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아∼ 아프리카 (1)
다음 날 아침.
최성진 부회장은 모처럼만에 기분이 좋았다.
허공으로 날린 것으로 알고 있던 40억 달러를 되찾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으니까.
일이 잘만 진행되면 프랑스 출장 당시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뇌물로 제공한 18억 달러 중에서 절반 이상은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임지태 회장등과 수립한 계획을 침착하게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부회장님이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천 부회장님께 상환해야할 40억 달러 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저한테 빌린 40억 달러는 천천히 갚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어차피 갚아야 하는데요 뭐. 오늘 중으로 40억 달러를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빨리요? 여하튼 고맙습니다.]
“이제 다른 문제에 대해서 상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네? 다른 문제라니요?]
천쥐펑 부회장이 잔뜩 궁금증을 담아서 물어왔다.
“천 부회장님, 저회 대한 그룹의 전략기획실을 책임지고 있는 조병석 실장을 알고 계십니까?”
[송훈석 회장이 아끼고 있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시 잘 알고 계시네요. 제가 어젯밤에 조 실장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네?! 그게 정말입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천쥐펑 부회장의 깜짝 놀라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생생하게 들려왔다.
“네, 물론입니다.”
[최 부회장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가 조 실장을 포섭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최 부회장님이 대한 그룹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목적도 있지만,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더 큰 목적이라뇨?]
“다름 아니라 철도 건설 프로젝트 때문입니다.”
[철도 건설 프로젝트라…….]
천쥐펑 부회장이 생각할 것이 있는지 끝말을 흐렸다.
‘흐흐흐. 천 부회장,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야, 내 손바닥 위에 있을 거다.’
최성진 부회장이 음흉한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살짝 떨리는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 부회장님,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저희가 수주했다고 판단하면 됩니까?]
“불행하게도 아직은 아닙니다.”
[왜요?]
“조 실장이 대한건설 컨소시엄의 정보를 저희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대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 실장이 얼마를 요구하고 있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천쥐펑 부회장이 은근히 손이 크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어차피 그 돈은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결정권은 그에게 넘기기로 결정해 놓았다.
“아직 요구 금액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결정해서 달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까?]
“네. 그렇습니다.”
[최 부회장님은 얼마를 줬으면 좋겠습니까?]
“공사 규모를 감안해서 2억 달러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 실장이 그 정도 금액으로 만족할까요?]
“천 부회장님은 얼마를 생각하고 계십니까?”
[저는 10억 달러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살짝 실망감이 몰려왔다.
어젯밤에 임지태 회장 등과 작전 계획을 수립할 때, 천쥐펑 부회장이 20억 달러를 제안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각각 10억 달러씩 부담하자고 역제안할 생각이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10억 달러를 제안해왔다.
‘에이, 좀팽이 같은 인간. 10억 달러가 뭐야?’
속으로 한마디 해 주고, 천쥐펑 부회장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천 부회장님,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저희가 수주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돈은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다.”
[최 부회장님, 오늘 돈을 줄 생각이 아니었습니까?]
100% 자기를 떠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최성진 부회장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천 부회장님, 뇌물은 결정적인 순간에 주는 것이 효과가 큰 법입니다. 나중에 조 실장을 만나서 지급하는 것으로 하십시다.”
[역시 최 부회장님은 철저하시군요.]
“그럼 40억 달러를 송금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딸깍.
전화를 끊은 최성진 부회장은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천 부회장, 내가 5억 달러로 만족할 것 같습니까?”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부회장님, 회장님께서 모닝커피를 같이하시자고 합니다.”
* * *
같은 시각.
조병석 실장은 송훈석 회장에게 어제 오후에 설영석 이사와 통화했던 내용에 대해서 보고 중에 있었다.
“…본의 아니게 제가 스파이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그나저나 한 부사장은 어제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을 어떻게 예상했을까?”
“저도 설 이사한테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찌르르 흐를 정도로 깜짝 놀랐습니다.”
“한 부사장한테 고맙다고 전화 한 통화 해 줘야 하는 것 아니야?”
“제가 어제 오후에 전화해 줬는데, 가볍게 웃고 말던데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을 우리 곁에 두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알고 있자고.”
“네. 회장님.”
잠시 대화가 중단된 틈을 타서 서동호 실장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오늘 아침에 지유를 봤는데, 못 보던 가방을 들고 있던데요?”
“프랑스 출장 갔을 당시에 하나 장만했겠지 뭐.”
그때, 조병석 실장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그 가방은 지유가 장만한 것이 아니라 한 부사장한테 선물 받은 겁니다.”
“그게 정말이야?”
“한 부사장이 지유한테 가방을 선물하는 모습을 양경운 과장이 그 자리에서 지켜봤답니다.”
“한 부사장이 지유한테 마음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아무 관심 없는 여자에게 몇 백만 원이 넘어가는 가방을 선물해 줄 골 빈 남자는 없습니다.”
“으하하하!”
송훈석 회장이 큰 웃음보를 터트렸다.
이는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려놓았다는 뜻이었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들어와 최성진 부회장이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입장을 허락받은 최성진 부회장은 빈자리에 앉으며 송훈석 회장에게 가볍게 인사말을 건넸다.
