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전력증강 프로젝트 (2)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싱 총리가 질문을 던졌다.
“총리님, 저 보다는 한국디펜스 측의 얘기를 들어 보시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정명훈 사장이 안정빈 사장에게 뜨거운 감자를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흠흠.”
안정빈 사장은 모든 사람들이 시선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일부러 헛기침을 한 후,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2년 전에 저희 회사는 인도 육군에 K―9 자주포 100문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중에 10문은 저희가 직접 인도 육군에 공급하고, 나머지 90문은 L&T가 저희로부터 기술 이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계약 체결 후, 저희는 L&T 측에 기술 이전을 위해서 기술자를 파견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어느 날, L&T에 출장 보낸 책임 기술자가 긴급하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안정빈 사장이 일부러 말을 끊자, 싱 총리가 곧바로 반응했다.
“안 사장님, 어떤 내용의 전화였습니까?”
“K―9 자주포가 최상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격에 맞는 부품들을 사용해야 하는데, L&T 측은 규격에 맞지 않는 부품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전화였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싱 총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L&T 측에 규정 부품을 사용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시늉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규정 부품을 사용하지 않은 K―9 자주포가 생산돼서 사고라도 발생하면, 저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인도 육군에 K―9 자주포 200문을 수출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L&T 측과는 더 이상 기술협력 할 수 없습니다.”
“하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싱 총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메흐타 장관이 사과의 말부터 꺼냈다.
“총리님, 못난 모습을 보여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요.”
싱 총리는 그의 사과를 가볍게 일축하고, 정명훈 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정 사장님, 저희끼리 소회의실에서 대책 회의를 했으면 합니다.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책을 논의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쾅!
싱 총리는 자리에 앉아 마자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쳤다.
이와 동시에 소회의실에는 시베리아의 북극한파가 몰아닥쳤다.
메흐타 장관 등은 죄지은 사람들처럼 고개를 바닥으로 숙였다.
싱 총리는 화가 전혀 풀리지 않았다는 듯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메흐타 장관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L&T가 K―9 자주포를 생산할 수 있던 배경이 무엇입니까?”
“죄송합니다만, 2년 전에는 제가 국방부장관이 아니라 라스푸인 상원의원이었습니다.”
“전혀 내용을 모른다는 뜻입니까?”
“일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라서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만지히 국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총리님, 2년 전에 제가 실무자였기 때문에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습니다.”
“빨리 얘기해 보세요.”
“당시에 저희는 한국디펜스로부터 K―9 자주포의 부품을 공급받아서 HINDRA라는 방산기업에서 조립생산하기로 결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라스푸인 전 장관이 기술이전 방식으로 변경시켰고, 업체 또한 L&T로 일방적으로 변경시켜 버렸습니다.”
“라스푸인 전 장관이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술이전 방식이 조립생산 방식보다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L&T의 최대주주가 라스푸인 전 장관의 사촌 형이라는 것도 한몫 작용했다고 판단됩니다.”
“하아…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다니.”
싱 총리가 또다시 한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사이 국장이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 발언권을 요청했다.
“만지히 국장, L&T에서 규격 외의 부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고,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점 정도만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말하는 겁니까?”
“L&T는 올해 4월 말까지 K―9 자주포 1차분 45문을 육군에 인도했어야 합니다만, 아직도 인도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데사이 국장은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단숨에 이해했다.
한국디펜스 측이 L&T가 규격 외의 부품을 사용한 것을 문제 삼아서 검수를 거부하고 있는 중이리라.
검수 거부 사유가 명확했기 때문에 한국디펜스 측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
원인을 파악했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였다.
“만지히 국장, L&T가 K―9 자주포에 대한 인도를 지연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조금 전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존에 생산된 K―9 자주포를 분해해서 규격 부품으로 교체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납기가 얼마나 늦어질까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L&T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지히 국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싱 총리가 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메흐타 장관,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네, 말씀하십시오.”
“L&T와 체결했던 계약은…….”
* * *
한편, 회의실에서는 호영이 케냐의 루사토 부통령과 통화하고 있었다.
[정 이사님, 진짜로 고철 값보다 조금 비싼 가격으로 T―72 전차를 수입할 수 있습니까?]
“싱 총리께서 직접 언급하셨으니까, 믿으셔도 될 겁니다.”
[우리나라가 몇 대까지 수입할 수 있을까요?]
케냐는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들에 비해서 제법 치안이 안정되어 있어서, 많은 숫자의 T―72 전차가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루사토 부통령은 상당히 많은 숫자의 T―72 전차를 수입하고 싶어 하는 뉘앙스를 보이고 있었다.
호영은 이유가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소말리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테러 단체들로부터 막심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군대는 테러 단체들을 토벌할 계획을 진즉에 수립해 놓고 있었으나, 마땅한 무기가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T―72 전차를 수입해서 놈들의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예정입니다.]
