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용서받지 못할 저주
그 다음 이틀 동안은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네빌이 마법의 약 수업 시간에 냄비를 녹여 버린 일 같은 사소한 사건을 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냄비까지 합치면, 네빌은 벌써 여섯 개나 되는 냄비를 망가뜨린 셈이었다. 여름 내내 새로운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처럼, 스네이프 교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빌을 방과 후에 남겨 놓고 벌 주었다. 결국 네빌은 한 통 가득 담긴 뿔 달린 두꺼비들의 내장을 모조리 꺼낸 후에야, 거의 신경 쇠약 상태가 되어서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돌아왔다.
"스네이프의 기분이 왜 저렇게 더러운지 알지?"
론이 시큰둥하게 해리에게 물었다. 그들은 헤르미온느와 네빌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네빌에게 손톱 밑에 박힌 두꺼비의 내장 찌꺼기를 없앨 수 있는 세척 마법을 열심히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디 교수 때문이지, 뭐"
해리가 대답했다. 스네이프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 자리를 몹시 바라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스네이프는 지난 4년 동안 애를 썼지만 그 자리를 얻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스네이프는 지금까지 근무했던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들을 하나같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매드아이 무디의 경우는 매우 달랐다. 스네치프는 매드아이 무디 앞에서는 증오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이상할 정도로 삼가고 있었다.
사실 해리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식사 시간이나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라도) 볼 때마다 스네이프 교수가 무디 교수의 눈길을(마법의 눈과 정상적인 눈, 둘 다) 애써 피하는 것 같아."
해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디가 스네이프에게 마법을 걸어서 뿔이 달린 두꺼비로 변신시키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봐. 그리고 두꺼비가 지하 교실 안에서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광경을..."
론의 눈빛을 몽롱해졌다. 그린핀도르의 4학년생들은 무디 교수의 수업을 손꼽아 기다렸다.
마침내 목요일이 되자, 점심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실 앞에 길게 줄 서 있었다. 아직 수업 시작종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린핀도르 4학년생들은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교실 앞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빠진 사람은 헤르미온느 뿐이었지만, 종이 울리고 수업이 시작되자, 헤르미온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난..."
헤르미온느가 숨을 헐떡이면서 말했다.
"물론 도서관에 처박혀 있었겠지. 자, 어서 서둘러! 그렇지 않으면 앞자리에 앉지 못할 거야."
해리는 재빨리 헤르미온느의 말을 받아넘겼다. 그들은 교탁 바로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어둠의 힘: 자기 방어를 위한 지침서>라는 책을 꺼내 놓고 평소와는 달리 조용하게 기다렸다.
곧이어 복도를 걸어오는 무디 교수의 둔탁한 발소리가 드렸다. 무디 교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이하고 무서운 표정이었다. 학생들은 쇠갈고랑이 달린 무디 교수의 목발이 기다란 옷자락 밑으로 불쑥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건 모두 치우도록 해라." 무디 교수는 교탁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 책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필요없어."
무디 교수가 의자에 앉으면서 무뚝뚝하게 말했다. 학생들은 재빨리 책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론은 굉장히 흥분한 것 같았다.
무디 교수는 출석부를 꺼낸 후에 머리를 약간 흔들어서 일그러진 흉터 투성이의 얼굴 위로 흘러내린 잿빛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무디 교수의 정상적인 눈은 출석부의 이름을 차례차례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법의 눈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대답하는 학생들의 얼굴을 한 명씩 확인했다.
"좋다." 마지막 학생의 출석까지 확인하고 나자 무디 교수가 말했다. "나는 루핀 교수에게서 이 학급에 대한 편지를 받았다. 너희들은 어둠의 생물과 어떻게 맞싸워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아주 철저한 기초 지식을 갖게 된 것 같더구나. 보가트와 레드 캡과 힝키펑크와 그라인딜로우와 카파와 늑대인간을 다루었지? 내 말이 맞나?"
교실 여기저기에서 그렇다는 뜻으로 낮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드렸다.
