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장 크리스마스 무도회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동안 호그와트의 선생님들은 4학년생들에게 엄청난 양
의 숙제를 내 주었다. 하지만 학기가 끝났을 때, 해리는 도저히 공부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전까지 일주일 동안에는 다른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면서 즐겁게 뛰어놀았다. 그리핀도르 탑은 휴가가 시작되기 전만
큼이나 수많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심지어 그ㅍ리핀도르 탑이 약간 비좁아진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것은 기숙사의 학생들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야단스럽
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프레드와 조지의 카나리아 크림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휴일이 시
작된 처음 며칠 동안에는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털달린 새로 변신하곤 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그리핀도르의 학생들은, 다른 사람이 음식을 주면 혹
시 그 속에 카나리아 크림이 들어 있을까 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자 조지는 해리에게, 프레드와 자기가 도 다른 새로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있는 중이라고 살짝 알려 주었다. 해리는 앞으로도 프레드와 조지가 주는 과자
는 절대로 받아먹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두들리와 혓바닥 늘리기 태 피사건
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호그와트의 성과 땅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렸다. 얼음 생강빵으로 만든
집처럼 보이는 해그리드의 오두막집 근처에 세워져 있는, 창백한 푸른색의 보바
통 마차는 온통 서리를 맞아서 차갑게 얼어버린 커다란 호박처럼 보였다. 덤스
트랭 배의 둥근 창문도 하얗게 성에가 끼어서 얼음처럼 반짝거렸고 배의 다른
부분들도 서리를 맞아 하얗게 변했다. 주방에서 일하는 꼬마 집요정들은 기름지
고 따뜻한 스튜와 향긋한 푸딩을 계속 준비하느라고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플뢰르 델라쿠르는 어디서든지 불평 거리를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그와트의 음식은 너무 기름져용." 어느 날 저녁에 연회장에서 나오던 해리
와 론은 플뢰르 델라쿠르가 툴툴거리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를 들었다(론은
플뢰르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리의 등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러다강
내 드레스가 맞지 않겠어용!"
"와! 그것 참 엄청난 비극이겠군." 플뢰르 델라쿠르가 현관 복도로 나가자, 헤
르미온느가 빈정거렸다. "저 여자애는 자기 몸 생각을 엄청나게 하는 모양이지?
그렇지 않니?"
"헤르미온느. 그런데 너는 누구와 무도회에 갈 거니?"
론이 몹시 궁금해서 물었다. 지금까지 론은 불쑥불쑥 여러 차례에 걸쳐서 똑같
은 질문을 헤르미온느에게 했다. 헤르미온느가 완전히 방심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질문을 던져서 무심코 대답을 유도해 내려는 의도였다.
"너에게 말하고 싶지 않아. 넌 날 놀릴 거잖니."
헤르미온느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위즐리! 농담하지마!"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말포이가 끼
어들었다. "설마 누군가 저 여자애한테 무도회 신청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앞니가 길고 잡종인 저 여자애한테 말야"
해리와 론은 동시에 휙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말포이
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무디 교수님!"
말포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주위
를 두리번거리면서 무디를 찾았다. 하지만 무디 교수는 아직까지도 테이블에 앉
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 꼴은 꼭 겁이 나서 벌벌 떠는 새끼 족제비 같구나, 말포이?"
헤르미온느가 신랄하게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와 론과 더불어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 대리석 계단을 올라갔다.
"헤르미온느, 그런데 네 이가……."
갑자기 론이 올굴을 찌푸리면서 헤르미온느를 슬쩍 곁눈질 했다.
"내 이가 어때서?"
헤르미온느가 론에게 반문했다.
"글쎄……. 좀 달라졌어……. 지금 처음 알았는데……."
"물론 좀 달라졌지. 그럼 넌 말포이가 만들어 줬던 그 앞니를 내가 지금까지
그대로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니?"
"아니, 그런게 아니야, 말포이가 너한테 마법을 걸기 전과도 좀 달라졌어. 그러
니까 이가 모두…… 똑바르고, 그리고…… 그리고 전처럼 크지도 않아."
헤르미온느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해리도 그 사실
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헤르미온느가 짓고 있는 미소는 분명히 해리가 기
억하고 있던 미소와는 전혀 다른 것이엇다.
"내가 늘어난 앞니를 줄이기 위해서 폼프리 부인을 찾아갔을 때, 부인은 거울
을 주면서 앞니가 예전과 같은 크기가 됐다고 생각하면 그만 멈추라는 말을 하
라고 했어." 헤르미온느가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설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
저…… 폼프리 부인이 조금 더 이빨을 작게 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지 그렇
지만 엄마 아빠는 별로 기뻐하지 않으실 거야. 나는 지난 몇 년동안계속 마법으
로 이빨을 작게 만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부모님을 졸랐거든. 하지만 그분
들은 내 치아에 교정기를 끼우고 싶어했지. 너희도 알겠지만 그분들은 치과의사
거든. 치아와 마법이 어떤 관계가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 이런, 저기를
봐! 피그위존이 돌아왔어!"
론의 작은 부엉이는 고드름이 매달린 난간 꼭대기에 앉아서 미친 듯이 울어대
고 있었다. 부엉이의 다리에는 커다란 양피지 두루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 곁
을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손가락으로 부엉이를 가리키면서 웃을 터뜨렸다. 3학년
여학생들은 걸음을 멈추고 재잘재잘 떠들기도 했다.
"저 조그만 부엉이 좀 봐! 너무 귀엽지 않니?"
"멍청한 새 새끼 같으니라구! 편지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곧장 가지고 와야지!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면서 으스대고 있으면 어떡해!"
론이 씩씩거리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더니 피그위존을 움켜잡았다. 피구위존
이 부엉부엉 울면서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론의 주먹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3학년 여학생들은 론이 부엉이를 학대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 꺼져!"
론이 피구위조을 붙잡고 잇는 주먹을 흔들면서 여학생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
렀다. 피그위존은 하늘 높이 날아갈 때보다도 더욱 행복한 듯이 부엉부엉 울어
댔다.
"자, 이걸 받아. 해리"
잔뜩 화가 난 3학년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가 버리자, 론은 목소리를 잔뜩 낮
추면서 말했다. 해리는 피그위존의 다리에 매달려 있는 시리우스의 답장을 풀었
다. 그런 다음에 편지를 재빨리 호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한시라도 빨리 편
지를 읽기 위해, 해리는 서둘러 그리핀도르 탑으로 돌아갔다.
휴게실에 모여 있던 학생들은 저마다 분주하게 크리스마스의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 볼 만한 틈이 없
었다. 그러므로 론과 해리, 헤르미온느는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서 차츰차츰 눈
이 더 높이 쌓이고 있는 어두운 창가에 앉았다. 해리가 편지를 꺼내서 소리 내
어 읽었다.
사랑하는 해리에게
먼저 혼테일을 통과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 불의 잔 속에 네 이름을
넣은 자가 누구든지 간에 지금은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니겠구나! 나는 결막염
저주를 써보라고 제안할 생각이었다. 용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눈이거든.
"그게 바로 크룸이 쓴 방법이야!"
헤르미온느가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네 방법이 훨씬 더 좋았다. 아주 인상적이었단다.
해리, 그래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너는 겨우 한 가지 시험을 통과한 거야. 너
를 이 시합에 끌어들인 자가 누구이든, 너를 해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앞으로
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단다. 항상 눈을 크게 뜨고 있어라. 특히 우리가 이야기
했던 그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에는 더욱더 말이다. 그리고 항상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거라.
앞으로도 계속 연락해 다오. 특별한 일이 생기면 꼭 듣고 싶구나.
