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장 (82/194)

제30장 

펜시브

갑자기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안녕, 포터. 어서 들어오너라."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해리는 천천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덤블도어의 사무실에는 전에도 한번 들어와 본 적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은 아주 아름다운 둥근 방이었으며 벽에는 호그와트 역대 교장들의 초상화가 줄지어 걸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슴을 들썩거리면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코넬리우스 퍼지는 덤블도어의 책상 옆에 서 있었다. 그는 평소처럼 가느다란 줄무늬 망토를 걸치고 있었으며 손에는 연한 초록색 중절모를 들고 있었다. 

"해리! 어떻게 지냈느냐?"

퍼지가 해리를 향해 다가오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잘 지냈어요."

해리는 거짓말을 했다. 

"우리는 방금 지난밤에 크라우치 씨가 운동장에 나타났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크라우치 씨를 발견한 사람이 바로 너라면서? 그게 정말이니?"

퍼지는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정면으로 해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네."

해리는 그들이 주고받은 말을 밖에서 듣지 못한 척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맥심 부인의 모습은 저혀 보지 못했어요. 사실 맥심 부인 같은 사람은 몸을 숨기는 게 무척 어려울 거예요. 안 그런가요?"

퍼지의 등 뒤에 서 있던 덤블도어가 눈을 찡끗하면서 해리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건 그렇구나. 으음... 해리, 미안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잠깐 운동장을 둘러봐야겠다. 그러니까 너는... 그냥 교실로 돌아가는 것이..."

퍼지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저는 교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해리는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재빨리 말했다. 덤블도어는 마치 탐색이라도 하듯이 해리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기다리거라, 해리."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운동장을 조사하는 일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게다."

세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해리의 곁을 지나서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잠시 후에 아래층 복도에서 무디의 나무 다리가 또각또각 걸어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해리는 천천히 덤블도어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안녕, 퍽스."

해리가 다정하게 인사했다. 덤블도어 교수의 불사조인 퍽스는 문 뒤에 있는 황금 횃대에 앉아 있었다. 백조만한 크기에 진홍색과 황금색의 화려한 깃털이 달린 이 새는 기다란 꼬리를 흔들면서 유순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책상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몇 분 동안 액자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역대 교장들의 초상화를 지켜보면서,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제 이마의 상처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해리는 손가락으로 상처를 문질러 보았다. 일단 덤블도어의 사무실에 들어오자 해리는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에는 다시 덤블도어를 만나서 꿈에 대해 죄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책상 뒤편의 벽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저기를 기운 누덕누덕한 마법의 모자가 선반 위에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은으로 만든 멋진 칼이 유리 상자에 담겨 있었는데, 손잡이 부분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 있었다. 

해리는 자신이 2학년 때 마법의 모자 속에서 꺼냈던 바로 그 칼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원래 그 칼은 해리가 속해 있는 기숙사의 설립자인 고드릭 그리핀도르의 것이었다. 해리는 실낱 같은 희망조차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던 순간에, 저 칼이 얼마나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가를 떠올리면서 묵묵히 그 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해리는 문득 유리 상자 위에서 하얗게 반짝거리는 빛의 반점이 흔들흔들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찾아보았다. 해리의 등뒤에 있는 검은 캐비닛 사이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하얀 은색 물체가 보였다. 캐비닛의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힐끗 퍽스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그런 다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캐비닛의 문을 열었다. 캐비닛 안에는 얄팍한 돌로 만든 대야가 놓여 있었다. 대야의 가장자리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리가 알지 못하는 고대 룬 문자와 상징인 것 같았다. 반짝거리는 은색 빛줄기는 바로 그 대야에 담긴 내용물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물질은 해리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것과도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액체인지 기체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 그 물질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이었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표면은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처럼 굽이치다가 또다시 구름처럼 부드럽게 흩어지거나 소용돌이치곤 했다. 그것은 액체로 만든 빛이나 혹은 고체로 만든 바람 같았다. 해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해리는 그 물체를 손으로 직접 만져서 어떤 느낌인지 알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물질에 손을 집어넣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는 거의 4년에 걸친 마법 세계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해리는 옷 속에서 요술지팡이를 꺼내 들고 초조한 얼굴로 사무실을 한번 쓱 둘러본 다음, 대야 속에 담긴 물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해리는 신중하게 요술지팡이를 그 속에 살짝 담갔다. 은색 물질의 표면이 아주 빠르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해리는 자신의 머리를 캐비닛 속에 집어넣고 허리를 숙였다. 은빛이 감도는 물질은 점차 투명하게 변하더니 마침내 유리처럼 되었다. 해리는 돌로 만든 대야의 바닥이 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 신비한 물질의 수면 아래서는 돌바닥 대신에 거대한 방이 보였다. 해리는 마치 천장에 뚫린 둥근 창문을 통해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방은 몹시 어둠침침했다. 해리는 아마도 지하실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창문은 하나도 없고 호그와트의 벽에 꽂혀 있는 것과 같은 횃불만이 주위를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투명한 물질에 거의 코 끝이 닿을락말락 할 정도로 바싹 얼굴을 갖다댔다. 마녀와 마법사들이 방을 빙 돌아가면서 층층이 배열되어 있는 의자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방 한복판에는 빈 의자가 한 개 놓여 있었는데, 어쩐지 섬뜩한 분위기를 풍겼다. 의자 팔걸이에는 굵은 쇠사슬이 달려 있는 것이, 아마도 의자에 앉은 사람을 묶어 놓는 모양이었다.   