“소말리아 정부가 영토를 침범 당한다며, 반대하지 않을까요?”
[이미 합의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정 이사님, 제가 한 질문에 언제 대답해 주실 생각입니까?]
“인도 육군은 모두 2,400대의 T―72 전차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숫자만큼 전차를 수입할 수 있을 겁니다.”
[조만간에 무기 구매사절단을 이끌고 인도를 방문하겠다고, 싱 총리님께 말씀드려 주십시오.]
“가급적이면 부투야 실장님과 같은 시기에 인도를 방문해 주십시오.”
[정 이사님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딸깍.
호영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상호 사장이 질문을 던져 왔다.
“정 이사, 루사토 부통령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나?”
“그분께서…….”
아주 공교로운 순간에 싱 총리 등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에 호영의 보고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상석에 앉은 싱 총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메흐타 장관이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총리님께서 결정하신 내용을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저희의 제안을 수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L&T이 한국디펜스 측으로부터 기술이전 받아서 생산하기로 한 K―9 자주포 90문은 HINDRA라는 방산기업에서 조립 생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예정입니다. 한국디펜스 측은 필요한 부품을 HINDRA에 공급해 주십시오.”
“L&T가 기존에 생산해 놓은 K―9 자주포 45문을 분해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사실입니까?”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안정빈 사장과 대화를 끝낸 메흐타 장관은 정명훈 사장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 사장님, 저희가 이번에 도입하기로 한 K―9 자주포 500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300문은 한국에서 200문은 HINDRA에서 조립생산 했으면 좋겠습니다.”
“부품은 저희가 전량 공급하는 조건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장관님의 제안을 수용하겠습니다.”
윙윙―
그때, 호영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호영이 다시 돌아오자, 싱 총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정 이사, 이번에는 어느 나라 VIP와 통화했나요?”
“아, 네. 나이지리아의 오코사 실장과 통화했습니다.”
“나이지리아도 케냐, 콩고민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에서 T―72 전차를 수입하고 싶답니까?”
“네, 그렇습니다.”
“얼마나 수입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까?”
“최소 200대라고 했는데, 전차의 상태에 따라서 추가로 수입할 수 있답니다.”
“메흐타 장관, 이렇게 모두 유출하면 우리나라의 전차 전력에 구멍이 발생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가 아프리카 나라들에 수출하는 T―72 전차 숫자만큼, H&J 컨설팅으로부터 K2 흑표 전차를 공급받을 예정이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메흐타 장관의 대답에 정명훈 사장은 앓는 소리를 내며 팽팽한 긴장감을 털어 냈다.
“아이고, 저희만 죽어나게 생겼네요.”
“하하하.”
잠시 화기애애한 시간이 지난 후, 회의 진행을 위하여 만지히 국장이 회의실 앞으로 이동했다.
“이제부터 우리나라 해군의 전력증강 프로젝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 해군의 인도양 진출에 맞서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약 2,500억 달러를 투입해서 전함 60척, 잠수함 10척을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전함 60척은 항공모함 2척, 이지스 구축함 5척, 미사일 구축함 6척 등을 도입할 예정이고, 잠수함은 1,800톤급 6척, 3,000톤급 4척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1,400톤급 잠수함 세 척과 3,000톤급 잠수함 네 척은 별도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만지히 국장님, 저희가 인도 해군에 공급해야 할 전함 숫자를 말씀해 주십시오.”
“제일먼저 이지스 구축함 5척…….”
대한중공업의 한경수 사장은 걱정이 태산같이 몰려들었다.
불과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전함과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배 째라고 드러누울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정명훈 사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한 사장님, 인도 조선소들의 건조 능력은 어떻습니까?”
“HINDRA 조선과 MAZGAON 조선이 그나마 경쟁력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빅 쓰리 조선소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두 조선소와 우리나라 빅 쓰리 조선소가 공동으로 대응하면, 납기를 맞출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빅 쓰리 조선소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한경수 사장이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듯 의도적으로 끝말을 흐렸다.
정명훈 사장은 그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가 모두 먹겠다고 덤벼들면, 싱 총리께 미움을 잔뜩 받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한 사장님, 그나저나 대한중공업이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은 됩니까?”
“항공모함 건조를 수주할 기회가 없어서 건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주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항공모함의 경우에는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 그 나라의 조선소에 건조를 의뢰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과연 인도 조선소들이 항공모함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요?”
“항공모함의 경우에는 이지스 구축함보다 건조하기 훨씬 어렵습니다.”
즉,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저희가 항공모함 건조를 가지고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Give & Take 방법을 사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자세하게 말씀해 보세요.”
“인도 정부가 원하는 것은…….”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