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그들이 원하는 것 (1)
중국과의 협정 체결을 끝내고 TTM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싱 총리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중국으로부터 받은 보상금 16억 달러는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게 좋을까요?”
“총리님, 저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서 무기를 도입하는 데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데사이 국장, 천 외교부장에게 몸값으로 받은 15억 달러로 K―9 자주포 200문과 K2 흑표 전차 100대를 한국으로부터 도입하기로 했잖아요. 그 정도면 중국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육상이 아닌 해상에서의 위협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떤 위협을 말하는 겁니까?”
한껏 들떠 있던 싱 총리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인도양의 제해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과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중국은 태국과 방글라데시에 잠수함을 각각 한 척과 두 척을 판매했고, 파키스탄에는 여덟 척을 판매하기 위해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해군은 전력 보강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싱 총리는 자신도 모르게 등줄기를 따라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중국이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와 함께 잠수함과 군함들을 동원해서 자국의 항구를 봉쇄하려고 한다면, 빈약한 해군력으로 그들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일 것이다.
수출입이 원활하지 않게 되는 순간 자국의 경제는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칠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는 국민들의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데사이 국장,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까?”
“저는 제일 시급한 게 잠수함 전력의 향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수함 한두 척 가지고는 어림없겠네요?”
“최소한 3,000톤급의 잠수함 다섯 척 이상은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수함 한 척당 가격은 어느 정도 될까요?”
“무기까지 같이 도입해야 하니까… 9억 달러 정도 예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잠수함 다섯 척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모두 45억 달러가 필요하다는 뜻.
16억 달러는 중국으로부터 보상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29억 달러만 확보하면 된다.
“데사이 국장, 어떤 방법으로 예산을 확보하면 좋을까요?”
“잠수함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해마다 예산을 조금씩 확보해 가면, 큰 무리가 가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요. 어느 나라 잠수함을 도입하면 좋을까요?”
“우리나라 해군이 보유한 무기들과의 호환성을 생각하면 러시아에서 도입하는 것이 최선이기는 합니다만, 몇 년 전에 발생한 두 건의 사고로 인해서 러시아 잠수함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싱 총리도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잠수함 한 척은 화재가 발행해서 침몰했고, 또 한 척은 화재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침몰만은 면했다.
결국 해군 참모총장이 옷을 벗으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러시아를 제외하면 어느 나라가 좋을까요?”
“저는 한국이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요. H&J 컨설팅 측에 말을 꺼내 봅시다.”
* * *
그 시각.
겨울은 하마드 부총리와 통화 중에 있었다.
“부통령님, 자오린 부총리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이유가 뭐라고 합니까?”
[휴가를 즐기려는 목적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겨울은 자오린 부총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대충 감 잡았다.
그들이 허겁지겁 몰디브를 떠나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들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염려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이곳에 남아 있으려는 것이리라.
그래도 ‘혹시’라는 것이 있었다.
“부통령님, 그들이 중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안가에서 머무르겠다고 했습니까?”
[저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는데, 살리 대통령님의 개인 별장이 있는 섬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뭐야? 진짜로 휴가를 즐기려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겨울이 하마드 부통령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설마하니 공짜로 살리 대통령님의 별장을 제공해 주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물론입니다. 바가지를 옴팍 씌워 볼 생각입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들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를 잠깐 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살리 대통령께서 우리나라를 찾아주신 귀빈들을 저녁 만찬에 초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문제는 제가 결정할 수 없으니까, VIP들의 의견을 여쭤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 귀를 쫑긋 세워 놓고 있던 호영이 질문해 왔다.
“자오린 부총리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울며 겨자 먹기밖에 더 있겠냐?”
“하긴…….”
“더 이상 그 사람들과 만날 일이 없으니까, 우리는 이쯤에서 신경 끄자고.”
“알았어. 회의실로 내려가자.”
회의실.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김윤중 전무가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2일차 TTM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정식으로 탈퇴한 케냐와 모잠비크의 부통령님들의 소감 한마디 듣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사토 부통령은 가벼운 헛기침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몇 년 전, 중국주재 대사가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저에게 중국 정부가 자국의 경제개발을 위해서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루사토 대통령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배경에 대해서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해 내려갔다.
그리고 공짜는 공기밖에 없다는 말로 간단하게 마지막 소감을 덧붙였다.
뒤이어 칠리마 부통령도 거의 흡사한 내용으로 소감을 발표했다.
“…오늘 같이 좋은 날을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까, 저녁 식사는 제가 사겠습니다.”
그때, 겨울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살리 몰디브 대통령님께서 저희를 저녁 만찬에 초대하고 싶다고 합니다. 의견들을 말씀해 주십시오.”