여기가 어디일까? 호그와트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성에서 이런 장소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더구나 대야 바닥에 비친 그 이상한 방에 가득 모여 있는 사람들은 주로 어른들이었는데, 호그와트에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해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의 뾰족한 모자꼭대기 뿐이었지만, 모두들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대야는 둥글지만 그 안에 비친 방의 모습은 사각형이었다. 그러므로 방의 구석진 자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볼 수가 없었다. 해리는 좀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머리를 잔뜩 숙인 채,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해리의 코 끝이 그 이상한 물질에 살짝 닿았다. 그러자 덤블도어의 사무실이 크게 요동을 치더니, 해리는 대야에 있는 물질 속에 머리를 처박은 채 거꾸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해리의 머리는 단단한 돌바닥에 부딪히지 않았다. 해리는 무엇인가 얼음처럼 차갑고 어두운 공간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강력한 소용돌이처럼 해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해리는 대야 안에 나타났던 그 방의 제일 뒤쪽자리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맨 뒷줄의 의자는 다른 의자들보다 위로 높이 솟아올라 있었다. 해리는 고개를 들어서 높은 돌천장을 바라보았지만, 자신이 방금 전까지 들여다보고 있던 둥근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시커멓고 단단한 돌뿐이었다. 

해리는 숨을 헐떡이면서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 방에 있는 마법사와 마녀들(적어도 2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은 아무도 해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방금 열네 살 짜리 소년이 천장에서 뚝 떨어졌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얼떨결에 옆자리에 앉아 있는 마법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해리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조용한 방이 진동할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바로 오른쪽 자리에 알버스 덤블도어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교수님!"

해리는 목이 졸린 사람처럼 꺽꺽거리면서 간신히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저는 그저 캐비닛 안에 있는 그 대야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제가... 제가 지금 어디 있는거죠?"

하지만 덤블도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쳐다보거나 하지도 않았다. 덤블도어는 해리를 전혀 보지 못한 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있는 다른 마법사들과 마찬가지로 한쪽 구석을 열심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구석에는 문이 달려 있었다.

해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힐끗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침묵을 지키면서 한 곳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빙 돌아본 후에 다시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전에도 한 번 해리는 아무도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에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해리는 마법에 걸린 일기장을 통해서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해리가 무엇인가 완전히 착각한 게 아니라면, 이제 그와 비슷한 일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해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손을 들어 덤블도어의 눈앞에 대고 열심히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해리를 돌아보기는커녕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모든 상황이 확실해진 것 같았다. 덤블도어가 이렇게까지 해리를 모른 척 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이곳에 있는 덤블도어는 현재의 덤블도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 것 같았다... 해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덤블도어도 현재의 덤블도어처럼 새하얗게 머리가 세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디일까? 여기 모여 있는 마법사들은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

해리는 좀더 주의 깊게 방을 둘러보았다. 대야에 비친 광경을 쳐다보고 있을 때 상상했던 것처럼, 이 방은 지하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곳은 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하 감옥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방에는 어전지 냉랭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으며, 벽에는 그림이나 장식품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단지 방을 빙 둘러싸면서 계단식으로 나열되어 있는 의자만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의자들은 어느 방향에서나 쇠사슬이 달린 의자가 잘 보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해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누군가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하실의 구석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세 사람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니, 한 사람과 두 명의 디멘터가 들어오고 있었다. 디멘터들은 그 사람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었다.

갑자기 해리의 뱃속이 싸늘하게 차가워졌다. 키가 크고 두건을 얼굴까지 푹 눌러쓴 디멘터들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의자를 향해 천천히 미끄러지듯 다가갔다. 그들은 다 썩어 문드러진 손으로 그 사람의 팔을 양쪽에서 붙잡고 있었다. 디멘터들 사이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해리는 그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억 속의 디멘터들이 해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는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디멘터들이 그 남자를 쇠사슬이 달린 의자에 앉히고 다시 방에서 나가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몸을 약간 움찔했다.

잠시 후에 문이 닫히고 디멘터들도 사라졌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바로 카르카로프였다. 

덤블도어와는 달리 카르카로프는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카르카로프의 머리카락과 콧수염은 검은색이었다. 하지만 반들반들한 털코트가 아니라 다 낡아서 너덜너덜하고 해진 옷을 입고 있었다. 카르카로프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해리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갑자기 의자의 쇠사슬이 황금빛으로 변하면서 스르르 카르카로프의 팔 위로 기어 오르더니 그의 온몸을 꽁꽁 묶어 버렸다. 

"이고르 카르카로프."

날카로운 목소리가 해리의 왼쪽 귓전을 때렸다. 해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크라우치가 당당한 태도로 우뚝 서서 카르카로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라우치의 머리카락은 아직도 새카맣고 얼굴에는 주름살도 없었으며 체격은 단단하고 날렵한 인상을 주었다.