"하지만 저주에 관해서는 진도가 많이 뒤쳐진 것 같구나.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마법사들이 서로에게 어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지 간략하게나마 알려 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나는 딱 1년 동안만 너희들에게 어둠의 마법을 다루는..."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계속 계시지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론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불쑥 물었다.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이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론은 잔뜩 겁에 질려 어깨를 움츠렸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무디 교수가 미소짓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온통 흉터 투성이인 무디 교수의 얼굴이 더 흉측하게 뒤틀리며 일그러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소를 짓는 우호적인 행동을 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커다란 안도감을 주었다. 론도 마음을 놓는 기색이었다.
"네가 아서 위즐리의 아들이구나, 응?" 무디 교수가 말했다. "네 아버지가 며칠 전에 궁지에 몰린 나를 구해 주었지... 그래, 나는 딱 1년 동안만... 그런 다음에는 다시 조용한 은퇴 생활로 돌아갈 거란다."
무디는 시끄럽게 껄껄 웃더니 울퉁불퉁한 손으로 탁 박수를 쳤다.
"좋다. 이제부터 수업을 시작하겠다. 저주, 그것은 강도와 형태에 있어서 아주 다양하다. 현재 마법부 규칙에 따르면, 나는 너희들에게 저주를 막는 방법에 대해서만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너희들이 6학년이 될 때까지는 금지된 어둠의 저주가 어떤 건지 가르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나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그런 저주들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너희들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셨다. 그리고 너희들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어차피 맞서야 할거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알수록 좋다고 판단하셨다. 사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겠느냐? 어둠의 마법사가 너희들에게 먼저 어떤 저주를 사용할 건지 알려줄 것 같으냐? 너희들이 면전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저주를 내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너희들은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항상 경계하면서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 좀 치워라, 브라운 양. 내가 말하고 있을 때에는..."
라벤더 브라운은 깜짝 놀라면서 얼굴을 붉혔다. 라벤더는 책상 밑으로 몰래, 완성된 별점 지도를 패르바티 패틸에게 살며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은 등 뒤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단단한 나무도 꿰뚫어볼 수 있는 게 분명 했다.
"좋다... 어둠의 저주를 사용한 마법사는 마땅히 마법사법에 의해 벌을 받게 된다. 그중 가장 심한 중벌을 받게 되는 저주는 어떤 것일까? 혹시 알고 있는 사람?"
론과 헤르미온느를 포함한 몇 명의 학생들이 손을 들어올렸다. 무디 교수가 론을 지적했다. 하지만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은 여전히 라벤더를 주목하고 있었다.
"저... 우리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임페리우스 저주나 뭐 그런 게 아닐까요?"
론이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아, 그래." 무디 교수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도 그 저주를 알고 계실 거야. 오래 전에 마법부가 그 임페리우스 저주 때문에 엄청난 곤경에 처한 적이 있었으니까..."
무디 교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힘겹게 느릿느릿 일어났다. 그리고 교탁 서랍을 열더니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속에는 커다란 거미 세 마리가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해리는 론이 몸을 움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론은 거미를 굉장히 무서워했다.
무디 교수는 유리병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검은색 거미 한 마리를 꺼냈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그 거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는, 거미에게 요술지팡이를 살짝 갖다대면서 중얼거렸다.
"임페리오!"
갑자기 거미가 무디 교수의 손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거미는 가느다란 거미줄을 타고 마치 그네를 타는 것처럼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를 쭉 뻗어 빙 돌아 넘더니 줄을 끊고 다시 교탁 위에 내렸다. 그 다음에는 옆으로 재주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로 툭 치자, 이번에는 그 거미가 뒷다리로 서서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교실을 온통 웃음 바다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무디 교수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재미있는가?" 무디 교수가 버럭 호통을 폈다. "만약 내가 너희들에게 임페리우스 저주를 건다면, 그래도 좋겠느냐?"
갑자기 웃음 소리가 뚝 그쳤다.
"완전한 지배! 완전한 조종!"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거미는 이제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더니 데굴데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 거미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게 할 수도 있고 물에 빠져서 죽게 할 수도 있고 너희들의 목구멍 속으로 기어 들어가도록 할 수도 있다..."
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여러 해 전에는 임페리우스 저주로 조종되는 마녀와 마법사들이 많이 있었다." 무디 교수가 느릿느릿 설명했다. 해리는 무디 교수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무디 교수는 볼드모트가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던 때를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조종받고 있으며, 누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마법부의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임페이루스 저주는 저항할 수 있다. 나는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그 방법을 가르쳐 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다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임페리우스 저주를 받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항상 주위를 경계할 것!"
