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흙수저 성공 신화-239화 (239/328)

[239화] 아∼ 아프리카 (2)

최성진 부회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약에 자기가 싫다고 거부하면, 송훈석 회장은 가차 없이 해고라는 칼을 휘두를 것이 빤 하니까.

지금은 무섭게 내리는 소나기를 피해야 할 때였다.

“조 실장의 제안에 동의합니다.”

“준하 군을 다음 달 1일부터 아프리카 법인에서 근무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있으시면 말씀해 보세요.”

“당연히 없습니다.”

최성진 부회장의 확답을 받은 송훈석 회장은 시선을 옮겨 조병석 실장에게 지시 내렸다.

“준하 군은 준비할 것이 많으니까, 오늘부터 월말까지 휴가 처리 해 주세요.”

“네, 회장님.”

“해외 법인을 담당하고 있는 이진호 사장한테 준하 군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 부회장, 다음에 보십시다.”

축객령을 받은 최성진 부회장이 집무실에서 나가자, 송훈석 회장이 득달같이 조병석 실장에게 말을 걸었다.

“조 실장, 애초에 아프리카 법인 얘기는 없었잖아.”

“제가 어제 오후에 한 부사장과 통화하면서 최준하 처리 여부 건에 대해 물었더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이 말에 담겨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챘다.

“조 실장, 최준하가 아프리카 법인에서 스스로 퇴사하도록 만들라는 얘기겠지?”

“저는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한 부사장이 그런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뭘까?”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였다.

최성진 부회장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그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음… 무슨 말인지 알았어. 서 실장, 아프리카 법인장한테 전화해서 나를 바꿔줘.”

“네, 회장님.”

짧게 대답한 서동호 실장은 추성민 법인장에게 전화 걸어서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후, 핸드폰을 송훈석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추 법인장, 새벽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도로 확포장 공사, 송유관 건설 공사를 수주한 거 알고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지금 공사 시작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벌써요?”

[상반기에 공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조금 늦은 감이 있습니다.]

“나는 추 법인장만 믿고 있겠습니다.”

[믿음 주신만큼 성과로 보답하겠습니다.]

“내가 추 법인장한테 전화한 이유는 귀찮은 부탁을 하나 하기 위해서입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최성진 부회장의 외아들인 최준하 씨를 아프리카 법인으로 발령 낼 예정인데, 제대로 사람으로 만들어 보세요.”

[회장님, 넉넉잡고 두 달만 주십시오.]

송훈석 회장은 그 말에 담긴 뜻이 궁금했다.

“추 법인장, 두 달의 의미가 어떤 뜻인지 얘기해 줄 수 있나요?”

[최준하 씨가 자진 퇴사하는 기간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추 법인장은 최준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 말이 맞겠죠?”

[그 친구가 한겨울 부사장한테 어떤 해코지를 했고, 프랑스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송훈석 회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겨울 부사장에게 해코지한 일은 이미 소문이 많이 났기 때문에 추성민 법인장도 충분히 알고 있을 법했다.

하지만 후자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만 알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이 얘기해 주지 않았으니까, 그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루트는 정명훈 사장밖에 없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정말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아무리 정명훈 사장이 자신들의 전략적 파트너라고 해도, 대한 그룹의 일을 함부로 퍼뜨린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니까.

“추 법인장은 프랑스에서의 일을 어떻게 잘 알고 있습니까?”

“마사카 부통령님을 비롯한 VIP 분들이 자세하게 알려 줬습니다.”

‘아하! 내가 그 사람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정명훈 사장과의 신뢰에 먹칠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추성민 법인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추 법인장, 그분들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편인가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통화하는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최준하가 퇴사하는 데 그 어떠한 잡음도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 *

“네?! 아프리카 법인이라고요?!”

최준하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곳에서 1년 정도 죽은 듯 근무하다가 돌아와.”

“싫습니다.”

“뭐가 어째!”

화를 참지 못한 최성진 부회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최준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가 화를 낼 때는 쥐 죽은 듯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최준하는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고 대신 묵비권 행사를 선택했다.

“네놈 때문에 내가 송 회장한테 개망신을 당했는데, 싫다는 말이 나와!”

순간, 최준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송훈석 회장이 쿨하게 용서해 주었다.

이후에는 그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조신하게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때문에 아버지가 송훈석 회장에게 망신당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버지, 프랑스에 도착한 날에 발생한 사건은 회장님이 용서해 줬잖아요.”

“이놈아, 그날 이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

“휴일을 맞이해서 스위스에 여행 다녀온 것밖에 없습니다.”

“스위스에서 돌아온 이후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생각해 봐.”

최준하는 이제야 모든 정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가 몰래 숙소를 얻은 사실을 양경운 과장이 송훈석 회장에게 보고한 것이리라.

‘에이, 치사한 인간.’

“아버지, 제가 숙소를 따로 얻은 것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저는 회장님께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송 회장한테 숙소를 따로 얻지 말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다는 거야?”

“받았습니다만… 그게 아버지가 망신당할 정도로 큰 잘못은 아니잖아요.”

“이놈아, 직장에서 지시불이행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모르고 있어? 더구나 네놈은 다른 사람도 아닌 송 회장의 지시를 보란 듯이 어겼잖아!”

“…….”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네놈을 아프리카 법인으로 보내기로 겨우 합의했는데, 싫다는 말이 나와!”

“…….”

“해고, 또는 아프리카 법인 중에서 선택해!”