"너는 마법부에 증언을 하기 위해 아즈카반에서 이곳까지 호송되었다. 너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카르카로프는 의자에 묶인 채로 최대한 허리를 쭉 폈다. 

"그렇습니다."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만, 여전히 살살 비위를 맞추는 듯한 매끄러운 어조는 변함이 없었다. 

"저는 마법부에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마법부가 어둠의 주인의 마지막 남은 추종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힘이 닿는 한 기꺼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마법사와 마녀는 흥미로운 눈길로 카르카로프를 자세히 뜯어보고 있었으며, 다른 마법사와 마녀는 노골적으로 불신을 드러냈다. 바로 그 때 덤블도어의 옆자리에서 귀에 익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놈."

해리는 앞으로 몸을 쑥 내밀고 덤블도어의 옆자리를 넘겨다 보았다. 그곳에는 매드아이 무디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무디의 모습은 눈에 뜨일 정도로 확연하게 달랐다. 지금처럼 마법의 눈이 아니라 정상적인 두 눈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카르카로프를 응시하고 있는 무디의 두 눈은 온통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크라우치는 저 녀석을 풀어 줄 생각이야." 무디는 목소리를 낮추고 덤블도어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과 거래를 한 거야. 나는 무려 6개월이나 고생하면서 저 녀석을 추적했는데, 크라우치는 새로운 명단만 얻어 내면 저 녀석을 풀어 줄 작정을 하고 있으니... 만약 나라면 정보만 들은 후에 저 녀석을 당장 디멘터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던져 버릴 텐데 말이야."

덤블도어는 무디의 의견에 찬성할 수 없다는 듯 길고 구부러진 코로 나지막이 콧소리를 냈다. 

"맞아! 그래, 내가 잊고 있었네... 자네는 디멘터들을 좋아하지 않지, 알버스?"

무디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미안하지만 난 싫어해. 오래 전부터 마법부가 그런 생물과 결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해왔어."

덤블도어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저런 비열한 녀석은..."

무디가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카르카로프, 너는 분명히 어둠의 주인을 추종하는 자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서 그 이름을 말하라."

크라우치가 카르카로프를 노려보면서 재촉했다. 

"당신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자는 항상 철저한 비밀 속에서 행동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우리, 그러니까 그의 추종자... 이제 저는 그런 자들과 어울렸던 것에 대하여 마음속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카르카로프가 허둥지둥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주 찰떡궁합이었지."

무디가 빈정거리면서 사나운 눈빛으로 카르카로프를 노려보았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동지들의 이름을 전부 알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 자만이 정확히 알고 있었을 뿐..."

"그것 참 현명한 행동이군. 카르카로프, 자네 같은 자들이 다른 추종자를 모두 밀고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이겠지."

무디가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너는 우리에게 몇 사람의 이름을 알려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크라우치가 날카롭게 추궁했다. 

"예, 그랬습니다. 그들은 추종자 중에서도 특별히 아주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제 눈으로 직접 그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으로 보았죠. 저는 진심으로 그를 완전히 부인합니다. 후회와 자책감이 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는 증거로써 이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카르카로프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그 이름은?" 

크라우치가 예리하게 질문을 던졌다.

"안토닌 돌로호브가 있습니다. 저... 저는 돌로호브가 수많은 머글들과... 그리고 어둠의 주인을 추종하지 않는 자들을 고문하는 걸 보았습니다."

카르카로프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돌로호브가 고문하는 것을 도와주었겠지."

무디가 잔뜩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우리는 이미 돌로호브를 붙잡았다. 돌로호브는 네가 잡힌 직후에 곧바로 체포되었다."

크라우치가 냉정하게 말했다. 

"정말입니까?" 카르카로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 말을 들으니까 정말 기... 기쁘군요!"

하지만 카르카로프의 표정은 전혀 기뻐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해리는 아마도 그 소식이 카르카로프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르카로프가 알고 있는 이름 중에 하나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자들은?"

크라우치가 차갑게 질문을 던졌다. 

"예... 로시에르가 있습니다. 에반 로시에르... "

카르카로프가 서둘러 고백했다. 

"로시에르는 죽었다. 로시에르도 네가 잡힌 이후에 곧 붙잡혔다. 하지만 로시에르는 순순히 체포되기보다는 차라리 싸우는 편을 선택했지. 그래서 저항하던 끝에 죽임을 당했다."

크라우치가 카르카로프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도 좀 당했지."

무디가 덤블도어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말을 듣고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무디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디는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자신의 코 끝을 덤블도어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로... 로시에르는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거의 광적으로 들렸다. 카르카로프는 자신의 정보가 마법부에 하나도 쓸모없게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몹시 초조해 하고 있었다. 해리는 카르카로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르카로프의 눈은 자꾸만 구석에 있는 문으로 쏠렸다. 

디멘터들은 저 문 뒤에서 조용히 카르카로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또 다른 이름은?"

크라우치가 다시 물었다. 

"있습니다!" 

