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56/194)

제 4장

다시 버로우로

마침내 날이 밝았다. 아침 일찍 일어난 해리는 부지런히 짐을 싸기 시작했다. 정오 무렵이

되자, 해리의 트렁크는 학교에서 사용하는 물건들로 가득 찼다. 물론 해리는 세 가지 보물을

가장 먼저 챙겼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투명 망토와 시리우스가 선물한

빗자루, 작년에 프레드와 조지가 준 호그와트의 비밀지도였다. 해리는 헐거운 마루 판자 밑

비밀장소에 넣어두었던 음식을 모두 꺼내고, 혹시라도 잊어버린 마법책이나 깃펜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침실 구석구석과 틈새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해리는 벽에 걸려 있는 달력도 내렸다. 해리는 달력의 날짜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

나가면서 어서 빨리 9월 1일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9월 1일은 해리가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나 호그와트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프리벳 가 4번지에 위치한 더즐리네

집을 휘감고 있었다. 더즐리 가족은 몹시 불안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이상야릇한 마법사들이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거라는 생각이 더즐리 가족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론의 편지를 받은 후에, 해리는 즉시 버논 이모부에게 가서 위즐리 가족이 내일 오후

다섯 시에 방문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버논 이모부는 못마땅한 얼굴로 해리를

쳐다보았다.

"부디 그 사람들이 옷이라도 좀 제대로 차려입고 왔으면 좋겠구나." 버논 이모부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같은 족속들이 걸치고 다니는 옷 나부랭이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체면을 지키려면 제발 좀 정상적인 옷을 입는 게 좋을 거야.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다."

해리는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위즐리 부부는 더즐리 가족이 '정상적'이라고 부를

만한 옷을 입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위즐리 형제들은 방학에 가끔씩 머글 옷을 입기도

하지만, 위즐리 부부는 항상 기다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도저히 그런

옷차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더즐리 가족은 마법사에 대해서 아주 나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만약 그런 편견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위즐리 가족이 이상한 옷차림으로 나타난다면, 더즐리 가족은 몹시

무례하게 행동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해리는 은근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버논 이모부는 가장 좋은 신사복을 입고 있었다.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버논

이모부가 손님을 환영하기 위해 정장을 차려입은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리는

버논 이모부의 속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위즐리 가족을 압도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두들리의 몸이 약간 줄어든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다이어트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일까? 해리는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겁에 질린

두들리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번에 두들리는 어른 마법사를 만나서

된통 혼이 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두들리의 엉덩이에서 꼬부라진 돼지꼬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 위해 런던의 한 개인 병원까지 찾아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두들리가

계속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면서 엉거주춤 걸어다니고 있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두들리는 적에게 똑같은 표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두들리는 음식(지방을 제거한 우유로

만든 커티지 치즈와 잘게 썬 샐러리)이 맛이 없다는 타박조차 하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전혀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던 페투니아 이모는 입술을 오므린

채 혀를 깨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해리에게 마구 비난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들은 자동차를 몰고 오겠지?"

버논 이모부가 식탁 너머에서 소리쳤다.

"저어……."

해리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미처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벳 가 4번지와 버로우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위즐리 가족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찾아올 것인가?

위즐리 가족은 더 이상 자동차를 가자고 있지 않았다. 오래전에 보유하고 있던 낡은

포드 앵글리아는 아직까지도 호그와트의 금지된 숲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작년에 마법부의 자동차를 빌린 적이 있었다. 오늘도 마법부에서

자동차를 빌렸을까?

"아마도 그럴 거예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버논 이모부는 콧수염을 실룩거리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만약 다른 때라면 버논 이모부는 위즐리 씨가 어떤 자동차를 몰고

오느냐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버논 이모부는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값비싼 자동차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만약 위즐리 씨가 값비싼 페라리를 몰고

온다고 하더라도 버논 이모부가 과연 호감을 보일지 의심스러웠다.

