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크라우치의 광기
일요일 아침에 식사를 마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퍼시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서둘러 부엉이장으로 흘러갔다. 시리우스가 시킨 대로 최근에 크라우치를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우편물을 배달하는 임무를 해드위그에게 맡기기로 했다. 해드위그가 너
무나 오랫동안 아무런 일거리도 맡지못했기 때문이다. 해드위그가 부엉이장 창
문 너머로 멀리 사라지자, 그들은 도비에게 새로 산 양말을 선물하기 위해 주방
으로 내려갔다.
꼬마 집요정들은 아주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고마 집요정들은 또다시 굽실
굽실 절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차를 준비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도비
는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동받아서 거의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리 포터는 도비에게 너무 잘해 줘요!"
도비는 툭 불거진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눈물 방울을 닦으면서 꽥꽥거
렸다.
"도비, 너야말로 그 아기미 풀로 내 목숨을 구했어. 네가 나를 구한 거야."
해리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초콜릿을 뿌린 이 슈크리믈 좀더 먹으면 안 될까?"
활짝 웃으면서 연신 절을 하는 꼬마 집요정들을 빙 둘러보면서 론이 말했다.
"너 방금 아침 먹었잖아!"
헤르미온느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벌써 네 명의 꼬마 집요정들이 슈크
림이 잔뜩 담긴 커다란 은쟁반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스누플즈에게 보낼 음식도 좀 챙겨 가면 어떨까?"
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론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다. "피그에게도 뭔
가 할 일을 주도록 해야지. 혹시 남는 음식이 있으면 우리에게 좀 줄 수 없겠
니?"
론이 빙 둘러선 꼬마 집요정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꼬마 집요정들은 아주 신이
나서 꾸벅꾸벅 절을 하더니 재빨리 더욱 많은 음식을 가져오기 위해 주방으로
달려갔다.
"도비, 그런데 윙키는 지금 어디에 있지?"
헤르미온느가 주위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윙키는 바로 저기 벽난로 근처에 있어요."
도비가 귀를 축 늘어뜨리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오, 이런!"
윙키를 발견한 헤르미온느가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냈다. 해리도 얼른 고개를
돌려서 벽난로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윙키는 지난번과 똑같은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더럽혀져도 전혀 상관하지 않기 때문인지, 연
기에 검게 그슬린 벽돌과 잘 분간 할 수 없을 정도로 윙키의 옷은 너덜너덜하
고 때가 잔뜩 끼어 있었다.
윙키는 버터 맥주병을 손에 든 채, 멍하니 모닥불을 응시하며 의자 위에서 조
금씩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는 동안, 윙키는 큰 소리로 딸꾹
질을 했다.
"이제는 하루에 맥주를 여섯병이나 마시고 있어요."
도비가 조심스럽게 해리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저건 별로 독한 술이 아니야."
해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꼬마 집요정에게는 아주 독한 술이에요."
도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대답했다. 윙키가 도다시 딸꾹질을 했다. 슈
크림을 들고 온 꼬마 집요정들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윙키를 흘겨보더니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돌아갔다.
"윙키는 점점 더 야위어 가고 있어요, 해리 포터. 윙키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
어해요. 윙키는 아직까지도 크라우치 씨가 자기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도비가
아무리 말해도 윙키는 덤블도어 교수님이 새로운 주인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않
아요."
도비가 걱정스럽게 속삭였다.
"안녕, 윙키, 요즘은 크라우치 씨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 안 그래? 가끔씩
트리위저드 시합의 심판으로 여기 오던 것도 그만두었으니까 말이야."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오른 해리는 윙키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고 말을 걸
었다.
그러자 윙키의 눈이 깜박거렸다. 커다란 눈동자가 해리를 향하고 있었다. 윙키
는 다시 약간씩 몸을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주……주인님이…… 딸꾹…… 그만두셨다구요?"
"그래."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첫번째 시험 이후로 크라우치 씨를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예언자 일보》에 실린 기사를 보면 몸이 아프다고 하던
데……."
윙키는 좀더 몸을 세게 흔들면서 해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주잉님이…… 딸꾹…… 아프시다구요?"
윙키의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몰라."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덧붙였다.
"주인님은…… 딸꾹…… 윙키가 필요하신 거예요! 꼬마 집요정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주인님은…… 딸꾹…… 혼자서 그 모든 일들을…… 딸꾹…… 처리할
수가 없어요……."
"윙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혼자서 집안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어."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윙키는…… 딸꾹…… 주인님을 위해서…… 딸꾹…… 그저 집안 일만 한 게
아니라구요! 주인님은…… 딸꾹…… 윙키에게 딸꾹…… 제일 중요한 일을 맡겼
어요. 가장…… 딸꾹…… 비밀스러운 일을……."
잔뜩 화가 난 윙키가 꽥꽥거리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훨씬 더 몸을 심하게 흔
들면서 이미 얼룩이 잔뜩 묻은 블라우스에 또다시 맥주를 흘렸다.
"뭐라구?"
해리가 재빨리 물었지만, 윙키는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면서 버터 맥주를 질질
흘렸다.
"윙키는…… 딸꾹…… 주인님의 비밀을 지켜야만 해요." 윙키가 반항적인 태도
로 말했다. 그리고 몸을 아주 심하게 흔들면서 사팔뜨기가 된 눈으로 해리를 흘
겨보았다. "당신은…… 딸꾹…… 남의 일을 캐고 다니는 군. 그래."
"윙키는 해리 포터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못써! 해리 포터는 용감하고 고귀
해. 해리 포터는 남의 뒤를 캐지 않아!"
도비가 마구 화를 내면서 윙키를 향해 소리쳤다.
"우리 주인님의…… 딸꾹…… 사생활과 비밀을…… 딸꾹…… 캐묻고 있잖아!
윙키는 좋은 꼬마 집요정이야, 윙키는…… 딸꾹…… 비밀을 지켜. 사람들이
…… 딸꾹 아무리 캐묻고…… 딸꾹…… 알아내려고 해도……."
윙키의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갑자기 의자 위에서 벽난로 쪽으로 툭 굴러 떨
어졌다. 그런 다음에 윙키는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잠이 들었다. 텅 빈 버
터 맥주병은 돌바닥 위를 따라서 데구루루 굴러갔다.
그러자 대여섯 명의 꼬마 집요정들이 역겨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황급
히 달려 나왔다. 그 중에서 한 명은 얼른 맥주병을 지어 들었으며 다른 꼬마 집
요정들은 밑단에 깔끔하게 주름이 잡힌 체크 무늬의 커다란 식탁보로 윙키를
덮어 버렸다.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윙키의 행동을 보고 저희들
모두를 판단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옆에 서 있던 한 꼬마 집요정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꼬마 집요
정의 얼굴에는 정말로 부끄러워서 견딜 수 가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윙키는 단지 슬픈 거야! 왜 너희들은 윙키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고 감추려고
만 하는 거니?"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냈다.
"부디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가씨. 하지만 꼬마 집요정은 해야 할 일이
있고 섬겨야 할 주인이 있는 이상, 슬퍼할 권리가 없습니다."
