부인이 평소와 달리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반가운 미소를 지으려던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부인의 냉랭한 표정에 그만 멈칫하고 말았다.
"위즐리 아주머니, 설마 리타 스키터가 <마녀 주간지>에 쓴 그 쓰레기 같은 기사를 믿으시는 건 아니겠죠? 우린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해리는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물론이지! 당연히 믿지 않았단다!"
위즐리 부인이 황급히 변명했다. 그 후로는 헤르미온느를 대하는 위즐리 부인의 태도도 눈에 뜨일 정도로 다정하게 변했다.
오후에 해리와 빌, 위즐리 부인은 성을 빙 둘러보면서 오랫동안 산책을 즐겼다. 그리고 저녁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상석에는 루도 베그만과 코넬리우스 퍼지가 함께 앉아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무척 유쾌한 표정이었지만, 맥심 부인 옆자리에 앉아 있는 코넬리우스 퍼지는 딱딱한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맥심 부인은 앞에 놓인 음식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해리는 어쩐지 부인의 눈이 붉게 충혈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해그리드는 계속해서 테이블 너머로 맥심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만찬에는 평소보다 한두 가지 요리가 더 추가되었다. 하지만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한 해리는 별로 많이 먹지 못했다. 마법의 천장이 푸른색에서 짙은 보라색으로 바뀌자, 덤블도어가 교직원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연회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5분 후에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시험을 위해 퀴디치 운동장으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챔피언들은 지금 바로 베그만 씨를 따라서 운동장으로 가십시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핀도르의 모든 학생들이 해리를 위해 박수를 쳤다. 위즐리 가족들과 헤르미온느는 한 마음으로 해리의 행운을 빌어 주었다. 해리는 케드릭과 플뢰르, 빅터와 함께 연회장을 나섰다.
"기분은 괜찮니, 해리? 자신 있니?"
그들이 돌계단을 지나서 운동장으로 막 들어섰을 때, 루도 베그만이 물었다.
"전 괜찮아요."
해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약간 초조하고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꾸준히 연습했던 주문들과 마법들을 떠올리자 훨씬 더 마음이 편해졌다. 해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공부한 내용들을 계속 머리 속에 되새겼다.
잠시 후에 그들은 퀴디치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6미터 높이의 산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들 앞에는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입구 안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통로는 아주 어둡고 으스스한 느낌을 주었다.
5분 후에 관중석은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좌석을 찾아서 우르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학생들의 발소리와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온 사방에 울려퍼졌다.
이제 하늘은 맑고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초저녁 별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그리드와 무디 교수, 맥고나걸 교수, 플리트윅 교수가 퀴디치 경기장으로 들어오더니 루도 베그만과 챔피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모자에 번쩍번쩍 빛나는 커다랗고 붉은 별을 달고 있었는데, 오직 해그리드만이 두더지 가죽 조끼의 등판에 별을 달고 있었다.
"우리는 미로 바깥에서 경비를 서고 있을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네 명의 챔피언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만약 어려운 일이 생겨서 구조를 받고 싶다면, 하늘로 불꽃을 쏘아 올리도록 해요. 그럼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당장 달려가서 구해 줄 테니까... 알겠어요?"
챔피언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서 가세요!"
루도 베그만이 네 명의 구조반을 향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행운을 빈다, 해리."
해그리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더니 미로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루도 베그만은 다시 요술 지팡이를 목에 갖다대고 중얼거렸다.
"소노루스!"
그러자 마법으로 증폭된 루도 베그만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신사 숙녀 여러분,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시험이 곧 시작됩니다! 먼저 현재까지의 점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선 1등은 호그와트의 케드릭 디고리 군과 해리 포터 군입니다. 두 사람은 85점으로 동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오자, 금지된 숲에서 새들이 어두운 밤 하늘로 퍼드득 날아올랐다. "2등은 80점을 기록하고 있는 덤스트랭의 빅터 크룸 군입니다." 또다시 갈채가 터졌다. "3등은 보바통의 플뢰르 델라쿠르 양입니다!"