“회장님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집무실 밖에까지 들리던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송훈석 회장은 난처했다.
최성진 부회장에게 변명할 만한 건수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수주한 일감에 대해 언급해 줄 수도 있었지만, 이는 갑작스럽게 웃음보를 터트릴 만큼 새로운 얘기가 아니었다.
머리를 극한으로 쥐어 짜낸 끝에 겨우 그럴듯한 건수를 하나 생각해 냈다.
“암요. 당연히 있고말고요.”
“저도 같이 기뻐할 수 있게 말씀해 주십시오.”
“어젯밤에 서 실장이 뿌요네 회장의 움티카 비서실장한테 전화 받았는데, 최신형 핸드폰 20만 대를 구입해 주겠답니다.”
“회장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고마워요.”
잠시 후, 비서가 서빙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마음을 진정시킨 송훈석 회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최 부회장을 보자고 한 이유는 준하 군과 관련해서 프랑스에서 있던 일을 상의하기 위함입니다.”
“회장님, 제가 모르고 있는 사건이 또 있습니까?”
“두 건이 더 있습니다.”
“하아…….”
무언가 심상치 않음은 느낀 듯 최성진 부회장이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내뱉었다.
“준하 군이 우간다의 마사카 부통령께 사고를 친 다음 날 아침에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았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준하 군은 다른 동료와 같은 숙소를 사용하기 싫다면서 스위트룸을 따로 얻었습니다. 준하 군이 출장 규정을 모르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 건은 가볍게 훈계하고 넘어갔습니다.”
“제 아들놈을 선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얘기하는 것으로 하고, 계속 얘기를 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다음 날 오전에 준하 군이 숙소에 메모지를 한 장 남겨 놓고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메모지에는 주말을 맞이해서 스위스에 여행 다녀온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최성진 부회장도 그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최준하는 자기에게 혼날 것을 우려해서 스위스로 도망을 쳤으니까.
하지만 이 얘기는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제 아들놈이 스위스로 여행 갈 때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까?”
“준하 군이 그런 절차를 밟았다면, 제가 언급하지도 않았겠죠. 만약에 준하 군이 월요일 아침에라도 저나 조 실장을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사과했으면, 그냥 넘어가 줬을 겁니다. 그런데 준하 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최 부회장, 메인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속으로 한마디 내뱉은 송훈석 회장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최 부회장님께서 대신 사과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조금 전에 얘기한 숙소 문제에 대해서 다시 대화를 나눠 봅시다. 저는 그날 아침에 준하 군한테 스위트룸을 얻은 것을 취소하고 직장 동료와 숙소를 같이 사용하라고 지시 내렸고, 준하 군은 분명히 알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최성진 부회장은 이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단숨에 알아챘다.
아들놈은 송훈석 회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또다시 스위트룸을 얻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발각돼서 송훈석 회장의 귀에 들어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송훈석 회장이 자신과의 관계를 감안해서 이 정도는 정상참작해 줄 것이 빤했으니까.
하지만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 부회장님도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준하 군은 제 지시를 어기고 스위트룸을 또 얻었습니다. 회장인 제 지시를 듣지 않는 준하 군이 다른 상사의 지시를 듣겠습니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준하 군을 징계 위원회에 회부해서 해고시킬 예정입니다.”
“네?!”
해고.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에 최성진 부회장은 경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제가 프랑스에서 최 부회장님과 통화할 당시에 뭐라고 했습니까?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고 했고, 최 부회장님은 제 의견에 동의해 줬습니다. 설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지는 않겠지요?”
최성진 부회장은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현 시점에서 자기 집안이 대한 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방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직 하나.
아들놈과 송지유를 결혼시키는 것.
그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서 대한 그룹에서 해고당한 아들놈을 절치부심 끝에 재입사 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또다시 해고당하게 생겨 버렸으니.
아무리 송훈석 회장이 성인군자라고 해도 두 번이나 해고당한 자신의 아들놈을 사위로 들일 가능성은 없었다.
절치부심 끝에 계획한 자신의 20년 대계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아들놈의 해고부터 막아야 한다.
“회장님, 제 아들놈을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됩니까?”
“저도 준하 군을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준하 군의 불성실한 근무태도로 인해서 전략기획실의 분위기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준하 군을 해고시키려는 겁니다.”
조병석 실장은 어제 오후에 겨울과 통화하면서 최준하 처리 건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때 겨울은 자기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 하나를 일러 주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로 보아, 이 얘기를 꺼내면 모두들 만족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발언권을 요청하고 입을 열었다.
“회장님, 준하 씨를 해고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훈석 회장은 의아한 눈으로 말을 꺼낸 당사자를 바라보았다.
조병석 실장이 은밀하게 신호를 보냈다.
무언가 생각이 있다는 신호.
그 신호를 기점으로 송훈석 회장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질문을 던졌다.
“조 실장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저는 준하 씨의 버릇없는 행동의 원인이 지금까지 평탄한 환경만 접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다양한 체험을 하기위해 아프리카 법인으로 보내서 1년 정도 근무시킨 후, 다시 전략기획실로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최 부회장, 조 실장의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