오후 내내 해리는 자기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치 사나운 코뿔소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다는 경고라도 있었던 것처럼, 페투니아 이모가 몇 초마다 한 번씩 망사 커튼 사이로

거리를 내다보는 것을 차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4시 45분. 해리는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거실로 들어갔다. 페투니아 이모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계속해서 쿠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신문을 읽고

있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의 작은 눈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해리는 잔뜩

긴장한 버논 이모부가 사실은 다가오는 자동차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거라고

확신했다.

안락의자에 앉아 있던 두들리는 마치 돼지처럼 뚱뚱한 손으로 엉덩이 부분을 연신

가리고 있었다. 해리는 시계를 힐끗 쳐다본 후에 다시 현관 계단으로 나가서 앉았다.

거실에서 감돌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의 심장은

흥분과 긴장으로 마구 뛰고 있었다.

마침내 5시가 지났다. 정상 차림을 하고 있어서 땀을 흘리고 있던 버논 이모부는

현관문을 약간 열고 거리를 살짝 내다보았다. 그리곤 재빨리 다시 고개를 집어넣었다.

"심지어 늦게 오다니!"

버논 이모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네." 해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면……어…… 차가 많이 막혀서 늦는 게

아닐까요……."

10분……. 다시 15분이 지났다……. 해리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5시 30분이

되자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가 거실에서 퉁명스럽게 불평을 늘어놓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차라리 다른 약속을 할 걸 그랬어."

"늦게 도착하면 저녁 식사라도 대접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죠."

"어림도 없는 소리." 버논 이모부가 거칠게 소리쳤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왔다갔다 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 아일 데리고 곧장 돌아가야지,

어슬렁거리긴 어딜 어슬렁거려? 그런데 정말 오긴 오는 거야? 어쩌면 날을 잘못 알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 족속은 아마도 약속 시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고장이 날 것 같은 고물 자동차를 몰고

오드드드드드든지!"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실문 안쪽에서 더즐리

가족 세 명이 정신없이 허둥거리는 소리가 났다. 다음 순간 두들리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현관으로 도망쳐 나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해리가 두들리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두들리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두들리는 여전히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가린 채 뒤뚱거리면서 재빨리

식당으로 달아났다.

해리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서둘러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전원을 연결하면

전구에 들어오면서 마치 정말로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꾸며 놓은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벽난로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판자로 막아 놓은

벽난로 뒤에서 쾅쾅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던 것이다. 뭔가 날카로운 물건으로 판자를

긁어대는 듯한 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이죠?" 벽으로 바짝 물러나 있던 페투니아 이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겁에 질린 얼굴로 벽난로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버논?"

그러나 채 일 초도 지나지 않아서 의혹이 풀렸다. 판자로 막힌 벽난로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아야! 프레드, 안 돼! 돌아가거라. 어서 돌아가라니까……. 뭔가 일이 잘못된 것 같구나.

조지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하거라. 아야! 조지, 안 돼! 공간이 없다니까……. 빨리 돌아가서

론에게 말하거라!"

"어쩌면 해리가 우리말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빠. 이걸 치우면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벽난로 뒤에서 누군가가 주먹으로 판자를 쾅쾅 두드리고 있었다.

"해리? 해리, 우리말이 들리니?"

더즐리 부부는 마치 한 쌍의 성난 족제비처럼 해리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게 무슨

소동이냐?" 버논 이모부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으르렁거렸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위즐리 가족은…… 위즐리 가족은 플루 가루를 이용해서 이곳으로 오려고 했던 거예요."

해리는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했다. "마법사들은 벽난로를 통해서

어디든지 여행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모부가 벽난로를 막아 놓아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잠깐만요."

해리는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소리를 질렀다.

"위즐리 아저씨? 제 말이 들리세요?"

갑자기 판자를 쾅쾅 두드리던 소리가 뚝 멈췄다. 벽난로 너머에서 위즐리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좀 해라!"

"위즐리 아저씨, 해리예요……. 여기 벽난로는 막혀 있어요. 벽난로를 통해서 들어오실

수는 없어요."

"제기랄! 도대체 왜 벽난로를 막아 놓은 거니?"

위즐리 씨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이 벽난로에는 전기 히터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해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래?" 위즐리 씨는 약간 흥분한 듯이 반문했다. "전기라고 했니? 플러그가 있는? 이런!

