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트리위저드 시합
마침내 호그와트 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날개 달린 멧돼지 상이 교문 양쪽에 턱 버티고
있었다. 교문을 통과한 마차들은 넓은 도로를 따라 굴러가고 있었다. 돌풍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불어닥칠 때마다 마차는 위태롭게 흔들렸다. 해리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점점 더 가까워지는 호그와트 성을 바라보았다. 불이 환하게 밝혀진 수많은 창문들이
줄기차게 퍼붓는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반짝거렸다. 마차가 커다란 오크 문 앞 돌계단
아래 우뚝 멈춰 섰다.
그 순간 어두운 하늘에 번개가 번쩍거렸다. 그들보다 앞서 도착한 마차에 탄 사람들은
벌써 황급히 돌계단을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린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그리고 네빌은 계단 위로 쏜살같이 달려가, 동굴같은 현관 복도 안으로 들어간
후에야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횃불이 타오르고 있는 복도에는 대리석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제기랄!" 론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물을 털어냈다. "저렇게 계속 비가 내리면 호수가
넘치고 말겠어. 완전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됐군. 아야!"
론이 비명을 지르면서 비틀거렸다. 물이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빨간 풍선이 천장에서
곧장 론의 머리에 정통으로 떨어진 것이다. 물풍선이 터지자 물을 흠뻑 뒤집어 쓴 론은
해리 쪽으로 비켜섰다.
바로 그 순간 두 번째 물풍선이 떨어졌다.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헤르미온느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해리의 발치에서 물풍선이 터지는 바람에 신발과 양말이 온통
물에 젖고 말았다.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물풍선을 피하기 위해 서로
밀치기 시작했다.
해리가 재빨리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요정 피브스가 6미터 높이의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작은 종이 잔뜩 매달린 모자에 오렌지 색깔의 나비 넥타이를 매고
있는 소리의 요정은 심술궂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또다시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피브스!" 성난 목소리가 쩌렁쩌렁 복도에 울려 퍼졌다. "피브스, 당장 이리로 내려오지
못해!"
교감 선생님이자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사감인 맥고나걸 교수가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젖은 마룻바닥을 달려오던 맥고나걸 교수가 중심을 잃고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다행히도 헤르미온느의 목을 붙잡아서, 벌렁
나자빠지는 사태는 겨우 모면할 수 있었다.
"이런! 미안해요, 그레인저 양."
"괜찮아요, 교수님!"
헤르미온느가 얼얼한 목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피브스, 당장 이리로 내려와!"
맥고나걸 교수가 뾰족한 모자를 똑바로 고쳐 쓰면서 호통을 쳤다. 그리고 네모난 안경
너머로 피부스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냥 장난이에요!" 피브스가 비명을 지르면서 연회장 안으로 도망치는 5학년 여학생들을
향해 물풍선을 던지면서 깔깔 거렸다. "이미 다 젖었잖아요. 안 그래요? 조금 더 적시는
것뿐이에요! 휘이이이익!"
피브스는 방금 도착한 2학년생들에게 또다시 물풍선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을 불러야겠군!" 맥고나걸 교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경고하는데,
피브스."
그러자 피브스가 혓바닥을 쑥 내밀더니 마지막 물풍선을 공중으로 휙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깔깔거리면서 붕하고 대리석 계단 위로 날아갔다.
"어서 들어가거라!" 맥고나걸 교수가 흠뻑 젖은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날카롭게 외쳤다.
"연회장으로, 어서!"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미끄러운 복도를 조심스럽게 걸어서 오른쪽에 있는
이중문으로 들어갔다. 론은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젖은 머리카락을 연신 뒤로 넘기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연회장은 언제나처럼 멋지고 훌륭했다. 지금은 개학식 연회를 위해서 특별히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황금빛 접시와 잔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수백 개의
촛불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네 개의 기다란 기숙사 테이블은 재잘거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연회장 제일 위쪽에 마련된 상석에는 호그와트의 교직원들이 학생들을
마주보면서 일렬로 앉아 있었다.
연회장 내부는 무척 따뜻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슬리데린과 래번클로와
후플푸프를 지나서 연회장 제일 가장자리에 있는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핀도르의 유령인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약간 반투명한
진줏빛이 감도는 닉은 오늘 밤에도 평상시처럼, 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 주는 높은
주름 깃에다가 허리가 잘록한 옷을 입고 있었다.
"잘 있었니, 얘들아?"
닉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전 별로 그렇지가 못해요." 해리는 신발을 벗어 들고 물을 털어냈다. "기숙사 배정이나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배가 고파 죽겠어요."