꼬마 집요정이 다시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이런, 세상에! 너희들 모두 내 말을 좀 들어 봐! 너희들에게도 마법사들만큼이
나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너희들에게도 임금을 받고 휴일을 갖고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단 말이야! 너희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시키는
대로 뭐든지 다 할 필요는 없어! 도비를 보란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꼬마 집요정들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아가씨, 도비는 이 일에서 빼 주세요."
도비가 잔뜩 겁먹은 듯이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꼬마 집요정들의 얼굴에서 다정한 미소가 일제히 싹 사
라졌다. 갑자기 그들은 헤르미온느가 지극히 위험한 정신병자라도 되는 것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여기 음식을 갖고 왔어요!" 꼬마 집요정 하나가 해리의 팔꿈치 밑에서 소리치
며 해리의 팔에 커다란 햄 한 덩어리와 열 두개의 케이크 그리고 약간의 과일
을 안겨 주었다. "잘 가세요!"
꼬마 집요정들은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빙 둘러싸더니 수많은 작은 손바닥
으로 그들의 등을 조금씩 떠밀며 주방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양말 고마워요, 해리 포터!"
도비가 벽난로 근처에서 서글픈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비의 발치에는 식탁보로
뒤덮인 윙키가 드러누워 있었다.
"헤르미온느 너는 입을 좀 다물고 있으면 어디가 덧나니? 이제 꼬마 집요정들
은 우리가 찾아오는 걸 좋아하지 않을 거야! 윙키에게 크라우치에 대한 걸 더
알아낼 수도 없게 되었잖아!"
주방 문이 쾅 닫히자, 론이 성질을 부렸다.
"그러셔? 너는 마치 그 일에 크게 관심이라도 있는 거처럼 말하는구나! 너는
그저 먹을 것 때문에 주방에 내려가는 거잖아!"
헤르미온느가 콧방귀를 뀌면서 소리쳤다.
그날 오후는 무척 짜증스러웠다. 해리는 줄곧 학생 휴게실에서 숙제를 하는 동
안 내내 서로 으르렁거리는 론과 헤르미온느 때문에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저녁에는 시리우스에게 보낼 음식을 가지고 혼자 부엉이장으로 올라갔
다.
피그위존은 핸 함덩어리를 산까지 나르기에는 너무 몸집이 작았다. 그래서 해
리는 학교 외양간 부엉이 두 마리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부엉이들은 어스름한
저녁 무렵에 출발했다. 커다란 보따리를 양쪽으로 들고 날아가는 부엉이들의 모
습은 상당히 엉거주춤해 보였다.
해리는 창틀에 몸을 기대고 어두운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금지된 숲속의 나
무 꼭대기에서 나는 바스락 소리와 덤스트랭배의 돛이 팔랑거리는 소리가 들렸
다. 수리 부엉이 한 마리가 해그리드의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연기를
뚫고 날아오고 있었다. 그 부엉이는 성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더니 부엉이장을
한 바퀴 맴돌고는 그만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무든 아래를 내려다본 해리는 오두막집 앞마당을 기운차게 파고 있는 해그리
드를 발견했다. 도대체 해그리드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마도 새로운 야채밭을 만드는 모양이었다.
해리가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을 때, 보바통의 마차에서 맥심 부인이
나오더니 해그리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맥심 부인은 해그리드에게 말을 걸
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삽에 몸을 기대고 선 해그리드는 별로 이야
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맥심 부인이 금방 마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또다시 론과 헤르미온느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해리
는 도저히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해리는 어둠의 장
막이 완전히 드리워질 때까지 해그리드가 땅을 파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점차
부엉이들이 하나 둘씩 깨어나더니 순식간에 밤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시간이 되자, 론과 헤르미온느의 불화도 다소 수그러들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일은, 헤르미온느가 꼬마 집요정들을 모욕했기 때문에 그리핀
도르 식탁에는 형편없는 식사가 올라올 거라는 론의 불길한 예언이 어긋났다는
사실이었다. 베이컨과 달걀 그리고 훈제 연어는 평소처럼 꽤 맛있었다.
잠시 후에 우편 배달 부엉이가 도착했다. 그러자 헤르미온느는 잔뜩 기대에 찬
눈길로 부엉이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를 무척 고대하는 듯한 눈치였다.
"퍼시는 아직 답장을 보낼 시간이 없을 거야. 우리가 헤드위그를 보낸 게 바로
어제였잖아."
론이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아니야. 그걸 기다리는 게 아니야. 사실은 《예언자 일보》를 구독 신청했어.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번번이 슬리데린 아이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지
긋지긋해서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야!" 이제 해리도 기대에 가득 찬 눈길로 부엉이를 바라보았
다. "이봐, 헤르미온느, 내 생각에는 마침내 너에게 행운이 찾아온 것 같은
데……."
회색 부엉이가 곧장 헤르미온느의 접시 위에 내려앉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
를 따라서 네 마리의 외양간 부엉이와 갈색 부엉이 그리고 새끼 부엉이 한 마
리가 날개를 접으면서 내려앉았다.
"도대체 구독 신청을 얼마나 많이 한 거야?"
해리는 부엉이의 발톱에 걸려서 엎질러지기 직전인 헤르미온느의 컵을 재빨리
움켜잡았다. 그 부엉이들은 서로 제일 먼저 편지를 전달하려고 번잡스럽게 몸을
부대끼면서 헤르미온느를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헤르미온느는 회색 부엉이가 가지고 온 편
지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오. 이런!"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
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론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물었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헤르미온느는 회색 부엉이가 가지고 온 편
지를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오, 이런!"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
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이야?"
론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물었다.
"세상에! 정말…… 기가 막혀서……."
헤르미온느는 들고 있던 편지를 해리에게 던졌다. 그 편지는 손으로 쓴 것이
아니라 《예언자 일보》에서 활자를 오려 내어 붙인 것이었다.
너는 사악한 여자야 해리 포터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해. 당장 너네 머글들
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다른 편지들도 다 똑같아!" 차례차례 편지를 열어 본 헤르미온느가 기가 막히
다는 듯이 말했다. "'해리 포터는 너 같은 여자보다 훨씬 나아…….' '너는 개구
리 알과 함께 끓는 물 속에 풍덩 들어가야 마땅해…….' 오, 세상에!"
헤르미온느가 마지막 편지 봉투를 열자, 강한 석유 냄새가 풍기는 연한 초록색
의 액체가 그녀의 손등 위로 쏟아졌다. 순식간에 헤르미온느의 손등에는 노랗고
커다란 종기가 생기면서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다.
"부보투버 고름 원액이야!"
론이 재빨리 봉투를 집어 들어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아야!"
휴지로 손등에 묻은 고름을 닦아 내던 헤르미온느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고통스러운 종기로 다닥다닥 뒤덮인 헤르미온느의 손가
락은 마치 굵은 매듭이 진 장갑을 끼고 있는 것처럼 보일정도였다.
"어서 병동으로 가는 게 좋겠다. 스프라우트 고수님께는 우리가 말씀을 드리도
록 할게……."
헤르미온느 앞에 내려앉았던 부엉이들이 모두 떠나자, 해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 두 손을 싸매고 허둥지둥 연회장에서 달려나가는 헤르미
온느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론이 투덜거렸다. "리타 스키터를 화나게 하지 말
랬잖아. 이것 좀 봐……."
론은 헤르미온느가 두고 간 편지들 중에 하나를 집어 들고 큰 소리로 읽었다.