무디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학생들은 모두 깜짝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디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재주넘기를 하는 거미를 집어 다시 유리병 속에 넣었다.
"또 아는 사람? 또 다른 금지된 저주는 어떤 게 있나?"
헤르미온느의 손이 다시 번쩍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네빌도 손을 들었다. 그건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네빌이 자발적으로 발표를 하는 과목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약초학 시간뿐이었던 것이다. 네빌도 자신의 대담한 행동에 약간 놀란 것 같았다.
"그래?"
마법의 눈이 빙글 돌더니 네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나 있어요. 크루시안투스 저주요."
네빌이 작지만 분명하게 대답했다. 무디 고수의 정상적인 눈도 네벨을 향하고 있었다. 무디 교수의 두 눈이 모두 뚫어질 정도로 네벨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 이름이 롱바텀이냐?"
무디 교수가 마법의 눈으로 출석부를 확인하면서 물었다. 네빌은 불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디 교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디 교수는 다시 전체 학급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유리병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무디 교수는 재빨리 다른 거미를 잡아서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거미는 잔뜩 겁에 질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는..." 무디 교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잘 이해할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이 거미가 좀 더 커야겠군." 무디 교수는 요술지팡이를 거미에게 살짝 갖다댔다.
"잉고르지오!"
무디 교수가 주문을 외우자마자, 거미가 마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 거미는 타란툴라 거미보다도 더욱 커졌다. 론이 체면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채, 허둥지둥 의자를 뒤로 빼더니 무디 교수의 탁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았다.
무디 교수는 요술지팡이를 다시 들어 올리더니 거미를 겨냥했다.
"크루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미의 다리들이 이상한 각도로 구부러졌다. 거미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무섭게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거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해리는 만약 거미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마도 소름끼치는 비명을 질렀을 거라고 확신했다. 무디 교수는 계속 거미에게 요술지팡이를 갖다대고 있었다. 그 거미는 한층 더 격렬하게 몸을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그만 하세요!"
헤르미온느가 날카롭게 외쳤다. 해리는 재빨리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거미가 아니라 네빌을 보고 있었다. 해리도 얼른 네빌을 쳐다보았다. 네빌은 공포에 질린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책상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비록 거미의 구부러진 다리가 풀리긴 했지만, 경런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리듀시오!"
무디 교수가 중얼거리자, 거미는 다시 원래의 크기대로 오그라들었다. 무디 교수는 그 거미를 다시 유리병 속에 집어넣었다.
"아주 고통스럽단다." 무디 교수가 건조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할 수 있으면, 굳이 손가락을 조이는 틀이나 칼 따위를 써서 고문할 필요가 없단다. 물론 한때는 이 저주도 아주 흔하게 사용되었지. 좋아... 또 다른거 아는 사람?"
해리는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교실을 둘러보았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들 마지막 거미에게 과연 어떤 일이 생길지 몹시 궁금한 표정이었다. 헤르미온느는 또다시 손을 들었다. 불쑥 올라간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저주인가?"
무디 교수가 헤르미온느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아바다 케다브라요."
헤르미온느가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작게 대답했다. 론을 비롯한 몇 명의 학생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아..." 무디 교수가 축 처진 입술을 비틀면서 또다시 웃었다. "그래! 최후의 저주이자, 최악의 저주이기도 하지. 아바다 케다브라... 살인 저주!"
무디 교수가 손을 유리병 속으로 집어넣자, 세 번째 거미는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라도 하듯 그의 손가락을 피해 미친 듯이 달아났다. 무디 교수는 단번에 그 거미를 잡아서 교탁 위에 올려놓았다.
무디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해리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면서 오싹 소름이 끼쳤다.
"아바다 케다브라!"
무디 교수가 주문을 외워다. 초록빛 섬광이 눈부시게 번쩍 빛나더니 쉭 소기가 들렸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뭔가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거미는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거미의 몸은 아무런 상처 없이 멀쩡했다, 죽었다! 거미가...