신입생의 기숙사 배정식은 매년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열렸다. 하지만 해리는
공교롭게도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자신이 처음 신입생으로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기숙사 배정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래서 해리는 내심 그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굉장히 들뜬 목소리가 해리를 불렀다.
"안녕, 해리."
그는 바로 해리를 영웅처럼 숭배하는 3학년생 콜린 크리비였다.
"안녕, 콜린."
해리는 약간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해리,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 한 번 알아맞춰 봐, 해리! 내동생이 호그와트에 입학했어!
내 동생 데니스가 말이야!"
콜린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어……. 그것 참 좋은 일이네."
해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내 동생은 잔뜩 흥분했어! 그 녀석이 제발 그리핀도르에 들어오기만을 바랄 뿐이야!
행운을 빌어 줘! 알았지, 해리?"
콜린은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알았어."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다시 헤르미온느와 론과
목이 달랑달랑한 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같은 형제는 대부분 같은 기숙사에 들어가지?
그렇지?"
해리는 속으로 위즐리 형제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물었다. 위즐리 형제는 일곱 명 모두
그리핀도르 기숙사 소속이었던 것이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패르바티 패틸의 쌍둥이 동생은 래번클로에 있어. 더구나
걔네들은 일란성 쌍둥이야. 네 생각대로라면 그 애들은 한 기숙사에 있어야 하잖아? 안
그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해리는 문득 고래를 들어서 교직원 테이불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자리가 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해그리드는 아직까지도 1학년 학생들과 함께
호수를 건너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맥고나걸 교수는 비에 젖은 현관
복도를 닦는 걸 감독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빈 의자가 하나 남아 있었다. 누가
빠진 것일까? 하지만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새로 부임한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은 어디 있지?"
역시 교직원 테이블을 올려다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는 세 학기 이상 머물렀던 적이 없었다. 해리가 가장 좋아하던
교수는 작년에 그만둔 루핀 교수였다. 해리는 천천히 교직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지만, 확실히 새로운 얼굴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어쩌면 새 교수를 구하지 못한 게 아닐까?"
헤르미온느가 걱정하면서 말했다. 해리는 다시 한 번 교직원 테이블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마법을 가르치는 자그마한 플리트윅 교수는 높게 쌓인 방석 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약초학 담당 스프라우트 교수가 옆으로 뻗친 머리 위에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앉아 있었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천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시니스트라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니스트라 교수의 반대편에는 누르스름한 얼굴에 매부리코의 스네이프
교수가 앉아 있었다. 머리에 기름을 잔뜩 바른 마법의 약 담당 교수인 스네이프는
호그와트에서 해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해리가 스네이프 교수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스네이프 교수 또한 해리를
싫어했다. 더구나 스네이프 교수는, 작년에 해리가 스네이프의 코앞에서 시리우스의 탈출을
도와준 이후부터 더욱 해리를 증오하고 있었다. 스네이프 교수와 시리우스는 학창 시절
이후로 줄곧 숙적이었던 것이다.
스네이프 교수 옆에 빈 자리가 하나 있었다. 해리는 아마도 맥고나걸 교수의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교직원 테이블의 중앙에는 호그와트의 교장 덤블도어 교수가 앉아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의 기다란 은빛 머리카락과 수염이 촛불에 비쳐 반짝거렸다. 짙은 초록색의
기다란 망토에는 수많은 별과 달이 수놓여 있었다. 덤블도어 교수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듯,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마주 잡고 그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 반달 모양의 안경
너머로 천장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해리는 얼른 고개를 들고 천장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마법이 걸려 있는 연회장의 천장에는 바깥 하늘과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리는 이렇게 심한 폭풍이 몰아치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천장에는 먹구름들이 마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바깥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리자,
천장에도 번개가 번쩍 빛났다.
"어서 빨리 끝났으면……. 난 히포그리프라도 먹을 수 있겠어."
론이 신음 소리를 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회장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맥고나걸 교수가 길게 늘어선 1학년 학생들을 연회장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갑자기 온
사방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비에 젖기는 했지만, 1학년생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꼭 호수를 헤엄쳐서 온
것처럼 보였다.
신입생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추위와 긴장으로 덜덜 떨면서 교직원 테이블을 따라 일렬로
걸어갔다. 그리고 전교 학생들을 마주 바라보고 똑바로 섰다. 그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신입생들 가운데 가장 키가 작고 머리가 회색인 그 아이는 해그리드의 것이
분명한 검은색 두더지 가죽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코트가 어찌나 헐렁하던지 꼭 커다란
모피 천막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더지 코트 위로 툭 튀어나와 있는 그 아이의
작은 얼굴은 긴장은커녕 너무나 신나서 잔뜩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 줄로 늘어선 그 아이는 콜린 크리비와 눈이 마주치자,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면서 소리없이 입만 벙긋거렸다.
