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장 (72/194)

  

    제20장 첫번째 시험

  

  일요일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난 해리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어서, 한참 후에야 자신이 양말 대신 모자를 발에 끼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겨우 제대로 옷을 다 입고 나자, 해리는 분주하게 헤르미온느를 찾아다녔다. 헤르미온느는 연회장의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서 지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도저히 음식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던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마지막 숟갈을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에게 용에 관한 이야기와 시리우스가 했던 말을 모두 털어놓았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은 호수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아야만 했다.

  카르카로프에 대한 시리우스의 경고를 듣고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용의 문제가 훨씬 더 다급하다고 생각했다. 

  "우선 화요일 저녁까지 네 목숨이나 부지하고 보자꾸나." 헤르미온느가 절망적으로 말했다. "그래야만 카르카로프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지."

  두 사람은 용을 진정시킬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 무엇일까 궁리하면서 호수 주위를 다시 세 번이나 돌았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도서관을 찾아갔다. 해리는 용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잇는 책은 모두 꺼낸 후에, 헤르미온느와 함께 열심히 책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용발톱 자르기... 비늘 상처 치료하기...' 이런 건 아무런 소용이 없겠어. 이건 해그리드처럼 용을 건강하게 기르고 싶어하는 괴짜들이나 보는 거라구..."

  "'용을 죽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용의 두꺼운 가죽에는 고대 마법이 깃들어 잇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강력한 마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가...' 하지만 시리우스는 간단한 마법이라고 했다며..."

  "그렇다면 간단한 마법에 관한 책을 살펴보자."

  <너무나 용을 사랑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옆으로 던지면서 해리가 말했다. 해리는 마법책이 잔뜩 쌓여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서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해리의 곁에 딱 붙어 서서 잠시도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글세... 이건 바꾸기 마법이야. 하지만 바꾸기 마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네가 용의 어금니를 빨간 잇몸이나 조금 덜 위험한 것으로 바꿀 생각이 아닌 다음에야...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는 바로 이거야. 용의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이 별로 없다는 거 말이야... 나는 너에게 변신 마법을 권하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게 큰 놈이라면 네가 성공할 희망은 거의 없어. 심지어 맥고나걸 교수라고 해도... 차라리 너에게 마법을 걸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네가 엄청난 힘을 갖게 될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건 단순한 마법이 아니야. 게다가 수업 시간에는 이런 마법들을 사용해 본 적도 없어. 나도 약간 알고 있을 뿐이야. O.W.L. 실습 시험을 쳤던 적이 있거든..."

  "헤르미온느,. 잠시 동안이라도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을래? 집중을 좀 해야겠어."

  해리가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가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해리의 머리 속이 텅 비면서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해리는 절망적으로 책 목록을 훑어갔다. <바쁘고 짜증난 사람들을 위한 기본 주문>, <즉석에서 머리가죽 벗기기> 하지만 용에게는 머리카락이 없다... <후추 불어넣기> 이건 오히려 용의 화력을 더욱 세게 만들어놓을 것이다... <뿔 혓바닥> 용에게 무기를 하나 더 안겨줄 일은 없지... 

  "오, 이런! 크룸이 다시 나타났어. 그 우스꽝스러운 자기네 배 안에서 책을 읽으면 어디가 덧나나?" 빅터 크룸이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자, 헤르미온느가 짜증을 냈다. 빅터 크룸은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더니 책이 잔뜩 쌓여 잇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가자, 해리. 우리는 그만 휴게실로 돌아가는 게 좋아. 조금 있으면 저 녀석의 팬 클럽이 잔뜩 몰려올 거라구."

  헤르미온느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이 도서관을 나서자마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왔다. 그 여학생들 중에 한 명은 허리에 불가리아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그날 밤에 해리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해리는 처음으로 아주 진지하게 호그와트에서 도망칠 궁리를 했다. 하지만 아침 식사 시간에 연회장을 둘러보면서 이 성을 떠난다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 절대로 이곳을 떠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해리가 행복을 맛보았던 유일한 장소였다. 아마...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때에도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해리가 기억할 수 없는 과거였다.

  어쩌면 프리벳 가의 두들리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곳에 남아서 용과 맞서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해리의 마음은 다소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간신히 (목구멍이 잘 움직여 주질 않았다) 접시에 놓여 있는 베이컨을 다 먹은 해리는 헤르미온느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후플푸프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케드릭 디고리의 모습이 보였다.

  케드릭 디고리는 아직까지도 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만약 맥심 부인과 카르카로프가 플뢰르 델라쿠르와 빅터 크룸에게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라는 해리의 짐작이 맞다면,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챔피언은 오직 케드릭뿐이었다.

  "헤르미온느, 이따가 온실에서 만나자." 연회장을 떠나는 케드릭을 보면서 순간 결심을 굳힌 해리가 말했다. "어서 가. 내가 곧 따라갈게." 

  "해리, 잘못하면 수업에 늦어. 이제 곧 벨이 울릴 텐데..."

  "곧 따라갈게. 알았지?"

  해리가 막 대리석 계단 밑에 도착했을 때, 케드릭은 벌써 계단 위에 서 있었다. 케드릭의 주위에는 6학년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해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케드릭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해리가 가까이 지나갈 때마다 리타 스키터의 신문 기사를 읊어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해리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케드릭을 따라갔다. 케드릭은 마법 수업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 교실을 보자, 해리는 한 가지 좋은 수가 떠올랐다.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지팡이를 꺼낸 해리는 조심스럽게 목표물을 겨냥했다.

  "디핀도!"

  그 순간 케드릭의 가방이 활짝 열렸다. 가방 속에  들어 있던 양피지와 깃펜 그리고 책들이 쏟아지면서 마루에 흩어졌다. 잉크병은 박살이 나고 말았다.