바로 그 순간 해리는 관중석 중간쯤에서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위즐리 부인과 론, 헤르미온느의 모습을 발견했다. 해리가 그들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자, 그들도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좋습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출발합니다. 해리와 케드릭!" 루도 베그만이 약간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셋... 둘... 하나."
루도 베그만이 짧게 호루라기를 불었다. 헤리와 케드릭은 재빨리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하늘 높이 치솟은 산울타리는 통로 위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산울타리가 너무 높고 빽빽하기 때문인지 혹은 어떤 마법의 힘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들리던 관중들의 요란한 함성 소리는 미로 속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싹 사라졌다.
해리는 마치 다시 물 밑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꺼내 들고 주문을 외웠다.
"루모스!"
해리의 등 뒤에서 케드릭도 똑같은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다. 50미터 가량 걸어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잘 가."
해리는 케드릭을 향해 손을 흔든 후에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케드릭은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해리는 루도 베그만이 두 번째로 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들었다. 빅터 크룸이 미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해리는 더욱 빨리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리가 선택한 길은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간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고 가능한 한 멀리까지 내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루도 베그만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이제 네 명의 챔피언 모두 미로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해리는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누군가가 해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하늘은 점점 더 짙은 군청색으로 물들었으며, 미로도 더욱 어둠침침하게 변했다. 마침내 해리는 두 번째 갈림길에 도착했다.
"방향을 가르쳐다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요술지팡이는 한 바퀴 빙 돌더니 오른쪽에 있는 단단한 산울타리를 가리켰다. 그 방향이 북쪽이라는 뜻이었다. 해리는 미로의 중앙을 찾아 가려면 북서쪽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일단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가 가능한 빨리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길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오른쪽 모퉁이를 돌아선 해리는 여전히 순탄하게 쭉 뻗어 있는 길을 발견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아무런 장애물도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해리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금쯤이면 분명히 뭔가 맞닥뜨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미로는 마치 해리를 방심하도록 만들기 위한 속셈인 것 같았다.
바로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면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재빨리 요술지팡이를 빼들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불빛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케드릭이었다. 케드릭은 이제 막 오른쪽 모퉁이를 황급히 돌아서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케드릭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케드릭이 입고 있는 옷의 소매단에서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해그리드의 폭탄 꼬리 스크루트야! 정말 엄청나게 커. 간신히 빠져나왔어!"
케드릭이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곧 다른 길로 모습을 감추었다. 스크루트와 멀리 떨어지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해리는 다시 종종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곧바로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해리는 끔찍한 것으로 보았다. 디멘터가 해리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모습을... 키가 3.5미터나 되는 디멘터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썩어 문드러지고 딱지가 덕지덕지 내려앉은 손을 쭉 내밀면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가 있는 곳을 감지하곤 곧장 빠른 속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해리는 디멘터의 거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싸늘한 냉기가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하지만 해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해리는 가장 행복한 광경을 애써 머리 속에 그렸다. 무사히 미로를 통과한 후에 론과 헤르미온느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모든 정신을 거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들고 소리쳤다.
"익스펙토 패트로눔!"
해리의 요술지팡이 끝에서 은빛 숫사슴이 튀어나오더니 디멘터를 향해 달려갔다. 디멘터는 옷자락을 밟고 비틀거리다가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해리는 지금까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는 디멘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기다려!" 해리는 고함을 지르면서 은빛 패트로누스의 뒤를 따라갔다. "저건 보가트야! 리디큘러스!"
뭔가 갈라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디멘터의 형상을 한 보가트가 연기와 함께 펑 하고 터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은빛 숫사슴도 사라지고 말았다. 해리는 내심 숫사슴이 곁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길동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해리는 또다시 요술지팡이를 높이 치켜든 채, 귀를 쫑긋 세우고 가능한 빨리 앞으로 나갔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두 번이나 막다른 골목이 길을 가로막았다. 나침반 마법을 써서 방향을 확인한 해리는 동쪽으로 너무 많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순간 바로 앞에 이상한 황금빛 안개 같은 것이 나타났다.