"'나는 《마녀 주간지》에서 네가 어떻게 해리 포터를 가지고 놀았는지 읽었다.
그 소년은 네가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힘든 시련을 겪었어. 나는 가장 커다란
봉투가 눈에 뜨이는 대로, 당장 다음 우편으로 너에게 온갖 저주를 다 써서 보
낼 작정이다.' 이런 세상에! 헤르미온느는 더 이상 네 걱정은 하지 말고 자기 몸
이나 잘 돌보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는 약초학 시간이 끝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온실에서 나온 후 신
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을 듣기 위해 걸어가던 해리와 론은, 성의 돌계단을 내려
가고 있는 말포이와 크레이브, 고일과 맞닥뜨렸다. 팬시 파킨슨은 그들의 등 뒤
에서 슬리데린의 여학생 깡패들과 뭐라고 속닥거리며 연신 킬킬거리고 있었다.
해리를 발견한 팬시가 큰 소리로 말했다.
"포터, 네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면서? 그런데 아침 식사 시간에는 왜 그렇게
소란을 피웠니?"
해리는 일부러 팬시 파킨슨의 말을 듣지 못한 척했다. 《마녀 주간지》에 실린
기사가 얼마나 커다란 소동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알고 좋아하는 꼴을 결코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수업 시간에 유니콘에 관한 공부는 모두 끝났다고 말했던 해그리드는 발
치에 뚜껑이 열린 나무 상자를 잔뜩 쌓아 놓고 오두막집 앞에서 학생들을 기다
리고 있었다. 나무 상자를 보자, 해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또다시
스크루트를 부화시킨 건 아니겠지?
하지만 해리가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상자 안을 들여다보자, 주둥이가 길고 털
이 북실북실한 검은 동물 여러 마리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앞발은
마치 삽처럼 아주 신기하게 넒적했다. 검은 동물들은 갑자기 모든시선이 자신들
에게 쏠리자, 약간 어리둥절한 듯이 눈을 깜박이면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니플러야." 그 자리에 빙 둘러 서 있는 학생들을 쳐다 보면서 해그리드
가 말했다. "대부분 광산 아래에서 발견되곤 하지.반짝거리는 물건을 좋아하거
든……. 자, 어서 한 번 살펴 보거라."
갑자기 니플러 중에서 한 마리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팬시 파킨슨의 손목에 차
고 있던 시계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팬시 파킨슨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면서
얼른 뒤로 물러났다.
"보물을 찾는 데에는 아주 유용한 동물이지." 해그리드가 만족스러운 듯이 말
했다. "오늘은 좀 재미있는 일을 해볼 생각이란다, 저기 보이니?"
해그리드가 막 갈아엎은 듯한 넓은 공터를 가리켰다. 부엉이장 창문에서 해리
가 내려다보았을 때, 해그리드가 열심히 땅을 파고 있던 바로 그 장소였다.
"내가 저곳에 금화를 좀 묻어 놓았단다. 금화를 가장 잘 찾아내는 니플러를 고
른 사람에게는 푸짐한 상을 주겠다. 값비싼 장신구들은 모두 풀어 놓고 각자 니
플러 한 마리씩을 고르거라. 준비가 끝나면 니플러를 풀어주도록 해."
해리는 시계를 벗어서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사실 그 시계는 습관적으로
차고 다니는 것일 뿐, 더 이상 작동은 되지 않았다.
해리는 상자 속에 들어 있던니플러 중에서 한 마리를 골랐다. 그 녀석은 해리
의 귀에 긴 주둥이를 갖다 대고는 열심히 코를 킁킁거렸다. 정말이지 꼭 끌어안
고 싶을 만큼 귀여운 동물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라."해그리드가 상자 안을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여기 니플러
한 마리가 남았는걸…….누가 빠졌지? 헤르미온느는 어디 있니?"
"병동에 갔어요."
론이 대답했다.
"나중에 설명해 드릴게요."
해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팬시 파킨슨이 유심히 귀를 기울이면서 듣
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들었던 신비한 동물 돌보기 수업 중에서 이렇게 재미있고 쉬운 수업
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니플러들은 마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단단한
땅을 여기저기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잠시 후에 니플러들은 자기를 풀어 준 학생이 기다리는 곳으로 재빨리 다시
돌아오더니 손바닥에 금화를 뱉어 놓았다. 특히 론의 니플러는 재주가 아주 뛰
어나서 금방 많은 금화를 모았다.
"애완용으로 이 동물을 좀 살 수 있나요, 해그리드?"
잔뜩 신이 난 론이 물었다. 론의 니플러는 옷에 흙을 튀기면서 다시 땅굴을 파
고 들어갔다.
"네 엄마가 별로 좋아하시지 않을 게다, 론. 이 니프러들은 집을 무너뜨릴 수
도 있기 때문이야. 이제 거의 다 찾은 것 같구나."
해그리드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해그리드는 니플러들이 계속해서 들락날락 거
리는 공터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나는 겨우 금화 백개밖에 안 묻었거든. 오, 저기 오는군.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는 잔디밭을 지나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손에 두
껍게 붕대를 감고 있는 헤르미온느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팬시 파킨슨
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헤르미온느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희들이 얼마나 잘 찾았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해그리드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자기의 동전을 세도록 해! 금화를 슬쩍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고일!" 해그리드는 검은 딱정벌레처럼 생긴 눈을 가늘게 뜨
면서 경고했다.
"이건 레프러칸 요정의 금화야. 몇 시간 후에는 저절로 사라질 게다."
해그리드의 말을 듣자, 고일은 전혀 내키지 안는 표정으로 마지못해 호주머니
속의 금화를 꺼 놓았다. 결국 론의 니플러가 제일 훌륭한 것으로 판정났다. 해
그리드는 론에게 커다란 허니듀크 초콜릿을 상으로 주었다.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운동장에 울려 퍼지자 다른 학생들은 모두 성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뒤에 남아서 해그리드가 니플러들
을 다시 상자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도와주었다. 해리는 맥심 부인이 보바통의
마차 창문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헤르미온느, 네 손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해그리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헤르미온느는 그날 아침에 받은 그 증
오 가득한 편지들과 부보투버 고름이 가득 들어 있던 봉투에 대해 얘기해 주었
다.
"아하! 그런 건 조금도 걱정하지 마라. 나도 리타 스키터가 우리 엄마에 대한
기사를 쓴 이후에 그런 편지를 받았었단다. '너는 괴물이다. 당장 없어져라. 너
의 엄마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네게 조금이라도 체면이 있다면 당장 호수
속에 빠져 버려라' 라는 등……."
해그리드가 헤르미온느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
헤르미온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이야. 헤르미온느. 그 사람들은 다 바보 멍청이야. 앞으로는 절대로 편지
를 열어 보지 말거라. 곧장 불 속에 던져넣어버려."
해그리드는 니플러가 들어 있는 상자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오두막집 담 옆에
쌓아 놓았다.
"너는 정말 재미있는 수업을 놓쳤어."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리가 헤르미온
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니플러들은 정말 귀엽지? 그렇지 않니, 론?"
하지만 론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해그리드가 준 초콜릿만을 노려보고 있었
다. 론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그래? 맛이 이상하니?"
해리가 물었다.