시리우스
"시리우스는 꼭 무디 쇼수처럼 말하네." 해리는 편지를 다시 옷 속에 깊숙이
집어 넣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항상 깨어 있어라!" 시리우스는 내가 눈을 감고
돌아다니다가 벽에 부딪히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나봐."
"하지만 그 말이 맞아 해리. 너는 아직까지도 시험이 두 개나 더 남았어. 먼저
그 황금알을 잘 살펴봐야만 한단 말이야.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연구하기
시작해야지……."
헤르미온느가 해리에게 말했다.
"헤르미온느, 아직 시간은 많아! 해리, 그러지 말고 우리 체스게임이나 할까?"
론이 말을 가로챘다.
"그래, 좋아.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내가 어떻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겠니?
이런 곳에서는 황금알을 열고 소리를 들을 수도 없어."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살피면서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헤르미온느는 커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두 사람이 체
스 게임을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시합은 론이 무모하게 용감한 폰과 아
주 난폭한 비숍을 이용해서 장군을 불렀을 때 절정에 달했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해리는 불현듯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눈을 말똥말똥 뜬 채, 왜 갑자기 정신이 들었을까 하고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문득 커다랗고 툭 불거진 초록색 눈을 가진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자기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지, 거의 코
가 서로 맞닿을 정도였다.
"도비!" 깜짝 놀란 해리는 소리를 지르면서 황급히 요정으로부터 몸을 피하다
가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그러지 마!"
"도비는 미안해요! 도비는 그저 해리 포터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선물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해리 포터는 도비에게 가끔
씩 찾아와도 좋다고 말했어요!"
기다란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서 펄쩍 뒤로 물러난 도비는 걱정스러운 목소
리로 꽥꽥거렸다.
"그래, 좋아. 하지만 아픙로는 나를 쿡쿡 찌르거나 해서 잠을 깨우도록 해. 이
런 식으로 가만히 내려다보지 말고……."
해리는 여전히 숨을 헐떡이면서 대답했다. 차츰차츰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
아왔다. 해리는 침대 기둥에 둘러진 커튼을 걷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안경을
집어들었다. 해리의 고함 소리를 듣고 론과 시무스, 딘과 네빌이 잠에서 깨어났
다. 그들은 모두 졸음에 겨운 눈을 비비면서 부스스한 머리를 커튼 사이로 내밀
고 밖을 내다보았다.
"누가 공격이라도 했니, 해리?"
시무스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도비였어. 다시 자도록 해."
해리가 미안한 듯이 시무스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우와! 선물이잖아!"
침대 발치에 잔뜩 쌓여 있는 상자 더미를 발견한 시무스가 소리쳤다. 론과 딘
과 네빌은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선물 상자를 열어보기로 완전히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도비를 쳐다보았다. 도비는 해리의 침대 옆에 서서 안절
부절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해리를 화나게 한 것은 아닌가 몹시 걱정하는 기
색이었다. 찻주전자 보온 덮개 위에는 이제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매달려 있었
다.
"도비가 해리 포터에게 선물을 줘도 될까요?"
도비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물론이지. 그런 건 좋은 일이야."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음…….
나도 너에게 줄 게 있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해리는 도비를 위해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다.
하지만 해리는 재빨리 트렁크를 열고 특별히 보푸라기가 많이 일어난 양말을
꺼냈다. 이 노란 겨자색 양말은 해리의 양말 중에서도 가장 낡고 더러운 것으로
한때 버논 이모부가 신던 것이었다.
그 양말이 그렇게 우툴두툴했던 것은 지난 1년 동안 해리가 이 양말을 스니코
스코프를 감싸는 데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해리는 스니코스코프에서 벗겨
낸 양말을 도비에게 건네 주면서 말했다.
"미안해. 선물을 포장하는 걸 깜박 잊어버렸어."
하지만 도비는 말할 수 없이 기뻐했다.
"양말은 도비가 가장 좋아하는 거예요. 몸에 걸치는 것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거
죠!" 도비는 당장 자신의 짝짝이 양말을 벗어 던지고 버논 이모부의 양말을 신
었다. "이제 도비한테는 양말이 일곱 개나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도
비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양쪽 양말을 최대한 높이 끌어당겼다. 양말은 거
의 반바지 밑까지 늘어났다. "상점에서 무슨 실수가 있었나봐요. 해리 포터. 당
신에게 똑같은 양말 두 짝을 뒀잖아요!"
"오, 세상에……. 해리, 어떻게 지금까지 그걸 모를 수가 있었니?" 론이 침대
위에서 씩 웃으며 도비의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론의 침대 위에는 포장지가 어
지럽게 널려 있었다. "도비, 너에게 할 말이 있어. 이리로 와서 이것도 가져가.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이젠 양말을 제대로 신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여
기 네 스웨터도 있어."
론은 도비에게 이제 막 포장지에서 꺼낸 보라색 양말과 위즐리 부인이 직접
짠 스웨터를 던져 주었다. 도비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너무 친절하시군요! 도비는 선생님이 위대한 마법사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해리 포터의 가장 친한 친구이니까요. 하지만 도비는 선생님도 해리
포터처럼 고귀하고 헌신적이고 너그러운 영혼을 가지신 분이라는 걸 미처 몰랐
어요."
도비는 꽥꽥거리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채, 론을 향
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건 그저 양말일 뿐이야."
론은 귀까지 새빨개졌지만 도비의 찬사가 별로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와우, 해리!" 해리의 선물을 막 열어본 론이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처들리 캐
논 팀의 모자였다. "너무 멋져!" 론이 모자 속으로 머리를 쑤셔 넣자, 머리카락
이 마구 헝크러졌다.
도비는 해리에게 작은 선물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양말이었
다.
"도비가 직접 만들었어요. 봉급받은 돈으로 실을 샀어요!"
꼬마 요정은 몹시 기쁜 목소리로 말햇다. 왼쪽 양말은 밝은 붉은색이었고 빗자
루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오른쪽 양말은 초록색이었고 스니치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이건……. 이건 정말……. 정말 고마워, 도비."
해리가 인사를 하면서 양말을 신어 보았다. 도비의 눈에서 다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도비는 가야만 해요. 벌써 주방에서는 크리스마스 저녁을 준비하고 있거
든요!"
론은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한 후에 도비는 종종걸음으
로 기숙사를 빠져나갔다.
해리가 받은 다른 선물들은 도비의 짝짝이 양말보다 훨씬 더 훌륭했다. 물론
더즐리 가족이 보낸 선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것은 달랑 휴지 조각 한 장이
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도 형편없는 선물이었다. 해리는 아마 더즐리 가족도 혓
바닥 늘이기 태피를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에게 《영국과 아일랜드의 퀴디치 팀》이라는 책을 선물했
다. 론은 불룩한 똥 폭탄 가방을 주었고, 시리우스는 어떤 자물쇠라도 열 수 있
고 어떤 매듭이라도 풀 수 있는 주머니칼을 보냈다. 해그리드는 베르티 보트의
온갖 맛이 나는 강낭콩 젤리와 개구리 초콜릿, 드루블의 가장 잘 불어지는 풍선
껌, 피징 위즈비 등을 비롯해서 해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담긴 커다란
과자 상자를 선물했다.. 물론 위즐리 부인이 늘 보내 오는 선물 꾸러미도 있었
다. 새로 짠 초록 색 스웨터와(이번에는 용의 그림이 수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찰리가 혼테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던 것 같았다) 집에서 직접 만든 고
기 파이였다.
