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마법부의 대혼란
조금 전에 잠이 든 것 같은데, 벌써 위즐리 씨가 해리를 흔들면서 깨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나자, 위즐리 씨는 마법을 부려서 텐트를 걷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빨리 캠프장을
떠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두막 현관에 서 있던 로버트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인사했다. 로버트의 눈은
마치 초점이 없는 것처럼 멍하니 풀려 있었다.
"로버트 씨는 괜찮을 거야." 위즐리 씨가 말했다. "기억력이 수정되면 사람들은 한참 동안
얼이 빠지기 마련이란다……. 게다가 저 사람이 당한 일은 너무 엄청난 사건이었잖니……."
포트키가 있는 지점에 다가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급하게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녀와 마법사들이 포트키를 관리하는 베이질에게 빨리 캠프장을 떠나게 해달라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위즐리 씨는 베이질과 급히 몇 마디 의논을 한 후에, 기다랗게 줄 서 있는 사람들 틈에
끼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스토우츠헤드 산으로 돌아가는 낡은 고무타이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다시 오터리 성 캐치폴 마을을 지나서 버로우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너무나
지쳐서 서로 말을 주고받을 만한 힘조차 없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오직 따끈한 아침
식사 생각밖에 없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자, 버로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안개를 뚫고 반가운 외침
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위즐리 부인은 밤새도록 정원에서 그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라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슬리퍼를 신은 채, 황급히 달려오는 위즐리 부인의 손에는 잔뜩 구겨진 <예언자 일보>가
들려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통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위즐리 부인이 위즐리 씨의 목을 덥석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위즐리 부인의 손에서
<예언자 일보>가 툭 떨어졌다. 해리는 그 신문에 대문짝하게 인쇄되어 있는 톱 기사
제목을 보았다.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예언자 일보>에는 허공에서 번쩍거리는 어둠의 표식을 찍은 흑백 사진도 실려 있었다.
"모두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위즐리 부인은 위즐리 씨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더니 아이들을 하나씩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위즐리 부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모두들 살아 있었어……. 오, 얘들아……."
갑자기 위즐리 부인이 프레드와 조지를 와락 끌어안는 바람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위즐리 부인이 너무나 세게 안아서 프레드와 조지는 그만 머리를 쾅 부딪히고 말았다.
"아야! 엄마…… 숨 막혀요!"
"너희들이 떠나기 전에 내가 소리를 질렀지?" 위즐리 부인은 어깨를 들썩이면서 흐느꼈다.
"나는 지난 밤을 뜬 눈으로 새우면서 그 생각만 했단다! 만약 너희들이 그 사람에게
잡혔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한 마지막 말이 고작 O. W. L. 점수를 잘 받지 못했다고
야단친 거라면……. 오, 프레드……. 조지……."
"여보, 이제 그만 해요. 우리 모두 무사하지 않소?" 위즐리 씨가 쌍둥이 형제를 부인의
품에서 억지로 떼어 놓으면서 부인을 위로했다. 그리고는 빌에게 속삭였다. "빌……. 저
신문을 좀 집어다오. 기사가 어떻게 실렸는지 궁금하구나……."
잠시 후에 그들은 모두 식당으로 들어갔다.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부인에게 진한 홍차 한
잔을 끓여 주었다.
"홍차에 위스키를 조금 타는게 좋겠구나."
위즐리 씨가 헤르미온느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빌이 건네준 <예언자 일보>의 제
1면을 훑어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위즐리 씨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마법부의 큰 실수…… 달아난
범인…… 느슨한 보안……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은 어둠의 마법사들…… 국가적인
망신……. 도대체 이 기사를 누가 쓴 거야? 아, 물론…… 리타 스키터!"
"그 여자는 마법부와 무슨 원수가 진 모양이에요!" 어깨 너머로 열심히 신문을 쳐다보고
있었던 퍼시가 버럭 화를 냈다. "지난 주에는 흡혈귀를 소탕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마법부가 고작 냄비 두께 따위를 가지고 헛소리나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썼어요! <마법사가 아닌 반인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의 열두 번째 단락에
특별히 흡혈귀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도 말이죠!"
"부탁 하나 들어줄래, 퍼시?" 빌이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나에 대한 기사도 있군."
<예언자 일보>의 기사를 읽고 있던 위즐리 씨가 안경 너머로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말했다.
"어디 있어요?" 위스키를 넣은 홍차를 마시던 위즐리 부인이 갑자기 사레가 들린 것처럼
캑캑거렸다. "그 기사를 보았다면 진작 당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았을 거 아녜요!"