"아니야." 론이 짤막하게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나에게 그 황금에 대해서 말
하지 않았니?"
"무슨 황금?"
해리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퀴디치 월드컵 때 너한테 주었던 그 황금 말이야. 내가 만능 망원경 값
으로 너한테 그 레프러칸 황금을 줬잖아. 일등 관람석에서…… . 그게 사라졌다
고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니?"
론이 불마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지 못해서 잠시동안 기억을 더듬어야만 했다.
"아……." 마침내 기억이 떠오르자, 해리가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그
게 없어진 것도 몰랐는걸. 그 당시에 나는 요술지팡이 때문에 정신이 온통 팔려
있어서 말이야."
현관 복도로 향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간 그들은 점심 식사가 마련되어 있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너는 참 좋겠구나." 모두들 자리에 앉아서 막 로스트 비프와 요크셔 푸딩을
먹으려고 하는데, 론이 불쑥 입을 열었다. "호주머니에 잔뜩 들어 있던 갈레온
이 몽땅 없어졌는데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부자니까 말이야."
"이봐, 론! 그날 밤에 나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우리
모두 그랬잖아. 기억 안 나?"
해리가 간신히 화를 참으면서 말했다.
"나는 레프러칸 황금이 사라지는 것인 줄 몰랐어. 그런 줄도 모르고 너에게 값
을 지불했다고 생각했지. 너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그 처들리 캐논 팀의 모자를
나한테 주지 말았어야 했어."
론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만 잊어버려, 알았어?"
론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가난한 게 싫어."
론은 포크를 들고 구운 감자를 꽉 찍어 올리더니 한참 동안이나 노려보았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서로 얼굴을 마주 처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할 말을 잃었
던 것이다.
"이건 다 헛소리야. 프레드와 조지 형이 돈을 벌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도 어쩌
면 당연한 일이야. 나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니플러 한 마리만 가질 수
있다면……."
론은 여전히 감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크리스마스 때 네가 무슨 선물을 받을지 알겠구나."
헤르미온느가 명랑하게 말했다. 하지만 론이 여전히 우울해 하자, 헤르미온느
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론! 그보다 훨씬 더 나쁜 일도 있어 적어도 네 손가락에는 종기가 잔뜩
나지는 않았잖아."
사실 헤르미온느의 손가락은 뻣뻣하고 팽팽하게 부어 올랐기 때문에 나이프나
포크를 쥐고 움직이기가 몹시 힘들었다.
"나는 스키터, 그 여자가 싫어!" 헤르미온느가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반
드시 이 빚을 갚아 주겠어!"
다음 주에도 증오의 편지는 계속해서 헤르미온느 앞으로 배달되었다. 비록 헤
르미온느는 해그리드의 충고에 따라 그 편지를 뜯어 보지도 않았지만, 몇 명의
극성스러운 사람들은 호울러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터진 호
울러는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온갖 욕설
을 퍼부었다.
이제 《마녀 주간지》를 읽어 보지 않았던 사람들조차도 해리와 크룸과 헤르
미온느의 삼각 관계에 대해서 상세히 알게 되었다. 해리는 사람들에게 헤르미온
느가 자신의 여자 친구가 아니라고 해명을 하는 일에 그만 신물이 날 지경이었
다.
"금방 수그러들 거야. 우리가 그냥 무시하기만 하면……. 지ㅁ난번에 리타가
나에 대해 쓴 기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곧 싫증을 냈잖아."
해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헤르미온느를 위로했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여자가 사적인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우리 운동장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시간에 헤르미온느는 무디 교수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기
위해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한시라도 빨리 교실
을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무디가 주문 반사라는 아주 거친 시험을 보았
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해리는 귀비틀기 주문
이라는 아주 나븐 경우에 걸려서 두 손으로 귀를 감싼 채, 교실에서 나가야만
했다.
"그래, 리타는 투명 망토를 사용하지 않은 게 분명해!" 5분 후에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현관 복도에 있는 해리와 론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자신
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귀를 감싸고 있는 해리의 손을 끌어내렸
다. "무디는 두 번째 시험 때 심판석이나 호수 근처 그 어디에서도 리타의 모습
을 보지 못했다는 거야!"
"헤르미온느, 이제 그만 그 일은 잊어버리라고 그렇게 충고했는데 아직까지도
그 타령이니?"
론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싫어! 나는 어떻게 해서 그 여자가 나와 빅터의 대화를 엿들었는지 알아내고
말겠어! 그리고 해그리드의 엄마에 대해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고집을 부렸다.
"어쩌면 너에게 벌레를 붙였는지도 몰라."
해리가 조용히 말했다.
"벌레?" 론은 어리둥절해했다. "뭐라구? 그렇다면 벼룩이나 뭐 그런걸 붙였단
말이야?"
해리는 머글들이 사용하는 도청 장치나 몰래 카메라 같은 장비에 대해서 설명
하기 시작했다. 론은 넋을 잃고 그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
는 해리의 이야기를 도중에 가로막았다.
"그런데 너희들은 《호그와트의 역사》를 끝내 읽어 보지 않을 작정이니?"
"그럴 필요가 뭐 있어? 네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있잖아. 우리는 그저 너
한테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데……."
론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머글들이 마법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그 모든 대용물…… 전기, 컴퓨터, 레이
더, 그런 것들은 모두 호그와트 근처에 오면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말아. 공중
에 너무나 강력한 마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야. 리타는 마법을 사용ㅎ서 우리
의 대화를 엿들은 게 분명해. 아마도 틀림없이……. 그게 어떤 마법인지 알아낼
수만 있다면……. 오, 그게 만약 불법적인 거라면, 나는 그 여자를 당장……."
"아직도 우리에게 고민 거리가 부족하단 말이니? 그래서 이제는 리타 스키터
를 상대로 피의 복수까지 시작해야 한다는 거야?"
론이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도 하지 않았어! 나는 혼자서 이 일을 해결할 거야!"
헤르미온느는 날카롭게 쏘아붙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리석 계단을 씩씩
하게 올라갔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틀림없이 도서관으로 갈 거라고 확신했
다.
"헤르미온느가 '나는 리타 스키터를 증오한다!' 라는 글씨가 적힌 배지를 한 상
자 가지고 돌아올 거야. 나랑 내기할래?"
론이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리타 스키터에게 복수하는 걸 도와달라고
해리와 론에게 부탁하지 않았고, 두 사람도 그 사실을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생
각했다. 왜냐하면 부활절 휴가 전가지 날마다 숙제가 점점 더 많아졌기 때문이
다.
해리는 솔직히 헤르미온느가 해야 할 일을 다 하면서 도청 마법술에 대한 연
구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리는 그 모든 숙제를
하는 것만으로도 날마다 파김치가 될 지경이었다. 물론 시리우스를 위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산속의 동굴로 음식을 보내는 일도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음식을
먹지 못하고 계속 굶주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해리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
다. 해리는 음식을 보내면서, 평상시대로 일상적인 일 외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
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퍼시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은 편지도 함께
보냈다.
헤드위그는 부활절 휴가가 끝나 갈 때쯤에서야 돌아왔다. 퍼시의 편지는 위즐
리 부인이 보낸 부활절 달걀 보따리에 동봉되어 있었다. 해리와 론이 받은 달걀
들은 거의 용의 알 만큼이나 컸으며 집에서 만든 태피도 잔득 들어 있었다. 하
지만 헤르미온느의 달걀은 보통 달걀보다도 훨씬 작았다.
