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명품 무기
다음 날 아침.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겨울을 마주친 나이지리아의 오코사 실장이 농담을 가득 담아서 한마디 건넸다.
“저는 한 부사장님이 몰디브에 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겨울은 오코사 실장이 어떤 이유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 몰디브에 입국한 뒤, TTM이 시작되는 오늘 아침에서야 이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겨울이 급하게 변명을 꺼내려는데, 케냐의 루사토 부통령의 입이 먼저 열렸다.
“오코사 실장님, 한 부사장님한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으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흠, 제가 모르고 있는 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졌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사실입니까?”
“저보다는 한 부사장님께 물어보시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결국 루사토 부통령이 던진 뜨거운 감자를 오롯이 혼자서 받게 된 겨울이었다.
“오코사 실장님, 아침 식사가 끝나고, 10시에 회의실에서 그동안의 일을 브리핑해 드릴 예정입니다. 궁금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그렇다면 하나만 얘기해 주세요. 우리에게 유익한 일입니까?”
“유익할지는 모르겠지만, 유쾌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하하, 그러면 됐습니다.”
“저는 손님들과 미팅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우리들 말고 손님들이 또 있습니까?”
“TTM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에서 오신 손님들이 계십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 * *
그 시각.
회의실에 먼저 도착한 정상호 사장은 호영에게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정 이사, 한 시간씩이나 일찍 회의실에 오라는 이유가 뭐야?”
“싱 총리님이 저희와 미팅을 하자고 연락을 취해 왔습니다.”
“미팅하자는 이유를 알고 있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추진하고 있는 15억 달러짜리 프로젝트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호영의 얘기를 듣자마자, 정상호 사장은 원효석 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원 실장, 내가 지시한 거 알아봤나?”
“네, 사장님.”
“그 얘기가 언급되면, 원 실장이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정명훈 사장이 싱 총리 등과 함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싱 총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 사장님, 어젯밤에 천유런 외교부장의 몸값 15억 달러에 관련한 얘기를 데사이 국장에게 들었습니다. 15억 달러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H&J 컨설팅 측의 의견을 들어 보기 위해서 긴급하게 미팅을 갖자고 한 겁니다.”
“저희가 데사이 국장님께 요구한 것은 하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명품 무기 중에 하나인 K―9 자주포 100문 이상을 인도에서 라이선스 생산 없이 우리나라에서 전량 제작해 수입해 달라는 겁니다.”
“15억 달러로는 K―9 자주포 300대 이상을 수입할 수 있는 금액이잖습니까?”
“사실 저희는 데사이 국장님이 천 외교부장의 몸값으로 최대 5억 달러 정도를 청구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원한이 많은 데사이 국장님이 천 외교부장의 몸값으로 무려 15억 달러를 받아 냈습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정명훈 사장이 데사이 국장을 띄워 주자, 예상대로 싱 총리는 기분이 좋은지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싱 총리님, 천 외교부장에게 받은 15억 달러와 관련해서 저희가 나름대로 사용 방안을 궁리해 봤는데, 들어봐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럼요. 얼른 말씀해 보세요.”
“저희와 전략적인 관계인 SH무역의 원효석 실장께서 설명할 예정입니다.”
정명훈 사장이 원효석 실장에게 발언할 기회를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원효석 실장은 싱 총리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무기제조 회사와 최종 합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희는 인도 정부가 15억 달러를 두 종류의 무기를 도입하는 데 사용했으면 합니다.”
“K―9 자주포는 알겠는데, 또 다른 무기는 무엇입니까?”
“K2 흑표 전차입니다.”
싱 총리는 전차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인도는 전차를 국산화 한다는 명분하에 1970년대 초에 일찌감치 아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겨우 실물을 완성해서 무려 34년이 지난 후인 2007년에 실전 배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서 개발한 아준 전차였건만,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능과 전차에 물이 새는 등 자잘한 문제가 돌출되는 바람에 제대로 실전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당장 폐기 처분 해도 시원치 않을 구식 전차를 업그레이드해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의 속 타는 심정을 알고 있다는 듯 원효석 실장이 기막힌 제안을 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원 실장님, K2 흑표 전차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K2 흑표 전차는 대한민국 육군의 최신예 3.5세대 전차로, 2014년부터 실전배치 중에 있는 전차입니다. K2 흑표 전차는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과 독일군의 주력 전차인 레오파드 2와 동급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K2 흑표 전차의 전투 중량은 55톤이고, 최대 속도는…….”
원효석 실장은 K2 흑표 전차의 제원에 대해서 자세하게 브리핑했다.
“…제일 중요한 가격은 M1과 레오파드 2에 비해서 훨씬 저렴한 430만 달러 수준입니다.”
“K2 흑표 전차의 성능이 미군의 M1과 독일의 레오파트 2와 동급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K2 흑표 전차를 생산하는 회사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자료는 미팅이 끝나는 즉시, 데사이 국장님께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15억 달러를 어떻게 사용했으면 좋은지 말씀해 주십시오.”