"이름이 실린 게 아니오." 위즐리 씨가 조용히 머리를 흔들었다. "이 기사를 좀 보시오. '숲
근처에서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마법부의 확실한 발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둠의 표식이 나타나자, 마법부의 작원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얼마 후에 나타난 마법부의 한 관료는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을 뿐, 그 이상의 어떤 정보도 주지 못했다. 불과 한시간 후에 숲속에서 여러 구의
시체가 치워졌다는 무성한 소문을 이 한 마디 진술로 진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
이런!" 잔뜩 화가 난 위즐리 씨는 <예언자 일보>를 퍼시에게 내밀었다. "다친 사람은
정말로 아무도 없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속이 시원했을까? 숲속에서 여러 구의 시체가
치워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니……. 이제 신문에 실렸으니까 확실히 그런 소문이 나겠군.
여보, 아무래도 사물실에 좀 나가 봐야겠소. 일을 수습해야 할 것 같구려."
위즐리 씨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아빠." 퍼시가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크라우치 씨는 지금
일손이 달릴 거예요. 냄비에 대한 보고서도 제가 직접 제출하는 게 좋겠어요."
퍼시는 갑작스럽게 수선을 떨더니 이내 식당에서 나가 버렸다.
"아서, 당신은 지금 휴가 중이잖아요! 이건 당신 부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요. 당신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겠어요?"
위즐리 부인은 몹시 불안한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마법부로 가는 게 좋겠어, 여보. 아무래도 내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 같아.
옷을 갈아입은 후에 곧바로 떠나겠소……."
"아주머니, 혹시 헤드위그가 제 편지를 갖고 오지 않았나요?"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불쑥 질문을 던졌다.
"헤드위그? 아니……. 아니, 우편물은 전혀 없었단다."
위즐리 부인이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론과 헤르미온느는 수상스러운 눈길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그만 네 방에 가서 짐을 풀어도 되겠지, 론?"
해리가 두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던지면서 말했다.
"응……. 나도 방으로 올라가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 너는?"
론의 눈길이 헤르미온느를 향하고 있었다.
"좋아."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세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 지그재그
모양의 계단을 따라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왜 그래, 해리?"
론이 다락방 문을 닫자마자 물었다.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지난 일요일 아침에 다시 이마의 흉터가 아팠어. 잠을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깼지……."
그 말을 듣고 론과 헤르미온느가 보인 반응을 해리가 프리벳 가에서 상상했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입을 딱 벌리더니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먼저 도움이
될 만한 수많은 책들을 늘어놓은 후에 알버스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과 호그와트의 간호
담당인 폼프리 부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언급했다. 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거기에 없었어, 안 그래? 너도 알잖아? 그 사람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 지난 번에 네 흉터가 계속 아팠을 때에는 그 사람이 호그와트에 있었잖아."
"물론 그가 프리벳 가에 없었던 건 확실해." 해리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꾸고 있었어……. 그와 피터의 꿈을……. 너희들도 알지? 생쥐로 변해서 달아난
윔테일……. 그 꿈의 내용을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분명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어……. 누군가를……."
해리는 문득 '나'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그만 입을 꾹 다물었다. 잔뜩 겁에 질린
헤르미온느를 더 이상 공포에 떨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꿈이야. 악몽에 불과할 뿐이라구."
론이 훌훌 털어 버리려는 듯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상하지 않니? 이마의 흉터가 몹시 아프더니, 사흘 수에
죽음을 먹는 자들이 행진하고…… 볼드모트의 상징이 다시 허공에 떠오르고……. 이런 모든
일들이 그저 우연일까?"
해리는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이름 좀 말하지 마!"
론이 이를 악 물고 불만을 터뜨렸다.
"작년 말 수업 시간에 트릴로니 교수가 했던 말 기억나니?"
그러나 해리는 론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트릴로니 교수는 호그와트의 점술 교수였다.
"오, 해리! 그런 사기꾼의 말에 아직까지도 신경을 쓰고 있다니……."
헤르미온느가 겁에 질렸던 표정을 싹 거두고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너는 그 자리에 없었잖아." 해리가 말했다.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거야.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그 예언을 할 때,
트릴로니 교수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어. 정말로…… 트릴로니 교수는 어둠의 마왕이
부활할 거라고 예언했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렬하고 끔찍해질 것이다……. 어둠의
마왕은 부하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일어선다……. 그날 밤에 웜테일이 탈출했지."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동안, 론은 처들리 캐논 침대 시트에 난 구멍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해리, 왜 헤드위그가 편지를 갖고 오지 않았는지 물었던 거야? 기다리는 편지라도
있어?"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이미 시리우스에게 흉터가 계속 아팠다고 편지를 썼거든. 그래서 답장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해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야! 시리우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거야1"
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빨리 시리우스를 만났으면 좋겠어."