해리는 요술지팡이 불빛을 비추면서 조심스럽게 안개를 향해 다가갔다. 이것도 마법의 일종인 것 같았다. 해리는 과연 이 안개를 날려 버릴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레덕토!"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주문을 외웠다. 해리가 쏘아 올린 주문은 곧장 안개를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안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압 마법은 단단한 물체에나 사용하는 주문이었던 것이다. 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 번 시험해 볼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안개를 피해서 빙 돌아갈까?
해리가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정적을 깨고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플뢰르?"
해리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해리는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플뢰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저 앞쪽 어딘가에서 들린 것 같았다. 해리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마법의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뒤집어졌다. 해리는 머리를 밑으로 한 채, 땅바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해리의 안경은 당장이라도 끝없는 하늘로 굴러 떨어질 것처럼 코 끝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해리는 안경을 꼭 움켜쥔 채, 겁에 질려서 한참 동안이나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마치 거꾸로 뒤집어진 잔디밭에 발바닥이 딱 붙어 버린 것 같았다. 머리 밑으로는 별들이 총총하게 박혀 있는 검은 하늘이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발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당장 땅에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하늘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침착하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생각하자!
해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온몸의 피가 몽땅 머리로 쏠렸다.
생각하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까지 해리가 연습했던 주문 중에서 갑자기 거꾸로 뒤바뀐 하늘과 땅에 대처할 수 있는 주문은 없었다. 그래, 용기를 내서 걸음을 옮기는 거야! 관자놀이의 맥박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불꽃을 쏘아 올려서 구조를 받을 것인가? 만약 구조를 받는다면, 해리는 시험에서 탈락하고 마는 것이다.
해리는 머리 밑으로 무한히 펼쳐진 공간을 보지 않기 위해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풀이 나 있는 천장에서 힘껏 오른발을 떼었다. 순식간에 세상은 다시 똑바로 되었다. 해리는 힘없이 무릎을 꺾으면서 놀라울 정도로 단단한 땅 위로 푹 쓰러졌다. 잠시 동안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의 맥이 탁 풀린 것이다. 해리는 계속 심호흡을 하면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해리는 어깨 너머로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빛 안개가 달빛을 받으면서 무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두 갈래 길에 도달한 해리는 신중하게 땅바닥을 살펴보면서 플뢰르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조금 전에 비명을 지른 사람은 플뢰르가 분명했다. 그런데 무엇을 만난 것일까? 플뢰르는 무사할까? 하지만 플뢰르가 불꽃을 쏘아 올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혼자 힘으로 곤경에서 무사히 빠져나간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릴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험에 빠진 것일까?
해리는 점점 더 불안한 기분을 느끼면서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챔피언이 한 명 탈락했구나...
트리위저드 우승컵은 분명히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플뢰르는 더 이상 승산이 없는 것 같았다. 이제 우승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해리가 우승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챔피언으로 선발된 이후 처음으로, 다른 학생들 앞에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눈앞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해리는 대략 10분 동안 걸어갔지만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번번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곤 했다. 두 번이나 똑같은 길로 잘못 들어선 끝에, 해리는 마침내 새로운 길을 찾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요술지팡이의 불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산울타리 담장 위에 일렁이는 해리의 그림자가 비쳤다. 또 다른 모퉁이를 돌아선 해리는 그만 폭탄 꼬리 스크루트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케드릭의 말이 맞았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 거의 3미터 길이로 자란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마치 거대한 전갈처럼 보였다. 침이 달린 기다란 꼬리는 등 위로 바싹 말려져 있었으며 두꺼운 비늘 갑옷은 해리의 요술 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으면서 번쩍거렸다.
"스투페파이!"
해리는 재빨리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기절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기절 주문은 스크루트의 갑옷에 맞고 다시 튀어나왔다. 해리는 재빨리 목을 움츠렸지만, 희미하게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났다. 머리 끝을 살짝 그슬린 것이다. 폭탄 꼬리 스크루트는 꼬리 끝에서 불덩이를 발사했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해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임페디멘타!"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휘두르면서 힘껏 소리쳤다. 장애 마법 주문 역시 스크루트의 갑옷에 맞고 튀어나왔다. 해리는 비틀거리면서 뒤로 몇 발 물러서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폭탄꼬리 스크루트는 무서운 속도로 해리를 덮쳤다.