해리와 론은 학생 휴게실에서 헤르미온느를 만난 후에 함께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전 시간 대부분을 그리핀도르 탑 안에서
보냈다. 학생들은 모두 선물을 살펴보면서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얼마 후에 그들은 연회장으로 돌아가서 성대하게 차려진 점심식사를 먹었다.
적어도 백 개가 넘는 칠면조 요리와 크리스마스 푸딩 그리고 크립바그의 마법
크래커가 산더미처럼 나왔다.
오후에는 하얀 눈이 덮여 있는 운동장으로 나갔다. 덤스트랭과 보바통 학생들
이 성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깊은 굴을 파놓은 것 이외에는 전혀 손대지 않은
채, 하얀 눈은 그대로 높이 쌓여 있었다. 해리와 위즐리는 눈싸움을 했지만, 헤
르미온느는 그냥 곁에서 구경만 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되자, 무도회를 준비
하기 위해 먼저 기숙사로 올라가야겠다고 말했다.
"뭐라구? 세 시간이나 필요하단 말야?"
론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끄러미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깐 헤르미온느에게 한눈을 파는 바람에 론은 조지가 던진 커다란 눈뭉치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아야만 했다.
"도대체 누구랑 가는거야?"
론은 헤르미온느의 등 뒤에 대고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헤르미온느
는 그저 손을 살짝 흔들고는 성으로 들어가는 돌계단 위로 사라져 버렸다.
무도회에는 성대한 연회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차를
마시는 시간이 없었다. 7시가 되어서 목표물을 분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두
워지자, 학생들은 눈싸움을 그만두고 우르르 휴게실로 몰려갔다. 뚱뚱한 여인은
아래층에서 올라온 친구 바이올렛과 함께 초상화 액자 속에 앉아 있었다. 둘 다
잔뜩 술에 취해 있었고 액자 바닥에는 텅 빈 초콜릿 술상자가 뒹굴고 있었다.
학생들이 '요정의 불빛'이라고 암호를 말하자, "요강의 물빛이란 말이지, 바로
그거야!" 하며 뚱뚱한 여인이 킬킬거렸다. 그리고 액자를 열어서 그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돌아온 해리와 론, 시무스, 딘 그리고 네빌은 서둘러 양
복으로 갈아입었다. 모두들 자기의 모습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론이 가장 심했다. 론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쪽 구석에 세
워진 기다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자꾸만 비추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
도 론의 옷은 여자들이 입는 드레스처럼 보였다. 웃옷을 좀더 남자답게 보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론은 잘라내기 마법을 사용해서 칼라 주름과 소매 주름을
떼어 내었다.
마법은 아주 훌륭하게 효력을 발휘해, 적어도 너풀거리는 레이스는 없어졌다.
하지만 별로 꼼꼼하게 뒤처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학생들이 계단을 내려갈
때, 론의 소맷단은 가여울 만큼 너덜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너희 두 사람이 어떻게 그 학년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을 차
치했는지 알 수가 없어."
딘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동물적인 매력이지."
론이 소맷단에서 줄줄 풀려 나오는 올을 계속 잡아당기면서 우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항상 입는 검은색 제복 대신에 온갖 다양한 색깔의 옷을 차려입은 학생들로
가득한 휴게실은 좀 이상하게 보였다. 패르바티는 계단 끝에서 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충격적일 만큼 야한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긴 검은 머리를 황금색 실로
땋아 올린 패르바티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패르바티의 손목에는 황금
팔찌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해리는 패르바티가 킬킬거리면서 웃지 않는 것을 보
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어…… 정말 멋지다."
해리가 패르바티를 쳐다보면서 어색하게 칭찬을 했다.
"고마워." 패르바티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파드마는 현관 복도에서 너
를 기다릴 거야." 패르바티가 론에게 알려 주었다.
"알았어." 론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헤르미온느는 어디 있지?"
"해리, 우리도 아래로 내려갈까?"
패르바티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좋아."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해리는 그냥 휴게실에 남아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
을까 생각했다. 프레드는 초상화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해리의 곁을 지나가면서
눈을 찡끗했다.
현관 복도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연회장의 문이 활
짝 열리는 8시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서로 다른 기숙사에서
파트너를 구한 학생들은 혼잡한 사람들 틈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상대를 찾으
려고 애를 썼다.
마침내 패르바티는 복도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다른 학생들 사이에서 동생 파
드마를 만났다. 패르바티는 파드마를 데리고 해리와 론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안녕."
파드마가 먼저 인사를 했다. 밝은 청록색 드레스를 입은 파드마는 패르바티만
큼이나 예뻤다. 하지만 파드마는 론의 파트너가 된다는 사실을 그다지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 론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파드마의 검은 눈동자가 자꾸
만 너덜거리는 목과 소맷단에 머물렀다.
"안녕." 론은 파드마가 있는 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꾸만 사람들을 돌아보았
다. "이크……."
론은 살짝 무릎을 굽히면서 해리의 등뒤로 몸을 숨겼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래
번클로의 퀴디치팀 주장인 로저 데이비스와 함께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은회
색의 얇은 비단옷을 입은 플뢰르 델라쿠르는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
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론은 다시 똑바로 서서 주위를 계속 두리번거렸다.
"헤르미온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론이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한 무리의 슬리데린 학생들이 그
들의 지하 휴게실에서 몰려나왔다. 말포이가 앞장을 서고 있었다. 말포이는 칼
라 깃이 높은 검은색 벨벳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해리의 눈에는 마치 교구
목사처럼 보였다. 연한 분홍색에 주름이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은 팬시 파킨슨
이 말포이 곁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크레이브와 고일은 독같이 초록색 옷을 입
고 있었는데, 마치 이끼가 잔뜩 기어 있는 돌멩이 처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파트너를 구하는 일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그 골을 보니까 해리는 무척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육중한 현관문이 열리자,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덤스트랭의 학생들이
카르카로프 교수와 함께 입장하고 있었다. 빅터 크룸이 제일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옆에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학생이 서 있었다. 해리는 처음 보
는 여학생이었다. 그들 너머로 호그와트 성 바로 앞의 잔디밭이 요정의 불빛으
로 가득 찬 일종의 동굴처럼 변해버린 것이 보였다. 그곳에는 수백 명의 정말로
살아 있는 요정들이, 마법으로 피워낸 장미꽃 봉오리 속에 앉아 있거나 산타클
로스와 순록처럼 보이는 석상 위를 펄럭거리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챔피언들은 이리로 와요!"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패르바티는 황금 팔찌를 매만지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와 패르바티는 론과 파드마에게 "잠시 후에 보자"라고 인사
를 한 후에 앞으로 걸어 나갔다. 웅성거리면서 복도에 늘어서 있던 학생들이 양
쪽으로 갈라지면서 길을 내 주었다. 붉은 격자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보기 흉한
엉겅퀴 다발이 테에 둘러져 있는 모자를 쓴 맥고나걸 교수는 챔피언들에게. 다
른 학생들이 모두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문 한쪽에서 기다리라고 말했
다. 학생들이 전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 다음에 챔피언들이 줄을 지어서 연
회장 안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플뢰르 델라쿠르와 로저 데이비스는 바로 문
앞에 서 있었다. 플뢰르와 파트너가 되는 행운을 누린다는 사실에 반쯤 넋이 나
간 데이비스는 단 한 순간도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케드릭과
초 챙도 해리와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해리는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 대신에 크룸과 나란히 서 있는 여학생을 향해 눈길
을 돌렸다. 그 순간 해리의 입이 딱 벌어졌다.