잔뜩 겁에 질린 여학생 몇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거미가 주르륵 미끄러지자, 론은 황급히 뒤로 물어나다가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무디 교수는 교탁 위에 놓여 있는 죽은 거미를 손으로 휙 쓸어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좋지 않아." 무디 교수가 냉정하게 말했다. "전혀 유쾌하지 않지. 이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주문은 없다. 이 주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이미 알려진 딱 한 사람만이 그 저주를 당하고도 살아 남았고, 그 사람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
해리는 무디 교수의 눈들이(두 눈 모두) 자신을 빤히 응시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다른 학생들도 모두 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는 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텅 빈 칠판을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사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바로 저렇게 죽은 것이다... 바로 저 거미처럼... 그들도 흠집 하나, 상처 하나 나지 않았을까? 그들의 몸에서 생명의 빛이 꺼지기 전에, 그들은 그저 번쩍하는 초록빛 섬광을 보고 죽음을 예감했을까?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죽음을 느끼면서?
해리는 부모님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그날 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3년 전에 처음 알게 된 이후부터, 줄곧 부모님이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상상하곤 했다.
부모님의 소재를 알게 된 웜테일은 그 사실을 볼드모트에게 밀고했고 볼드모트는 부모님의 집으로 찾아갔다. 볼드모트는 먼저 아버지를 죽였다. 제임스 포터는 아내에게 해리를 데리고 달아나라고 소리치면서 볼드모트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볼드모트는 릴리 포터에게 다가가서 해리를 죽일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서라고 했다...
릴리 포터는 아들을 온몸으로 가린 채, 차라리 자기를 대신 죽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볼드모트는 릴리 포터까지 처참하게 살해했다. 그리고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려 해리를 겨냥했다...
해리는 이러한 모든 장면을 상세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지난 해 디멘터들과 싸울 때, 부모님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디멘터들이 가진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희생자로 하여금 평생 동안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무기력한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는 것...
무디 교수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지만, 해리의 귀에는 마치 꿈 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애써 다시 현실로 돌아온 해리는 무디 교수가 하는 말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아바다 케다브라는 아주 강력한 마법의 힘을 필요로 하는 저주다. 너희들 모두 지금 당장 요술지팡이를 꺼내서 나를 향해 그 저주의 주문을 외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내가 코피나 흘릴지 모르겠다.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너희들에게 그 저주를 행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건 아니니까... 자, 만약 대응할 마법이 없다면, 내가 왜 너희들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 주는지 궁금하겠지? 왜냐하면 너희들이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최악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올바르게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그런 저주를 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주위를 경계할 것!"
무디가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자, 학생들은 또다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 세 가지 저주들-아바다 케다브라, 임페리우스 그리고 크루시아투스는 용서받지 못할 저주로 알려져 있다. 이 저주들 가운데 하나라도 인간에게 사용했다간 아즈카반에서 종신형을 보내기에 딱 알맞지. 이게 바로 너희들이 맞서야만 할 것들이다. 그리고 내가 바로 너희들에게 싸우도록 가르치는 것이기도 하지. 너희들은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희들은 끊임없이... 절대로 멈추지 말고 철저히 경계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깃펜을 꺼내서... 받아 적도록 해라..."
학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용서받지 못할 저주들에 대한 설명을 하나 하나 받아 적었다. 종이 울릴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무디 교수가 학생들을 내보내자, 교실 밖으로 나온 학생들은 봇물이라도 터진 것처럼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놀라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 저주에 대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너 그게 경련 일으키는 거 봤니?"
"무디가 그걸 죽였을 때 말이야,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죽일 수 있지?"
아이들은 그 수업이 마치 굉장한 쇼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게 재미있는 수업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것은 헤르미온느 역시 마찬가지였다.
"빨리 와."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재촉했다.
"설마 저 지긋지긋한 도서관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론이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야." 헤르미온느가 손을 들어 복도 한쪽을 가리키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빌 때문이야."
복도 중간에 혼자 가만히 서 있던 네빌은, 무디 교수가 크루시아투스 저주를 보여주었을 때처럼 공포에 질린 눈을 부릅뜨고 맞은편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네빌?"
헤르미온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자 네빌이 고개를 돌렸다.
"어, 안녕. 참 재미있는 수업이었어, 그렇지? 저녁식사가 뭘까 궁금해. 나... 난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야. 넌 안 그러니?"
네빌이 평소보다 훨씬 더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빌, 너 괜찮니?"
