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그럴 듯한 이유
타다닥, 타다닥.
손끝으로 소파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고 있던 자오린 부총리는 드디어 생각을 굳히고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네, 자오린 부총리.]
“주석님, 제가 조금 전에 루퍼트 장관과 통화했는데,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얘기해 보세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모든 나라들의 시선이 현재 이곳 몰디브에 모여 있는 상황입니다.”
자오린 부총리는 루퍼트 장관과의 통화 내용을 시쥔량 주석에게 가감 없이 보고했다.
“…저희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는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자오린 부총리, 자원부국들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려는 이유가 뭘까요?]
자오린 부총리가 시쥔량 주석에게 곧바로 전화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 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자오린 부총리는 미리 생각해 놓은 모범 답안을 다시 한번 떠올린 후,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주석님, A라는 나라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 나라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에 100억 달러의 빚을 졌고, 그 대가로 1년에 50억 달러의 자원을 우리나라에 수출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A는 자원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면, 100억 달러 넘게 수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계속해 보세요.]
“A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한 나이지리아 등이 인도에 정상 가격에 자원을 수출하는 모습을 보고 눈이 아마 뒤집힐 겁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우리나라에 자원을 수탈당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려 시도할 겁니다. 때마침 미국이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꼬드기면, A는 우리나라에서 빌린 돈을 상환함과 동시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려고 들 것입니다. 자원들을 정상 가격으로 수출하게 된 A는 이삼 년 안에 미국으로부터 빌린 돈을 상환할 거고요.”
[A의 자원들을 수입해 줄 나라가 과연 있을까요?]
“인도의 싱 총리가 아프리카 7개국과의 TTM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으로 제 대답을 갈음하겠습니다.”
[으음…….]
심정이 복잡한지 시쥔량 주석이 심음을 흘렸다.
자오린 부총리는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복잡하게 상황이 흘러가고 있는 사실을 군부가 알고 있습니까? 인도와의 국경 지대에 2년 동안 군대와 무기를 증강 배치하지 말아 달라고 이렇게 부탁하는데, 그 부탁 하나를 들어주지 못한답니까?”
[군부는 그 2년 동안에 인도가 국경 지대에 군대와 무기를 증강 배치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군부의 의견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주석님,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싱 총리와 담판을 지어 보겠습니다.”
[오오, 그래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려면 인도 측에 반대급부를 제시해야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뭐.]
“제가 싱 총리와 만나 본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 * *
그 시각.
정명훈 사장은 자오린 부총리, 루퍼트 장관과 나눈 대화 내용을 아프리카 7개국의 대표 등에게 브리핑하고 있었다.
“…자오린 부총리는 루퍼트 장관이 커버하기로 했습니다.”
“휴우, 정말 다행이네요.”
싱 총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반해 샤르마 장관은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는 얼굴로 정명훈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 사장님, 자오린 부총리가 루퍼트 장관의 말을 듣지 않고 버틸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그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드르륵―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싱 총리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오린 부총리가 나한테 전화를 걸어왔는데, 이유를 짐작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겨울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총리님, 저희는 조용히 있을 테니까, 스피커폰으로 통화해 보십시오.”
“알았어요.”
짧게 대답한 싱 총리는 자오린 부총리와 통화를 시작했다.
“자오린 부총리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싱 총리님, 긴급하게 상의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인도 측이 우리나라에 제안한 조건을 군부가 반대하고 있습니다.]
“반대하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군부는 국경 지대에 군대와 무기의 증강 배치를 중단하는 2년 동안에 인도 측이 무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때, 겨울로부터 메모지 한 장이 전달되어 왔다.
메모지에 적힌 내용을 읽어 본 싱 총리는 겨울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 주고 자오린 부총리와 통화를 이어 나갔다.
“자오린 부총리님, 우리나라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주면, 어떤 반대급부를 제공해 주실 겁니까?”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십시오.]
“생각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긍정적으로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군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싱 총리는 즉시 겨울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부사장님, 메모지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현재 중국은 인도의 상황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총리님께서는 이 상황을 이용해서…….”
샤르마 장관은 머릿속에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을 모두 털어 냈다
겨울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면, 중국은 눈물을 머금고 아프리카 7개국과의 자원 확보 전쟁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게다가 반대급부로 얻어 낼 보상금은 덤이었다.
샤르마 장관이 흐뭇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겨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자오린 부총리는 돈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보상금을 받아 내지 않으면 의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
“내가 얼마를 청구하면 될까요?”
“인센티브에 대한 정보를 살짝 언급해 주면, 자오린 부총리가 먼저 금액에 대해 언급할 겁니다.”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싱 총리가 만족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곧이어 TTM의 사회를 보고 있던 김윤중 전무가 발언을 이어 갔다.
“오늘은 그렇고 내일 TTM을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네, 좋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1일차 TTM이 종료되었다.
싱 총리는 자오린 부총리에게 곧 찾아가겠다고 전화하고, 곧바로 호텔을 떠나갔다.