“9억 달러는 K―9 자주포 200문과 포탄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고, 6억 달러는 K2 흑표 전차 100대와 포탄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결정해 주면 될까요?”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원효석 실장보다 장대산 부사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네, 말씀해 보세요.”
“얼마 전에 미국 CIA가 중국으로부터 인도와 관련된 첩보 문서를 하나 입수했습니다. 중국이 인도와 국경 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병력과 무기를 증강 배치한다는 내용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CIA는 그 시기를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습니까?”
“올해 안에 모든 배치를 완료할 예정이랍니다.”
“허어, 큰일 났네요.”
싱 총리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탄식을 내뱉었다.
겨울은 싱 총리의 걱정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을 급하게 궁리한 끝에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급하게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총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얘기해 보세요.”
“총리님도 알고 계시다시피 루퍼트 장관과 자오린 부총리 사이에 담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 담판에 인도도 참여하십시오.”
“가해자인 우리가 담판에 참여한다고요?”
“총리님, 가해자는 파키스탄에 본거지를 둔 테러 단체입니다.”
“아차, 제가 그 점을 깜빡했네요. 계속 얘기해 보세요.”
“총리님께서는 협상장 밖에서 대기하고 계셨다가…….”
겨울은 싱 총리와 데사이 국장이 수행해야할 역할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러 주었다.
“하하하,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시쥔량 중국 주석은 매우 고집이 세기 때문에 어떻게든 국경 분쟁 지역에 군대와 무기를 증강 배치 할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중국이 손을 쓰기 전에 인도가 선수를 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다가 중국군과 한판 붙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요?”
싱 총리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올해 초에 인도군과 파키스탄 군이 카슈미르 지역에서 포격전을 벌였을 때, K―9 자주포 10문이 파키스탄군이 보유하고 있던 최신예 중국제 자주포 36문을 박살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K―9 자주포 200문이 실전 배치 됐다는 소식을 중국군이 들었는데, 한판 붙자고 호기롭게 덤벼들까요? 저는 쉽게 덤벼들지 못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으하하하!”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싱 총리가 화통한 웃음을 터트렸다.
9부 능선을 넘었다고 판단한 겨울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총리님, 중국이 헛된 꿈을 꾸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15억 달러를 최대한 빨리 사용하십시오.”
“알았어요. TTM이 끝나고 본국으로 복귀하는 즉시 결정해 줄게요.”
“네? 총리님도 TTM에 참석하십니까?”
“아프리카 7개국의 대표들과 격을 맞추기 위해서 내가 TTM에 참석하기로 결정했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때,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정명훈 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총리님, 이제 얼추 회의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명훈 사장은 일행들과 함께 루퍼트 장관과 하마드 부통령을 마중하러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덕분에 회의실에는 싱 총리, 샤르마 장관, 데사이 국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샤르마 장관, 아프리카 7개국이 수출하려는 자원들을 전량 수입하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예정이었습니다.”
“가격에 대해서는…….”
하지만 싱 총리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아주 공교로운 순간에 콩고민주공화국의 부투야 실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기 때문에.
반면에 아무 생각 없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부투야 실장은 두 눈을 의심했다.
이곳에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 회의실에 떡하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 봤는가 싶어 상대방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지만, 역시 비제이 싱 인도 총리가 분명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가가서 정중한 목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싱 총리님,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부투야 실장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저나 총리님께서 몰디브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TTM에 참석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부투야 실장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잠시 후, 문두야 탄자니아 부통령, 알제리의 무함마드 부통령, 오코사 실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들 모두 부투야 실장과 흡사한 반응을 보였다.
아프리카 7개국의 대표들이 싱 총리와 편안하게 사담을 나누는 사이, 루퍼트 장관 일행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부투야 실장 등은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루퍼트 장관님께서 이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아프리카 대륙에서 오신 손님들을 만나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잘 오셨습니다.”
“이제 곧 회의를 시작해야 하니까, 일단 자리에 앉읍시다.”
모두들 자리에 착석하자, 사회자석에 서 있던 신지훈 실장이 마이크 전원을 올렸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H&J 컨설팅에 근무하고 있는 신지훈 실장이라고 합니다. 브리핑에 앞서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을 간단하게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먼저 인도의 비제이 싱 총리님이십니다. 그 다음은 몰디브의 모하메드 하마드 부통령…….”
회의 참석자 소개가 끝나자, 신지훈 실장은 지체 없이 안건을 꺼내 들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지난 일요일부터 어젯밤까지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브리핑하기 위함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곳에서 주고받은 대화는 외부로 유출돼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신지훈 실장은 잠시 말을 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한겨울 부사장님이 브리핑을 총괄할 예정이며 중간중간 사건에 관련된 분들의 첨언이 있을 예정입니다. 이제 한 부사장님께 브리핑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겨울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허리 숙여 정중하게 인사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건의 발단은 TTM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곳 몰디브로 오던 도중에 시작되었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