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40화 (240/328)

[240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1)

“어린이날에 해외 출장 가는 심정을 누가 알아주려나?”

공항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호영이 넋두리를 내뱉었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7개국과 인도의 TTM이 사흘 뒤부터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인 몰디브에서 열린다.

겨울을 비롯한 H&J 컨설팅 임직원들은 TTM 시작 전에 7개국과 개괄적인 협의를 조율하기 위해서 먼저 움직이는 중이었다.

호영을 비롯한 SH무역 임직원들도 마찬가지.

케냐를 비롯한 4개국에서 발주한 품목들에 대한 협의를 위해서 오늘 출발하는 것이고.

“어린이도 아닌 놈이 어린이날 운운하고 있냐.”

“우리는 죽어라고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말이잖아.”

겨울도 호영의 의견에 격하게 동의했다.

프랑스 출장에서 돌아온 날부터 어제까지, 거의 매일 야근을 할 정도로 업무 속에 파묻혀 지냈다.

“하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송 회장님이 우리한테 전용기를 내준 이유를 알고 있어?”

대한민국에서 몰디브까지 직항하는 비행기는 없기 때문에 대부분 싱가포르를 경유한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인지 송훈석 회장이 몰디브까지 대한 그룹의 전용기를 내준 것이다.

“몰디브에 편하게 가라고 그랬다더라.”

“몰디브에서 적어도 내일까지는 휴가를 즐길 수 있겠지?”

“우리 회사는 가능할지 몰라도 너희 회사는 어려울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 아침에 부투야 실장과 통화하면서 골치 아픈 얘기를 하나 전해 들은 겨울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당장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숨기기로 결정했다.

“알려고 하지 마. 다치니까.”

“우리가 모르는 돌발 상황이 또 발생한 거야?”

호영은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끝을 보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겨울은 호영의 호기심을 돌리기 위해서 장대산 부사장한테 들은 얘기를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너는 우리가 출장 가는 몰디브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몰디브는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초창기부터 참여해 온 나라였으니까.

그러나 중국에 편중된 정책을 노골적으로 펴 오던 아민 전 대통령이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면서 작년 11월에 정권을 잃었다.

무함마드 살리 신임 대통령은 아민 정부가 중국과 추진하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해서 재점검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점검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민 전 대통령이 중국 정부와 짝짜꿍해서 저지른 수많은 비리들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결과로 현재 몰디브 정국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일대일로 프로젝트 때문에 정국이 혼란스럽잖아.”

“어라? 알고 있었네?”

“며칠 전에 장 부사장이 얘기해 주더라.”

“아, 그렇구나.”

호영의 호기심을 돌리는 데 성공한 겨울이었다.

“우리 복잡한 얘기는 그만하고, 장 부사장의 얘기를 잠깐 해 보자.”

“장 부사장이 왜?”

“내가 강희한테 들었는데, 장 부사장이 너희 회사의 투자분석 검증팀에 근무하는 이수진 씨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있어?”

“장 부사장이 이수진 씨한테 고가의 화장품을 선물하는 것을 강희가 봤대.”

겨울은 프랑스 출장 당시에 잠시 짬을 내 귀국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서 백화점에 간 기억을 소환했다.

당시에 장대산 부사장은 송지유에게 조언을 받아 가며 상당히 비싼 화장품을 구입했다.

누구에게 선물할 거냐고 물었지만,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알고 보니 이수진 씨한테 선물하기 위해 고가의 화장품을 구입한 거였다.

“오호라! 그렇다는 말이지?”

“아직 썸 타는 단계니까, 모른척하라더라.”

“알았어. 그나저나 너는 강희한테 뭐 선물했냐?”

“향수.”

“고작 향수를 선물했다고?”

“고작 립스틱을 선물한 사람도 있는데 뭘 그래?”

“나하고 네가 같니?”

“너하고 내가 다른 게 뭐가 있는데?”

“나는 강희의 직장상사이고, 너는 남친이잖아.”

“이게 뒈지려고.”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홍석훈 기사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 * *

겨울 등이 탑승한 대한 그룹의 전용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안전고도에 도달하고 전용기의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 신지훈 실장이 겨울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어왔다.

“부사장님, 사장님께서 회의를 하시자고 합니다.”

“회의 참석 대상은요?”

“H&J 컨설팅과 SH무역의 경영진입니다.”

회의실.

상석에 앉은 정명훈 사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번 몰디브 출장은 저희 회사뿐만 아니라 SH무역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출장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기해 주십시오.”

“네, 알았습니다.”

“신 실장, 간단하게 일정을 공지해 주세요.”

“네, 사장님.”

짧게 대답한 신지훈 실장은 회의 참석자들을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시간은 몰디브 기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오늘 오후 2시에 몰디브의 관문인 말리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 이후는…….”

제법 긴 신지훈 실장의 일정 브리핑이 끝나자, SH무역의 임진택 부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신 실장님, TTM에 종료 날짜를 결정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워낙 토론할 것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날짜를 가늠하기 어려워서 그랬습니다.”

“저희는 언제쯤 TTM에 투입될 예정입니까?”

“TTM이 개시되면 적어도 하루 이틀 뒤에는 참여하셔야 할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호영은 공항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겨울에게 들은 얘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번 기회에 호기심을 해결하기로 마음먹고 겨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 놓았다.