"나 호수에 빠졌어!"
작은 아이는 그 사실이 무척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에 맥고나걸 교수가 1학년생들 앞에 세 발 의자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굉장히 낡고 더럽고 누덕누덕 기운 자국이 있는 마법사 모자를 올려놓았다. 1학년생들은 그
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연회장에 있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일제히 마법사 모자로
향했다.
얼마 동안 정적이 흘렀다. 마법사 모자 테두리 부근의 헤어진 부분이 마치 입처럼 넓게
벌어지더니 갑자기 그 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년도 더 전에
내가 새로 만들어졌을 때
유명한 마법사 네 명이 살았어요.
그들의 이름은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어요.
황야에서 온 대머리 그리핀도르
골짜기에서 온 금발의 래번클로
넓은 계곡에서 온 상냥한 후플푸프
늪에서 온 심술궂은 슬리데린
그들은 소망과 희망과 꿈을 다 함께 공유했어요.
그들은 대담한 계획을 세웠어요.
젊은 마법사들을 교육시키자는 것이었죠.
그래서 호그와트 학교가 세워진 거예요.
네 명의 창립자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기숙사를 만들었어요.
서로 다른 덕목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도 달랐어요.
그리핀도르는
가장 용감한 사람을 추천했고
래번클로는
가장 영리한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후플푸프는
근면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가장 알맞았고
권력에 굶주린 슬리데린은
원대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을 사랑했어요.
네 명의 마법사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들이 직접 학생들을 분류했어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학생들을
선발했던 거예요.
그러나 그들이 죽은 후에는
무슨 수로 학생들을 뽑을까요?
그 방법을 고안한 사람이 바로 그리핀도르였어요.
그리핀도르는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나를 벗었어요.
네 명의 창립자들은 내 안에 두뇌를 조금씩 넣었어요.
그리하여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선택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제 나를 들어서 당신의 귀를 가릴 정도로 편안히 쓰세요.
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나는 당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어디에 속할지 말해 줄 거예요!
마법의 모자가 노래를 다 마치자, 연회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가 터졌다.
"저건 우리 기숙사 배정식 때 불렀던 노래와 다르네."
해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모자는 해마다 다른 노래를 불러."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재미없는 삶일 거야.
안 그러니? 마법의 모자가 되는 것 말이야. 아마도 저 모자는 일년 내내 다음 노래만
만들면서 보낼 거야."
맥고나걸 교수는 커다란 양피지 두루마리를 풀고 있었다.
"내가 큰 소리로 여러분의 이름을 호명하면, 이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으세요. 모자가
여러분의 기숙사를 알려 줄 거예요. 그러면 그 기숙사의 테이블로 가서 앉으면 되는
거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1학년생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애컬리, 스튜어트!"
어떤 남자아이가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후들후들 떨면서 앞으로 나오더니 마법의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았다.
"래번클로!"
마법의 모자가 큰 소리를 말했다. 스튜어트 애컬리는 모자를 벗고 허둥지둥 래번클로
테이블을 향해 달려갔다. 래번클로 학생들은 일제히 스튜어트 애컬리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환영했다. 해리는 스튜어트 애컬리를 격려하고 있는 래번클로의 수색꾼 초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자 문득 자신도 래번클로 테이블에 끼고 싶다는 이상한 충둥이 솟구쳤다.
"배독, 말콤!"
"슬리데린!"
연회장의 다른 쪽 테이블에서 갑자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말포이도 슬리데린
기숙사에 합류하게 된 배독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해리는 과연 배독이, 다른
기숙사보다 슬리데린에서 어둠의 마법사가 제일 많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말콤 배독은 슬리데린 자리에 가서 앉았다. 프레드와 조지는 말콤 배독을
쳐다보면서 쉿 소리를 냈다.
"브랜스턴, 엘리너!"
"후플푸프!"
"콜드웰, 오웬!"
"후플푸프!"
"크리비, 데니스!"
땅딸막한 데니스 크리비는 마법의 모자를 향해 걸어가다가 해그리드의 두더지 가죽 코트
자락에 걸려 잠시 비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해그리드가 교직원 테이블 뒤에 있는 작은
문으로 연회장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사람의 두 배가 넘는 키와 적어도 세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몸통 그리고 제멋대로 헝클어진 기다란 머리카락과 텁수룩한 수염은
약간 무시무시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해그리드의 본성은
인상과 달리 아주 순하고 인정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해그리드는 교직원
테이블의 제일 끝자리에 앉으면서 그들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데니스 크리비가
마법의 모자를 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모자 테두리의 뜯어진 부분이 넓게 벌어졌다.