  "귀찮게 굴지 마!" 친구들이 케드릭을 도우려고 허리를 숙이자, 그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플리트윅 선생님께 내가 곧 간다고 말씀드려. 어서 가..."

  마침내 모든 일이 해리가 원하던 대로 풀렸다. 해리는 지팡이를 다시 옷 속에 집어넣고 케드릭의 친구들이 모두 교실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재빨리 케드릭과 자신밖에 없는 텅 빈 복도를 달려갔다.  

  "안녕!" 케드릭이 잉크로 얼룩이 진 <고급 변신술 입문서>를 집어들면서 인사했다. "갑자기 가방이 열려서 말이야... 모두 다 최고급 신제품 물건들인데..."

  "케드릭, 첫 번째 시험은 용이야."

  해리가 대뜸 말했다. 

  "뭐라구?"

  케드릭이 깜작 놀라면서 얼굴을 들었다.

  "용이라니까." 케드릭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언제 플리트윅 선생님이 불쑥 교실 밖으로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해리는 다급하게 말했다. "모두 네 마리야. 우리 네 사람이 한 마리씩 맡게 될 거야. 우리는 용을 통과해야만 해."

  케드릭은 가만히 해리를 쳐다보았다. 케드릭의 회색 눈동자에서 해리가 지난 토요일 밤부터 겪었던 고통과 두려움이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이니?"

  케드릭이 약간 쉰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이야. 내 눈으로 직접 봤어."

  "하지만 네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니? 그건 우리가 알아서는 안 되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지신을 말하면 해그리드가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냐. 지금쯤 플뢰르와 크룸도 알고 있을 거야. 맥심 부인과 카르카로프 모두 용을 봤기 때문이지."

  케드릭이 몸을 똑바로 세웠다. 케드릭의 팔에는 깃펜과 양피지, 책 등이 잔뜩 들려 있었고 어깨에는 가방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케드릭은 멍하니 해리를 바라보았다. 케드릭의 눈에는 거의 의심하는 듯한, 당혹스러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거지?"

  케드릭이 의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해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케드릭을 바라보았다. 만약 케드릭이 직접 두 눈으로 용을 보았다면 분명히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

  해리는 아무리 미워하는 적이라고 해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런 괴물과 대면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글쎄... 혹시 말포이나 스네이프라면...

  "그냥... 이게 공평하잖아. 그렇지 않니?" 해리가 케드릭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 알게 되었구나... 그러니까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는 거야. 그렇지?"

  케드릭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매드아이 무디 교수님이 가까운 교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포터, 이리 와라."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디고리, 너는 가고..."

  해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무디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을까?

  "저, 교수님. 저는 약초학 수업에 들어가야만 해요."

  "그런 건 잊어버려라, 포터. 어서 내 방으로 들어와."

  해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무디의 뒤를 따라갔다. 무디가 어떻게 용에 대해서 알았는지 알아내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무디가 덤블도어를 찾아가서 해그리드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나를 흰족제비로 바꾸어 놓지나 않을까? 만약 흰족제비가 된다면, 용을 통과하기가 더욱 쉬울지도 몰라... 해리의 머리 속에서 

엉뚱한 생각들이 오락가락했다. 몸이 더 작아지면 15미터나 되는 용의 눈에 좀처럼 띄지 않을 거야...

  해리는 무디의 뒤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갔다. 무디는 문을 닫은 후에 해리를 쳐다보았다. 무디의 마법의 운동장는 마치 보통 눈처럼 제자리에 딱 박혀 있었다.

  "포터, 지금 네가 한 일은 아주 잘한 일이다."

  무디가 차분하게 말했다. 해리는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무디의 반응은 해리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앉아라."

  무디의 말대로 의자에 앉은 해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리는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던 예전 선생님들이 이 방을 사용할 때 여기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록허트 교수가 있을 때에, 이 방은 온통 활짝 웃으면서 눈을 찡끗거리는 록허트 교수의 독사진을 도배되어 있었다. 루핀 교수가 지내고 있을 때에는,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사용하기 위해 구해온 신기한 어둠의 생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도 꾸지 못했던 온갖 이상한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해리는 아마도 무디가 어렸던 시절에 사용하던 물건인 모양이라도 추측했다.

  무디의 책상 위에는 꼭대기가 빙빙 돌아가는 커다랗고 금이난 유리팽이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해리는 한눈에 그것이 스티코스코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무디의 것보다는 훨씬 더 작기는 했지만, 해리도 하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 구석에 세워진 작은 탁자 위에는 몹시 구불구불한 황금 텔레비전 안테나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은 희미하게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해리의 맞은편에는 거울처럼 보이는 것이 벽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거울 안에는 방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림자처럼 흐릿한 형체가 거울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둠의 탐지기들이 마음에 드니?"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해리를 향해 무디가 말했다.

  "저게 뭐죠?" 

  해리는 구불구불한 황금 안테나를 가리켰다.

  "비밀 탐지기란다. 비밀이나 거짓말을 간파하면 탐지기가 진동을 한단다... 물론 여기에서는 사용하지 않아. 너무 귀찮으니까 말이야. 사방에서 학생들이 왜 숙제를 해오지 못했는가에 대해 온갖 거짓말을 다 늘어놓잖니. 내가 여기에 온 이후로 비밀 탐지기는 줄곧 진동을 

멈추지 않았단다. 그리고 나는 스니코스코프도 잠재울 수밖에 없었어. 잠시도 삑 소리를 멈추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내 스니코스코프는 몹시 예민하기 때문에 근처 1.5킬로미터 이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감지할 수 있단다. 물론 학생들의 거짓말 따위보다 더욱 많은 것들을 알아낼 수 있지."

  무디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거울은 어디에 쓰는 거죠?"

