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강력한 경고
세르게이 장관의 설명을 듣고 있던 겨울은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가 S―400과 SU―35 전투기 수출 건과 기존 무기 수출 건을 동시에 처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두 건을 분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조용히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했다.
“세르게이 장관님, 저는 중국에 석유와 천연가스의 가격을 인상하는 협상이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은 당장 7월 1일부터 가격을 10%, 아니, 최소 11.5%를 인상해 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가격 인상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모든 방법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중국과의 협상 책임자인 요키치 장관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불쑥 질문을 던져 왔기 때문이다.
“한 부사장님, 중국 측에서 만만디 전략을 사용할 경우를 대비해서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중국 측이 시간을 끌면…….”
겨울은 구상해 놓고 있던 계획을 짧게 입에 올렸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요키치 장관님은 그때를 대비해서 자료를 완벽하게 갖춰 놓고 있어야 할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세르게이 장관님과 대화 나누세요.”
궁금증을 완벽하게 해소한 요키치 장관이 2선으로 물러났다.
“세르게이 장관님, 계속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세요.”
“저희는 6월 말에 아프리카의 우간다 등에 출장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기존에 인도 측이 수입하던 무기들의 가격 인하 건은 오늘 계약을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급한 일정들이 많기 때문에 러시아에 오래 머무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겨울의 의도를 눈치챈 메흐타 국방장관이 한마디 거들어 주었다.
“뭐, 그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기세를 몰아, 메흐타 장관에게 은밀한 신호를 받은 싱 총리가 매조지를 위해서 입을 열었다.
“세르게이 장관님, 점심 식사를 걸렀다고 들었습니다. 계약서는 실무자들보고 작성하라고 하고, 우리들은 인도 전통 음식이나 맛보러 갑시다.”
“총 리님은 점심 식사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기 때문에 이미 소화가 되고도 남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인도 전통 음식점.
싱 총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웃음 띤 얼굴로 세르게이 장관에게 말을 건넸다.
“러시아에는 보드카라는 정통주가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순다칸지(쌀을 발효해 만든 술로 막걸리와 비슷함)라는 전통주가 있습니다. 가볍게 한잔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음식과 술이 서빙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샤르마 장관이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요키치 장관님, 자코프 대사님,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으시죠?”
“그렇기는 합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저희가 어제 보드카 대접을 받았으니까, 답례로 순다칸지를 대접해 드리려고 합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반면에 어느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고 있는 세르게이 장관은 살짝 서운함이 밀려왔다.
샤르마 장관이 의도적으로 자기를 배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대화에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샤르마 장관님, 저도 술을 마실 줄 압니다.”
샤르마 장관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데사이 국장한테 세르게이 장관이 술을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정보를 전해 들었다.
그를 술판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요키치 장관과 자코프 대사를 살짝 이용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섭섭하다는 반응이 즉시 나왔다.
당장이라도 그를 술판으로 끌어들이고 싶었지만, 자기는 아마추어 정치인이 아니었다.
“세르게이 장관님은 중요한 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일부러 술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술을 마셨다고 계약서에 사인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취하지 않을 정도만 드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술판이 시작되었다.
샤르마 장관 등은 사전에 수립해 놓은 작전대로 러시아 측 3인방을 벌떼같이 공략하기 시작했고, 불과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모두들 만취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술판을 마무리한 일행들은 계약서에 사인하기 위해서 영빈관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랐다.
하도진 실장은 궁금한 얼굴로 정명훈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예전에 인도 법인에 근무하실 때 순다칸지를 마셔 보셨습니까?”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마셔 봤어. 뭐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순다칸지의 맛이 막걸리와 비슷한 것 같은데, 알코올 도수가 상당히 높은 것 같아서 그럽니다.”
“순다칸지는 알코올 도수가 그다지 높지 않아.”
“그럼 인도 측에서 세르게이 장관을 만취하게 만들기 위해서 순다칸지에 모종의 수작을 부렸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
“인도 사람들도 대단한 점이 있는 것 같네요.”
“하 실장, 세계 3대 상인에 인도 상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나?”
“네? 그렇습니까?”
예상외라는 표정으로 하도진 실장이 되물었다.
“인도 사람들은 보기에는 허술해 보여도 상대할 때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뒤통수 맞기 딱 좋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영빈관 회의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세르게이 장관과 메흐타 장관이 계약서와 합의서에 교차 사인했고, 정명훈 사장이 증인 란에 서명했다.
계약을 기념하는 의미로 세 사람은 곧바로 사진 촬영에 들어갔다.
“이로써 무기 수출입에 대한 계약과 합의서 서명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신지훈 실장의 매조지 발언을 끝으로 모든 계약 절차가 완료되었다.
싱 총리 등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돌아갔고, H&J 컨설팅 측 사람들은 요키치 장관과 협의할 것이 있었기 때문에 회의실에 남았다.
상당히 민감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요키치 장관과 세르게이 장관을 제외한 실무자들은 일단 밖으로 퇴장시켰다.
겨울은 의미심장한 말부터 던지며 협의를 시작했다.
“저희가 파악한 정보로는 쑹쩐밍 장관이 지나칠 정도로 돈을 좋아한답니다.”