"임페디멘타!"
스크루트는 해리와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딱 멈춰섰다. 단단한 껍질로 뒤덮여 있지 않은 아랫배가 바로 스크루트의 약점이었고, 해리는 바로 그곳에 장애 마법 주문을 명중시킨 것이다. 숨을 헐떡이면서 스크루트로부터 벗어난 해리는 얼른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다. 장애 마법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주문이 아니었다. 언제 다시 스크루트가 꼬리를 휘두르면서 공격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왼쪽 길로 들어선 해리는 또다시 막다른 골목과 부딪히게 되었다. 다시 오른쪽으로 들어섰지만 역시 막다른 골목이었다. 해리는 잠시 동안 걸음을 멈춘 채,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해리의 가슴은 마치 방망이질을 하듯이 쿵쿵거렸다. 해리는 다시 나침반 마법을 써서 방향을 바로잡은 후에,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짐작되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몇 분 동안 해리는 그 길을 열심히 달려갔다. 그때 문득 산울타리 너머에서 누군가 해리와 나란히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어섰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케드릭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크루시오!"
바로 그 순간 해리는 빅터 크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케드릭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설마! 무서운 생각이 든 해리는 케드릭이 있는 통로로 넘어가는 길을 찾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길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다시 진압 마법을 사용했다. 그다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산울타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렸다. 해리는 구멍 속으로 다리를 집어넣고 빽빽하게 자라난 가지와 덤불들을 마구 걷어찼다.
마침내 가지가 부러지면서 산울타리에 구멍이 뚫렸다. 해리는 옷이 찢어지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몸을 버둥거리면서 구멍 속으로 들어가, 재빨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땅바닥에 쓰러진 케드릭이 몸을 비비꼬면서 씰룩씰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빅터 크룸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케드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해리는 재빨리 빅터 크룸을 향해 요술지팡이를 겨누었다. 바로 그 순간 빅터 크룸이 고개를 들었다. 빅터 크룸은 빙글 돌아서더니 황급히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스투페파이!"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웠다. 기절 마법은 빅터 크룸의 등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빅터 크룸은 죽은 듯이 그 자리에 딱 멈춰 서더니 앞으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잔디밭에 얼굴을 파묻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허겁지겁 케드릭에게 달려갔다. 케드릭은 가쁜 숨을 헐떡이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경련은 간신히 멈춘 것 같았다.
"괜찮니?"
해리가 케드릭의 팔을 붙잡으면서 물었다.
"그래." 케드릭은 여전히 숨을 헐떡거렸다. "그래...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몰래 내 뒤로 다가와서는... 빅터 크룸의 발 소리를 듣고 뒤로 돌아섰을 때... 요술지팡이를 나에게 겨누고..."
케드릭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도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부들부들 온몸을 떨고 있었다. 케드릭과 해리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빅터 크룸의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어. 꽤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해리가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조금 전에 플뢰르가 비명 지르는 소리 들었니?"
해리가 물었다.
"응. 혹시 빅터 크룸이 플뢰르도 공격한 게 아닐까?"
케드릭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빅터 크룸을 노려보았다.
"모르겠어."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이대로 놔두고 가도 될까?"
케드릭은 다시 해리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아니야. 아무래도 불꽃을 쏘아야만 할 것 같아. 구조반이 와서 빅터 크룸을 데리고 가겠지. 그렇지 않으면 스크루트에게 잡아먹힐지도 몰라."
"그런 꼴을 당해도 싼 녀석이야."
케드릭은 화가 나서 투덜거렸지만 곧바로 요술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리더니 허공으로 불꽃을 쏘아 올렸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꽃은 빅터 크룸이 쓰러져 있는 곳을 표시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 해리와 케드릭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침내 케드릭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저... 이제 우리는 가는 게 좋겠어..."
"뭐라구? 아... 그래... 맞아."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해리와 케드릭은 힘을 모아서 빅터 크룸과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경쟁자라는 사실이 다시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어두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왼쪽으로, 케드릭은 오른쪽으로 갈라졌다. 곧이어 케드릭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졌다.
