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장 (69/194)

    제17장 네 명의 챔피언

  그 순간 해리는 그만 경악을 하고 말았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해리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해리의 몸은 완전히 마비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잘못 들었던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불의 잔 속에서 내 이름이 나오다니...

  박수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대신에 성난 벌떼들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마치 차갑게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해리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바라보기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해리는 고개를 들고 선생님들이 앉아 있는 상석을 쳐다보았다. 맥고나걸 교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루도 베그만과 카르카로프 교수 옆을 지나서 덤블도어 교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는 황급히 덤블도어 교수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덤블도어 교수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맥고나걸 교수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 너머로 기다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모두 입을 딱 벌린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 이름을 써 넣지 않았어." 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너희들도 알고 있잖아."

  두 사람도 멍하니 해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상석에 앉아 있던 덤블도어 교수가 맥고나걸 교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똑바로 세웠다. 

  "해리 포터!" 덤블도어 교수가 다시 한 번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해리! 이리로 올라와라!"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등을 살짝 떠밀면서 속삭였다.

  "어서 가."

  자리에서 일어서던 해리는 실수로 옷자락 끝을 밟아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 테이블 사이에 나 있는 좁은 통로를 따라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짧은 거리가 해리에게는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선생님들이 앉아 있는 상석은 단 한 걸음도 가까워지는 것 같지 않았다. 해리를 바라보고 있는 수백 개의 눈동자들이 따갑게 느껴졌다. 마치 그 시선 하나 하나가 해리를 샅샅이 훑어보는 탐조등과도 같았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 흐른 후에, 마침내 해리는 상석으로 올라가 덤블도어 교수 앞에 똑바로 섰다. 해리는 문득 선생님들도 모두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 문으로 나가거라, 해리."

  덤블도어 교수가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는 미소조차 짓고 있지 않았다.

  해리는 선생님들의 테이블을 따라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해그리드는 제일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평소처럼 해리를 향해 윙크를 던지거나 손짓을 하면서 반가움을 표시하지 않았다. 해그리드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해리가 곁을 지나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해리는 연회장의 문을 지나서 마녀와 마법사의 초상화가 벽에 줄지어 걸려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맞은편 벽난로에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해리가 작은 방으로 들어서자, 초상화의 얼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면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바싹 마른 마녀가 초상화 액자 속에서 뛰쳐나오더니 옆에 걸려 있는 초상화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초상화 안에는 팔자 수염을 기르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바싹 마른 마녀는 그 마법사의 귀에 대고 열심히 뭐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빅터 크룸, 케드릭 디고리 그리고 플뢰르 델라쿠르가 벽난로 주위에 모여 있었다. 타오르는 불길 너머로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이상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등을 구부리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크룸은 다른 두 사람들과는 조금 떨어진 채, 벽난로 선반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케드릭은 뒷짐을 지고 불꽃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플뢰르 델라쿠르는 해리가 다가오자,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물었다.

  "무슨 일이징? 우리더러 연회장으로 돌아오라고 하드뇽?"

  플뢰르 델쿠르는 해리가 선생님들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해리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 명의 챔피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문득 세 사람 모두 아주 키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해리의 등 뒤에서 누군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루도 베그만이 방으로 들어왔다. 루도 베그만은 해리의 팔을 잡더니 앞으로 이끌었다.

  "이상한 일이군!"

  베그만은 해리의 팔을 꽉 붙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신사 숙녀 여러분... 좀처럼 믿을 수 없겠지만, 어쨌거나 네 번째 트리위저드 챔피언을 소개하도록 할까요?"

  베그만이 벽난로를 향해 다가오더니 다른 세 사람에게 해리를 소개했다.

  벽난로 선반에 기대고 있던 빅터 크룸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해리를 보자, 지르퉁한 빅터 크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케드릭은 무척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케드릭은 베그만의 말을 잘못 들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베그만과 해리를 자꾸만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하지만 플뢰르 델라쿠르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오, 베그만씨. 종말 재미있능 농담이에용."