헤르미온느! 그 여학생은 바로 헤르미온느였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는 전혀 헤르미온느처럼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어떻
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평소의 부스스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매끄럽고 윤기
가 감도는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틀어올려서 머리 뒤로 멋지게 묶고 있었다.헤르
미온느는붉은 빛이 살짝 감도는 푸른색의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몸가짐까지도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항상 헤르미온느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스무 권이 넘는 책 보따리가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헤르미온느는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사실은 약간 기장하고 있는 것 같
았다), 작아진 앞니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훨씬 더 두드러지게 보였다. 해리는
왜 진작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안녕, 해리!" 헤르미온느가 그들을 응시하면서 인사했다. "안녕, 패르바티!"
패르바티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헤르미온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비단 패르바티만이 아니었다. 연회장의 문이 열린 그 순
간부터, 도서관까지 졸졸 쫓아다니던 빅터 크룸의 열렬한 팬클럽들은 미움과 질
시가 가득 담긴 눈길을 헤르미온느에게 던지고 있었다.
말포이와 나란히 연회장으로 들어오던 팬시 파킨슨도 입을 딱 벌렸다. 심지어
말포이조차도 감히 헤르미온느에게 모욕적인 말을 던지지 못했다. 하지만 론은
바로 헤르미온느의 곁을 지나가면서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학생들이 모두 다 자리에 앉자, 맥고나걸 교수는 챔피언들과 그들의 파트너에
게 한 쌍씩 줄을 지어서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연회장 안으로 들어간
그들이 상석에 있는 커다란 둥근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
람들은 모두 일제히 박수를 쳤다. 둥근 테이블에는 심판들이 앉아 있었다.
연회장의 벽은 온통 반짝거리는 은빛 성에로 뒤덮여 있었고 반짝반짝 별이 빛
나는 검은 천장에는 겨우살이 가지와 아이비 덩굴로 만든 수백 개의 화환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커다란 기숙사 테이블은 어디론가 치워지고 그 대신에 열
두어 명씩 앉을 수 있는 수백 개의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등잔이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해리는 발이 걸려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통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패르바
티는 이런 상황을 무척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여유만만한 미소를 던지면서 해리를 강제로 끌고 가다시피 했던 것이다. 해리는
마치 패르바티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는 전시용 개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상
석 테이블 근처까지 걸어갔을 때, 문득 론과 파드마의 모습이 보였다. 론은 눈
을 가늘게 뜨고 헤르미온느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반면에 파드마는 뽀
루퉁한 표정이었다.
챔피언들이 상석 테이블로 가까이 다가오자, 덤블도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
었다. 하지만 카르카로프는 크룸과 헤르미온느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론과 거의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 커다란 노란색 별이 그려진 밝은 보
라색의 옷을 입고 있던 루도 베그만은 어떤 학생들 못지않게 열광적으로 박수
를 치고 있었다. 항상 입고 다니던 검은색 비단옷 대신에 라벤더 색깔의 하늘거
리는 비단옷으로 바구어 입은 맥심부인은 예의 바르게 박수를 보냈다. 문득 해
리는 크라우치가 그 자리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이블의 다섯 번째 자리
에는 퍼시 위즐리가 앉아 있었다.
챔피언들과 파트너가 테이블 앞에 도착하자, 퍼시는 자기 옆의 빈 의자를 잡아
당기면서 해리에게 손짓을 했다. 해리는 재빨리 그 뜻을 알아차리고 퍼시의 옆
자리에 앉았다. 새로 구입한 군청색 양복을 차려입은 퍼시는 어찌나 점잔을 빼
면서 앉아 있었던지, 저런 사람에게는 벌금을 매겼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승진했어, 나는 이제 크라우치 씨의 개인 비서야. 이 자리에도 크라우치
씨를 대신해서 온 거야."
미처 해리가 묻기도 전에 퍼시가 먼저 자랑을 늘어놓았다. 퍼시의 목소리는 마
치 자신이 우주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고 선포하는 것 같았다.
"크라우치 씨는 어째서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죠?"
해리가 물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가마솥 바닥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지
는 않았던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크라우치 씨는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 상당히 나쁜 편
이야. 월드컵 직후부터 계속 그랬어. 그건 놀랄만한 일도 아니지. 그렇게 과로를
하시니까……. 그분도 이제는 옛날만큼 젊지 않아. 물론 여전히 똑똑하고 여느
때처럼 위대한 정신을 갖고 계시지만 말이야. 하지만 월드컵은 마법부 전체에
엄청난 실패를 안겨 주었어. 게다가 크라우치 씨는 블린키인가 뭔가 하는 자기
꼬마 집요정이 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개인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
았어. 당연히 크라우치씨는 즉시 그 집요정을 해고했지만, 글쎄……. 크라우치
씨는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 내 생각에는 그 꼬마 집요정이 떠난 다음
부터 안락한 집안 살림에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 같아. 그 후에도 우리는
계속 시합을 준비해야만 했고 월드컵 뒤처리를 해야만 했어. 그 골치아픈 스키
터라는 여자가 여기저기 마구 들쑤시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오, 가엾은 분.
마땅히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만 해……. 그나마 그분을 대신해서 확실히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
그 순간 해리는 크라우치가 이제는 퍼시를 '웨더비'라고 부르지나 않는지 묻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지만, 간신히 참았다.
반짝거리는 황금접시에는 아직까지 아무런 음식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테이블
위에 작은 메뉴판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해리는 자기 앞에 놓은 메뉴판을 집어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중을 드는 사람의 모습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하지
만 덤블도어는 앞에 놓인 메뉴판을 신중하게 한참 내려다보더니, 접시에 대고
분명하게 말했다.
"폭 찹!"
그러자 접시 위에는 순식간에 폭 찹이 나타났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덤블도어가 음식을 주문하는 광경을 보고 똑같이 자신의 접시를 향해
음식을 주문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이 새롭고 좀더 복잡한 식사법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상을 차치려변, 틀
림없이 꼬마 집요정들은 더욱 힘들게 일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헤
르미온느는 S.P.E.W.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빅터 크룸과 대화
하는 데 깊이 빠져들어서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
는 것처럼 보였다.
문득 해리는 이제까지 한번도 빅터 크룸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빅터 크룸은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
도 아주 열심히…….
"음, 우리도 성이 있다. 하지만 호그와트처럼 크거나 아늑하지는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빅터 크룸이 헤르미온느에게 말했다. "우리 성은 4층인데, 오직 마법
을 사용하기 위한 목적에서 불을 피운다. 우리 운동장은 이곳보다 훨씬 더 크
다. 비록 겨울에는 낮이 아주 짧기 때문에 별로 운동장을 사용할 기회가 없지
만……. 여름에는 날마다 날아다닌다. 호수와 산 위를……."
"이런, 이런, 빅터!" 카르카로프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했지만, 그 웃음은 결
코 카르카로프의 차가운 눈빛에까지 전해지지는 못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말거
라. 그러다가 네 매력적인 친구에게 우리가 있는 장소를 들키게 될지도 몰라!"
"이고르, 온통 비밀뿐이로군……. 누가 들으면 손님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생
각하겠네."
덤블도어가 눈을 찡끗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덤블도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개인 영역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가? 아닌
가? 우리는 저마다 자신에게 맡겨진 학문의 전당을 지키려고 열성적으로 노력
하지 않는가? 오직 우리만이 우리 학교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자
랑스러워하고 그것을 지킬 권리가 있지 않는가?"
