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64화 (264/328)

[264화] 몰디브에서는 모히또를

“송 회장님, 몰디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프리카 7개국을 대표해서 부투야 실장이 송훈석 회장을 맞이했다.

“부투야 실장님도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덕분에요. 오늘 처음 보시는 분들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케냐의 윌리엄 루사토 부통령…….”

제법 길던 상견례를 끝낸 후, 본격적인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정명훈 사장은 적갈색을 띄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겨울과의 통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내일 TTM 일정을 조금 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오코사 실장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케냐와 모잠비크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와 관련한 협정서 체결이 내일 오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협정서 체결에 두 나라 대표만 참석하고, 저희는 TTM을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요?”

“인도도 협정서 체결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TTM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내일 오전은 7개국이 저희한테 발주한 품목들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으면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합니다. 그건 그렇고 한 부사장님과 정 이사는 어디 갔습니까?”

“싱 총리께서 한턱낸다고 하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갔습니다.”

“한턱이라면… 인도 정부도 중국으로부터 꽤나 많은 보상금을 받았겠네요?”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오코사 실장의 수를 읽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는 ‘한턱’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유추해 냈다.

“네, 그렇습니다. 싱 총리는 반대급부라는 말만 꺼냈을 뿐인데, 자오린 부총리가 시 주석과 통화한 후에 먼저 10억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답니다.”

“자오린 부총리는 싱 총리에게 인센티브로 얼마를 요구했답니까?”

“3억 달러를 요구했지만, 2억 달러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오린 부총리는 몰디브로 달려와서 얼마를 챙기게 되는 겁니까?”

“현재까지 파악된 금액은 모두 35억 달러입니다.”

순간, 오코사 실장의 머릿속에 제법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정 사장님, 이번 기회에 자오린 부총리를 실각시킬까요?”

자오린 부총리가 인센티브 형식으로 챙길 예정인 35억 달러는 어쨌거나 중국 정부의 돈이다.

그러니 인센티브 건이 시쥔량 주석의 귀에 흘러 들어가게 만들면, 그는 실각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평생 동안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명훈 사장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로 인해서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손해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오코사 실장님, 저는 자오린 부총리가 자리를 유지하도록 내버려 뒀으면 좋겠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자오린 부총리는 비록 돈 욕심은 많지만, 온건한 인물로 소문나 있고…….”

정명훈 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밝혔다.

“무엇보다도 루퍼트 장관이 자오린 부총리를 카운터 파트너로 삼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서 신지훈 실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오코사 실장은 겸연쩍다는 듯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하하, 제가 괜히 말을 꺼낸 것 같네요.”

* * *

“야, 미쳤어!”

호영의 행동을 겨울이 황급하게 뜯어말렸다.

“9시면 우리나라에서는 초저녁이야.”

“여독은? 시차는 생각 안 해?”

“대한 그룹의 전용기를 타고 왔으니까 그다지 피곤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결국 전화하겠다는 거야?”

“알면서 왜 물어?”

“난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해라.”

“솔직하게 얘기해 봐. 너도 지유 씨가 보고 싶지?”

“…아니.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오는 거야?”

기습적인 호영의 질문에 당황한 겨울은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에라이, 나쁜 놈아.”

호영은 이 말과 함께 핸드폰을 들어 기어코 송지유한테 전화를 걸었다.

[정 이사님, 오랜만이네요?]

“지유 씨, 몰디브 방문을 환영합니다.”

[역시, 저를 반겨 주시는 분은 정 이사님밖에 없네요.]

“공항에 마중 나갔어야 하는데, 물귀신 놈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물귀신이라면… 한 부사장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저를 얼마나 못 살게 구는지 힘들어 죽겠습니다.”

[그만큼 정 이사님을 믿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렇기는 합니다. 그건 그렇고 몰디브에 오셨으니까, 모히또 한잔하셔야죠?”

[그렇지 않아도 지금 호텔 바에서 양경운 과장님과 모히또를 마시고 있는 중이에요.]

“저희도 바람과 함께 달려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호호, 알겠어요.]

송지유와 통화를 끝낸 호영은 운전기사에게 빠른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호텔로 최대한 빨리 가 주세요.”

* * *

그 시각.

정명훈 사장은 공항에서 추성민 법인장, 이용수 팀장을 픽업해서 호텔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추 법인장,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오지 못할 뻔했는데, 겨우 시간 내서 온 겁니다.”

“그렇게 일이 많아?”

“마치 한겨울에 눈이 퍼붓는 것처럼 첩첩히 쌓여 있습니다. 힘들게 눈을 치우고 뒤돌아서면, 조금 전에 치운 눈보다 더 많은 눈이 쌓여 있고… 하여간 저희는 지금 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놈의 한겨울이 문제구먼.”

“하하하, 그렇게 되나요?”

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신지훈 실장이 급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장님, 한 부사장님한테 급한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 한 부사장님을 태운 차가 저희 차를 추월해서 앞질러 갔습니다.”

“무슨 일인지 빨리 전화해 봐.”

“네, 사장님.”

재빨리 겨울에게 전화한 신지훈 실장은 어떤 상황인지 급히 물었다.

[별일 아닙니다. 정 이사가 호텔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그런 겁니다.]