겨울은 몰디브 정부가 운영하고 안가에서 두 나라의 미팅을 지켜보기로 했고, 정명훈 사장 등은 송훈석 회장 일행을 마중하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물귀신 같은 인간아, 나를 그만 좀 끌고 다녀라.”
안가로 향하는 차에 올라탄 호영의 입이 댓발 나와 있었다.
아마도 송지유를 마중하기 위해서 공항에 가고 싶은 것이리라.
‘나도 가지 못하는데, 내가 너를 보내 줄 것 같아?’
겨울은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히죽 웃으며 호영의 말에 대꾸했다.
“토끼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먼저 꺼낸 놈이 누군데 그래?”
“그게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누가 대처할 거야?”
“네가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아서라. 나는 네 아이디어에 손대기 싫다.”
“한겨울, 솔직하게 말해 봐. 너는 내가 지유 씨를 마중하러 공항에 가는 게 싫지?”
“싫은 것보다는 배가 아파.”
“인간아, 그게 그거잖아.”
“뭐가?”
두 사람의 언쟁을 조수석에서 듣고 있던 하도진 실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넋두리를 내뱉었다.
“아이고, 이놈의 삼각관계는 도대체 언제 끝날지…….”
안가에 도착한 겨울은 먼저 도착해 있는 루퍼트 장관, 하마드 부통령과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후, 자연스럽게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자오린 부총리와 싱 총리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 모니터에 비춰졌다.
“싱 총리님, 저희가 영빈관으로 가도 되는데, 이곳으로 오신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싱 총리가 안가를 고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자기와 자오린 부총리가 미팅하는 도중에 돌발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안가에서 지켜보고 있는 겨울 등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얘기는 절대로 언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변명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저도 자오린 부총리님을 영빈관으로 초대하려고 했는데, 데사이 국장이 강력하게 반대하는 바람에 부득불 이곳으로 왔습니다.”
“데사이 국장이 반대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싱 총리보다 데사이 국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어젯밤에 신원불명의 사람들이 몰디브에 밀입국했다는 첩보를 저희 정보국이 입수했습니다. 저희는 그들이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테러 단체에 소속된 테러범들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영빈관은 테러범들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는 그다지 적합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래서 몰디브 경찰이 이중삼중으로 경비를 서고 있는 이곳으로 오자고 주장한 겁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이제 총리님과 대화 나누십시오.”
데사이 국장이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2선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싱 총리가 차고 들어왔다.
“우리나라가 중국 측에 국경 지역에 군대와 무기를 2년 동안 증강 배치시키지 말아 달라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에 중국 군대는 우리나라와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에 무기와 군대를 꾸준히 증강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도 맞대응해야 하는데, 딱히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2년 동안 군대와 무기를 증강 배치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굳이 2년을 못 박은 이유가 뭡니까?”
“우리나라가 2년을 제시했을 뿐인데도 중국 군부가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 이상을 제시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군부는 시쥔량 주석에게 반기를 들 것이 확실하다.
싱 총리는 이 점을 감안해서 그나마 가능성 있는 기간인 2년을 도출해 내고 이를 제시한 것이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2년 동안 국경 지대에 군대와 무기를 증강 배치시키지 않겠습니다. 중국 측은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해 주십시오.”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반대급부는 보상금밖에 없습니다.”
“얼마를 제공해 주실지 말씀해 주십시오.”
“주석님과 상의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왕 시 주석님과 상의하시는 김에 우리나라의 요구를 하나만 더 관철시켜 주십시오.”
“그게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7개국과의 자원 거래는 6월 말로 종료해 주십시오.”
그 말은 즉은, 아프리카 7개국과의 자원 거래를 인도에 넘겨 달라는 의미였다.
“우리들은 협정서 체결과 동시에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이 정도 답변이면 되겠습니까?”
“하하, 알겠습니다.”
“주석님과 통화하고 올 테니까,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말과 함께 자오린 부총리는 핸드폰을 들고 침실로 들어갔다.
윙―
그가 쉬쥔량 주석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 샤르마 장관이 문자 하나를 보내왔다.
― 저희 인도가 받는 보상금에 자오린 부총리님의 인센티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후후후, 그렇다는 말이지요?”
자오린 부총리는 씨익 웃으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자오린 부총리,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싱 총리와 협상하고 있습니다. 주석님께 중간 보고를 하려고 연락드린 겁니다.”
[빨리 얘기해 보세요.]
“제가 싱 총리를 설득시킨 끝에 인도 군대도 2년 동안 무기와 군대를 증강시키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하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시쥔량 주석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이제부터가 메인 게임이었다.
자오린 부총리는 아랫배에 힘을 잔뜩 주고 시쥔량 주석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주석님, 싱 총리의 동의를 이끌어 내면서 반대급부를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보상금을 지급해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싱 총리가 얼마를 요구했습니까?]
“아직 금액을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상당히 많은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그도 군부를 달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10억 달러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도록 해 보세요.]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자오린 부총리는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싱 총리에게 인센티브로 얼마를 요구할까?”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