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피날레
“내가 어떤 목적으로 일반 승객들이 이용하는 통로를 이용하려는지 잘 생각해 봐.”
무세베니 비서실장은 마사카 부통령의 의도를 어렴풋이 알아챘다.
우간다의 관문인 엔테베 국제공항은 이용하는 승객들에 비해서 공항 규모가 상당히 작은 편이다.
하여 공항을 증개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 H&J 컨설팅에 일감을 넘겨줄 예정에 있었다.
공항을 증개축하면 필수적으로 공항 운영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현재 이용객 만족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곳이 한국의 인천국제공항이었다.
하여 이번 방문에 직접 공항 운영시스템을 직접 체험할 생각인 것이다.
“저는 부통령님이 그렇게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제 알면 됐어. 수행원들한테도 인천국제공항 구석구석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라고 지시해.”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말이야.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철도 건설 공사를 수주할 수 있을까?”
무세베니 실장은 지난 8월초에 H&J 컨설팅이 철도 건설공사와 관련한 입찰공고를 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설공사를 수행한 실적을 근거로 우선협상 대상 자격을 부여한다고 하는 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즉시, 정명훈 사장에게 전화 걸어서 의도가 무엇인지 물었는데, 그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 후, 꾸준히 추이를 살펴보고 있지만, ACS를 품에 안은 YCM 건설 컨소시엄이 현재로서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저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합니다.”
“YCM 건설 컨소시엄이 ACS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철도 건설 공사를 수주할 거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가 뭘까?”
“저도 잘 모르겠…….”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무세베니 실장이 끝말을 흐렸다.
“갑자기 왜 그래?”
“부통령님, H&J 컨설팅의 의도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빨리 얘기해 봐.”
“YCM 건설 컨소시엄이 파트너로 끌어들인 CTG와 CSCEC는…….”
두 사람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여객기는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 * *
입국장 문을 열고 나오는 마사카 부통령 일행에게 다가간 정명훈 부회장은 환영의 인사말을 건넸다.
“마사카 부통령님, 대한민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정 부회장님, 저희를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문두야 부통령과 루사토 부통령은 도착했습니까?”
“두 분은 어제 오후에 도착하셨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곳은 혼잡하니까, 나머지 대화는 호텔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나눴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호텔로 향하는 리무진에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명훈 부회장이 궁금함을 담아서 질문을 던졌다.
“마사카 부통령님, VIP 전용 통로를 이용하지 않은 이유가 특별히 있습니까?”
“인천국제공항의 운영 시스템을 견학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엔테베 국제공항의 증개축 공사를 저희한테 맡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마사카 부통령이 의도한 바가 있다는 듯 끝말을 흐렸다.
그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정명훈 부회장이었다.
“엔테베 국제공항 증개축 공사비용을 저희 H&J Investment가 투자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래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우간다로 돌아가시기 전에 인천 공항공사 관계자들과 미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장 부회장님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정 부회장님, 이제 다른 얘기를 잠깐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공항에서 송 회장님을 만나 보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송훈석 회장은 지난 9월 초에 스페인에 출장 다녀온 후, 칩거에 들어간 상태였다.
정명훈 부회장은 그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얘기해 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회사 내부적으로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만나 볼 수 있겠지요?”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겁니다.”
* * *
그 시각.
최성진 회장은 집무실에서 완커건설의 천쥐펑 부회장과 통화 중에 있었다.
“천 부회장님, 언제 우리나라에 입국하실 예정입니까?”
[세 분의 회장님과 함께 오늘 저녁 무렵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는 지금 천쥐한 완커건설 회장, 리아오윈 CSCEC의 회장, 리위춘 CTG 회장을 언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분들을 위해서 오늘밤에 성대한 파티를 벌여야겠는데요?”
[하하,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나저나 송훈석 회장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지난 9월에 저희한테 일격을 당한 이후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저희 뒤통수를 치려고 수작부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실 최성진 회장도 그 점을 의심하고, 지금까지 대한건설과 VINCH를 꾸준히 감시하고 있었다.
“저희가 확인해 본 결과, 아닌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렇게 장담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ACS를 저희한테 빼앗긴 이후로 대한건설 컨소시엄은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 오전 10시가 입찰 마감인데, VINCH 측은 아무도 우리나라에 입국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한건설 컨소시엄은 입찰을 포기했다고 보는 게 맞을까요?]
“저희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천 부회장님, 테베즈 회장을 맞이하러 공항에 가야 하기 때문에 전화를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녁때 뵙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최성진 회장은 박철헌 사장에게 지시 내렸다.
“오늘밤에 거하게 한잔해야 하니까, 룸살롱을 예약해 놓으라고.”
“회장님, 축하주는 내일 마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늘은 축하주가 아니라 컨소시엄 멤버들이 화합하는 차원으로 술을 마시는 거야.”
“하여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송 회장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 * *
같은 시각.