해리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시리우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 시리우스는 지금 아프리카에
있을 수도 있어. 안 그래? 헤드위그가 돌아오려면 아직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거야."
"그래, 알아."
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헤드위그가 없는 하늘을 내다보는 그의 마음을
착잡하기만 했다.
"목장에 가서 퀴디치 게임이나 하자, 어서. 세 명씩 팀을 나누는 거야. 빌과 찰리와
프레드와 조지 형도 분명히 좋아할 거야. 렁스키 페인트를 해볼 수도 있잖아, 해리?"
론이 해리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론! 해리는 별로 퀴디치 게임을 할 생각이 없어……. 고민거리도 많고……. 게다가 몹시
지쳤어. 아무래도 우리 모두 잠을 좀 자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가 넌 어쩜 그렇게 남의 기분을 모르냐는 투로 말했다.
"아니야. 나도 퀴디치 게임을 하고 싶어. 잠깐만 기다려, 론. 파이어볼트를 갖고 올게."
갑자기 해리가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잔뜩 볼멘 소리로 "남자애들은 정말 어쩔 수 없어!"
하며 투덜거리더니 방에서 나갔다.
그 다음 일주일 동안 위즐리 씨와 퍼시는 거의 집에 붙어 있을 틈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집에서 나갔으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난리가 났어." 그들이 호그와트로 떠나기 전날 일요일 저녁에 퍼시가 거드름을
피우면서 말했다. "사람들이 계속 호울러를 보내서 우리는 일주일 내내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어. 호울러는 금방 열어 보지 않으면 폭발하잖아. 내 책상은 군데군데 불에 그을리고
가장 좋은 깃펜도 새까맣게 타 버렸지."
"사람들이 왜 호울러를 보내는데?"
지니가 거실 벽난로 앞에 깔린 양탄자에 앉아서 마법의 테이프로 <1000가지 마법의
약초와 곰팡이>라는 책을 붙이며 말했다.
"퀴디치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소동에 대해 불평하고 있는 거야." 퍼시는 어깨를
약간 으쓱거렸다. "그들은 피해를 입은 재산을 보상해 달래. 문둥구스 플레처는 방이 무려
열두개나 되는 텐트를 배상해 달라고 청구했어. 그 텐트에는 부글부글 거품이 나오는
목욕탕도 달려 있었다고 우기면서……. 나는 대뜸 플레처의 속셈을 꿰뚫어봤지. 사실
플레처는 허름한 망토를 막대기로 받쳐 놓고 그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단 말이야."
위즐리 부인은 초조한 눈으로 구석에 놓여 있는 괘종시계를 힐끗 바라보았다. 해리는 그
괘종시계가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이 몇 시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그 괘종시계에는 아홉 개의 황금색 바늘이 있었는데, 각각의 시계
바늘에는 위즐리 가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괘종시계의 숫자판에는 숫자 대신에 '집'
'학교' '직장' '행방불명' '병원' '감옥'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었다. 12라는 숫자가 있어야
할
위치에는 '사망'이라는 글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덟 개의 시계 바늘은 '집'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가장 기다란 위즐리 씨의 바늘은 여전히 '직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위즐리
부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람이 사라진 이후에는 네 아빠가 주말에 출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단다. 네 아빠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늦을까? 저녁 식사가 다 식을 텐테……."
"아빠는 퀴디치 월드컵 경기 때 아빠가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솔직히 말하면 아빠가 부서의 책임자와 미리 의논하지 않고 공개적인
발언을 한 것은 분명히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어요."
퍼시가 말했다.
"스키터라는 저 비열한 여자가 쓴 기사 따위를 읽고, 감히 네 아빠를 탓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위즐리 부인이 발끈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만약 아빠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면, 교활한 리타 스키터는 마법부에서 한 마디의
논평도 내지 않은 것을 가지고 물고 늘어졌을 거예요. 리타 시키터는 어느 누구도 좋게
보지 않는 여자예요. 언젠가 그 여자가 그린고트 은행 금고를 관리하는 직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어요. 엄마도 아마 그 일을 기억하고 계실 거예요. 그때 스키터는 날 보고 '머리만
길고 형편없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했어요."
론과 체스를 두고 있던 빌이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머리가 좀 길기는 하구나, 얘야. 내게 잠시 맡겨 두면……."