"그리핀도르!"
마법의 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해그리드는 그리핀도르의 학생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데니스 크리비는 활짝 웃으면서 모자를 벗더니 다시 의자 위에 올려놓고 재빨리 형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콜린 형, 아까 호수를 건너오다가 그만 물에 빠졌어! 정말 기가 막혔지! 그런데 물 속에
있는 뭔가가 나를 잡더니 다시 배 위로 밀어올려 주었어!"
데니스가 빈 자리에 앉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멋지구나! 그건 아마도 대왕 오징어였을 거야, 데니스!"
콜린도 잔뜩 흥분한 것 같았다.
"와!"
데니스가 탄성을 질렀다. 마치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폭풍이 몰아치는 깊은 호수에
빠졌다가 거대한 바다 괴물에 의해 구출되는 것보다 멋진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라는
듯한 태도였다.
"데니스! 데니스! 저 쪽에 있는 저 형 좀 봐! 까만 머리에 안경을 낀 형 말이야, 보이니?
저 사람이 누군지 아니, 데니스?"
해리는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엠마 돕스를 배정하고 있는 마법의 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기숙사 배정식은 계속이어지고 있었다. 남녀 학생들이 저마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차례차례 세 발 의자에 가서 앉았다. 마침내 맥고나걸 교수가 'L'자로 시작되는 이름을 부
를
순서가 되자, 줄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제발, 어서 끝내요."
론이 배를 문지르면서 투덜거렸다.
"론, 기숙사 배정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야."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매들리, 로라!"
"후플푸프!"
마법의 모자가 외치자, 후플푸프 테이블에서 일제히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물론 그렇겠죠. 당신처럼 죽었다면……."
론이 딱 잘라 말했다.
"난 올해 입학한 그리핀도르 신입생들도 잘 하길 바랄 뿐이야." 나탈리 맥도널드가
그리핀도르 테이블에 합류하자,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말했다. "우리의
연전 연승 기록을 깨뜨리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그리핀도르는 지난 3년 동안 연달아 교내 기숙사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프리차드, 그레이엄!"
"글리데린!"
"쿼크, 올라!"
"래번클로!"
마침내 "위트비, 케빈!"("후플푸프!")을 마지막으로 기숙사 배정식이 모두 끝나자,
맥고나걸 교수는 마법의 모자와 의자를 치웠다.
"드디어 때가 됐군."
론이 재빨리 나이프와 포크를 움켜쥐고 기대에 찬 얼굴로 황금빛 접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덤블도어 교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덤블도어 교수는 환영의 표시로 두 팔을 넓게
벌리더니 학생들을 향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에게 딱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마음껏 먹도록 해요."
"찬성! 찬성!"
해리와 론은 신이 나서 큰 소리로 외쳤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접시들이 순식간에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제각기 개인 접시에 음식을 옮겨
담고 있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애처로운 눈길로 지켜보았다.
"아아, 이제 좀 살 것 같은데……."
론이 입 안 가득히 으깬 감자를 쑤셔 넣으면서 말했다.
"오늘밤에 연회가 무사히 열린 건 정말 다행인 줄 알아. 아까 주방에서 말썽이 있었거든."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말했다.
"왜요? 무슨 일인데요?"
해리가 커다란 스테이크 덩어리를 우물우물 씹으면서 물었다.
"물론 피브스 때문이지." 닉이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자, 달랑달랑한 목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닉은 달랑거리는 목을 감추기 위해 높은 주름 깃을 약간 더 끌어올렸다. "늘 하는
말씨름이야. 피브스는 연회에 참석하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그건 고려할 만한 가치조차
없는 요구였지. 피브스가 어떤 녀석인지는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문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지. 음식 그릇을 보기만 하면 그냥 집어 던지고 싶어서 안달이니까……. 우리는
유령 회의를 열었어. 뚱보 프라이어는 피브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피투성이 바론이 반대했어. 그건 아주 현명한 처사였지."
피투성이 바론은 온통 은빛 핏자국으로 뒤덮여 있는 슬리데린의 유령으로, 빼빼
말랐으며 별로 말도 없었다. 호그와트에서 피브스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유령뿐이었다.
"그래요. 우리도 피브스가 무슨 장난을 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피브스가 주방에서
무슨 짓을 했어요?"