헤르미온느가 걱정이 돼서 물었다.
"아, 물론이지. 난 괜찮아." 네빌은 여전히 부자연스럽게 들뜬 목소리로 지껄였다. "아주 재미있는 저녁... 아니, 그러니까... 수업이었어. 저녁 식사에는 뭐가 나올까?"
론은 놀란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네빌, 도대체... 무슨 말을?"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쿵쿵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무디 교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네 사람은 말을 뚝 멈추고 두려운 표정으로 무디 교수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무디 교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무디 교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낮고 부드러웠다.
"괜찮다, 애야." 무디가 네빌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 사무실로 올라갈래? 자... 차나 한 잔 하자꾸나..."
네빌은 아까보다 훨씬 더 겁에 질린 것 같았다. 무디 교수와 단 둘이서 차를 마시다니... 네빌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넌 괜찮니, 포터?"
무디 교수의 마법의 눈이 해리에게 향했다.
"네."
해리는 공포를 이기려는 듯 거의 도전적으로 말했다. 무디 교수의 파란 눈동자가 마치 해리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것처럼 약간 흔들렸다.
"너도 알아야만 했다. 어쩌면 가혹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알아야만 해. 모르는 척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 무디 교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 어서, 롱바텀.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 내게 몇 권 있단다." 무디 교수는 네빌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네빌은 마치 애원하는 듯한 표정으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네빌은 무디 교수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저러는 거지?"
론이 모퉁이를 돌아가는 네빌과 무디 교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모르겠어."
헤르미온느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어쨌거나 정말 굉장한 수업이었어, 그렇지?" 연회장으로 가는 동안, 론이 해리에게 말했다. "프레드와 조지 형의 말이 맞았어. 무디 교수님은 정말로 그 방면의 전문가야. 안 그래, 해리? 무디 교수님이 아바다 케다브라 저주를 내렸을 때... 거미가 그냥 죽어 버렸잖아. 한 방에 말이야..."
하지만 해리의 표정을 보자, 론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연회장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트릴로니 교수의 점술 숙제를 하려면 적어도 몇 시간은 걸릴 테니까 오늘 밤부터 당장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헤르미온느는 해리와 론의 대화에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그저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곧 헤르미온느는 후딱 식사를 끝마치더니 벌떡 일어나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해리와 론은 천천히 그리핀도르 탑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해리가 먼저 용서받지 못할 저주에 대해 말을 꺼냈다. 사실 저녁 식사 내내, 해리의 머리 속에는 오직 그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그 저주들을 봤다는 사실을 알면, 무디 교수와 덤블도어 교수가 마법부와 말썽이 나지 않을까?"
뚱보 여인을 향해 다가가면서 해리가 물었다.
"하긴, 그렇겠지."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님은 항상 자기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분이고, 무디 교수님으로 말하자면 이미 오래 전부터 골칫거리였어. 항상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분이니까... 쓰레기통 사건만 보더라도 알 수 있잖아. 허튼소리."
뚱보 여인의 초상화가 앞으로 확 열리면서 입구가 드러났다. 그들은 그리핀도르 학생 휴게실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학생 휴게실이 매우 북적거렸다.
"점술 숙제를 하는데 필요한 물건들을 가지고 올까?"
해리가 말했다.
"그래야겠지."
론이 희미하게 끙끙거리며 대답했다. 두 사람은 책과 차트를 챙기기 위해 서둘러 기숙사로 올라갔다. 네빌은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디 교수의 수업이 끝났을 때 보다는 훨씬 더 침착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도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지는 않은 듯했다. 네빌의 눈은 약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괜찮니, 네빌?"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이야. 난 괜찮아. 고마워, 해리. 무디 교수님이 빌려주신 책을 읽고 있어..." 네빌은 <지중해의 신비한 수초들과 그 특성>이라는 책을 들어 올렸다.
"스프라우트 교수님이 무디 교수님에게 내가 약초학을 잘한다고 말했나 봐."
네빌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 해리는 지금까지 네빌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무디 교수님이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걸 보면 말이야."
무디 교수가 스프라우트 교수의 말을 네빌에게 한 것은, 네빌의 기운을 돋우기 위한 아주 적절한 방법이라고 해리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네빌은 지금까지 뭔가를 잘한다는 칭찬을 거의 들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핀 교수라도 그런 식으로 했을 것이다.
