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가자 인도로 (1)
다음 날 오전.
겨울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H&J 컨설팅의 회의실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한 부사장, 러시아 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
정상호 사장이 근심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놓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반응을 보일 겁니다.”
“만약에 인도가 나이지리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겨울이보다 김윤중 전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인도는 매월 평균적으로 2억 배럴 정도의 석유와 10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중에 80%는 중동 산유국, 10%는 러시아, 기타 나라가 10%입니다. 현재 인도의 경제발전 속도를 감안하면 나이지라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는 물론이고, 추가로 많은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순간, 겨울의 머리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만약에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인도와 러시아의 협상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타결될 터였다.
겨울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동안에도 김윤중 전무와 정상호 사장의 질의응답은 계속 이어졌다.
“러시아가 고작 10%밖에 안 되는 석유와 천연가스로 인도에 갑질을 행사했다는 말씀입니까?”
“비록 10%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물량입니다. 그리고 자원 거래는 셀러가 갑이라는 점도 한몫 작용한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윙윙―
그때 겨울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회의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네, 데사이 국장님.”
[한 부사장님, 통화 가능합니까?]
“얼마든지 가능합니다만, 인도는 이른 아침 시간 아닙니까?”
[어젯밤에 긴급 대책회의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샌 상태입니다.]
“아이고, 상당히 피곤하시겠네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오만한 러시아 놈들을 혼내 준다고 생각하니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고 있습니다.]
“그동안에 러시아에 맺힌 원한이 많으셨나 보네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많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이제 저한테 전화하신 용건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차! 너무 흥분해서 깜빡했네요.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7개국과 자원 거래를 통해서 절감한 예산을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할 계획입니다.]
겨울은 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인도는 아프리카 7개국으로부터 국제가격 대비 5% 인하된 가격으로 자원들을 수입함으로써 매년 156억 달러(약 18조)라는 엄청난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기존의 국방예산과 156억 달러를 더한다면 최소 500억 달러 이상을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뜻.
데사이 국장이 자기에게 이렇게 민감한 얘기를 꺼냈다는 의미는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한국산 무기를 도입하겠다는 의미이리라.
심호흡을 통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킨 후, 그와 통화를 이어 나갔다.
“데사이 국장님, 국방예산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기존의 노후화된 군 장비와 중국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정도 예산은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국방예산을 대폭 증액하겠다는 계획을 야당에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산 절감 사실을 야당 측에 설명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조금 난감한 상황입니다.]
겨울은 인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인도와 아프리카 7개국은 몰디브에서 자원수출입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가격을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만약에 약속을 어기면 상당히 많은 페널티를 상대방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인도 정부는 야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자원 가격을 공개할 수 없는 것이리라.
데사이 국장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자기에게 알려 달라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고.
머리를 극한으로 혹사시킨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생각해 낸 겨울이었다.
“데사이 국장님, 제가 묘안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공짜로는 알려 드리기 싫습니다.”
[한 부사장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만 하십시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따다 드릴까요?]
“하하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고, 저희가 인도에 출장가면 전통요리를 맛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야 당연한 말씀입니다.]
“제가 묘안을 말씀드리기 전에 나이지리아가 수출하기 원하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해 줄 수 있는지부터 알려 주십시오.”
[얼마든지 오케이입니다.]
“그렇다면 저희 회사 앞으로 LOI(Letter of Intent, 구매의향서)를 발송해 주십시오.”
[한국 시간 기준으로 정오까지 보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LOI를 받게 되면…….”
겨울은 조금 전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한 부사장님, 기발한 아이디어를 알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돕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언제 우리나라로 출발하실 예정입니까?]
“적어도 4∼5일은 걸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늦어지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가장 큰 이유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방문하시는 분들의 명단을 보내주시면, 무비자 입국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국장님.”
[러시아 측과 3일 후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아무리 늦어도 모레까지는 우리나라를 방문해 주십시오.]
“최대한 서둘러 보겠습니다.”
겨울은 데사이 국장과 몇 마디 대화를 더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그와 동시에 호영이 질문을 던져왔다.
“한 부사장님,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빨리 얘기해 보세요.”
“인도 정부는 아프리카 7개국과…….”
겨울의 설명을 듣고 있던 정상호 사장은 인도 정부가 막대한 국방예산을 어디에 사용할까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인도 국방부의 고위관료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인도 정부는 중국이 인도양에서 해군력을 강화하는 것에 맞서기 위해서 전함 60척, 잠수함 10척 등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느낌상 해군력 강화 프로젝트를 우리나라와 진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민감한 얘기를 겨울에게 꺼낼 리가 없었으니까.
