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장 비밀의 방
"우린 그 화장실에 내내 있었잖아,세 칸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는데." 론이 다음날
아침을 먹으며 너무나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 애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이제..."
거미들을 찾아다니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하지만 선생님들을 피해 여자
화장실에,더욱이 첫 번째 습격 현장 바로 옆에 있는 그 여자 화장실에 충분히
오랫동안 몰래 숨어 들어가 있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었다.그러나 1교시인 변신술
수업 시간에 몇 주일 만에 처음으로 비밀의 방 생각을 싹 잊어버리고 하는 일이
발생했다.수업이 시작되고 10분쯤 뒤,맥고나걸 교수가 오늘부터 일주일 후인 6월
1일부터 시험을 보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시험이오?" 심스 피니간이 전혀 뜻밖이라는듯 악을 쓰며 말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꼭 봐야 하나요?" 해리 뒤에서 쾅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네빌 롱바텀의
요술지팡이가 옆으로 스르르 넘어지면서,책상다리 하나를 없어지게 했던
것이다.맥고나걸 교수가 요술지팡이를 한번 휘휘 둘러 책상다리를 다시 복구하고는
시무스에게 돌아서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시기에 학교를 계속 개방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녀가 엄하게 말했다. "그러므로 시험은 예정대로 실시될
것이며,여러분 모두 열심히 공부하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라니! 해리는 학교가
이 지경인데 시험을 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교실 여기저기서 불평 불만의
소리가 쏟아져 나오자,맥고나걸 교수가 훨씬 더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학교를 가능한 한 정상적으로 계속 운영하라는 덤블도어 교수의 지시가
있으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이번 시험은 내가 굳이 지절할 필요는
없겠지만,여러분들이 금년에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스스로 진단해 보자는 의미일
것입니다." 해리는 슬리퍼로 변신시켜야 할 한 쌍의 하얀 토끼를
내려다보았다.금년에는 지금까지 뭘 배웠지? 그는 시험에 도움이 될만한 게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다.론은 꼭 저 무시무시한 금지된 숲으로 가서 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이걸로 시험을 볼 수 있을까?" 론이 막 시끄럽게 호각소리를 냈던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리며 해리에게 물었다.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기 사흘 전,맥고나걸
교수가 아침 식사 시간에 또 다른 발표를 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연회장이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졌다.
"덤블도어 교수가 돌아오나봐!" 몇 명이 기뻐서 소리쳤다.
"슬리데린의 후계자를 잡으셨군요!" 래번클로 테이블에서 어떤 여자아이가
말했다.소란이 좀 가라앉자,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마침내 맨드레이크들을 자를
때가 되었다고 스프라우트 교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오늘 밤,우린 돌처럼 변해버린
친구들을 우리 곁으로 되돌아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들 중 한 명쯤은 누가,아니
무엇이 그들을 습격했는지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이 끔직한 해가 끝나기 전에
꼭 범인을 잡게 되길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슬리데린 테이블을
넘겨다 보자 드레이코 말포이가 예상했던 대로 그런 분위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론은 그러나 근래 들어 더 없이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이제 머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겠지!" 그가 해리에게 말했다.
"헤르미온느가 깨어나기만 하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그 앤 3일 뒤 시험을 본다는
걸 알면 아마 죽으려고 할 거야.공부를 하나도 못했잖아.어쩌면 시험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그애를 더 도와주는 일인지도 몰라." 바로 그때,지니 위즐리가
다가와서 론 옆에 앉았다.그녀는 긴장하고 초조해 보였다.해리는 그녀가 손을 무릎에
놓고 비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무슨 일이니?" 론이 포리지를 더 덜어 먹으면서 말했다.지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겁에 질린 펴정으로 그리핀도르 테이블을 흘끗흘끗 바라보았다.해리는 지니의
표정이 딱히 누구라고는 꼬집어 말할수 없었지만,막연히 어느 누군가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해." 론이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해리는 갑자기 지니가 누구의 모습과 닮았는지
깨달았다.그녀는 도비가,해서는 안될 말을 털어놓는 순간에 망설이면서 의자에서 몸을
약간 앞뒤로 흔들고 있는 모습과 똑같았다.
"말할 게 있어." 지니가 해리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작은 소리로 웅얼웅얼
말했다.
"무슨 얘긴데?" 해리가 물었다.지니는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뭔데?" 론이 물었다.지니는 입을 열었지만,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해리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 지니와 론만이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말했다.
"비밀의 방에 관한 거니? 뭔가 보았어? 누군가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거?" 그런데
지니가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는 순간 퍼시 위즐리가 지치고 창백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너 다 먹었으면,나 좀 앉게 비켜,지니.배고파 죽겠어,막 순찰 돌고 오는 중이야."
지니가 마치 의자에 전기가 통하기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겁먹은 표정으로 퍼시를
흘끗 바라보고는 급히 달아났다.퍼시가 앉더니 테이블 한가운데서 머그 잔 하나를
잡았다.
