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메인게임 (1)
쾅!
거칠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자오린 부총리는 다짜고짜 판젠둥 국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판 국장, 시원한 얼음물 좀 가지고 와.”
“네, 부총리님.”
자오린 부총리는 쑹쩐밍 장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성큼성큼 소파로 이동해서 상석에 앉았다.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쑹쩐밍 장관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부총리님, 상황이 좋지 않습니까?”
“알면서 왜 묻나?”
“저 때문에…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정 사장을 만나서 설득해 봤는데, 쑹 장관에 대한 감정이 매우 격해 있는 바람에 제대로…….”
그때, 판젠둥 국장이 얼음물을 가지고 오는 바람에 자오린 부총리의 얘기는 자동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는 얼음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후,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TTM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
“어떤 대책을 말하는 겁니까?”
“TTM의 협상대표를 쑹 장관이 아닌 판 국장이 맡는 게 어떨까 싶어.”
쑹쩐밍 장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판젠둥 국장에게 대표를 맡긴다는 의미는 에너지 장관 자리를 내놓으라는 뜻과 같은 의미였으니까.
에너지 장관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동안 노력한 일들이 한순간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권 실세에게 상납한 뇌물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에너지 장관 자리에서 내려올 수는 없다.
“저는 부총리님의 말씀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이 친구야, 무작정 반대만 하지 말고,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얘기해 봐.”
“아예 부총리님이 대표를 맡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이! 일국의 부총리인 나보고 일개 컨설팅 회사의 대표를 상대하라는 말이야!”
“하아…….”
대책이 없다는 듯 쑹쩐밍 장관이 커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쑹 장관,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번 한 번만 판 국장한테 양보하는 게 어때?”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사실 자오린 부총리는 쑹쩐밍 장관이 수석대표 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이유는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함이었다.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이쯤이면 충분하다 생각하고, 퇴로를 살짝 열어 주기로 결정했다
“에이, 몹쓸 친구 같으니. 내가 한 가지 생각해 놓은 방안이 있어. 끝까지 듣고 나서 의견을 말해 봐.”
“네, 말씀하십시오.”
“우리나라도 바이어 맨데이트를 고용하면 어떨까?”
“부총리님, 그 아이디어 끝내주는데요?”
방금 전까지 침울했던 쑹쩐밍 장관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바이어 맨데이트를 고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어.”
“어떤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커미션을 지급해야 해.”
“네? 커미션은 셀러가 지급하는 것이 관례 아닙니까?”
자오린 부총리는 쑹쩐밍 장관이 이런 질문을 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적당한 대답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TTM을 시작할 때 바이어 맨데이트를 데리고 갔어야지.”
“하긴… 부총리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나는 바이어 맨데이트로 요키치 장관의 매형이 운영하고 있는 R&C 에너지를 생각해 놓고 있는데, 쑹 장관은 어떻게 생각해?”
쑹쩐밍 장관은 자오린 부총리의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였다.
친구인 도바초프 사장을 바이어 맨데이트로 선정해 놓고, 커미션의 일부를 나눠 먹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커미션의 0.1%만 받아도 연간 1억 8,0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인데, 모두 뒷주머니로 챙기겠다는 속셈이구먼. 욕심 많기로 소문난 사람이 0.1%만 챙길 리는 없을 것이고… 부총리님, 저한테도 일부 나눠 주시면 안 됩니까?’
속으로 입맛을 다시며 자오린 부총리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는 부총리님의 의견에 적극 찬성합니다.”
“커미션은 우리나라가 지급해야 하니까, 쑹 장관이 주석님께 허락을 받도록 하라고.”
“네?! 제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라는 듯 쑹쩐밍 장관이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사고 친 사람이 뒷마무리까지 해야지, 그럼 누가 하나?”
“부총리님, 저는 정말 자신 없습니다.”
“내가 뒤에서 엄호사격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주석님께 컨펌받아 봐.”
“…네, 알겠습니다.”
쑹쩐밍 장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서 주석님께 전화 드리는 것은 조금 그러니까, 내 방으로 들어가자고.”
“네, 부총리님.”
방으로 들어온 쑹쩐밍 장관은 크게 심호흡한 후, 시쥔량 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반에는 심각하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아서인지 쑹쩐밍 장관의 표정 변화는 크게 없었다.
하지만 쑹쩐밍 장관이 바이어 맨데이트에게 커미션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를 꺼내는 순간,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시쥔량 주석이 버럭버럭 내지르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자오린 부총리의 귀에 들려올 정도였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한 자오린 부총리는 뒷수습을 위해서 핸드폰을 건네 달라는 의미로 쑹전밍 장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은 자오린 부총리는 시쥔량 주석에게 사과의 말부터 건넸다.
“주석님, 모든 것이 제 탓입니다.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자 부총리가 직접 수석대표를 맡지 않은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듯 시쥔량 주석의 목소리에 냉기가 넘쳐났다.
“TTM 장소에 블로딘 총리가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제가 협상대표를 맡았을 겁니다.”
