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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성공 신화-237화 (237/328)

[237화] 히든카드

설영석 이사는 온몸에 전기가 짜르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프랑스 출장 당시에 자기는 조병석 실장한테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하나 받았다.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해서 주고받은 문자 내역을 삭제하지 말라는 지시였다.

당연히 이유가 뭐냐고 물었으나, 나중에 알려 줄 거라면서 말을 아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문자가 1억 달러를 온전하게 지켜 내기 위한 묘책의 일환일 줄이야.

“저는 실장님이 이렇게 멀리 내다보고 있는지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안하게도 그 아이디어는 내가 구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한테…….”

[설 이사, 선을 넘지 마세요.]

조병석 실장이 설영석 이사의 말을 중간에서 자르고 경고성 발언을 해 왔다.

순간, 설영석 이사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실장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박 사장을 돌려보내고 내 사무실로 오세요.]

“실장님, 잠깐만요.”

설영석 이사가 전화를 끊으려는 조병석 실장을 급하게 불렀다.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왜요? 할 말이라도 남아 있습니까?]

“박 사장은 YCM건설 컨소시엄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자가 어떤 근거로 그 얘기를 했습니까?]

“박 사장은 최 부회장이 프랑스에서 모두 59억 달러를 사용했다면서…….”

설영석 이사는 박철헌 사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자세하게 보고했다.

“제가 대답하려는 순간에 실장님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음…….]

조병석 실장은 생각할 것이 있다는 듯 끝말을 흐렸다.

설영석 이사는 그가 어떤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으나, 분위기가 자못 심각해서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설 이사,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요.]

“네, 말씀하십시오.”

[박 사장한테 철도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같은 시각.

박철헌 사장은 불안감과 함께 초조감이 훅 밀려왔다.

설영석 이사가 누군가와 통화를 위해서 밖으로 나간 지 벌써 20분.

“설마… 이 인간이 도망친 것은 아니겠지? 만약에 도망쳤으면, 부회장님께 어떤 핑계를 대지?”

이런저런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도중, 때마침 설영석 이사가 커피 전문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질문을 던졌다.

“설 이사, 누구한테 걸려온 전화인데 이제야 온 거야?”

“조병석 실장한테 걸려온 전화입니다.”

“조 실장이 왜?”

이제부터 중요한 순간이었다.

설영석 이사는 조병석 실장한테 지시받은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떠올리고 박철헌 사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한테 돈을 달랍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천쥐펑 부회장에게 받은 수고비 1억 달러 중에서 9,000만 달러를 조 실장한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놈한테 그렇게 약속한 이유가 뭐야?”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도로 확포장 공사와 관련한 정보를 조 실장한테 건네받았기 때문입니다.”

박철헌 사장은 설영석 이사의 말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송훈석 회장의 총애를 받고 있는 그가 아쉬울 것이 뭐가 있어서 이적행위를 하겠는가.

1억 달러를 토해 내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것이 틀림없었다.

“설 이사, 나보고 믿으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사장님, 제가 그렇게 민감한 정보를 어떻게 취득할 수 있겠습니까?”

“설 이사가 조 실장한테 정보를 넘겨받았다는 증거가 있나?”

“제가 조 실장한테 받은 문자를 확인하시면 믿을 수 있을 겁니다.”

박철헌 사장은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설영석 실장에게 건네받은 핸드폰에는 조병석 실장이 보내온 문자가 떡하니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심쩍은 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문자 내용을 100%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설 이사, 문자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잖아.”

“사장님, 제가 뭐가 아쉬워서 문자를 조작하겠습니까? 설령 제가 문자를 조작했다 하더라도 날짜와 시간은 조작할 수 없잖아요.”

설영석 이사의 말이 맞았기 때문에 딱히 대답거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인정하면 1억 달러는 절대로 돌려받지 못한다.

그의 논리를 깨뜨리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낸 끝에 그럴듯한 묘안 하나를 생각해 냈다.

“자네는 조 실장이 우리를 농락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설 이사도 알다시피 그날 밤에 나한테 보내 준 자료가 결과적으로 가짜였잖아.”

“제가 사장님께 최종 제안서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최종 제안서를 나한테 보내 줬어야지.”

“다음 날 오전에 보내 드렸잖아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제 핸드폰을 확인하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문자 내용을 확인한 박철헌 사장은 큰일 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날 오전에 H&J 컨설팅과의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신지훈 실장한테 덤볐다가 비즈니스 룸에서 쫓겨났다.

그때 화를 이기기 못한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벽에 집어 던져서 산산조각 내 버렸는데, 하필이면 그 시간에 설영석 이사가 문자를 보내왔을 줄이야.

만약에 이 사실을 최성진 부회장이 알게 되는 날에는 자기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이쯤에서 1억 달러를 포기하는 것이 맞았다.

“설 이사, 오해해서 미안해.”

“저도 사장님께 1억 달러를 드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나저나 조 실장이 이적행위를 하는 이유가 뭘까?”

“돈 욕심밖에 더 있습니까?”