"퍼시 형!" 론이 화가 나서 말했다. "그 애가 막 우리에게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했었단 말야!" 차를 쭉 들이켰던 퍼시가 캑캑거렸다.
"무슨 말인데?" 그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내가 그 애에게 뭐 이상한 거 보았느냐고 그랬더니,그 애가 막 말하려던 참이었-"
"아-그건-그건 비밀의 방과는 아무 관계없어." 퍼시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했다.
"어떻게 알아?" 론이 눈썹을 치며올리며 물었다.
"그러니까,어,그렇게 묻는다면,지니가,어,일전에 내게 왔었어-이거 원,신경 쓰지
마-요점은,내가 뭔가를 하는 걸 그애가 보았는데 내가 음,내가 그 애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거야.분명히 말하지만,난 그 애가 약속을 지킬 줄 알았어.그건
아무 것도 아냐,정말이지,난 그저-" 해리는 퍼시가 그렇게 불안해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뭐하고 있는 거야,퍼시 형?" 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어서,말해,웃지 않을게."
퍼시는 그러나 미소짖지 않았이다.
"저 롤빵 좀 건네줄래,해리,배고파 죽겠어-" 어차피 내일이면 굳이 그들이 애쓰지
않아도 그 수수께끼가 다 풀리겠지만,해리는 만약 기회가 생긴다면 머틀에게 말을
한번 걸어볼 작정이었다-그런데 기쁘게도,그들이 질데로이 록허트 교수의 보호를
받으며 마법의 역사 교실로 가고 있던 오전에 정말로 기회가 생겼다.록허트 교수는
여전히 모든 위험이 지나갔다고 생각한 듯 그들을 복도에서 살피는 일도
건성이었다.그럼에도 그의 머리카락은 평상시처럼 윤기가 나지 않았다.4층 순창을
도느라 밤을 거의 꼬박 새운 탓인 것 같았다.
"내 분명히 말하지만," 그가 그들을 한쪽 구석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돌처럼 굳어진
저 가엾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해그리드가 그랬어요' 일 거야.솔직히,난
맥고나걸 교수가 이 모든 안전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선생님." 해리가 이렇게 말하자,론이 놀라서 책을 떨어뜨렸다.
"고맙구나,해리." 록허트 교수가 후풀푸프 아이들이 줄지어 나가는 동안 기다리며
상냥하게 말했다. "내 말은,우리 선생들이 굳이 학생들을 교실까지 데려다주거나
밤새도록 보초를 서지 않아도,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는 얘기야..."
"맞아요." 론이 해리의 의도를 이해한 듯 말했다. "그럼 저희 들을 이곳에 두고 그냥
가시는 게 어떠세요,선생님,이제 복도 하나만 더 가면 되잖아요-"
"위즐리,나도 그럴까 한다." 록허트 교수가 말했다. "어서 가서 다음 수업 준비를
해야 하거든-" 그리고는 그는 황급히 가버렸다.
"수업 준비를 한다구." 론이 그의 뒤에다 대고 코웃음을 쳤다. "가서 머리나
말겠지,뭐." 그들은 그리핀도르 학생들을 먼저 지나가게 한 뒤,옆 통로로 쏜살같이
달아나 허둥지둥 모우닝 머틀의 화장실 쪽으로 갔다.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기막힌
계획에 대해 자축하고 있을 때-
"포터! 위즐리! 뭐하고 있니?" 맥고나걸 교수가 성난 얼굴로 서 있었다.
"저흰-저흰-" 론이 더듬더듬거렸다. "저흰 가서-그러니까-만나보려고-"
"헤르미온느요." 해리가 말했다.론과 맥고나걸 교수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 애를 한참 동안 보지 못했어요.교수님." 해리가 다급하게 말을 계속하다가,그만
잘못해서 론의 발을 밟았다. "저흰 병동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서 그 애에게 이제
맨드레이크가 거의 준비되었으니,어,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고 했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그들을 빤히 보았다.잠시,해리는 그녀가 버럭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기묘하게도 그녀는 우는 듯 한 쉰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두 분에 놀랍게도 구슬 같은 눈물이 반짝거렸다.
"물론,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의 친구들에게는 이 모든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도
남지...충분히 이해한다.그래,포터,그레인저 양을 방문해도 좋다.빈스 교수에게는 내가
너희들이 어디 갔는지 말해주마.폼프리 부인에게는 내가 허락했다고 말하렴." 해리와
론은 징계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듯 의아해하며
걸어갔다.모통이를 돌았을 때,맥고나걸 교수가 코를 휑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거야말로." 론이 흥분해서 말했다. "네가 지금까지 꾸며낸 이야기 가운데 가장
멋졌어." 이제는 병동으로 가서 폼프리 부인에게 헤르미온느를 방문해도 좋다는
맥고나걸 교수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는 수밖에없었다.폼프리 부인은 마지못해
그들을 들여보내 주었다.