"론, 혹시 너희 엄마도 《마녀 주간지》를 읽으신 건 아니겠지?"
헤르미온느가 힘없이 물었다.
"아니, 사실은 읽었어. 요리법 때문에 그 잡지를 보시거든."
입에 태필를 잔뜩 문 채, 론이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시선을 떨구고 자신의
조그마한 달걀을 서글픈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퍼시의 답장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 읽어보지 않을래?
해리가 재빨리 헤르미온느에게 말을 걸었다. 퍼시의 편지는 짧고 신경질적이었
다.
《예언자 일보》 기자에게 항상 말했던 것처럼 크라우치 씨는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을 취하고 계신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부엉이를 통해 지시 사항을 보내
오고 있어. 물론 직접 그분을 뵌 적은 없지만 설마 내가 직속 상관의 글씨체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가라앉히는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 나에게는
해야 할 일들이 무척 많아. 그러니까 제발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나
를 괴롭히지 말아라.
즐거운 부활절이 되기를.
평소라면 여름 학기의 시작은 곧 해리에게 있어서 마지막 퀴디치 시합에 대비
하기 위한 힘든 훈련의 시작을 의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트리위저드
시합의 마지막 세 번째 시험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뭘 어떻
게 해야만 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마침내 5월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변신술 수업이 끝나자 맥고나걸 교수가 해
리를 불렀다.
"포터, 오늘 밤 9시에 퀴디치 운동장으로 내려오너라. 베그만 씨가 그곳에서
챔피언들에게 세 번째 시험에 대해 알려줄 예정이다."
그날 밤 8시 30분이 되자,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그리핀도르 탑에 남겨두
고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 복도를 지나가고 있을 때, 해리는 후플푸프 학생 휴
게실에서 나오는 케드릭과 마주쳤다.
"어떤 문제가 나올 것 같니?"
케드릭이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해리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안개가 잔득
끼어 있는 어둠 속으로 나갔다.
"플뢰르는 계속해서 땅 밑으로 굴을 파는 공부를 하고 있어. 보물을 찾는 문제
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렇다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해리는 자신을 대신해서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니플러 한 마리만 해그리드
에게 부탁하면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어둠이 깔린 잔디밭을 지나서 퀴디치 경기장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관중석 사이로 나 있는 입구를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케드릭이 우뚝 발길을 멈추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퀴디치 경기장은 더
이상 평평하고 부드러운 잔디밭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곳에 온통 사방으로 꼬
불꼬불하게 미로처럼 뻗어 있는 길고 낮은 담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울타리야!"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땅 위를 살펴보던 해리가 말했다.
"어이, 이봐!"
갑자기 쾌활한 목소리가 들렷다. 루도 베그만은 크룸과 플뢰르와 함께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해리와 케드릭은 울타리를 넘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해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플뢰르는 환한 미소를 던졌다. 해리가 호수에서 그녀
의 여동생을 구한 다음부터 해리를 대하는플뢰르의 태도는 180도로 달라졌다.
"자, 어떤가요?" 해리와 케드릭이 마지막 울타리를 넘었을 때, 루도 베그만이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주 멋지게 자라고 있죠? 이제 한 달만 더 있으면
해그리드는 이것들을 6미터 높이 정도까지 자라나게 할 겁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루도 베그만은 해리와 케드릭의 얼굴에 떠오른 떨떠름한
표정을 보자, 활짝 웃으면서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일단 트리위저드 시합이 끝나면 여러분의 퀴디치 경기장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테니까 말이죠! 자, 우리가 여기에서 뭘 만들고 있는지 짐작이 가나요?"
한참동안이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미로요."
빅터 크룸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았어요! 미로입니다. 세 번째 시험은 아주 간단합니다. 미로의 중앙에 트리
위저드 컵이 놓여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 컵을 만지는 사람이 만점을
받게 되는 거죠."
루도 베그만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명 우리능 그저 미로를 통과하기망 하면 되나용?"
플뢰르가 물었다.
"물론 장애물이 있죠." 루도 베그만은 신이 나서 설명했다. "해그리드가 여러
생물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리고 챔피언들이 반드시 깨뜨려야 할 주문도
설치될 예정이죠……. 여러분도 아다시피 뭐 그런 종류의 것들 말입니다. 우선
점수가 가장 좋은 챔피언들이 제일 먼저 미로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루
도 베그만은 해리와 케드릭을 바라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에
크룸 군이 들어가고…… 그 이후에 델라쿠르 양의 차례가 되겠군요. 하지만 여
러분 모두 얼마나 훌륭하게 장애물들을 통과하는가에 다라서 우승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겁니다. 아주 재미있겠죠? 그렇죠?"
해그리드가 이런 시험을 위해서 어떤 종류의 생물들을 준비 할 것인지 뻔히
알고 있는 해리는 전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예의상 다른 챔피언들
과 함께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좋습니다……. 혹시 다른 질문이 없다면, 이제는 성으로 돌아갑시다. 날
씨가 좀 쌀쌀하군요……."
루도 베그만이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챔피언들이 점점 자라나고 있는 미
로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루도 베그만이 서둘러 해리 곁으로 다가왔다.
해리는 마음속으로 루도 베그만이 또다시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하려는 모양이
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크룸이 해리의 어깨를 툭 쳤다.
"나와 잠깐 이야기를 좀 할 수 있나?"
"그래 좋아."
사실 해리는 크룸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나와 함께 걷겠나?"
"좋아."
호기심이 생긴 해리는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루도 베그만은 약간 당황했다.
"해리, 내가 기다려 줄까? 어때?"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베그만 씨. 성으로 돌아가는 길 정도는 저 혼자서도
찾을 수 있어요. 어쨌거나 고맙습니다."
해리는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해리와 크룸은 나란히 경기장을 떠났다. 하지만 크룸은 덤스트랭의 배로 향하
지 않았다. 그 대신에 숲을 향해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니?"
해그리드의 오두막과 불빛이 새 나오는 보바통의 마차를 지나가자, 해리가 궁
금하여 물었다.
"누가 들으면 안 된다."
빅터 크룸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마침내 한적한 운동장 가장자리를 지나 보바통의 말들을 가둬 놓은 방목장으
로 향하는 좁은 오솔길로 접어들었을 때, 크룸은 나무 그늘 밑에서 걸음을 멈추
고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나는 알고 싶다." 크룸이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와 헤르미-
오운-니니 사이를……."
빅터 크룸의 비밀스러운 태도를 보고 무엇인가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이야
기일 거라고 잔뜩 기대했던 해리는 깜짝 놀라서 멀뚱히 크룸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해리가 대답했지만, 크룸은 여전히 해리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해리는 새
삼스럽게 크룸이 얼마나 키가 크고 날렵한 체격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그저 친구야. 헤르미온느는 한 번도 내 여자 친구였던 적이 없었고 지
금도 마찬가지야. 그건 모두 다 스키터, 그 여자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구."
"헤르미-오운-니니는 네 이야기를 자주한다."
빅터 크룸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그렇겠지. 우리는 친구니까……."