“그럼 이제 조 실장은 우리 편이라고 보면 되나?”

“죄송합니다만, 아직 우리 편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조 실장을 이용하려면, 수고비를 줘야 한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맞아?”

“네, 그렇습니다. 그는 건별로 수고비를 받기 원하고 있습니다.”

순간, 박철헌 사장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자신들과 대한건설 컨소시엄의 2파전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만약에 자신들이 조병석 실장을 스파이로 이용한다면, 대한건설 컨소시엄이 H&J 컨설팅에 제안한 내용을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땅 짚고 헤엄치는 것보다 손쉽게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 있었다.

“설 이사,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해 보자고. 철도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 세 나라가 400억 달러를 누구한테 투자받았는지 얘기해 봐.”

결국 돌고 돌아서 제자리를 찾아왔다.

“저는 미국 정부로부터 투자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고 있나?”

“CNOOC가 우간다와 탄자니아를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공사에서 발을 뺀 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설영석 이사는 의도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중국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며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두 나라가 탈퇴했고, 케냐도 곧 탈퇴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박철헌 사장은 일련의 상황을 이제야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앞세워 아프리카 대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작업에 들어갔고, 그 첫 번째 타깃이 된 나라가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였다.

콩고민주공화국에는 도로확포장 공사를, 다른 세 나라에는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미끼로 이용해서 IBRD에서 각각 200억 달러와 400억 달러를 지원받도록 만들어 분 것이다.

때문에 철도 건설 프로젝트는 중단 없이 정상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물었다.

“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런 극비정보를 누구한테 취득했나?”

“조 실장밖에 더 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정보는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장님도 비밀 유지에 각별하게 신경 써주십시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부회장님께는 제가 처한 상황을 잘 말씀드려 주십시오.”

“하여간. 알았어.”

* * *

그날 밤.

최성진 부회장은 강남의 고급 주점으로 YCM 그룹의 임지태 회장, 박철헌 사장을 불러냈다.

지난 프랑스 출장 건에 대해 이것저것 따져 보기 위함이었다.

“박 사장, 설 이사한테 1억 달러를 받아 냈나?”

“그게… 조금 어렵게 됐습니다.”

“왜!”

최성진 부회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박철헌 사장은 이런 일이 있을 것에 대비해서 완벽한 변명거리를 이미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1억 달러의 주인은 설 이사가 아니라 조 실장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박 사장, 당신은 설 이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나?”

“제 말씀을 들어 보시면, 부회장님도 믿으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놈이 어떤 궤변을 늘어놓았는지 들어나 보자고. 얼른 얘기해 봐.”

“설 이사는 저한테…….”

박철헌 사장은 설영석 이사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최대한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달했다.

“박 사장, 조 실장이 돈 때문에 이적행위를 했다는 말을 믿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조 실장이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려고 설 이사를 역이용했을 가능성은 없을까?”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뭐야?”

“대한건설 컨소시엄의 작성한 최종 제안서를 다음 날 오전에 조 실장이 저희한테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뭐? 그런데 내가 왜 최종 제안서를 받아 보지 못했지?”

“그게… 신지훈 실장 놈에게 쫓겨난 제가 화가 나서 핸드폰을 부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게 내가 성질을 죽이라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최성진 부회장이 버럭 내지른 소리에 박철헌 사장이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가 임지태 회장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매형, 당시에 우리가 대한건설의 제안서 내용을 입수했어도, 잉가 3댐 건설 공사와 도로 확포장 공사는 수주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지나간 일은 잊어버립시다.”

“에이, 그래야지. 별수 있어?”

그 말과 함께 최성진 부회장은 위스키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박철헌 사장은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부회장님, 제가 놀라운 정보를 하나 입수했습니다.”

“어떤 정보인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박철헌 사장의 말을 듣고 있던 최성진 부회장은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박 사장, 네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한 이유가 뭐야?”

“그 이유까지는 듣지 못했습니다.”

“에이, 못난 친구 같으니.”

이 말과 함께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 걸었다.

[네, 부회장님.]

“설 이사, 조 실장한테 얼마를 빼앗겼나?”

[모두 9,000만 달러입니다.]

“그렇군. 그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를 잠깐해 보자고. 탄자니아를 비롯한 네 나라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면, 중국 정부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탈퇴했다고 들었습니다.]

“뭐야! 중국 정부가 네 나라의 요구 조건을 순순히 들어줬다고?”

[케냐를 제외한 세 나라가 중국 정부에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제시해서, 손쉽게 탈퇴할 수 있었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부회장님, 박 사장님께 철도 건설 프로젝트와 관련한 보고를 받았습니까?]

최성진 부회장은 철도 건설 프로젝트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수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40억 달러를 뇌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설 이사, 또다시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 거야?”

[부회장님, 저는 YCM 건설 컨소시엄이 철도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부회장님의 손에는 조병석 실장이라는 히든카드가 있지 않습니까.]

“히든카드라… 으하하하!”

흙수저 성공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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