"돌처럼 굳어진 사람에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 헤르미온느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았을 때 그들은 폼프리 부인의 말뜻을 인정해야만 했다.헤르미온느는 확실히
방문객들이 찾아왔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차라리 그녀의 침대 옆에 있는
서랍장에 대고 모든 게 잘될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이 애가 습격자를 보기나 했을까?" 론이 헤르미온느의 뻣뻣한 얼굴을 슬프게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그가 몰래 다가갔다면,못 봤을 거야..." 그러나 해리는
헤르미온느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그의 눈은 그녀의 오른손에 붙잡혀 있었다.그
손은 꽉 쥔 채 담요위에 올려져 있었는데,좀더 가까이 다가가자,주먹 안에 종이 쪽지
하나가 꽉 쥐어져 있는 게 보였다.폼프리 부인이 가까이 있는지 살핀 뒤,해리가 론에게
이것을 알려주었다.
"빼내봐." 폼프리 부인이 해리를 보지 못하게 막아서기 위해 의자를 당기며 론이
속삭였다.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헤르미온느의 손이 종이를 어찌나 꽉 쥐고 있었던지
꼭 찢어질 것만 같았다.론이 지키고 있는 동안 그는 당겨다가 비틀었다가를 몇 번
했고,마침내 몇 분의 긴장된 순간이 흐른 뒤,종이가 빠져 나왔다.그건 도서관의 아주
오래된 책에서 찢어낸 것이었다.해리가 그 종이를 얼른 펴자 론도 가까이 다가와
읽었다.우리의 땅에서 돌아다니는 많은 무시무시한 짐승과 괴물들 가운데,뱀들의
왕으로도 알려져 있는 바실리스크보다 이상하고 끔찍한 것은 없다.이 뱀은 두꺼비
밑에서 부화된 닭의 알에서 태어났는데,크기가 엄청나게 크며 나이가 수백 살은
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살인 방법은 대단히 불가사의하다.바실리스크는 독이 있는 그
치명적인 송곳니 외에도,눈초리가 매서워,그 눈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된다.거미들이 바시리스크 앞에서 달아나는 것은,그것이 그들의 천적이기
때문이며,그걸 죽일 수 있는 건 수탉의 울음소리뿐이다.그리고 종이
밑에는,헤르미온느의 필체인 것 같은 단 한개의단어가 쓰여져 있었다.수도관.마치
누군가가 해리의 뇌에 전등을 켜기라도 한 듯 번쩍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론." 그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바로 이거야.이게 해답이야.비밀의 방에 있는 괴물은
바로 바시리스크야-거대한 뱀! 내가 여기저기서 들은 목소리를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듣지 못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어어.그건 내가 뱀의언어를 알아듣기 때문이야..."해리는
주위에 있는 침대들을 올려다보았다.
"바실리스크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죽인다고 했지? 하지만 아무도
죽지은 않았어-그건 아무도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지.콜린은
카메라를 통해 그걸 보았어.그래서 바실리스크는 카메라 안에 있는 필름은 몽땅
태웠지만,콜린은 그저 돌처럼 굳어졌던 거야.저스틴은...저스틴은 바실리스크를 목이
달랑달랑한 닉을 통해 본게 틀림없어! 닉은 그 독기 어린 시선을 받았지만,이미 죽었기
때문에 다시 죽을 수가 없었어...그리고 헤르미온느와 지래번클로 반장이 발견되었을
때는 그 옆에 거울이 있었어.헤르미온느는 그 괴물이 바실리스크라는 걸 알았던
거야.그래서 그 애는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래번클로 반장에게 거울을 맨 앞에
내놓고 구석진 곳을 둘러보라고 주의시켰던 게 분명해!그리고그 여자 애가 거울을
꺼냈는데-그리고-" 론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면 노리스 부인은?" 그가 몹시 궁금한 듯 속삭였다.해리는 할로윈 날 밤의 그
현장을 떠올리며,곰곰히 생각했다.
"물..." 그가 천천히 말했다. "모우닝 머틀의 화장실에서 흘러 넘친 물이야.노리스
부인은 틀림없이 그 물에 비친 모습만 보았을 거야..." 그는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열심히 훑었다.보면 볼수록 앞 뒤가 맞았다.
"...그걸 죽일 수 있는 건...수탉의 울음소리뿐이야!" 그가 큰소리로 읽었다.
"해드리드의 수탉들이 계속 죽어나갔잖아! 일단 그 방이 열리자 슬리데린의 후계자는
성 근처에서 수탉들이 돌아다니는 걸 원하지 않았던 거야! 거미들은 그것 앞에서
달아나고 말야!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져!"
"하지만 바실리스크가 어떻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론이 물었다. "거대한
뱀이...누군가가 보았을 텐데..." 해리는 그러나 헤르미온느가 그 종이 끝 부분에 휘갈겨
쓴단어를 지적했다.