  "저것은 나의 적을 비추는 거울이야. 저기 살금살금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니? 저 눈동자들이 하얀색으로 변할 때까지는 아직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니야. 그때는 내 가방을 열 수가 있지." 무디는 굴고 짧은 웃음 소리를 내더니, 창문 밑에 놓여 있는 커다란 가방을 가리켰다. 그 가방은 열쇠 구멍이 무려 일곱 개나 달려 있었다. 해리는 도대체 저 가방 속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무디의 질문을 듣고 해리는 다시 퍼뜩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래, 용에 대해서... 알아냈단 말이지? 그렇지?"

  해리는 잠시 동안 망설였다. 지금까지 줄곧 두려워하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케드릭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해그리드가 규율을 어겼다는 말은 무디에게도 절대로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네."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좋아." 자리에 앉은 무디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나무 다리를 쭉 뻗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속임수를 쓰는 것은 전통의 일부였어. 항상 있었던 일이지."

  "저는 속임수를 쓴게 아니에요. 제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건, 그건... 그냥 우연이었어요."

  해리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이 녀석아,. 나는 지금 너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무디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처음부터 나는 덤블도어에게 말했어. 그 사람이야 얼마든지 고상하게 굴 수 있지만, 늙은 카르카로프와 맥심 부인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그들은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반

드시 이기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어. 그들은 덤블도어를 꺾고 싶어한단 말이야. 덤블도어가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지." 

  무디는 이렇게 말하면서 또다시 껄껄 웃었다. 그러자 마법의 눈이 너무나 빠르게 빙글빙글 돌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보던 해리는 그만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 무사히 용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했니?"

  무디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질문을 던졌다. 

  "아뇨."

  "나도 너에게 말해 줄 수는 없다." 무디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누구만 편애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저 아주 일반적인 충고나 한 마디 해주지. 첫 번째 충고는... 너의 능력을 사용하라는 거야."

  "제겐 아무런 능력도 없어요." 

  해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것 봐!" 무디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가 너에게 능력이 있다고 하면 너는 능력이 있는 거야. 잘 생각해 보거라. 네가 제일 잘 하는 게 뭐지?"

  문득 해리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게 무엇일까? 그래, 그건 아주 쉬웠다. 

  "퀴디치요." 해리가 시무룩해서 대답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도움이..."

  "맞았어." 무디는 해리를 무섭게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의 눈조차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너는 정말 끝내주는 비행 선수라고 하더구나."

  "그렇기는 해도..." 해리도 무디를 마주 쳐다보았다. "빗자루를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어요. 저는 오직 지팡이만..." 

  "두 번째 일반적인 충고는... 너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멋지고 간단한 마법을 사용하라는 거다."

  무디가 해리의 말을 가로채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해리는 멍하니 무디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

  "자, 얘야..." 무디가 부드러운 눈길로 해리를 쳐다보면서 속삭였다. "나의 두 가지 충고를 잘 생각해 보렴... 별로 어렵진 않아..."

  그 순간 해리의 머리 속에서 반짝 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해리가 제일 잘 하는 것은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는 것이다. 허공을 날아서 용을 통과하면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파이어볼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파이어볼트를 갖기 위해 필요한 것은...

  "헤르미온느!"

  3분이나 늦게 온실로 들어간 해리는 스프라우트 교수에게 황급히 죄송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의 곁을 지나가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헤르미온느, 너의 도움이 필요해."

  "해리, 그럼 넌 지금까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거니?"

  부르르 떨고 있는 파동 덤불의 잔가지를 치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덤불 너머로 걱정스럽게 해리를 바라보았다. 

  "헤르미온느, 난 내일 오후까지 소환 마법을 배워야만 해."

  마침내 두 사람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심 식사도 하지 않고 비어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해리는 죽을 힘을 다해서 다양한 물건들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도록 만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책과 깃펜들은 교실을 절반 가량 날아오던 도중에 균형을 잃고 돌처럼 바닥으로 쿵 떨어져 버렸다.

  "집중을 해. 해리, 집중을..."

  "너는 도대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 같니?" 해리가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거대한 용이 자꾸만 내 머리 속에 나타난단 말야... 좋아, 다시 한 번 해보자..."

  해리는 점술 수업을 빼먹더라도 계속 소환 마법 연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점술 수업을 몰래 빠지자는 제안을 딱 잘라서 거절했다. 헤르미온느가 없다면 혼자 남아서 연습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해리는 한시간 동안 트릴로니 교수의 수업을 참고 견디어야만 했다.

  트릴로니 교수는 수업 시간의 절반 정도를, 화성과 토성이 마주치게 되면 7월에 태어난 사람들은 끔찍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일에 써버렸다.

  "그것 참 잘 됐군요." 해리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질질 끌지 않는다니까 말이죠. 저는 고통을 받는 건 딱 질색이거든요." 

  잠시 동안 론은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 근래에 들어서 처음으로 해리와 론의 눈길이 마주쳤다. 하지만 해리는 아직까지도 론에 대해서 분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해리는 수업 시간 내내 책상 밑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작은 물건들이 자기 쪽으로 날아오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하여 간신히 파리 한 마리가 해리의 손 안으로 곧장 날아 들어오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소환 마법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 파리가 멍청한 놈이었는지도 모른다.

  점술 수업이 끝나자 이번에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연회장으로 가야만 했다. 식사를 마친 해리는 마침내 헤르미온느와 함께 투명 망토를 이용해서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비어 있는 교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정이 지나도록 열심히 연습을 했다. 좀더 오랫동안 연습할 수

도 있었지만, 갑자기 피브스가 나타나서, 해리가 자신에게 물건을 던지려 한다고 하면서 마구 교실 의자를 내던지는 바람에,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필치가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오기 전에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리핀도르의 휴게실로 돌아갔다. 고맙게도 휴게실은 텅 비어 있었다.