정상호 사장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겨울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인도 정부 측과 사전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은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이어 정명훈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 한국디펜스 측과 코리아로템 측에 알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알고 있기는 합니다만…….”
정상호 사장이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정 사장님, 안심하십시오. 저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SH무역을 통해서 인도 정부에 K―9 자주포와 K2 흑표 전차를 수출할 예정입니다.”
“제가 괜한 오해를 한 것 같네요.”
“제가 두 회사 사람들을 인도에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인도 정부가 K―9 자주포와 K2 흑표 전차를 기존보다 더 많이 수입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두 회사 측에 연락을 취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제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신빙성이 높기는 하지만, 사실 여부를 검증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얼마 전에 인도 국방부에…….”
정상호 사장은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에게 밝혔다.
그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장대산 부사장이 강력한 반응을 나타냈다.
“정 사장님이 말씀하신 것은 모두 사실입니다.”
기밀 정보를 제일 많이 확보하고 있는 장대산 부사장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송훈석 회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
“장 부사장, 대한중공업이 발주 받을 예정인 1,400톤급 잠수함 세 척과 3,000톤급 잠수함 네 척은 해군력 강화 프로젝트에 포함되는 겁니까?”
“3,000톤급 잠수함 다섯 척을 도입하는 계획은 예전에 승인 난 건입니다.”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송훈석 회장이 만족한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얼추 회의가 마무리 됐다고 생각한 신지훈 실장이 빠르게 공지 사항을 전달했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 저녁때까지 인도 출장자의 명단을 통보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송 회장님께서는 대한 그룹 전용기를 저희한테 제공해 주십시오.”
“당연한 말씀을요.”
“인도로 출발은 내일 오전 10시에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좋습니다.”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 * *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송훈석 회장은 시선을 옮기며 서동호 실장에게 물었다.
“서 실장, 우리가 전함 60척과 잠수함 10척을 모두 먹는 건 무리겠지?”
“아이고, 회장님. 행여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허허, 자네는 통이 너무 작아서 탈이야.”
“배 터져 죽는 것보다 통이 작은 것이 백번 낫습니다.”
“알았어. 인도 출장은 누구를 보내야 할까?”
“조병석 실장과 대한중공업의 한경수 사장을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지유는?”
“차장으로 승진시킬 것이 아니면, 이번에는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불과 한두 달 사이에 특별 승진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다른 조선사들도 해군력강화 프로젝트에 참여시켜야겠지?”
서동호 실장도 송훈석 회장과 같은 생각이었으나, 결정권은 인도 정부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본 후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시죠?”
“그렇게 하자고.”
그 시각.
겨울은 사무실에서 김윤중 전무, 하도진 실장과 대화를 나누며, 인도 정부가 LOI를 보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부사장님, 과연 러시아가 인도의 요구를 수용할까요?”
“지속적으로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없이 수용할 겁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러시아 측에 밉보이면 어떻게 하죠?”
“러시아 측에 적당한 당근을 주면 되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근이라뇨?”
“회의 시간에 전무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회의시간에… 맞아! 그게 있었지!”
김윤중 전무가 무릎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겨울과 하도진 실장의 시선을 받자 무안함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부사장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 말고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러시아가 인도에 수출하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저희가 중개할 수 있도록 해 보십시오.”
“암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잠시 후.
기다리던 데사이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국장님.”
[방금 전에 LOI를 보내 드렸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겨울은 재빨리 데사이 국장이 보내온 LOI를 다운 받아서 찬찬히 읽어 내렸다.
자원 거래 업무는 김윤중 전무 소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이 나서서 LOI를 챙긴 이유는 인도 측이 실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데사이 국장은 자기가 예상한 그대로 LOI를 보내왔다.
만약에 이대로 나이지리아 측에 전달하면, 크게 실례가 될 수도 있었다.
“데사이 국장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LOI를 다시 보내 주실 수 있습니까?”
[얼마든지 보내 드릴 수 있지만, 이유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자원의 공급 가격은 바이어가 아닌 셀러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데사이 국장님이 보내온 LOI에는 가격이 적혀 있습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감 잡았습니다.]
“국제 가격 대비 5% 인하한 가격으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릴 테니까,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그럼요. 당연히 믿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데사이 국장은 20분이 지나지 않아서 LOI를 보내왔고, 겨울은 내용을 재빨리 읽어 본 후, 김윤중 전무와 오코사 실장에게 동시에 전송했다.
“이제 점심 식사하러 가실까요?”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