"수도관." 그가 말했다. "수도권...론,그건 수도관을 이용하고 있었어.난 그 목소리가
벽 속에서 나는 걸 들었었어..." 론이 갑자기 해리의 팔을 잡았다.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말야!"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만약
화장실이라면 어떻게 되지? 그게 만약-"
"-모우닝 머틀의 화장실에." 해리가 말했다.그들은 밀려오는 흥분을 어쩌지
못하고,도저히 믿을 수 없는 듯,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건," 해리가 말했다. "이 학교 안에는 뱀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게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뜻이야.슬리데린의 후계자도 그렇자는 거지.그가 바실리스크를 제어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때문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론이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맥고나걸 교수에게로
곧장 가야 할까?"
"교무실로 가자." 해리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10분 뒤면 맥고나걸 교수님이
그곳에 오실 거야.수업이 끝날 시간이 다 되었거든." 그들은 아래층으로
달려갔다.또다시 복도에서 어물거리다가 들키고 싶지 않았으므로,그들은 곧장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교무실로 갔다.커다란 교무실 안에는 거무스름한 나무 의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해리와 론은 너무 흥분해서 앉지도 못하고,교무실을 천천히
왔다갔다했다.그러나 웬일인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지 않았다.대신,마법을
써서 크게 한 맥고나걸 교수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모든 학생들은 즉시 기숙사로 돌아가십시오,모든 선생님들은 교무실로
돌아가십시오.즉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해리가 론을 빤히 바라보았다.
"습격이 또 있었던 건 아니겠지? 설마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 론이 아연실색하며 물었다. "기숙사로 돌아갈까?"
"안돼." 해리가 주위를 흘끗 보며 말했다.왼쪽에 선생님들의 망토들로 가득한 보기
흉한 옷장이 하나 있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서,무슨 일인지 들어보자.그리고 나서
우리가 알아낸 걸 선생님들께 말해면 돼." 그들이 옷장 안에 숨어,수백 명의 사람들이
머리 위에서 우르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교무실 문이 갑자기 쾅하고
열렸다. 둘둘 접힌 곰팡내 나는 망토들 사이로,선생님들 이 그 방으로 하나 둘씩
들어오는 게 보였다.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는가 하면,잔뜩 겁에 질려
있는 선생님들도 있었다.그 뒤 맥고나걸 교수가 도착했다.
"일이 끝내 터지고야 말았어요." 그녀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 보고 있는 선생들에게
말했다. "학생 하나가 괴물에게 잡혀갔어요.비밀의 방으로요." 플리트윅 교수가 꽤 하는
소리를 냈다.스프라우트 교수는 두 손을 얼른 입에다 갖다댔다.스네이프 교수가 의자
등받이를 꽉 집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거죠?"
"슬린데린의 후계자가." 맥고나걸 교수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했다. "또 다른
메시지를 남겼어요.첫 번째 메시지 바로 밑에요. '그 애의 뼈대는 비밀의 방에 묻힐
것이다' 라구요." 플리트윅 교수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그게 누구죠?" 후치 부인이 무릎을 후들거리면서 의자에 맥없이 앉으며 말했다.
"어느 학생이죠?"
"지니 위즐리예요."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해리는 론이 옷장 바닥으로 스르르
주저않는 걸 느꼈다.
"내일 모든 학생들을 집으로 보내야 해요."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이제
호그와트의 미래는 없어요.덤블도어 교수는 늘 말씀하셨어요..." 교무실 문이 다시 한번
쾅 열렸다.잠시,해리는 덤블도어일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건 록허트 교수였고,그는
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죄송해요-깜박 졸았어요-무슨 얘기들 하셨죠?" 그는 다른 선생님들이 혐오스럽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스네이프 교수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마침 잘 왔네." 그가 말했다.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은 자네 밖에 없어.여자 아이
하나가 그 괴물에게 잡혀갔네.록허트 비밀의 방으로 붙잡혀갔단 말이네.마침내 자네가
나서야 할때가 왔네." 록허트 교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맞네,질데로이." 스프라우트 교수가 끼어 들었다. "바로 어젯밤에 자네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말하지 않았나?"
"전-이거야 원,전-" 록허트 교수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래,자네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안다고 하지 않았나?" 플리트윅 교수가
갑자기 소리를 높여 말했다.
"전-제가요? 전 잘 기억이 나지..."
"난 자네가 해그리드가 잡혀가기 전에 그 괴물을 처치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말
했던 걸 확실히 기억하네." 스네이프 교수가 말했다. "자넨 모든 일이
망쳐져버렸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부터 자네가 그 일을 맡아 해결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어?" 록허트 교수가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전...전 정말로 절대...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게..."