그걸 봐야 하는데……. 어디 생각을 좀 해보자……. 아야, 론!"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해리는 이제 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있니, 론." 프레드가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맞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란다. 우리는 제대로 도착했어."

"그래, 우리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조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마치 벽에 짓눌려 있기라도 한 듯이 조지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얘들아, 얘들아……." 위즐리 씨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생각 좀 하게 조용히 있거라…一. 그래……. 그 길밖에 없는 것 같구나……. 해리, 뒤로

물러서거라."

해리는 재빨리 소파가 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그러나 버논 이모부는 오히려 벽난로를 향해

걸어갔다.

"잠깐!" 버논 이모부가 벽난로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쾅!

판자로 막혀 있던 벽난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터졌다. 그 충격으로 인해 전기

히터가 거실을 가로질러 저 멀리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위즐리 씨와 프레드와 조지와 론이

자욱한 먼지와 파편을 헤치고 나타났다. 페투나아 이모는 비명을 지르면서 커피용 작은

탁자 쪽으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버논 이모부는 얼른 달려가서 페투니아 이모를

부축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린 채, 주근깨

하나까지도 똑같은 쌍둥이 형제 프레드와 조지를 비롯해서 모두들 머리카락이 빨간 위즐리

가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좀 낫군." 위즐리 씨는 기다란 초록색 망토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아, 해리의

이모와 이모부시군요!" 위즐리 씨가 안경을 똑바로 고쳐쓰면서 말했다.

버논 이모부는 느닷없이 나타난 낯선 대머리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위즐리 씨는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버논 이모부는 재빨리 페투니아 이모의 손을 잡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버논 이모부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입술이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버논 이모부는 적어도 30년 정도는 더 늙어 보였다. 머리와 콧수염은 온통 하얀

먼지투성이였으며 가장 좋은 양복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저…… 정말 죄송합니다." 위즐리 씨는 어색한 듯이 그냥 손을 내렸다. "벽난로가 저렇게

된 건 모두 다 저의 불찰입니다. 이 집의 벽난로가 막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 댁의 벽난로를 플루 네트워크에 연결해 두었는데……. 그러니까 단지

하루 저녁만 가능하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해리를 데려가려고

했어요. 원칙적으로 머글들의 벽난로는 플루 네트워크에 연결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제가 플루 가루 단속반에게 미리 부탁해서 손은 좀 썼죠. 걱정하지 마세요. 저건 제가 금방

원래대로 고쳐 놓을 수 있으니까요. 플루 가루로 저 아이들을 먼저 돌려보낸 후에 선생님

댁 벽난로를 원래대로 고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가 떠나기 전에 말입니다."

위즐리 씨가 엉망이 된 벽난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더즐리 부부는 위즐리 씨의 말을 단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더즐리

부부는 여전히 입을 닥 벌린 채 위즐리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페투니아 이모는 허둥지둥 버논 이모부의 등 뒤로 숨었다.

"안녕, 해리! 가방은 다 챙겨 두었니?"

위즐리 씨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층에 있어요."

해리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네 가방은 우리가  갖고 올게."

프레드가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프레드와 조지는 해리를 향해 눈을 찡긋거리더니

재빨리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해리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2년 전에

해리를 구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몰고 찾아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해리는

그 자동차를 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해리는 어쩐지 프레드와 조지가 두들리를 슬쩍 만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미 두들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해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위즐리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주……

좋은 집이군요."

평소라면 티 하나 없이 깨끗했을 거실이 온통 뿌연 먼지와 지저분한 벽돌 조각으로

뒤덮여 있는 상황에서, 그런 말이 조금이라도 먹혀들 리가 없었다. 더즐리 부부는 치를

떨면서 위즐리 씨를 노려보았다.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페투니아

이모도 다시 혀를 깨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뜩 겁에 질린 두 사람은 대꾸조차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위즐리 씨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글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면 위즐리 씨는 무엇이든지 아 좋아했던 것이다. 위즐리 씨의 눈길이 거실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과 비디오로 향했다. 위즐리 씨는 지금 머글이 사용하는 물건들을 살펴보고