해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자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퀴디치
선수인 빅터 크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 도통 믿어지지 않았
다. 열여덟 살이나 된 크룸이 마치 자신과 동등한 진짜 연적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너는 절대로…… 너는 절대로……."
"아니야."
해리는 아주 확고하게 대답했다. 비로소 빅터 크룸은 약간 안심하는 듯 했다.
빅터 크룸은 잠시 해리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아주 잘 난다. 첫벌째 시험을 치면서 다 보았다."
"고마워." 해리는 빙그레 웃었다. 갑자기 자신이 훨씬 더 키가 커진 것 같았다.
"나는 퀴디치 월드컵 때 너를 봤어. 렁스키 페인트, 너는 정말……."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크룸이 서 있는 뒤쪽 숲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한 번
숲속에 숨어 본 경험이 있는 해리는 본능적으로 크룸의 팔을 붙잡고 앞으로 잡
아당겼다.
"저게 뭐냐?"
해리는 어떤 물체가 움직인 듯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
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서 요술지팡이를 찾았다. 그때
한 남자가 우람한 떡갈나무 뒤에서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처음에 해리는 그 사
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바로…… 바르테미우스 크라우치였다.
크라우치는 마치 며칠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여행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옷
의 무릎 부분이 다 해지고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수염을 깎지 않은 얼굴에는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나 있었으며 극심한 피로로 인해 창백하게 질려 있었
다. 언제나 단정했던 머리와 콧수염도 너무 길고 지저분하게 자라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상한 겉모습도 크라우치의 행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손짓 발짓을 하는 크라우치의 모습은 오직 자기 눈에만
보이는 누군가와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해리는 문득 언제인가 더즐리 가족과 쇼핑을 갔을 때 봤던 늙
은 부랑자가 생각났다. 그 남자도 허공을 쳐다보면서 정신없이 중얼거리고 있었
는데, 페투니아 이모는 황급히 두들리의 손을 잡고 그 남자를 피해 길 건너편으
로 달려갔었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는 가족들을 붙잡고 자기라면 거지나 부랑자
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 장황설을 늘어 놓은 적이 있었다.
"저 사람은 심판이 아닌가?" 빅터 크룸이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크라우치를 쳐
다보면서 말했다. "너희 마법부에 있지 않나?"
해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간 망설이다가 크라우치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갔다. 해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크라우치는 옆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웨더비, 그 일이 끝나면 덤블도어에게 부엉이를 보내서 이 시합에 참가할 덤
스트랭 학생들의 숫자를 정확히 알려 주도록 하게. 카르카로프가 방금 전에 열
두 명이 참가할 거라는 소식을 보냈다네……."
"크라우치 씨?"
해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크라우치는 해리의 말을 전혀 듣지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에는 맥심 부인에게 부엉이를 보내게. 시합이 열리는 곳으로 데리고
갈 학생 수를 미리 정하고 싶어했거든. 이제 카르카로프 학생들은 모두 열두 명
으로 확정되었으니까……. 어서 그 일을 하게, 웨더비. 알겠나? 알겠나? 어
서……."
크라우치가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크라우치는 잠시 멍하니 나무를 노려보
면서 입 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비틀거리면서 숲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라우치 씨. 괜찮으세요?
해리가 큰 소리로 물었다. 크라우치의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크룸을 쳐다보았다. 해리를 따라 숲속까지 들어온 크룸은 크라우
치를 내려다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나도 모르겠어. 이봐, 크룸. 어서 가서 누군가를 데려오는 게 좋겠어."
해리가 크룸에게 말했다.
"덤블도어!" 갑자기 크라우치가 입을 딱 벌렸다. 크라우치는 손을 앞으로 쭉
뻗더니 해리의 옷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해리를 점점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하지만 크라우치의 눈길은 여전히 해리의 머리를 지나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꼭…… 만나야 해…… 덤블도어를……."
"좋아요. 크라우치 씨, 일어날 수만 있으면…… 우리는 저기……."
해리가 크라우치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나는…… 바보 같은 짓을 했어……." 크라우치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크
라우치는 완전히 미쳐 버린 것 같았다.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크라우치의 두 눈
은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으며 턱에는 침이 질질 흐르고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것이 크라우치에게는 엄청난 고통인 것처럼 보였다. "말을……
해야만 되는데……. 덤블도어……."
"크라우치 씨, 일어나세요." 해리가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일어
나세요. 덤블도어 선생님이 계신 곳으로 데려다 드리겠어요."
크라우치의 눈이 천천히 해리를 향해 움직였다.
"너는…… 누구냐?"
크라우치가 희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이 학교의 학생이에요."
해리는 도와달라는 뜻으로 크룸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크룸은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으로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었다.
"너는…… 아니지? 그…… 사람의?"
크라우치가 맥없이 입술을 늘어뜨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해리는 지금 크라우치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
다.
"그렇다면 덤블도어의?"
"맞아요."
해리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크라우치는 해리에게 더욱
바싹 매달렸다. 해리는 자신의 옷자락을 굳게 움켜쥐고 있는 크라우치의 손을
풀려고 애를 썼지만 손아귀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경고해……. 덤블도어……."
"이 손을 놓으면 덤블도어 선생님을 모셔 오겠어요. 크라우치 씨, 저를 놔 주
세요. 제가 모시고 오겠다니까요……."
해리가 난처해 하며 말했다.
"고맙네, 웨더비 그 일이 끝나면 나는 차를 한 잔 마시고 싶군. 내 아내와 아
들이 곧 도착할 거야. 우리는 오늘 밤에 퍼지씨 부부와 함께 음악회에 가기로
했거든."
크라우치는 다시 나무를 쳐다보면서 태연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해리가 옆
에 있다는 사실조차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어찌나 놀랐던
지 어느 사이에 크라우치가 자신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는 것
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 최근에 우리 아들은 열두 개의 O.W.L.을 통과했다네. 대부분 만족스러
운 점수였지. 그래, 정말 고마워. 그래 솔직히 말해서 아주 자랑스럽다네. 자, 이
제 나에게 앤도란 장관이 보낸 전갈을 좀 가져다 주겠나? 잠깐 답장을 써 보낼
틈이 있을 것 같군……."
"여기에서 이 사람을 지키고 있어! 내가 덤블도어를 데리고 다시 돌아올게. 내
가 더 빠를 거야. 나는 덤블도어의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해리가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이 사람은 미쳤다."
빅터 크룸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크라우치를 내려다보았다. 크라우치는 자신이
퍼시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무를 향해 여전히 지껄이고 있었다.
"잠깐만 이 사람 곁에 있어."
해리는 몸을 막 일으키려고 했지만 해리보다 크라우치의 동작이 조금 더 빨랐
다. 크라우치는 갑자기 해리의 무릎을 거세게 끌어안더니 다시 바닥에 주저앉혔
다.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크라우치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크라우치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
"나는…… 도망쳤어. 경고를 해야만 해……. 말해야만 해……. 덤블도어를 만나
서…… 내 잘못…… 내 모든 잘못을…… 버사…… 죽었어……. 그건 모두 내 잘
못…… 내 아들…… 내 탓이야……. 덤블도어에게 말해야…… 해리 포터…… 어
둠의 주인이…… 더 강해졌다고…… 해리 포터……."
