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78화 (278/328)

[278화] 인도가 처한 사정

송훈석 회장과 티타임을 끝낸 이진호 사장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온몸을 파묻고 생각에 잠겼다.

현재 H&J 컨설팅에서 결혼 적령기에 놓여 있는 경영진은 겨울과 장대산 부사장 둘뿐이다.

겨울은 송훈석 회장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장대산 부사장이 자신의 사윗감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그가 누구이던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유력한 해리슨 상원의원의 양아들이자, H&J 컨설팅의 2대주주였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때가 있다고 하는데, 바로 지금인 것 같았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내 생각이 맞는지 수진이한테 확인해 볼까?”

신호가 몇 번 울리고, 귀에 익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네, 아빠.]

“수진아, 아빠가 방금 전에 너와 관련한 이상한 소문을 들어서 전화했어.”

[소문이라면… 그 소문을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서동호 실장.”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에요.]

“하하하,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진호 사장이었다.

[아빠, 장 부사장님 얘기는 모두 알고 계세요?]

“물론이지. 해리슨 상원의원의 아들이잖아.”

[그분은 친아버지가 아니에요. 그것도 알고 아시죠?]

“양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냐?”

[아빠,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고맙기는 뭘.”

[장 부사장님과 제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당분간 비밀을 지켜 주세요.]

“그렇게 하마.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니?”

[네. 말씀하세요.]

“송지유 과장과 한 부사장은 어떤 관계냐? 사귀고 있는 사이야?”

[아직은 아니에요. 두 사이에 강력한 연적이 있거든요.]

“연적이라니?”

[SH무역의 정호영 이사도 송 과장을 좋아하고 있어요.]

이진호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겨울은 H&J 컨설팅의 최대주주일 뿐만 아니라 막강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회사의 앞날 또한 성장성이 무궁무진하고.

그에 반해 호영은 제법 잘나가고 있는 무역 회사의 후계자일 뿐이다.

어느 누가 봐도 겨울의 조건이 우세한 상황.

물론 배경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만, 송지유 또한 평범함과는 한참 먼 사람이었으니 처해진 환경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의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저도 아빠와 똑같이 생각했는데, 둘의 사이가 생각보다 팽팽한 상태에요.]

“하여간 알았다. 자세한 얘기는 집에서 하는 것으로 하자.”

[네, 아빠.]

전화를 끊은 이진호 사장은 소파에 다시 몸을 묻으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후후후, 내가 차기 미국 대통령과 사돈이 된다니.”

* * *

“한 부사장, 송 과장도 온대?”

한우 전문점 입구에서 호영이 두리번거리며 겨울에게 물었다.

“선약이 있어서 못 온단다.”

“거짓말하지 말고.”

“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보든지.”

호영은 즉시 송지유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1분 정도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에이, 괜히 판을 키웠네.”

겨울과 호영이 실망어린 모습으로 비어 있는 자리에 앉자, 장난기가 발동한 송훈석 회장이 두 사람을 가만 나누지 않았다.

“한 부사장, 정 이사,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진 이유가 뭔가요?”

“아닙니다. 본래의 표정이 이렇습니다.”

작정한 듯 호영이 바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회장님. 한 부사장의 표정은 어릴 때부터 주욱 이렇게 어두웠고, 생각 또한 상당히 음흉했습니다.”

“정 이사, 없는 말 지어내지 맙시다.”

겨울이 한 소리 했으나 호영은 눈을 1도 깜짝하지 않고, 태연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회장님, 한 부사장은 머리도 상당히 나쁜 것 같습니다.”

“물론 근거가 있는 말이겠죠?”

“불과 10초 전에 내뱉은 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잖습니까?”

“하하하, 이번에는 정 이사가 이긴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호영이 송훈석 회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으이구, 애쓴다.”

한참 한우 파티가 진행되던 도중에 송훈석 회장이 정명훈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 사장, 아직도 인도 측에서는 소식이 없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발주가 늦어지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오늘 오전에 한 부사장이 해리슨 상원의원에게 러시아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답니다.”

“한 부사장, 해리슨 상원의원께 이유를 물어봤나요?”

“당연히 여쭤봤는데, 저한테 거래를 제안하는 바람에 이유를 듣지 못했습니다.”

“거래라뇨?”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에는 조금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장대산 부사장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단숨에 캐치했다.

보나마나 해리슨 상원의원이 겨울에게 인도 정부가 처한 사정을 얘기해 줄 테니, 자기에 대한 정보를 알려 달라고 제안했을 것이다.

이에 겨울은 자기와의 의리를 생각해서 거래에 응하지 않은 것이고.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님, 해리슨 상원의원님의 거래에 응하지 그러셨어요.”

“그렇게 중요한 얘기는 아들이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맞습니다.”

“저한테 여자친구가 생긴 게 그렇게 말 못 할 얘기는 아니잖아요?”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이진호 사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위, 내 딸을 잘 부탁하네.”

“…네, 장인어른.”

두 사람의 어색한 대화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축하의 환호성을 질렀다.

