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인센티브 (3)
부속실로 이동한 싱 총리, 루퍼트 장관, 자오린 부총리, 하마드 부통령은 지체하지 않고 대화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자오린 부총리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루퍼트 장관님, 갑자기 4자 대표회담을 진행하자고 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천 외교부장 납치 사건에 대한 보상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문제는 회의실에서 논의해도 되잖아요?”
“물론 그래도 되지만, 자오린 부총리님께서 시 주석님과 통화할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제가 왜요?”
“나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알겠습니다.”
“먼저 우리나라가 요구하는 보상 금액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중국 측에 10억 달러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자오린 부총리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자오린 부총리님, 저희가 요구한 10억 달러가 많아서 그럽니까?”
“아니, 10억 달러가 누구네 집 강아지 이름입니까? 저희는 루퍼트 장관님의 요구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테러범들에게 납치된 천 외교부장을 찾기 위해서 인공위성을 무려 다섯 대나 동원했습니다. 만약에 저희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천 외교부장을 24시간 안에 구출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까? 저희가 도움을 주지 않아서 천 외교부장이 테러범들에 의해서 파키스탄으로 끌려갔을 경우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상상이나 해 보셨습니까?”
자오린 부총리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눈에 훤했다.
천유런 외교부장을 인질로 삼은 테러범들은 당연히 그를 이용해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파키스탄을 탈퇴시켜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볼 수 없었다.
만약에 그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불상사라도 발생하면, 전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당할 가능성 또한 있었다.
이리 가도 막다른 골목, 저리 가도 막다른 골목이었다.
“루퍼트 장관님, 아무리 그래도 10억 달러는 너무 많습니다.”
“천 외교부장의 구출 작전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CIA 요원들의 치료비와 보상금도 만만치 않게 발생했을 겁니다.”
“그래 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병원 치료비가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저하고 자오린 부총리님과는 보통 인연이 아니니까, 10억 달러를 전액 탕감해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침울하던 자오린 부총리의 목소리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보상금 탕감과 관련한 문제는 몰디브와 인도의 요구 사항을 모두 듣고 난후에 구체적으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좋습니다. 하마드 부통령님, 몰디브의 요구 사항을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 몰디브는 천 외교부장을 구출하는 데 인적 물적 피해를 제일 많이 입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피해 보상 금액으로 30억 달러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자오린 부총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삼… 삼십억 달러요?!”
하마드 부통령은 주저하지 않고 30억 달러를 청구한 이유를 낱낱이 밝혔다.
“우리나라는 인명 피해가 미국에 비해서 세 배가 발생했고, 그중에 일곱 명은 사망했습니다. 미국은 10억 달러를 보상해 줄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나라는 안 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 몰디브가 약소국가라서 얕보시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절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럼 저희 몰디브는 중국이 30억 달러를 보상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하아, 일단 알겠습니다. 싱 총리님, 인도의 요구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자오린 부총리님도 들으셨다시피 저희 인도 해군이 모터보트를 격침시키지 않았더라면, 천 외교부장은 영락없이 파키스탄으로 끌려갔을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싱 총리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 인도의 요구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에 자국과 중국이 국경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에 중국군을 증강 배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음 달부터 2년 동안 중국군의 증강 배치를 멈춰 주십시오.”
싱 총리의 요구 사항을 들은 자오린 부총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두가 길었기 때문에 자국에 거창한 요구를 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국경 지역에 중국군의 증강 배치를 영구적이 아닌 고작 2년 동안 멈춰 달라는 요구뿐이라니.
“싱 총리님, 또 다른 요구 사항이 있는 게 아닙니까?”
“전혀 없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싱 총리가 2년이라는 기간을 못 박은 이유는 한국에서 도입하려는 K―9 자주포 200문과 K2 흑표 전차 100대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두 명품 무기를 도입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빨리 서둘러 봐야 1년 6개월이 최선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두 명품 무기가 인도에 도착해서 시험 운용해야 하는 기간을 감안해서 2년을 요구한 것이다.
“부족합니까? 더 강력한 요구를 해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자오린 부총리가 손사래를 치면서 부인했다.
“우리나라의 요구는 큰 문제없으니까, 들어줄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들어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제 회의실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싱 총리가 거침없이 부속실 밖으로 퇴장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루퍼트 장관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자오린 부총리님, 싱 총리님이 자리를 떠난 이유를 말씀해 드릴까요?”
“저도 이유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다름 아니라 일대일로 프로젝트 때문이었습니다.”
“네? 저는 무슨 말씀하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몰디브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마드 부통령님, 그게 사실입니까?”
루퍼트 장관이 차려준 절호의 기회 앞에 하마드 부통령은 잠시 흥분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고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민 전 대통령은 중국과 함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수많은 비리를 저질러서 구속된 상태입니다. 이로 인해서 국민들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그렇게 상황이 심각한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희 몰디브는 지금 당장이라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고 싶지만, 중국에서 빌린 돈을 갚을 길이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천 외교부장 구출 작전과 관련한 보상금 30억 달러를 중국으로부터 받으면, 이를 상환함과 동시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예정입니다.”