  새벽 2시가 되었을 때, 해리는 책과 깃펜, 뒤집어진 의자 몇 개, 낡은 고브톤 세트, 네빌의 두꺼비 트레버 등 온갖 잡다한 물건 더미에 둘러싸인 채, 벽난로 옆에 우뚝 서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해리는 소환 마법을 확실하게 터득한 것이다.

  "훨씬 낫구나. 해리, 아주 좋아."

  헤르미온느는 몹시 피곤해 보였지만 무척 기뻐했다.

  "좋아. 다음 번에 내가 마법을 잘 부리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어."

  이렇게 말하면서 해리는 룬 문자 사전을 다시 헤르미온느에게 던졌다. 다시 한 번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용이 나를 위협한다. 좋아..."

  해리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아씨오 사전!"

  묵직한 사전이 헤르미온느의 손에서 빠져나오더니 교실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해리는 손을 내밀어 그 사전을 붙잡았다.

  "해리, 마침내 네가 소환 마법을 터득한 것 같아!"

  헤르미온느가 몹시 기뻐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파이어볼트는 여기 있는 이 물건들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을 거야. 파이어볼트는 성 안에 있고 나는 저기 운동장에 있을 텐데..."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안 돼." 헤르미온느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네가 정말로, 정말로, 열심히 집중을 한다면, 파이어볼트는 반드시 날아올 거야. 해리, 이제 우리도 자러 가는게 좋겠다. 너는 좀 자야만 해."

  저녁 내내 소환 마법을 배우는 일에 몹시 신경을 썼기 때문에, 해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도 잠시 동안 잊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고통은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순식간에 학교는 터질 듯한 긴장감과 흥분에 휩싸였다. 모든 수업이 정오에 끝나고, 학생들은 용이 있는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물론 그들은 아직도 운동장에 무엇이 있는 지 

알지 못했다.

  해리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완전히 격리되어서 홀로 남겨진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해리가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은 행운을 빌거나 혹은 "포터,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휴지를 꼭 준비해 가마"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상

태가 점점 더 심해지자, 해리는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용 앞으로 나가는 순간 정신이 돌아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특별하게 움직여서 전속력으로 지나갔다. 분명히 방금 전에 첫 번째 수업인 마법의 역사 시간에 들어갔던 것 같은데, 어느 사이에 벌써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도대체 아침 시간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용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마지막 몇 시간은?) 잠시 후에 맥고나걸 교수가 황급히 연회장으로 들어오더니 해리를 향해 다가왔다. 맥고나걸 교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해리를 불렀다.

  "포터, 이제 챔피언들은 운동장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너도 첫 번째 시험을 치르기 위한 준비를 해야지."

  "알았어요."

  해리를 포크를 접시 위에 힘없이 떨어뜨린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운을 빌어, 해리. 너는 잘 할 거야!"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속삭였다.

  "그래."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해리는 어쩐지 자신의 목소리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해리는 맥고나걸 교수와 함께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맥고나걸 교수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맥고나걸 교수도 거의 헤르미온느 만큼이나 안절부절 못 하는 것 같았다. 해리와 함께 돌계단을 지나서 차가운 11월의 오후 공기가 감돌고 있는 밖으로 나오자, 매고나걸 교수는 해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 겁먹지 말거라. 언제나 냉정하게 이성을 잃지 말아야 해... 만약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마법사들을 대기시켜 놓았단다. 제일 중요한 것은 네가 최선을 다하는 거야... 괜찮니?"

  "네." 해리의 귀에 이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요. 저는 괜찮아요."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를 데리고 용의 우리가 있는 숲으로 걸어갔다. 울창한 숲 너머로 울타리가 분명히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해리는 그곳에 커다란 천막이 세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입구를 가로막은 천막 때문에 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너는 다른 챔피언들과 함께 여기 있다가 들어가야 한단다."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렸다. "네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다. 베그만 씨가 저기 있을 거다... 그분이 너의 순... 순서가 되면 불러주실 거야... 부디 행운을 빈다."

  "고맙습니다."

  해리는 공헌하고 맥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맥고나걸 교수는 해리를 천막 입구 앞에 남겨두고 떠나갔다. 해리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구석에는 플뢰르 델라쿠르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평소에 보여 주었던 냉정하고 태연한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얼굴에는 겁에 질린 듯한 창백한 표정만이 감돌았다. 빅터크룸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게 크룸이 긴장을 표현하는 방식일 거라고 짐작했다. 천막 안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던 캐드릭은 해리가 들어오자,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해리도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얼굴 근육이 웃는 방법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해리! 잘 해라!" 베그만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챔피언들을 둘러보았다. "자... 모두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구."

  온통 창백하게 질린 챔피언들 사이에서 혼자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는 베그만의 보습은 마치 좀 지나치게 잘난 척하는 만화 주인공과 같았다. 베그만은 또다시 낡은 와스프 팀의 겉옷을 입고 있었다.

  "좋아요. 이제 모두 모였군요. 절차를 자세히 설명해줘야 할 시간이 되었어요!" 베그만은 신이 나소 떠들었다. "관중들이 모이면 내가 여러분에게 이 주머니를 열어 주겠어요."

  베그만은 보라색 비단천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를 살짝 들어 올렸다.

  "이 주머니 속에서 여러분은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의 작은 모형을 뽑게 될 거예요. 에... 물론 모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는데... 그러니까... 여러분이 치러야 한 시험은 바로 황금알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힐끗 돌아보았다. 케드릭은 당장 베그만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천막 안을 서성거리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케드릭의 얼굴은 거의 초록색이었다. 그러나 플뢰르 델라쿠르와 빅터 크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해리도 꼭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자진해서 이 시합에 참가하지 않았는가...

