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전력증강 프로젝트 (1)
겨울이 한바탕 광풍을 일으키고 돌아가자, 정상호 사장의 숙소에는 조용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 사장님, 미안합니다.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대한 그룹의 조병석 실장을 필두로 코리아 로템의 김재국 사장까지 정상호 사장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여러분께서 사과하셨기 때문에 싱 총리님과의 만찬장에서 있었던 일들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사실 인도 정부는 K―9 자주포 등의 무기를 도입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몰디브에서 한 부사장이 인도 정부 측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면서 반대급부로 K―9 자주포 등의 한국산 명품 무기들을 도입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이에 인도 정부 측은 한 부사장의 제안을 수용했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여러분이 이곳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정상호 사장이 숨을 고르기 위해서 말을 잠깐 끊었다가 이어 나갔다.
“이제 저희의 입장을 말씀드릴 테니까, 귀담아 들어 주십시오. 저희 SH 무역과 H&J 컨설팅은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이익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여러분의 이익을 최대한 늘려 주기 위해서 저희와 H&J 컨설팅의 이익을 최소화하겠습니다.”
“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 대신에 저희의 통제에 적극 따라와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밤이 많이 늦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협상 전략을 점검해 보고 숙소로 돌아가서 쉽시다.”
다음 날
인도 국방부 회의실에는 정명훈 사장을 비롯한 한국 측 사람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해 있었다.
이윽고 싱 총리를 필두로 메흐타 국방장관, 데사이 정보국장, 그리고 1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정명훈 사장 등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했다.
상석에 앉은 싱 총리는 시립해 있는 정명훈 사장을 비롯한 한국 측 사람들을 주욱 둘러보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렇게 멀리 우리나라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을 시발점으로 해서 인도와 한국과의 무기 거래가 더욱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앉아서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자리에 앉자, 건장한 체구를 가진 50대의 남자가 회의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싱 총리를 포함한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는 국방부에서 무기도입과 관련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게탄 만지히 국장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증강을 꾀하려 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인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H&J 컨설팅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아서 드디어 전력증강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나라의 전력증강 프로젝트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크린을 주목해 주십시오.”
회의실의 조명이 어두워지며, 스크린에 ‘인도 육해공군의 전력증강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장표가 비춰졌다.
“발표는 육군, 해군, 공군 순으로 하겠으며, 몰디브에서 총리님이 H&J 컨설팅 측에 발주하기로 약속한 무기류에 대해서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우리나라 육군은 5,000여 대에 가까운 전차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T―72 전차가 2,400대 가까이 있는데, 전량 K2 흑표 전차로 교체할 예정입니다.”
“네?!”
얼마나 크게 놀랐는지 코리아 로템의 김재국 사장이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K2 흑표 전차의 가성비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2,400대의 가격은 100억 달러가 훌쩍 넘어가는 규모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포탄을 포함한 부대 비용까지 모두 포함하면 최소 150억 달러는 가볍게 넘을 터.
만지히 국장은 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정 사장님, 우리나라 육군은 매년 300대씩 K2 흑표 전차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정명훈 사장은 인도 육군의 T―72전차 교체계획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지히 국장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김재국 사장이 손가락 네 개를 펴서 신호를 보냈다.
매년 400대밖에 공급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만지히 국장의 질문에 대답하려는데, 그가 또다시 신호를 보내왔다.
‘후후후, 김 사장님을 믿고 일을 저질러 보겠습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만, 6년으로 기간을 단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네? 그래 주실 수 있습니까?”
“만약에 계약 체결일로부터 6년 안에 K2 흑표 전차를 인도 육군에 전량 인도하지 못하면, 계약 금액의 50%를 페널티로 지급하겠습니다.”
“좋습니다. H&J 컨설팅의 제안을 수용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싱 총리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 우리나라는 최대한 빨리 K2 흑표 전자를 도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인센티브 조건을 신설했으면 좋겠습니다.”
“총리님께서 원하는 인센티브 조건을 말씀해 보십시오.”
“납기를 1개월 단위로 앞당기면, 계약금액 대비 매월 1%씩 인센티브를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총리님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겠습니다.”
“만지히 국장, 계약서를 작성할 때 참고하도록 하세요.”
“네, 총리님.”
그때, 호영이 궁금한 것이 있다는 듯 손을 높이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만지히 국장님, 퇴역하는 T―72 전차는 어떤 용도로 사용할 예정입니까?”
“T―72 전차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있으면 매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입니다만, 불가능하면 분해해서 고철로 매각할 예정입니다.”
호영은 며칠 전 은센기 사장과 통화 도중에 콩고민주공화국 정부가 반군들을 대대적으로 토벌할 작전을 수립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조만간에 필요한 무기들을 수입할 예정이라면서 이것을 H&E 트레이딩이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정글에서는 전차만큼 위력적인 무기가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콩고민주공화국에 T―72 전차를 매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만약에 T―72 전차를 매각한다면, 가격을 어느 정도 책정할 예정입니까?”