“한 부사장님, 숨기고 있는 것을 이제 공개해 주시죠?”

“음… 정 이사, 몰디브에 도착해서 오픈하면 안 됩니까?”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다는 말을 모르십니까?”

“하아…….”

겨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으며 부투야 실장에게 들은 얘기를 입에 올렸다.

“나이지리아, 알제리, 모잠비크가 저희에게 운동화와 선풍기, 의류를 발주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예상한 대로 여기저기서 탄식을 내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상호 사장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부사장, 물량이 많습니까?”

“은센기 사장이 알고 있다는 얘기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은센기 사장도 몰디브에 온답니까?”

“그렇다고 합니다.”

“방법을 찾아보면 해법이 생기겠죠. 우리 모두 힘냅시다.”

“네, 사장님.”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장대산 부사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은 극비사항이기 때문에 절대로 외부로 유출돼서는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TTM에 참석하는 아프리카 7개국의 상황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면,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5개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정식으로 탈퇴한 상태입니다. 케냐와 모잠비크는 이달에 탈퇴할 예정인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뭡니까?”

“케냐와 모잠비크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를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막고 있는 중입니다.”

겨울은 중국 정부가 처해 있는 난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는 위로부터 소말리아,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남아공 순으로 이어져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 대륙의 내부에 위치한 나라들과 교역하기 위해서는 다섯 나라의 항구를 이용해야 원활해진다.

물론 아프리카 대륙의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들의 항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물류비용 증가를 포함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부에 위치한 다섯 개 나라 중에서 소말리아는 무정부 상태인 상황이고, 탄자니아는 이미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한 상황.

그나마 자유로운 남아공은 너무 멀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제일 만만한 나라가 케냐와 모잠비크인데, 그 나라들 역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 조짐을 보이는 중이었다.

중국 정부가 두 나라를 잃는 순간, 아프리카 내부에 위치한 나라들과의 교역 또한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영향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두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막고 있는 중이었고.

겨울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도 장대산 부사장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중국 정부에서 천유런 외교부장을 몰디브에 비공식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그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하도진 실장이 발언권을 요청했다.

“장 부사장님, 천 외교부장 정도면 몰디브를 공식적으로 방문해도 될 텐데, 비공식으로 방문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몰디브에는 반중 정서가 팽배해 있습니다. 몰디브 정부에서는 천 외교부장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며 오지 말라고 했는데, 가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입국을 허락해 주었답니다.”

“아, 그렇군요.”

하도진 실장의 뒤를 이어서 정상호 사장이 입을 열었다.

“장 부사장님, 저희가 몰디브에서 취해야 할 행동 요령이 있습니까?”

“저희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천 외교부장은 수행원들을 30명 정도 데리고 갈 예정인데, 그들 중에서 열다섯 명이 정보기관 소속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케냐와 모잠비크 측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할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두 나라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에는 도감청에 항상 유의해 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순간, 겨울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단, 이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먼저 따른다.

천유런 외교부장이 불상사를 당하게 될 경우, 몰디브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지의 여부였다.

겨울은 이 점을 언급하며 장대산 부사장한테 물었다.

“입국을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겁니다.”

“몰디브 정부가 중국 정부에 각서를 요구해서 받아 놓는 건 어떨까요?”

“어떤 내용의 각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천 외교부장이 불상사를 당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각서입니다.”

겨울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기 전에는 함부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이런 말을 꺼냈다는 의미는 무언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

“한 부사장님, 몰디브 정부가 각서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는 아프리카 7개국과 인도와의 TTM이 별다른 문제없이 끝내도록 유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 외교부장이 몰디브를 방문함으로 인해서 TTM이 방해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TTM이 끝날 때까지 천 외교부장을 외딴섬에서 강제로 휴가를 즐기도록 만들어 버리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 같습니다.”

겨울의 말을 듣고 장대산 부사장은 즉시 이해득실부터 따져 봤다.

자신들과 아프리카 7개국, 그리고 인도는 중국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기 때문에 확실히 이익이 맞다.

하지만 몰디브는 천유런 외교부장이 실종됨으로 인해서 중국 정부로부터 심한 압박에 시달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손해였다.

당사자인 천유런 외교부장은 두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런데도 겨울은 그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고 얘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몰디브 정부는 천 외교부장이 상당히 껄끄러울 겁니다. 그런데 그가 사라져 준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중국 정부가 몰디브 정부를 가만히 내버려 둘까요?”

“그때를 대비해서 받아 놓은 각서를 들이밀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다 해도 천 외교부장은 손해가 될 텐데요?”

“천 외교부장은 케냐와 모잠비크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가 아무리 용을 써도 두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하는 것을 막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고요.”

“하긴… 그렇겠네요.”

장대산 부사장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약에 그가 두 나라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본국에 돌아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협상을 엉망으로 이끈 결과로 중국 정부 수뇌부로부터 신뢰를 많이 잃은 상태일 겁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납치당했고, 의도치 않게 휴가를 즐기게 되었다고 칩시다. 비록 마음은 편치 않았겠지만, 본국으로 돌아가서 최소한 질책은 당하지 않을 겁니다.”

겨울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정명훈 사장은 눈을 반짝 빛내며 입을 열었다.

“한 부사장,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달아야 할까?”

흙수저 성공 신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