  "농담이라니?" 베그만은 어쩔 줄을 모르면서 반문했다. "아니, 아니야. 농담이 아니야. 해리의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왔단다."

  빅터 크룸의 짙은 눈썹이 잠시 붙었다가 떨어졌다. 케드릭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것 같았다. 플뢰르 델라쿠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분명히 착오가 생긴 거예용." 플뢰르 델라쿠르는 거만한 목소리로 베그만에게 말했다. "이 친구능 경쟁 상대가 안돼용. 너무 어려용."

  "글세... 이것 참 놀라운 일이야." 베그만은 한 손으로 부드러운 턱을 문지르면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해리를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다시피, 원래 나이 제한은 더욱 철저한 안전을 위해서 올해에만 특별히 실시된 거예요. 어쨌거나 해리의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왔단 말이죠... 그러니까 내 말은... 이 단계에서 그만둘 수는 없어요. 규칙에 적혀 있는 대로 여러분은 따라야만 해요. 해리는 단지 최선을 다해서..."

  그런데 다시 문이 열리더니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덤블도어 교수가 선두에 있었으며 크라우치씨와 카르카로프 교수, 맥심 부인, 맥고나걸 교수, 스네이프 교수가 그 뒤를 따랐다.

  "맥심 부인!" 플뢰르 델라쿠르는 당장 자기 학교의 교장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죠 사람들이 죠 쪼끄만 남자애도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갈 거라공 말했어용!" 

  이 말을 듣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던 해리의 마음속 어딘가에서 분노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쪼끄만 남자애라고?

  맥심 부인이 거대한 몸을 쭉 펴자, 그녀의 잘생긴 머리 꼭대기가 양초를 가득 꽂아 놓은 샹들리에에 닿았다. 검은 비단으로 둘러싸인 맥심 부인의 커다란 가슴은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죵? 덤블리-도어어르?"

  맥심 부인이 거만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도 무슨 일인지 알고 싶군요." 카르카로프 교수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 교수의 얼굴에는 강철같은 미소가 어려 있었으며,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갑게 빛났다. "호그와트의 챔피언이 두 명이라니? 트리위저드 시합을 주최하는 학교라고 해서 두 명의 챔피언을 내보낼 수 있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혹시 제가 시합 규칙을 자세히 읽어 보지 못한 탓일까요?"

  카르카로프 교수는 짧고 심술궂은 웃음 소리를 내었다.

  "쎄 앵포씨블!(그건 안 될 말이에요)" 맥심 부인은 여러 개의 커다란 오팔 반지가 반짝거리는 거대한 손을 플뢰르 델라쿠르의 어깨 위에 올려놓으면서 거세게 항의했다. "호그와트만 두 명의 챔피언을 내보낼 수는 없어용. 그건 불공평해용."

  "우리는 당신이 제안했던 나이 제한선이 어린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곧 받았습니다, 덤블도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도 당연히 우리 학교 내에서 더욱 폭넓은 후보자들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에는 여전히 냉정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차갑게 빛났다.

  "카르카로프, 그건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오. 모두 다 포터 때문이오. 포터가 규칙을 깨뜨리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덤블도어를 비난할 건 없소. 저 녀석은 이곳에 온 이후로 줄곧 규칙을 어기고 있었으니까..."

  스네이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악의로 번뜩이고 있었다.

  "고맙네, 세베루스. 그만 하게."

  덤블도어가 단호하게 말을 끊자, 스네이프는 곧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앞으로 흘러내린 기름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스네이프의 눈동자는 여전히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가만히 해리를 내려다보았다. 해리는 똑바로 덤블도어 교수를 바라보면서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교수의 눈동자에 떠오르는 표정을 읽으려고 애를 썼다.

  "해리, 네가 불의 잔에 네 이름을 써 넣었니?"

