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2)
“저는 미국, 인도, 몰디브가 모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겨울의 강력한 주장에 정명훈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몰디브는 천유런 외교부장에게 휴가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니 당연히 개입이 확실하고,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 미국의 개입 또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인도의 개입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부사장, 인도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얘기해 줄 수 있나?”
“사실 인도는 천 외교부장의 강제 휴가 작전에 참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시키려는 이유는…….”
장대산 부사장은 겨울이 그렇게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에 그의 아이디어를 인도 정부 측에 전달하면 숨도 안 쉬고 오케이를 외칠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니까.
장대산 부사장이 짧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겨울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저희 및 아프리카 7개국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장 부사장, 조치를 취해 줄 수 있지?”
“네. 물론입니다.”
장대산 부사장의 대답을 들은 정명훈 사장은 회의 참석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천 외교부장 강제 휴가 작전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제 몰디브에 도착할 때까지 편안하게 휴식을 즐겨 봅시다.”
대한 그룹 전용기가 말레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무렵이었다.
그들이 입국 수속을 끝마치고 입국장 밖으로 나오니, 선발대로 먼저 와 있던 김윤중 전무가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짧게 인사를 끝낸 후, 그가 준비해 놓은 차를 타고 호텔을 향해 출발했다.
막간을 이용해서 김윤중 전무는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시작했다.
“사장님, 보안 유지를 위해서 호텔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아프리카 7개국 대표들은 내일 밤과 모레 사이에 입국할 예정입니다.”
“7개국의 실무자들과의 협상 진척 상황은 어떻습니까?”
김윤중 전무는 오늘 오전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협상 도중에 케냐와 모잠비크 측으로부터 수출 가능한 자원 리스트를 추가로 건네받았다.
두 나라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곧 탈퇴할 것을 강조하면서 자기들도 인도에 수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이 요청한 자원을 인도에 추가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
때문에 H&J 컨설팅의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중요한 고객의 요청을 무턱대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김윤중 전무는 머릿속으로 정리한 내용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현재 두 나라에서 리스트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인도 측에는 언제 자원 리스트를 넘겨줄 예정입니까?”
“사장님께 보고하고 넘겨줄 생각이었습니다.”
정명훈 사장은 생각할 것이 있는지 차창 밖의 에메랄드빛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덕분에 승합차 안에는 나지막하게 엔진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정명훈 사장이 시선을 차 안으로 옮기며 말문을 열었다.
“두 나라한테 받은 건네준 자원 리스트는 저한테 넘겨주시고, 인도 측에는 당분간 넘기지 마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어야 할 또 다른 상황은 없습니까?”
“오늘 오전에 나이지리아, 알제리, 모잠비크 측의 실무자들한테 들었는데, 저희에게 운동화와 선풍기, 의류를 발주할 거라고 합니다.”
“그 얘기는 한 부사장한테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작은 섬나라임을 알려 주듯 호텔은 공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프랑스 출장 당시와 마찬가지로 겨울의 룸메이트는 이번에도 호영이로 결정되었다.
호영은 숙소에 올라오자마자 창문을 열고, 저 멀리 보이는 쪽빛 바다를 넋을 잃은 듯 바라보며 겨울에게 말을 건넸다.
“겨울아, 멋지지 않냐?”
“쌓아 놓은 일거리가 엄청나서 그런지, 멋있는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건 나도 피차일반이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사장님하고 대책은 의논해 봤냐?”
“일단 나이지리아 등이 발주한 물량부터 받아 보고 대책을 의논하기로 했어.”
“은센기 사장한테 보내 달라고 요청하면 되잖아.”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는 도중인지 전원이 꺼져 있었어.”
윙윙―
그때, 겨울의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을 꺼내서 발신자를 확인하니, 장대산 부사장이 걸어온 전화였다.
“네, 장 부사장님.”
[한 부사장님, 한 시간 후에 몰디브 정부 사람들과 미팅하기로 했습니다. 로비에서 30분 후에 만났으면 합니다.]
“참석 대상은요?”
[사장님과 저희 둘, 그리고 두 분의 실장님입니다.]
겨울은 여전히 마음을 턱 놓고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 호영이 못마땅했다.
“장 부사장님, 승합차에 자리 하나가 비겠죠?”
[그렇기는 합니다만…….]
장대산 부사장이 의도적으로 말끝을 흐렸다.
겨울은 호영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장대산 부사장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정 이사가 나름 아이디어 뱅크입니다. 같이 갔으면 해서요.”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예상한 대로 호영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쉿, 지금 장 부사장님과 통화 중이야.”
“참, 그렇지.”
호영을 조용히 시키고 겨울은 장대산 부사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장 부사장님, 정 이사를 데리고 가도 되겠죠?”
[하하,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럼 로비에서 뵙겠습니다.”
딸깍.
겨울이 전화를 끊자마자, 호영이 눈을 부라리며 따져 물었다.
“내가 너희 회사의 일에 껴야 하는 이유가 뭐야?”