카르카로프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트래버스가 있습니다. 트래버스는 맥키논스 가족을 살해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뮬시버... 그는 임페리우스 저주의 전문가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록우드, 그는 스파이입니다. 마법부 내에 있으면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되는 그 자에게 정보를 빼돌렸습니다!"

이번에는 카르카로프가 제대로 적중을 한 것이 분명했다. 카르카로프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록우드?" 크라우치가 앞에 앉아 있던 한 마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 마녀는 양피지에 무엇인가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미스터리 부의 어거스투스 록우드 말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바에 따르면 록우드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마법부의 안과 밖,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는 조직망을 이용했습니다."

카르카로프가 열심히 말했다. 

"하지만 트래버스와 뮬시버는 이미 붙잡았다. 잘했다, 카르카로프. 네가 알고 있는 것이 그게 전부라면 너는 우리가 판결을 내릴 때까지 다시 아즈카반으로 돌아가서..."

크라우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아닙니다!" 카르카로프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기다려 주십시오. 한 명이 더 있습니다!"

해리는 횃불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카르카로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르카로프의 백지장 같은 피부는 새까만 머리카락이나 콧수염과 더욱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스네이프!" 카르카로프가 고함을 질렀다. "세베루스 스네이프!"

"스네이프는 재판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았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스네이프의 무죄를 보증해 주었다."

크라우치가 냉정하게 선언했다.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죽음을 먹는 자입니다!"

카르카로프가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카르카로프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이미 증언했습니다."

덤블도어가 벌떡 일어났다. 덤블도어는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침착하게 설명했다.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였습니다. 하지만 볼드모트 경이 몰락하기 이전에 우리편으로 합세해서 우리를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극히 위태로운 것을 무릅쓰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듯이, 스네이프도 더 이상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닙니다."

해리는 얼른 고개를 돌려서 매드아이 무디를 쳐다보았다. 무디는 덤블도어의 등 뒤에서 못내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알았다, 카르카로프." 크라우치가 차갑게 말했다. "너는 우리를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너의 사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 얼마 동안 아즈카반에 머물러야 하겠지만..."

크라우치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문득 해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하실이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지면서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변하고 있었다. 해리는 겨우 자신의 몸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짙은 어둠속으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때 지하실이 다시 나타났다. 해리는 아까와는 다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제일 높은 뒷자리였지만, 이번에는 크라우치의 왼쪽 자리였다. 지하실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 상당히 달랐다. 마법사와 마녀들은 상당히 여유가 있었으며, 심지어 유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하실 벽을 따라 빙 둘러앉아 있는 마법사와 마녀들은 흥미로운 운동 경기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문득 해리의 눈에 좌석 중간 정도에 앉아 있는 한 마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짧은 금발 머리에 짙은 붉은색 옷을 입고 선명한 초록색 깃펜을 쪽쪽 빨고 있는 그 여자는 분명히 젊은 시절의 리타 스키터였다. 

해리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덤블도어는 다른 옷을 입고 해리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크라우치는 훨씬 더 피곤하고 날카롭고 수척해 보였다... 해리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것은 아까와는 다른 날의... 다른 재판에 대한 기억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루도 베그만이 방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사람은 늙고 초라한 모습의 루도 베그만이 아니었다. 퀴디치 선수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전성기 때의 루도 베그만이 분명했다. 루도 베그만의 코는 아직도 부러지지 않은 채 멀쩡했고 훤칠한 키에 늘씬하고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다소 초조한 모습으로 쇠사슬이 달린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의자는 카르카로프에게 그랬던 것처럼 루도 베그만을 쇠사슬로 묶지는 않았다. 그 사실에 크게 용기를 얻은 듯이, 루도 베그만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심지어 몇 명에게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던지기까지 했다. 

"루도 베그만, 너는 죽음을 먹는 자들의 활동에 연루되어 있다는 고발에 답변하기 위해서 여기 마법사 법정에 불려 나왔다." 크라우치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너에게 불리한 증언을 들었고, 이제 판결을 내리려고 하는 중이다. 우리가 판결을 선언하기 전에, 달리 증언할 말이 없는가?"

그 순간 해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루도 베그만이 죽음을 먹는 자라는 거야?

"저는 단지..." 루도 베그만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저도 제가 좀 멍청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한두 명의 마법사들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반대로, 크라우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냉혹함과 혐오감이 가득 담겨 있는 표정으로 루도 베그만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네 입에서 그보다 맞는 말은 나온 적이 없을 게다. 이 녀석아. 네놈이 처음부터 항상 멍청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블러저에 얻어맞은 충격 때문에 네놈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알았을 게다..."

해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덤덤한 목소리로 덤블도어에게 속삭였다. 해리가 뒤를 돌아보자, 역시 무디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루도빅 베그만, 너는 볼드모트 경의 추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다가 체포되었다. 그러므로 아즈카반에 투옥할 것을..."

크라우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방청석에서 성난 고함 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몇 명의 마법사와 마녀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심지어 크라우치를 향해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록우드 노인은 제 아버지의 친구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이 그 사람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편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록우드는 적당한 때가 되면 마법부에 자리를 구해 주겠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일단... 제가 하고 있는 퀴디치 선수 생활이 끝나면 말이죠. 아실 겁니다...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저도 평생 동안 블러저에 얻어맞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루도 베그만은 동그랗고 푸른 눈을 크게 뜨면서 웅성거리는 방청객들을 향해 열심히 호소했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이 재판을 투표에 부치도록 하겠다."