카르카로프가 누런 이빨을 다 드러내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
"오, 이고르. 나는 한번도 내가 호그와트의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는 상
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네." 덤블도어가 유쾌하게 말했다. "예를 들어서 바로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네. 욕실로 가는 길을 잘못 들어서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생전 처음 보는 요강 항아리가 참으로 웅장하게 진열되어 있었다네. 내
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다가갔더니 순식간에 방이 사라지더군. 하지만 난
계속 그 방을 지켜볼 거라네. 어쩌면 그 방은 오직 새벽 5시 30분에만 들어갈
수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오직 초승달이 뜰 때에만 나타나는 건지
도 몰라. 혹은 특별히 오줌보가 터질 지경일 때에만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는 일
이지."
해리는 재빨리 매운 소고기와 야치 요리가 담겨 있는 접시로 시선을 떨구면서
코를 씰룩거렸다. 퍼시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해리는 덤블도어가 아
주 살짝 눈을 찡끗거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로저 데이비스를 쳐다보면서 호그와트의 실내 장식에 대해
흠을 잡고 있었다.
"이겅 아무것도 아니양." 플뢰르는 경멸하듯이 연회장의 반짝거리는 벽을 빙
둘러보면서 말했다. "보바통 궁전에서능 크리스마스가 되명 연회장 사방에 얼음
조각을 세워 놓는당구. 물롱 절대로 녹지 아낭……. 그건 마치 다이아몬드로 만
등 조각처럼 방 전체에서 빛을 발하징. 우리 음식응 한 마디롱 굉장행. 그리고
숲 속의 님프들로 구성된 합창당이 우리가 식사하는 동앙 세레나데를 불러 주
징. 우리 복도에능 이렇겡 보기 흉한 갑옷 따위능 찾아볼 수가 없어. 만약 장난
꾸러기 요정이 보바통에 들어온다명 당장 쫓겨날 거양." 플뢰르는 분개한 듯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쳤다.
로저 데이비스는 황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플뢰르 델라쿠르의 모
습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로저 데이비스는 지금 포크가 제대로 입으로 들어가
는지도 분간을 못하고 있었다. 해리는 데이비스가 플뢰르를 바라보는 일에만 너
무 정신이 팔려서 그녀가 하는 말은 한 마디도 귀담아 듣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는 느낌이 들었다.
"네 말이 모두 맞아." 데이비스는 풀뢰르를 따라 테이블 위를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재빨리 동의했다. "그럼, 그렇구말구."
해리는 천천히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해그리드는 다른 교직원 책상에 앉아 있
었는데, 흉칙한 갈색 털 양복을 입고 상석 테이블을 열심히 올려다보고 있는 중
이었다. 해그리드가 누군가에게 살짝 손을 흔드는 것을 본 해리는 고개를 돌려
서 옆을 돌아보았다. 맥심 부인이 손을 흔들면서 응답하고 있었다. 맥심 부인의
손가락에 끼어 있는 오팔 반지가 촛불을 받으며서 반짝거렸다.
헤르미온느는 이제 크룸에게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도록 가르치고 있었
다. 지금까지 쿠룸은 계속 그녀를 "헬미온" 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헤-르-미-온-느"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을 발음했다.
"헤-르므-오운-니니."
"훨씬 비슷해졌어."
그 순간 해리와 눈이 마주친 헤르미온느가 생긋 미소를 지었다. 식사가 다 끝
나자.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학생들에게 일어서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가 요술지팡이를 흔들자, 모든 테이블이 일제히 뒤에 있는
벽으로 날아가고 텅 빈 마루만이 남았다. 그러자 덤블도어는 오른쪽 벽을 따라
서 무대가 솟아오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드럼과 기타, 루트, 첼로 그리고 백
파이프 몇대를 무대 위에 설치했다.
고이어 '운명의 세 여신'이 열광적인 환호성 속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모두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헤쳤으며, 맵시 있게 뜯어지고 찢어진 검은 옷을 입
고 있었다. 운명의 세 여신이 각자 악기를 집어들었을 때, 구경에 몰두하고 있
던 해리는 다음 순서가 무엇인지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등불
이 일제히 꺼지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챔피언들과 파트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자, 해리는 퍼뜩 깨달았다.
"어서!" 패르바티가 해리를 향해 속삭였다. "우리가 춤을 출 차례야!"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옷이 발에 걸려서 잠시 비틀거렸다. 운명의 세 여
신은 느리고 애수 어린 곡조를 연주했다. 해리는 어느 누구와도 눈길이 마주치
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환하게 조명이 밝혀진 무대로 나갔다. 시무스와 딘이 해
리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킬킬거리고 있었다. 다음 순간, 패르바티가 해리의 손
을 확 잡아끌었다. 패르바티는 해리의 한쪽 손을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다른 한
쪽 손은 꼭 붙잡았다.
해리는 머리 속으로 한 장소를 느리게 빙빙 도는 것도 상상한 것만큼 나쁘지
는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춤을 주도하는 것은 패르바티였다. 해리는 자신을 지
켜보는 사람들 머리 위로 줄곧 시선을 고정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무대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챔피언들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자 못했다. 네빌과 지니는 바로 해리의 주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종종 네빌이 발을 밟을 때마다 지니가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덤블도어는 맥심 부인과 왈츠를 추고 있었다. 맥심 부인과 나란히 서 있으니까
덤블도어는 거의 난쟁이처럼 보였다. 덤블도어의 뾰족한 모자 꼭대기가 겨우 맥
심 부인의 턱에 닿을락말락했다. 하지만 그렇게 덩치 큰 여자치고는 아주 우아
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매드아이 무디는 시니스트라 교수와 함께 볼품없이 절
뚝거리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시니스트라 교수는 무디의 나무 다리를 피하느라
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멋진 양말이구나, 포터."
해리가 옆을 지나가자, 무디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디의 마법의 눈은
해리의 옷 속을 환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 이거요. 꼬마 집요정인 도비가 저를 위해 떠 준 거예요."
해리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 사람은 너무 소름끼쳐. 저런 눈은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해."
무디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사라지자, 패르바티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백파이프가 떨리는 소리로 마지막 곡조를 연주했다. 운명의
세 여신이 연주를 마치자, 연회장은 다시 한 번 학생들이 지르는 환호성 소리로
가득 찼다. 해리는 즉시 패르바티의 손을 놓았다.
"우리 그만 자리에 앉자."
"오, 하지만…… 이번 음악은 정말 좋은데!"
운명의 세 여신이 이번에는 좀더 빠른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패르바티가 아
쉬운 듯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니야. 난 싫어."
해리는 머리를 흔들면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패르바티를 데리고 프레드와
안젤리나의 옆을 지나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프레드와 안젤리나가 어찌나
열광적으로 춤을 추전지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칠가 봐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해리는 론과 파드마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뭘 하고 있는 거야?"
해리는 자리에 앉아 땅콩 버터 맥주 병을 따면서 론에게 물었다. 하지만 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론의 눈길은 줄곧 근처에서 춤을 추고 있는 헤르미
온느와 크룸을 향하고 있었다. 파드마는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한쪽 다리는 운명의 세 여신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서 계
속 흔들거렸다.
가끔씩 파드마는 아주 못마땅한 눈길로 론을 바라보았지만, 론은 완전히 그녀
를 무시했다. 패르바티도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해리의 옆자리에 안장T다.
하지만 몇 분이 채 되지 않아서 보바통의 남학생 한 명이 패르바티에게 춤을
신청했다.
"해리, 그래도 괜찮겠니?"
패르바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뭘 말이야?"
초 챙과 케드릭이 춤을 추는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던 해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오, 아무것도 아니야."
패르바티는 쌀쌀맞게 쏘아붙이더니 보바통의 남학생과 무대로 가버렸다. 그리
고 음악이 끝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헤르미온느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빈 자리에 앉았다. 그곳은 조금 전까지 패르
바티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춤을 추고 난 헤르미온느의 얼굴은 약간 불그스름
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안녕."