  덤블도어가 조용히 물었다.

  "아닙니다."

  해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모든 사람들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어둠 속에 서 있던 스네이프는 조그맣게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 찬 소리를 내었다.

  "네가 상급 학생에게 불의 잔에 네 이름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니?"

  덤블도어 교수는 스네이프를 무시하면서 계속 물었다. 

  "아니에요."

  해리가 격렬하게 부인했다.

  "아하! 물론 죠건 거짓말이에용!"

  맥심 부인이 소리쳤다. 스네이프는 입술을 말아 올린 채,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해리는 나이 제한선을 넘어갈 수가 없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동의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덤블리-도어어르, 나이 제한선에 무엇인가 실수가 있었던 게 분명해용."

  맥심 부인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물론 그것도 가능한 일입니다."

  덤블도어가 예의 바른 태도로 대답했다.

  "덤블도어 교수님, 교수님께서 절대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은 교수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잖아요!" 맥고나걸 교수는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해리는 절대로 그 선을 넘어갈 수 없었어요. 그리고 덤블도어 교수는 해리가 상급 학생을 설득해서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이렇게 말한 후에 맥고나걸은 스네이프 교수를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크라우치 씨... 배그만 씨." 카르카로프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의 목소리는 다시 간드러지게 변했다. "두 분은 우리의 공정하신 심판관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절대적으로 규칙에 어긋난다는 것에 대해 분명히 동의하시겠죠?" 

  베그만은 난처한 듯이 손수건을 꺼내더니 어린 소년처럼 둥글고 통통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불길이 던지는 둥근 불빛 밖에 서 있는 크라우치를 바라보았다. 

  크라우치의 얼굴은 어둠 속에 절반 가량 가려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약간 으스스하게 보였다. 그의 얼굴을 절반 가량 가리고 있던 어둠은 그를 훨씬 더 늙어 보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골 같은 인상을 풍기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자 평소와 다름없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규칙을 따라야만 합니다. 그리고 규칙에는 분명히 불의 잔에서 이름이 나온 사람은 이 시합에 참가해야만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티는 트리위저드 시합 규칙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꿰뚫고 있답니다."

  베그만은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이 환한 얼굴로 카르카로프와 맥심 부인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우리 학생들의 이름도 다시 제출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카르카로프가 항의를 하고 나섰다. 카르카로프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매끄러운 미소는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다시 한 번 불의 잔을 세우시오. 우리는 각 학교에서 모두 두 명의 챔피언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름을 집어넣겠소. 그것이 유일하게 공정한 방법이오, 덤블도어."

  "하지만 카르카로프, 그럴 수는 없어요. 불의 잔은 조금 전에 꺼졌단 말입니다. 다음 시합이 시작될 때까지는 절대로 다시 타오르지 않을 거요."

  베그만이 머리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런 식이라면 다음 시합에 덤스트랭은 절대 참가하지 않겠소!" 카르카로프가 벌컥 화를 내었다. "그토록 수많은 회의와 협상과 타협을 거쳤는데,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소! 나는 이제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오!"

  "그런 식으로 협박하지 말게, 카르카로프." 갑자기 문이 있는 곳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자네 학교의 챔피언은 떠날 수가 없어. 그는 이미 시합을 시작했으니까... 그들 모두 다 말이야. 덤블도어가 말한 대로 마법의 계약에 묶였단 말이야. 참 편리한 방법이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무디가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디는 절뚝거리면서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오른쪽 발을 옮길 때마다 덜컹하는 육중한 소리가 났다.

  "편리하다니?" 카르카로프가 무디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요, 무디."

  해리는 카르카로프가 마치 무디의 말이 전혀 신경을 쓸 가치가 없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기색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카르카로프의 손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지 않았다. 어느 틈에 단단하게 주먹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무디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아주 간단하다네, 카르카로프. 이름이 불의 잔에서 나오면 반드시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불의 잔에 포터의 이름을 집어넣었지."