싶어서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전기가 흐르고 있죠?" 위즐리 씨가 관심을 보이면서 말했다. "아, 역시 그렇군요. 저기

플러그가 있군요. 저는 플러그를 수집하죠." 위즐리 씨가 버논 이모부를 쳐다보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배터리도 모으고 있어요. 배터리는 엄청 많이 모아 두었답니다. 아내는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버논 이모부도 분명히 위즐리 씨가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는

페투니아 이모의 몸을 완전히 가리기 위해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였다. 갑자기 위즐리 씨가

달려들어서 자기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두들 리가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두들리의 얼굴에는 몹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조금 전에 해리의 트렁크가 계단에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그 소리에 더럭 겁이 난 두들 리가 식당에서 뛰쳐나온 것이 분명했다.

두들리는 잔뜩 겁에 질린 눈초리로 위즐리 씨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벽을 다라 서서히

발을 옮겼다. 엄마와 아빠의 등뒤로 몸을 숨기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버논

이모부의 체격은 깡마른 페투니아 이모의 몸 정도는 충분히 가릴 수 있었지만 두들리를

감싸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 이 아이가 네 사촌이구나. 그렇지, 해리?"

위즐리 씨는 다시 한 번 용감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네." 해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애가 바로 두들리예요."

해리와 론은 재빨리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후에 얼른 눈길을 돌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두들리는 여전히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가리고 있었다. 마치 엉덩이가 떨어져 나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위즐리 씨는 두들리의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호기심을 느꼈다. 왜 저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방학 잘 보내고 있니. 두들리?"

뒤즐리 씨가 친절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 억양으로 보면, 위즐리 씨는 두들리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더즐리 부부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위즐리 씨가 두들리에게 두려움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두들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훌쩍훌쩍 울먹이기만 했다. 해리는

두들리가 두 손으로 큼지막한 엉덩이를 더욱 세게 움켜잡는 모습을 보았다.

잠시 후에 프레드와 조지가 해리의 트렁크를 들고 다시 거실로 들어오다가 두들리를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 작은 악마와 같은 짓궂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 좋아."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서두르는게 좋겠구나."

위즐리 씨는 망토 자락을 들어올리더니 요술지팡이를 꺼냈다. 두들리 가족은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인센디오!"

위즐리 씨가 요술지팡이를 들고 엉망이 된 벽난로 구멍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그러자

벽난로에서 금방 불길이 솟아올랐다. 마치 몇 시간 동안이나 줄곧 타오르고 있었던 것처럼,

불길은 경쾌하게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위즐리 씨는 주머니에서 졸라매는 끈이 달린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풀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가루를 조금 꺼내서 불길 속으로 던졌다. 그러자 불길이

에메랄드빛으로 변하면서 더욱 세차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어서 가거라, 프레드."

위즐리 씨가 프레드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예." 프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잠깐만요……."

프레드의 주머니에서 과자 봉지가 떨어졌다. 여러 가지 색깔의 포장지로 싼 태피(설탕,

버터, 땅콩을 섞어서 만든 캔디: 역주)들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프레드 바닥에 떨어진 태피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은 다음, 다시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프레드는 더즐리 가족을 향해 명랑하게 손을 한 번 흔들어 봉이더니 벽난로를 향해

걸어갔다.

"버로우!"

프레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불 속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란 페투니아 이모가

진저리를 치는 사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프레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음은 네 차례다, 조지." 위즐리 씨가 조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트렁크를 들고

가거라."

해리는 조지가 트렁크를 들고 불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벽난로 앞에

도착하자, 해리는 조지가 잘 잡을 수 있도록 트렁크의 방향을 돌려주었다.

"버로우!"

이번에도 휙 소리가 나더니 조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론, 다음엔 너다."

위즐리 씨가 론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론이 주문을 외우자, 그의 모습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해리와

위즐리 씨뿐이었다.

"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해리가 더즐리 가족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더즐리 가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리는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벽난로

가장자리에 도달했을 때, 위즐리 씨가 손을 내밀어 해리를 가로막았다. 위즐리 씨의 시선은

더즐리 가족을 향해 있었다. 더즐리 가족은 여전히 몹시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리가 인사를 하잖습니까?" 위즐리 씨가 더즐리 가족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듣지

못했나요?"