해리가 미소를 지으면서 헤르미온느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론은 한 마디도 하
지 않았다.
"좀 덥지 않니? 빅터는 마실 것을 가지러 갔어."
헤르미온느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믹터라구? 왜 아직 그녀석을 빅키라고 부르지는 않니?"
론은 당장이라도 덤빌 듯이 헤르미온느를 노려보았다.
"너 왜 그러니?"
헤르미온느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론을 바
라보았다.
"네가 그 유를 모르겠다면, 나도 굳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론이 차갑게 대답했다. 헤르미온느는 한참 동안 론은 바라보다가 해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론, 도대체……."
"그 자식은 덤스트랭 출신이란 말이야!" 론이 거칠게 내뱉었다. "해리와 경쟁
하고 있는 상대라구! 호그와트의 적수란 말이야! 너…… 너는……." 론은 헤르미
온느의 엄청난 범죄 행위를 묘사할 만한 적절한 단어를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
다.
"적과 내통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지금 네가 하는 짓 이라구!"
헤르미온느의 입이 떡 벌어졌다.
"바보같이 굴지 마!" 잠시 후에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적이라니! 솔직히 말해
서 크룸이 여기 온 것을 보고 제일 흥분한 사람이 누구였지? 그의 사인을 받고
싶어했던 사람이 누구였어? 기숙사에 크룸의 인형을 세워 놓은 사람이 누구였
는지 말해 봐!"
하지만 론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너희 둘이 도서관에 있을 때, 그 자식이 너한테 파트너가 돼 달라고 신청한
모양이지?"
"그래. 그랬어, 그게 뭐 어때서?"
헤르미온느의 붉은 두 뺨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크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한거니?"
"아니야. 그렇지 않아. 만약 네가 정말로 알고 싶다면…… 크룸은, 크룸은 나에
게 말을 걸려고 날마다 도서관에 찾아왔었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동안 용기를
내지 못했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 헤르미온느는 얼굴이 더욱 빨갛게 달아올라서 패르
바티가 입고 있는 옷 색깔과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아하, 그렇군. 그게 그 자식의 숨겨진 꿍꿍이속이었군."
론이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야?"
"뻔하잖아. 그 녀석은 카르카로프의 학생이야. 그렇잖아? 그 녀석은 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었어……. 그 녀석은 단지 해리에게 접근하려고 했던 거야.
해리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고 말이야. 아니면 해리의 약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가가이 접근해서……."
헤르미온느는 마치 론으로부터 뺨이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헤르미온느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크룸은 해리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어. 단 한마디
도……."
"그렇다면 크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황금알의 의미를 알아내는 걸 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속셈이었겠지! 너희 두 사람은 그 안락하고 조그마한 도서관
의자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었을 거야."
론은 번개처럼 공격의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절대로 그 황금알의 의미를 알아내는 걸 도와주지 않았어! 절대로 말이
야.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 나도 해리가 이 시합에서 반드시 승
리하기를 바래. 해리도 그걸 알고 있어. 그렇지 않니, 해리?"
헤르미온느는 머리 끝가지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넌 참 웃기는 방식으로 그걸 보여주고 있구나."
론이 또다시 빈정거렸다.
"이 시합은 다른 나라의 마법사들을 사귀고 서로 다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열리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이건 이기기 위한 거야!"
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제 주위 사람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론, 나는 헤르미온느가 빅터 크룸과 함께 다닌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
해리가 작게 말했다. 하지만 론은 해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왜 어서 가서 빅키나 찾아보지 그러니? 그 자식은 네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열
심히 찾아다니고 있을 거야."
론이 헤르미온느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자꾸만 빅키라고 하지 마!"
헤르미온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폭풍처럼 무대를 가로질러서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론은 분노와 만족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헤르미온느의 뒷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넌 나한테 춤을 추자는 말도 꺼내지 않을 거니?"
파드마가 론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
론은 여전히 헤르미온느가 사라진 곳을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좋아."
파드마는 톡 쏘아붙이면서 일어나더니 패르바티와 보바통의 남학생이 있는 자
리로 가 버렸다. 보바통의 남학생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또 다른 친구 한 명을
불러들였다. 그 동작이 너무나 재빨랐기 때문에 해리는 틀림없이 그 남학생이
소환 마법을 쓴 게 분명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헤르므-오운-니니는 어디 있나?"
어떤 사람이 헤르미온느를 찾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빅터 크룸이 땅콩 버터
맥주 두 잔을 손에 든 채, 그들의 테이블로 찾아온 것이다.
"몰라." 론이 크룸을 올려다보면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걔를 잃어버리기라도
했어? 그래?"
"혹시 그녀를 보거든, 내가 맥주를 가져왔다고 전해 달라."
빅터 크룸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더니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
인 채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빅터 크룸과 친구가 되었니, 론?" 퍼시가 두 손을 비비면서 잔뜩 뽐내는 듯한
표정으로 불쑥 나타났다. "아주 훌륭하구나! 바로 그게 이 시합의 진정한 목적
이란다. 국제 마법사들의 협력!"
해리의 소망과는 정반대로 이번에는 퍼시가 파드마의 빈리에 앉았다. 상석 테
이블은 텅 비어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스프라우트 교수와 춤을 추고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맥고나걸 교수와 춤을 추고 있었다. 맥심 부인과 해그리드는 무
대를 온통 휘젓고 다니면서 학생 틈바구니에서 왈츠를 추고 있었다. 카르카로프
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곡이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박수를 쳤다. 해리는 루도 베
그만이 맥고나걸 교수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사람들 틈을 헤집고 걸어가는 것
을 보았다. 그런데 프레드와 조지가 루도 베그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마법부의 고위 관리를 귀찮게 하다
니?" 퍼시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프레드와 조지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존겨
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하지만 루도 베그만은 프레드와 조지를 얼른 떼어버렸다. 그리고 해리를 발견
하자, 반가운 듯이 손을 흔들면서 그들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베그만 씨, 제 동생들이 귀찮게 굴기라도 한 jrt은 아닌가요?"
퍼시가 즉시 물었다.
"뭐라구? 오, 아니야, 전혀 아니라네!" 베그만이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자네
동생들은 나한테 자기네가 만든 가짜 요술 지팡이 얘기를 하더군. 그걸 팔려고
하는데, 내 조언을 듣고 싶었던 거야. 나는 그들에게 종코의 장난감 가게와 연
결을 해준다고 약속했다네."
그러나 퍼시는 그 말을 듣고 전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엇따. 해리는 퍼시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쏜살같이 위즐리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일러바칠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걸 수도 있었다.
만약 프레드와 조지가 일반인들에게까지 물건을 팔고 싶어한다면, 최근 들어서
그들의 계획이 점점 더 원대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베그만은 해리에게 마
치 무엇인가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퍼시가 앞으로
나서면서 방해했다.
"그런데 베그만 씨, 트리위저드 시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
까? 우리 부처에서는 꽤 만족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불의 잔에 착오가 생긴
건-이 대목에서 퍼시는 해리를 힐끗 쳐다보았다-다소 불행한 일이었지만, 그
뒤로는 모든 일들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
까?"
"오, 그 다네. 아주 엄청나게 재미있었지, 그런데 늙은 바티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바티가 오지 못하다니 유감스럽군."
베그만이 유쾌하게 대답했다.