  얼마 안 있어 천막 주위를 지나가는 수백 명의 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즐겁게 웃고 농담을 하면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그들이 별나라에서온 전혀 다른 인종이라도 되는 듯한 소외감을 느꼈다. 잠시 후에(해리에게 있어서 이 순간은 몇 초처럼 짧게만 느껴졌다) 베그만이 보라색 비단 주머니를 열었다.

  "숙녀 먼저..."

  베그만은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비단 주머니를 내밀었다. 덜덜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플뢰르 댈라쿠르는 용과 똑같이 생긴 작은 모형을 꺼냈다. 그것은 웨일스의 그린이었다. 용의 목에는 2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용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결의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해리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맥심 부인은 이미 플뢰르 델라쿠르에게 시험에 무엇이 나올지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다.

  빅터 크룸도 역시 똑같았다. 크룸은 자주빛 중국 파이어볼을 뽑았다. 그 목에는 3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크룸은 눈도 깜박하지 않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케드릭도 비단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청회색이 감도는 스웨덴의 쇼트 스나우트의 목에는 1번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다. 이제 남아 있는 용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는 해리는 비단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헝가리의 혼테일을 꺼냈다. 4번이었다. 해리는 날개를 활짝 편 채, 작은 어금니를 드러내고 있는 용의 모형을 내려다보았다.

  "자, 다 되었군요!" 베그만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제각기 맞서 싸우게 될 용을 뽑았습니다. 용에 붙어 있는 번호는 여러분이 나가게 될 순서입니다. 자, 해리... 잠시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눌까? 밖에서?"

  "그러죠..."

  해리는 어리둥절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베그만과 함께 천막 밖으로 나갔다. 베그만은 조금 떨어진 나무들 사이로 해리를 데려 갔다. 그런 다음에 얼굴 가득히 자상한 미소를 지으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 기분은 괜찮니? 내가 뭐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네? 저는... 아니에요. 없어요."

  "계획은 있니? 내가 약간 조언을 해줘도 괜찮은데...물론 네가 좋다면 말이지. 진심이야." 무엇인가 음모라도 꾸미듯이 베그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너는 여기에서 제일 불리한 입장이잖니, 해리... 무엇이든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베그만이 더욱더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해리는 무례하게 들릴 정도로 재빨리 거절했다. 

  "싫어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해리, 아무도 모를 거다."

  베그만이 눈을 찡끗거리면서 해리를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해리는 왜 사람들에게 자꾸만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이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평소보다 어딘가 안 좋아 보이는 걸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저는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어요. 저는..."

  갑자기 저 멀리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오, 맙소사! 뛰어가야겠군!"

  베그만이 깜짝 놀라면서 마구 달려갔다. 천막으로 돌아오던 해리는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케드릭의 얼굴은 더욱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케드릭의 곁을 지나갈 때, 해리는 행운을 빌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해리는 입에서는 거친 신음 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해리는 플뢰르와 크룸이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관중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울타리가 세워져 있는 운동장으로 들어간 케드릭이 좀 전에 골라 잡은 모형과 똑같이 생긴 살아 있는 용과 대적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해리가 마음 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관중들은 마치 머리는 수백 개나 되지만 몸은 하나인 괴물처럼, 케드릭이 스웨덴 쇼트 스나우트의 앞을 통과하려고 할 때마다 다 함께 비명을 지르고... 함성을 터뜨리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빅터 크룸은 꼼짝도 하지 않고 여전히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케드릭의 뒤를 이어서 천막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베그만의 해설은 모든 것들을 훨씬 더 끔찍하게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듣고 있는 해리의 머리 속에는 온갖 무시무시한 모습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오우! 아슬아슬하게 빗나갔군요, 아주 아슬아슬했어요."

  "잡힐 위험에 처했습니다. 지금 바로!"

  "날쌔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로 소용이 없군요!"

  이렇게 약 15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해리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함성 소리를 들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케드릭이 용을 통과해서 황금알을 붙잡은 것이다.

  "아주 잘했습니다!" 베그만이 소리를 질렀다. "이제 심판으로부터 점수를 받겠습니다!"

  하지만 베그만은 케드릭의 점수가 몇 점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해리는 아마도 심판관들이 점수판을 들어서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한 사람은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이제 세 사람이 남았습니다!" 다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베그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델라쿠르 양! 나오실까요?"

  플뢰르 델라쿠르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어느 때보다 더욱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지팡이를 꽉 움켜쥐고 머리를 똑바로 치켜든 채, 천막을 떠났다. 이제 천막 안에는 해리와 크룸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아서 서로의 시선을 피하려고 애를 썼다. 

  똑같은 과정이 다시 되풀이되었다...

  "오, 별로 현명한 방법인 것 같지 않군요!" 베그만이 신나게 떠들었다. "이런... 아슬아슬합니다! 이제부터 조심해야겠군요... 오, 맙소사! 거의 통과하는 줄 알았습니다."

  10분 후에 해리는 또다시 열광한 관중들이 마구 함성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플뢰르도 성공한 것이 분명했다. 플뢰르의 점수가 집계되는 동안 잠시 휴식 시간이 있고... 요란한 박수 소리와 함께... 세 번째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크룸 군이 나옵니다!"

  베그만이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빅터 크룸은 해리만 홀로 남겨 둔 채, 천막 밖으로 나갔다.

  해리는 평소와는 달리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다.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떨리는 손가락... 동시에 해리는 자신의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서 마치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얀 천막 벽을 바라보며 관중들의 함성을 듣고 있는 듯한 멍한 기분에 빠져 들었다.

  "아주 용감합니다!"

  베그만이 소리를 질렀다. 해리는 중국의 파이어볼이 무시무시하고 날카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관중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크룸 군, 약간 긴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예, 마침내 알을 잡았군요!"

  유리잔이 깨어지는 듯한 요란한 함성 소리가 차가운 겨울 하늘을 마구 뒤흔들었다. 빅터 크룸의 순서도 끝났다. 이제 해리의 차례만이 남았을 뿐이다.