즉, 그에게 뇌물을 주라는 말이었다.
겨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요키치 장관은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한 부사장님, 쑹 장관에게 우리가 거꾸로 뇌물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장관님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만약에 장관님이 중국 측에 3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는 조건으로 쑹 장관에게 선물을 받는다면, 얼마나 받을 것 같습니까?”
“중국 측은 45억 달러 정도를 절감하는 꼴이니까, 10% 정도는 주지 않을까요?”
“계산하기 편하게 5억 달러를 선물로 받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제 장관님이 쑹 장관한테 1억 달러를 주면서 커미션 지급 비율을 1.5%가 아닌 2%로 올린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는 약 36억 달러를 커미션으로 수령하게 될 겁니다.”
“그렇겠죠.”
“저희는 기존에 약속한 대로 1.5%만 수령할 예정이고, 0.5%는 요키치 장관님에 되돌려 드릴 예정입니다.”
요키치 장관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H&J 컨설팅의 조치로 인해서 매년 9억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커미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 더욱 흥분되는 일은 자기가 어떻게 쑹쩐밍 장관을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커미션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합법적으로 커미션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이유도 없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심호흡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는 조심스럽게 겨울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한 부사장님, 제가 쑹 장관과의 협상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커미션 지급 비율을 올린다면, 몇 %까지 올리면 좋을까요?”
“저는 2%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이상 올리려면 전제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전제 조건인지 말씀해 주세요.”
“쑹 장관한테 커미션 일부를 나눠 줘야 합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르게이 장관님도 신경 써 주십시오.”
“네?! 저도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세르게이 장관이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물었다.
“맛있는 음식은 여러 사람이 나눠 먹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한 부사장님, 저까지 챙겨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세르게이 장관님, 제가 아니라 요키치 장관님께 고맙다고 하시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요키치 장관님, 저희가 드릴 말씀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러시아에서 뵙겠습니다.”
“한 부사장님, 오늘 저녁 식사 약속 없으시죠?”
“없습니다만, 오늘 저녁때 러시아로 돌아가시는 것 아니었습니까?”
무언가 눈치챘다는 듯 겨울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밤에 출발해도 됩니다. 오늘을 축하하는 의미로 보드카 어떻습니까?”
“아이고…….”
* * *
“술 좀 작작 마시고 다녀라.”
호영이 소파에 큰대자로 뻗어 있는 겨울에게 얼음물을 가져다주며 한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셨겠냐?”
이 말과 함께 겨울은 얼음물을 단숨에 비워 버렸다.
“오늘은 어느 나라 사람들과 마신 거야?”
“러시아 사람들.”
“그 사람들은 오늘 저녁때 러시아로 돌아가는 것 아니었어?”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우리와 반드시 저녁 식사를 같이 먹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라고.”
“어찌됐든 러시아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고생 많이 했다.”
“고맙다. 그나저나 인도 측과의 협상 전략은 수립해 놓았니?”
“진행 중이야. 지금도 우리 사장님 숙소에서 협상 전략을 논의하고 있어.”
“같이 가 보자.”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괜찮겠어?”
“술 냄새만 풍길 뿐이지, 생각보다 많이 마시지 않았어.”
정상호 사장의 숙소에 도착하니 문을 열어 주던 원효석 실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한 부사장님, 술에는 장사 없습니다.”
“하하, 오늘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겨울이 비어 있는 소파에 앉자, 정상호 사장이 근심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피곤할 텐데 숙소에서 쉬지… 왜 왔어?”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저희 회사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정 사장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데?”
“러시아 사람들의 술 공격을 받아서 전사하셨습니다.”
“하여간… 알았어. 우리한테 하고 싶은 얘기를 빨리 전달하고 숙소로 돌아가서 쉬라고.”
“네, 사장님. 한국디펜스의 안정빈 사장님께 인도 국방부가 결정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잔뜩 긴장했다는 듯 안정빈 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인도 국방부는 한국디펜스의 비호복합체계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확정했습니다. 그리고 인도가 어떤 무기를 구입하든지 러시아가 절대로 간섭하지 못하도록 합의서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인도 국방부 측은 비호복합체계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도입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계약 실무 책임자들을 최대한 빨리 인도로 불러들이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이제 부터 정말 중요한 얘기입니다. 반드시 귀담아 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은 모든 사람들의 긴장감을 높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말을 끊었다가 이어 나갔다.
“인도 국방부에 우리나라 무기를 판매하는 주체는 여러분의 회사가 아니라 저희 H&J 컨설팅입니다. 그리고 SH 무역은 저희 회사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인도 국방부에 무기 수출건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그 점을 망각하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
“오늘 싱 총리와의 점심 만찬장에서 여러분의 행동이 어땠습니까? 여러분은 저희 회사와 SH 무역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싱 총리와 메흐타 국방장관께 무례한 행동을 여러 번 보여 주었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서 두 분이 인상 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까?”
“…….”
“이 자리를 들어서 여러분께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만약에 내일 인도 측과의 협상장에서도 무례한 행동을 하시는 분이 계시면, 곧바로 컨소시엄에서 탈퇴시키겠습니다. 이 점 명심해 주십시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