“제가 답변해 드리기 전에 T―72 전차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있습니까?”
“사실은 제가 얼마 전에…….”
호영은 은센기 사장과 통화 내용을 모두에게 얘기해 주었다.
“정 이사님, 만약에 콩고민주공화국이 T―72 전차를 수입할 생각이 있다면, 고철 처리 비용보다 약간 비싸게 수출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부투야 실장께 의사를 타진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정 이사, 지금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싱 총리가 흥미를 느꼈는지 상체를 호영에게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핸드폰을 집어 든 호영은 콩고민주공화국의 시간부터 확인해 보았다.
새벽 5시 45분.
적도가 통과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이기에 아침을 빨리 시작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전화하기에는 아주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일을 저질러 보았다.
[정 이사님이 아침 일찍 어쩐 일입니까?]
의외로 쌩쌩한 목소리.
호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부투야 실장과 통화를 시작했다.
“제가 너무 일찍 연락드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 기상 시간은 아침 5시니까, 그 시간 이후에는 언제든지 전화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안부를 물어보려고 전화한 것 같지는 않고…….]
부투야 실장이 의도적으로 끝말을 흐렸다.
그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호영이었다.
“부투야 실장님, 저희는 지금 인도에 출장 와 있고 싱 총리님을 비롯해서 국방부 측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입니다.”
[국방부라면… 한국산 무기를 수출하기 위함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조만간에 한국에서 무기류를 수입할 예정인데, SH 무역에서 중개해 주세요.]
“최선을 다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저한테 전화한 용건을 얘기해 보세요.]
“인도 국방부 측은 우리나라로부터 최신예 전차를 수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퇴역하는 T―72 전차들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헐값에 수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퇴역하는 전차들을 콩고민주공화국이 수입해서 반군들을 토벌하는 데 사용하면 어떨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군요. 제가 국방부 측 담당자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부투야 실장과 통화를 중단한 호영은 만지히 국장에게 말을 걸었다.
“부투야 비서실장께서 통화를 원하고 계십니다.”
만지히 국장은 5분여 가까이 부투야 실장과 통화한 후, 핸드폰을 호영에게 돌려주었다.
“네, 실장님.”
[정 이사님 덕분에 많은 예산을 절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조만간에 T―72 전차를 구입하기 위해서 실무자들을 데리고 인도를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만납시다.]
“네, 알겠습니다.”
딸깍.
호영이 전화를 끊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만지히 국장이 말을 건네 왔다.
“우리나라는 콩고민주공화국에 T―72 전차를 150대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추가로 필요한 나라가 있으면 소개시켜 주십시오.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K―9 자주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총리님께서는 K―9 자주포 200문을 한국에서 직접도입하기로 약속하셨는데, 조건을 변경했으면 합니다.”
“어떻게 변경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나라는 H&J 컨설팅 측으로부터 K―9 자주포 500문을 도입하겠습니다. 이 중에 200문은 약속대로 한국에서 직접도입하고, 300문은 자국의 방산기업인 L&T가 라이선스 생산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만지히 국장의 제안을 수용할까 하다가, 살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지히 국장님, 우리나라가 K―9 자주포 300문을 공급하는 것으로 조건을 변경하면 안 되겠습니까?”
사실 만지히 국장은 인도의 L&T의 생산능력에 심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K―9 자주포 500문 전량을 한국에서 도입하기를 원했지만, 전임 국방부 장관의 압력 때문에 L&T에 300문을 배정한 것이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정명훈 사장이 K―9 자주포 100문을 한국에서 공급하기를 원했다.
‘나머지 K―9 자주포 200문도 한국에서 공급해 주면 좋으련만…….’
속으로 씁쓸한 생각을 하면서 정명훈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만약에 납기를 지켜줄 수만 있다면, H&J 컨설팅 측의 제안을 수용하겠습니다.”
“저희가 K―9 자주포 100문을 언제까지 인도해야 합니까?”
“K―9 자주포 200문을 인도할 때 같이 해 주십시오.”
정명훈 사장은 한국 디펜스의 안정빈 사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안 사장님, 가능합니까?”
“정 사장님, 납기가 내년 연말까지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납기를 준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저희는 안 사장님을 믿고 일을 저지르겠습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L&T에서 생산하는 K―9 자주포의 성능에 대해서는 저희는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L&T는 저희가 지정하는 부품을 사용해야 하는데,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서 규격 외의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음…….”
정명훈 사장이 생각할 것이 있는지 끝말을 흐렸다.
반면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정명훈 사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싱 총리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즉시 곁에 앉아 있는 메흐타 장관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어떤 상황인 것 같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지만,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납기를 지키지 못하겠다는 뜻이겠죠?”
“저도 총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사이, 생각을 끝낸 정명훈 사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K―9 자주포 300문은 납기 안에 인도하겠습니다. 단, K―9 자주포 200문을 L&T가 라이선스 생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