  해리는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다리가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해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기다렸다. 잠시 후에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천막 밖으로 걸어나갔다. 미칠 듯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해리는 나무들 사이를 따라 걸어가다가 울타리 담장으로 들어갔다.

  해리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아주 선명한 꿈만 같았다. 관중석에서는 수백 명의 얼굴들이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운동장 반대편에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알을 품고 있는 헝가리의 혼테일이 있었다. 온통 검은 비늘이 뒤덮인 거대한 용은 날개를 절반 가량 펼친 채, 사악하고 노란 눈으로 해리를 노려보았다.

  혼테일이 독침이 달린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단단한 땅 위에는 길고 깊이 파인 자국이 생겨났다. 관중들은 계속 함성을 질렀다. 해리를 응원하는 것인지 혹은 야유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드디어 해리가 할 일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래, 마음을 집중하자. 전적으로 오직 한 가지에만... 이것이 유일한 기회야...

  해리는 지팡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씨오 파이어볼트!"

  해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해리는 파이어볼트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온몸의 세포가 다 깨어나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주문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빗자루가 오지 않는다면... 해리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리는 투명한 장벽을 통해 주위의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해리르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와 수백 명의 얼굴들이 이상하게 허공을 둥둥 떠다녔다...

  바로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허공을 가르며 빠르게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파이어볼트가 숲 가장자리를 지나서 울타리를 넘어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해리의 옆에 우뚝 멈추어 선 파이어볼트는 주인이 올라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광한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베그만도 목청이 터질 정도로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귀에 들리는 소리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해리는 빗자루 위에 다리를 걸친 후에 힘차게 땅을 박차고 올라갔다. 순식간에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다...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하늘 높이 올라가자, 수많은 관중들의 얼굴이 저 아래에 조그맣게 찍힌 살색 점처럼 보였다. 헝가리의 혼테일도 개 정도의 크기로 작아졌다.

  그 순간 해리는 깨달았다. 단지 땅에서만 멀어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도 멀어졌다는 사실을... 마침내 해리는 자신이 속한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그저 또 다른 퀴디치 게임에 불과할 뿐이야. 그게 전부야... 나는 지금 또 다른 퀴디치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며, 혼테일은 보기 흉한 상대팀 선수일 뿐이야...

  용이 지키고 있는 알의 둥지를 내려다보던 해리는 시멘트 색깔의 여러 알들 중에서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알을 찾아냈다. 그 알은 용의 앞다리 사이에 안전하게 놓여 있었다. 

  "좋아." 해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견제 작전을 쓰는 거야... 가자..."

  해리는 재빨리 밑으로 하강했다. 혼테일의 머리가 해리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었던 해리는 정확히 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방금 몸을 피하기 전까지 해리가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용의 불길이 뿜어졌다...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블러저를 따돌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오, 맙소사! 해리는 지금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관중 틈에서 베그만이 소리를 질렀다. "이 장면을 보고 있나요, 크룸 군?"

  해리는 원을 그리면서 더욱 높이 올라갔다. 혼테일은 아직도 긴 목을 빙빙 돌리면서 해리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계속한다면, 용은 분명히 어지러울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끌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용이 다시 불을 뿜을지도 모른다...

  혼테일이 입을 딱 벌리는 순간, 해리는 갑자기 밑으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로 운이 좋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불길은 벗어날 수 있었지만, 대신 혼테일의 꼬리가 해리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날아왔던 것이다. 간신히 해리가 왼쪽으로 몸을 피했을 때, 기다란 가시들 중에 하나가 그의 옷을 뚫고 어깨를 찔렀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관중석에서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처는 그다지 깊은 것 같지 않았다... 해리는 서두러 혼테일의 등 뒤로 빙 돌아서 날아갔다. 한 가지 가능성이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혼테일은 멀리 몸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알에 대한 보호 본능이 너무나 강했던 것이다. 비록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고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무시무시한 노란 눈으로 줄곧 해리를 뒤쫓아 다니기는 했지만, 용은 알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용을 멀리 끌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알에 접근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속임수를 써야만 한다...

  해리는 재빨리 이쪽저쪽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이 뿜어대는 불길에 닿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지만, 계속 용의 눈길을 끌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협적인 거리를 유지했다. 용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수직으로 찢어진 눈동자로 해리를 감시했다. 날카로운 어금니를 모두 드러낸 채...

  해리는 하늘로 더욱 높이 날아갔다. 혼테일의 머리가 해리를 따라 높이 솟아올랐다. 이제 늘어날 대로 길게 늘어난 용의 목은 마치 최면술사 앞에 서 있는 뱀처럼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해리는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용이 짜증스럽게 울부짖었다. 해리는 지금 용에게 있어서 귀찮은 파리 같은 존재였다. 당장이라도 덥석 삼켜 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용의 꼬리가 다시 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꼬리가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었다... 용은 허공으로 불길을 내뿜었지만, 해리는 살짝 피했다... 용의 아가리가 다시 커다랗게 벌어졌다...

  "자, 어서 덤벼.," 해리는 마치 당장이라도 잡힐 듯이 용의 애를 태우며 속삭였다. "자, 어서! 어서 와서 나를 잡아 봐... 이제 올라오란 말이야..."

  드디어 용이 소형 비행기만큼이나 거대한 검은 가죽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바로 그 순간 해리는 급강하를 했다. 그리고 용이 미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깨닫기도 전에 아니, 해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온힘을 다 하여 전속력으로 땅을 향해서, 이제는 용의 날카로운 앞발로부터 벗어나 있는 알을 향해 날아갔다. 해리가 파이어 볼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황금알을 움켜잡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속력을 내면서 해리는 관중석 위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묵직한 황금알은 상처를 입지 않은 해리의 한쪽 옆구리에 단단히 끼어 있었다. 마치 누군가 갑자기 소리를 높여 놓은 것처럼, 해리는 트리위저드 시합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관중들의 환호성 소리를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월드컵의 아일랜드 응원단들만큼이나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난리였다.