  "분명히 어떵 사람이 오그와트에게 사과를 두 번 베어먹을 수 있능 기회를 주고 싶었덩 거예용!"

  맥심 부인이 끼어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맥심 부인. 저는 마법부와 국제 마법사 연맹에 항의서를 보낼 생각..."

  카르카로프는 맥심 부인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했다.

  "이 중에서 정말 불평을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해리 포터야." 무디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군... 나는 해리가 한 마디라도 불평하는 걸 듣지 못했는데..."

  "죠 아이가 왜 불평을 하겠어용?" 플뢰르 델라쿠르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죠 아이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잖아용? 아닌가용? 우리는 선택되기 위해서 몇 주일 또 몇 주일이나 기다렸어용! 우리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용! 그리고 상금으로 받게 될 1000갈레온! 그거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이라동 걸 만한 엄청낭 기회가 아닌가용!"

  "아마도 누군가 포터가 죽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지."

  무디가 최대한 거친 목소리를 감추면서 말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일순 팽팽한 긴장과 침묵이 감돌았다. 

  루도 베그만은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초조하게 발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말했다. 

  "무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우리가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무디 교수는 점심 식사 전에 자신을 살해하려는 여섯 개의 음모를 발견하지 못하면 아침 시간을 헛되이 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카르카로프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이제는 자신의 학생에게 암살을 두려워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가르치는 선생치고는 참 이상한 자질을 갖고 있군요. 물론 덤블도어 선생께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무디 선생을 고용하셨겠지만 말입니다."

  "내가 엉뚱한 상상을 한단 말인가? 헛것을 본다구? 불의 잔에 해리의 이름을 집어넣은 자는 아주 뛰어난 솜씨를 가진 마법사나 마녀가 분명해."

  무디가 호통을 쳤다.

  "무슨 증거가 있나용?"

  맥심 부인이 커다란 손을 들어 올리면서 물었다.

  "아주 강력한 마법의 물건을 현혹시켰기 때문이야! 그 잔을 감쪽같이 속여서 이 시합에는 오직 세 개의 학교만이 참가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도록 하려면, 특별히 강력한 혼동 마법이 필요하지. 나는 아마도 그들이 포터의 이름을 네 번째 학교에 집어넣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어. 그 학교의 후보자는 오직 해리 한 사람밖에 없도록 말이야..."

  무디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당신은 이 일에 대해서 무척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무디." 카르카로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아주 천재적인 이론입니다. 물론 나는 당신이 최근에 생일날 받은 선물 중에 하나가 교묘하게 위장된 바실리스크 알이라는 생각을 품고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여행용 휴대 시계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당신의 주장을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당신은 이해하실 거라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들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하려는 자들이 있는 법이지." 무디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톡 쏘아붙였다. "어쨌거나 어둠의 마법사들이 행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일이라네. 카르카로프, 자네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하겠지만..."

  "앨러스터!"

  덤블도어가 경고하듯이 소리쳤다. 해리는 잠시 동안 덤블도어가 누구를 부른 것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매드아이'가 무디의 진짜 이름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무디는 입을 다물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르카로프를 바라보았다. 카르카로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덤블도어가 그 방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케드릭 해리 두 사람 모두 이 시합에 참가하도록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지만 덤블리-도어어르."

  "친애하는 맥심 부인. 혹시 부인께서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다면, 기꺼이 들어보고 싶군요."

  덤블어는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맥심 부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화가 난 사람은 맥심 부인만이 아니었다. 스네이프도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러나 베그만은 오히려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베그만이 두 손을 비비면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의 챔피언들에게 시험 문제를 내도록 해야죠. 바티, 그 영광스러운 일을 자네가 하겠나?"

  크라우치는 마치 깊은 백일몽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보였다. 

  "좋아. 그래... 첫 번째 시험은..."

