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생각지 못한 선물 (1)
“쑹 장관,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야?”
자오린 부총리는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깨작깨작 젓가락질하고 있는 쑹쩐밍 장관에게 궁금함을 담아서 물었다.
“…없습니다.”
“얼굴에 걱정거리가 있다고 쓰여 있는데도, 거짓말할 거야?”
사실 쑹쩐밍 장관은 두 가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의 걱정거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오린 부총리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일부러 아침밥을 깨작깨작 먹었더니만, 드디어 그가 관심을 보여 온 것이다.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자오린 부총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실은 두 가지가 있기는 합니다.”
“뭔지 얘기해 봐.”
“커미션 계약서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주석님께서 대노하실 것 같아서 그럽니다.”
“또 하나는?”
“제가 자국에 엄청난 손해를 끼쳤는데, 주석님이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사실 자오린 부총리도 그와 비슷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커미션 계약서에 시쥔량 주석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가 있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른 아침에 시쥔량 주석에게 전화 걸어서 이 문제에 대해 보고했고 장시간 논의 끝에 해결방안을 도출한 상태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 커미션 계약서에는 R&C 에너지와 주석님이 선정한 가공의 인물만 올라갈 예정이야.”
“부총리님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네와 나는 R&C 에너지를 통해서 커미션을 받을 예정이야.”
“도바초프 사장이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R&C 에너지가 수령하게 될 커미션 계좌를 내가 관리할 예정이야.”
즉, 커미션을 자오린 부총리가 분배하겠다는 뜻이었다.
쑹쩐밍 장관은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자칫하다가 자신에게 배정된 커미션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으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자네한테 배정된 커미션을 내가 떼어먹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은데, 자동 계좌이체를 신청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저는 부총리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 친구야,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거짓말을 해.”
“…….”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두 번째 걱정거리는…….”
링링링.
그때, 테이블위에 놓여 있던 자오린 부총리의 핸드폰이 벨소리를 토해 내는 바람에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핸드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재빨리 침실로 이동해서 상대방과 통화를 시작했다.
“정 사장님, 아침부터 어쩐 일이십니까?”
[부총리님의 은행잔고를 늘려 줄 기발한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연락드렸습니다.]
“하하, 언제나 듣기 좋은 소리네요. 어떤 아이디어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중국이 필요로 하는 자원들을…….]
정명훈 사장의 얘기를 듣고 있던 자오린 부총리는 일석삼조라는 단어가 불쑥 떠올랐다.
자국이 부족한 자원들을 러시아에서 추가로 수입하게 되면, 자원 수급의 불안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그에 대한 결과로 시쥔량 주석을 비롯한 자신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질 수 있고.
거기다가 숙청당할 운명에 처해 있던 쑹쩐밍 장관도 기사회생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후후후, 쑹 장관이 좋아하겠군.’
속으로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는 사이에 정명훈 사장의 설명이 끝이 났다.
[…아이디어는 제가 아닌 도바초프 사장이 제안한 것으로 처리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드리겠습니다. 정 사장님이 저한테 베풀어 준 은혜는 언젠가 갚을 날이 있을 겁니다.”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오후 4시에 뵙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자오린 부총리는 특유의 버릇대로 소파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며 장고에 들어갔다.
“내 입신양명보다는 위기에 처해 있는 쑹 장관부터 살려 주는 게 맞겠지?”
한참 만에 침실 밖으로 나온 자오린 부총리는 쑹쩐밍 장관을 응접실로 불러서 대화를 시작했다.
“내가 방금 전에 도바초프 사장과 통화한 내용을 알려 줄 테니까, 적당히 살을 붙여서 자네의 공적으로 둔갑시켜 보라고.”
“네, 알겠습니다.”
“사실은 내가 도바초프 사장한테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자원들 중에서 남는 자원들을 우리나라가 수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예상한 대로 쑹쩐밍 장관이 깊은 호기심을 보이며 물어왔다.
“도바초프 사장에게 내 의사를 전달받은 요키치 장관은 지체 없이 자고에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결국 오늘 아침에 승인이 떨어졌다고 하더군.”
“정말 잘됐군요.”
“이제부터 내가 시나리오를 얘기해 줄 테니까, 숙지하고 있으라고.”
“네, 알겠습니다.”
“쑹 장관이 요키치 장관에게…….”
자오린 부총리는 정명훈 사장에게 전달받은 시나리오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
“…내가 판을 깔아 줄 테니까, 뒷마무리는 자네가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쑹쩐밍 장관의 씩씩한 대답을 들은 자오린 부총리는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자 부총리, 러시아는 아침 시간 아닙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주석님께 긴급하게 보고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얼른 얘기해 보세요.]
“사실은 어젯밤 늦게부터 오늘 새벽까지 러시아 측과 비밀협상이 진행됐었습니다.”
[비밀협상이라고요?]
호기심이 잔뜩 담긴 시쥔량 주석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네. 그렇습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나라들이 탈퇴함으로 인해서 수급이 불안해진 자원들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기 위한 비밀협상이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부터는 러시아 측과 협상을 진두지휘하던 쑹 장관에게 보고받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빨리 바꿔 주세요.]