"크라우치 씨, 저를 놓아주시면 덤블도어 선생님을 모셔 오도록 하겠어요!" 해
리는 소리를 지르면서 짜증스럽게 크룸을 돌아보았다. "나를 좀 도와줘! 어서!"
빅터 크룸은 몹시 불안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크라우
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에서 이 사람을 지키고 있어. 덤블도어 선생님을 모시고 다시 돌아올게."
해리는 크라우치의 손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서둘러, 알았지?"
빅터 크룸이 해리의 등 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해리는 숲을 지나서 어두운
운동장을 쏜살같이 가로질러 달려갔다. 운동장은 벌써 텅 비어 있었다. 루도 베
그만이나 케드릭, 플뢰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해리는 돌계단을 정신없이
올라갔다. 그리고 오크로 만든 현관문을 밀치고 이층을 향해 대리석 계단을 성
큼성큼 뛰어갔다.
5분 가량 지난 후에 해리는 텅 빈 복도의 중간에 서 있는 이무기 석상을 향해
서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레몬 방울!"
해리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외쳤다. 그것은 덤블도어의 사무실로 향하는 비밀
계단의 암호였다. 아니, 적어도 2년 전에는 그랬었다. 하지만 암호가 바뀐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이무기 석상이 살아 움직여 얼른 옆으로 비켜서기는커녕,
꼼짝도 하지 않고 해리를 심술궂게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여!" 해리가 안타깝게 소리쳤다. "어서!"
하지만 호그와트에서 아무리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고 해도 꿈쩍이라도 하
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해리는 발버둥을 쳐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
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줄 모르고 어두운 복도를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다. 어쩌면 덤블도어가 교무실에 있지 않을까?
해리는 있는 힘을 다해 계단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포터!"
해리는 걸음을 딱 멈추고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이무기 석상 뒤에 감춰진
비밀 계단에서 스네이프가 막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스네이프의 등 뒤에 있는
돌벽이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닫히고 있었다. 스네이프는 손짓을 하면서 해리를
불렀다.
"저는 덤블도어 교수님을 만나야 해요! 크라우치 씨가…… 나타났어요……. 숲
속에 있는데…… 지금…… 원하고 있어요!"
해리는 황급히 다시 복도를 달려와서 스네이프 앞에 미끄러지듯 멈추어 섰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냐?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스네이프의 검은 눈동자가 사납게 번뜩였다.
"크라우치 씨 말이에요! 마법부에서 일하시는 그 사람을 만났어요! 병이 나셨
거나 뭐 그런 것 같아요. 숲속에 있어요. 그 사람이 덤블도어 교수님을 만나고
싶어해요. 어서 암호를 가르쳐 주세요."
해리는 애타게 소리를 질렀다.
"교장 선생님은 무척바쁘시단다, 포터."
스네이프는 얇은 입술을 치켜 올리면서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덤블도어 선생님을당장 만나야만 해요!"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내 말을 듣지 못했니, 포터!"
해리는 스네이프가 이런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
가 그토록 애타게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보세요." 해리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크라우치 씨는 지금 상태
가 좋지 않아요. 그 사람은…… 그 사람은 정신이 나갔다구요. 그 사람은 경고
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갑자기 스네이프의 등 뒤에서 돌벽이 스르르 갈라지더니 비밀 통로가 다시 열
렸다. 그곳에는 기다란 초록색 가운을 입은 덤블도어가 서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약간 의아한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덤블도어가 해리와 스네이프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교수님!" 해리는 스네이프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재빨리 앞으로 다가서면
서 말했다. "크라우치 씨가 저기 있어요. 저기 숲속에 말이죠. 그분은 지금 교수
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해요!"
해리는 덤블도어가 이것저것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덤
블도어는 단 1초도 낭비하지 않았다.
"길을 안내해라."
덤블도어는 스네이프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즉시 해리의 뒤를 따라서 부지
런히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네이프는 자신과 똑같이 추악하게 생긴 이무
기 석상 옆에 멍하니 서 있었다.
"해리, 그런데 크라우치 씨가 뭐라고 말했니?"
황급히 대리석 계단을 내려가면서 덤블도어가 물었다.
"교수님께 경고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무언가 아주 끔찍한 일을 했다구
요……. 아들이야기도 했어요……. 버사 조킨스에 대한 것도……. 그리고 볼드모
트에 대해서도……. 볼드모트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말을……."
"그렇구나."
덤블도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덤블도어는 더욱 걸음을 재촉하면
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 사람은 정상이 아닌 것 같았어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마치 퍼시 위즐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태
도가 돌변하더니 선생님을 꼭 만나야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빅터 크룸에
게 크라우치 씨를 잘 지켜보라고 한 후에 달려왔어요."
부지런히 덤블도어를 따라가면서 해리가 말했다.
"그랬니?" 덤블도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묻더니 더욱더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해리는 덤블도어를 쫓아가기 위해 종종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
다. "혹시라도 누구 다른 사람이 크라우치 씨를 보지는 않았니?"
"아니에요. 크룸과 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베그만 씨가 세 번째 시험
에 대해서 막 이야기를 끝낸 다음이었죠. 우리는 뒤에 남아 있었는데, 갑자기
크라우치 씨가 숲에서 나오는 모습을 봤어요."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어디 있니?"
보바통의 마차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덤블도어가 물었다.
"저 너머예요."
해리는 덤블도어 앞에서 걸어가면서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난 길을 안내했다. 크
라우치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는 분명히 이 길을 기억
하고 있었다. 보바통의 마차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는데……. 분명히 이 근처 어
디쯤이었는데……."
"루모스!"
덤블도어가 주문을 외우자 요술지팡이에서 불빛이 흘러나왔다. 가느다란 빛줄
기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비추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두
발이 보였따.
해리와 덤블도어는 서둘러 그곳으로 뛰어갔다. 크룸은 숲속에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전혀 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크라우치의 모습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
다. 덤블동어는 크룸을 향해 몸을 숙이더니 조심스럽게 한쪽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기절했구나."
덤블도어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를 날카롭게 둘러보는 덤
블도어의 반달 안경이 요술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반사되어서 반짝거렸
다.
"제가 가서 누구를 데려올까요? 폼프리 부인이라도?"
해리가 물었다.
"아니다. 여기에서 꼼짝도 하지 말거라."
덤블도어가 재빨리 말했다. 그리고는 요술지팡이를 번쩍 들어서 해그리드의 오
두막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요술지팡이 끝에서 무엇인가 은빛으로 반
짝거리는 것이 튀어나오더니 유령 새처럼 나무들 사이를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빠져 나갔다.
덤블도어는 다시 허리를 숙이고 요술지팡이 끝을 크룸에게 갖다대면서 주문을
외웠다.
"에너바이트!"
빅터 크룸이 눈을 반짝 떴다. 하지만 여전히 몽롱한 상태였다. 덤블도어를 보
자 크룸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덤블도어는 크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만
히 드러누워 있으라고 말했다.
"나를 공격했다!" 크룸이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면서 중얼거렸다. "그 늙은 미
치광이가 나를 공격했다! 나는 포터가 가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
람이 뒤에서 공격했다!"
"이대로 가만히 누워 있거라."
덤블도어가 온화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그때 천둥처럼 쿵쿵 울리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해그리드가 팽을 데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님! 해리! 도대체…… 무슨?"