  크라우치는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걸어나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자, 해리는 크라우치가 몹시 아픈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눈 밑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으며 종잇장처럼 얇고 창백한 얼굴에는 쪼글쪼글하게 주름이 잡혀 있었다. 퀴디치 월드컵 때와는 영 딴판이었다. 

  "첫번째 시험은 너희들의 담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란다."

  크라우치는 해리 포터와 케드릭 디고리, 플뢰르 델라쿠르, 빅터 크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는 않겠다. 알지 못하는 것을 똑바로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마법사에게 아주 중요한 자질이란다... 그래, 아주 중요하고말고... 첫 번째 시험은 11월 24일에 실시될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 심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다. 챔피언들은 트리위저드 시합중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이나 도움을 요청해서도 안 된다. 챔피언들은 각자 오로지 지팡이만을 몸에 지닌 채, 첫 번째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나면, 두 번째 시험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될 것이다. 많은 요구 사항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시합의 성격상 챔피언들은 학기말 시험에서 제외될 것이다."

  크라우치는 고개를 돌리더니 덤블도어를 바라보았다. "이제 끝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알버스."

  "그런 것 같군."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크라우치를 바라보고 있던 덤블도어가 대답했다. "바티, 정말로 오늘 밤에 호그와트에서 묵고 가지 않겠나?" 

  "아니야, 덤블도어. 서둘러 마법부로 돌아가야만 해. 요즘은 아주 바쁘고 아주 힘든 시기이기 때문이야. 젊은 웨더비에게 일을 맡기고 왔다네... 아주 열성적인 사람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좀 지나치게 열성적이야."

  "그렇다면 떠나기 전에 잠깐 들어가서 한 잔 마시고 가는 게 어떤가?"

  덤블도어가 크라우치를 응시하면서 물었다. 

  "바티, 전 여기에 묵을 거예요." 베그만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티도 아다시피 지금 호그와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훨씬 더 흥미롭거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루도."

  크라우치가 약간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카르카로프 교수, 맥심 부인. 혹시 필요하시면 나이트캡(잠자기 전에 마시는 술: 역주)을 드릴까요?"

  덤블도어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하지만 맥심 부인은 이미 플뢰르의 어깨를 팔로 감싸안은 채, 재빨리 방에서 걸어나가고 있었다. 해리는 연회장으로 향하는 두 사람이 불어로 아주 빠르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르카로프는 조용히 빅터 크룸에게 손짓을 했다. 두 사람은 비록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척 흥분한 상태였다.

  "해리, 케드릭. 어서 침대로 가거라.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덤블도어가 두 사람을 향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리핀도르와 후플푸프는 분명히 너희들을 축하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을 거다. 모처럼 한바탕 소란을 피울 수 있는 훌륭한 핑곗거리가 생겼는데. 그걸 빼앗는다면 부끄러운 일이지."

  해리는 힐끗 케드릭을 쳐다보았다. 케드릭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방을 나섰다.

  연회장은 텅 비어 있었다. 거의 타버린 양초들만이 들쭉날쭉한 미소를 짓고 있는 호박들 안에서 깜박거리는 기괴한 빛을 던져주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또다시 서로 시합을 하게 되었구나!" 

  케드릭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 것 같아."

  해리는 정말로 달리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해리의 머리속은 무언가가 온통 헤집고 지나간 것처럼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자, 이제... 나에게 솔직히 털어놓도록 해."

   연회장 출입문에 도달하자 케드릭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곳에는 불의 잔 대신에 횃불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떻게 네 이름을 집어넣었지?"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야. 나는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어. 거짓말이 아니야."

  해리는 케드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 좋아." 케드릭은 이렇게 말했지만, 해리는 그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보자."