“축하합니다. 오늘 저녁은 정 사장님이 아니라 이 사장님이 사셔야 하겠는데요?”

“하하하, 좋습니다. 제가 쏘겠습니다.”

윙윙―

분위기가 한껏 달궈질 무렵, 겨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자마자 겨울은 재빨리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상대방과 통화를 시작했다.

“네, 데사이 국장님.”

[한 부사장님, 늦게 연락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연락을 늦게 한 이유는 러시아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몇 년 전에 낮은 고도로 침투하는 적의 항공기나 헬리콥터를 요격하는 무기를 수입하기로 결정 내리고, 각 나라들로부터 제안서를 받아서 검토한 끝에 작년 10월에 K―9 자주포를 개발한 한국디펜스라는 회사의 비호복합체계를 낙점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제안서를 제출한 러시아 측이 테스트 과정이 불공정했다며 강력하게 클레임을 제기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러시아 측이 재시험을 요구했고, 시험 결과 한국디펜스의 비호복합체계를 이기기 못했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그런데 러시아 측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우리나라가 한국으로부터 잠수함과 K2 흑표 전차를 도입하려는 건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있는 중입니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에서 많은 무기를 수입해서 운용하고 있다.

때문에 일정 부분 러시아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인도가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해서 잠수함과 K2 흑표 전차의 도입을 포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 겨울이었다.

“데사이 국장님, 인도가 러시아 무기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우리나라가 25년 전에 핵무기를 보유했을 당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자유진영의 국가들로부터 무기 수출 금지를 장기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당시에 강대국이던 러시아와 자연스럽게 군사기술 교류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미국 등과 사이가 많이 좋아졌잖아요?”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러시아와 군사 교류를 중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기존에 수입했던 러시아산 무기와의 호환성 때문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말을 꺼낸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데사이 국장님,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두 가지 이유 중에서 하나는 알고 있을 테니까, 다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로부터 상당히 많은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화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하면 되잖습니까?”

[우리나라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마땅한 수입처가 없습니다.]

순간, 며칠 전에 나이지리아의 오코사 실장이 자기에게 하소연하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이지리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던 일본의 석유 회사와 계약 기간이 5월 말일자로 종료됨에 따라 수출 길이 막혔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석유와 천연가스를 판매해 달라고 부탁해 왔다.

이를 잘 이용하면, 인도와 러시아 사이에 복잡하게 꼬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데사이 국장님, 인도가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양을 알려 줄 수 있습니까?”

[뭔가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습니까?]

방금 전까지 침울했던 데사이 국장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 아이디어를 말씀드리기 전에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해 주십시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뚝.

마음 급한 데사이 국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아무리 조금이라지만 최소 30분 이상은 기다려야 될 터였다.

겨울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호영이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누구와 통화하고 있었던 거야?”

“데사이 국장.”

“데사이 국장님이 뭐라고 하시든?”

“현재 인도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얘기 들었어.”

“그렇게 뭉뚱그려 얘기하지 말고…….”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한테 네가 설명할 거라면, 얘기해 줄게.”

“너 설마… 아직도 삐친 거냐?”

“내가 너하고 무슨 말을 하겠니?”

겨울이 레이저를 쏘아 보내고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데사이 국장한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겨울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송훈석 회장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 인도가 러시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 중단하면, 대신 공급할 나라가 있을까요?”

“나이지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인도가 필요로 하는 양이 엄청날 텐데, 나이지리아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을까요?”

“인도 측의 대답부터 들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알았어요.”

잠시 후.

데사이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겨울은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데사이 국장님, 파악해 보셨습니까?”

[네, 한 부사장님. 석유는 월평균 2,000만 배럴, 천연가스는 월 평균 1억 입방미터 정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 부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를 말씀해 주십시오.]

“며칠 전에 나이지리아의…….”

겨울은 오코사 실장과의 통화 내용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석유는 매월 1,300만 배럴, 천연가스는 7,000만 입방미터를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조금 부족하네요?]

“잔여 물량은 모잠비크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면 얼추 될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수입 조건은 어떻습니까?]

“아직 얘기를 꺼내 보지 않았지만, 국제가격 대비 5% 할인된 가격으로 수입할 수 있을 겁니다.”

[한 부사장님, 지금 결론 내겠습니다. 나이지리아가 수출하려는 물량을 우리나라에서 전량 수입하겠습니다.]

역시 예상한 대로 시나리오가 흘러갔다.

사실 겨울은 데사이 국장과 통화 할 당시에는 나이지리아와 인도를 연결시켜 줄 생각이었지만, 조금 전에 생각을 바꿔 먹었다.

“데사이 국장님, 저한테 또 다른 아이디어가 있는데 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말씀해 보십시오.]

“나이지리아가 수출하려는 석유와 천연가스는 히든카드로 사용하고…….”

겨울의 아이디어를 듣고 있던 정명훈 사장은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만약에 겨울의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한국과 인도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에도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관문들이 여럿 있지만, 겨울이라면 이미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정명훈 사장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겨울과 데사이 국장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

“…준비되는 대로 인도로 출발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놓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럼 곧 뵙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