해그리드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소리쳤다.
"해그리드, 자네가 카르카로프 교수를 좀 모셔 와야겠네. 조금 전에 카르카로
프 교수의 학생이 공격을 당했어. 그 다음엔 미안하지만 무디 교수님을 좀
……."
덤블도어가 해그리드에게 지시했다.
"그럴 필요 없네, 덤블도어."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걸걸하게 쉰 목소리가 들
렸다. "난 여기 있네." 요술지팡이로 환하게 불을 밝힌 무디가 막대기에 몸을
기댄 채, 절뚝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망할 놈의 다리!" 무디가 욕설을 퍼부었다. "이 다리만 아니었다면 좀더 빨리
올 수 있었을 거야…… 무슨 일인가? 스네이프가 크라우치 어쩌구저쩌구 하면
서 떠들던데……."
"크라우치요?"
해그리드가 어리둥절해하며 반문했다.
"해그리드! 어서 카르카로프를!"
덤블도어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 네……. 당장 갑다옵죠. 교수님……."
해그리드는 황급히 몸을 돌리더니 어두운 숲속으로 사라졌다. 팽은 부지런히
해그리드의 뒤를 다라갔다.
"바티 크라우치가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지금은 크라우치의 행
방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일세."
덤블도어가 무디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찾아보지."
무디는 재빨리 요술지팡이를 꺼내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숲속으로 들어갔
다.
잠시 후에 해그리드와 팽이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까지, 덤블도어와 해리
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반지르르한 은색 털코트를 걸친 카르카로프
는 몹시 놀란 듯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요?"
땅 위에 쓰러져 있는 크룸과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덤블도어와 해리를 보자,
카르카로프가 부르짖었다.
"나는 공격을 당했다. 크라우치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나를……."
몸을 일으킨 크룸이 머리를 문지르면서 말했다.
"크라우치가 너를 공격했단 말이냐? 크라우치가 너를 공격했어! 트리위저드 심
판이?"
"이고르."
덤블도어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카르카로프는 은색 털코트를 바싹
여미면서 고개를 높이 치켜들었다. 갑자기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배반이야!" 카르카로프가 덤블도어를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건 비
열한 음모야! 덤블도어, 당신과 당신네 마법부가 거짓 속임수로 나를 꼬셔서 이
곳까지 불러냈어! 이건 공정한 경쟁이 아니야! 처음에는 나이도 안 되는 포터를
시합에 슬쩍 집어넣더니 이제는 당신 마법부 친구 중에 하나가 우리 챔피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들다니! 나는 이 모든 일에서 이중 거래와 부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덤블도어, 당신은 국제 마법사들 사이에서 더욱 가까운 유대를
갖자느니, 과거의 인연을 다시 맺자느니, 해묵은 불화는 그만 잊어버리자느니
하면서 잘도 떠들어대더니만…… 이게 바로 당신에 대한 나의 생각이야!"
카르카로프는 덤블도어의 발 밑에 침을 탁 뱉었다. 그러자 미처 말릴 틈도 없
이 해그리드가 카르카로프의 목덜미를 꽉 움켜잡고 번쩍 들어올리더니 옆에 서
있는 나무에 쾅 박아버렸다.
"당장 사과드려!"
해그리드가 윽박지르며 소리쳤다. 해그리드의 거대한 손아귀에 목이 짓눌린 카
르카로프는 숨이 막혀서 입을 딱 벌렸다. 그의 발은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었
다.
"해그리드, 안 돼!"
덤블도어가 눈을 번뜩이면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해그리드는 카르카로프를 나
무에 바싹 붙여 놓고 있던 손을 탁 놓아버렸다. 나무 몸통을 따라 주르르 미끄
러지면서 내려온 카르카로프가 나무 뿌리에 쿵 하고 부딪히자, 잔가지와 잎사귀
들이 우수수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해그리드, 미안하지만 해리를 성까지 데려다 주도록 하게."
덤블도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해그리드는 숨을 헐떡이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로 카르카로프를 노려보았다.
"전 여기 남아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교장 선생니……."
"해그리드, 자네는 해리를 데리고 학교로 돌아가라니까." 덤블도어가 엄격한
목소리로 다시 명령했다. "당장 그리핀도르탑으로 해리를 데기고 가게나. 그리
고 해리, 나는 제가 절대로 기숙사 밖으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네가 어떤 일
을 하고 싶더라도 말이다. 부엉이를 보내거나 하는 일은 아침이 밝아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해라. 내 말을 알아들었지?"
"네……."
해리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덤블도어 교수님은
내가 시리우스에게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당장 피그위존을 날려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교장 선생님, 그렇다면 팽을 두고 가겠습니다." 해그리드가 카르카로프를 위
협적인 눈길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는 아직도 나무 밑에 길게 뻗어
있었다. 카르카로프의 매끄러운 털코트는 나무 뿌리에 뒤엉켜서 엉망이 되었다.
"팽, 너는 여기 있어. 가자, 해리."
해리와 해그리드는 묵묵히 보바통의 마차를 지나 성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두 사람이 호숫가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을
때, 해그리드가 부르르 치를 떨면서 말했다.
"어떻게 감히 덤블도어 교수님을 비난할 수가! 마치 덤블도어 교수님이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너를 일부러 이 시합에 집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세
상에! 요즘처럼 걱정을 많이 하는 덤블도어 교수님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리고 너도 그래!"
해그리드가 갑자기 해리에게 버럭 화를 냈다. 해리는 어리둥절하여 해그리드를
올려다봤다.
"도대체 그 시건방진 크룸과 뭐하러 쏘다니고 있었니? 그 애는 덤스트랭 출신
이야, 해리! 걔가 너한테 뭔가 마법을 걸 수도 있었어, 그렇지? 무디 교수님이
너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았단 말이니? 만약 그 애가 너를 꼬셔서 거
기까지 일부러 데리고 간 거라면 한번 상상해 봐라!"
"크룸은 좋은 애예요!" 현관 복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던 해리가 불쑥 말했
다. "크룸은 내게 마법을 걸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저…… 헤르미온느에
대해 물어보려고……."
"그렇다면 헤르미온느에게도 한마디 해주는 게 좋겠군. 그런 외국인들과는 가
까이 하지 않을수록 너에게 더 좋은 거야. 그들은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해그리드는 잔뜩 화가 나서 계단을 쿵쿵거리면서 올라갔다.
"하지만 아저씨는 맥심 부인과 잘 지내시잖아요."
"내 앞에서 그 여자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라!" 잠시동안 해그리드는 겁에 질린
듯한 기색을 보였다. "이제 그 여자의 속셈을 똑똑히 알았다! 그 여자는 나에게
환심을 사려고 그랬던 거야! 세 번째 시험에 어떤 생물이 나올지 알아내려고 말
이야! 알겠니? 하! 어떻게 그런 자들을 믿는단 말이냐!"
해그리드가 어찌나 퉁명스럽고 기분 나빠하던지 해리는 뚱뚱한 여인 앞에서
헤어질 때가 되자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초상화 구멍을 통해 휴
게실로 들어간 해리는 곧장 론과 헤르미온느가 앉아 있는 구석 자리로 가서 지
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헤리포터와 불의 잔》 제4권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