론이 한껏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온, 맨날 하는 짓이지."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답했다. "화풀이를
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마구 때려부수고 냄비와 프라이팬을 집어 던지고 수프 속에 풍덩
빠지고……. 꼬마 집요정들은 겁에 질려서 제정신이 아니었단다."
쨍그랑! 그 순간 헤르미온느가 황금빛 술잔을 떨어뜨렸다. 호박 주스가 하얀 식탁보
위로 번지면서 노란 얼룩이 생겼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기에도 꼬마 집요정들이 있단 말이에요? 여기 호그와트에도?"
헤르미온느는 몹시 놀라면서 목이 달랑달랑한 닉을 빤히 바라보았다.
"영국에서 꼬마 집요정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이 바로 호그와트일 거야. 무려 백 명도
넘으니까……."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헤르미온느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하지만 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꼬마 집요정들은 낮에는 주방을 거의 떠나지 않으니까 그렇지."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들은 밤에 나와서 청소도 하고…… 벽난로의 불꽃도
살피고…… 그런 일들을 하지. 내 말은 너희들이 꼬마 집요정을 보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거야. 꼬마 집요정이 여기 있는 줄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바로 그들이 좋은
꼬마 집요정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니?"
헤르미온느는 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봉급은 받겠죠? 휴가는 있겠죠? 그리고 병가나 연금 같은 것도 있겠죠?"
헤르미온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깔깔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주름 깃이 벌어지면서 머리가 옆으로 툭
떨어지더니, 겨우 몇 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근육과 살갗이 간신히 목에 붙은 채 달랑거렸다.
"병가나 연금이라구?" 닉은 머리를 어깨 위로 밀어 올리고 주름 깃을 세워 다시 목을
고정시켰다. "꼬마 집요정은 병가나 연금을 바라지 않아!"
헤르미온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포크와 나이프를
탁 내려놓고 접시를 옆으로 밀어버렸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 론이 약간 당황해서 말했다. 그 순간 론의 입 안 가득히 들어 있던
요크셔 푸딩이 해리에게 조금 튀었다. "어……. 미안, 해리." 론은 얼른 푸딩을 꿀꺽 삼켰다.
"네가 굶는다고 해서 꼬마 집요정들이 병가를 얻을 수 있는건 아니야!"
"노예 노동이야." 헤르미온느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이 만찬을
만들었어. 노예 노동!" 헤르미온느는 끝까지 한 입도 먹지 않았다.
비는 여전히 어두운 창문을 세게 때리고 있었다. 또다시 천둥이 치면서 창문을 흔들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천장에도 번개가 번쩍 치더니 황금 접시들이 환하게 빛났다. 그 순간
접시에 남아 있던 음식들이 싹 사라지고 후식이 나타났다.
"당밀 타트야, 헤르미온느!" 론은 일부러 헤르미온느의 코앞에 음식을 들이댔다. "와! 이것
좀 봐! 초콜릿 케이크야!"
하지만 꼭 맥고나걸 교수를 연상시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헤르미온느를 보자, 론은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들은 아주 깨끗하게 후식을 먹어 치웠다. 잠시 후에 마지막 남은 음식 부스러기들이
싹 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버스 덤블도어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식간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와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정적을 뚫고 들리고 있었다.
"자, 여러분!" 덤블도어 교수가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제 배불리 먹고
마셨으니까('흥!' 그 순간 헤르미온느가 콧방귀를 뀌었다), 여러분에게 몇 가지 사실을 알려
줘야겠군요."
"학교 관리인인 필치 씨가 교내 사용금지 목록 중에 올해 새로 추가된 품목이 있다는 것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요요'와 '송곳니가 돋은 원반' 그리고 '공격하는
부메랑'이 그것입니다. 이제 교내에서 사용이 금지된 품목은 모두 437개에 달합니다. 혹시
이 내용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고 싶은 학생은 필치 씨의 사무실에 가면 목록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덤블도어 교수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덤블도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또한 언제나 그렇듯이 운동장에 있는 숲은 학생들의 출입 금지 지역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호그스미드 마을 역시 3학년 이하 학생들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덤블도어는 잡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가슴 아픈 사실을
한 가지 알려야겠군요. 올해에는 기숙사 간의 퀴디치 시합이 열리지 않을 겁니다."
"뭐라구?"
해리는 숨이 탁 막혔다. 해리는 재빨리 퀴디치 팀의 동료 선수인 프레드와 조지를
돌아보았다. 그들 또한 입만 딱 벌린 채, 덤블도어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것은 교수님들의 많은 노고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어떤 행사가 10월에 시작돼서 1년
내내 계속될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분명히 그 행사를 무척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건 너무나 기쁜 일입니다. 금년에 호그와트에서는……."