해리와 론은 <미래의 운세> 책을 들고 다시 학생 휴게실로 내려갔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서 다음달에 발생할 사건을 예언하는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잡다한 계산과 상징들이 적힌 양피지 조각만이 잔뜩 널려 있을 뿐이었다. 해리의 머리는 마치 트릴로니 교수의 벽난로에서 흘러나온 향기를 듬뿍 들이마신 것처럼 몽롱했다.
"나는 이런 것들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해리가 길고 복잡한 계산 공식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말했다.
"있잖아, 해리. 아무래도 옛날식 점술 방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론이 입을 열었다. 짜증이 날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기 때문에 론의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뭐야? 거짓말로 꾸며내자는 말이니?"
"그래."
론은 테이블 위에 마구 흩어져 있는 종이들을 몽땅 치워 버렸다. 그리고 펜을 잉크에 푹 담갔다가 꺼내더니 중얼거리며 뭐라고 적기 시작했다.
"다음 월요일에는... 화성과 목성의 불길한 위치 때문에 감기에 걸릴 것이다."
론은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해리를 쳐다보았다.
"너도 그 교수님을 잘 알잖아. 그저 불길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으면... 트릴로니 교수님은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거야."
"그래, 네 말이 맞아." 해리는 지금까지 썼던 숙제를 아무렇게나 구겨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1학년생들의 머리 위로 휙 던졌다. 양피지는 벽난로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좋았어! 월요일에... 나는... 음... 화상을 입는 위험에 처할 거야."
"그래, 그럴 거야. 우리는 월요일에 스크루트를 다시 만나게 될 거잖아. 좋아. 화요일에는... 음..."
론이 음울한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재산을 잃어버리게 된다."
해리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미래의 운세> 책장을 휙휙 넘겼다.
"아주 좋은데?" 론은 그 말을 그대로 베껴 썼다. "음... 너는... 수성 때문에...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을 찍힌다고 하면 어떨까?"
"그래! 멋진 말이야..." 해리도 신이 나서 그대로 휘갈겨 썼다. "왜냐하면... 금성이 황도 십이궁 가운데 열두 번째 별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아마... 싸움을 하다가 크게 얻어터질 거야."
"이런! 나도 싸움을 한다고 쓸 생각이었는데... 좋아. 그렇다면 나는 내기에서 진다고 해야겠다."
"그래, 너는 당연히 내가 싸움에서 이기는 쪽에 걸 테니까 말야..."
해리와 론은 한 시간 동안이나 예언을 짜 맞추는(그 예언은 점점 더 비극적이 되었다)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하나 둘씩 침실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 휴게실은 점점 한산해졌다.
크룩생크가 그들에게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더니 빈 의자 위로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리고 아주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해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헤르미온느가 지었을 꼭 그런 표정이었다.
해리는 아직까지 쓰지 않은 불운이 뭐 없나 고민하면서 학생 휴게실을 빙 둘러보았다. 문득 맞은편 벽에 기대앉아 깃펜을 빼들고 머리를 맞댄 채, 양피지 조각 한 장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프레드와 조지의 모습이 보였다. 프레드와 조지가 한쪽 구석에 숨어서 뭔가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한 장난을 치거나 다른 사람의 이목을 끌 만한 아주 떠들썩한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프레드와 조지가 뭔가 비밀스러운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는 쌍둥이 형제가 버로우에 있을 때에도 뭔가를 함께 쓰면서 나란히 앉아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 을 위한 또 다른 주문 용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만약 그런 일이었다면, 프레드와 조지는 분명히 그 장난에 단짝 친구 리 조던도 끼워 주었을 것이다. 해리는 혹시 트리위저드 시합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는 물끄러미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갑자기 조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깃펜으로 뭔가를 좍좍 지웠다. 그런 다음 아주 나지막하게 프레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학생 휴게실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에 해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안 돼! 그렇게 쓰면... 마치 우리가 그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리잖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때 주위를 둘러보던 조지의 눈이 해리와 딱 마주쳤다. 해리는 씩 미소를 지은 후 얼른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숙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엿듣고 있다는 오해를 살까 봐서였다. 잠시 후에 쌍둥이 형제는 양피지를 둘둘 말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해리와 론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한 후에 곧장 기숙사로 올라갔다.