크라우치가 루도 베그만을 노려보면서 냉정하게 말했다. 크라우치는 지하실 오른쪽을 향해 돌아섰다. 

"배심원 여러분은 손을 들어 주십시오... 먼저 루도 베그만을 투옥하는 일에 찬성하시는 분..."

해리는 흥미롭게 재판 광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하실 벽을 따라 빙 둘러앉아 있던 마법사와 마녀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던 마법사 중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섰다. 

"하실 말씀이라도?"

크라우치가 물었다.

"우리는 지난 토요일에 벌어진 터키와의 퀴디치 시합에서 베그만 씨가 영국을 위해 보여주었던 그 눈부신 활약에 대해 먼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 마법사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했다. 크라우치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이제 지하실은 환호성으로 떠나갈 것 같았다. 루도 베그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을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야비한 놈."

크라우치는 투덜거리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크라우치는 지하실에서 걸어나가는 루도 베그만을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쏘아보면서 덤블도어에게 한 마디 내뱉었다. 

"록우드는 정말로 저 녀석에게 일자리를 얻어주었다네... 루도 베그만이 우리와 합세하는 그날이 마법부의 초상날이 되겠군..."

지하실이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더니 곧이어 다시 나타났다. 해리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리와 덤블도어는 여전히 크라우치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하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다만 크라우치 옆에 앉아 있는 연약하고 가냘픈 한 마녀의 흐느낌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 마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는데, 해리는 손수건을 움켜쥐고 있는 마녀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크라우치를 올려다보았다. 크라우치는 이전보다 훨씬 더 수척하고 늙어 보였다.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새파랗게 돋아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들어오도록!"

크라우치의 목소리가 조용한 지하실의 정적을 깨면서 울려퍼졌다. 구석에 있는 문이 다시 열리면서 이번에는 여섯 명의 디멘터들이 네 사람을 끌고 지하실로 들어왔다. 해리는 무리를 지어 들어온 사람들이 크라우치를 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몇 명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디멘터들은 지하실 바닥에 놓여 있는, 쇠사슬이 달린 네 개의 의자에 네 사람을 제각기 앉혔다. 그 중에서 땅딸막한 남자가 크라우치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좀더 날씬하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남자는 방청객들 사이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굵고 매끄러운 검은 머리카락에 쌍꺼풀이 유난히 두꺼운 여자는 쇠사슬이 달린 의자가 마치 왕좌라도 되는 것처럼 거만한 태도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십대 후반의 소년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밀짚 같은 금발이 주근깨가 박힌 소년의 우윳빛 얼굴을 거의 뒤덮고 있었다. 크라우치의 옆에 앉아 있던 가냘픈 마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몸을 가늘게 떨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마침내 크라우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명의 죄인들을 쳐다보는 크라우치의 얼굴에는 오직 증오와 미움만이 가득 차 있었다. 

"너희들은 우리의 판결을 받기 위해 여기 마법사 법정에 불려 나왔다." 크라우치가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너무나 끔직한 범죄를 저지른..."

"아버지..." 밀짚 같은 금발을 가진 소년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발..."

"이 법정에서도 그와 같은 범죄는 거의 들어 본 바가 없다."

크라우치는 아들의 목소리를 지우려는 듯이 더욱 큰 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는 이미 너희들이 지은 죄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은 오러인 프랭크 롱바텀을 사로잡아서 그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사용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너희들은 프랭크 롱바텀을 통해 너희들의 주인인 추방된 그 사람의 현재 소재를 알아내려는 의도에서..."

"아버지, 저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니에요. 맹세해요. 아버지, 저를 디멘터에게 보내지 마세요..."

쇠사슬에 묶인 소년이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너희들은 프랭크 롱바텀의 아내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사용한 혐의로 다시 한 번 기소를 당했다." 크라우치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희들이 원하는 정보를 롱바텀이 주지 않자,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너희들은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자의 힘을 되찾아서 그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 너희들이 누렸던 그 난폭한 삶을 또다시 누릴 계획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배심원들에게 요청하노니..."

"어머니!" 소년이 애처롭게 부르짖자, 크라우치의 옆에 앉아 있던 가냘픈 체구의 마녀가 어깨를 심하게 들썩거리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 아버지께 말해 주세요. 어머니, 저는 하지 않았어요. 그건 제가 아니에요!"

"이제 나는 배심원들에게 요청하노니..." 크라우치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저와 마찬가지로 저 사람들의 범죄가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당하기에 충분하다고 믿는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지하실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마법사와 마녀들은 일제히 손을 들었다. 지하실 벽을 따라 빙 둘러앉아 있던 방청객들은 루도 베그만의 재판이 벌어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잔혹한 승리감이 떠올라 있었다. 소년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안 돼요! 어머니, 안 돼요! 저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어요! 저는 결코 하지 않았어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저를 그곳에 보내지 마세요! 제발 아버지께, 아버지께 말해 주세요!"