자오린 부총리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쑹쩐밍 장관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주석님, 전화 바꿨습니다.”
[쑹 장관,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얘기해 보세요.]
싸늘한 시쥥량 주석의 목소리.
순간, 쑹전밍 장관은 TTM을 끝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지어질지 눈치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자.’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크게 심호흡하고 시쥔량 주석의 질문에 대답했다.
“제가 어제 오후에 요키치 장관에게 러시아의 잉여 자원들을 우리나라가 수입할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다만,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들도 잉여 자원들을 우리나라에 수출하면 좋은 것 아닙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왜요?]
드디어 시쥔량 주석이 미끼를 물었다.
이제는 그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낚싯줄을 살살 끌어당기는 일만 남았다.
“요키치 장관은 러시아도 미국 놈들로부터 압력을 심하게 받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놈들이라고요!]
기대한 대로 시쥔량 주석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네, 주석님. 미국 놈들은 자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나라들의 탈퇴를 지속적으로 유도하고 있으며 러시아 등의 자원 부국들에도 우리나라에 자원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아…….]
처해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듯 시쥔량 주석이 한숨을 내뱉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러시아 측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자는 온건파와 거부하자는 강경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불행스럽게도 자고에프 대통령은 온건파의 수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네요.]
“요키치 장관과 지루한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에 힌트를 하나 얻었는데, 자고에프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은밀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는 나도 자 부총리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기 쉽겠네요. 제가 요키지 장관에게 자고에프 대통령의 비자금을 늘려 주겠다고 제안했더니만, 살짝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자원들의 가격을 인상해 주기로 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몇 퍼센트를 인상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까?]
이제 9부 능선까지 넘었다.
쑹쩐밍 장관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바통을 자오린 부총리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주석님, 가격 문제는 제가 결정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이후부터의 협상 내용은 자 부총리와 통화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전화를 바꿔 주세요.]
쑹전밍 장관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자오린 부총리는 소파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왔다.
“저는 지금 별도의 공간으로 이동해서 주석님과 통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커미션 때문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결정됐는지 얘기해 보세요.]
“러시아 측은 4% 인상을 요구했고, 저하고 쑹 장관은 2% 이상 인상해 줄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결국 지루한 협상 끝에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모든 자원에 대해서 2% 인상해 주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커미션 1%는 어떻게 배분할 생각입니까?]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로 인해서 계획의 성패가 달려 있기 때문에.
“1% 모두를 주석님의 몫으로 배분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내가 너무 염치없으니까, 0.5%만 나한테 배분하세요.]
“주석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 부총리의 수고에 대한 보상이니까, 은혜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네요.]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김에 한 번 더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까?”
[얘기해 보세요.]
“어젯밤의 비밀협상은 쑹 장관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쑹 장관을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다.]
“주석님의 용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알았어요. 나중에 통화하십시다.]
딸깍.
전화를 끊은 자오린 부총리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후후후, 0.5%는 내가 모두 챙겨도 되겠지?”
* * *
“한 부사장, 지금쯤 결판이 났겠지?”
호영과 겨울은 안동소주 200병을 인수받기 위해서 공항으로 이동 중에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진즉에 결판났겠지.”
“어떻게 결판났을까?”
“욕심 많은 자 부총리가 이런 호기를 그냥 넘기지 않았을 것 같다.”
“10%도 높은데, 가격을 또 올린다고?”
“아마도.”
“잠깐만 기다려 봐.”
겨울과 대화를 중단한 호영은 요키치 장관에게 전화 걸어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요키치 장관이 뭐라고 하든?”
“모든 자원에 대해서 유예기간 없이 국제가격 대비 12% 인상해 주는 것으로 결정됐단다.”
“만약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멍청한 협상을 진행했으면 나라가 들썩들썩했겠지?”
“어디 들썩들썩할 뿐이겠냐?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나라로 돌아오지도 못 할 거야.”
“하긴… 그렇지. 그나저나 자오린 부총리는 커미션을 얼마나 챙겨 갈까?”
“내가 어젯밤에 도바초프 사장한테 물어봤는데, 2.5%라고 하더라. 오늘 커미션으로 1%가 추가됐으니까, 적어도 0.5%는 챙겼겠지.”
“자 부총리는 어디에 사용하려고 악착같이 커미션을 챙기려고 노력할까?”
“내가 오늘 TTM장에서 물어보고 얘기해 줄게.”
“에이, 싱거운 놈. 잘도 얘기해 주겠다.”
“TTM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뭐하고 해도 자 부총리이겠군.”
* * *
한편, 정명훈 사장은 늘어난 커미션 1%에 대한 배문 문제 때문에 블로딘 총리와 통화 중에 있었다.
[정 사장님, 자고에프 대통령님께서 결정한 내용을 전달해 드릴 테니까, 저한테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고에프 대통령님께서는 0.5%는 H&J 컨설팅에 배분하고, 0.5%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한 부사장께 배분하라고 지시내리셨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 정명훈 사장이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자원수출을 늘리는 데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식사에 자고에프 대통령님도 참석하신다고 하니까, 참고하고 계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블로딘 총리와 통화를 끝낸 정명훈 사장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한 부사장이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았다며 좋아하겠군.”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