"아 크라우치 시는 조만간 쾌차하실 겁니다." 퍼시는 잔뜩 으스대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제가 기꺼이 그분의 빈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물론 무도
회에 참석하는 것만이 제 임무의 전부가 아니죠." 퍼시는 허세를 부리면서 웃었
다. "오 그렇구말구요. 저는 그분이 계시지 않는 동안 일어나는 온갖 종류의 일
들을 다 처리해야만 합니다. 혹시 알리 바셔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몰래 밀수
입하려고 하다가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그 다음에는 또 트란실바
니아 당국을 설득해서 결투를 금지하는 국제법에 서명을 하도록 해야만 했죠.
그리고 도 새해에는 국제 마법 협력부의 의장과 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우리 밖으로 나가자. 퍼시에게서 도망치자구."
론이 작게 해리에게 속삭였다. 해리와 론은 마실 것을 가지러 가는 척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대 가장자리를 따라서 몰래 현관 복도로 빠져나갔
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두 사람이 걸어서 현관 계단을 막 내려갔을 때,
장미 정원에서는 팔랑거리는 요정의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었다.
장미 정원은 온통 아름다운 장미꽃 덤불과 멋지게 장식된 구불구불한 오솔길
과 커다란 석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해리는 마치 샘물이 솟아로듯이 퐁퐁거리
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정교한 조각이 아로새겨진 벤치 위
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해리와 론은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서 장미 덤불
사이를 한참 동안 걸어갔다. 하지만 얼마 걷지도 않아서 또다시 불쾌하고 낯익
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이 소동을 피우는지 모르겠군, 이고르."
"세베루스, 너는 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굴 수는 없어!" 다른 사람이 듣지 못
하도록 잔뜩 낮춘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불안에 떨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달
동안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어. 나는 아주 심각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단 말이
야. 나는 그걸 부인할 수가 없어……."
"그럼 달아나도록 해." 스네이프가 단호하게 말했다. "달아나……. 내가 그럴듯
한 핑계를 댈 테니까. 하지만 나는 호그와트에 남을 거야."
스네이프와 카르카로프가 모퉁이를 돌아섰다. 갑자기 스네이프가 요술지팡이를
꺼내더니 근처에 있던 장미꽃 덤불을 힘껏 후려쳤다. 스네이프는 잔뜩 심술이
난 표정이었다. 꽃봉오리가 가득한 덤불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그림자들이 빠져나왔다.
"포우셋! 래번클로 10점 감점이다!" 스네이프가 재빨리 도망치고 있는 여학생
에게 소리쳤다. "스테빈스! 후플푸프도 10점 감점이다!" 여학생의 뒤를 따라서
한 남학생이 황급히 달아났다.
"너희 둘은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길 저쪽에 서 있는 해리와 론을 발견한 스네이프가 물었다. 해리와 론이 거기
에 서 있는 것을 보자 카르카로프가 안절부절못하면서 초조하게 손으로 콧수염
을 어루만지더니 손가락으로 비비 꼬기 시작했다. 해리는 금방 그 사실을 눈치
챘다.
"그냥 걷고 있었어요. 그게 규칙에 어긋나는 일은 아니겠죠?"
론이 스네이프에게 재빨리 대답했다.
"그렇다면 계속 걸어라!"
스네이프가 으르렁거리면서 소리치더니 그들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네이프
의 기다란 검은 망토가 바람에 펄럭였다. 카르카로프는 허둥지둥 스네이프의 뒤
를 쫓아갔다.
해리와 론은 천천히 길을 걸어갔다.
"카르카로프가 그토록 걱정하는 일이 뭘까?"
론이 궁금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언제부터 스네이프와 카르카로프가 저렇게 가까운 사이가 됐지?"
해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두 사람은 커다란 순록 석상
앞에 도착했다. 순록 석상 위로 물줄기가 높이 솟아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돌로
만든 벤치 위에는 몸집이 거대한 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부드러운 달빛이 비치는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해리의 귀에
해그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보는 순간 나는 곧 알아차렸죠."
해그리드는 이상할 정도로 잔뜩 쉰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해리와 론은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함부로 낑들어서는 안 될 상황 같은 느
낌이 들었던 것이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근처 장미 덤불
속에서 반쯤 몸을 숨긴 채 서 있는 플뢰르 델라쿠르와 로저 데이비스의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론의 어깨를 탁 치면서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저쪽으로 가면 해그리드의 눈에 띄지 않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신호였다(플뢰르와 데이비스는 자기들 볼일을 보느라고 한눈을 팔 사이가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론은 플뢰르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세차게 머리를 저
었다. 그러더니 순록 석상 밑의 어두운 그늘 속으로 해리를 잡아 끌었다.
"그런데 뭘 알아차렸다능 거죵, 아그리드?"
맥심 부인이 낮은 목소리로 애교를 떨면서서 물었다. 해리는 저랟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엿듣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 사실을 알게되면 해그리드는 굉장히 싫
어할 것이다. 그건 분명한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해리는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
막고 큰 소리로 아무 말이나 중얼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
다. 그 대신에 해리는 순록 석상 등을 기어가는 딱정벌레에게 정신을 집중하려
고 애를 썼다. 하지만 딱정벌레는 해그리드의 다음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
도로 그렇게 흥미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알았어요……. 당신이 나와 같다는 사실을……. 당신은 어머니 쪽인가
요? 아니면 아버지 쪽인가요?"
"나능…… 나능 무슨 말인징 모르겠군요, 아그리드."
"나는 어머니 쪽이었어요." 해그리드가 조용히 말했다. "그분은 영국에 남아 있
는 마지막 한 사람이었죠. 물론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곧 떠나셨으니까요.
내가 세 살 때였어요. 우리 어머니는 사실 보통 어머니들 같은 그런 분은 아니
셨죠. 글쎄……. 그건 그들의 천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요? 그렇지 않나요?
그 이후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모르겠어……. 내가 아는 거
라곤 죽었을 거라는 것뿐……."
맥심 부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딱정벌레에서 눈을
돌린 해리는 순록 석상의 뿔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서 귀를 기울였다……. 해리
는 해그리드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 본 적
이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떠났을 때, 아버지는 크게 상심하고 말았죠. 우리 아버지는 몸집이
자그마한 노인이셨죠. 여섯 살이 되자, 나는 벌써 아버지가 성가시게 굴 때마다
번쩍 들어서 옷장 위에 올려놓을 수가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껄껄 웃
곤 하셨죠……." 해그리드의 목소리가 더욱 깊이 잠겼다. 맥심 부인의 눈은 은
빛으로 반짝이는 분수를 응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를 키웠죠…….
물론 아버지도 돌아가셨어요. 내가 학교에 막 들어갔을 때였어요. 그 이후로 소
르타가 나를 키웠어요. 덤블도어는 참으로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 주었죠. 도움
도 많이 주고 아주 친절하게 대해 줬어요……."
해그리드는 얼룩진 비단 손수건을 꺼내더니 코를 흥 풀었다.
"어쨌거나…… 내 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군요. 당신은 어떤가요? 어느 쪽이 그
혈통이죠?"
갑자기 맥심 부인이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좀 춥군용." 날씨가 아무리 춥다고 하더라도 맥심부인의 목소리만큼이나 냉랭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능 가 봐야 하겠어용."
"네?" 해그리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가지 말아요! 나는 지금까
지 나 같은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정확히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죵?"
맥심 부인의 목소리에서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해리는 해그리드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 서서 이를 악문 채, 부디
대답하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희망이었다.
"물론 거인 혼혈 말이죠!"
해그리드가 맥심 부인에게 말했다.
"오떻게 감히 그렁 말을!" 맥심 부인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맥심 부인의 목소
리는 뱃고동처럼 평화로운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해리의 등 뒤에서 플뢰르와 로
저가 황급히 장미 덤불 밖으로 튀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평생에 이렇게
모욕적인 말응 들어 봉 적이 없어용! 거인 혼혈이냐구용? 내가용? 나는……나는
본래 몸집이 큰 거에용!"