10분 정도 지나자 초상화 구멍이 살며시 열리더니 헤르미온느가 학생 휴게실로 들어왔다. 헤르미온느는 한 손에는 양피지 다발을, 다른 한 손에는 작은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 상자 속에는 뭐가 들었는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가닥달가닥 하는 소리가 들렸다. 크룩생크가 갸르릉거리면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안녕. 이제 막 끝마쳤어!"
헤르미온느가 활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나도!"
론이 깃펜을 던지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안락의자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 앉으면서 론의 점술 숙제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별로 좋은 달이 아니구나. 그렇지?"
헤르미온느가 비꼬며 말했다. 크룩생크가 헤르미온느의 무릎 위로 뛰어오르더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래. 하지만 적어도 미리 알게 되었으니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
론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너는 두 번이나 익사할 모양이구나?"
헤르미온느가 론의 예언을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가? 이런... 둘 중에 하나를 미친 듯이 날뛰는 히포그리프에게 짓밟히는 걸로 바꿔야겠어."
론은 당황하면서 점술 숙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거짓으로 작성했다는 게 너무나 뻔히 보이는 것 같지 않니?"
"무슨 말씀!" 론이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꼬마 집요정들처럼 죽도록 공부하고 있었는데!"
헤르미온느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론을 흘겨보았다.
"그저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론이 다급하게 손을 흔들면서 변명했다.
해리는 참수형을 당해서 죽게 될 운명이라는 예언으로 끝을 맺은 후에 깃펜을 내려놓았다. 마침내 점술 숙제를 모두 끝낸 것이다.
"그 상자 속에 있는 게 뭐야?"
해리가 손가락으로 상자를 가리켰다.
"때마침 잘 물었어."
헤르미온느가 험악한 얼굴로 론을 쏘아보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자 속에는 50개 정도의 배지가 들어 있었는데, 색깔은 서로 달랐지만 하나같이 'S. P. E. W.' 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도대체 뭘 먹고 토한다는('spew' 라는 단어는 '토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역주) 거니? 이게 도대체 뭐야?"
해리가 배지를 하나 집으며 물었다.
"토하는 게 아니야. 그건 S-P-E-W야. '꼬마 집요정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모임(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Elfish Welfare)' 이라는 뜻이지."
헤르미온느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런 모임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론이 물었다.
"당연히 들어 본 적이 없겠지. 내가 이제 막 시작한 모임이니까..."
헤르미온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회원이 몇 명이나 되는데?"
론이 약간 놀라며 물었다.
"글쎄... 만약 너희 둘이 가입한다면... 세 명."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너는 우리가 '토하다' 라고 적힌 배지를 달고 돌아다닐 것 같니, 응?"
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S. P. E. W.라니까!" 헤르미온느가 잔뜩 골이 나서 소리쳤다. "나는 처음에 S. O. A. O. F. M C. C. C. T. L. S.(Stop the Outrageous Abuse of Our Fellow Magical Creatures and Campaign for a Change in Their Legal Status)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했어. '우리의 친구인 신비한 생물에 대한 부당한 학대 방지와 그들의 법적 신분 변화를 위한 캠페인' 이라는 뜻으로 말이야. 하지만 공간이 좁아서 다 쓸 수가 없었어. 그러니까 S. P. E. W.가 우리 모임의 이름이야."
헤르미온느는 양피지 다발을 그들의 코앞에 대고 흔들었다. "나는 그 동안 도서관에서 철저히 조사했어. 꼬마 집요정의 노예화는 수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어. 지금까지 아무도 정식으로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울 뿐이야."
"헤르미온느! 내 말을 똑똑히 들어. 집요정은... 그것을... 좋아한단 말이야! 그들은 노예로 지내는 걸 좋아한다구!"
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의 단기 계획은..." 헤르미온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론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꼬마 집요정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보장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의 장기 계획은 '요술지팡이 사용 불가' 에 대한 법률을 바꾸고, 꼬마 집요정 가운데 한 명을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 에 들어 가도록 하는 거야. 왜냐하면 꼬마 집요정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야."
"그런데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다 처리하지?"
해리가 물었다.
"회원을 모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돼." 헤르미온느는 기뻐하며 말했다.