“너희 회사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들리는데,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우리 회사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케냐와 모잠비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면 너희 회사도 이익이 많을 거잖아.”
“우리 회사에 어떤 이익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
“두 나라가 발주한 선풍기 등은 너희 회사가 공급해야 하잖아.”
“우리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자. 두 나라가 선풍기 등을 우리 회사에 발주했냐? 너희 회사가 아니고?”
“…그렇게 되는 건가?”
“자, 이제 나를 데리고 가려 하는 진짜 이유를 털어놔 봐.”
“배가 아파서 같이 가자고 했다. 이제 됐냐?”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이지.”
약속된 시간이 되어 로비에 내려가니, 먼저 도착해 있던 정명훈 사장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어 왔다.
“정 이사가 웬일이야?”
“한 부사장의 물귀신 작전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물귀신 작전?”
“제가 호텔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것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하하하, 그런 사연이 있었구먼. 정 이사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부탁하네.”
“최선을 다해 보게겠습니다.”
* * *
몰디브 정부 안가 회의실.
미국, 인도, 몰디브, 한국 측 인사들이 속속 회의실에 모여들었다.
주인인 몰디브 측에서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몰디브의 부통령인 모하메드 하마드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나라 경찰국장인 압둘라 파루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찬드라 데사이 인도 정보국장이고…….”
제법 긴 소개가 끝나자, 토마스 타일러 인도주재 미국 대사가 바로 입을 열었다.
“지금 본국에서 루퍼트 국무장관님께서 이곳으로 극비리에 오고 계시는 중입니다.”
하마드 부통령은 진심으로 깜작 놀랐다.
미국의 국무장관은 권력 승계 순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다.
그렇게 엄청난 사람이 자국을 극비리에 방문한다고 하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타일러 대사님, 루퍼트 장관님이 자국을 방문하시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천유런 외교부장을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자세한 영문은 조금 후에 알게 될 겁니다.”
“하여간 알겠습니다.”
하마드 부통령과 대화를 마무리한 타일러 대사는 시선을 장대산 부사장에게 옮기며 말을 걸었다.
“장 부사장님, 이제 자세한 얘기를 해 주세요.”
“네, 대사님.”
짧게 대답한 장대산 부사장은 하마드 부통령에게 질문부터 던졌다.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그럼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3월에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 대륙의 다섯 개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정식으로 탈퇴했습니다.”
“네?! 중국 놈들이 순순히 동의해 주었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하마드 부통령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네. 물론입니다. 중국은 다섯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장대산 부사장은 당시의 사건들을 시간 순으로 자세하게 꺼내 놓았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은 협상을 지켜보고 있던 하도진 실장이 눈치껏 첨언해 주었고.
“…결국 중국 정부는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다섯 나라의 탈퇴를 동의해 주었습니다.”
“당시에 다섯 개 나라의 대표와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이 천유런 외교부장입니다.”
장대산 부사장은 하도진 실장에게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 주고 말을 이어 나갔다.
“다섯 개 나라는 중국에 헐값에 수출하던 자원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고, 다행히도 인도가 수입해 주기로 약속해 줬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케냐와 모잠비크도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전에 계획된 대로 장대산 부사장의 뒤를 이어 겨울이 입을 열었다.
“케냐와 모잠비크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면, 중국은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다섯 개 나라보다 더 큰 대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마드 부통령은 며칠 전, 천유런 외교부장으로부터 자국에 비공식으로 방문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휴가차 자국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빤한 이유를 댔다.
현 시점에 자국에 와봐야 전혀 도움 되지 않기 때문에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국을 방문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해 주었지만, 지금 알고 보니 이면에 엄청난 이유가 숨어 있었다.
하마드 부통령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겨울의 설명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
“…두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천 외교부장이 몰디브를 방문하는 겁니다.”
“한 부사장님, 칠리마 모잠비크 부통령과 루사토 케냐 부통령이 천 외교부장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당연히 Yes입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까?”
“천 외교부장은 두 분의 부통령님을 이곳에서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 만날 수 없다니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겨울의 말에 하마드 부통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천 외교부장은 몰디브에 도착한 후, 의도치 않게 강제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케냐와 모잠비크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황입니다.”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 쪽에서 당근을 주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두 나라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이면에 숨어 있는 중국 정부의 흉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는 당근을 준다고 해도 마음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 미국 정부는 두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즉시, H&J 컨설팅을 통해서 적극 지원할 예정입니다.”
겨울의 완고한 표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끝에 타일러 대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하마드 부통령은 여전히 불안감을 내려놓지 못했다.
“한 부사장님, 천 외교부장이 강제로 휴가를 가려고 할까요?”
“천 외교부장은 나이지리아에서의 협상 실패로 인해서 입지가 상당히 취약한 상태입니다. 그가 두 나라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백발백중으로 외교부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만약에 천 외교부장에게 두 나라를 설득할 수 있는 책임을 면하게 해 준다면, 오히려 휴가를 가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루퍼트 국무장관이 우리나라에 비밀리에 오시는 거군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이제부터 천 외교부장의 강제 휴가 작전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