  "저걸 보십시오!" 베그만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보십시오! 우리의 가장 어린 챔피언이 가장 빠른 시간에 황금알을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포터 군이 우승을 차지할 확율이 더욱 높아졌군요!"

  해리는 용의 조련사들이 사나운 기세로 날뛰는 혼테일을 진정시키기 위해 재빨리 달려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맥고나걸 교수와 무디 교수 그리고 해그리드가 해리를 맞이하기 위해 황급히 달려나오고 있었다. 

  해리가 다가가자, 그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들의 환한 미소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관중석 위로 다시 날아올라간 해리는 부드럽게 땅 위에 내려앉았다. 관중들의 요란한 함성이 해리의 귓전을 울렸다. 지난 몇 주일 동안 이렇게 마음이 가벼운 적은 없었다. 첫 번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해리는 살아남았다... 

  "정말 훌륭했다, 포터!"

   해리가 파이어볼트에서 내렸을 때, 맥고나걸 교수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맥고나걸 교수로서는 엄청나게 커다란 칭찬이었다. 해리는 자신의 어깨를 가리키는 맥고나걸 교수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심판들이 점수를 선언하기 전에 먼저 폼프리 부인에게 가도록 해라. 저기로 가거라. 디고리를 치료하는 일은 벌써 끝났을 거야..."

  "우와! 해냈구나, 해리!" 해그리드가 잔뜩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와! 마침내 해내고 말았어! 혼테일과 맞서 싸웠단 말이지. 정말 대단하다! 너도 아다시피 찰리의 말에 따르며 혼테일이야말로..."

  "고마워요, 해그리드."

  해리는 해그리드가 자신에게 미리 용을 보여주었다는 사실을 무심코 누설하지 못하도록 재빨리 큰 소리로 말했다.

  "멋지고 간단하게 해치웠구나, 포터."

  무디 교수가 호통을 치듯이 말했다. 무디 교수도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무디의 마법의 눈은 눈구멍 안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고 있었다. 

  "포터, 지금 당장 응급 처치소로 가거라. 어서..."

  맥고나걸 교수가 재촉했다. 여전히 숨을 헐떡이면서 우리 밖으로 걸어나온 해리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 번째 천막 입구에 서 있는 폼프리 부인을 발견했다.

  "용이라니!"

  폼프리 부인은 해리를 천막 안으로 잡아끌면서 혐오스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천막의 내부는 여러 칸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해리는 칸막이를 통해 케드릭의 그림자를 볼 수가 있었다. 케드릭은 그다지 심하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몸을 일으키고 앉아 있을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폼프리 부인은 해리의 어깨를 살펴보면서 줄곧 화가 나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난 해에는 디멘터더니 올해는 용이란 말이야? 그럼 다음 해에는 학교 안으로 또 어떤 걸 끌어들이겠다는 거야? 너는 아주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상처가 별로 깊지 않구나. 상처를 싸매기 전에 먼저 깨끗이 닦아야겠다..."

  폼프리 부인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코를 찌르는 냄새가 풍기는 보라색 액체로 해리의 상처를 닦았다. 폼프리 부인이 지팡이로 해리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자, 즉시 상처가 낫는 것이 느껴졌다.

  "자, 잠시 동안 가만히 앉아 있거라. 앉아 있어! 조금만 있으면 네 점수를 보러 나갈 수 있을 게다." 폼프리 부인이 부산하게 천막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옆 칸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기분이 좀 어떠니, 디고리?"

  하지만 해리는 가만히 앉아 있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온몸이 흥분으로 잔뜩 들떠 있었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된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미처 천막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두 사람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헤르미온느와 그 뒤를 따라온 론이었다. 

  "해리, 정말 눈부셨어!" 헤르미온느가 목이 메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에는 두려움으로 인해 두 뺨을 꽉 움켜쥐었을 때 생긴 손자국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넌 너무 대단해! 정말이야!" 

  하지만 해리의 눈길은 론에게 머물고 있었다. 론은 마치 해리가 유령이라도 되는 듯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해리." 론은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 잔에 네 이름을 집어넣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는... 나는 그들이 너를 이 시합에 일부러 끌어들이려 했다고 생각해!" 마치 지난 몇 주일 동안에 벌어졌던 일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은 태도였다. 아니, 해리가 챔피언이 된 이후로 론과 처음으로 만나는 것 같았다.

  "이제 알았니?" 해리가 차갑게 대답했다. "아주 오래 걸렸구나."

  두 사람 사이에 서 있던 헤르미온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해리와 론을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았다. 론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머뭇거렸다. 해리는 론이 사과를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득 사과 따위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론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해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그 일은 잊어버려."

  "아니야." 론이 입을 열었다. "나는 꼭 너에게..."

  "그만 잊어버리라니까!"

  해리가 말했다. 그러자 론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해리가 씩 웃었다.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울음을 터뜨렸다. 

  "왜 우는 거야? 울 일이 뭐가 있어?"

  해리가 몹시 당황하면서 물었다. 

  "둘 다 한심한 멍청이야!"

  헤르미온느는 두 발을 구르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해리와 론이 미처 헤르미온느를 달래기도 전에 그녀는 두 사람을 꽉 끌어안더니 이번에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헤르미온느는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천막 밖으로 달려나가 버렸다.

  "제정신이 아니군." 론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해리, 가자. 곧 네 점수가 나올 거야..."

  황금알과 파이어볼트를 집어든 해리는 불과 한 시간 전만 하더라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의기양양한 기분으로 천막을 나섰다. 론은 해리의 옆에 바싹 붙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었다.

