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사
“저희 주석님은 싱 총리님의 통 큰 결정에 감사한다면서, 보상금으로 10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10억 달러.
싱 총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쥔량 주석이 기껏해야 1억 달러 정도를 제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예상을 열 배나 훌쩍 뛰어넘는 금액을 보상금으로 주겠다니.
이는 자오린 부총리가 중간에서 모종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주겠다는 보상금을 거절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나저나 자오린 부총리한테 인센티브로 얼마를 줘야 하지?’
싱 총리는 즐거운 고민을 잠시 접어 두고 자오린 부총리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 주석님께 제가 고마워한다는 말씀을 꼭 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는 본국에 급한 일들이 상당히 많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협정서 체결을 최대한 빨리 서둘렀으면 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싱 총리의 생각과 일치했다.
협정서 체결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마음 푹 놓고 아프리카 7개국과의 TTM에 전념할 수 있을 테니.
“자오린 부총리님,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오전 10시가 어떨까요?”
“좋습니다. 장소는 루퍼트 장관이 머물고 있는 호텔로 잡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즉석에서 협정서 체결 일정을 수립해 나갔다.
얼추 일정 수립이 끝나갈 무렵에 자오린 부총리가 뜬금없는 말을 꺼내 들었다.
“제가 이곳에서 죽어라고 고생하고 있는 사실을 주석님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시 주석님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주석님은 워낙 공사다망하신 분이라서 모르고 계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 듯 모를 듯한 말이 이어졌다.
싱 총리가 그의 말뜻을 파악하려고 침묵을 유지하는 사이에 핸드폰에 문자가 수신되었다.
윙―
또 다른 안가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겨울이 보내온 문자였다.
― 자오린 부총리는 인센티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문자를 확인한 싱 총리는 자신의 센스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얼른 문자를 삭제했다.
“싱 총리님, 무슨 일 있습니까?”
“돈을 빌려준다는 스팸 문자가 자꾸 들어와서요. 이런 문자가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문자를 종종 받고는 합니다.”
싱 총리는 겨울이 준 힌트대로 인센티브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 자오린 부총리에게 슬쩍 미끼를 던졌다.
“자오린 부총리님, 내일 협정서 체결이 오후 1시쯤이면 마무리 될 수 있을까요?”
순간, 자오린 부총리는 싱 총리가 인센티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중이라고 판단 내렸다.
오후 1시는 1억 달러를 뜻하는 것이리라.
‘싱 총리님, 제가 노력한 것이 있는데, 10%는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빨리 끝날까요? 저는 오후 3시 정도에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즉, 3억 달러를 인센티브로 달라는 의미였다.
10억 달러는 공돈이나 마찬가지였지만, 3억 달러를 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싱 총리였다.
“자오린 부총리님, 제가 오후 일정이 있어서 그러니까, 2시에는 마무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해 보십시다.”
주위에 있던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인센티브를 2억 달러로 결정한 두 사람이었다.
“아차, 아프리카 7개국과의 자원 거래는 6월 말로 종료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확인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싱 총리님께서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루퍼트 장관을 만나 봐야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싱 총리가 떠나가자 자오린 부총리는 특유의 버릇대로 소파의 팔걸이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장고에 돌입했다.
타다닥, 타다닥.
비록 루퍼트 장관의 호출을 받아서 영문도 모르고 허겁지겁 몰디브로 날아왔지만,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케냐, 모잠비크, 몰디브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가 확정됐지만, 시쥔량 주석의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대미지는 전무했다.
게다가 자신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워 줄 인센티브 35억 달러는 덤이었다.
‘흐흐흐. 35억 달러를 어디에 투자할까?’
자오린 부총리가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 있는 사이, 천유런 외교부장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데사이 국장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체구가 테러범의 대장과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았으니까.
목소리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결정적으로 억양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똑같았다.
‘혹시… 데사이 국장이 나를 납치한 게 아닐까? 에이, 설마 그랬겠어? 아니지,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천 외교부장, 무슨 생각하고 있어?”
자오린 부총리의 기습 질문을 받은 천유런 외교부장은 사실대로 얘기해 봐야 좋은 소리를 들을 것 같지 않아서 숨기기로 결정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몇 번 불렀는지 알고 있나? 무려 세 번이나 불렀어. 어떤 생각하고 있었는지, 솔직하게 털어놔 봐.”
도저히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오로지 직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은… 저를 납치한 테러범 놈들의 대장이 데사이 국장과 거의 똑같게 생겼습니다.”
“뭐야! 테러범의 얼굴을 봤다는 말이야? 그럼 나한테 얘기해 줬어야지!”
예상대로 자오린 부총리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아니라… 복면을 쓰고 있어서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체구와 목소리, 그리고 억양이 똑같았습니다.”
“천 외교부장,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나?”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려주듯 자오린 부총리의 목소리가 바닥에 낮게 깔렸다.
반면에 천유런 외교부장은 미치고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서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인데, 결국 이 모양 이 꼴로 상황이 흘러갔다.
사건을 키워 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기 때문에 얼른 꼬리를 말기로 결정했다.