"그럼,당신에게 맡겨두겠어요,질데로이." 맥고나걸 교수가 말했다. "그 일을 하기엔
오늘 밤이 더 없이 좋을 거예요.우린 모두 물러나 있을게요.그 괴물을 당신 혼자서
처치할 수 있도록 말예요.이제야 비로소 당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할 때가 온 것
같군요." 록허트 교수가 절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아무도 구원해주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당당해 보이지 않았다.그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고,평상시에 늘
보여주던 이빨이 다 드러나 보이는 웃음은 온데간데 없고,기운 없고 허약해 보였다.
"조-좋습니다." 그가 말했다. "제 사무실에서-준비-준비 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교무실을 나갔다.
"잘하셨어요." 맥고나걸 교수가 콧구멍을 깔때기 모양으로 벌리며 말했다. "속이 다
시원하군요.각 기숙사 담당 교수님들께서는 학생들에게 가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그리고 내일 호그와트 급행 열차가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말씀해 주세요.나머지 선생님들은 단 한명의 학생도 기숙사 바깥에 남아있지
않도록 조처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들이 하나씩 일어서서 나갔다.그날은 어쩌면
해리의 일생 최악의 날인지도 몰랐다.그는 론과 프레드와 조지와 함께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그리핀도르의 학생 휴게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퍼시는 거기에
없었다.그는 위즈리 부부에게 부엉이를 보내러 갔다가,자기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그날 오후만큼 그렇게 길었던 날도,그리핀도르 탑이 그렇게 북적거렸던
적도,그럼에도 또한 그렇게 조용했던 적도 없었다.해질녘이 되자,프레드와 조지는 더
이상 앉아있지 못하고,자러 올라갔다.
"그 애는 무너가 알고 있었던 거야,해리." 론이 교무실 벽장에 들어갔던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잡혀간 거야.그건 결코 퍼시에 대한 어떤 시시껄렁한
말이 아니었어.그 애는 비밀의 방에 대해 뭔가를 알아냈던 거야.그래서 틀림없이 그
애가-" 론이 눈을 세게 문질렀다.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는 있을 리가 없어." 해리는
태양이 핏빛으로 빨갛게 지평선 밑으로 지는 걸 볼 수 있었다.이런 불쾌한 기분은
처음이었다.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을 텐데.어떤 일이라도
"해리." 론이 말했다. "그 애가 죽-그러니까-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해리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지니가 어떻게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론이 말했다. "가서 록허트 교수를 만나는 거야.그리고
그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걸 말하는 거야.그러면 그가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할
거야.그게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말해.그 안에 있는 게 바실리스크라는 말도
하는 거야." 해리는 달리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으므로,그리고 무언가를
하고 싶었으므로,그의 말에 동의했다.그들 주위에 있는 그리핀도르 학생들은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있는데다,위즐리 형제들에 대해 한없이 딱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인지,자리에서 일어서 휴게실을 가로질러 가 초상화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그들을
아무도 말리려 하지 않았다.그들은 록허트 교수의 사무실로 걸어갔다.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록허트 교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에서 긁는 소리며,쿵
떨어지는 소리며,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해리가 노크를 하자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그릭는 문이 조금 열리더니 록허트 교수가 빼꼼이 한쪽 눈만
내밀고 내다보았다.
"오...포터 군...위즈리 군..." 그가 문을 조금 더 열며 말했다. "난 지금 좀
바쁜데...하지만 빨리 해준다면..."
"교수님,말슴드릴 게 좀 있어요." 해리가 말했다. "교수님께 도움이 되실 거예요."
"어-글쎄-그거 지독하게 안-" 한쪽만 보이는 록허트 교수의 얼굴은 아주 난처해하는
것 같았다. "내 말은-그러니까-좋아-" 그들은 그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갔다.그의
사무실은 거의 완전히 비워져 있었다.미룻바닥에는 커다란 가방 두 개가 열린 채로
세워져 있었다.비취색,라일락색,어두운 푸른색의 망토들이 한쪽 가방 속에 아무렇게나
접혀져 있었다.다른 쪽 가방 속에는 책들이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었다.또 벽을
뒤덮었던 사진들은 이제 책상 위에 있는 상자 속에 쑤셔 넣어져 있었다.
"어디 가세요?" 해리가 물었다.
"어,뭐라고 해야 할까,그래." 록허트 교수가 문 뒤에서 실물크기의 자기 포스터를
떼어내어 돌돌 말며 말했다. "긴급 소집이 있어서 말야...피할 수 없는...가야 해..."
"제 동생은 어떻게 하구요?" 론이 불쑥 말했다.
"글쎄,그 문제라면-가장 불행한-" 록허트 교수가 그들의 눈을 피하면서 어떤 서랍을
비틀어 돌려열더니안에 든 것들을 가방 속에 비우면서 말했다. "정말로 유감스럽게
생각해-"
"선생님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법을 가르치는 분이잖아요." 해리가 말했다. "지금은
가실 수 없어요! 여기서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가실 수는 없다구요!"