잠시 후에 문이 열리고 디멘터들이 미끄러지듯이 방으로 들어왔다. 소년과 함께 끌려온 세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둠의 주인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크라우치! 우리를 아즈카반으로 던져넣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기다릴 것이다! 그분은 다시 부활해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다른 어떤 추종자보다도 우리에게 더욱 커다란 보상을 내릴 것이다! 오직 우리만이 충성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오직 우리만이 그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두껍게 쌍꺼풀이 진 마녀가 크라우치를 노려보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소년은 디멘터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반항했다. 하지만 해리의 눈에도 벌써 디멘터의 차갑고 무시무시한 힘이 그 소년에게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 마녀가 지하실 밖으로 끌려나간 후에도 소년이 계속해서 몸부림을 치자, 방청객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몇 명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나는 당신의 아들이에요! 당신의 아들이란 말이에요!"

소년은 크라우치를 향해 울부짖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갑자기 크라우치가 두 눈을 부릅뜨더니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내겐 아들이 없다!"

크라우치의 옆에 앉아 있던 가냘픈 몸매의 마녀가 헉 하고 숨을 몰아쉬더니 그대로 의자 위에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기절을 한 것이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을 데리고 어서 가! 당장 데리고 꺼져! 거기에서 평생 동안 썩으라고 해!"

크라우치가 디멘터들에게 호통을 쳤다. 크라우치의 입에서 마구 침이 튀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아버지, 제발..."

"해리, 이제 내 사무실로 돌아올 시간이 된 것 같구나."

해리의 귓가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양쪽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오른쪽에는 디멘터들에게 끌려가는 크라우치의 아들을 바라보는 알버스 덤블도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해리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알버스 덤블도어가 서 있었다. 

"가자."

왼쪽에 있는 덤블도어가 해리의 팔꿈치를 잡았다. 해리는 허공으로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주위의 풍경이 점점 사라졌다. 한 순간 모든 것들이 어둡게 변하면서 해리는 천천히 공중돌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해리의 발이 평평한 바닥에 닿았다. 눈부신 햇살이 환하게 비치고 있는 덤블도어의 사무실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캐비닛 속의 대야는 여전히 해리의 눈앞에서 유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알버스 덤블도어가 해리의 곁에 서 있었다. 

"교수님,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캐비닛 문이 조금 열려 있어서..." 

해리가 더듬더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덤블도어는 얄팍한 돌로 만든 대야를 번쩍 들어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 당기더니 그 앞에 앉았다. 덤블도어는 해리를 쳐다보면서 맞은편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해리는 물끄러미 대야를 응시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대야에 담겨 있는 물질은 다시 원래대로 은빛이 감도는 하얀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계속 소용돌이치면서 출렁거렸다. 

"이게 뭐죠?"

해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것 말이냐? 이건 펜시브라고 하는 거란다. 너도 분명히 그런 기분을 알고 있을 게다. 머리 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과 기억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덤블도어가 말했다. 

"네..."

솔직히 해리는 그런 종류의 기분을 느껴 봤던 적이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덤블도어는 손을 들어 돌로 만든 대야를 가리켰다. "나는 펜시브를 사용한단다. 그저 머리 속에서 넘쳐나는 생각들을 빨아들인 다음에 이 대야에 쏟아붓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한가할 때 다시 들여다보는 거지. 이런 식으로 정리를 해 놓으면 어떤 사건의 유형이나 연관성을 파악하기가 훨씬 더 쉬워지거든."

"그러니까... 저것이 교수님의 생각들이란 말씀인가요?"

해리는 대야에서 출렁거리고 있는 하얀 물질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렇단다." 덤블도어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너에게 보여주마."

덤블도어는 옷 속에서 요술 지팡이를 꺼내더니 관자놀이 근처의 은빛 머리카락 속으로 요술지팡이 끝을 갖다댔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뗐을 때, 그 끝에는 은빛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는 금방 그 반짝거리는 실이 펜시브에 담겨 있는 그 은빛이 감도는 하얀 물질과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덤블도어는 이 새로운 생각을 대야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해리는 놀랍게도 자신의 얼굴이 대야의 수면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보았다. 

덤블도어는 마치 사금을 고르는 사람이 금 조각을 찾아서 모래를 거르듯이 손으로 펜시브의 양쪽을 붙잡고 흔들었다. 해리는 자신의 얼굴이 점차 스네이프의 얼굴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카르카로프의 것도... 이전보다 더욱 강력하고 분명하게..."

스네이프는 입을 뻐끔거리면서 천장을 향해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펜시브를 사용하면 별다른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나 혼자 충분히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단다." 덤블도어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덤블도어는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아직까지도 대야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스네이프의 얼굴을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퍼지 씨가 도착하기 직전에 나는 펜시브를 사용하고 있었단다. 그러다가 너무 급하게 치우느라 캐비닛의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까 네 관심을 끌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지."

"정말 죄송해요." 