바로 그 순간 우르릉 쾅쾅 하면서 고막을 찢는 듯한 요란한 천둥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회장의 문이 탕탕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연회장의 문 앞에는 검은색 여행용 망토로 몸을 감싼 남자가 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연회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 낯선
사람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천장을 가로질러서 번개가 번쩍 치더니 낯선 사람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 사람은
두건을 벗고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흔들더니 교직원 테이블로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연회장에는 둔탁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테이블
끝에 도착한 낯선 남자는 오른쪽으로 돌더니 심하게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덤블도어 교수를
향해 걸어갔다. 천장에서 또다시 번개가 번쩍거렸다. 헤르미온느는 헉 하더니 입을 딱
벌렸다.
번개가 번쩍 치자, 그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해리는 그런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얼굴은 꼭, 오랫동안 풍파에 시달린 나무토막을, 사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조각칼을 다루는 솜씨도 전혀 없는 어떤 사람이 대충 깎아서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피부는 온통 흉터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고 입은 꼭 비스듬하게 갈라진
깊은 틈새처럼 보였으며 코는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사람의 눈이었다.
그 사람의 한쪽 눈은 작고 까맣고 말똥말똥 빛났다. 하지만 다른 쪽 눈은 동전처럼 크고
둥글었으며 밝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청색이었다. 그 푸른 눈동자는 깜박거리지도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보통 눈과는 전혀 다르게 상하좌우로 마구 돌아가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가 그 남자의 뒤통수 쪽으로 완전히 돌아가자, 오직 섬뜩한 흰자위만 보였다.
낯선 사람은 덤블도어 교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 못지않게 심한 흉터가 나
있는 한쪽 손을 내밀자, 덤블도어 교수가 반가운 듯이 무슨 말을 하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낯선 사람이 미소조차 짓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뭐라고
말하니까, 덤블도어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 남자에게 자기 오른쪽에 있는 빈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낯선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앉더니, 얼굴 위로 흘러내린 회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소시지가 접시를 앞으로 끌어당겨, 거의 다 뭉개지고 없는 코로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더니 소시지를 쑥쑥 잘라 먹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정상적인 눈은 소시지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푸른색 눈동자는 여전히 안구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연회장과 학생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오신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님을 소개하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무거운 침묵을 깨면서 말했다. "무디 교수입니다! "
새로 부임한 교직원은 박수로 환영하는 게 보통이었지만, 덤블도어 교수와 해그리드를
제외하고는 박수를 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다른 교직원과 학생들은 그저 두려운
눈길로 무디 교수를 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무디 교수의 기이한 모습에 넋이 나가 꼼짝도
하지 목하는 것 같았다. 덤블도어 교수와 해그리드도 박수 소리가 무거운 침묵 속으로
공허하게 울려 퍼지자, 곧 손을 내려놓았다.
"무디? 매드아이 무디? 오늘 아침에 위즐리 아저씨가 도와주러 갔던 그 사람이야?"
해리가 론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럴 거야."
론이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 사람의 얼굴은 왜 저렇게 된 거야?"
헤르미온느가 작게 속삭였다.
"몰라."
론의 시선은 마치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무디 교수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무디 교수는 그러나 별로 따뜻하지 않은 환영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호박 주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여행용 망토 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휴대용 물병을 꺼내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가 물을 마시느라고 팔을 들어 올리는
바람에, 기다란 망토가 땅에서 조금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테이블 밑으로 나무를 깎아서
만든 의족과 갈고리 발톱이 달린 발이 보였다.
덤블도어 교수가 다시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덤블도어 교수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매드아이 무디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 학교는 앞으로 몇 달 동안
대단히 흥미로운 행사를 주관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난 1세기 동안 열린
적이 없었던 아주 뜻깊은 행사입니다. 여러분에게 금년에 호그와트에서 트리위저드 시합이
열릴 서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되어서 대단히 기쁩니다."
"농담이시죠!"
프레드 위즐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무디 교수가 도착한 이후로 연회장에 팽팽하게
감돌던 긴장감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거의 모든 사람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덤블도어 교수도 분위기가 바뀌어서 다행이라는 듯이 껄걸 웃었다.
"농담하는 게 아니라네, 위즐리 군. 자네가 농담이란 말을 하니까 말인데, 나는 이번
여름에 아주 재미있는 농담을 한 가지 들었다네. 트롤과 늙은 마녀와 레프러칸 요정이 다
함께 술집으로 들어갔는데……."