"글쎄...내가 이 이랒리를 택했을 때는..." 록허트 교수가 이제 망토들 뒤에 양말들을
쌓아놓으며 말했다. "이 일자리 설명서에는 아무 것도...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그 말은 도망치려는 거라는 뜻인가요?" 해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책에는
선생님이그 모든 일들을 했다고 했는데-"
"책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록허트 교수가 미묘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쓰셨잖아요!" 해리가 소리쳤다.
"얘야." 록허트 교수가 똑바로 서서 해리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사람들이 내가 직접 그 모든 일들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내 책들은
반도 팔리지 않았을거야.못생기고 늙은 아르메니아의 마법사에 대해 읽고 싶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그가 아무리 늑대인간들로부터 어떤 마을을 구했다고 해도
말야.그런 사람이 책의 앞면 표지에 얼굴을 디밀고 있으면 몹시 불쾌할 테니까
말야.책을 만드는 감각이 전혀 없는 거지.그리고 밴든 밴시를 추방한 마녀는
언청이였단다.내 말은,그러니 제발...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했던 일을 선생님이 했던 것처럼 꾸몄다는 거로군요?"
해리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해리,해리," 록허트 교수가 조바심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그렇고 간단하지가
않아.내가 한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냐.난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내야만 했어.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일을 정확히 어떻게 해냈는지 물었고 말야.그 뒤 난 그들이 그렇게
했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도록 '기억력 마법'을 걸어야 했어.만약 내가 자랑으로 여기는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의 '기억력 마법' 이야.아니,그건 정말로 엄청난
작업이었단다.해리,그저 책에 사인하고 광고 사진을 찍고 하는 게 전부가 아냐.명성을
얻고 싶으면,넌 지리하고 힘든 일을 꾸준히 해나갈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해." 그가
가방들을 쾅 닫더니 자물쇠를 채웠다.
"어디 보자." 그가 말했다. "이제 다 된 것 같군.그래.남은 게 딱 하나 있어." 그가
요술지팡이를 꺼내더니 그들에게로 돌아섰다.
"정말 미안하지만,얘들아.이제 너희들에게 '기억력 마법'을 걸어야겠구나.너희들이 내
비밀을 주책없이 사방에다 지껄여대게 할 수는 없거든.그랬다간 난 또 다른 책을 절대
팔 수 없을 테니깐 말야..." 그러나 바로 그 찰나 해리가 요술지팡이로 손을
뻗었다.록허트 교수가 미처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리기도 전에,해리가 큰소리고 말했다.
"익스펠리아르무스!" 록허트 교수의 몸이 뒤로 휙 날아가더니,가방 위로 털썩
떨어졌다.그리고 그의 지팡이가 공중으로 높이 날아가자 론이 얼른 잡아 열린 창문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스네이프 교수가 저희들에게 그걸 가르쳐주도록 하지 말았어야죠." 해리가 화가
나서 록허트 교수의가방을 옆으로 툭 걷어차며 말했다.록허트 교수가 비굴한 모습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해리가 여전히 요술지팡이를 그에게 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록허트 교수가 무기력하게 말했다." "난 비밀의 방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운 좋은 줄 아세요." 해리가 요술지팡이 끝으로 록허트 교수를 위협해서 그를
일어서게 하며 말했다. "저흰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그리고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두요.가죠." 그들은 록허트 교수를 사무실에서 걸어나가게 한 뒤 가장 가까운
계단을 내려가,벽면에 쓰여진 메시지들이 반짝이고 있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모우닝
머틀의 화장실 문 앞으로 가게 했다.그들은 록허트 교수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다.해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모우닝 머틀은 맨 끝에 있는 변기 수조 위에 앉아 있었다.
"오,너구나." 그녀가 해리를 보자 말했다. "이번에는 뭘 알고 싶니?"
"네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 해리가 말했다.머틀의 표정이 금방
달라졌다.그렇게 자기 맘에 꼭 드는 질문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우으,참으로 지독했어." 그녀가 재미있게 말했다. "바로 여기서 일어났어.난 이 작은
화장실에서 죽었어.똑똑히 기억나.올리브 혼비가내 안경에 대해 놀리고 있어서 숨어
있었던 거지.그런데 문이 잠겨서 내가 울고 있었는데,그 때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그들은 이상한 말을 했어.색다른 언어였어.틀림없이 그랬던 것 같아.어쨋든,난
정말로 화나게 한 건 말을 하고 있는 애가 남자아이였다는 거였어.그래서 난 문을
열었지.그 애에게 남자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말하려고 말야.그런데 그리곤-" 머틀이
감정이 복받친 듯,얼굴이 반짝거렸다. "난 죽었어."
"어떻게?" 해리가 물었다.
"몰라." 머틀이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난 그저 한 쌍의 굉장히 큰 노란 눈을
보았던 것밖에 기억이 안나.온몸이 얼어붙는가 싶더니 어느새 둥둥 떠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녀는 몽롱한 얼굴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그 뒤 난 다시 돌아왔어.올리브
혼비를 괴롭히기로 굳게 마음먹었던 거지.물론,그 애는 내 안경을 놀렸던 걸 대단히
후회했어."