해리가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덤블도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기심은 죄가 아니란다. 하지만 호기심과 함께 조심하는 법도 배워야만 하지... 그래, 그렇고말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덤블도어는 요술 지팡이 끝으로 대야에 담긴 생각을 휘저었다. 즉시 한 사람이 대야 밖으로 솟아 올랐다. 열여섯 살 정도의 통통하고 인상이 험악한 소녀였다. 그 소녀는 발을 여전히 대야 안에 담근 채, 천천히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리나 덤블도어 교수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 소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목소리도 스네이프의 목소리처럼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돌로 만든 대야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덤블도어 교수님, 그 애가 저에게 마법을 걸었어요. 저는 그저 놀리기만 했는데 말이죠. 저는 지난 목요일에 온실 뒤에서 그 애가 플로렌스에게 키스하는 것을 보았다고만 말했는데..."

"하지만 버사..." 덤블도어는 조용히 빙글빙글 돌고 있는 소녀를 올려다보면서 서글픈 듯이 말했다. "처음부터 왜 그 애의 뒤를 밟았던 거니?"

"버사? 이 사람이... 바로 버사 조킨스?"

해리가 소녀를 바라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덤블도어는 다시 대야에 담긴 생각을 휘저었다. 버사는 대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리고 대야 속에 담긴 물질은 다시 은빛이 감도는 하얀 색으로 변했다. "이게 바로 내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의 버사란다."

펜시브가 발산하는 은빛이 덤블도어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해리는 갑자기 덤블도어가 엄청나게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덤블도어의 나이가 꽤 많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노인이라는 생각은 아직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 해리. 내 생각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전에 먼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어서 말해보렴."

덤블도어가 조용히 말했다. 

"네." 해리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교수님, 조금 전에 점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 제가 그만 깜박 졸았거든요."

이 대목에서 해리는 혹시라도 어떤 질책이 떨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해할 수 있단다. 계속해 보렴."

"그런데 꿈을 꾸었어요. 볼드모트 경에 관한 꿈을... 그 사람은 웜테일을 고문하고 있었어요... 웜테일이 누군지는 아시죠?"

해리가 덤블도어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알고 있단다. 어서 계속 하거라."

덤블도어가 즉시 대답했다. 

"볼드모트는 수리 부엉이한테서 편지를 전달받았어요. 그리고 웜테일이 저질렀던 커다란 실수가 잘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했어요. 누군가 죽었다는 말도 했고요. 그 사람은 웜테일에게 뱀의 먹이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도 했어요. 그 사람의 의자 곁에는 뱀이 한 마리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그 대신에 저를 뱀의 먹이로 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런 다음에 웜테일에게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내렸죠. 그 순간 제 이마의 상처가 쑤시기 시작했어요." 해리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상처가 너무나 아파서 그만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어요."

하지만 덤블도어는 가만히 해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저... 그게 다예요."

해리가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그래, 알겠구나. 알겠어. 올 여름에 꿈을 꾸다가 깬 것 말고 또다시 네 상처에 통증을 느낀 적이 있었니?"

덤블도어가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여름 방학 때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을 어떻게 알고 계시죠?"

해리는 깜짝 놀랐다.       

"시리우스와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너뿐만이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나 또한 작년에 시리우스가 호그와트를 떠난 이후로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고 있었지. 시리우스가 머무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장소로 산중턱에 있는 동굴을 마련해 준 것도 바로 나란다."

자리에서 일어난 덤블도어는 책상 주위를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관자놀이에 요술지팡이 끝을 갖다대고 반짝거리는 은빛 생각을 연신 끄집어 내어 펜시브에 덜어 놓았다. 펜시브 안으로 들어간 생각들은 너무나 순식간에 서로 뒤섞여 버렸기 때문에 해리는 어떤 것도 분명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단지 온갖 색깔들이 마구 뒤엉킨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교수님?"

몇 분이 흐른 후에,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덤블도어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해리를 쳐다보았다. 

"미안하구나."

조용히 사과를 한 후에 덤블도어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교수님은... 그러니까 교수님은 혹시 제 상처가 왜 아픈지 아세요?"

"한 가지는 설명할 수 있단다. 물론 추론에 불과하지만... 내 생각엔 네 이마에 난 상처는 볼드모트가 가까운 곳에 있을 때 혹은 그가 특별히 강력한 증오를 느낄 때 통증을 느끼는 것 같구나."

덤블도어는 한참 동안이나 해리를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왜?"

"너와 볼드모트는 실패한 저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그건 평범한 상처가 아니란다."

덤블도어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교수님은... 그 꿈이... 정말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수도 있지. 아마 그럴 거라고 말하고 싶구나. 그런데 해리... 너는 볼드모트를 보았니?"

덤블도어가 해리를 쳐다보았다.

"아뇨. 그저 볼드모트가 앉아 있는 의자의 뒷모습만 봤어요. 하지만 눈에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어야만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사람은 몸이 없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요술지팡이를 집어들 수가 있었을까요?"

해리가 천천히 물었다.

"정말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덤블도어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덤블도어와 해리는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덤블도어는 방 저편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따금씩 관자놀이에 요술지팡이를 갖다대고 또 다른 반짝거리는 은빛 생각을 꺼낸 후에 펜시브 안에서 들끓고 있는 물질 속에다가 덧붙였다. 

"교수님, 그런데 볼드모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침내 해리가 입을 열었다.

"볼드모트?"