“정 이사한테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겁니까?”

[한동안 잠잠하던 상사병이 도진 것 같습니다.]

“하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공항에는 왜 다녀오시는 겁니까?]

“추 법인장과 이 팀장이 오셨습니다.”

[제가 추 법인장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신지훈 실장은 겨울의 의사를 밝히며 추성민 법인장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한 부사장,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법인장님.]

“시간 괜찮으면 오랜만에 술이나 한잔하실까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선약이 있어서 오늘은 조금 곤란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선약이 또 있다는 말씀입니까?”

[사실은 송 회장님의 따님인 송지유 씨와 바에서 간단하게 한잔하기로 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내일은 반드시 시간을 비워 놓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 봅시다.”

전화를 끊은 추성민 법인장은 핸드폰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정명훈 사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선배님, 회장님이 따님을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후후후, 글쎄.”

“선배님, 그러지 말고 얘기해 주세요.”

“조금 있다가 회장님을 만날 예정이니까, 그때 직접 물어보라고.”

“그렇게 민감한 얘기를 어떻게 대놓고 물어보라는 겁니까?”

“싫으면 말든가.”

* * *

호텔 바로 급하게 달려간 호영은 송지유와 양경운 과장을 발견하고 살갑게 인사말을 건네며 다가갔다.

“지유 씨, 못 보던 사이에 더욱 아름다워진 것 같습니다.”

“호호, 고마워요. 정 이사님도 더욱 늠름해지진 것 같네요.”

“역시 지유 씨는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양 과장님도 그동안 잘 계셨죠?”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 한 부사장님과 장 부사장님은 이곳에 오시지 않습니까?”

“지금 올라오고 있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겨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에게 곧장 다가온 겨울은 호영을 흘겨보며 뚱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기다려 주었다가 같이 올라오면 어디가 덧나냐?”

“어.”

“너하고 말을 섞은 내가 잘못이지. 양 과장님, 지유 씨, 오랜만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웨이터를 불러서 칵테일을 주문하자, 호영이 겨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몰디브에 오면 모히또를 반드시 마셔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몇 년 전에 개봉된 영화에서 유명배우가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잔할라니까’라고 한 대사를 여행사가 마케팅으로 활용하면서 점차 유명해졌으니까.

“여행사의 상술이잖아.”

“아, 알고 있었구나.”

그때, 송지유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대화에 동참했다.

“한 부사장님, 여행사의 상술이라뇨?”

“사실은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겨울은 몰디브에 오면 모히또를 마셔야 하는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히또 덕분에 몰디브를 찾는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아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저는 여행사의 상술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그나저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송지유는 지난달 말에 인도 제약 회사들과의 의약품 수입 협상을 위해서 인도로 출장을 떠났다가 오늘 저녁때 몰디브에 입국했다.

열흘 넘게 낯선 인도에서 머무르고 있었는데, 컨디션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얘기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피곤하실 텐데, 숙소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지 그러셨어요?”

“정신적으로 피곤할 뿐이지, 육체적으로는 건강하니까 괜찮아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한 부사장님이야말로 지금까지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했을 텐데, 컨디션 괜찮아요?”

“저는 가끔 잠이라도 잘 자서 괜찮지만, 정 이사는 밤을 낮처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시죠.”

겨울이 호영에게 얘기할 기회를 넘겨 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호영은 겨울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은밀하게 보내주고 평소의 명랑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저희가 이곳으로 날아오는 도중에 한 부사장한테 비보를 하나 접했습니다.”

“네? 비보라뇨?”

“다름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알제리, 모잠비크가 저희에게 운동화와 선풍기, 의류를 발주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량이 많나 보네요?”

“콩고민주공화국을 포함한 4개국이 발주한 양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일요일 밤에 H&E 트레이딩의 은센기 사장이 이곳에 도착했고…….”

호영의 설명을 듣고 있던 송지유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실 인도 제약 회사들과의 협상에서 자기는 단순한 보조의 역할만 수행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다며 송훈석 회장에게 온갖 투정을 부려 댔으니.

자기보다 불과 두 살밖에 나이가 많지 않은 호영은 전 세계의 셀러들과 밤잠을 줄여 가며 직접 담판을 벌이고 있는 중인데.

송지유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호영의 설명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겨우 맞춰 놓은 상황입니다.”

“정 이사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아직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낙관할 단계는 아닙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대한 그룹도 인도 제약사들과 협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잘 마무리됐습니까?”

“저희도 협상을 얼추 마무리한 상태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에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얘기해 줄 수 있습니까?”

“그들은 계약서를 지금 당장이 아닌 나중에 사인하자고 미루는 중이에요.”

겨울은 인도 제약사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 측의 다급한 상황을 이용해서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는 중이란 것을.

하지만 그들은 이쪽에서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일단 그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SH무역의 상황을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정 이사, 너희도 마찬가지냐?”

“의약품과 관련한 협상은 임진택 부사장님이 진행하고 있어서 잘 몰라. 지금 여쭤볼까?”

“어.”

호영은 임진택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통화를 종료했다.

“임 부사장님이 뭐라고 하시든?”

“우리도 대한 그룹과 똑같은 상황이란다.”

“후후후. TTM이 재미있어 지겠군.”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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