"그 눈을 정확히 어디서 봤니?" 해리가 물었다.
"저기 어디였을 거야." 머틀이 막연히그녀의 화장실 앞에 있는 세면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해리와론은 급히 그리고 갔다.록허트 교수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었다.그건 그저 보통 세면대처럼 .그들은 세면대 아래에 있는
수도관을 포함해,세면대 안쪽과 바깥쪽을 구석구석 살폈다.그러다 문득 해리는 이상한
문양을 보았다.구릿빛 수도 꼭지들 가누데 한 수도꼭지 옆에 아주 작은 뱀 한 마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수도꼭지는 고장났어.꼼짝도 안해." 그가 그걸 돌리려고 하자 머틀이 밝게
말했다.
"해리." 론이 말했다. "말 좀 해봐. 뱀의 언어로 말야."
"하지만-" 해리는 곰곰히 생각했다. 그가 뱀의 언어로 말했을 때는 진짜 뱀과
마주쳤을 때뿐이었다.그는 진짜 뱀을 상상하려고 애쓰며,그 작은 조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열어." 그가 말했다.그는 론을 바라보며,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냥 우리말이네." 론이 약간 실망한 듯 말했다.해리는 그 뱀이 살아있다고
믿으려고 애쓰며 다시 바라보았다.그가 머리를 움직이자,촛불 때문인지 그게 꼭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열어." 그가 말했다.그것뿐이었다.쉿쉿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그의 입에서 빠져
나갔고,갑자기 그 수도꼭지는 눈부시게 하얀 빛을 내더니 뱅뱅 돌기 시작했다.그리고
다음 순간,세면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사실 세면대가 아래로 툭 내려앉더니,사람
하나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을 만큼 굵고 커다란 수도관 하나가 나타났다.해리는
깜짝 놀라는 론을 다시 올려다보았다.그는 이미 마음을 결정했었다.
"난 저 아래로 내려갈 거야." 그가 말했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비밀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낸 이상,지니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희미한,실오라기같이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고 있는 이상 가야만 했다.
"나두." 론이 말했다.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는,내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록허트 교수가 희미하게 예전의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그저-" 그러나 그가 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론과 해리 모두
요술지팡이를 그 쪽으로 갖다댔다.
"선생님이 먼저 가세요." 론이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록허트 교수는 지팡이도 없이
창백한 얼굴로 그 입구로 다가갔다.
"얘들아." 그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이렇게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해리가그의 등을 지팡이로 쿡 찔렀다.록허트 교수가 수도관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난 정말로 그렇게 생각-" 그가 말하는 순간,론이 한번 툭 밀자,그가 쭈르르
미끄저려 내려갔다.해리도 얼른 뒤따라갔다.그는 천천히 수도관 안으로 들어간 뒤,손을
놓았다.그건 마치 끈끈하고,어둡고,끝이없는 미끄러움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사방으로 뻗어나간 더 많은 수도관들이 보였지만,그들이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큰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들은 비틀리고 빙빙 돌며 가파르게 내려갔다.학교의 지하
감옥보다도 더 깊숙한 곳으로 떨어지고 있는듯 했다.뒤에서는 론이 굴곡부에서 쿵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그 뒤,그가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걱정하기 시작했을 때
수도관이 평평해지면서 그 끝으로 튀어나왔다.그는 간신히 서 있을 수 있는 높이의
어두컴컴한 돌 터널의 축축한 바닥으로 쿵 하며 내려앉았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록허트 교수가 마치 우령처럼 하얀 점액으로 뒤덮인 채 일어서고 있었다.해리가 한쪽
옆으로 비켜 서자마자 론이 씽하고 수도관에서 나왔다.
"학교 밑으로 한참은 내려온 것 같아." 해리가 말하자,목소리가 어두컴컴한 터널에
울려 퍼졌다.
"어쩌면 호수 밑일지도 몰라." 론이 거무스름하고,끈적끈적한 벽을 힐끗 둘러보며
말했다.그들 셋은 돌아서서 앞의 어둠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루모스!" 해리가 지팡이에게 중얼거리자 그 끝에 다시 불이켜졌다. "자,어서."
해리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은 다같이 앞으로 출발했다.걸을 때마다 축축한
바닥을 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터널이 어찌나 어두웠던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축축한 벽에 비친 그들의 그림자가 지팡이 불빛 때문에 꼭 괴물처럼 보였다.
"잊지 마." 조심스럽게 걸어나가며 해리가 말했다. "뭔가 움직이면,곧바로 눈을
감아..." 그러나 터널은 무덤처럼 조용했다.갑자기 우두둑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지만,알고 보니 쥐의 두개골을 밟았던 것이었다.해리는 바닥을 보려고 지팡이를
아래로 내렸다.작은 동물의 뼈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지니가 어떤 모습으로
발견될까 상상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해리는 앞장서서 터널의 어두운 굴곡부를
돌아갔다.