"회원 가입비를 2시클로 정했어. 배지를 구입하는 값이야. 그 수익금으로 전단 캠페인 기금을 마련하는 거지. 론, 회계는 네가 맡도록 해. 이따가 너에게 모금통을 줄게. 그 모금통은 지금 위층에 있거든 그리고 해리, 너는 우리 모임의 간사야. 그러니까 너는 첫 모임에 대한 기록으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적어 두고 싶을지도 모르겠구나."
헤르미온느는 잠시 입을 다물고 해리와 론을 바라보면서 활짝 미소를 지었다. 해리는 헤르미온느 때문에 분통이 터지면서도 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너무나 우스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론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꽉 막힌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누군가 정적을 깨뜨렸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텅 빈 학생 휴게실을 두리번거리던 해리는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창틀에 눈처럼 하얀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헤드위그!"
해리가 외쳤다. 그리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창가로 걸어가서 창문을 열었다.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헤드위그는 탁자에 놓인 해리의 점술 숙제 위에 내려앉았다.
"이제 돌아왔구나."
해리는 서둘러 부엉이에게 다가갔다.
"답장을 갖고 왔어!"
론이 헤드위그의 다리에 묶여 있는 더러운 양피지 조각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말했다.
해리는 재빨리 헤드위그의 다리에 매달린 편지를 풀었다. 해리가 열심히 편지를 읽고 있는 동안, 헤드위그는 해리의 무릎 위에 살며시 내려앉더니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부엉부엉 부드럽게 울어댔다.
"뭐라고 써 있니?"
헤르미온느가 숨을 죽이며 물었다. 시리우스의 답장은 매우 짧았고 아주 급하게 휘갈겨 쓴 것처럼 보였다. 해리는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해리
지금 나는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단다. 너의 흉터에 관한 소식은 내가 이곳에서 들은 이상한 소문들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들은 거란다. 만약 흉터가 다시 아프면, 곧장 덤블도어 교수를 찾아가거라. 덤블도어가 은퇴한 매드아이를 학교로 불렀다는 소문이 있더구나.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덤블도어는 그 징조들을 읽었다는 뜻이란다.
곧 연락하마. 론과 헤르미온느에게도 안부 전해 주거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항상 경계하도록 해라, 해리.
시리우스
해리는 고개를 들고 론과 헤르미온느를 쳐다보았다. 그들도 해리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시리우스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있다구? 그렇다면 돌아오고 있는 걸까?"
헤르미온느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덤블도어 교수가 무슨 징조들을 읽었다는 거야? 해리... 왜 그래?"
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해리가 주먹으로 자신의 이마를 내리쳤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헤드위그는 중심을 읽고 비틀거리다가 그만 해리의 무릎에서 뚝 떨어지고 말았다.
"시리우스에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해리가 미친 듯이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무슨 말이야?"
론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내가 경솔하게 말을 했기 때문에 시리우스가 돌아오고 있는 거야!" 해리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헤드위그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론의 의자 등받이 위에 내려앉았다. "시리우스가 돌아오고 있는 건 내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정작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난 네게 줄 게 아무것도 없어." 해리는 먹이를 기대하면서 부리를 딸깍거리고 있는 헤드위그를 쳐다보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뭘 먹고 싶으면 당장 부엉이장으로 올라가!"
헤드위그는 몹시 성이 나서 인상을 팍 쓰더니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해리의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런 다음 열린 창문으로 날아가 버렸다.
"해리..."
헤르미온느가 해리를 달래기 위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난 이만 올라가서 잘래." 해리가 짤막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 보자."
이층 기숙사로 올라간 해리는 서둘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만약 시리우스가 덜컥 잡히기라도 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해리의 잘못이었다. 왜 가만히 입 다물고 있지 않았을까? 이마의 흉터는 아주 잠깐 아팠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주책없이 지껄이다니... 그냥 나 혼자 알고 있어야 했는데... 사리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잠시 후에 론이 기숙사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해리는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한참 동안 해리는 커튼이 쳐진 침대에서 어두운 천장을 올려다보며 드러누워 있었다. 방은 아주 조용했다. 만약 해리가 다른 생각에 몰두하지만 않았다면, 아직까지 잠들지 못한 사람이 비단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들리던 네빌의 코고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