“만약에 자오린 부총리님이 몰디브 정부의 요구 사항을 수용해 주신다면, 우리나라가 요구한 보상금 10억 달러는 탕감해 드리겠습니다.”
이때다 싶은 루퍼트 장관도 한마디 보탰다.
“탕감이라…….”
자오린 부총리는 혼잣말을 내뱉고 소파의 팔걸이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장고에 돌입했다.
루퍼트 장관과 하마드 부통령은 그의 생각을 돕기 위해서 말을 잠시 아꼈다.
덕분에 자오린 부총리가 소파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부속실 공간을 떠다녔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난 후, 자오린 부총리가 생각을 끝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마드 부통령님, 보상금으로 부채를 탕감시켜 주고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시켜 드리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주석님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오린 부총리님.”
“루퍼트 장관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미국이 자국에 청구한 보상금 10억 달러는 저한테 인센티브로 주십시오.”
루퍼트 장관은 자오린 부총리가 이런 요구를 해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기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천유런 외교부장을 구출하는 데 자신들이 수행한 일은 공포탄 몇 십 발을 허공에 쏜 것밖에 없었으니까.
“자오린 부총리님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이제 시 주석님께 전화해서 확답을 받아 보겠습니다.”
“저희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그는 시쥔량 주석에게 전화 걸었다.
[자오린 부총리, 어떻게 됐습니까?]
“매우 힘들게 동의를 받아 냈습니다.”
[하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시쥔량 주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자오린 부총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아랫배에 힘을 주고 그와 통화를 이어 나갔다.
“케냐와 모잠비크 건은 무리 없이 해결됐는데,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음,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씀입니까?]
“천 외교부장이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테러 단체에 납치됐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출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아… 몰디브 정부는 그동안 도대체 뭘 했답니까?]
“몰디브 정부는 천 외교부장에게 테러의 위험이 있다면서 방문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요청했답니다. 하지만 천 외교부장은 주석님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서 몰디브 방문을 고집했고요. 결국 몰디브 정부는 불상사가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확약서를 받고 입국을 허락해 줬답니다.”
[이런 멍청한… 그렇다면… 몰디브 정부에 책임을 물릴 수가 없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천 외교부장 납치사건이 발생한 즉시 몰디브 정부는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기…….”
자오린 부총리는 파루마 국장, 데사이 국장, 스미스 팀장에게 들은 얘기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서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 내려갔다.
“…결국 세 나라의 공조 끝에 테러범들을 일망타진하고 천 외교부장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세 나라에 내가 진심으로 고마워한다고 전달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 세 나라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미국은 10억 달러를 요구했습니다.”
[그래요, 10억… 뭐, 뭐라고요?!]
깜짝 놀란 시쥔량 주석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루퍼트 장관의 말을 빌리면, 미국은 사라진 천 외교부장의 행적을 찾기 위해서 인공위성을 다섯 대나…….”
자오린 부총리는 시쥔량 주석과 지루한 질의응답 끝에 인도의 요구 사항까지 모두 언급할 수 있었다.
“세 나라의 요구에 대해서 주석님께서 컨펌해 주십시오.”
[인도의 요구는 당장 들어준다고 하세요. 그리고 미국과 몰디브의 요구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협상해 보세요.]
“제가 목이 쉴 정도로 설득해 봤지만, 미국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몰디브는 요구 사항을 수정해서 제시한 상태입니다.”
[하아, 몰디브의 요구 사항을 얘기해 보세요.]
“자국에서 빌린 30억 달러를 탕감시켜 달라고 했고, 이와 동시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겠답니다.”
[자오린 부총리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몰디브의 정국이 심상치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이번 기회에 손 털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시쥔량 주석이 생각할 것이 있다는 듯 끝말을 흐렸다.
자오린 부총리는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렸다.
이윽고 생각을 끝냈는지,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다시 들려왔다.
[자오린 부총리, 몰디브의 요구를 수용한다고 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요구는 너무 많습니다. 최대한 줄여 보세요.]
자오린 부총리는 줄어들 인센티브가 못내 아쉬웠지만, 시쥔량 주석의 지시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많이 깎아도 2억에서 3억 달러가 전부일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그나저나 언제쯤 귀국할 예정입니까?]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한 모든 협상을 마무리 짓고 귀국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업무는 천 외교부장에게 맡기면 안 됩니까?]
케냐, 모잠비크, 미국으로부터 인센티브를 받아 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루퍼트 장관 납치 미수 사건으로 인해서 천 외교부장은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입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서 수시로 주석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하여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뚝.
전화를 끊은 자오린 부총리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날, 몰디브를 비롯한 세 나라는 무사히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데 성공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