  케드릭은 대리석 계단 위로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 문으로 향했다. 해리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한참 동안이나 케드릭이 돌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천천히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론과 헤르미온느 이외에 누가 해리의 말을 믿어줄까? 혹시 모두들 해리가 이번 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자기의 이름을 써 넣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기보다 3년이나 더 오랫동안 마법 교육을 받았던 다른 경쟁자들과 겨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게다가 아주 위험하다고 알려진 사실을 안다면, 어느 누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물론 해리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해 줄곤 생각하고 있었다..., 공상은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것을 고려해본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해리가 시합에 참가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해리가 확실하게 참가할 수 있도록 손을 써 놓았다. 왜? 해리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 그럴 리는 없었다. 어쩌면...,

  해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면 그들은 거의 소망을 이루게 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해리를 죽이기 위해서라면? 무디는 과연 단순한 편집증 환자일 뿐일까? 어떤 사람이 그저 짖궂은 장난을 치기위해서 속임수로 불의 잔에 해리의 이름을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정말로 해리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해리는 즉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렇다. 분명히 해리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해리가 겨우 한 살이었을 때부터 죽이고 싶어했던 사람... 볼드모트 경. 하지만 볼드모트가 어떻게 해리의 이름이 불의 잔 속에 들어가도록 술수를 부릴 수 있었을까? 볼드모트는 아주 멀리 도망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딘가 먼 나라에서 힘없이 허약해진 몸으로... 혼자 숨어 지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아파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에 해리가 꾸었던 꿈 속에서 볼드모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해리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면서...

  해리는 문득 자신이 벌써 뚱뚱한 여인 앞에 도착한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뚱뚱한 여인의 초상화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해리가 챔피언으로 합세했을 때, 옆에 걸려 있는 다른 초상화 속으로 재빨리 들어 갔던 그 바싹 마른 마녀가 뚱뚱한 여인 옆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일곱 개의 계단 벽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모든 초상화들을 쏜살같이 지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틀림없었다. 바싹 마른 마녀와 뚱뚱한 여인은 호기심에 가득 찬 눈길로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 그래." 뚱뚱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바이올렛이 방금 전에 다 얘기해 줬어. 그래서 결국 학교 챔피언으로 선택된 것은 누구지?"

  "허튼소리."

  해리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만에! 다 알고 있는걸!"

  창백한 얼굴의 마녀가 잔뜩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아니, 아니야. 바이올렛. 그건 통과 암호야."

  뚱뚱한 여인이 바싹 마른 마녀를 달래면서 말했다. 그리고 초상화를 앞으로 열어서 해리가 학생 휴게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초상화가 거의 닫히기도 전에 우레와 같은 함성 소리가 해리의 귓전을 때렸다. 다음 순간, 해리가 아는 것은 수십 개의 손에 붙잡혀서 휴게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학생 전체가 요란한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해리를 맞이했다.

  "네가 나이 제한선을 넘어갔다고 우리에게 말했어야지!"

  프레드가 커다랗게 소리를 질렀다. 프레드는 반쯤은 화가 나고 반쯤은 몹시 감탄한 것 같았다. 

  "수염도 없이 그런 일을 어떻게 했니? 정말 똑똑하다!" 

  조지가 큰소리로 떠들었다.

  "난 하지 않았어.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해리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오, 내가 챔피언이 될 수 없다면, 적어도 그리핀도르가 되어야만 해."

  안젤리나가 와락 해리를 덮쳤다.

  "해리! 지난번 퀴디치 시합에서 케드릭 디고리에게 진 빚을 갚아줄 수 있겠구나!"

  그리핀도르의 또 다른 추격꾼인 케이티 벨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해리, 음식을 준비했어. 어서 가서..."

  "난 배가 고프지 않아. 연회장에서 실컷 먹었어."

  하지만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는 해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혀 축하를 받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리 조던은 그리핀도르의 깃발을 뽑아 와서는 해리의 어깨에 망토처럼 두르라고 고집을 부렸다. 해리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슬쩍 빠져나가려고 할때마다 친구들이 무리를 지어서 해리를 둘러싸고는 억지로 버터 맥주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과자나 땅콩 따위를 해리의 손에 잔뜩 쥐어주었다... 모두들 해리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 어떻게 덤블도어의 나이 제한선을 속이고 넘어갔으면, 감히 불의 잔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나는 하지 않았어" 해리는 거듭 거듭 되풀이하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난 전혀 몰라."