해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나침반 마법을 쓰면서 걸어갔다. 이제 해리와 케드릭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장 먼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하지만 조금 전에 목격한 빅터 크룸의 행동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무디의 말에 따르면, 용서받지 못할 저주를 사람에게 사용하는 행위는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빅터 크룸이 그런 야비한 방법까지 사용하면서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차지하려고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해리는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는 경욱 점점 더 많아졌다. 하지만 통로가 어두워질수록 해리는 미로의 중심부를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다랗게 곧장 뻗어 있는 길을 달려가던 해리는 또다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요술지팡이 불빛을 비추자, 참으로 이상한 생물이 나타났다. 그것은 오직 <괴물들에 대한 괴물책>에서 그림으로나 보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스핑크스였다. 거대한 사자의 몸뚱이를 가진 스핑크스는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과 끝에 갈색 털이 나 있는 길고 노란 꼬리를 달고 있었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머리는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아몬드처럼 생긴 갸름한 눈을 돌리더니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스핑크스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이 몸을 웅크리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길을 가로막은 채, 옆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어슬렁거렸다. 잠시 후에 스핑크스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깊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이제 거의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가장 빠른 지름길은 내 앞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길을 좀 비켜주시겠어요?"
해리는 조심조심하며 부탁했다. 하지만 스핑크스가 무슨 대답을 할 것인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그건 안 된다." 스핑크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서성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수수께끼를 풀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 대답을 해서 맞추면 너를 그냥 통과시켜 주겠지만, 맞추지 못하면 너를 공격할 것이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겠다면, 네가 그대로 돌아가도록 내버려두마."
해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일을 잘 하는 사람은 해리가 아니라 헤르미온느였다. 해리는 신중하게 모든 가능성에 대해 궁리해 보았다. 만약 수수께끼가 너무 어려우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스핑크스를 피해 달아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로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좋아요. 무슨 수수께끼인지 들어볼까요?"
마침내 해리가 결심한 듯 말했다. 스핑크스는 길 중간에 턱 버티고 앉아서 시를 외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신분을 위장한 채 살아가는 자를 생각하라.
그는 비밀을 다루고 거짓말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두 번째, 고치는 것의 마지막, 중간의 중간, 끝의 끝은 무엇인지 말하라.
마지막으로 찾기 어려운 말을 찾으려고 할 때 종종내는 소리를 말하라.
이제 그 답을 다 엮어서 이 질문에 대답하라. 그대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이 동물은 과연 무엇인가?
해리는 입을 딱 벌렸다.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좀더 천천히요."
해리는 스핑크스를 향해 정중하게 부탁했다. 스핑크스는 눈을 꿈벅거리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시를 외웠다.
"앞선 질문의 해답을 다 합치면 내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동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나요?"
해리가 물어보았다. 하지만 스핑크스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해리는 그 미소를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동물은 아주 많았다. 당장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동물은 폭탄 꼬리 스크루트였다. 하지만 어쩐지 그것은 정답이 아닐 것 같았다. 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실마리를 풀어 보려고 애를 썼다...
"신분을 위장하고 살아가는 자." 해리는 초롱초롱한 눈길로 스핑크스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그렇다면 사기꾼인데... 아니, 아직 답을 말한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스파이? 아무래도 다시 그 시를 생각해 보는 게 좋겠어. 다음 구절을 다시 한 번 말해 주실래요?"
스핑크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음 구절을 읊어주었다.
"고치는 것(mend)의 마지막?" 해리는 그 시를 되풀이하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어... 모르겠는걸? 중간의 중간, 끝의 끝이라... 중간(middle)과 끝(end)... 중간의 중간은... 그러니까 dd... 끝 중의 끝도... 역시 d가 되는구나. 그래, 알겠어. 두 번째 시의 비밀은 바로 'd'라는 글자야." 해리는 너무나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제일 마지막 구절을 다시 한 번 들을 수 있을까요?"
스핑크스는 마지막 구절을 다시 말해 주었다.