위즐리 부인이 빌의 머리카락에 눈독을 들이면서 말했다.
"싫어요, 엄마."
빗방울이 거실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헤르미온느는 <표준 마법서, 4학년>에 푹
빠져 있었다. 그것은 위즐리 부인이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를 위해 다이애건 앨리에서 사온
책이었다. 찰리는 불에 잘 견디는 발라클라바(어깨까지 덮을 수 있는 큰 털모자: 역주)를
꿰매고 있었다. 해리는 빗자루 수리 장비 세트를 열어놓고 열심히 파이어볼트를 닦고
있었고, 프레드와 조지는 깃펜을 양피지에 대고 끄적이면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위즐리 부인이 한쪽 구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쌍둥이 형제를 눈여겨보며 말했다.
"숙제하고 있어요."
프레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 아직 개학도 하지 않았는데, 숙제는 무슨 숙제?"
위즐리 부인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쌍둥이 형제를 노려보았다.
"아니에요. 조금 남은 게 있어요."
조지가 재빨리 손을 흔들면서 변명했다.
"혹시 새로운 상품 주문 용지를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 '위즐리 형제 마법사의 기발한
발명품'을 다시 시작하기만 해봐라."
위즐리 부인의 눈빛은 마치 쌍둥이 형제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 프레드는 괴로워 죽겠다는 듯이 위즐리 부인을 보며 말했다. "만약 내일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충돌해서 조지와 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엄마가 우리에게 한 마지막
말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트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삽시간에 거실은 떠들썩한 웃음 바다가 되었다. 심지어 위즐리 부인까지도 웃음을
터뜨렸다…….
"오, 네 아빠가 오시는구나!"
갑자기 위즐리 부인이 괘종시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직장'이라는 칸에 있었던 위즐리
씨의 시계 바늘이 '이동 중' 이라는 칸에 가 있었다. 잠시 후에 시계 바늘이 바르르
떨리더니 다른 바늘들이 모여 있는 '집'에서 멈추었다.
"얘들아!"
위즐리 씨가 식당으로 들어오면서 외쳤다.
"어서 오세요, 여보!"
위즐리 부인이 서둘러 달려 나갔다. 잠시 후에 위즐리 씨는 저녁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따뜻한 거실로 들어왔다. 위즐리 씨는 완전히 탈진한 것처럼 보였다.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겼소." 위즐리 씨는 벽난로 근처에 놓여 있는 안락의자에 털썩
주저앉아서 식어 빠진 양배추 요리를 툭툭 건드렸다. 위즐리 씨는 식욕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리타 스키터가 글쎄, 지금까지 마법부가 저지른 실책을 알아낸답시고 일주일 내내
들쑤시고 다녔다오. 결국 그 여자는 가엾은 버사가 실종된 사실까지도 알아내고 말았소.
아마도 그 기자가 내일자 <예언자 일보>에 제 1면 톱 기사로 실릴거요. 루도 베그만에게
버사를 좀 찾아보라고 그렇게도 충고했건만……."
"크라우치 씨도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죠."
퍼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도 크라우치 씨는 아주 운이 좋은 셈이야. 윙키에 대해서는 리타 스키터도 미처
알아내지 못했으니까……. 만약 크라우치의 꼬마 집요정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그 여자는 일주일동안 <예언자
일보>의 톱 기사로 써먹을 거야."
"그 꼬마 집요정이 무책임했던 건 사실이지만, 어둠의 표식은 불러내지는 않았다는 걸
다들 인정한 줄 알았는데요?"
퍼시가 흥분해서 말했다.
"하지만 크라우치 씨는 꼬마 집요정들을 학대하고 있어. <예언자 일보>의 기자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정말 천만다행이지."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냈다.
"잘 들어, 헤르미온느! 크라우치 씨 같은 마법부의 고위 간부는 하인들의 철저한 복종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퍼시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하인이 아니라 노예겠지!" 헤르미온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퍼시를 쏘아보았다. "왜냐하면
크라우치 씨는 윙키에게 봉급을 주지 않으니까……. 안 그래?"
"너희들 모두 방으로 올라가서 짐을 제대로 챙겼는지 살펴 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위즐리 부인이 말다툼을 중단시키면서 말했다. "어서! 자, 얘들아……."
해리는 빗자루 수리 장비 세트를 챙긴 후에 파이어볼트를 둘러메고 론과 함께 다시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론의 방에서는 윙윙거리면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때문에 빗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다락방에서 산다는 굴귀신이 가끔씩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들이 들어가자, 피그위존이 새장 속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반쯤
싼 트렁크를 보고는 몹시 흥분한 모양이었다.
