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67화 (267/328)

[267화] 그들이 원하는 것 (2)

부투야 실장이 원하는 것은 보나마나 빤했다.

자원 수출 가격의 인상.

사실 싱 총리도 자신들이 제안한 8% 할인된 가격으로 자원들을 수입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투야 실장님, 셀러 측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끼리 대화를 나눠 보고 답변해 드렸으면 합니다.”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저희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싱 총리는 의자에 앉자마자 쓴 소리를 쏟아냈다.

“샤르마 장관, 63억 달러가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입니까? H&J 컨설팅의 호의를 이렇게 발로 걷어차도 되는 겁니까?”

“…….”

“조금 전에 내가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회사들은 무슨 똥배짱으로 계약서에 사인을 지연시킨다는 말입니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데사이 국장이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했다.

“총리님, 그렇게 역정만 내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나라 회사들이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그 이유부터 파악해 보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H&J 컨설팅 측이 우리나라 회사들에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우 기운을 차린 샤르마 장관이 한마디 거들었다.

“샤르마 장관, H&J 컨설팅 측이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했다면, 우리나라 회사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 것 같습니까?”

“총리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만약이라는 게 있습니다.”

“알았어요. H&J 컨설팅 측의 얘기를 들어 보는 것으로 합시다.”

잠시 후, 샤르마 장관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의 면면을 확인한 싱 총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 중에는 송훈석 회장의 외동딸인 송지유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일점인 그녀는 검은색의 비즈니스 정장 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미모가 도드라졌다.

그녀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자, 푸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송지유 씨도 우리나라 회사들과의 협상에 참여했습니까?”

“네, 총리님. 열흘 넘게 인도 뉴델리에 체류하면서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송 회장님께서 지유 씨를 우리나라에 보내다니, 큰 결정을 하셨네요.”

“저는 송 회장님의 딸이 아니라 대한 그룹의 직원으로 인도에 출장 간 겁니다.”

“하하, 그렇겠죠. 내가 여러분을 보자고 한 이유는 우리나라 회사들의 못된 행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협상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실대로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도 회사들과의 협상에 직접 참여한 SH무역의 임진택 부사장은 싱 총리의 의도를 단숨에 캐치했다.

말로는 인도 회사들이라고 했지만, 한국 쪽의 귀책 사유를 찾아보기 위해서 이런 말을 꺼낸 것이리라.

그는 마음속으로 전의를 다지고 싱 총리와 대화를 시작했다.

“저는 SH무역의 임진택 부사장입니다. 먼저, 저희로 인해서 인도 회사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그들에게 절대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먼저 H&J 컨설팅이 우리나라 의약품 등을 구입하려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조금 전에 정상호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그대로입니다.”

“H&J 컨설팅 측에서 우리나라 회사들에 제시한 조건을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 본 게임 시작이었다.

임진택 부사장은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싱 총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금액이 가장 큰 의약품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와 인도는 여러 방면에서 협력 관계를 맺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가능한 한 모든 조건을 후하게 제시했습니다.”

“세부적인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제일 중요한 가격은 제약 회사들이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가격보다 최소 5%이상 높은 가격을 제시했고, 결제 조건은 계약과 동시에 양도 가능한 SBLC를 제공하겠다고 제시했습니다.”

“그렇게 제안한 근거 자료가 있습니까?”

“이 자료를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임진택 부사장한테 자료를 건네받아서 검토하던 싱 총리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가 방금 전에 한 말들이 근거 자료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부투야 실장의 말대로 인도의 제약 회사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 바이어의 다급한 상황을 역이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구차하게 변명해 봐야 자신들만 초라해질 뿐이었다.

“임 부사장님, 우리나라 회사들을 대표해서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사과는 회의실에서 받은 것으로 갈음하겠습니다.”

“우리나라 회사들의 제품을 구입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총리님, 저희와 인도 회사들은 아직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알았어요. 아무리 늦어도 내일 중으로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

송지유는 지난달에 H&J 컨설팅 회의실에서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조용히 발언권을 요청했다.

“총리님, 제안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인도 회사들은 총리님께서 비즈니스에 개입함으로 인해서 원하는 이익을 얻지 못했다고 저희에게 화풀이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만약에 그들이 H&J 컨설팅에 화풀이한다면, 어떤 방식이 될 것 같습니까?”

“납기를 준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싱 총리도 송지유와 생각이 같았다.

약속을 준수하자는 캠페인까지 전개할 정도로 인도 국민들의 약속 준수율은 형편없으니까.

인도 회사들이 자기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 H&J 컨설팅 측에 화풀이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그런 짓을 벌이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는 것이 중요했다.

“송지유 씨, 그들이 납기를 준수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약서에 페널티 조건을 삽입하는 것입니다.”

“페널티 조건이 계약서에 삽입되어 있지 않나요?”

“인도 회사들이 거부하는 바람에 삽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거부한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인도는 전기 사정과 물류 상황이 형편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지만, 저는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음…….”

머리가 복잡한지 싱 총리가 끝말을 흐리며 생각에 잠겼다.