  하지만 친구들은 해리가 단지 대답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만 생각했다.

  "난 피곤하다 말이야!" 거의 30분 정도 지났을 때, 마침내 해리가 고함을 질렀다. "아니야. 정말이야,

조지. 나는 자러 가겠어."

  해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론과 헤르미온느를 만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말짱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휴게실 안에는 없는것 같았다.

  해리는 계단을 가로막으려고 하는 크리비 형제를 거의 납작하게 때려눕히다시피 하면서 자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린 끝에 간신히 친구들을 모두 떼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가능한 빨리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스럽게도 론은 텅 비어 있는 기숙사의 자기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옷은 그대로 입고 있었다.

  "어디 갔었니?"

  해리가 론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어, 안녕."

  론이 반가운 듯이 말했다. 론은 미소를 지어 보이기는 했지만, 억지 웃음처럼 아주 이상하게 보였다. 해리는 문득 리 조던이 어깨에 매어 주었던 진홍색의 그리핀도르 깃발을 아직도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론은 꼼짝도 하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해리가 깃발을 벗으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축하한다."

  마침내 해리가 깃발을 벗어서 구석으로 던지자, 론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축하한다니?"

  해리가 론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론의 미소는 분명히 무엇인가 이상했다. 그것은 차라리 빈정거림에 더욱 가까운 것이었다.

  "글쎄... 아무도 나이 제한선을 넘었던 사람이 없잖아. 프레드와 조지까지도 말이야. 뭘 사용했니? 그 투명 망토?"

  "투명 망토로는 선을 넘을 수가 없어." 해리가 천천히 말했다.

  "오, 그렇구나." 론이 말을 이었다. "만약 투명 망토를 사용한 거라면 네가 나에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어... 투명 망토는 우리 두 사람이 충분히 덮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니? 하지만 너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구나? 그렇지?" 

  "내 말 들어봐. 나는 불의 잔에 내 이름을 적어넣지 않았어. 다른 사람이 그런 짓을 한게 분명해." 해리가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니?"

  론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나도 몰라." 해리가 머리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라고 대답한다면, 너무나 유치한 멜로 드라마처럼 들릴 게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좋아, 하지만 나한테는 진실을 말할 수도 있잖아. 만약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좋아. 하지만 왜 억지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해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않니? 뚱뚱한 여인의 친구인 바이올렛이 이미 우리에게 다 말했줬어. 네가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할 수 있도록 덤블도어가 허락해 주었다며? 1000갈레온의 상금, 그렇지? 게다가 너는 학기말 시험까지 치르지 않아도 되고..."

  론은 머리카락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눈썹을 위로 높이 치켜올렸다.

  "나는 불의 잔 속에 내 이름을 집어넣지 않았어!"

  해리는 차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알았어. 좋아." 론은 케드릭과 똑같이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아침만 해도 너는 지난밤에 그 일을 했어야만 했다고 말했지. 아무도 너를 보지 못했을 거라고... 너도 알잖아. 난 바보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 넌 정말로 멍청이처럼 보여."

  해리가 톡 쏘아붙였다.

  "그래? 해리, 그만 잠을 자고 싶겠구나. 사진을 찍거나 뭐 그런 일을 하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할 테니까 말이야." 

  론의 얼굴에서 억지 웃음의 흔적조차 싹 사라지고 말았다. 론은 침대 기둥에 매달려 있는 커튼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해리는 문가에 서서 가만히 검붉은 벨벳 커튼을 노려보았다.

  그 커튼 뒤에 몸을 숨긴 친구는 반드시 해리의 말을 믿어 줄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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