"찾기 어려운 말을 찾으려고 할 때 종종 내는 소리라... 어... 그건... 어... 잠깐 기다려요. '어'그래요! '어(er)'소리예요! 그리고 d와 er를 합치면 더(der)가 되네."
스핑크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스파이... 더... 스파이... 더... 스파이더..."
해리는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내가 입을 맞추고 싶지 않은 동물은... 그래, 스파이더! 거미예요!"
스핑크스는 활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리를 한 번 쭉 펴더니 해리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었다.
"고마워요!"
해리는 자신의 명석한 두뇌에 대해 스스로 놀라면서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제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은 게 분명했다.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요술지팡이는 해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더 이상 끔찍한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한, 어쩌면 우승컵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해리는 목표 지점을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갈림길에서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방향을 가르쳐다오!"
해리는 요술지팡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요술지팡이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오른쪽 길을 가리켰다. 쏜살같이 뛰어가던 해리의 눈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어떤 그림자가 맞은편 통로에서 불쑥 나타났다.
케드릭이 먼저 우승컵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케드릭은 젖먹던 힘을 다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해리는 절대로 케드릭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케드릭은 해리보다 훨씬 키가 컸으며 다리도 더 길었다.
그때 해리는 왼쪽에서 거대한 어떤 물체가 산울타리 위로 기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해리가 서 있는 통로와 교차되는 다른 통로를 따라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케드릭은 그것과 거의 충돌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케드릭은 온통 우승컵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아직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케드릭! 왼쪽을 봐!"
해리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케드릭은 그 거대한 물체와 부딪히려는 순간, 힐끗 고개를 돌려서 그것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비틀거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해리는 케드릭의 요술지팡이가 손에서 멀리 튕겨 나가는 것을 보았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거대한 거미가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케드릭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스투페파이!"
해리는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은 북실북실하게 털이 난 거미의 검은 몸뚱이에 명중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 정도의 효과밖에 나지 않았다. 거미는 잠시 몸을 움찔하더니 허둥지둥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해리를 향해 곧장 달려오기 시작했다.
"스투페파이! 임페디멘타! 스투페파이!"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미는 너무나 몸집이 거대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주문을 쏘아댈수록 더욱 화만 돋우게 될 뿐이었다. 공포에 질린 해리는 번뜩이는 여덟 개의 검은 눈과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집게발을 힐끗 쳐다보았다.
거미는 앞발로 해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해리는 미친 듯이 버둥거리면서 거미를 발로 걷어차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거미가 집게발로 해리의 발을 꼭 쥐자, 참기 어려운 고통이 느껴졌다.
"스투페파이!"
케드릭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케드릭의 주문 또한 해리의 주문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간신히 요술지팡이를 치켜든 해리는 또다시 집게발을 쫙 벌리고 달려드는 거미를 향해 힘껏 소리쳤다.
"엑스펠리아르무스!"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무장 해제 마법을 당한 거미는 해리를 탁 놓아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바람에 해리는 4미터 높이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미 부상을 당한 해리의 다리가 땅바닥에 세차게 부딪혔다. 미처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해리는 스크루트에게 했던 것처럼 거미의 아랫배를 향해 요술지팡이를 겨누었다. 그리고 목청이 터질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스투페파이!"
그와 동시에 케드릭도 똑같이 주문을 쏘았다. 두 사람의 주문이 합쳐지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이 이루어졌다. 거미는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더니 근처 산울타리에 납작하게 붙어서 털이 북실북실한 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해리! 괜찮니? 거미에게 물렸니?"
케드릭이 큰 소리로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아니야."
해리가 숨을 헐떡이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붉은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는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거미의 집게발에 베인 깊고 커다란 상처가 보였다. 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몸을 일으키려고 노력했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산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선 채, 해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케드릭은 트리위저드 우승컵으로부터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우뚝 서 있었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케드릭의 등 뒤에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케드릭은 꼼짝도 하지 않고 다만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에 케드릭은 힐끗 고개를 돌리더니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쳐다보았다. 해리는 케드릭의 얼굴에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우승컵에 대한 열망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케드릭은 다시 산울타리를 붙잡고 위태롭게 서 있는 해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땅이 꺼질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우승컵은 네가 가지도록 해. 네가 우승자가 되어야만 해. 너는 두 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 주었잖니."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시합의 우승자가 될 수는 없어."