정준하가 대한 그룹에 재입사한 이유는 송지유와 결혼해서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프랑스에서 송지유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시도해 봤지만, 양경운 과장의 철벽 방어로 인해 근처에 가지도 못했다.

결국 송지유와의 결혼은 힘들 것으로 판단 내리고,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목표가 사라졌으니, 대한 그룹에서 근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려놓고 최성진 부회장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꺼낼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아버지의 입에서 해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해고를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이곳에서 몸성히 살아 나갈 수 없을 것이니까.

‘일단 아프리카 법인으로 가서 사표 내는 것으로 하자.’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최성진 부회장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프리카 법인으로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내가 편한 부서에 배치 받을 수 있도록 힘써 줄게.”

“알았어요.”

“내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아프리카 법인에서 1년을 견디지 못하면 유산상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

‘하아, 좆됐네.’

* * *

같은 시각.

정명훈 사장은 추성민 법인장과 통화 중에 있었다.

“추 법인장, 남아공은 아직 새벽 시간 아니야?”

[회장님과 통화하느라 일찍 깼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데?”

[최 부회장님의 외아들인 최준하를 저희 아프리카 법인으로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회장님이 추 법인장한테 차도살인을 맡긴 거구먼.”

[역시 선배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최 부회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퇴사시켜야 할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이제 다른 얘기를 잠깐해 보자고.”

[네, 말씀하십시오.]

“이달 말에 아프리카 법인으로 200만 달러를 보낼 예정이야.”

[200만 달러라니요?]

정명훈 사장은 아프리카 법인의 태스크포스인 FTA 팀에 성과급으로 공사계약 시 0.05%를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이번 프랑스 출장에서 H&J 컨설팅은 잉가 3댐 건설 공사를 비롯한 세 건의 공사를 348억 5,000만 달러에 수주했다.

따라서 공약대로 한다면 FTA 팀에 약 175만 달러를 성과급으로 줘야하지만, 금액을 조금 늘려서 깔끔하게 2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주기로 한 성과급을 주는 거야.”

[저희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래서 싫다고? 줄 때 받아.”

[선배님, 고맙습니다.]

“옆구리 찔러서 절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은 별로지만, 고마워. 그리고 성과급 배분은 추 법인장이 알아서 하라고.”

[하하, 알았어요.]

“다음 달 초에 몰디브에서 인도와 TTM이 있을 예정이니까, 추 법인장도 몰디브로 넘어와.”

[그런데 선배님, 제가 가도 될까요?]

묻는 추성민 법인장의 목소리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은 추 법인장이 알고 있어야 하잖아.”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참고로 하나 더 말해 주자면, 송 회장님도 TTM에 참석할 예정이야.”

[의약품 공급 건 때문에요?]

“그 건도 있고, 에어컨 공급 건도 있고.”

[에어컨 공급 건은 또 뭡니까?]

“내가 얘기해 주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부투야 실장님께 여쭤보면 될 거야.”

[하여간 알았습니다.]

“철도 건설 프로젝트 태스크포스에 김종학 지점장을 투입해야 하니까, 최대한 빨리 보내 줘.”

[선배님, 저희 FTA 팀원들도 태스크포스에 참여시켜도 될까요?]

“비밀리에 가동되는 태스크포스니까 입이 무거운 팀원들로 선별해서 참석시켰으면 좋겠어.”

[그야 기본 아닙니까?]

“하하, 알았어.”

* * *

시간은 흘러서 월말이 되었다.

추성민 아프리카 법인장은 김기찬 관리팀장, 이용수 지원팀장과 업무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팀장, 4월 실적은 어때?”

“전년 대비 125% 신장했습니다.”

“5월 실적은 어떨 것 같아?”

“4월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도 되겠군.”

이용수 팀장은 추성민 법인장이 어떤 의도로 이런 말을 꺼냈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그는 5월 8일부터 몰디브에서 있을 아프리카 일곱 개 나라와 인도와의 TTM에 참석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법인장님, 저도 죽도록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도 일주일 정도 휴가를 냈으면 합니다.”

“법인장님, 저도 어떻게 안 될까요?”

이에 질세라 김기찬 팀장도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우리 셋이 동시에 휴가를 사용하면 곤란하니까, 김 팀장이 양보하는 게 어때?”

“하는 수 없죠. 짬밥에서 밀리는 제가 양보하겠습니다. 그 대신 근사한 선물 하나 주십시오.”

“알았어. 그리고 오늘 법인 계좌로 H&J 컨설팅에서 200만 달러를 보내올 예정이야. 정해진 룰대로 성과급을 배분하도록 하라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 팀장, 최준하 씨한테 연락은 받았나?”

“오정수 과장한테 물어봤는데,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답니다.”

“오늘 도착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내일부터 이곳에서 근무해야 하니까, 오늘 중에는 도착해야 할 겁니다.”

“그나저나 그 친구가 우리 법인 사무실을 알고 있나 모르겠네?”

* * *

“에이, 시발…….”

공항 주위를 둘러보던 최준하는 욕설부터 내뱉었다.

당연히 아프리카 법인에서 자기를 마중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기 이름이 적혀 있는 팻말을 들고 있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택시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아프리카 법인을 찾아갈 수 있지만, 문제는 아프리카 법인의 위치와 전화번호를 모르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에이, 귀찮아.”

최준하는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 걸었다.

[잘 도착했냐?]

“아버지,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아프리카 법인에서 아무도 안 나왔어요.”

[오늘 남아공에 도착한다고 아프리카 법인에 연락 안 했어?]

“3대 주주의 아들이 왔는데, 연락하지 않아도 알아서 마중 나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아…….]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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