“칠리마 부통령님, 저녁 식사는 내일 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부사장님, 칠리마 부통령님의 말씀 들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겨울의 대답을 들은 오코사 실장은 시선을 옮겨 김윤중 전무에게 말했다.
“김 전무님, 이제 본격적으로 TTM을 시작하도록 하십시다.”
“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합의한 내용을 말씀드리면, 아프리카 7개국이 수출하고자 하는 자원들은 전량 인도가 수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자원들의 가격은 인도는 국제 가격 대비 10% 할인된 가격에 수입하겠다고 제안했고, 아프리카 7개국은 국제 가격 대비 할인된 가격에 수출하겠다고 제안한 상태입니다. 이제 가격에 대해서 양측의 의견을 좁혀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윤중 전무의 모두 발언에 뒤이어 샤르마 장관이 입을 열었다.
“우리 인도 정부는 자원들의 수입 가격으로 국제 가격 대비 8% 할인된 가격으로 수입했으면 합니다. 셀러 측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저희의 의견을 말씀드리기 전에 인도 측이 자원들을 전량 수입해 주는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선물을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선물은 H&J 컨설팅에 발주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선물 리스트는 김 전무께서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오코사 실장이 김윤중 전무에게 발언할 기회를 넘겨 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아프리카 7개국이 저희한테 발주한 품목들 중에서 인도와 관련 있는 품목들은 모두 네 가지입니다. 첫 번째 선물은 최신 사양의 컴퓨터 10만 대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약 3억 달러 상당의 운동화입니다. 세 번째 선물은 약 5억 달러 상당의 의류입니다. 마지막으로 55억 달러 상당의 의약품입니다.”
김윤중 전무는 숨을 고르기 위해서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나갔다.
“컴퓨터 10만 대는 대한전자 한국 공장에서 생산해서 공급해 줄 예정이었지만, 대한 그룹의 송훈석 회장께서 인도 공장에서 생산해서 공급하라고 결정 내리셨습니다. 나머지 세 품목들은 인도 기업들로부터 구입해서 수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만,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녹록치 않다니요?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윤중 전무보다 부투야 실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제가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H&J 컨설팅은 운동화, 의류, 의약품을 모두 인도에서 구입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부투야 실장은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서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생수병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저희는 H&J 컨설팅 측의 의견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도 회사들의 신뢰성 부족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처음 들어 봅니다.”
샤르마 장관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잔뜩 실려 있었다.
“이곳에 계시는 7개국 대표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흠…….”
자국 회사들을 폄훼하는 데 기분 좋아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부투야 실장은 그의 심각한 표정에 굴하지 않고 발언을 이어 나갔다.
“저는 정 사장님께 인도 회사들로부터 의약품 등을 수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물었습니다.”
“정 사장님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저희가 인도에 수출하는 자원들의 가격을 조금이나마 높이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이유를 밝혀도 됩니까?”
“어차피 회사들로부터 의약품 등을 수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말씀드려도 상관없습니다.”
“수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요? 그렇게 결정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 대신에 SH무역의 정 사장님이 이유를 말씀해 주실 겁니다.”
“흠흠.”
정상호 사장은 가벼운 헛기침으로 목을 풀어준 후,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저희 SH무역은 H&J 컨설팅 측의 의뢰를 받고 지난달 중순부터 인도 회사들과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정 사장님, 지난달 중순부터 접촉한 게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만…….”
“의약품의 경우에는 55억 달러에 이르는 대형 거래인데, 제가 모르고 있어서 그럽니다.”
“사실은 인도 제약 회사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은 미국과 유럽의 에이전트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약품을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계속 말씀드리겠습니다. 인도 회사들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돼서 계약서에 사인하는 단계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잔뜩 궁금함을 느낀 싱 총리가 상체를 정상호 사장에게 기울이며 관심을 나타냈다.
“그들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으면서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을 지금까지 미루고 있는 중입니다.”
“그들이 계약서에 사인을 미루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만, 그들을 위해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때, 부투야 실장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SH무역의 다급한 상황을 이용해서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려는 이유밖에 더 있습니까?”
“네?! 그게 사실입니까?”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싱 총리가 되물었다.
“제가 싱 총리님께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리 기업의 목적이 이윤 추구라지만, 기존에 합의한 내용까지 뒤집어 가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구절절 옳은 부투야 실장의 얘기에 싱 총리는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밖에는.
“부투야 실장님, 그들의 못된 행태에 대해서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어차피 그들로부터 의약품 등을 수입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과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고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만들어 드릴 테니까, 우리나라 회사들과 거래해 주십시오.”
부투야 실장은 싱 총리를 더 이상 밀어붙여 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이쯤에서 밀당을 멈추기로 결정했다.
“싱 총리님, 저희의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다시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