덤블도어가 펜시브 너머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덤블도어만의 아주 독특하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그런 시선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해리는 무디의 마법의 눈으로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머리 속을 덤블도어가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리, 이번에도 그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구나."

덤블도어가 다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덤블도어의 모습이 훨씬 더 늙고 피곤해 보였다. 

"볼드모트가 세력을 떨쳤던 시기에는 특히 실종 사건이 많이 일어났단다. 버사 조킨스는 볼드모트가 분명히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어. 그리고 크라우치도 사라졌지. 바로 우리 운동장에서... 그리고 세 번째 실종 사건이 있었단다. 유감스럽게도 마법부에서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머글들과 관련된 사건이기 때문이지. 그 사람의 이름은 프랭크 브라이스인데, 볼드모트의 아버지가 성장한 그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 그런데 지난 8월 이후로 갑자기 그의 모습이 사라졌단다. 마법부의 동료들과는 달리 나는 머글 신문을 읽고 있지."

덤블도어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내 판단에는 이런 실종 사건들은 모두 밀접한 연관이 있어. 물론 네가 내 사무실 밖에서 조금 전에 들었던 것처럼 마법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만..."

해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덤블도어는 이따금씩 생각들을 꺼내고 있었다. 해리는 이제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자꾸만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교수님?"

해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왜 그러니, 해리?"

덤블도어는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펜시브에서 봤던... 그 법정에서의 일에 대해서..."

"그러렴. 지금까지 나는 수없이 많은 재판에 참석했었지. 하지만 어떤 재판은 아주 선명하게 머리 속에서 떠오르곤 하는구나. 요즘 같은 때에는 더구나..."

덤블도어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수님이... 교수님이 저를 발견하셨던 그 재판 광경이 기억나세요? 크라우치 씨의 아들이 나왔던 그 재판... 그런데... 거기에서 말했던 희생자들이... 네빌의 부모님인가요?"

덤블도어는 해리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네빌이 왜 자신이 할머니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니?"

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네빌과 거의 4년이 넘게 알고 지냈으면서도 어째서 그 일에 대해 한번도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 그 사람들이 바로 네빌의 부모님이란다. 네빌의 아버지 프랭크 롱바텀은 무디 교수와 같은 오러였단다. 볼드모트가 완전히 힘을 잃어버리게 되자, 그의 추종자들이 프랭크와 그의 아내를 붙잡아서 고문했지. 볼드모트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말야."

덤블도어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네빌의 부모님은 죽임을 당했나요?"

해리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니란다." 덤블도어는 해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통하고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롱바텀 부부는 그만 미치고 말았단다. 두 사람 모두 마법 질병과 상해를 치료하는 성 뭉고 병원에 있지. 아마도 방학이면 네빌이 할머니와 함께 그 곳을 방문하고 있을 게다. 비록 롱바텀 부부는 네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말이다."

해리는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전혀 몰랐다... 전혀... 4년이 지나도록 관심조차 없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롱바텀 부부를 좋아했지. 그 불행한 사건은 볼드모트가 힘을 잃어버린 후에 모든 사람들이 이제는 안전하다고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었어. 그래서 이 사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지. 마법부는 그런 잔인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당장 잡아내라는 강한 압력을 받았단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롱바텀 부부의 증언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고려할 때... 전혀 신빙성이 없었어."

덤블도어가 말했다. 

"그렇다면 크라우치 씨의 아들이 그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네요?"

해리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다."

덤블도어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리는 펜시브 안에서 마구 소용돌이치는 생각들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리의 마음속에서 두 가지 질문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범죄와 관련이 있는 질문이었다...

"저..." 마침내 해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베그만 씨는..."

"그 이후로는 어둠의 마법과 관련된 어떤 행위로도 기소된 적이 없단다."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그렇군요." 해리가 다시 펜시브를 내려다보면서 재빨리 대답했다. 이제 덤블도어가 더 이상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지 않자, 그 내용물은 점차 느릿느릿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

그때 펜시브가 해리를 대신해서 질문을 하려는 듯이, 수면위에 스네이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을 힐끗 바라본 덤블도어는 다시 해리에게 말했다. 

"스네이프 교수도 역시 마찬가지란다."

해리는 덤블도어의 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질문이 해리의 입에서 저절로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스네이프 교수님이 정말로 볼드모트를 더 이상 추종하지 않는지 어떻게 알죠?"

덤블도어는 한참 동안 해리를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해리, 그것은 나와 스네이프 교수 사이의 문제란다."

이제 정말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해리는 깨달았다. 덤블도어의 표정이 비록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덤블도어도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해리가 문 앞에 섰을 때, 덤블도어가 다시 신중하게 말했다. 

"해리, 네빌의 부모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다오. 네빌은 자기가 원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단다."

"네, 교수님."

해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에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덤블도어가 한마디 덧붙였다. 해리는 다시 몸을 돌려서 덤블도어를 쳐다보았다. 덤블도어는 펜시브 옆에 서 있었다. 반짝거리는 은색 불빛에 반사된 덤블도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늙고 피곤해 보였다. 덤블도어는 한참 동안 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정하게 말했다. 

"세 번째 시험에서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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