맥심 부인은 잔뜩 화가 나 쿵쿵거리면서 사라졌다. 맥심 부인이 장미 덤불을
헤치면서 지나갈 때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요정들이 깜짝 놀라서 하늘로 날아
올랐다.
해그리드는 여전히 벤치 위에 앉아서 맥심 부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
다. 너무나 어두워서 해그리드의 표정은 살펴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 천천
히 자리에서 일어난 해그리드는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이 아니
라 자신의 오두막집이 있는 어둠 속을 향하고 있었다.
"이리 와." 해리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작은 목소리로 론에게 속삭였다.
"그만 가자."
하지만 론은 꼼짜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
해리가 론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론은 천천히 해리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론
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너도 알고 있었니? 해그리드가 거인 혼혈이라는거?"
론이 정색을 하면서 물었다.
"아니. 그게 어때서?"
해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반문했다. 해리는 그 순간 론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
정을 보고, 자신이 또다시 마법 세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깨달았
다. 더즐리 가족 틈에서 자라난 해리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알고 있는
많은 사실들을 너무나 놀랍고 신기한 일로 받아들이기 일쑤였다. 물론 해가 갈
수록 놀라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도 친구 중에 한
사람이 거인 어머니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어떤 마법사도 "그게 어때
서?" 라고 묻지는 않았을 거라는 걸 해리는 알 수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설명하는 게 좋겠다." 론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플뢰르 델라쿠르와 로저 데이비스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좀더 호젓한 숲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해리와 론은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패
르바티와 파드마는 보바통의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여서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다시 크룸과 춤을 추고 있었다. 해리와 론은 무대에
서 제일 멀리 덜어져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거인인 게 뭐 어때서 그래?"
해리가 론에게 재촉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들은……." 론은 적당한 표현을 찾으려고 애를썼다.
"아주 좋지 않아." 론은 모호하게 말을 끝맺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해그리드는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해리는 의아스러운 듯이 물었다.
"나도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아, 제기랄! 해그리드가 그 사실을 절대로
비밀로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 나는 항상 해그리드가 어렸을 때 아주 지독한
탐식 마법에 걸렸거나, 뭐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지. 사실 그런 말은 꺼내고 싶
지도 않았어……."
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해그리드의 어머니가 거인이었다고 해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지?"
"글세……. 해그리드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삼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해그리드가 하나도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론은 천천히 말
을 이어나갔다. "하지만……해리. 그들은 아주 사악해. 거인들 말이야. 해그리드
가 말한대로 그게 바로 그들의 천성이야. 마치 트롤과 같지……. 거인들은 그냥
죽이는 걸 좋아해. 그 사실은 누구나 다 알아. 이제 영국에는 거인이 단 한명도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야."
"거인은 어떻게 되었지?"
"그냥 모두 멸종해 버렸어. 그리고 많은 거인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 거라고
해……. 대부분 깊은 산 속에 숨어서 지내고 있다는 거야……."
"맥심의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해리는 심판석에 혼자 앉아 있
는 맥심 부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맥심 부인의 얼굴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해그리드가 거인 혼혈이라면 맥심 부인도 틀림없이 그럴 거야. 원래
덩치가 크다니……. 맥심보다 더 덩치가 큰 동물은 아마도 공룡밖에 없을걸."
해리와 론은 무도회 내내 한쪽 구석에 앉아서 거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사람 모두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해리는 초 챙과 케드릭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무거나 한 방 걷어차
고 싶은 강한 충동이 솟구쳤기 때문이다.
자정이 되자, 운명의 세 여신은 연주를 마쳤다.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면서 입구를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무도회가 끝나는 것을 몹시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만 자러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다. 적어도 해리에게는 오늘 저녁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현관 복도로 나온 해리와 론은, 덤스트랭의 배로 돌아가는 빅터 크룸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헤르미온느를 만났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차갑고 냉랭한 표
정으로 론을 한 번 쏘아보더니, 단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대리석 계단으로 올라
가 버렸다. 해리와 론은 재빨리 헤르미온느의 뒤를 따라갔다. 계단을 반쯤 올라
갔을 때, 누군가가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이봐, 해리!"
해리를 부른 사람은 바로 케드릭 디고리였다. 해리는 저 아래쪽 현관 앞에서
케드릭을 기다리고 있는 초 챙을 볼 수 있었다.
"왜 그래?"
해리는 자신을 만나기 위해 계단을 뛰어서 올라오고 있는 케드릭에게 차갑게
물었다. 하지만 케드릭은 론이 없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론은 아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내 말을 잘 들어……." 론이 사라지자, 케드릭은 목소리를 낮추면서 속삭였다.
"네가 나에게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으니까, 나는 너에게 빚이 있는 셈이야.
그런데 황금알에 대해서는 뭘 좀 알아냈니? 네 황금알도 뚜껑을 열었을 때 비
명을 질렀니?"
"그래."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렇다면…… 목욕을 해. 알았지?"
"뭐라구?"
"목욕을 하란 말이야. 그리고…… 음…… 그 알도 같이 가져가도록 해. 그러니
까…… 음…… 따뜻한 물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란 말이야. 아마도 생각하는
일에 도움이 될 거야……. 날 믿어."
해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가만히 케드릭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더 말해 준다면, 반장들의 욕실을 사용하라는 거야." 케드릭이 말을
이어 나갔다. "5층에 있는 마법사 보리스의 조각상에서 왼쪽으로 네 번째 방이
야. 암호는 '어린 소나무'야. 어서 가……. 난 초 챙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해."
케드릭은 해리를 보고 다시 싱긋 웃더니 초 챙이 기다리는 곳을 향해 황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해리는 혼자 그리핀도르 탑으로 걸어갓다. 케드릭의 충고는
참으로 이상했다. 왜 목욕을 하면 그 울부짖는 황금알의 의미를 밝혀 내는 일에
도움이 되는 걸까? 케드릭이 나를 속이고 하는 걸까? 나를 바보 멍청이처럼 보
이게 해서 초 챙의 환심을 더욱더 사려고 하는 걸까?
뚱뚱한 여인과 그녀의 친구인 바이올렛은 이제 출입구를 막고 있는 초상화 그
림 속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해리는 뚱뚱한 여인을 깨우기 위해 "요정의
불빛!" 이라고 고함을 질러야만 했다. 그리고 해리가 시끄럽게 고함을 지르자,
둥뚱한 여인은 몹시 짜증을 냈다.
학생 휴게실로 들어간 해리는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있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3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서로를 향해
악을 쓰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게 그렇게 싫었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너도 알고 있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론은 쏘아보면서 소리쳤다. 우아하게 틀어올렸던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은 이제 길게 풀어헤쳐져 있었으며,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 그래? 그게 뭔데?"
론이지지 않고 소리쳤다.
"그러니까 다음 무도회 때에는 다른 사람이 나한테 신청하기 전에 먼저 나한
테 신청하도록 해! 나를 마지막 보루처럼 대하지 말란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싹 돌아서서 여학생 기숙사로 향하는 계단을 쿵쾅거리며 요란하
게 올라가 버리자, 론은 마치 물 밖으로 나온 금붕어처럼 소리 없이 입만 씰룩
씰룩거렸다.
"그래." 론은 갑자기 번개라도 맞은 사람처럼 냅다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래,
랬군. 뭔가를…… 완전히 착각하고 있어.
해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론과 다시 말
하는 사이가 된 것이 너무 좋아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
만 론보다는 헤르미온느가 훨씬 더 정곡을 찔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