"아무려면 어때요." 해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 상관없어요."

하지만 위즐리 씨는 해리의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버논 이모부에게 말했다. "내년 여름까지는 조카를 만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작별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자기 집 거실벽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사람에게 충고를 듣는다는 생각 때문에 무척 괴로운 것 같았다. 하지만 위즐리 씨의 손에는

여전히 요술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작은 눈으로 요술지팡이를 슬쩍

쳐다보더니 아주 못마땅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거라."

"안녕히 계세요."

해리는 초록빛 불길 속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초록색 불길은 따뜻한 입깁처럼 부드럽게

해리를 감싸 주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해리의 등 뒤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흉악한 괴물이 괴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페투니아 이모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해리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재빨리 뒤로 돌아섰다. 두들리는 더 이상 부모의 등

뒤에 숨어 있지 않았다. 두들리는 커피용 탁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욱욱거리고 있었다.

두들리의 입에서 보랏빛의 미끈미끈한 것이 길게 흘러나와 있었다. 그 이상한 물체의

길이는 30센티미터가 넘는 것 같았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잠시 후에 해리는 이상하게 생긴 길쭉한 물체가

바로 두들리의 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들리의 주위에는 태피를 싸고 있던 여러 가지

색깔의 포장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얼른 두들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잔뜩 부풀어 오른 혀 끝을

움켜잡더니 입 밖으로 빼내려고 애를 썼다. 페투니아 이모가 마구 혀를 비틀자, 당연히

두들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아까보다 더욱 심하게 푸푸거렸다. 두들리는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버논 이모부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두들리!"

버논 이모부를 고함을 지르면서 두 손을 마구 휘저었다. 위즐리 씨는 자신의 말이

들리도록 하기 위해 더욱 크게 소리를 지럴야만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정상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위즐리 씨는 두들리의 혓바닥을 고치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페투니아 이모가

더욱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면서 두들리를 보호하기 위해 끌어안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위즐리 씨가 요술지팡이로 두들리를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는 거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아니에요, 정말!" 위즐리 씨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이건 아주 간단해요. 마법의 태피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제 아들 프레드가…… 장난을 친 거라구요. 하지만 그건

탐식 마법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제가 고칠 수 있어요!"

하지만 더즐리 가족은 안심하기는커녕, 한층 더 겁에 질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신경질적으로 울음을 터뜨리면서 두들리의 혀를 뽑기라도 할 것처럼 힘껏 잡아당겼다.

페투니아 이모가 혀를 잡아당기자, 두들리는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버논 이모부는 장식장 선반에 놓여 있던 도자기 인형을 집어

들더니 위즐리 씨를 향해 힘껏 던졌다. 하지만 위즐리 씨가 얼른 고개를 숙이면서 피하는

바람에 도자기 인형은 벽난로에 부딪히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정말입니다!" 화가 난 위즐리 씨가 요술지팡이를 휘둘르면서 말했다. "저는 그저 돕고

싶을 뿐이에요! 두들리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어요!"

버논 이모부는 마치 상처를 입은 하마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또 다른 장식품을 집어 들었다.

"해리, 가라! 그냥 가!" 위즐리 씨가 요술지팡이로 버논 이모부를 겨냥하면서 소리쳤다.

"여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마!"

해리는 그 재미있는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버논 이모부가 던진 두 번째

장식품이 해리의 왼쪽 귀를 살짝 스치고 지나가자 결국 그 상황은 위즐리 씨에게 맡겨 누는

게 가장 놓겠다고 생각했다.

"버로우!"

해리는 주문을 외우면서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해리는 사라지기 직전에 힐끗 고개를

돌려서 어깨 너머로 거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해리가 마지막으로 본 거실의

풍경은 완전히 난장판이었다. 위즐리 씨는 요술지팡이로 버논 이모부가 들고 있던 세 번째

장식품을 폭파시키고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를 감싸 안고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두들리의 혀는 마치 거대한 비단뱀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해리는 아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에메랄드빛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더즐리 가족의 거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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