송지유는 괜히 말을 꺼낸 것이 아닌지 은근히 걱정했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홍역이라 생각했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 조금 전보다 더 차분해진 목소리로 싱 총리가 입을 열었다.

“송지유 씨, 내가 책임지고 페널티 조건을 계약서에 삽입시켜 줄게요.”

“감사합니다, 총리님.”

송지유의 짧은 대답을 들은 싱 총리는 시선을 옮겨 임진택 부사장한테 말을 건넸다.

“임 부사장님, 우리들은 이곳에서 조금 더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회의실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축객령을 받은 사람들이 떠나가자, 싱 총리가 작정한 듯 한마디 내뱉었다.

“샤르마 장관, 여기 리스트에 있는 회사의 CEO들을 내일 정오까지 이곳으로 불러들이세요.”

“네, 총리님.”

“이제 아프리카 7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자원들의 가격을 다시 한번 정리해 봅시다.”

“저는 H&J 컨설팅의 성의를 고려해서…….”

제법 길게 상의를 거쳐 결론을 낸 그들은 회의실로 돌아와서 샤르마 장관의 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공개했다.

“저희는 자원들을 국제 가격 대비 5% 할인된 가격으로 수입하고 싶습니다.”

오코사 실장은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자신들은 마지노선으로 국제 가격대비 6% 할인된 가격을 설정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인도 측은 5% 할인된 가격을 제시하고 있지 않은가.

당장 오케이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고 싶었지만, 자기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인도 측의 제안에 대해서 저희끼리 상의해 보고, 내일 오전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샤르마 장관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김윤중 전무가 발언권을 되찾아왔다.

“더 이상 토론할 것이 없기 때문에 2일차 TTM은 지금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3일차 TTM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해서 끝을 볼 때까지 진행할 계획입니다. 제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좋습니다.”

“이후의 일정을 말씀드리면, 살리 몰디브 대통령님과의 저녁 만찬이 세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두 시간 후에 로비에서 만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아프리카 7개국 대표들은 인도 측이 통보한 내용을 검토하기 위해 회의실에 남았고, 싱 총리는 송훈석 회장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숙소로 이동했다.

한 무리의 인원이 빠져나가자, 협상 대표인 오코사 실장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정명훈 사장에게 물었다.

“정 사장님,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가격에 대해서는 제가 결정할 권리가 없지만, 언제나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입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도 정 사장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희가 중국에 말도 안 되는 가격에 수출한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투야 실장을 비롯해서 문두야 부통령까지 이전보다 훨씬 유리해진 조건에 잔뜩 흥분해 있었다.

“좋습니다. 인도 측이 제안한 조건을 수용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SH무역의 임 부사장님, 싱 총리님과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는지 저희한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싱 부총리님은 인도 회사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파악해 보기 위함이라면서…….”

임진택 부사장은 소회의실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밝혔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정명훈 사장은 호랑이는 결코 고양이를 낳지 않는다는 속설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아무리 송지유가 송훈석 회장의 외동딸이라고 해도 사회 초년생에 불과한데, 인도의 최고 권력자인 싱 총리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니.

‘머지않은 시기에 후계자로 인정받겠군.’

정명훈 사장이 다가올 미래를 그려 보며 귀 기울이는 사이, 겨울과 호영도 들릴락 말락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 대해서 얘기했다.

“한 부사장, 우리 지유 씨 정말 멋지지 않냐?”

“나도 네 의견에 동의한다만… 어째서 네 지유 씨냐?”

“너는 귀에 대못을 박아놓고 있냐? 내가 언제 내 지유 씨라고 했어?”

“네가 어떤 의도로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하… 한겨울, 배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라. 자꾸 시비 걸지 말고.”

“내 배가 왜 아파야 하는데?”

“어젯밤에 바에서 지유 씨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윽했는데, 못 봤어?”

“에라이, 미친놈아.”

“한 부사장, 무슨 일이야?”

어이없어 하는 겨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정명훈 사장이 물어 왔다.

“아, 아무 일도 아닙니다.”

* * *

같은 시각.

송훈석 회장은 숙소에서 싱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송 회장님, 하나밖에 없는 영애를 열흘 넘게 우리나라로 출장 보내도 괜찮습니까?”

“경영 수업의 일환으로 보낸 것입니다. 그나저나 총리님께서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아까 소회의실에서 따님과 대화를 나눠 봤습니다.”

“총리님께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전혀 그러지 않았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총리님,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나눴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지유 양이 저한테 제안할 것이 하나 있다면서…….”

싱 총리는 송지유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자세하게 입에 올렸다.

“총리님, 제 딸이 정말로 그랬다는 말씀입니까?”

“네. 제가 얼마나 창피한지 고개를 들 수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지유 양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송 회장님, 제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도 되겠습니까?”

“네. 얼마든지요.”

“지유 양은 남자친구가 있습니까?”

“크흠… 아직은 없는 것 같은데,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있는 것 같습니다.”

“호오, 그 행운아가 누구입니까?”

“하하하, 이것 참. 총리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혹시… 이곳에 출장 와 있는 세 젊은이 중에 한 명입니까?”

“하하하! 그렇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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