맥고나걸 교수가 듣기 거북하다는 듯이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음…….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닌 것 같군……. 아니야……. 그런데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그래. 트리위저드 시합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지……. 여러분
중에는 이 시합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먼저 잠깐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잠시 양해를 바라며, 딴 짓을 해도 뭐라
하지 않겠습니다." 덤블도어 교수는 잠시 학생들을 둘러본 후에 천천히 말을 이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이란 유럽 최대의 마법학교인 호그와트와 보바통, 덤스트랭 사이의 친선
경기로, 700년 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각 학교를 대표하는 챔피언을 선정하고,
이 세 명의 챔피언이 세 가지 마법 시험을 치르면서 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입니다. 각
학교는 5년마다 한번씩 번갈아 가면서 시합을 주관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국적이 서로
다른 젊은 마법사들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망자의 숫자가 너무 늘어나서 트리위저드 시합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사망자라니?"
헤르미온느가 불안한 얼굴로 속삭였다. 하지만 연회장에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헤르미온느처럼 불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잔뜩 흥분하면서 서로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해리도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사망자들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훨씬 더 관심이 쏠렸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서 트리위저드 시합을 다시 복원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덤블도어 교수가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나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제 마법 협력부와 마법의 게임 및 스포츠부는 다시 한 번 시도할
시기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어떤 챔피언도 죽음의 위험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여름 내내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10월이 되면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교장이 각 학교의 후보 선수와 함께 이곳에 도착할 거이며, 할로윈 데이에 각 학교를
대표하는 세 명의 챔피언을 선정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어떤 학생이 트리위저드 우승컵과
소속 학교의 명예와 1000갈레온의 상금을 걸고 시합을 벌이기에 가장 적당한지는 공평한
심판관이 결정할 것입니다."
"내가 차지할 거야!"
프레드 위즐 리가 당당하게 외쳤다. 명예와 부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오른
프레드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하지만 호그와트의 챔피언이 되는 것을 상상하고 있는
사람은 비단 프레드만이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기숙사 테이블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덤블도어 교수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옆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열심히 속삭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에 덤블도어 교수가 입을 열자, 연회장이 다시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여러분 모두가 트리위저드 우승컵을 호그와트로 가져오고 싶어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학교 교장과 마법보 장관이 한 자리에 모여서, 금년에는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연령을 제한하기로 미리 합의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열일곱 살
이상이 된 학생들만이 이름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몇 명의 학생이 몹시 격분한 듯이 소란을 피웠다. 위즐리 형제도 발끈
성이 났다. 그래서 덤블도어 교수는 목소리를 약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트리위저드
시합의 과제는 여전히 어렵고 몹시 위험합니다. 6,7학년이 안 된 학생들은 그 시험 과제들을
감당한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직 열일곱 살이 되지
않은 학생이 공정한 심판관을 속여서 호그와트 챔피언으로 선발되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잔뜩 찌푸린 프레드와 조지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는 덤블도어 교수의 파란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거렸다.
"그러므로 만약 열일곱 살 미만의 학생이라면 본인의 이름을 제출해서 공연히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보바통과 덤스트랭의 대표단은 10월에 도착해서 수개월
동안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될 겁니다. 나는 그 동안 여러분이 우리의 외국인 손님들에게
모든 친절을 베풀 것이며, 누가 선발되든 간에 호그와트의 챔피언에게 전심전력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시간이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 수업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순요. 취침 시간! 해산, 해산!"
덤블도어 교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매드아이 무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당탕탕
요란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학생들은 벌떼같이 문으로 몰려 나갔다.
"그럴 수는 없어! 내년 4월이면 우리도 열일곱 살이 된단말야. 그런데 우리는 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거야?"
조지 위즐리는 문으로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덤블도어 교수를 노려보았다.
"어느 누구도 날 막을 순 없어. 챔피언이 되면 평소에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는 온갖
일들을 죄다 할 수 있을 텐데……. 게다가 상금이 1000갈레온이나 된다니!"
프레드도 험상궂은 얼굴로 교직원 테이블을 노려보면서 고집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래……. 1000갈레온……."
론이 꿈에 부푼 얼굴로 말했다.
"어서 나가자. 빨리 나가지 않으면 우리만 남게 될 거야."
헤르미온느의 독촉에 못 이겨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 프레드, 조지는 천천히 현관
복도로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프레드와 조지는 줄곧, 덤블도어 교수가 과연 열일곱 살이
안 된 학생들이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그 방법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다.
"챔피언을 뽑는 공정한 심판관이란 도대체 누구지?"
해리가 물었다.
"몰라. 하지만 우리가 바로 그 심판관을 속여야만 해. 아마 노화 마법의 약을 몇 방울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조지……."
프레드가 말했다.