“부총리님,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오린 부총리는 이쯤에서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 친구야, 데사이 국장이 뭐가 아쉬워서 당신을 납치하겠나? 우리가 의혹을 제기했다가, 데사이 국장이 테러범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면 어떻게 할 거야?”
“…….”
“당신이 벌여 놓은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짓느라고 혼났는데, 그것이 그렇게 배가 아팠나?”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천유런 외교부장이 손사래를 쳐가며 적극 부인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지껄이는 이유가 뭐야!”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한 번만 더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으면, 당신 자리는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거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협정서 체결을 서둘러야 하니까, 빨리 양식이나 만들어 놔. 지난번처럼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하아, 그놈의 ‘China Government’가 나를 다시 한번 죽이는구나.’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 자오린 부총리의 지시에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꼴 보기 싫으니까, 빨리 나가!”
한편, 또 다른 안가에서 모니터를 보던 데사이 국장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 예상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변조했건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천유런 외교부장은 자신의 목소리와 억양을 정확하게 캐치해 냈다.
‘천 외교부장이 그렇게 감각이 뛰어났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이 말을 걸어왔다.
“데사이 국장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그건 그렇고, 천 외교부장이 어떻게 제 목소리와 억양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냈을까요?”
겨울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비록 데사이 국장이 영어를 사용했지만, 그의 영어에는 힌디어 문화권에서 쓰는 그만의 독특한 억양이 묻어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자기도 느꼈는데, 산전수전 모두 겪은 천유런 외교부장이 모르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저는 인도 사람들의 특이한 억양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억양이 특이합니까?”
“싱 총리님을 비롯해서 인도 분들 모두 억양이 특이한 편입니다.”
“하여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일 천 외교부장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더라도, 절대로 억양을 바꾸려하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때, 호영이 겨울의 발을 슬쩍 건드렸다.
볼일 다 봤으면 빨리 일어나자는 의미였다.
겨울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사는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싱 총리가 싱긋 웃으며 한마디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8억 달러를 벌은 기념으로,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겨울은 싱 총리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송훈석 회장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싱 총리가 알게 되는 순간, 수립해 놓은 TTM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니까.
“그러겠습니다. 총리님, 이왕이면 인도의 정통 요리를 맛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 순간 호영이 발을 꾹 밟아왔지만, 결정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겨울은 시선을 싱 총리에게 고정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파.”
“아프라고 밟은 거야.”
차에 오르자마자, 호영의 입에서 참았던 불이 뿜어져 나왔다.
“한 부사장, 내가 빨리 일어나자고 신호 보냈잖아.”
“나도 일어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왜?”
“송 회장님이 몰디브로 오고 있는 사실을 싱 총리님이 알게 되면, 모든 상황이 뒤죽박죽되어 버리잖아.”
“…그렇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입조심 시켜놔야 하는 것 아니야?”
“하 실장님이 이미 조치를 취해놨어.”
“에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네. 님을 만나는 것은 오늘밤으로 미뤄야하나?”
“인간아, 네가 이렇게 껄떡대고 있는 사실을 송지유 씨가 아니?”
* * *
말레 국제공항의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TTM의 제일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겨울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밀려오는 호기심을 뒤로하고, 마중 나온 정명훈 사장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정 사장, 바쁜데 왜 나왔어요?”
“회장님께서 오시는데, 아무리 바빠도 나와 봐야지요. 아프리카 7개국 대표들이 회장님과 저녁 식사를 위해서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속히 이동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다.”
H&J 컨설팅에서 미리 준비한 차에 오른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 사장, 공항에서 도망치듯 빨리 빠져나온 이유라도 있어요?”
“회장님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인도 측이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 그렇죠. 그나저나 한 부사장과 정 이사가 보이지 않던데, 무슨 일 있습니까?”
“인도의 싱 총리와 미국의 루퍼트 장관과 저녁 식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두 사람이 이 나라에 입국해 있다고요?”
송훈석 회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루퍼트 장관은 중국과 발생한 모종의 사건 때문에 입국했고, 싱 총리는 TTM에 참석하기 위해서 입국한 상태입니다.”
“루퍼트 장관이 이곳에 날아올 정도라면, 상당히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나 보군요?”
“중국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사건이었겠지만, 미국의 입장에서는 자그마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루퍼트 장관 납치와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뭐라고요?!”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는 듯 송훈석 회장이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루퍼트 장관과 관련한 사건은 CIA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떠한 돌발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간 큰 사건을 벌인 인간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천유런 외교부장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경솔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동안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지 얘기해 줄 수 있어요?”
“네. 지난 일요일에 저희가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장대산 부사장이…….”
정명훈 사장은 당시부터 오늘 오후까지의 사건들 중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간추려 설명해 주었다.
짧은 시간 동안 워낙 사건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줄거리만 설명하는 데 30분 가까이 시간을 잡아먹었다.
“…해서 내일 오전 중으로 협정서 체결을 완료할 예정입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군요.”
“네, 그렇습니다.”
“TTM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오늘 오전에 자원 거래 물량을 확정한 상태이고, 내일부터 가격을 포함한 기타 조건을 논의하면 됩니다. 참고적으로 인도 측에서는 회장님이 몰디브에 입국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하, 알았어요. 내일 오전까지 꼭꼭 숨어 있도록 하죠.”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