"해리-저기에 뭔가가 있어..." 론이 해리의 어깨를 잡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그들은
꼼짝 않고 서서 바라보았다.뭔가 거대하고,구부러진 것이 터널 바닥에 누워있었다.
"자고 있는 건지도 몰라." 해리가 다른 두 사람을 흘끗 돌아보며 숨죽여
말했다.록허트 교수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해리는 다시 그것으로 고개를 돌렸다.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해리는 지팡이를 높이 들어올린 채로 눈을 가늘게 뜨고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그러나 바닥에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밝은 초록색의 거대한 뱀가죽만이 돌돌 말린 채로 공허하게 널브러져 있었다.그
허물을 벗었던 생물은 길이가 족히 6미터는 될 것 같았다.
"깜짝이야!" 갑자기 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그들 뒤에서 별안간 뭔간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는데 알고 보니 질데로이 록허트 교수가 털썩 주저앉아버렸던
것이었다.
"일어나세요." 론이 지팡이를 록허트 교수에게 들이대며 날카롭게 말했다.록허트
교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일어섰다-그러더니 론에게 와락 달려들어,그를 땅바닥으로
넘어뜨렸다.해리가 펄쩍 뛰어 앞으로 갔지만,너무 늦고 말았다-록허트 교수가 론의
요술지팡이를 들고 얼굴에 다시 희미한 미소를 띠면서 헐떡이며 일어서고 있었다.
"모험은 이제 끝이야,얘들아!" 그가 말했다. "난 이 뱀가죽을 학교로 조금 갖고
올라가.그 여자아이를 구하기엔 너무 늦었었다고,그리고 너희 둘은 토막토막난 그
아이의 시체를 보고 그만 비참하게도 미쳐버렸다고 말해야겠다- '기억력이여 안녕'
이라고 말하렴!" 그는 스카치테이프로 붙인 론의 요술지팡이를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린 뒤 "오블리비아테!" 라고 외쳤다.그러자 지팡이가 작은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위력으로 폭발했다.터널 천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해리는 얼른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떨어지는 돌덩이들을 피해 쏜살같이 돌돌 말려 있는 뱀가죽 위로
달려갔다.다음 순간,커다란 돌덩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면서 앞을 가로막았다.
"론!" 그가 소리쳤다. "괜찮니? 론!"
"난." 돌덩이들 뒤에서 소리를 죽인 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괜찮아-하지만 이
멍텅구리는-내 지팡이가 또 엉뚱하게 뒤로 발사됐나봐." 둔하게 퍽 하더니 "야야!"
하는 큰소리가 났다.론이 록허트 교수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차는 소리 같았다.
"이제 어떡하지?" 론의 목소리가 절망적으로 들렸다. "지나갈 수 가 없어-한참은
걸릴 거야..." 해리는 터널 천장을 올려다보았다.거대한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그는 이
돌들처럼 큰 건 마법으로 깨뜨려본 적이 한번도 없었지만,지금은 그걸 깨는 연습을
하기엔 좋은 시기가 아닌 것 같았다.-잘못했다간 터널 전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돌덩이들 뒤에서 또 한번 퍽. "아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지니는 비밀의 방에 벌써 몇 시간 째 갇혀 있었을 것이다... 할 일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거기서 기다려." 그가 론에게 소리쳤다. "록허트 교수와 함께 기다려.난 계속 갈
테니까... 내가 만약 한 시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난 이 돌덩이들을 좀 옮겨볼게." 론이 말했다.그는 목소리가 덜리지 않게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네가 다시 지나올 수 있도록 말야.그리고 해리-"
"그럼 잠시 후에 보자." 해리가 떨고 있는 론에게 용기를 볼어넣어 주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그리고 그는 혼자서 거대한 뱀가죽을 지나 출발했다.조금 가자 론이
돌들을 옮기려고 애쓰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터널은 구불구불했다.몸
여기저기가 몹시 욱신거렸다.터널이 빨리 끝나길 바랐지만,한편으론 또 그렇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마침내 살금살금 모퉁이를 하나 더 돌아갔을 때,뒤엉킨 뱀 두 마리가
새겨진 단단한 벽이 눈앞에 나타났다.뱀들의 눈에는 빨갛게 반짝반짝 빛나는 커다란
에메랄드가 박혀있었다.해리는 가까이 다가갔다.목이 탔다.이 돌 뱀들은 진짜 살아있는
것처럼 눈이 이상하게 생생하게 보였다.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는 것
같았다.그가 목을 가다듬자,에메랄드 눈들이 깜박이는 것 같았다.
"열려라." 해리가 낮고 희미하게 뱀처럼 쉿 소리를 내며 말했다.그러자 벽이 지끈
하며 열리면서 뱀들이 갈라지더니 눈앞에서 스르르 사라졌다.해리는 벌벌 떨면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