[블로딘 총리와 협상대표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주석님도 알고 계시다시피 러시아와의 TTM은 자국에 지극히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가 TTM에 참석했다는 의미는 자국에 망신 주겠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 제가 셀러 맨데이트한테 개망신당하면, 자국의 위신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큼,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합시다.]
핑계가 그럴 듯 했는지 시쥔량 주석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큰 고비를 넘었다고 판단한 자오린 부총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주석님.”
[그건 그렇고, 바이어 맨데이트를 굳이 선정해야 합니까?]
“셀러 측은 쑹 장관과 협상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요. 바이어 맨데이트가 어떤 사람인지 나한테 얘기해 보세요.]
“바이어 맨데이트는 모스크바에서 R&C라는 에너지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요키치 장관의 매형으로…….”
자오린 부총리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 자기와 도바초프 사장과의 관계는 밝히지 않았다.
[자 부총리, 그를 이용해서 러시아 측의 양보를 받아 낼 생각입니까?]
“주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만 물어봅시다. 쑹 장관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자오린 부총리는 시쥔량 주석의 질문에 두 가지 의도가 숨어 있다고 판단했다.
TTM 대표를 쑹쩐밍 장관에서 다른 누군가로 교체시키려는 의도와 자기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파악해 보려는 의도.
‘주석님, 저도 산전수전 모두 겪고 부총리 자리를 차지한 사람입니다. 저를 너무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시쥔량 주석의 질문에 대답했다.
“주석님, 고작 전투에서 한 번 패했다고 장수를 바꾸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입니다.”
반면에 쑹쩐밍 장관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천만다행으로 자오린 부총리가 자신을 옹호해 줘서 장관자리는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부총리님, 이 은혜는 언젠가 갚도록 하겠습니다.’
쑹전밍 장관이 고마움에 눈시울을 붉히는 사이에도 두 사람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내일 오전에 TTM을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TTM 중간중간에 통화하십시다.]
“네, 주석님. 들어가십시오,”
딸깍.
자오린 부총리가 전화를 끊자,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쑹쩐밍 장관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쑹 장관, 지금 뭐하는 거야?”
“부총리님, 저를 살려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여기에 자네를 죽이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저는 바보 멍청이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부총리님을 주군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자오린 부총리는 몹시 난감했다.
쑹쩐밍 장관을 수하로 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 내기 위해서는 아직 그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할까 짧게 생각한 후, 말을 이어 나갔다.
“쑹 장관, 내가 며칠 동안 생각해 보고 대답해 줘도 되겠지?”
“네, 알겠습니다.”
“이제 일어나게. R&C 에너지의 도바초프 사장을 만나러 출발하자고.”
“네, 부총리님.”
* * *
그 시각.
모스크바 시내에 위치한 R&C 에너지 사장실에서는 겨울 일행과 블로딘 총리, 요키치 장관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자오린 부총리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 사장님, 아직까지 자 부총리한테서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시쥔량 주석에게 컨펌받는 데 어려움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시 주석이 컨펌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자 부총리가 호언장담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드르륵―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도바초프 사장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는 누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고, 동시에 사장실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상대방과 짧게 통화한 도파초프 사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모두에게 통화 내용을 알렸다.
“…30분 정도 후에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처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거 알고 있지?”
“매형, 일생일대에 한 번밖에 오지 않을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때, 겨울이 할 말이 있다는 듯 발언권을 요청했다.
“도바초프 사장님, 쑹 장관이 커미션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나중으로 미루셔야 합니다.”
“굳이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요?”
예상한 대로 도바초프 사장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커미션 계약서를 작성해 놓는 것이 안전하고 좋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커미션 비율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바이어 맨데이트 역할을 수행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확인서 정도를 받아놓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팁을 드리면…….”
겨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요키치 장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커미션 비율을 높이려면 없는 말도 만들어 내야 할 판인데, 사실만을 곧이곧대로 대답하라니.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 없어서 겨울의 설명을 끊고 이유를 물었다.
“쑹 장관은 욕심도 많을뿐더러 의심도 상당히 많습니다. 만약에 도바초프 사장님이 없는 말을 만들어 내면, 의심을 품고 반드시 검증 작업에 돌입할 겁니다.”
“사실대로 얘기해 주면, 커미션 비율을 높일 수 없잖아요.”
“사실 커미션은 2.5% 이상 받아 낼 수 있지만, 나중을 위해서 아껴 두고 있습니다.”
“저는 한 부 사장님이 어떤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커미션을 계산하는 방식은…….”
겨울은 생각해 놓고 있던 아이디어를 차분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꺼내 놓았다.
“저는 그렇게 기막힌 묘안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폭탄은 저희 사장님께서 터트릴 예정이니까, 뒷수습은 도바초프 사장님께서 해 주시면 됩니다.”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도바초프 사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부사장님, 커미션 비율도 올랐는데 제 몫을 조금 더 늘려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문제는 제가 아니라 자 부총리님과 상의하셔야 할 듯합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커미션 비율을 올리는 것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이 점을 반드시 명심해 주십시오.”
“그야 물론이지요.”
똑똑.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오린 부총리 일행이 빌딩 로비에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드디어 메인게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