송훈석 회장은 청주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페키르 회장을 비롯한 VINCH 임직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송 회장님, 굳이 이렇게 하면서까지 YCM 건설 컨소시엄의 눈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송훈석 회장도 페키르 회장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겨울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꿔먹었다.
“전쟁은 적이 방심하면 할수록 크게 승리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오늘은 이곳 근처에 있는 온천에서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가십시다.”
윙윙―
그때, 서동호 실장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상대방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회장님, 방금 전에 장대산 사장과 통화했는데, 오늘 저녁때 중국에서 완커건설 CTG, CSCEC의 회장이 우리나라에 입국한답니다.”
“후후후, 내일 볼만한 일이 많이 벌어지겠군.”
다음 날 오전.
느긋한 마음으로 일행들과 함께 H&J 컨설팅 본사에 위치한 입찰 장소의 문을 열고 들어간 최성진 회장은 정말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송훈석 회장, 페키르 회장을 비롯한 대한건설 컨소시엄의 관계자들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것은 자기만이 아니었는지 천쥐펑 부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최, 최 회장님, 저들이 입찰을 포기한 게 맞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계십시오. 제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해 보고 오겠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천쥐펑 부회장을 달래놓고 최성진 회장은 곧장 송훈석 회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송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입찰을 포기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나 봅니다?”
“지난 9월 초에 ACS를 YCM 건설 컨소시엄에 빼앗긴 이후에 입찰을 접으려고 했는데, 누군가 기막힌 정보를 알려 주는 바람에 심기일전해서 입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그래 봐야 이미 게임은 끝이 났습니다.”
“하하하, 과연 그럴까요?”
최성진 회장은 송훈석 회장과 6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행동 양식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릴 때에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려는 순간에 박철헌 사장이 빠르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회장님, 테베즈 회장님이 급하게 하실 말씀이 있답니다.”
“알았어.”
짧게 대답한 후, 송훈석 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술이나 한잔하십시다.”
“그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하십시다.”
송훈석 회장과 헤어진 최성진 회장은 테베즈 회장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한테 하실 말씀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최 회장님, 느낌이 좋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말씀입니까?”
“페키르 회장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은 VINCH의 고문변호사입니다. 입찰에 질 것을 빤히 알고 있는데, 고문 변호사를 데리고 온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페키르 회장이 수행원들을 저렇게 많이 데리고 온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테베즈 회장의 뒤를 이어서 안토니 사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최성진 회장도 내심 당황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대화를 이어 갔다.
“안토니 사장님은 저들이 철도 건설 공사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에 입국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고 판단한 박철헌 사장이 재빨리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토니 사장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저들이 우리나라에 입국한 게 아닐까요?”
“저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느낌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결과 발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다.”
“그래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정해진 오전 10시가 되자, 문두야 부통령, 마사카 부통령, 루사토 부통령과 정명훈 부회장을 비롯한 H&J 컨설팅의 경영진들이 무대 위에 설치된 문을 열고 들어와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철도 건설 공사 입찰을 책임지고 있는 추성민 부사장이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 전원을 켜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공사 입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추성민 부사장입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끝마친 추성민 부사장은 입찰진행 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세 나라를 연결하는 철도 건설 공사에는 대한건설 컨소시엄과 YCM 건설 컨소시엄 두 곳만 참여했습니다. 어제 오후에 두 컨소시엄이 제출한 서류들을 면밀하게 검토해 본 결과,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공사 실적은 YCM 건설 컨소시엄이 대한건설 컨소시엄보다 250억 달러 가까이 많았습니다.”
“와아!”
YCM 건설 컨소시엄 측의 사람들이 커다랗게 환호성을 질렸다.
“그런데…….”
순간, 넓은 대강당에 조용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데’는 부정의 의미가 담겨 있는 단어였으니까.
추성민 부사장은 침묵을 즐기려는 듯 청중을 천천히 훑어보고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부터는 정명훈 부회장님께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명훈 부회장은 객석을 향해 정중한 자세로 인사하고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 전원을 켰다.
“어젯밤에 두 컨소시엄 측이 제출한 자료들을 면밀하게 검증하던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측의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어떤 이의였습니까?”
“중국의 국영 건설사인 CTG와 CSCEC는 세 나라에서 퇴출됐기 때문에 철도 건설 공사를 수행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는 듯 최성진 부회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이유는 저한테 묻지 마시고, CTG와 CSCEC 측의 관계자에게 물어보십시오.”
“…….”
“YCM 건설 컨소시엄 측의 명확한 해명이 없으면, 저희는 실격처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명훈 부회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아오윈 회장과 리위춘 회장이 자리를 박차고 대강당 밖으로 나갔다.
“아이고…….”
무슨 상황이 닥쳤는지 대충 감지한 최성진 부회장은 탄식을 내뱉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송훈석 회장은 서동호 실장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시 내렸다.
“저 인간의 비리 자료를 검찰에 넘겨.”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