"녀석에게 부엉이 사탕 좀 던져 줘. 입 좀 다물게……."
론이 사탕 봉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피그위존은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그 옆 헤드위그의
새장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 론, 혹시라도 시리우스가 잡힌 건 아니겠지?"
해리가 텅 빈 헤드위그의 새장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니야. 그런 일이 있었다면 벌써 <예언자 일보>에 실렸을 거야. 마법부는 한 건 올린 걸
자랑하고 싶을 테니까……. 안 그래?"
"맞아. 난 그저 혹시라도……."
"이걸 봐! 엄마가 너를 위해 다이애건 앨리에서 구입한 물걸들이야. 엄마는 네 금고에서
금을 조금 꺼내 오셨어……. 그리고 네 양말들도 모두 깨끗하게 빨아 놓았어."
론은 해리의 침대 위에 잡다한 물건 꾸러미와 돈주머니 그리고 양말들을 올려놓았다.
해리는 위즐리 부인이 사 온 물걸들을 풀기 시작했다. 미란다 고시오크의 <표준 마법서,
4학년> 이외에도, 깃펜 한 세트와 수십 개의 양피지 두루마리 그리고 마법의 약 조제용
재료들- 때마다 사자 물고기의 등뼈와 벨라도나(가지과의 유독 식물: 역주) 에센스가 거의
다 떨어져 가던 참이었다-이 있었다. 해리는 부지런히 냄비 속에 속옷들을 채워 넣었다.
그런데 론이 치를 떠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뭐니?"
해리가 물었다. 론은 밤색 벨벳 드레스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있었다. 그 옷의 칼라와
소매 끝동에는 구식 레이스 주름 장식이 치렁치렁 달려 있었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나더니, 위즐리 부인이 금방 다림질을 한 호그와트 제복 망토들을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자, 망토가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잘 싸도록 하거라."
위즐리 부인은 망토를 해리와 론에게 각각 나누어 주었다.
"엄마, 지니의 드레스를 나한테 잘못 주셨어요. 이 옷은 새로 산 건가요?"
론이 밤색 벨벳 드레스를 보이며 말했다.
"아니야. 그건 네 옷이란다. 네 예복이야."
위즐리 부인이 말했다.
"네?"
"예복말이다. 학교에서 보낸 준비물 목록에 올해에는 꼭 예복을 갖고 와야 한다고 적혀
있더구나……. 호그와트에서 공식 행사가 열릴 때 입을 거란다."
"설마……. 난 이거 입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론은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모두가 입는 거야, 론! 예복은 원래 다 그렇단다! 네 아빠도 파티용 예복이 몇 벌 있지
않니!"
위즐리 부인이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요! 이 옷은 죽어도 입지 않겠어요. 차라리 발가벗고 다니겠어요."
론은 완강했다.
"바보같이 굴지 말거라. 어쨌거나 준비물 목록에 적혀 있으니까 안 갖고 가면 안 된다. 론!
해리, 네 예복도 구입했단다……. 네 예복을 론에게 보여 주렴……."
해리는 떨면서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마지막 꾸러미를 풀었다. 그러나 해리의 옷은
예상했던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해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리의 옷에는 레이스
장식이 달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그것은 검은색이 아니라 암록색이라는 것만 빼면
학교 망토와 거의 똑같았다.
"그 옷이 너의 눈 색깔과 잘 어울리는 것 같더구나, 얘야."
위즐리 부인은 다정하게 말했다.
"저건 괜찮네! 어째서 내 옷은 저런 걸로 사지 않았어요?"
론이 해리의 옷을 쳐다보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왜냐하면…… 네 옷은 중고품을 구입했으니까…… 종류가 별로 없더구나."
위즐리 부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해리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 재빨리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리는 기꺼이 그린고트 금고에 있는 모든 돈을 꺼내서 위즐리 가족과
나누어 쓰고 싶었다. 그러나 위즐리 가족은 해리의 돈을 절대로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난 이런 옷 절대로 안 입을 거예요."
론이 완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좋아! 그렇다면 발가벗고 가거라. 그리고 해리, 저 녀석의 사진을 찍어서 내게 보내렴.
실컷 웃어나 보자꾸나."
위즐리 부인은 문을 쾅 닫고 방에서 나가 버렸다. 갑자기 등뒤에서 푸푸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피그위존의 목에 그만 부엉이 사탕이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어째서 내가 가진 건 하나같이 쓰레기들이지?"
론이 벌컥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피그위존의 목에 걸린 사탕을 끄집어 내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