  "비교할 필요도 없이 네가 제일 잘 했어. 케드릭은 아주 기괴한 방법을 썼거든. 땅 위에 있는 바위를 변신시켰어... 개로 말이야. 용이 자기 대신에 개를 쫓아가도록 만들려고 했던 거지. 사실 변신술 자체는 제법 괜찮았어.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고 말이야. 어쨌거나 알을 차지하기는 했잖아. 하지만 케드릭은 심한 화상을 입어야만 했지. 개를 쫓아가던 용이 도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케드릭을 쫓아왔던 거야. 케드릭은 그저 달아나기만 했어. 플뢰르, 그 여자애도 비슷한 종류의 마법을 썼어. 그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 용이 곧 졸음에 빠졌거든. 그런데 용이 코를 골기 시작하더니 그만 코에서 불을 뿜어내는 거야. 그 바람에 플뢰르의 치마에 불이 붙었어. 플뢰르는 지팡이에서 물이 나오도록 해서 불을 껐어. 그리고 크룸은... 너는 도저히 믿지 못할 거야. 물론 크룸은 하늘을 날아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크룸은 어떤 주문을 외우면서 곧장 용의 눈을 때렸어. 그저 그렇게만 했을 뿐인데, 용은 고통스럽게 쿵쿵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진짜 알을 절반이나 짓밟아 버렸어. 그렇기 때문에 심판관들이 크룸의 점수를 깎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용의 알에 해를 입혀서는 안 되는 거였거든."

  두 사람이 울타리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론은 비로소 긴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혼테일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없었다. 해리는 황금 휘장이 드리워진 상석에 다섯 명의 심판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심판들이 한 사람씩 점수를 주도록 되어 있어. 10점이 만점이야."

  론이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말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운동장을 내려다보던 해리는 첫 번째 심판인 맥심 부인이 허공으로 지팡이를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맥심 부인의 지팡이 끝에서 긴 은빛 리본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커다랗게 8자를 그려놓았다.

  "나쁘지 않군!" 론이 관중들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네 어깨 때문에 점수를 깎을 거라고 생각했어..."

  다음 차례의 심판은 크라우치였다. 크라우치도 지팡이를 들어올리더니 허공에 9점을 쏘았다.

  "아주 좋은걸!"

  론이 해리의 등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다음은 덤블도어 차례였다. 덤블도어도 9점을 주었다. 관중들은 점점 더 큰 소리로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루도 베그만은 10점을 주었다.

  "10점?" 해리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다. "하지만... 나는 상처를 입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점수를 매기는 거지?"

  "해리, 불평하지마!"

  론이 잔뜩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제 카르카로프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카르카로프는 잠시 동안 망설이더니 지팡이로 점수를 쏘아올렸다. 4점이었다.

  "뭐라구?" 론은 벌컥 화를 내었다. "4점이라구? 이 편파적이고 야비하고 더러운 놈! 크룸에게는 10점을 주고서!"

  하지만 해리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카르카로프가 해리에게 0점을 준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론이 자신의 편을 들어서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 해리에게는 100점보다는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물론 해리는 이런 말을 론에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동장을 떠나는 해리의 마음은 공기보다도 더 가벼웠다. 비단 론만이 아니었다. 관중석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것은 그리핀도르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막상 트리위저드 시합이 열리고 챔피언들이 무엇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지 알게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케드릭뿐만 아니라 해리도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해리는 슬리데린들에 대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슬리데린들이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해리, 네가 공동 선두야! 너하고 크룸이!" 찰리 위즐 리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찰리 위즐리는 학교로 돌아가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허겁지걱 달려온 것이다. "내 말을 들어봐. 나는 빨리 뛰어가야 해. 엄마에게 부엉이를 보내야만 하거든.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 주겠다고 맹세를 했어. 하지만 도저히 믿지 못하실 거야! 아, 참! 그리고 심판들이 너에게 몇 분만 더 남아 있으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어... 베그만 씨가 잠시 할 말이 있다고 챔피언의 천막으로 돌아오라는구나."

  론은 해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해리는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조금 전까지와는 아주 다르게 느껴졌다. 친근하고 반가운 분위기였다. 해리는 혼테일을 피해 다닐 때의 비교를 해보았다...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았다. 기다림의 순간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플뢰르와 케드릭, 크룸이 모두 함께 천막으로 들어왔다. 케드릭의 얼굴 한쪽에는 두꺼운 오렌지색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마도 화상을 치료하는 모양이었다. 케드릭은 해리를 보자 빙그레 웃었다.

  "잘 했어, 해리."

  "너도."

  해리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했어요. 여러분 모두!" 루도 베그만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직접 용 앞을 지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몇 마디만 하겠어요. 여러분은 두 번째 시험이 있을 때까지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게 될 겁니다. 그 시험은 2월 24일 아침 9시 30분에 치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여러 분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겠어요!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황금알을 잘 살펴보면, 그 알을 열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거기... 연결 부분이 있는 게 보이죠? 여러분은 이 알 속에 들어 있는 실마리를 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두 번째 시험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모두 잘 알았나요? 확실하죠? 좋아요. 그럼 어서 가 보세요!"

  천막에서 나온 해리는 다시 론과 만났다. 두 사람은 열심히 재잘거리면서 숲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다른 챔피언들이 어떤 식으로 용과 싸웠는지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잠시 후에 해리가 처음으로 용의 울음 소리를 들었던 덤블 숲을 돌아나왔을 때, 한 마녀가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 마녀는 바로 리타 스키터였다. 오늘은 현란한 초록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손에 들린 속기 깃펜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축하한다, 해리!' 리타 스키터는 해리를 향해 활짝 웃었다. "나와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있겠니? 용과 맞섰을 때, 기분이 어땠니? 지금은 어떻지? 점수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니?"

  "좋아요. 한 마디만 하죠." 해리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해리는 론과 함께 성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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