"하지만 덤블도어 교수는 형이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론이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했다.
"그래, 하지만 누가 챔피언이 될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은 덤블도어 교수가 아니잖아? 내가
듣기로는 일단 트리위저드 시합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명단이 확보되면, 그 심판관이 직접
각 학교에서 최고의 학생을 뽑는 것 같아. 나이가 몇 살인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덤블도어 교수는 우리가 이름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뿐이야."
프레드가 쉬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죽었다잖아!"
헤르미온느는 몹시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벽걸이 양탄자 뒤에 감춰진 비밀
문을 통해서 또 다른 좁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래. 하지만 그건 벌써 오래 전의 일이야. 안 그래? 게다가 아무런 위험도 없다면 뭐가
재미있겠니? 야! 론, 우리가 덤블도어 교수의 눈을 속이는 방법을 알아낸다면 어떻게 할래?
너도 물론 트리위저드 시합에 참가하고 싶지?"
프레드가 신이 나서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트리위저드 시합에 나간다면 정말 멋질 거야. 하지만 우리는 아직
나이가 되지 않았어……. 우리가 그 시합에 나갈 만큼 충분히 마법을 배웠는지도 잘
모르겠고……."
론이 해리에게 말했다.
"난 정말 아직 배울 게 많아." 프레드와 조지의 등 뒤에서 네빌의 침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아마도 내가 지원하기를 바랄 거야. 할머니는 항상 내게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니까……. 나는 당연히 해야 할 거야……. 아이쿠!"
계단을 중간 정도 올라갔을 때, 네빌의 발이 계단 밑으로 푹 빠졌다. 호그와트에는 이런
함정 계단들이 아주 많았다. 대부분의 고학년 학생들은 이제 이런 함정 계단쯤이야
자연스럽게 펄쩍 뛰어넘곤 했지만, 기억력이 나쁘기로 유명한 네빌만은 예외였다. 해리와
론이 네빌의 겨드랑이를 잡고 끌어내는 동안, 계단 꼭대기에 세워져 있는 갑옷이
절거덕절거덕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시끄러워!"
론이 갑옷의 얼굴 가리개를 쾅 닫아 버리면서 소리쳤다. 그들은 그리핀도르 탑 입고까지
곧장 올라갔다.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들어가는 문은 분홍색 실크 드레스를 입은 뚱보
여인의 커다란 초상화 뒤에 감추어져 있었다.
"암호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뚱보 여인이 물었다.
"허튼소리." 조지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래층에서 반장이 말해 줬지."
그러자 초상화가 앞으로 확 열리더니 입구가 나타났다. 그들은 서둘러 구멍으로
들어갔다. 탁탁 소리를 내면서 타오르는 벽난로 덕택에, 찌부러진 안락의자와 탁자로 가득
찬 원형의 학생 휴게실은 따뜻했다. 헤르미온느는 우울한 표정으로 즐겁게 춤추고 있는
불꽃들을 바라보았다. 해리는 헤르미온느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여자 기숙사로 통하는
문으로 사라지기 전에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노예 노동……."
마지막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간 해리와 론, 네빌은 탑 꼭대기에 위치한 남학생
기숙사에 도착했다. 방에는 진홍색 덮개를 단 침대 다섯 개가 벽면에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침대 발치에는 침대 주인의 트렁크가 놓여 있었다.
딘과 시무스는 벌써 잠자리에 들었다. 시무스는 침대 머리맡에 아일래드 장미 장식을
핀으로 꽂아 놓았으며, 딘은 침대 옆 탁자 위에 빅터 크룸의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예전에는 그 자리에 웨스트 햄 축구팀 포스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한 칸 옆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다.
"멍청이들!"
론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축구 선수들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와 론과 네빌은 재빨리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누군자(물론 꼬마
집요정이겠지만) 침대 속에 따뜻한 보온통을 넣어 놓았다. 침대에 드러누워서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까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나도 참가할 거야. 만약 프레드와 조지 형이 그 방법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트리위저드 시합 말이야……. 넌?"
론이 어둠 속에서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안 할 것 같아……."
해리는 잠시 침대에서 몸을 뒤척거렸다. 하지만 해리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영상들이
연달아 떠오르고 있었다……. 아주 눈부신 영상이……. 공정한 심판관을 속여서 해리의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호그와트의 챔피언으로
선발되었다……. 전교생들이 해리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함성을 질렀다. 해리는
의기양양하게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운동장에 서 있었다…….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희미한 군중 속에서 특별히 초의 얼굴이 눈길을 끌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초의 얼굴은 감탄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해리는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 씩 웃었다. 론이 이런 생각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