해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꾸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리는 참을 수 없이 아팠으며, 거미를 물리치기 위해 정신없이 싸우는 통에 온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무진 고생 끝에 결국 케드릭에게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빼앗기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무도회에서 초 챙을 빼앗겼던 것처럼...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먼저 잡는 사람이 점수를 얻는 거야. 그리고 그건 바로 너잖아.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 다리로 너와 경주를 해서 이길 수가 없어."
케드릭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거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야."
케드릭이 말했다.
"제발 고상한 척 좀 하지마. 그냥 우승컵을 잡으란 말이야. 그래야 우리 모두 이 미로에서 나갈 수 있잖아."
해리가 신경질을 내면서 소리쳤다. 케드릭은 산울타리를 꼭 붙잡고 있는 해리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네가 용에 대해서 미리 말해 주었잖아. 네가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첫번째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했을 거야."
케드릭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건 사실 나도 도움을 받아서 알아내었던 거야. 게다가 너도 황금알에 대해서 나에게 알려 주었잖아. 우리는 서로 비긴 거야."
해리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다리에 흐르는 피를 옷으로 닦아내었다.
"황금알에 대해 도움을 받았던 건 나도 역시 마찬가지야."
케드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도 우린 비겼어."
해리는 아주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 보았다. 다리에 약간 힘을 주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후들거렸다. 거미가 해리를 놓아 주었을 때,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발목을 삔 것 같았다.
"두 번째 시험에서 너는 좀더 나은 점수를 얻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인질들이 모두 구출될 때까지 너 혼자 뒤에 남아 있었잖아. 그게 올바른 일이었어. 나도 그랬어야 했는데..."
케드릭은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조금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건 그 노래를 진짜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큼 멍청한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야! 당장 우승컵을 차지해!"
해리가 신랄한 목소리로 외쳤다.
"싫어!"
케드릭이 거칠게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그는 뒤엉킨 거미의 다리를 넘어서 해리에게 걸어갔다. 해리는 케드릭을 빤히 노려보았다. 케드릭은 대단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백 년 동안 후플푸프 기숙사가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엄청난 영광을 외면하고 돌아선 것이다.
"어서 가!"
케드릭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결연하게 말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온갖 고심을 다한 흔적이 역력했지만 팔짱을 낀 채, 턱 버티고 서 있는 케드릭의 얼굴은 아주 의연했다. 케드릭은 우승컵을 해리에게 양보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케드릭과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 동안 해리의 머리 속에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들고 미로를 빠져나가는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해리는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번쩍 손에 들고 우뚝 서 있었다... 관중들이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탄하고 있는 초 챙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잠시 후에 영상들이 흐릿하게 사라지더니 결의에 가득 차 있는 케드릭의 그늘진 얼굴이 나타났다.
"우리 함께 하자."
해리는 케드릭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뭐라구?"
"우리가 동시에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는 거야. 그래도 호그와트가 우승을 하는 거잖아. 우리는 동점이 되는 거야."
케드릭은 해리를 빤히 바라보더니 슬그머니 팔짱을 풀었다.
"너... 진심이니?"
"그래, 정말이야. 결국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었잖아. 안 그래? 그리고 우린 함께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까 우승도 함께 하는 거야."
해리가 케드릭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잠시 동안 케드릭은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활짝 미소를 지었다.
"네 말이 맞아. 이리로 와."
케드릭은 해리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부축했다. 그리고 해리와 함께 트리위저드 우승컵이 놓여 있는 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마침내 두 사람은 트리위저드 우승컵 바로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번쩍이는 우승컵의 손잡이를 잡기 위해 둘 다 손을 내밀었다.
"셋을 세면 잡는 거야, 알았지?" 해리가 케드릭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케드릭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해리와 케드릭은 동시에 트리위저드 우승컵의 손잡이를 잡았다.
갑자기 해리는 몸의 중심이 앞으로 확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발이 땅바닥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잡고 있는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트리위저드 우승컵은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해리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케드릭 역시 해리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